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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Humanities 1004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 원정, 아나톨리아 반도 점령, 이수스 전투,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 대왕은 바로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서 태어났으며 공식적인 호칭은 알렉산드로스 3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3년 동안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배우면서 학문적인 소양을 닦았고 전술 및 행정에 관해서는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에게 배웠다. 필리포스 2세의 맏아들로서 BC 340년 필리포스 2세가 비잔티움을 공격할 때 마케도니아의 대리통치를 맡았고 BC 338년의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직접 좌익을 지휘하며 승리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처럼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필리포스 2세의 후계자 교육을 착실하게 받았지만 필리포스 2세와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사이가 좋지 않아 실제로는 아버지와는 소원한 사이였다.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에페..

운명의 과학,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과학, The Science of Fate, 한나 크리츨로우(Hannah Critchlow), 알릴레오

운명의 과학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과학 우리는 운명론적 존재인가, 자유로운 존재인가?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한 인간이 가진 생각을 최신 신경과학을 근거로 하여 풀어내는 인간적이고 수준 높은 과학 교양서 이 책은 영국 왕립 헌장을 받은 왕립기관 과학위원회가 선정한 영국의 선도적인 실천 과학자 100인이자 대표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 10인 중 한 명인 한나 크리츨로우 박사가 최신 신경과학을 근거로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해 설명한 책으로, 인간은 타고난 생물학적 요소에 휘둘리는 존재이지만 가장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부위, 뇌는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자유의지를 가진 뇌 덕분에 우리는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기에 비관적으로 살..

필리포스 2세, 그리스 패권, 제3차 신성전쟁, 카이로네이아 전투, 헬라스 동맹, 필리포스 2세, 망치와 모루 전술

필리포스 2세 필리포스 2세가 즉위하기 이전부터 마케도니아는 주변국의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었다. 필리포스 2세가 즉위하자 아직 안정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 동쪽의 트라키아와 파이오니아가 처들어왔고 동시에 아테네의 지원을 받는 아르게우스가 왕위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필리포스 2세는 트라키아와 파이오니아와 협정을 맺고 공물을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군사를 물리게 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후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아테네의 중장보병 3천명을 격파하였다. 이렇게 하여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필리포스 2세가 즉위한 시절 그리스는 스파르타가 테베에게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그 영향력이 펠로폰네소스 반도 이내로 크게 축소된 상태였고 테베 역시 BC 362년 만티네이아 ..

마케도니아 등장, 알렉산드로스 1세, 페르디카스 2세

마케도니아 등장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증손인 아리스토마쿠스의 세 아들 테메누스, 크레스폰테스, 아리스토데무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점령한 후 크레스폰테스가 메세니아와 스파르타를, 아리스토데무스가 라코니아를, 테메누스가 아르고스를 각각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 중에서 테메누스의 사후 그의 아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발생하였고 여기에서 밀려난 카라노스가 델파이의 현자인 피티아스의 조언에 따라 북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녹지로 우거진 골짜기를 찾아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아이가에'라고 명명하였는데 이것이 마케도니아 아르고스 왕조의 시작이다. 마케도니아의 시작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남겼다. 헤로도토스 역시 마케도니아의 기원을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고스와 연관을 지었는..

테베의 패권, 레욱트라 전투, 스파르타 붕괴, 에파미논다스

테베의 패권 테베는 그리스 중부의 보이오티아 평원의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미케네 문명 시절부터 존재한 유서깊은 곳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페니키아의 왕인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가 황소로 변한 제우스의 등을 타고 로도스 섬으로 끌려가자 그 오빠인 카드모스가 동생을 찾아 헤메게 되었다. 카드모스는 도중에 아폴론을 만나 동생 찾는 일을 중단하고 도중에 만난 암소를 뒤쫓아 가서 암소가 눕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말을 들었고 진짜로 암소를 만나자 아폴론의 말 대로 암소가 눕는 곳에 건설한 도시가 바로 테베이다. 또한 테베는 오이디푸스의 전설로도 유명하다. 이렇듯이 테베는 유서깊은 도시로서 BC 6세기경 그리스 중부의 폴리스 간의 동맹인 보이오티아 동맹의 맹주로서 군림하게 되지만 크세르크세스 1세가 ..

스파르타 패권, 펠로폰네소스 전쟁, 아르키다모스 전쟁, 데켈레아 전쟁, 코린토스 전쟁, 안탈키다스 화약

스파르타 패권 펠로폰네소스 전쟁 스파르타는 모든 농업 활동을 노예인 헬로트에게 맡기고 스파르타인들은 모두 군사훈련에만 매진하는 독특한 제도 덕분에 그리스 폴리스 중 가장 강력한 육군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되었고 이러한 점은 페르시아 전쟁에서도 여실히 들어났다. 그러던 중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힘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면서 융성하여 그리스 중부의 보이오티아까지 진출하면서 스파르타가 위협을 느끼게 되자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왕 플레이스토아낙스가 스파르타군을 이끌고 엘레우시스 평원까지 진출했지만 왕의 자문을 맡은 클레안드리다스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에게 매수당하면서 플레이스토아낙스는 BC 445년 아테네와 30년 화약을 체결하고 군대를 물리고 말았다. 뇌물을 수수..

아테네 패권, 델로스 동맹, 페리클레스,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아테네 패권 델로스 동맹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 폴리스의 최종 승리로 끝난 직후인 BC 477년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재침공을 예방하고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나톨리아 반도의 그리스계 도시를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미칼레 전투를 위해 일시적으로 구성되었던 해군 동맹을 이제는 상설화시켰다. 이 동맹은 본부 및 동맹기금을 수납하는 금고가 델로스섬에 있었기에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이라고 불리게 된다. 델로스 동맹에는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거의 모든 그리스 폴리스가 참여하면서 융성시에는 참가한 숫자가 200개나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해외에 지나친 힘을 소모하는 것을 꺼려한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ian league)'과 중립을 유지하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오니아 반란, 다리우스 1세, 마라톤 전투, 팔랑크스 대형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오니아의 반란 오리엔트를 통일한 페르시아가 그리스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Achaemenid Persia)'가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이오니아의 몇몇 그리스계 도시들을 지배한 이후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일반적으로 그냥 '페르시아 제국(Persian Empire)'으로 불리웠다. BC 544년경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Cyrus II)가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의 '리디아(Lydia)'를 정복하면서 이오니아의 그리스계 도시들도 페르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그러나 BC 525년 키루스 2세의 뒤를 이은 캄비세스 2세(Cambyses II)가 이집트 원정에 성공하자 아나톨리아 반도의 그리스계 도시들의 페르시아에 대한 불만이 더 커졌는데 이..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 전투, 미칼레 전투, 칼리아스 화약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테르모필라이 전투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넌 페르시아 군은 트라케와 마케도니아를 지난 후 발칸 반도를 남하했고 해군도 해안선을 따라 육군과 보조를 맞추어 전진했다. 페르시아의 재침공이 점차 현실화 되자 북부의 일부 그리스 폴리스들이 페르시아에게 항복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 폴리스들은 서로 간의 반목을 중단하고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파르타도 참전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자신의 장점을 살려 각각 해군과 육군을 지휘하기로 합의했다.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넓은 '테살리아(Thessalía)' 평원에서는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중부 지방의 좁고 험한 산악 지역인 '테르모필라이(Thermopylai)..

그리스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 폴리스, 아테네,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과 직접 민주정, 스파르타의 군국주의, 과두정

에게 문명 1. 기원전 2000년경 크레타 섬, 그리스 본토 미케네 등지에서 발달 2.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으로 에게 해 주변에서 발달한 청동기 문명 3. 의의 서아시아와 이집트의 발달된 문물(오리엔트 문명)을 그리스와 유럽에 전달 크레타 문명 1. 성립 ▶ 에게 해 크레타 섬에서 성립한 청동기 문명 2. 특징 ▶ 크노소스 궁전 건축,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문명 미케네 문명 1. 성립 ▶ 그리스 본토에서 발생한 청동기 문명 2. 성쇠 ▶ 군사적 성격 강함 → 트로이 정복, 철기를 사용하는 도리아인(도리스인)에 의해 멸망 에게 문명 '오리엔트(Orient)' 지방과 별도로 BC 3천년경부터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의 주변인 '에게해(Aegean Sea)'를 중심으로 '발칸(Balkan)..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1세, 테르모필라이 전투(Battle of Thermopylae), 스파르타 전사 300,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헬레니즘(Hellenism) 문명

크세르크세스 1세 시대 이집트와 바빌론의 반란 진압 BC 486년 다리우스 대제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즉위하였다. 비록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리우스 대제의 장자는 아니었지만 즉위한 이후에 처음으로 얻은 아들로서 그 어머니가 키루스 대제의 딸인 아토사였기 때문에 다리우스 대제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즉위후 당면한 문제는 다리우스 대제 시절에 일어난 이집트의 반란을 평정하는 일이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속주민에게 관대했던 다리우스 대제와 달리 강압적인 방법으로 통치하기 시작하였는데 2년 동안 진행된 이집트 반란의 진압도 마찬가지여서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을 대대적으로 파괴하여 반란을 응징하였다. 또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자신이 이집트 반란 토벌에 매달려 있는 ..

지중해 패권 순서, 그리스와 페니키아, 카르타고와 로마, 로마제국, 동서로마의 분열, 게마르만족 왕국과 비잔틴제국, 이슬람, 르네상스의 도시국가, 오스만제국과 스페인제국

그페 카로로 동서 비게이스 르오스 근 "급해 가로로 동서 비게있스 누워서 근데" ● 지중해 패권 순서 그리스와 페니키아 카르타고와 로마 로마제국 동서로마의 분열 게마르만족 왕국과 비잔틴제국 이슬람 르네상스의 도시국가 오스만제국과 스페인제국 지중해 근현대사 그리스와 페니키아 식민지 카르타고와 로마

페르시아 제국, 캄비세스 2세, 이집트 정복, 다리우스 1세

캄비세스 2세 시대 즉위와 이집트 원정 준비 키루스 대제의 남은 목표는 옛 아시리아의 영토 중 정복하지 못한 이집트의 정벌 뿐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집트 정벌을 나서기 전인 BC 530년 키루스 대제는 북방을 침입한 '스키타이인(Scythians)'의 일파인 '마사게타이족(Massagetae)'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이집트 정벌 숙원은 아들인 캄비세스 2세(Cambyses II)에게 이어졌다. 캄비세스 2세는 태자로서 바빌론을 포함한 '바빌로니아(Babylonia)' 북부의 통치자로 임명받아 제국 통치를 배웠고 키루스 대제가 사망하자 곧바로 왕위를 계승한 후 제국을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이미 키루스 대제 시절부터 이집트 원정의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캄비세스 2세는 즉위한 지 4년 ..

세계 최초 제국 페르시아, 세계 첫 종교 조로아스터교, 키루스 대제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 세계 최초의 세계제국 페르시아, 세계 첫 종교 조로아스터교 발상지 이란은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는 아니지만 페르시아제국이라는 세계 최초로 세계제국을 건설한 국가다. 페르시아제국 이후 몇 개의 왕조를 거치지만 페르시아의 화려했던 고대문명의 명성을 잇기 위해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BC 6세기부터 AD 7세기까지 페르시아란 제국의 명칭은 계속되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번성했을 시기는 BC 5세기 전 후 다리우스 대왕 때다. 지금의 인도 서부와 그리스 동부 일부와 이집트까지 점령한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란은 또한 세계 최초의 종교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제국의 강력한 사상적 기반, 즉 통치이데올로기가 조로아스터교였던 셈이다. 조로아스터교 교리..

아슈르바니팔 시대, 이집트 정복, 바빌로니아 전쟁, 신바빌로니아 왕국

아슈르바니팔 시대 이집트 정복 완료 즉위 시에 형제들과 왕위 계승 다툼을 벌여야 했던 에사르하돈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면서 아들인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은 아시리아의 왕으로, 그의 이복 형제인 샤마시-슘-우킨(Shamash-shum-ukin)은 바빌로니아의 왕으로 지명하였고 그의 사후 누구도 이에 대하여 반발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도록 했다. BC 669년 에사르하돈이 이집트 원정 중에 사망하자 에사르하돈의 염원대로 아슈르바니팔이 아시리아의 왕위를, 샤마시-슘-우킨이 바빌로니아의 왕위를 각각 계승하였다. 아슈르바니팔의 즉위한 후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집트 원정의 마무리였다. 에사르하돈이 죽은 것을 알게된 이집트의 파라오(Pharaoh)인 타하르카(Taharqa)가 다시 반격을 개시하여 멤..

아시리아 신왕조, 아다드 니라리 2세, 사르곤 왕조, 센나케리브 시대

아시리아 신왕조 시대 아다드 니라리 2세 시대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Tiglath-Pileser I, 재위 BC 1115년 ~ BC 1077년)의 재위 시절에 영토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아나톨리아 반도의 남부까지 이르렀던 '아시리아 중왕조(Middle Assyrian Empire)'도 서쪽의 '아람인(Arameans)'과 동쪽의 산악 민족의 압력에 시달리며 쇠퇴하였다. 그러던 중 아슈르 단 2세(Ashur-dan II, 재위 BC 934년 ~ BC 912년)가 즉위한 후 아람인과 산악 민족의 준동을 진압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번 부흥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아슈르 단 2세의 아들 아다드 니라리 2세(Adad-nirari II, 재위 BC 912년 ~ BC 891년)가 즉위하면서 ..

고대 이집트, 히타이트 제국, 카데쉬 전투

신왕국 시대 이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이 각축을 벌이고 있을 때 '나일(Nile)' 강의 풍요로움을 안고 북아프리카의 나일강 하류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Ancient Egypt Civilization)'이 피워오르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는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1세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하고 아카드 제국을 건설(BC 2350년)하기 이전인 BC 3100년 경에 이미 통일 국가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고대 이집트는 '제1왕조(Dynasty I)'와 '제2왕조(Dynasty II)'로 이어지는 '초기 왕조 시대(Early Dynastic Period, 대략 BC 3150∼BC 2686년 경)'에 '멤피스(Memphis)'를 수도로 하는 통일 국가를 형성하였다. 이후 고대 이집트는 '제..

노예제 폐지, 영국 성공회, 윌리엄 윌버포스

노예제 폐지운동 15세기에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최초의 노예 무역을 시작한 이래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노예 시장화시켰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성공회 평신도이자 국회의원인 윌리엄 윌버포스가 감리교창시자이자 성공회 신부인 존 웨슬리 신부의 지지에 힘입어 노예 제도의 폐지를 추진함으로써 1807년 노예 무역이 폐지되었으며, 1833년에는 대영 제국 전체에서 노예 제도가 없어졌다. 윌리엄 윌버포스 William Wilberforce 1759년 8월 24일 ~ 1833년 7월 29일 영국의 정치인.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이끈 지도자이다. 미국에 에이브러햄 링컨이 있다면 영국엔 윌버포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영국 정치인들이 닮고 싶어하는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의 특권을 포기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페니키아 문자, 알파벳 문자, Poenician alphabet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 12세기부터 사용하던 문자이다. 아브자드의 일종으로서 모음 표기가 없고 자음 표기만 존재한다.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에서 교역으로 먹고 살던 민족으로서 지중해 세계 각지에 진출했는데 이때 고대 이집트에서 이집트 상형문자를 배웠고, 이것이 원시 시나이 문자를 거쳐 페니키아 문자로 발전했다. 본래는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상형문자의 일종이었으나 점차 표음문자가 되어갔다. 오늘날에는 더이상 쓰이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문자 중 하나이다.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주요 표음문자들 대부분이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인들과 교류하면서 페니키아 문자를 배웠고, 이를 변형함과 동시에 페니키아 문자에서 자신들이 쓰지 않는 음가의 문자를 모음 문..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 함무라비, 최초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메소포타미아 통일과 번영 함무라비 바빌론은 셈족 계통의 아모리족이 세운 도시 국가로 바빌론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는 BC 1772년 경 왕위에 올랐다. 함무라비는 재위 7년경에 우르크와 이신을 상대로 정복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이후에는 오랫동안 내치에 힘썼다. 사실 이 당시의 바빌론은 사실상 아시리아의 속국 처지였기 때문에 함무라비로서도 내치에 힘쓰며 내실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함무라비에게 기회가 왔다. 북부의 강자 아시리아의 샴시아다드 1세가 급사한 것이었다. 이후 함무라비는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정복 전쟁에 나섰다. 함무라비는 중부의 소국들을 빠르게 병합하였고 동쪽의 이란계 엘람이 처들어오자 남부의 라르사와 연합하여 오히려 엘람을 무너뜨렸다. 이어서..

수메르 청동기, 아카드 제국, 엘람, 아시리아 고왕조

수메르의 청동기 군사 혁명 수메르인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한 후 우르, 키쉬, 우르크, 니푸르, 라가쉬와 같은 여러 도시 국가들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은 서로 연합하거나 전쟁을 벌이면서 공존해 나가면서 무기 면에서도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메르인은 청동 판금 갑옷, 투구, 만곡도, 찌르는 도끼 등을 차례로 탄생시켰고 초기 형태의 전차까지 개발하였다. 당시의 전쟁은 석창과 나무 방패를 든 보병들의 대결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때 등장한 수메르인의 신무기는 동시대인들에게 가히 청동기 군사 혁명이라 할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먼저 수메르인이 만들어낸 구리검은 역사상 최초의 살인용 검이었다. 수메르인은 후기에 등장하는 철보다는 구하기 어렵지만 제련이 용이했던 구리를 이용하여 전쟁시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구..

오스만 제국, Ottoman Empire, 튀르크계 오스만 족 건국(13세기)

오스만 제국 (Ottoman Empire, 1299 ~ 1922)은 오스만 가문을 왕가로 하여, 현재 터키 최대의 도시인 이스탄불에 도읍하여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러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제국이다. 터키 제국, 오스만 튀르크 또는 단순히 터키라고도 불렸다. 아나톨리아 (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나온 소 베이국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국은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남동유럽의 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를 포함한 서아시아 ·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제국을 동시에 정복하면서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

터키 지정학, 역사, 이스탄불, 동양 서양 관문

터키의 지정학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이스탄불을 둘러싼 주변 지역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 지역에 거주하던 투르크인들은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왔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이 육교 같은 지역에 정착했다. 이 지역은 흑해와 에게해로 흐르는 마르마라해를 잇는 육교 역할을 한다. 투르크인들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을 점령하면서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투르크인들은 이 육교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보스포러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은 물론,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당시 터키의 중심은, 지금의 터키인 아나톨리아의 광대한 지역이 아닌, 이 육교 지역이었다. 투르크인들은 주변의 바다와 평야를 손안에 두면서, 지역의 무역과 경제 성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을..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진보는 가짜다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진보는 가짜다. 선과 악은 사회성의 조절장치다. 진보와 보수는 권력의 조절장치다. 진보는 새로운 권력을 지속적으로 데뷔시키고 보수는 검증하여 추려낸다. 60년대 진보는 비키니였다. 누가 '진보가 뭐지?' 하면 '비키니가 진보야' 하면 되었다. 마광수 흥분했다. 점점 짧아지고 있군. 끈팬티 다음은 뭐지? 착각이다. 지금른 래쉬가드가 진보다. 길이와는 상관없다. 바보야! 지금은 스키니 진을 넘어 레깅스가 진보다. 모르겠냐? 환경변화를 선점하는 것이 진보다. 변화를 주시하고 변화를 긍정하고 변화를 부추긴다. 진보에 정답은 없고 능동이냐 수동이냐 뿐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내려간다. 진보의 주체가 하향화 된다. 왕년에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진보였다...

나일강 범람, 나일 삼각주, 이집트 문명, 과학기술, 파피루스, 미라

고대 4대 문명의 공통점은 강 주변의 반건조 환경에서 관계농업으로 발전, 성장했다는 점이다. 예측할수 없는 강물의 범람을 예측하고 관리하며 문명을 발전시켰다. ①나일강의 이집트문명 ②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③인더스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④황하강 중류의 황하문명이 그것이다. 차이점이 있지만 이 4대 문명은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전제군저죽 통치를 했다. 모든 권력은 물의 관리를 통해 형성되었고, 물의 관리는 경제 생산의 최고요소이며, 민중들의 노동을 강제했다. 집중화된 권력을 통해 노동력을 동원하고 수리사업을 통해 물이 가져다 주는 재앙을 막는 동시에 필요한 곳에 적절한 물을 공급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물 관련 시설을 만들었다. 관개시설, 배수용 운하, 수문, 물 저장 ..

이란, 페르시아

이란은 고대국가 시기부터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침략을 받아왔고, 그 과정에서 침략국가의 민족들과 섞여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란의 민족구성을 보면 페르시아 족(51%), 아제르바이잔 족(24%), 길락-마잔다란 족(8%), 쿠르드 족(7%), 아랍 족(3%), 루르 족(2%), 발루치 족(2%), 투르크 족(2%), 기타(1%)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란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페르시아 족(Persian)은 이란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지만 주로 내륙지역인 테헤란, 이스파한, 야즈드, 파르스 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이들 지역은 유럽의 아리안 족(Arian)이 기원전 10세기 경 동일 민족으로 분류되는 메디아인과 함께 이란 고원에 이주해 ..

사서삼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상서, 주역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주역)》 《춘추경(춘추)》, 《예경(예기)》를 더하면 사서오경 某要人先讀大學,以定其規模: 내가 바라기를, 사람은 먼저 대학을 읽어서 그 규모를 정하고 次讀論語,以立其根本: 다음에 논어를 읽어서 그 근본을 세우며 次讀孟子,以觀其發越; 다음에 맹자를 읽어서 그 드러내고 뛰어넘는 바를 관찰하고 次讀中庸,以求古人之微妙處 다음에 중용을 읽어서 옛 사람의 미묘한 부분을 구하라. 주자의 《주자어류》 사서의 독서법 당나라 때 유교 경전이 십이경으로 정리된 후 송나라 때 맹자가 중요 경전으로 자리잡으면서 십삼경이 되었다. 여기에 남송시기 유학자들에 의해 예기[2]의 대학편과 중용편을 중시되었고 논어, 맹자와 더불어 사서라고 불렀다. 주자..

주자학(성리학) 비판, 폐해

조선 후기는 당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후임자를 천거할 수 있는 자대랑 천권(自代郎薦權)과 3사(3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대간(臺諫;조선시대 사헌부의 관원인 대간과 사간원의 관원인 諫官을 합쳐서 일컬을 때 대간이라 했다)을 선발할 수 있는 통 천권(通薦權)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조전랑(吏曹銓郎;정 5품 전랑과 정 6품 좌랑을 합쳐 부르는 관직 용어)의 추천 문제로 시작된 東西分黨은 中, 後期로 들어서면서 다시 4개의 당파로 분당되어 조선 후기의 역사의 흐름을 결정지었다. 이른바 4색 당파 논쟁(4色黨派論爭)이라 불리는 당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자. 첫째;관리(官吏)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았다. 둘째;예법과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 이념의 성격과 함께했다. 셋째;학통..

아브라함,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신앙심을 시험하려는 야훼에 의하여 첫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가혹한 명령이었으나 신심 깊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에게 나무를 한짐 해오게 한 뒤, 이사악에게 짐을 지고 산으로 함께 오르게 하였다. 산정에 이르러 단을 쌓고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칼로 베려 하니, 야훼의 천사가 나타나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기 22장 12절)하고 막았고, 아브라함은 근처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대신 바쳤다. 아브라함 혹은 이브라힘은 타나크(구약 성경), 쿠란의 등장인물이다. 기원전 1800년대에서 기원전 1600년대가량에 살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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