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난(蘭), 박목월 [현대시]

Jobs9 2024. 2. 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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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蘭)

박목월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히 살아나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해설

전체 3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문장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고 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이쯤에서' 화자는 '하직'을 소망합니다. 여기서 '하직'이란 시어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단순하게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말하는 작별 인사가 아닌, 버리고 떠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버리고 떠나기 -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가 떠오른 구절입니다. 첫 문장에서 이 시의 주제가 무소유에 대한 소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문장에서 전술한 '이쯤에서'의 의미를 상술합니다. '이쯤'은 '좀 여유가 있는 지금'입니다. 조금의 여유가 있을 때의 버림이 가장 아름답다는 인식을 보이는 문장입니다. 이 두 번째 문장은 첫문장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 문장으로 무욕의 삶에 대한 화자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장에서 화자는 이 시의 중심 소재인 '난'과의 유추적 해석을 합니다. '난'을 기르듯 조용하게 먼 곳에서 그윽하게 향기를 머금으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여기서 '난'과 같은 삶은 무엇일까? 1, 2문장에서 화자는 욕심을 버린 무욕의 삶을 꿈꾸었는데 그것이 '난'의 속성이라고 생각했는가 봐요. 모든 애착과 물욕을 버리고 단 '한 포기 난을 기르'는 마음으로, 혹은 '한 포기 난'처럼 조용히 무욕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시조시인 이호우님의 <난초> 연시조가 생각납니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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