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배를 밀며, 장석남 [현대시]

Jobs 9 2023. 10. 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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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시어 풀이
희번덕이는 : 몸을 젖히며 번득이는. 여기서는 ‘물결이 빛에 반짝거리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락(墜落) : 높은 곳에서 떨어짐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연정적, 고백적, 비유적
- 주제 :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

 

특징
- 배를 미는 행위에서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유추함
-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 행위를 통해서 형상화
- 영탄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냄

이해와 감상
<배를 밀며>는 배를 물 위로 밀어내는 것을 사랑을 떠나보내는 것에 비유하여 이별의 상황과 그로 인한 아픔을 노래한 시이다. 이별을 겪고 있는 화자는 배를 미는 행위를 통해 이별의 의미를 유추하고 있으며, 이별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려 하지만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느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배를 미는 행위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 작품은 1연에서 가을 바닷물 위로 배를 밀어내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지는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라는 것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손이 겨우 떨어지는 순간 상대의 부재에 대한 인식으로 안타까움과 허전함을 강조한 것이다.

2연에서는 ‘사랑은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라며, 배가 떠나가는 모습에서 사랑이 떠나갈 때의 느낌을 ‘부드럽게도’의 반복으로 표현하고, 3연에서는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라며, 이별로 인한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슬픔과 그리움을 극복하려는 화자의 자세를 드러낸다. 긍정적 서술에 쓰이는 종결 어미 ‘-지’의 사용은 이러한 화자의 자세와 연결된다.

4연에서도 화자는 배가 지나가면서 생기는 물결이 잔잔해지듯, 이별 때문에 생긴 마음의 상처와 아픔도 결국 가라앉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는 물이 나간 뒤 물 위의 흔적으로 이별로인한 마음의 상처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자세는 5연의 ‘그런데’의 사용으로 전환된다. ‘오, 내 안에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배여’라는 영탄적 표현은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이 갑자기 ‘내 안으로’ 밀려드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화자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오’라는 감탄사는 이런 상황에 대한 화자의 당황스러움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한다.

장석남 시인은 사랑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들어와 설렘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참 부드럽게’ 떠나는 것에서 아쉬움과 그리움을 느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인간의 삶과 사랑이란 끊임없이 배를 밀고 매고 풀면서, 내면의 고향과 같은 겹겹의 추억을 만들어 가며 진행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시인 장석남(張錫南, 1965 ~ )
인천 옹진(덕적도)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다.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마음의 풍경을 묘사하는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절제된 시어로 내면의 깊은 서정을 보여 주는 그의 시는 특히 이미지의 탁월한 구사를 보여 준다. 시집으로 《새 떼들에로의 망명》(1991),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1995), 《젖은 눈》(1998),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2001),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2005), 《뺨에 서쪽을 빛내다》(2010),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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