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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Humanities/서양사 Western History 249

알 안달루스, 이슬람 통치 이베리아 반도, 에스파냐 역사

알 안달루스 아랍어: لأندلس 스페인어: Al-Ándalus 중세 시대 이슬람 통치하의 이베리아 반도를 지칭한다. 아랍어 정관사 '알(آل)'과 '안달루스(Andalus)'를 합친 단어로, 관사를 빼고 '안달루스'라고 불리기도한다.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력이 서고트 왕국을 정복한 711년부터 레콩키스타가 완료된 1492년 사이의 여러 기간 동안 이베리아 반도와 셉티마니아[1] 일부 지역을 두루 가리키지만 영토의 경계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일정한 변화를 겪었다. 알안달루스의 이슬람 왕조들의 지배를 받았던 현지 기독교인들은 모사라베라고 불렸다. 어원 알안달루스가 당시 아랍인들의 단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서부터 유래한 단어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반달족에서 유래했다는 설. 1980년대까지..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 이베리아 반도, 가톨릭, 이슬람, 서고트 왕국, 무어인, 아라곤, 카스티야, 에스파냐, 781년 간 이슬람 통치 종식, 알람브라 궁전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 이베리아 반도, 가톨릭, 이슬람, 서고트 왕국, 무어인, 아라곤, 카스티야, 에스파냐, 781년 간 이슬람 통치 종식, 알람브라 궁전 레콩키스타(Reconquista)는 '재정복(reconquest)'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활동을 의미한다. 포르투갈어로는 스페인어의 전동음 r이 구개수음이라 헤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한다. 학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레콩키스타의 전 과정을 단일 전쟁으로 본다면 역사에 기록된 전쟁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 된다. 그 기간이 무려 781년에 달하기 때문이다. 서고트 왕국 멸망 후에 세워진 가톨릭 왕국들은 팽창하는 이슬람 세력에 밀려서 이베리아 반..

게르만족의 이동, 로마의 멸망

서기 375년 , 유럽 역사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납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중세유럽이 시작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게르만 민족의 이동을 일으킨 민족이 있으니 아시아 초원에 살았던 유목 민족인 훈족이 370년경 유럽 남동부 침략을 시작으로 이후 140년 동안 유럽 대부분을 점령하며 그 당시 유럽 나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말을 이용해 이동성이 뛰어나고 활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훈족의 침입을 받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이 로마제국으로 피난을 갑니다. 고트족은 로마제국에 보호 요청을 하고 그곳에서 살게 해 달라고 합니다. 처음에 로마인은 고트족이 트라키아 지역에서 살도록 하고 서로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점차 고트족을 야만인으로 대하며 차별..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신성 로마 제국, 롬바르디아 동맹, Lega Lombarda, 베로나 동맹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에 있던 여러 도시가 신성 로마 제국의 간섭에 맞서 자치권을 지키기 위하여 12세기와 13세기에 두 차례 맺은 동맹. ≒롬바르디아 동맹.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이던 이탈리아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려던 호우슈타우펜가가 신성 로마 제국과 맞싸워, 교황에 지원을 받아 1167년에 설립된 동맹이다. 1250년,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함에 따라 해체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1158년 론칼리아 법령으로 이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주장하고 그의 수행원들이 이탈리아 도시들의 포데스타 행정관들을 대체하기 시작하자, 1164년 베로나, 비첸차, 파도바, 베네치아 공화국이 조직한 이전의 베로나 동맹을 계승했다. 이탈리아 내에서 프리..

대영제국(British Empire), 대영제국 몰락, 대영제국 식민지, 영연방, 앵글로색슨 제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제2차 중동전쟁

해가 지지 않는 나라 15세기부터 20세기인 1997년까지 존속했던 영국의 식민제국을 부르는 호칭. 1607년 최초의 13개 식민지 건설을 시작으로 1997년 홍콩 반환까지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걸쳐 있던 식민제국으로서의 영국을 일컫는 명칭으로 앵글로색슨 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이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5대양 6대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최초의 강대국이였다. 최전성기에는 전세계 육지 면적의 1/4과 전세계 인구의 1/6을 보유했으며, 영토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인구 수로도 당대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국가이다. 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

히틀러 소련 공격 이유, 독소 불가침 조약 파기 이유, 4자 안보 체제, 독소 불가침조약

4자 안보 체제 소련 외무장관 막심 리트비노프는 영국-프랑스-폴란드-소련으로 이어지는 4자 안보 체제 구축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1939년 5월 3일 리트비노프는 해임되었고,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외무장관이 되었다. 리트비노프 해임의 표면적 이유는 외교적 실패였으나, 유대인이었던 리트비노프가 해임된 것은 독일에 우호적인 제스쳐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1939년 4월 17일, 소련은 '발트해-지중해까지 모든 나라의 영토 보전을 보장하고, 그 나라 중 어느 한 나라라도 독일의 공격을 받을 경우 영국, 프랑스, 소련이 모두 전쟁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동맹 관계를 제안하는 내용을 적은 문서를 영국, 프랑스에 전달했다. 그러나 6주가 지나서야 영..

이란-콘트라 사건, 맥팔레인 사건, 이란게이트, 이란-콘트라 스캔들, 레이건게이트, 이란-콘트라 사건 영향, 중남미 반미, 마약 카르텔, 마약과의 전쟁

이란-콘트라 사건 ماجرای ایران-کنترا Iran–Contra affair 이란-콘트라, 맥팔레인 사건 (이란), 이란게이트, 이란-콘트라 스캔들, 레이건게이트 참가자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로버트 맥팔레인, 헤즈볼라, 콘트라, 올리버 노스, 매누처 고르바니파르, 존 포인덱스터, 마누엘 노리에가 날짜 1985년 8월 20일 ~ 1987년 3월 4일 원인 이란-이라크 전쟁, 레바논 인질극, 레바논 내전, 볼란드 개정, 니카라과 혁명 이란–콘트라 사건(ماجرای ایران-کنترا, Caso Irán–Contra), 이란-콘트라 스캔들, 또는 간단히 이란-콘트라는 레이건 행정부의 두번째 임기 때 미국에서 발생한 정치적 스캔들이다. 이란에서는 맥팔레인 사건이라고 불린다. 고위 행..

스키타이, Scythians, 러시아 남부, 캅카스 동부,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에 거주했던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유목민족

스키타이, Scythians "나는 다른 점에서는 스키타이 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헤로도토스 《역사》 6권 46p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현대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북서부 일대 스텝 지역에서 존속했던 인도-유럽 계통의 유목민족. 스키타이족들이 쓰던 스키타이어는 인도유럽어족 인도이란어파에 속했..

페니키아, Phœnicia, 페니키아 알파벳, 포에니 전쟁

페니키아, Phœnicia 고대 가나안의 북쪽에 근거지를 둔 고대 문명이다. 중심 지역은 오늘날의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에 있었다. 과거에는 페니키아 문명이 약 3200년 전에서 약 2900년 전까지 지중해를 가로질러 퍼져나간 진취적 해상 무역 문화를 보유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발굴의 결과, 페니키아 문명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6000년 전에 존재했던,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계하는 기시(Gish) 문명과 연계되어 있다. 학자들은 기시 문명이 아프리카의 쿠마 문화(Kuma), 나일강 유역의 쿠시(Kush) 문화와 연결 고리가 있으며, 그 관계를 연구 중이다.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들은 무역 활동을 위해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고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알제..

콘스탄티노플 함락, 르네상스 시작, 동로마 제국, 그리스 학자 문헌 로마로 도망

르네상스의 시작점을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1453년)에서 찾는 관점도 있다. 그것은 대포와 화약이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온 전환점이 된 전쟁이었고 동로마 제국, 그리스 학자들은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을 가지고 로마로 도망쳤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으며 유럽의 오래된 종교적 질서가 붕괴되는 것에 일조하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은 1453년 5월 29일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해 동로마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존재해왔던 로마 제국은 멸망을 고하게 되고 오스만 제국의 동지중해 및 발칸반도로의 진출과 지배권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문화적으로 동..

르네상스 이탈리아 발생 이유,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 문화

르네상스를 시간적, 지역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여러 곳에서 점진적으로 시작된 것이며 마찬가지로 중세가 언제 어디서 끝나는지도 얘기할 수 없다. 보통 시작된 장소로는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직접적으로 전해진 로마제국의 제도를 유지하며, 서유럽 지역보다 훨씬 풍부한 문화와 문명을 지녔고, 헬라어를 사용하며 고대 그리스 문화를 계승 발전 시켰던 비잔틴제국, 동로마 제국의 붕괴가 있다. 이로 인한 일련의 사건들로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서유럽으로 왔던 비잔틴 출신 학자와 기술자의 유입과 그들이 지니고 온 책자의 번역, 비잔틴 지역에서 탈취한 문헌과 책들을 유통시킨 유럽과 중동지역 출신의 대규모 도서 거래상의 활동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탈리아는 지리적으..

문명의 발생, 우르의 지구라트(이라크),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메소포타미아 문명, BC 3500년

문명의 발생, 우르의 지구라트(이라크),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메소포타미아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초의 문명이 탄생하 였다. 이후 나일강, 인더스강, 황허강 유역에서도 문명이 등장하였다. 큰 강 유역에서 문명이 발생한 것은 농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구 부양을 위해 서는 넓은 농토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새로운 농토 를 만들었다. 또한 홍수로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거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 수로를 만드는 등 대규모 치수 사업을 전개하였다. 사업에 동 원된 많은 인력을 통솔할 수 있는 지배자가 등장하였고, 농경지가 확대되고 생산량 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생하였다. 도시의 지배층은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정 복 전쟁을..

왕국, 제국, 공국, 연합왕국, 왕, 황제, 대공, 공작, kingdom, empire, duchy, king, emperor, grand duke, duke

왕국, 제국, 공국 ● 왕국 왕이 군주가 되어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제국가 왕국에도 절대권력을 가진 절대군주제, 헌법에 기초해 국왕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헌군주제 등이 있다. 현재 세계의 많은 왕국의 대부분은 입헌군주제 체제를 취하고 있다. 절대군주제는 국왕이 모든 권력을 쥐고 법률과 의외 결정에 속박되지 않고 정치를 하는 국가이며 입헌군주제는 국왕이 의회에 정치를 맡기고 스스로는 헌법이 정한 국왕으로서의 업무를 하게 된다. 절대군주제 국가는 현재 중동의 오만,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입헌군주제의 대표적인 국가로는 아시아에서는 일본, 태국, 부탄 등이 있으며 유럽에서는 영국, 스페인, 네델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등이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즉 어떠한 지배자가 있고 어떤 국가가 있어..

아우구스투스 부관, 카이사르, 아그리파, 석고상,

아우구스투스 부관, 카이사르, 아그리파 로마제국의 장군·정치가로서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강력한 부관(副官)이다.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무찌르는 데 으뜸 가는 공을 세웠고 아우구스투스의 재위중에는 여러 반란을 진압했으며 식민지를 건설하고 로마 제국 여러 지역의 행정을 관할했다. 평범한 가문의 출신이지만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던 아그리파는 로마 귀족계급의 미움을 샀다. 스스로를 위해 그는 아우구스투스와의 관계에서 주의깊게 종속적인 역할을 견지했지만 그밖에는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그의 초기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사실상 전혀 없고 BC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당하던 때에 일리리아의 아폴로니아에서 옥타비아누스(뒤에 아우구스투스황제)의 동료로 있었다는 것..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제1제국 황제, 나폴레옹 법전,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대륙봉쇄령, 워털루 전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어: Napoléon Bonaparte, 나뽈레옹 보나빠르뜨,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코르시카 섬의 하급 귀족 가문 출신의 군인으로, 프랑스 혁명 시기에 벌어진 전쟁에서 큰공을 세우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쿠데타를 통해 제1통령이 된후 종신통령을 거쳐서 황제에 즉위했다. 그가 남긴 나폴레옹 법전은 전 세계의 민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군사적으로 현대전에까지 영향을 끼쳤고(클라우제비츠, 투하체프스키, 슐리펜 계획) 전술과 전략, 훈련, 조직, 군수, 의복과 포상 제도를 발전시켰다. 그의 프랑스 육군은 효율적으로 조직된 군대로 평가된다. 나폴레옹은 ..

백년전쟁 원인, 왕위 계승권, 가스코뉴 지배권, 플란데런 지배권, 스코틀랜드 문제

백년 전쟁은 중세 서유럽의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 사이에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중세 유럽의 역사구분을 간단히 나누었을 때, (서로마 멸망)-프랑크 왕국-바이킹 지배-십자군 원정에서 이어지는 큰 변환점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분리를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의 국경선과 민족성이 정립되기 시작하여,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동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발전을 일으키는 대대적인 변혁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 전쟁이다. 보통 가스코뉴 지방에서 벌어진 전면전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백년 전쟁이지만 양국이 116년 동안 지속해서 싸우지는 않았고, 단지 처음 선전포고를 한 1337년 이래 완전한 종전 선언이 발표되기까지 116년이나 걸렸다. 중간에 몇 차례 휴전과..

영란 전쟁(英蘭戰爭), 영국-네덜란드 전쟁, Anglo-Dutch Wars, 브레다 조약, 영국 해양강국 부상

영국-네덜란드 전쟁, Anglo-Dutch Wars, 영란 전쟁(英蘭戰爭)17세기 후반에 있어서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양국간의 3차에 걸친 전쟁과 18세기 말엽의 1차례 일어났던 전쟁, 17세기 초, 잉글랜드, 네덜란드 두 나라는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 세력에 협력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실력이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를 능가했고, 1623년의 암보이나 사건을 계기로 잉글랜드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향신료 무역을 독점한 네덜란드는 아시아의 부가 유입되었고, 잉글랜드에서는 네덜란드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전쟁은 해전이 중심을 이뤘으며, 양쪽 모두 상대방의 본토를 침공하지는 않고 모두 어중간한 결과로 끝났다. 잉글랜드는 3차에 걸쳐 네..

더러운 전쟁, 아르헨티나, 좌익 페론주의자 백색테러, 콘도르 작전, CIA지원

Guerra sucia. 20세기 중후반 중남미 지역에서 있었던 우익 독재정권의 좌익 탄압 정책을 가리키는 말. 가장 유명한 건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이지만, 이는 아르헨티나가 가장 스케일이 크고 너무 티 나게 집단 성폭행과 살인을 심각하게 해 대서 잘 알려진 것이며 실제로는 냉전 후반 1970~80년대 니카라과, 브라질, 우루과이, 볼리비아, 과테말라, 콜롬비아, 파라과이, 칠레 등 중남미 우익 독재정권 전반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짓을 했다. 실질적으론 특정 국가 내에 있었던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중남미 현지, 미국, 스페인의 삼각관계에서 형성된 냉전 후기 일련의 조직적인 국가적 폭력, 우파 테러 전반을 일컫는 광의의 의미로 쓰인다.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도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 세계기..

아나톨리아 반도, 셀주크 왕조, 오스만 투르크

아나톨리아 반도의 혼란과 오스만 투르크의 등장 룸셀주크 왕조의 성립과 멸망 본래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반도는 AD 1071년 이슬람 셀주크 왕조의 제2대 술탄 알프 아르슬란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셀주크 왕조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제3대 술탄인 말리크 샤가 AD 1092년 죽자 셀주크 왕조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시작되었고 그로인해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자 나라가 급격히 분열되기 시작했는데 아나톨리아 반도 또한 그 과정에서 킬리지 아르슬란에 의해 독립하게 된다. 본래 킬리지 아르슬란의 할아버지인 쿠탈미쉬는 셀주크 왕조의 왕족으로 제2대 술탄 알프 아르슬란과의 왕위쟁탈전에서 패배하여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아나톨리아 반도로 도망쳤었다. 쿠탈미쉬가 죽자 그의 세력은 아들인 슐레..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 Kniefall von Warschau, 빌리 브란트,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바르샤바의 무릎 꿇기(독일어: Kniefall von Warschau)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 중이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에 있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건이다. 빌리 브란트의 행동은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빌리 브란트는 서독과 동구권 국가 간의 관계 개선에 나선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69년 드디어 서독 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는 이웃 나라인 폴란드를 방문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대전 중에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죽었기에, 여전히 독일은 증오의 대상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68운동, 프랑스 5월 혁명, 금지함을 금지하라, 68세대, 68운동 평가

68운동, 프랑스 5월 혁명, 금지함을 금지하라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8명의 청년들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 지사를 습격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 파업으로 확산된 전례 없던 반체제, 반문화 운동이다. 68혁명으로도 불리며 반체제에는 전통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도 포함한다. 파리에서 시작한 시위는 냉전과 베트남 전쟁 등의 시대적 문제와 결부되면서 그 해 미국, 서독,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일본 등 세계의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했다. 사실 프랑스의 5월 혁명은 60년대 전체를 아울러서 유럽(특히 서유럽)과 미국에 흐르던 운동이 분수령을 이룬 것이다. 60년대 초반부터 미국과 독일..

스코틀랜드, 영국서 독립 추진, 스털링 전투, 브렉시트

14세기엔 국가 합병 두고 전쟁 16세기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잉글랜드 왕위 차지하려다 엘리자베스 1세에게 사형당하기도 국민 62%가 브렉시트 반대 스코틀랜드, 영국서 독립 추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돼 지구촌이 요동을 치고 있어요. 유럽 공동체를 만든 지 4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래요. 브렉시트(Brexit·영국을 뜻하는 'Britain'과 탈퇴를 의미하는 'exit'의 합성어)는 영국 국민의 찬반 투표로 결정되었는데, 개표 결과 찬성은 51.9%였고 반대는 48.1%였어요.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경우 62%나 'EU 잔류'를 선택했다고 해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브렉시트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또 다른 투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영국은 여러 국가가 합쳐진 나라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걸쳐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군사행동을 일컫는다. 1296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하여 시작된 제1차 전쟁(1296년 ~ 1328년)은 1328년 애든버러-노샘프턴 조약의 체결로 종료되었다. 제2차 전쟁(1332년 ~ 1357년)은 1332년 에드워드 발리올이 스코틀랜드 왕위를 주장하며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아 쳐들어옴으로써 발발, 1357년 베릭 조약으로 종료되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확정된 뒤에도 양국은 1603년 동군연합이 될 때까지 산발적인 충돌을 계속했다(영국-스코틀랜드 전쟁).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은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국가위기의 일부였으며, 동시에 최종적으로 독립을 쟁취해냄으로써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결..

아일랜드 인구, 켈트족, 아일랜드인 아이리쉬(Irish), 아일랜드 유명인, U2,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코너 맥그리거, 코난 오브라이언,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

아일랜드인 유럽 대륙과 브리튼 섬에서 게르만족으로부터 밀려난 켈트족이 마지막까지 버틴 지역으로 현재 남아 있는 켈트 신화 중 대다수는 아일랜드 출전이다. 나머지는 웨일스 신화 정도. 아일랜드와 영국을 한국과 일본으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1904년 15년간 조선에서 생활한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는 저서에서 당시 조선 상황을 아일랜드와 비교하였다. 다만 한국은 유럽 대륙에서도 보기 힘들게 외세의 정복왕조가 전혀 없고 한국계 고유왕조가 한반도에서 지속되었으며 오히려 일본이 한반도에서 야요이인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조몬인들이 홋카이도로 밀려난 역사가 있어 홋카이도의 역사가, 정확히는 조몬인의 후예인 아이누족의 역사가 아일랜드와 유사하다. 야요이인은 문화적으로 현대 일본인의 직계 조상이 된 집단으로 외부에서 ..

영국-아일랜드 관계, 아일랜드 잉글랜드의 800년 식민지,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대기근, 한일관계 비교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식민지화 17세기 식민지 아일랜드로 이주한 영국 신교도들은 아일랜드 토착민(구교도)의 토지를 몰수하고, 이들을 소작농으로 만들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인의 수탈과 전염병으로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에도 영국은 별다른 구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200만명이 굶어 죽고, 수백만 명은 미국 등 해외로 떠났다. 1919년 아일랜드가 영국과 독립 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던 마이클 콜린스(1890~1922)의 주도로 창설된 무장 단체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Irish Republican Army)이다. IRA는 1969년 북아일랜드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서 게릴라 형태의 무장 조직으로 재편하고 테러 활동에 나섰다. 당시 IRA는 영국인들에게 테러..

윈저 왕조(1917 ~현재),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여왕, 찰스 3세

윈저 왕조(1917 ~현재) : 1차대전으로 독일계 작위 칭호를 버리고, 윈저왕가로 변경 (1) 조지 5세(1910 ∼ 1936) : 에드워드 7세의 둘째 아들 (2) 에드워드 8세(1936) : 조지 5세의 큰아들, 심프슨 부인 문제로 퇴위 (3) 조지 6세(1936 ∼1952) : 조지 5세의 둘째 아들 (4) 엘리자베스 여왕(1952 ∼ ): 조지 6세의 맏딸 (5) 찰스 3세 (2022~ ) :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의 장남 1901년 하노버왕가의 여왕 빅토리아가 죽자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에서 왕위를 이었으며, 1917년에 윈저왕가로 이름을 바꾸었다. 작센-코부르크-고타는 빅토리아의 남편 앨버트 공(1819~1861)의 성이다. 1)조지 5세(1910-36) 1892년 형 빅토리아 남편 ..

튀르키예, 터키, 인구, 면적, 국민소득, 지진 지역, turkey earthquake

튀르키예(터키) 인구, 면적, 국민소득 면적 터키(튀르키예) 면적: 783,562km² 대한민국 면적: 100,210km² 한반도 면적: 220,748km² 인구 터키(튀르키예) 인구: 7951만 (2016년) --> 8434만 (2020년) 대한민국 인구: 5125만 (2016년) -->5178만 (2020년) 국민소득 터키(튀르키예)국내총생산(GDP): 8577억 USD (2016년) --> 7201억 USD (2020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 1.411조 USD (2016년) --> 1.631조 USD (2020년) 터키(튀르키예) 국민소득(1인당 GDP): 10,787 USD (2016년) -->8,538 USD (2020년) 대한민국 국민소득(1인당 GDP): 27,538 USD (20..

하노버 왕조(1715-1916), 독일 출신 왕위 계승, 조지 1세, 빅토리아 여왕

하노버 왕조(1715-1916) : 독일 출신 왕위 계승 ♣ 하노버 왕조(1714 ∼ 1917) (1) 조지 1세(1714 ∼ 1727) (2) 조지 2세(1727 ∼ 1760) (3) 조지 3세(1760 ∼ 1820) (4) 조지 4세(1820 ∼ 1830) (5) 윌리엄 4세(1830 ∼ 1837) (6) 빅토리아 여왕(1837 ∼ 1901) (7) 에드워드 7세(1901 ∼ 1910) 1701년의 왕위계승법에 의하여 앤 여왕이 죽은 뒤, 독일의 하노버가(家)에서 영입한 조지 1세에서 시작된다. 동왕(同王)과 조지 2세는 독일 출생으로, 영국의 정치에는 관심이 적어 의회정치 및 책임내각제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다음의 조지 3세는 왕권의 회복을 도모하여 의회를 조종하였으나, 결국 미국독립의 실태(失態)..

의원내각제(의회제) 시작, 내각제 채택 이유, 하노버 왕조, 조지 1세

의원내각제(의회제)의 시초는 영국이다. 1714년, 영국에서 자식이 없던 앤 여왕이 사망하고, 왕위 계승법에 따라 독일 하노버의 선제후인 조지 1세가 영국의 왕위에 오르게 된다.[9] 그런데 신임 국왕이 독일 출신이라 영어를 할 줄 몰랐고[10], 노령이라서 국가 통치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게다가 마지못해 계승한 왕위라서 (영국)정치에 별 관심도 없었고, 의회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11] 그렇게 지내다가 1720년에 사우스 시 버블 붕괴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사건에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당시 재정 전문가 로버트 월폴은 조지 1세의 명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게 되는데, 어느 정도 혼란이 수습이 되면서 조지 1세는 월폴을 신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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