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현대시]

Jobs9 2023. 12. 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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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개관

- 제재 : 기다림
- 주제 :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의 설레는 기대감

- 성격 : 서정적, 희망적
- 표현 : 간절한 기다림과 희망의 어조 / 만남의 시간(미래)과 기다림의 시간(현재)을 모두 긍정함. /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 만남의 공간
너 → 사랑하는 사람,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현재에는 부재하는 가치 있는 것(민주, 자유, 평화 등.)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의미와 음성의 이중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순수하고 절실한 기다림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나타냄.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 기다림의 소망과 상실감의 반복이 주는 고통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애리다(표준말 : 아리다) → 혀끝을 톡톡 쏘는 것 같은 알알한 느낌이 있다. / 상처를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 → '너'가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의 표현(기대, 초조, 절망감)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나의 마음이 너를 향해서 간다는 의미로, 기다림에 대한 인내심보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행동임.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 역설적 표현임. / 소망에 대한 기다림은 반드시 성취될 때에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와 절망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확인하게 된다는 역설적 의미가 드러남.
아주 먼 데 → 공간적, 시간적 거리감의 표현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화자의 초조하고 절실한 기다림의 순환 행위
 
시상의 흐름(짜임)
- 1~12행 : 너를 만나기로 한 곳에서 너를 기다림.(기대감, 초조감, 실망감)
- 13~22행 : 너에게 다가가며 너를 기다림.(적극적이고 희망적인 태도)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여기에서의 기다림은 김소월이 진달래꽃에서 노래한 바 있는 소위 한민족의 전통적이라고 하는 떠나간 님의 처분에 따르고 기다리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그것이 아니라, 기다리면서 온 마음이 '아주 먼 데서 너에게로 가는, 너를 기다리면서 너에게로 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것이다.  
이 시의 화자가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 너'이지만, 화자는 오히려 '너'에 대한 기다림을 설레는 기대감과 행복하고 충만한 심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렇게 만남의 시간이 될 미래와, 기다림의 시간인 현재에 대하여 다 같이 축복을 내리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정작 '너'를 만나게 될 미래보다도 그 미래를 기다리는 현재를 더 축복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라는 시간은 화자에게 있어서 '너'가 멀고 먼 곳에서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시간이며, 또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라는 마지막 행에 나타나듯이,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화자가 '너'와 더 가까워지는 축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황지우의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는 자신을 열애하는 이가 없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이 열애할 이가 없는 것은 견딜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월의 두께와 인연의 깊이를 느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몸으로 신경을 기울이는 그의 기다림은 그의 생명을 갉아먹을 만큼 가슴 애리는 것이지만, 그는 기꺼이 그 기다림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그리고 이 시가 나에게 제일 감명 깊었던 이유는 시에 붙이는 말이 주는 구체성 때문인 것 같다. 
기다림은 그의 삶을 녹슬게 하지만 새로운 태어남을 이야기하는 그는 아이에게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 희망을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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