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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Humanities/서양사 Western History 255

영국 연표, British Chronology

영국 연표, British Chronology● 8-12 세기 영국 역사 연표 (701-1200) 1066년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마지막 침공을 지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 랜 드 인을 물리치고, 노르망디 왕조의 첫 왕 윌리엄 1154-1189년 플랜트재닛 왕조의 첫 왕 헨리 2세 통치. 법률의 개혁과 더불어 국민이 왕궁에 들어갈 수 있게 되다. 이 궁중 재판의 전례에서 영국의 관체제가 발전. 교회의 권한을 축소시키려는 헨리의 시도에 토마스 아 베켓이 캔터베리 성 1170년에 헨리의 기사 네 명에게 암살. 이것이 로마 교회에 대한 왕권의 반발 시작이다.  ● 13-14 세기 영국 역사 연표 (1201-1400) 1215년 프랑스와의 전쟁에 실패하여 돈을 내기 위한 존 왕이 무거운 세금을 요구..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 찰스 1세 처형, 호국경, 청교도, 잉글랜드 내전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년 4월 25일 ~ 1658년 9월 3일) 잉글랜드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브리튼 제도의 역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639년부터 1653년까지 있었던 삼왕국 전쟁에서 의회파의 군사지휘관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정치가가 되었다. 1649년 1월 찰스 1세의 처형을 주도하였고 이후 수립된 잉글랜드 연방에서 호국경이 된 그는 1653년 12월부터 1658년 9월 사망할 때까지 잉글랜드의 공위시대 동안 호국경 정치의 최고 권력자였다. 크롬웰은 신형군을 동원하여 정치 권력을 장악한 것과 1649년 시작된 크롬웰의 아일랜드 원정에서 보인 잔혹함으로 역사적 평가에 논란이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시드니 석식스 칼리지에서 수학..

삼부회, States-General, 앙시앵 레짐, 구체제의 모순,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 신분제 의회, 1신분 가톨릭 성직자, 2신분 귀족, 3신분 평민

삼부회États généraux (프랑스어) States-General (영어) 앙시앵 레짐 시기 프랑스 왕국의 세 신분의 대표자가 만나 국가의 중요 사안에 관해 토론한 일종의 신분제 의회. 1신분은 가톨릭 성직자, 2신분은 귀족, 3신분은 평민이다. 1302년부터 비정기적으로 열렸고, 1789년 마지막으로 열린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삼부회는 프랑스 왕국을 구성하는 세 신분(성직자, 귀족, 평민)의 투표로 선정된 대표자의 모임이고, 왕명에 의해 소집되었다. 형태는 의회와 비슷했지만, 잉글랜드와 달리 실질적인 권한이 부족했으며, 국왕의 자문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쳤다. 주된 자문사항은 회계 문제. 그런 점에서 스페인의 코르테스와 독일 제국의회와 유사했다. 코르테스와 제국 의회는 꾸준히..

테르미도르의 반동, 프랑스 대혁명, 로베스피에르, 자코뱅파 몰락

테르미도르의 반동로베스피에르 (1758~1794) 테르미도르 반동(Convention thermidorienne)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93년부터 권력을 잡은 로베스피에르가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펼치다가 그 가혹함에 불만을 품은 반대파들에 의해 1794년 7월 27일 숙청을 당하며 자코뱅파가 몰락한 사건을 말한다. 로베스피에르, 오귀스탱, 생쥐스트, 쿠통, 르바등 공포정치의 주역과 그 계파 일원들은 다음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테르미도르(Thermidor)란 혁명 때 제정된 프랑스 혁명력(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폐지) 중 11번째 달을 의미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실질적으로 끝나게 되고, 시민 혁명은 종말을 고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평전 《조제프 푸셰》에서 테르미도르 반동 이전에는 "혁명..

7년 전쟁, 미국 독립 원인, 왕조 전쟁, 세력 균형

왕조 전쟁과 세력 균형 17세기 후반으로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유럽에서는 큰 전쟁이 여러 번 일어났으며, 그러한 전쟁을 통하여 유럽의 국제 정치의 틀이 잡히고, 해외 식민지 쟁탈전의 판가름이 났다. 에스파니아 왕위 계승 전쟁은 에스파니아 왕이 루이 14세의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망하자, 두 나라를 합침으로써 프랑스가 지나치게 강대해질 것을 두려워한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이 이를 방지하려는 데서 일어났다. 긴 전쟁 끝에 유트레히트 조약이 체결되고(1713), 루이 14세의 손자는 두 나라가 통합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에스파니아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으나, 영국은 캐나다의 토대가 될 식민지를 프랑스로부터 얻는 동시에 에스파니아로부터는 지브로올터를 얻어 지중해의 관문을 장악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식민제국, 1534년, 퀘벡,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알렉상드르 뒤마,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베트남, 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 학살과 만행

프랑스 식민제국 16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존속한 프랑스의 식민제국을 가리킨다. 이 명칭은 프랑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쓴 명칭은 아니며 식민지로 세워진 이때의 시기를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용어라고 봄이 옳다. 프랑스는 캐나다 퀘벡주 가스페(Gaspé) 만에 프랑스 깃발을 꽂은 1534년을 프랑스 식민제국의 시작으로 본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영국의 역사적 라이벌이였고 그 이후로는 대영제국에 보조를 하여 세계적인 제국주의적 팽창을 진행하였다.프랑스는 곧잘 영국의 라이벌처럼 여겨지지만 식민제국의 규모에서 격차가 컸다. 19세기 영국은 독자적으로 거대한 시장이 되는 인도제국을 식민지화하여 유럽 전체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스케일의 세계제국을 형성하고 영토적으로도 스페인, 포르투갈의 남아메리카 신대륙 개척 및..

다인종 연합왕국 영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이베리아족, 비커족, 켈트족, 로마족, 게르만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데인족, 노르만족

다인종 연합왕국 영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이베리아족, 비커족, 켈트족, 로마족, 게르만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데인족, 노르만족민족의 구성 현재 잉글랜드인의 조상은 청동기시대에 켈트어를 가져온 켈트족과 5-6세기경에 게르만어를 가져온 여러 게르만족 그리고 11-12세기에 잉글랜드를 지배한 노르만족이다.기원전후를 해서 로마인과 10-11세기에 데인족이 잉글랜드를 침입하였지만 오늘날의 민족 구성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잉글랜드의 민족은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언제 건너왔는지는 정확히 추정할 수 는 없지만 지중해 계의 종족인 이베리아족이 살다가 소멸되었고,이후 기원전 5세기경 중부유럽 지방에 살던 알프스 계의 켈트족이 잉글랜드로 이주하여 철기문화와 함께 자리잡으면서 ..

백년전쟁, 원인, 영향, 잔다르크, 프랑스 승리, 프랑스 잉글랜드 분리, 잉글랜드 왕위다툼, 장미전쟁

백년 전쟁의 원인 중세에는 어떤 왕이 자신의 왕국 밖에서 작위를 상속하면 다른 왕의 봉신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은 1066년 노르만 왕조 성립 이후 프랑스 영토 내에 많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역대 프랑스 왕들은 이를 회복하려고 하여 양국 사이에는 언제나 전쟁과 대립이 계속되었다. 특히 기옌(현재 가스코뉴) 지방과 플랑드르는 분쟁의 씨앗이었다.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그의 사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다. 기옌(프랑스 남서부) 공작이자 퐁티외 백작이었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샤를 4세의 누이라는 점을 들어 자신이 프랑스 왕위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필리프 6세는 즉각 반발하였고, 두 나라의  대립..

노르만 정복, 잉글랜드, 노르망디, 시칠리아. 노르만족, Normans

북방의 전사 노르만(Normans) 프랑스 북서 해안지역,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상륙작전으로 유명한 그 곳의 이름 노르망디(Normandy)는 북쪽에서 온 유랑집단의 명칭에 기원을 둔다. 이들 북방인(the Norsemen)들은 중세 초 고대 노르스어(the Old Norse language)를 사용하던 북부 게르만 집단이었다. 인도유럽어족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고대 노르스어는 Old Icelandic이라고도 불리는 9~16세기 고대 아이슬란드어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사용되는 현대 게르만어들의 조상이다. 노르만 정복, 잉글랜드, 노르망디, 시칠리아노르만 정복은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유럽 대륙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노르만족의 정복이다. 롤로의 노르망디 침공으로 시작하여 잉글랜드에서의 노르..

러시아, 노르만 족, 슬라브 족, 루스인, 키예프 공국, 러시아 민족, 러시아인, 로시스키예, 루스키예

러시아의 시작 : 9세기 키예프 공국(노르만 족+슬라브 족) 러시아의 기원 * 러시아의 뿌리로서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민족은 슬라브족 * 이중에서도 동슬라브인이 러시아역사의 주인공* 러시아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난폭한 성격의 북방 이민족인 노르만족* 흔히 ‘루스인’이라고 불리었던 그들은 슬라브민족의 터전을 자주 침략해 무역을 담당하고 막강한 무력으로 슬라브인들을 지배 1. 슬라브인들의 이동과 정착1) 슬라브인의 조상들은 기원후 200년 무렵부터 약 500여 년 동안 지금의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 걸쳐 있는 카르파티아 산맥 동북쪽 삼림지대에 정착하여 생활: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이동 2) 서슬라브인(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인), 남슬라브인(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인..

유럽, 근대 국가 성장, 신항로 개척, 유럽 세계의 확대, 대서양 연안 국가 번영

유럽, 근대 국가 성장 1. 신항로 개척과 유럽 세계의 확대 (1) 신항로 개척 ∙ 배경:지리 지식의 확대와 항해술의 발달, 국왕의 지원 ∙ 포르투갈:바르톨로뮤 디아스(희망봉 도착, 1487), 바스코 다 가마(인도 항로 개척, 1498) → 아시아의 향료 무역 독점 ∙ 에스파냐:콜럼버스(아메리카 대륙 발견, 1492), 마젤란(최초로 세계 일주 성공, 1518~1522) → 아즈테크, 잉카 문명 파괴, 식민지 개척(금-은 광산, 사탕수수 농장)   (2) 신항로 개척의 결과 ∙ 무역 중심지 이동:지중해 → 대서양, 대서양 연안 국가 번영 ∙ 동양 물품, 새로운 작물(담배, 코코아, 감자) 유입∙ 상공업과 금융업의 발달:상업 혁명 → 세계적 규모의 시장 형성 2. 절대 왕정과 중상주의 (1) 절대주의 국..

메르센 조약,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동프랑크 왕국), 프랑스(서프랑크 왕국, 870년

메르센 조약,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동프랑크 왕국), 프랑스(서프랑크 왕국, 870년메르센 조약메르센 조약으로 로타링기아 왕국은 서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에 양분되었다. 메르센 조약(독일어: Vertrag von Meerssen, 프랑스어: Traité de Meerssen)은 동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2세와 서프랑크 왕국의 카를 2세가 870년 8월 8일 메르센(오늘날 네덜란드 남부 림뷔르흐주에 있는 도시)에서 맺은 국경획정조약이다. 프랑크 왕국은 루도비쿠스 1세(재위: 814년 ~ 840년) 사후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세 아들 로타르 1세, 루트비히 2세와 카를 2세에게 분할되어 중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나뉜다. 큰 아들 로타르 1세(재위: 818년 ~ 85..

고대 지중해 세계, 그리스, 에게 문명, 알렉산더 제국, 헬레니즘 문화, 로마

고대 지중해 세계   1.  민주 정치가 발달한 그리스 (1) 에게 문명 크크레타 문명, 미케네 문명 → 오리엔트 문화를 그리스에 전파 (2) 그리스의 발전 ① 폴리스(도시 국가)의 성립:해안선 복잡, 산간 분지 지형(기원전 8세기), 올림피아 제전(그리스 인들의 동족 의식) ② 아테네의 민주 정치 ∙ 발전 과정:귀족 정치 → 금권 정치(솔론) → 참주 정치(클레이스테네스의 도편 추방법) → 민주 정치(페리클레스) ∙ 특징:민회 중심, 직접 민주 정치, 제한된 민주 정치(노예, 부녀자, 외국인 제외) ∙ 전성기: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정치․경제적 번영 ③ 스파르타: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아테네와 경쟁 ④ 그리스의 쇠퇴:펠로폰네소스 전쟁(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 이후(3) 그리스 문화 인간 중심의 문화 ..

유럽 세계 성립, 게르만 족 이동, 서유럽, 노르만 족 이동, 비잔틴 제국, 동유럽

1.  게르만 족의 이동 (1) 게르만 족의 생활 ∙ 원 거주지:발트 해 연안 → 라인 강, 다뉴브 강 북쪽 삼림 지대 ∙ 로마 시대:로마 문화 수용, 용병․소작농으로 정착 (2) 게르만 족의 대이동 ∙ 원인:4세기 말 훈 족의 압박 → 서로마 제국의 영토로 대거 이동 ∙ 결과:서로마 멸망(476), 여러 왕국의 수립 → 유럽의 중세 시작 2.  서유럽 세계의 형성 (1) 게르만 족의 여러 국가 대부분의 세력이 일찍 멸망, 프랑크 왕국은 유럽 세계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 (2) 프랑크 왕국의 발전 ① 성장 배경:유리한 지리적 조건, 크리스트 교로 개종 ② 클로비스(5세기 말):로마 가톨릭으로 개종, 영토 확장 ③ 카롤루스 마르텔(8세기 전반):이슬람 세력 격퇴 ④ 카롤루스 대제(8세기 후반) ∙ 활발한 정..

제국주의,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분할

제국주의 국가의 출현 1. 제국주의(1) 제국주의의 성립 배경    ① 자본주의의 발달 : 19세기 말, 과학 기술이 진보하고 제2차 산업 혁명이 진전되면서 자본주의가 크게 발달하였다.    ② 해외 시장 확보의 필요성 :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상품의 원료를 얻고, 상품을 팔거나 자본을 투자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였다.(2) 제국주의    ① 의미 :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무력으로 침략하여 이를 식민지로 지배하려는 경향을 제국주의라 한다.    ② 제국주의의 성격 : 제국주의는 자국의 세력을 팽창시키려는 잘못된 민족주의와 정치, 사회적 불안을 대외 팽창으로 덮어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2. 제국주의 국가들의 팽창 정책(1) 제국주의 ..

카네이션 혁명, 포르투갈, 리스본의 봄, 살라자르

카네이션 혁명 Revolução de 25 de abril de 1974, Revolução dos Cravos 1974년 4월 25일, 오랜 세월에 걸친 포르투갈인들의 저항을 보며, 그들의 열망을 확인한 군사운동(MFA)은 파시스트 정권을 전복시켰다. 포르투갈 헌법 전문의 첫 문장 1974년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발생한 사건. 당시 독재를 일삼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고 포르투갈이 민주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지에서는 4월 25일 혁명(25 de Abril)이라고 부르며 '리스본의 봄'이라는 별명이 있다.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30년 이상 독재하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퇴임한 뒤 카에타누 정권이 집권했지만 경기 침체와 식민지들의 독립을 틀어막는 지지부진한 전쟁이 계속..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관계, 유고 내전, 티토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양국은 유고슬라비아 내전기간에 갈등 역사적 관계중세슬라브족들이 6세기 ~ 7세기부터 발칸 반도로 이주하면서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에도 슬라브족들이 많이 이주했다. 슬라브족들은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이주하면서 현지주민들과 통혼이 자주 이뤄졌다. 그리고 슬라브족들이 많이 이주한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슬라브화가 되었고 슬라브족들이 크로아티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등을 세웠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영토에 이주한 슬라브족들은 동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정교회, 키릴 문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리스의 영향도 받았다. 다만, 크로아티아 지역은 프랑크 왕국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정체성이 나뉘어졌다.  근세크로아티아 왕국이 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된 뒤,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세르비..

아프리카 종단 정책, 횡단 정책, 3C 정책, 3B 정책, 파쇼다 사건, 영국, 프랑스, 독일

아프리카 종단 정책 영국 아프리카 식민지 아프리카 종단 정책, 영어로는 케이프 투 카이로 정책(Cape to Cairo Policy)은 19세기 영국의 대 아프리카 정책의 하나이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의 카이로로 아프리카를 횡단하는 것이 계획 3C 정책 세계 정책의 일환으로 19세기 말 대영제국이 추구한 정책. 카이로(Cairo) - 케이프타운(Cape Town) - 콜카타(Calcutta)를 잇는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정책에서 핵심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 도시들의 앞 글자를 따와서 3C 정책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국력이 최절정에 달했던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절에 벤자민 디즈레일리, 세실 로즈, 조지프 체임벌린 등이 주창한 제국주의 팽창 노선이다. 영국은 프랑스 등과 함께 선발 제국주..

독일이 영국, 프랑스 상대로 2번의 세계대전 한 힘

독일이 영국, 프랑스 등 기존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2번의 세계대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식민지 경영을 하는 대신 국내 산업의 육성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몰락한 것도 지나치게 해외 식민지에만 집착하다 보니 자연히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원인,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제2차 세계 대전, 원인열강의 식민지 쟁탈전독일은 비스마르크가 실각한 후에 빌헬름 2세가 채택한 신항로 정책에 따라 아시아, 태평양 제도, 동아시아, 발칸 반도, 터키 등으로 진출을 도모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의 분할문제를 둘러싼 국제분쟁인 모로코 사건이 두 차례 발생했다. 또한 독일의 베를린, 비잔티움(이스탄불), 바그다드를 철도로 연결하려는 3B정책과 카이로, 케이프타운, 캘커타를 잇는 지역을 지배하려는 영국의 3C정책이 대립했다. 미국은 1890년 프런티어의 소멸을 계기로 제국주의 정책을 내세워 카리브 해 지역으로 진출했고, 1898년에는 미국-에스파냐 전쟁에서 에스파냐를 무찔렀다. 미국은 에스파냐를 상대로 강화 조약을 맺고 카리브 해에 위치한 쿠바를 독립시켜 보호국으로 삼았다. 또, 푸에르토리코..

마케도니아 왕국, 그리스 패권국, 알렉산드로스, 알렉산드로스 제국(헬레니즘 제국), 북 마케도니아 공화국

마케도니아 과거 남유럽에서 서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그리스의 고대 왕국. 초기에는 소국이었으나 국력을 착실하게 강화시켜 나중에 가면 그리스 전체를 정복하는 그리스의 패권국이 되었다. 마케도니아인이 어디까지 그리스인이냐 하는 문제는 고전 시대를 연구할 때나 현대의 발칸 정치에서나 골치 아픈 주제다. 나는 여기에서 마케도니아인이 그리스 민족의 한 지파다 또는 아니다 하는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죽기 전과 후의 그의 군대에 관한 고대 이야기들 가운데 많은 점을 고려할 때 마케도니아인은 그리스인을 별도의 종족으로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인들도 다수가 마케도니아인에 관해 같은 생각을 했다. 물론 아테네인이 소크라테스처럼 정치..

마케도니아 전쟁, 로마 공화국, 마케도니아 왕국, 필리포스 5세, 한니발

마케도니아 전쟁 로마와 카르타고의 제2차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215년부터 기원전 148년에 벌어진 2차 피드나 전투를 마지막으로 로마 공화국과 마케도니아 왕국이 벌인 여러 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이 전쟁으로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는 몰락하고 로마는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고 동방으로 진출하게 된다.   마케도니아 전쟁 발단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5세는 로마가 일리리아를 점령하고 그리스에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마와의 칸나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남부 이탈리아의 영토를 일부 획득하였다.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싶어했던 필리포스가 이탈리아로 사절을 보내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비시 프랑스, 나치 독일 괴뢰 정권, 필리프 페탱, Vichy France, Régime de Vichy

비시 프랑스, 나치 독일 괴뢰 정권, 필리프 페탱, Vichy France, Régime de Vichy 공식적으로 프랑스국(프랑스어: État français, 영어: French State)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원수 필리프 페탱이 이끄는 프랑스 국가였다. 비시 프랑스는 일반적으로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으로 묘사되나, 고유한 의제를 지닌 독립된 국가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비시 정권은 남부 프랑스를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통치하며 프랑스 본토의 자유 지역(프랑스어: zone libre)과 식민지의 민간 행정을 책임졌다. 표면적으로는 파리를 수도로 하고 있었으나, 행정부는 파리 남쪽의 휴양지였던 비시에 설치되었다.  비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과의 휴전 협정으로 해군과 식민지에 대한 통제권을 ..

베르됭 전투, 프랑스, 뫼즈 강, 페탱

날짜1916년 2월 21일 ~ 1916년 12월 18일장소프랑스 베르됭, 뫼즈 강교전국 독일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지휘관 총사령관 빌헬름 2세 참모총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 5군 사령관 빌헬름 황태자 5군 참모장 콘스탄틴 폰 크노벨스도르프 참모총장 조제프 조프르 2군 사령관 필리프 페탱(~ 5.1) 2군 사령관 로베르 니벨(5.1 ~)병력1,250,000명1,140,000명피해사상자 : 336,000명 ~ 434,000명사망자 : 143,000명사상자 : 37만 9,000명사망자 : 150,000명 ~ 162,000명결과프랑스군의 승리 "인류는 미쳤다. 지옥도 이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없다. 이 학살극을 보라! 이 공포와 주검들을 보라! 내가 받은 인상을 말로는 표현..

서부전선, 동부전선,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레마르크, 제1차 세계 대전, 슐리펜 계획

서부전선, The Western Front 서부에서 형성된 전선. 말 그대로 서쪽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전선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며, 한 개의 전선을 위치에 따라 나누어서 서부전선, 중부전선, 동부전선 하는 식으로 구분할 때 상대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전선의 일부를 말하기도 한다. 세계사에서 서부전선은 일반적으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당시 서유럽 지대에 형성된 전선을 일컫는다. 한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6.25 전쟁 당시의 서부전선을 뜻하고, 서양에서는 보통 1차 대전을 떠올린다.   제1차 세계 대전흔히 제1차 세계 대전 하면 떠올리는 참호전의 참상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서부전선이다. 의외로 참호전은 서부전선, 그리고 어쩌면 이탈리아 전선의 예외적인 상황에 가까운데, 서부전선과 달리 세르비아 침공 및 동..

제1차 세계 대전, 팽창된 유럽, 제국주의 열강 긴장, 삼국 동맹, 삼국 협상, 오스만 제국, 민족주의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유럽, 지중해, 중동, 아프리카, 카리브해, 중국 대륙, 태평양 원인 사라예보 사건과 그 사건으로 폭발한, 오랜 시간 축적되던 열강들 간의 갈등과 민족주의의 충돌 등의 복합적 원인  ■ 삼국 동맹 / ■ 삼국 협상 / ■ 오스만 제국 / ■ 발칸 당사국■ 지원 관계 / ■ 동맹 관계 / ■ 조약 관계결과 협상국의 승리 영향 동맹국 국가 해체 중동과 유럽 국가 독립,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독립선언 전제군주제 몰락 및 유럽 내 황제국 전멸 및 이로 인한 공화제의 대두국제연맹 창설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피해규모 사망(군 병력) 5,525,000명 부상(군 병력) 12,831,500명 실종 4,121,000명 총 사상자 22,477,500명 ..

롬인, Rom, Romani, 집시(Gypsy), 이집트 오해

롬인(Rom / Romani, 복수형은 Roma / Roms 등) 전통적으로 유랑하며 살아가는 인도-아리아 계통의 민족 집단이다. 전세계의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나 현대 롬인은 유럽, 특히 발칸반도에 많은 인구가 거주한다. 그 기원에 관해 역사적으로 다양한 추측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언어적, 유전적 증거에 의해 인도 아대륙 북부의 라자스탄에서 기원하였다는 주류설이 뒷받침되고 있다. 서기 1,000년 경에 (어쩌면 여러 차례) 서쪽으로 이주의 물결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이름은 인도에서 대대로 유랑하며 음악을 하거나 춤을 추는 직업을 가지는 카스트인 돔(Dom, डोम) 집단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들은 이란의 가즈나 제국을 거쳐 비잔틴 제국으로 유입되었고, 이를 통해 13~14세기에는 유럽 ..

벨 에포크, Belle Époque, 팍스 브리타니카, 19세기 말, 1차 세계대전 전, 1914년, 백년평화, 빈 체제,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

벨 에포크(Belle Époque) 유럽사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을 지닌 단어이다. 보통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전 유럽이 평화를 누리며 경제, 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한 태평성대를 뜻한다. 비슷한 시기로, 팍스 브리타니카 시기인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까지 아울러 '백년 평화(Century of peace)'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시작과 끝정확한 연도를 따지자면 벨 에포크의 끝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년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벨 에포크의 시작을 정확히 몇 년도로 잡는지는 역사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역사학자 도미니크 르준은 1896년으로 잡고 또다른 역사학자 도미니크 칼리..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아르미니우스, 바루스 참사, 게르마니아, 역사적 영향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Schlacht im Teutoburger Wald, 슐라흐트 임 토이토부르거 발트, 바루스 참사, Clades Variana,  클라데스 바리아나 기원후 9년 아르미니우스가 통합한 게르만족 연맹과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 총독이 지휘한 로마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게르만족이 3개 로마 군단과 그 보조군들을 박살내면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아르미니우스는 게르만족 출신으로 바루스의 보조군에 입대했던 장교 출신으로, 로마 시민권을 얻고 로마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로마군의 전술을 꿰뚫어보고 그들을 기만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이후 로마는 여러 차례 게르만족에 대한 징벌원정을 벌였지만 이후 멸망할 때까지 라인강 동안의 게르마니아를 영영 지배..

멕시코-미국 전쟁, 텍사스 공화국,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멕시코-미국 전쟁, Mexican-American War,  Guerra de Estados Unidos-México 1846년과 1848년 동안 멕시코와 미국 사이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맥락에 따라서 멕시코 전쟁,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포크를 따서 포크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전쟁은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성립했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자국 영토로 여겨 1845년 텍사스 합병으로 텍사스가 미국의 주가 되자 일어났다.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는 내전으로 번질 수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비교적 단합한 태도로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발발한 텍사스 공화국 독립 문제에 반대했다. 멕시코는 미국이 텍사스를 병합하면 전쟁할 수도 있다고 위협을 했다.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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