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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국어/현대문학 540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현대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개관- 성격 : 비유적, 성찰적, 회고적 - 표현 : 감정의 절제를 통해 지식인인 시인과 노동자인 화자 사이의 균형을 획득함. / 인생을 자연물인 '강'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시적 의미를 획득함. / '강물'의 이미지 : '저문 강 = 썩은 강물' → 화자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화자의 부정적 ..

갈대, 신경림 [현대시]

갈대신경림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개관- 성격 : 명상적, 철학적, 실존적, 상징적, 주지적, 감각적(청각적, 시각적)- 표현 : 자연물인 '갈대'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을 형상화함. - 제재 : 갈대(실존으로서의 연약한 인간을 표상)- 주제 : 고독과 비애로서의 인간의 실존, 비극적인 삶의 인식중요시어 및 시구 풀이* 언젠가부터 → 존재의 출발점 * 갈대 → 유약한 인간 존재의 표상(화자의 대리인) * 갈대의 울음 →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비애 및 고통 * ..

뿌리에게, 나희덕 [현대시]

뿌리에게나희덕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 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서울길, 김지하 [현대시]

서울길김지하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개관- 화자 :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몸 팔러 가야 하는 서러움을 애절한 어조로 노래하는 사람- 주제 :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의 비애- 성격 : 의지적, 애상적, 현실 참여적, 비판적, 고발적 - 표현 : 반복과 점층적 확대를 통해 화자의 처지와 의..

크낙산의 마음, 김광규 [현대시]

크낙산의 마음김광규다시 태어날 수 없어마음이 무거운 날은편안한 집을 떠나산으로 간다 크낙산 마루턱에 올라서면세상은 온통 제멋대로널려진 바위와 우거진 수풀너울대는 굴참나뭇잎 사이로살쾡이 한 마리 지나가고썩은 나무등걸 위에서햇볕 쪼이는 도마뱀땅과 하늘을 집삼아몸만 가지고 넉넉히 살아가는저 숱한 나무와 짐승들 해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꽃과 벌레들이 부러워호기롭게 야호 외쳐 보지만산에는 주인이 없어나그네 목소리만 되돌아올 뿐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도깊은 골짜기에 내려가도산에는 아무런 중심이 없어어디서나 멧새들 지저귀는 소리여울에 섞여 흘러가고짙푸른 숲의 냄새서늘하게 피어오른다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없고바위틈에 엎드려 잠잘 수 없고낙엽과 함께 썩어 버릴 수 없어산에는 살고 싶은 마음남겨 둔 채 떠난다 그리..

고추밭, 안도현 [현대시]

고추밭안도현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 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거리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좋게 키워내셨으니 진무른 벌레먹은 구멍뚫린 고추 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농사 잘 안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핵심 정리 - 성격 : 회상적, 서정적 - 특징 (1) 평이하고 서술적인 표현     (2) 대화를 통해 상황을 간접적으로 제시함. - 제재 : 고추밭 - 주제 : 고달픈 삶을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시인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그의 어머니는 비탈진 황토밭에서 혼자 ..

땅끝, 나희덕 [현대시]

땅끝 나희덕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개관 - 제재 : 중의적..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박태원, 세태소설 [현대소설]

● 줄거리 구보는 동경 유학까지 하고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글쟁이보다는 월급쟁이가 몇 갑절 낫다고 생각한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외출을 하면 어머니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구보는 집을 나와서 천변길을 걷다가 한낮의 거리 위에서 두통을 느끼다가 왼편 귀의 기능에 스스로 의혹을 품는다.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백화점을 들어가다가 아이를 동반한 어떤 부부를 보고 자신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지를 생각해 본다. 밖으로 나온 그는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고독을 지독히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맛선을 본 여인이 막 전차에 오르는 것을 본다. 어머니께서 아는 집안의 딸로서 ..

속리산에서, 나희덕 [현대시]

속리산에서 나희덕 가파른 비탈길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은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시어 풀이 *선망(羨望) : 부러워하여 바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화자가 속리산을 오르면서 얻게 된 깨달음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 속..

오후의 구도, 김광균 [현대시]

오후의 구도 김광균 바다 가까운 노대(露臺) 우에 아네모네의 고요한 꽃방울이 바랍에 졸고 흰 거품을 물고 밀려드는 파도의 발자최가 눈보라에 얼어붙은 계절의 창밖에 나즉이 얼어붙은 조각난 노래를 웅얼거린다 천정에 걸린 시계는 새로 두시 하 -- 얀 기적소리를 남기고 고독한 나의 오후의 응시 속에 잠기여가는 북양 항로의 깃발이 지금 눈부신 호선(弧線)을 긋고 먼 해안 우에 아물거린다 기인- 뱃길에 한배 가득히 장마를 싣고 황혼에 돌아온 적은 기선이 부두에 닻을 나리고 창백한 감상(感傷)에 녹슬은 돛대 위에 떠도는 갈매기의 날개가 그리는 한줄기 보표는 적막하려니 바람이 울 적마다 어두운 카-텐을 새여오는 보이얀 햇빛에 가슴이 매여 여윈 두 손을 들어 창을 나리면 하이-헌 추억의 벽 우엔 별빛이 하나 눈을 감으..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현대시]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갈래 : 자유시, 산문시 - 성격 : 풍자적, 비판적, 자기성찰적 표현 및 특징 ① 일상어와 산문체의 율조로 자아와 현대인의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② 자의식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를 통해 현대인의 소시민적 자화상을 풍자하고 있다..

봄, 이성부 [현대시]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목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개관 - 제재 : 봄('너') → 희망의 이미지,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 겨울 뒤에 반드시 찾아오는 계절 / 화자가 현실에 정착되기를 염원하는 민주와 자유의 상징 - 주제 : 봄(새로운 시대, 자유와 평화의 새 시대)의 도래..

길의 노래, 이기철 [현대시]

길의 노래 이기철 내 마지막으로 들 집이 비옷나무 우거진 기슭이 아니면 또 어디겠는가 → (내 마지막으로 들 집)무덤 연지새 짝지어 하늘 날다가 깃털 하나 떨어뜨린 곳 어욱새 속새 덮인 흙산 아니고 또 어디겠는가 ⇒ 죽음에 대한 상념 마음은 늘 욕심 많은 몸을 꾸짖어도 → (마음/몸)대조적 표현 몸은 제 길들여온 욕심 한 가닥도 놓지 않고 붙든다 → 욕망의 현실성 도시 사람들 두릅나무 베어내고 그곳에 채색된 丹靑 올려서 → (도시 사람들)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인간 → (채색된 단청)정신적 가치 , 욕심과 낭비 다람쥐 들쥐들 제 짧은 잠, 추운 꿈 꿀 혈거(穴居)마저 줄어든다. → (혈거) 절실한 생존 공간 ⇒ 인간 문명의 이기심 고발 먼 곳으로 갈수록 햇빛도 더 멀리 따라와 내 여린 어깨를 토닥이는 걸 보..

눈 오는 지도, 윤동주 [현대시]

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 버린 역사처럼 훌훌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개관 - 화자 : 순이와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타까워 하는 사람 - 주제 : ..

설날 아침에, 김종길 [현대시]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개관 - 성격 : 주지적, 희망적, 긍정적 - 표현 : 평범한 시어와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으로 건강한 삶의 자세를 표출함. / 현실에 대한 긍정과 미래 지향..

난(蘭), 박목월 [현대시]

난(蘭) 박목월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해설 전체 3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문장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고 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이쯤에서' 화자는 '하직'을 소망합니다. 여기서 '하직'이란 시어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단순하게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말하는 작별 인사가 아닌, 버리고 떠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버리고 떠나기 - 법정 스님의 수필 가 떠오른 구절입니다. 첫 문장에서 이 시의 주제가 무..

나무 1, 지리산에서, 신경림 [현대시]

나무 1 -지리산에서- 신경림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주제 : 나무를 통해 깨달은 바람직한 삶의 자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나무를 길러 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에 대..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현대시]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해와 감상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고 힘들 때,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대상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자신 또한 타인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이 시는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따뜻한 존..

해, 박두진 [현대시]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 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 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 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현대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현대시]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 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개관 - 주제 : 젊은 날의 삶에 대한 반성적 인식 - 성격 : 비유적, 성찰적 - 표현 : 영탄적이고 애상적인 어조 / 시를 쓰고 있는 시점보다 훨씬 ..

그의 반, 정지용 [현대시]

그의 반 정지용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 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金星),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식물(高山植物),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스로 한가로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며 굽이굽이 돌아 나간 시름의 황혼(黃昏) 길 위 ― 나 ―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개관 - 제목 : '그의 반'이라는 제목은, 그가 없이는 자신도 없다는 것으로 '그'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에 꼭 필요한 것임을 강조한 표현임 - 주제 : 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배와 묵도 - 성격 : 관념적, 독백적,..

외인촌, 김광균 [현대시]

외인촌 김광균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뭍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능금, 김춘수 [현대시]

능금 김춘수 1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2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充實)만이 익어 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3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면은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개관 - 제목 '능금' :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관념적 이데아'의 육화(肉化) - 주제 ..

배를 밀며, 장석남 [현대시]

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시어 풀이 희번덕이는 : 몸을 젖히며 번득이는. 여기서는 ‘물결이 빛에 반짝거리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락(墜落) : 높은 곳에서 떨어짐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연정..

절정(絶頂), 이육사 [현대시]

절정(絶頂)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견디기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것을 넉넉한 관조(觀照)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강인함을 절제된 언어로 보여 주고 있다.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상징적, 남성적, 지사적 * 제재 : 현실의 극한 상황 * 주제 : 극한 상황에서의 초월적 인식 * 특징 ① 한시의 ‘기 - 승 - 전 - 결’의 구조와 유사한 형식임. ② 역설적 표현을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함. ③ 강렬한 상징어와 남성적 어조로 강인한 의지를 표출함. ..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현대시]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개관 - 주제 : 인내와 희생을 통한 사랑의 실천 - 성격 : 여성적, 명상적, 상징적, 불교적 - 표현 * 경어체 사용으로 경건한 분위기 연출 * 불교적 명상을 바탕으로 한 상징세계 형상화 * 수미쌍관의 기법으로 시적 완결성 획득 * 당신을 위한 헌신적 기다림이 ..

등산, 오세영 [현대시]

등산 오세영 자일을 타고 오른다. 흔들리는 생애의 중량 확고한 가장 철저한 믿음도 한때는 흔들린다. 절벽을 더듬는다. 빛을 찾아서 조금씩 움직인다. 결코 쉬지 않는 무명의 벌레처럼 무명(無明)을 더듬는다. 함부로 올려다보지 않는다. 함부로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바람에 뜨는 별이나, 피는 꽃이나, 이슬이나,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더듬으며 가까이 접근한다. 행복이라든가 불행 같은 것은 생각지 않는다. 발 붙일 곳을 찾고 풀포기에 매달리면서 다만, 가까이, 가까이 갈 뿐이다. 개관 - 제재 : 등산 → 정상(목표)에 이르는 과정 - 주제 : 삶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목표보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인식) - 성격 : 비유적, 상징적, 불교적 - 표현..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현대시]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손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

꽃밭의 독백 -사소단장, 서정주 [현대시]

꽃밭의 독백 -사소단장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山)돼지, 매[鷹]로 잡은 산(山)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門)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개관 - 제재 : 사소 설화 - 화자 : 나(사소) - 주제 : 초월적 세계에 대한 갈망 영원하고 절대적인 세계를 갈망하는 구도적 정신 - 성격 : 상징적, 구도적, 전통적, 독백적 - 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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