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도팽 샤를 샤를은 프랑스 샤를 6세와 왕후인 바이에른의 이자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명의 형이 차례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AD 1417년 프랑스에서 왕세자를 뜻하는 도팽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AD 1418년 5월에 부르고뉴파가 파리를 장악하자 아르마냐크파와 함께 부르주로 달아나야 했다. 당시 프랑스는 잉글랜드 헨리 5세에게 아쟁쿠르 전투(AD 1415년)에서 대패를 당한 이후 북부지방을 차례로 점령당하던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팽 샤를은 부르고뉴파와의 화해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AD 1419년 9월에 아르마냐크파가 부르고뉴파의 수장인 공작 장 1세를 회담장에서 살해해버리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도팽 샤를이 얼마만큼 관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암살은 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