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Humanities/동양사 Asian History

이란, 페르시아

Jobs9 2021. 5. 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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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고대국가 시기부터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침략을 받아왔고, 그 과정에서 침략국가의 민족들과 섞여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란의 민족구성을 보면 페르시아 족(51%), 아제르바이잔 족(24%), 길락-마잔다란 족(8%), 쿠르드 족(7%), 아랍 족(3%), 루르 족(2%), 발루치 족(2%), 투르크 족(2%), 기타(1%)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란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페르시아 족(Persian)은 이란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지만 주로 내륙지역인 테헤란, 이스파한, 야즈드, 파르스 등지에 많이 살고 있다. 이들 지역은 유럽의 아리안 족(Arian)이 기원전 10세기 경 동일 민족으로 분류되는 메디아인과 함께 이란 고원에 이주해 왔으며, 메디아인*이 이란 고원의 서북부에 분포된 것에 반해 페르시아인은 서남부의 파르스(Fars : 현재의 파르스 주)에 정착한 데에도 기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지방의 사람들을 페르시아(Persia)로 부르면서 오늘날까지 페르시아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페르시아 족은 지금도 여전히 아리안족의 일원으로 유럽인들과 비슷하며, 같은 중동지역 국가로 분류되는 아라비아 반도의 토착민족인 아랍 족(셈족)과 구별된다.

 

페르시아는 메디아의 속국으로 알려지고도 있다. 유럽의 아리안 족이 초기에 정착한 지역이 메디아이며, 페르시아는 이 메디아 인들이 다시 파르스 지방으로 이주하여 페르시아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은 동일한 민족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메디아는 현재의 이란 북서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와 고대 이란인을 부르는 이름이다.

대체로 오늘날 케르만샤 일부와 아제르바이잔하메단테헤란쿠르디스탄 지방에

해당한다. 메디아 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인들이 이 지역이 메디아 또는 메데아(Μηδία) 로 알려졌기 때문에 붙여졌다. 기원전 8세기 경에 메디아 왕조가 엑바타나(지금의 하메단)를 수도로 설립되었고, 기원전 6세기경에는 아나톨리아반도(지금의 터키)와 이란 남부지역을 포함한 강국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기원전 550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에게 멸망당했고 이때부터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인 아케메네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위키백과) 

 

이처럼 고대국가부터 사용되어 온 페르시아를 근대  팔레비 왕조 때인 1935년 '이란(Iran)'으로 국호를 변경한다. 이란으로 바꾼 이유는 페르시아인 대부분이 기원전 2천년께 북유럽에서 이란 고원으로 흘러 들어온 인도-유럽계 아리안(Arian)의 후예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리아인은 원래 코카서스 지방의 중앙아시아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2000년경, 남방·서방에 이동하여, 어떤 무리는 인도에 들어가고(인도·아리아人), 어떤 무리는 이란 고원에 정착(이란人)하여 페르시아인의 원류가 되었다.

 

아랍인들의 침략 이전에 페르시아 인들의 주된 종교는 예언자 조로아스터에 의해 창시된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배화교(拜火敎))’였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에 따르면 우주는 선(善)의 신인 ‘아후라마즈다’와 악(惡)의 신인 ‘아리만’의 대립과 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교리를 갖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한자의 명칭에서 보듯 불을 숭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대국가들처럼 불 그 자체를 신격화하여 섬기는 것이 아니라 조로아스터교의 예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성스러운 불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금도 이란 중남부지역 조로아스터교의 중심 도시 야즈드(Yazd)에 가면 조장(鳥葬)터 등 조로아스터교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페르시아 인들은 이란이 16세기에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대부분 시아파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따라서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교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수니파 이슬람교 국가들과 갈등 관계에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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