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구보는 동경 유학까지 하고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글쟁이보다는 월급쟁이가 몇 갑절 낫다고 생각한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외출을 하면 어머니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구보는 집을 나와서 천변길을 걷다가 한낮의 거리 위에서 두통을 느끼다가 왼편 귀의 기능에 스스로 의혹을 품는다.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백화점을 들어가다가 아이를 동반한 어떤 부부를 보고 자신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지를 생각해 본다. 밖으로 나온 그는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고독을 지독히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맛선을 본 여인이 막 전차에 오르는 것을 본다. 어머니께서 아는 집안의 딸로서 작년 여름에 맛선을 본 여자인데, 맛선 본 이후에 이 여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 여자를 아는 체 할까말까 갈등을 느끼는 사이에 그 여인은 청량리행 전차를 타기 위해 내리고 구보는 한숨을 내쉰다. 학창 시절 벗의 누이를 짝사랑했던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생활인이 되어 버린 그 누이를 훗일에 보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돈과 여자와 연관지으면서 상념에 빠진다.
조선은행 앞에서 전차를 내린 그는 한 잔의 홍차를 즐기기 위해 장곡천장의 다방으로 향한다. 커피를 청해 구석진 등탁자로 가서 쉬던 그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욕망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가 갑자기 '벗'이 그리워짐을 느낀다. 다방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취미는 없으나 아는 사람이 하는 골동품 가게에 들러보지만 주인이 없어 그냥 나온다. 여름 땡볕의 거리를 걷다가 건장한 근육질의 장년을 보고는 소년시절의 무리한 독서를 떠올리며 요즘의 게으른 독서생활을 반추해 본다. 목적없이 태평동까지 갔다가 길에서 옛친구를 만난다. 그러나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친구는 무색하게도 가 버린다.
구보는 고독을 느끼며 남대문을 지나 경성역으로 향한다. 경성역에서 구보는 노파, 시골 신사, 병자들, 아이 업은 아낙네, 2명의 건장한 사나이 등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기록해 본다. 삶의 활력소를 느낄 수 있을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대중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것을 보며 더욱 큰 고독(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또한 중학시절 열등생이었던 벗이 번지르르한 차림새에 애인까지 동반한 것을 확인하고 불쾌감을 느낀다. 다방에 갔다가 다시 동행하자는 것을 뿌리친 구보는 그들이 월미도로 놀러가는 것을 보면서 거리로 나온다.
조선은행 앞으로 다시 가다가 양복점에 들러 전화를 빌려서는 시인인 벗에게 다방으로 나와달라고 전화를 한다. 다방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며 다방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인다. 강아지에게 '캄 온' '이리 온'이라고 해도 오지 않고, 다가가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면 '깨갱'하는 소리만 내자 괜한 초조와 분노를 느낀다. 시인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사회부 기자가 된 친구가 오고, 벗은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한참 쏟아내다가 구보씨의 소설에 대해 평가하고 또한 '율리시즈'를 논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을 듣는 구보는 권태로움을 느끼고, 창 밖 길가에서 나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그는 누가 또 죄악의 자식을 낳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벗과 헤어져 종로 네거리로 와서는 황혼과 황혼을 타서 거리로 나온 계집의 무리들을 보면서 그들의 발걸음이 '위태롭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변에 친구가 하는 다료에 들린다. 주인인 벗이 없자 그는 기다리며 고독과 권태 이상의 애처로움을 느낀다. 동경 유학시절을 생각(동경 유학시절 '찻집'에서 '윤리학' 책을 주워 책주인을 찾아 주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여자가 약혼남과의 문제를 말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구보는 그 여자를 약혼남에게 돌려보냈다. 약혼남은 구보씨가 아는 이로 매우 성실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여자가 약혼남에게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지 않은 듯했고, 그 여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매우 자책하며 괴로워함)하다 벗이 돌아오자 거리로 나와 걷다가 잠시 뒤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벗은 볼 일을 보러 갔다.
구보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그녀와 애처롭게 이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면서 자신이 위선자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고, 다료를 운영하던 벗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가엾은 어느 벗의 조카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구보는 자주 찾지 못했음을 미안해 하며 '수박'을 사서 아이들에게 들려서 어머니에게 보낸다. 전보 배달 자전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전보나 우편물을 받아 뜯지 않은 채로 감동에 젖고 싶은 느낌을 상상해본다.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구보'를 항상 '구포'라고 부르는 중학 선배인 생명보험의 외교원을 만난다. 구보의 독자라며 추켜 세워주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다가 친구가 와서 함께 나온 그는 거리를 걸으면서 친구의 가난한 다료 운영자로서의 설움을 듣기도 하고, 애인이 갖고 싶지 않냐는 벗의 질문에 '애인, 아내, 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낙원정이라는 까페에 들러서는 여급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정신병자'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은 '다변증'이라고 여급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그가 속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관찰한 바를 초하자 벗이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다. 그는 창밖 어둠을 응시하면서 소복입은 여인이 '여급 구함'이란 설명을 듣고 도망간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여인과 까페 여급을 비교하며 누가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새벽 두 시의 비오는 밤길을 걸으며 늦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릴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혼인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면 다시는 물리치지 않기로 작정한 그는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겠다면서 헤어져서는 집으로 향한다.
● 인물의 성격
- 구보 → 무명작가로 무위도식하면서 서울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병적 현상까지 보이는 그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의 소망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결혼을 하고 소설을 써서 조그만 행복을 찾기로 작정한다.
- 어머니 →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자식이 동경 유학까지 하고도 일정한 직장을 잡지 못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녀는 아들이 결혼해서 자식 낳고 원만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줌.
● 구성 단계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단계를 취하기 보다, 오전에 집을 나와 새벽 2시 경에 귀가하기까지의 그 여정(여로)에 의해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 집(외출) → 천변길 → 종로 네거리 → 화신상회 → 전차 안 → 조선은행 앞 → 다방 → 거리 → 경성역(대합실) → 조선은행 앞 → 다방 → 거리 → 술집 → 카페 → 종로 네거리 → 집(귀가) >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소설가 구보 씨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를 통해, 당대의 타락한 현실에 대항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구보씨는 시력장애, 신경쇠약, 두통, 중이질환 등의 증세를 지닌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인물이며, 일정한 보수를 받는 직업도 없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건전한 독신자이다. 그는 늘 일상적 행복을 갈구한다. 그가 틈만 나면 외출을 하는 것은 바로 행복의 길찾기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산책'이라는 배회의 형식은 '관찰'과 '의식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다. 관찰되고 있는 것은 당시 경성의 여러 풍물, 경성역을 중심으로 한 지게꾼, 유랑민, 시골노파, 바세도우씨 병에 걸린 노동자 등 암울한 풍경과, 다른 한편으로 종로통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휘황한 풍경을 보여주면서 근대화의 양면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 의식의 흐름이다. 그것은 여러 풍경에서 발견하고 있는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여된 '일상적인 행복'과 '지식인의 고독'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구보의 내면세계는 단적으로 회의에 젖어 있다. 만사를 회의적으로, 상반된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자의식의 과잉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현상적 자아와 반성적 자아의 대면에서 그 둘의 간극이 클 때 자의식의 크기는 커지고, 그로 인하여 내적 번민은 심화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구보의 이런 심리 추이를 서술하는 심리소설인 것이다.
작품의 끝부분에 이르게 되면 번민과 방황의 긴 수렁에서 스스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자기 극복의 모습이 구체화된다.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구보는 이제 새롭게 자신을 정리하고 갈 곳을 찾았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이어 그 방황의 도정이 전개되고, 마지막에는 갈 곳을 찾는 것으로 끝나는 구조를 속으로 품은 소설이 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구보 씨는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거리를 지나다가 여러 장면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과적인 서사성이 전혀 없이 그때 그때 연상되는 단편들이다. 이러한 특성은 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동시성이고 몽타주 기법이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교차되는 형식을 통해 주인공의 복합적인 내면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인물의 연상 작용에 따른 시선을 쫓아가며 외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나,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장면을 통해 인물의 내면 의식을 효과적으로 묘사하였다.
소설가 구보 씨의 '고독의 의미
소설가 구보는 세속적 일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고독을 선택하고, 세계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고독한 삶은 그 증후로 모든 신경 조직의 불편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소설가 구보는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일상적 욕망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적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보는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거부하며 화해를 꿈꾸기도 한다. 이것은 고독 때문에 억압된 욕망들이 무의식 저편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의 한 양상이다. 구보의 갈등은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뚫고 억압된 욕망들이 구보의 의식 속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에게 대답을 못해 드린 것을 자책하는 구조는 바로 무의식 저편에 삶에의 욕망을 꿈꾸는 고독한 소설가의 뒷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키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탄압을 더욱 심하게 하던 시기로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까지 감시를 받았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당시 경성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도시 문명의 영향 아래 탄생하게 된다. 그 당시의 경성은 대한 제국의 멸망과 함께 독립국의 수도로서의 통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부 지역의 관리를 맡는 지방적 수도로 격하됨과 동시에 그 규모도 1/8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는 발판으로서의 경성의 역할이 있었기에 그들은 조선 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대대적인 조선 시가지 계획령을 발표한다. 이 영에 의거 서울 시내 기간 도로들을 따라 한국인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공간의 재조직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한 탓에 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생활 방식에 맞지 않는 도시 계획은 기존의 농경생활이 갖는 연대감과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쉽게 단절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병폐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도시의 구성원 개개인 간에 불신의 감정이 스며들어 서로 간의 고독과 소외 현상이 일어나고, 이러한 문명을 누릴 수 있는 계층에 비해 누리지 못하는 계층이 느끼는 상대적인 빈곤감과 이로 인한 타락의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도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활 양상을 보여 줌으로써 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낳기도 했다. 이들 소설들은 가난, 범죄, 쾌락과 매춘, 개인주의로 치닫는 인간관계, 그로 인한 고독 등을 다룸으로써 당시 식민지 사회가 가지는 모순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중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지식인 인텔리 소설가가 소설의 소재를 찾아 경성을 배회하는 하루를 적은 소설로, 그 당시 경성의 문물과 세태가 카메라에 담긴 장면처럼 다양하고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핵심사항
-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소설, 모더니즘 소설, 사색적 · 자전적 성격의 소설
- 배경 : 1930년대 타락한 식민지 시대 서울(남대문, 경성역, 종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실질적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다름없다.)
- 표현상 특징
* 1일 동안의 여로 형식을 취함(원점 회귀의 여로 구조)
* 전통적인 서사 구조(플롯 중심)는 약화되고,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른 회상의 구조가 강화되어 있음.
* 무기력한 지식인의 일상 묘사
* 심리 묘사와 관찰의 조화(의식의 흐름)
* 만연체 문장
* 모더니즘 기법의 응용(외출(산책)의 모티프, 몽타주와 오버랩 기법)
- 갈등 구조 : 뚜렷한 사건을 가지지 않으며 인물들도 구보와 구보 이외의 관찰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갈등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큰 갈등의 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소설가와 생활인, 곧 '예술과 생활의 대립'이다. 구보가 직업을 가지고 생활인이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황금을 좇는 친구들, 이 모두가 구보에게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들과 달리 생활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한다. 이러한 내면의 갈등은 결국 생활과 창작을 함께 해 나가겠다는 결심으로 끝을 맺는다.
- 출전 : 조선중앙일보(1934. 08. 01. ~ 09. 19.)에 연재됨.
- 주제
* 일상성의 회복을 꿈꾸는 지식인의 고독
* 1930년대 무기력한 한 소설가의 눈에 비친 일상과 세태
* 식민지 현실에 살아가는 무기력한 소설가의 일상사와 자의식
1. 작가가 그리려고 한 세계는 결국 무엇이었는지 말해 보자.
⇒ 지식인 소설가의 내적 방황과 그것의 극복 태도
2. 이 작품의 형식상 두드러진 특징을 찾고 그것의 효과를 말해 보자.
⇒ 장, 절 구분을 함에 있어 소제목을 달아주고, 긴 문장에 적절한 쉼표를 부여하여 문법성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장면의 전환, 사건의 전이를 꾀한다. 그리고 특이한 시점 선택을 통해서 내면의식을 표출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3. 구보는 어떤 대상을 파악할 때 일정한 패턴의 의식을 보인다. 그 점을 말해 보자.
⇒ 구보는 한 가지 사태에서 양면을 보고 상반된 판단을 내린다. 예컨대 행복하다고 생각하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깨닫는 진실은 없다. 그저 그런 회의에 빠질 뿐이다. 이런 것은 모든 사태에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구보의 사고는 이런 단순한 패턴에 의한 것이다.
4. 구보가 방황을 끝내고 귀가하게 되는 것은, 구보가 무엇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피로와 슬픈 기다림에 시달리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삶의 진실이란 애환과 연민의 그것으로 구체화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도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다.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구보는, 약간 자신이 있는 듯싶은 걸음걸이로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젊은 내외가, 너댓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식당으로 가서 그들의 오찬을 즐길 것이다. 흘낏 구보를 본 그들 내외의 눈에는 자기네들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엿보였는지도 모른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 사실, 4, 5년 이상을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기쁨을 가져 이렇게 거리로 나온 젊은 부부는 구보에게 좀 다른 의미로서의 부러움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히 가정을 가졌고,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당연히 그들의 행복을 찾을게다.
승강기가 내려와 서고, 문이 열려지고, 닫혀지고, 그리고 젊은 내외는 수남이나 복동이와 더불어 구보의 시야를 벗어났다.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가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 한 손의 공책과-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안전지대 위에, 사람들은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
전차가 왔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탔다. 구보는 잠깐 머엉 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자기와 더불어 그곳에 있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저 차에 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저 혼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에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본다. 구보는, 움직인 전차에 뛰어올랐다.
(중략)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도회의 소설가는 모름지기 이 도회의 항구와 친하여야 한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직업 의식은 어떻든 좋았다. 다만 구보는 고독을 삼등 대합실 군중 속에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구보가 한 옆에 끼여 앉을 수 도 없게시리 사람들은 그곳에 빽빽하게 모여 있어도, 그들 의 누구에게서도 인간 본연의 온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네들은 거의 옆의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 일도 없이, 오직 자기네들 사무에 바빴고, 그리고 간혹 말을 건네도, 그것은 자기네가 타고 갈 열차의 시각이나 그러한 것 에 지나지 않았다. 그네들의 동료가 아닌 사람에게 그네들은 변소에 다녀올 동안의 그네들 짐을 부탁하는 일조차 없었다. 남을 결코 믿지 않는 그네들의 눈은 보기에 딱하고 또 가엾었다.
구보는 한구석에 가 서서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노파를 본다. 그는 뉘 집에 드난을 살다가 이제 늙고 또 쇠잔한 몸을 이끌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어느 시골, 딸네 집이라도 찾아 가는지 모른다. 이미 굳어 버린 그의 안면 근육은 어떠한 다행한 일에도 펴질 턱 없고, 그리고 그의 몽롱한 두 눈은 비록 그의 딸의 그지없는 효양(孝養)을 가지고도 감동시킬수 없을지 모른다. 노파 옆에 앉은 중년의 시골 신사는 그의 시골서 조그만 백화점을 경영하고 있을 게다. 그의 점포에는 마땅히 주단포목도 있고, 일용 잡화도 있고, 또흔히 쓰이는 약품도 갖추어 있을 게다. 그는 이제 그의 옆에 놓인 물품을 들고 자랑스러이 차에 오를 게다. 구보는 그시골 신사가 노파와의 사이에 되도록 간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를 업신여겼다. 만약 그에게 얕은 지혜와 또 약간의 용기를 주면 그는 삼등 승차권을 주머니 속에 간수하고 일, 이등 대합실에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을 게다.
문득 구보는 그의 얼굴에서 부종(浮腫)을 발견하고 그의 앞을 떠났다. 신장염. 그뿐 아니라, 구보는 자기 자신의 만성 위확장을 새삼스러이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구보가 매점 옆에까지 갔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도 역시 병자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40여 세의 노동자. 전경부(前頸部)의 광범한 팽륭(澎隆). 돌출한 안구. 또 손의경미한 진동. 분명한 ‘바세도우씨’병. 그것은 누구에게든 결코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의 좌우에는 좌석이 비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앉으려 들지 않는다. 뿐만아니라, 그에게서 두 칸통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 업은 젊은 아낙네가 그의 바스켓 속에서 꺼내다 잘못하여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 한 개의 복숭아가, 굴러 병자의 발 앞에까지 왔을 때, 여인은 그것을 쫓아와 집기를 단념하기조차 하였다.
구보는 이 조그만 사건에 문득, 흥미를 느끼고, 그리고 그의 ‘대학노트’를 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문 옆에 기대어섰는 캡 쓰고 린네르 즈메에리 양복 입은 사나이의, 그 온갖 사람에게 의혹을 갖는 두 눈을 발견하였을 때, 구보는 또 다시 우울 속에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Q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주인공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조롱하고 있다.
② 특정 인물의 내면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③ 인물 간의 갈등을 부각하여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④ 대화 장면을 자세하고 빈번하게 제시하여 인물들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설】 정답 ②
소설가 ‘구보’의 눈에 비친 1930년대 경성(서울)의 모습과 여정에 따른 그의 내면의식을 그려 낸 세태소설
제시문을 보면, 구보는 ‘화신상회(백화점)-전차 정류장-경성역’ 등에서 행복과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생과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장소 이동과 내면심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답은 ②번
① 희화화한 표현은 없고 인물의 내면심리와 추리 위주의 서술이다.
③ 인물 간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④ 대화가 아닌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Q 윗글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구보는 ‘노파’의 가난하고 고된 삶을 상상해 보며, 그녀의 생기 없는 외양에 대해 생각한다.
② 구보는 ‘중년의 시골 신사’가 삼등 승차권을 가지고 이등 대합실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를 업신여기고있다. ③ 구보는 만성 위확장을 앓고 있는 ‘40여 세의 노동자’가 불결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곁에 가서 앉는다.
④ 구보는 ‘양복 입은 사나이’가 온갖 사람을 불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분노를 느낀다.
【해설】 정답 ①
구보는 딸네 집에라도 가는 듯한, 늙고 쇠잔해 보이는 노파를 바라본다.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모습, 드난살이(남의 집 식모살이) 정도 했을 법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①의 서술은 내용에 부합
② 이등 대합실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아니다. 현재 ‘삼등 대합실’에 있으며 ‘일, 이등 대합실’은 그의 태도를 통해 상상해 본 내용에 해당한다.
③ ‘만성 위확장’은 구보 자신의 병증이고, ‘40여 세의 노동자’는 ‘바세도우씨’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고, 곁에 가서 앉지도 않았다.
④ 분노를 느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냥 우울한 느낌이 들어 그곳을 떠났다고 하였다.
Q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1930년대 무력한 지식인인 소설가 구보의 내면의식과 그의 눈에 비친 경성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경성역, 화신상회(백화점), 안전지대, 전차 등 근대화가 진행되며 나타난 경성의 새로운 풍경들은 구보의 시선에 포착된다. |
① 화신상회에서 구보는 행복해 보이는 가족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다가 그들을 업신여기려 한다.
② 발 가는 대로 걸어가 안전지대에 도착하는 구보의 모습으로 보아, 구보는 목표나 방향이 없는 무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이해할 수 있다.
③ 구보가 움직인 전차에 뛰어오른 이유는 안전지대에 혼자 남는 것에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④ 구보가 경성역으로 향한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해설】 정답 ①
①은 내용과 다르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나머지는 서술 내용에 모두 부합
Q 다음 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문득, 제비와 같이 경쾌하게 전보 배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그의 허리에 찬 조그만 가방 속에 어떠한 인생이 압축되어 있을 것인고. 불안과, 초조와, 기대와…… 그 조그만 종이 위의, 그 짧은 문면(文面)은 그렇게도 용이하게, 또 확실하게, 사람의 감정을 지배한다. 사람은 제게 온 전보를 받아 들 때 그 손이 가만히 떨림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구보는 갑자기 자기에게 온 한 장의 전보를 그 봉함(封緘)을 떼지 않은 채 손에 들고 감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전보가 못 되면, 보통우편물이라도 좋았다. 이제 한 장의 엽서에라도, 구보는 거의 감격을 가질 수 있을 게다. 흥, 하고 구보는 코웃음쳐 보았다. 그 사상은 역시 성욕의, 어느 형태로서의, 한 발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물론 결코 부자연하지 않은 생리적 현상을 무턱대고 업신여길 의사는 구보에게 없었다. 사실 서울에 있지 않은 모든 벗을 구보는 잊은 지 오래였고 또 그 벗들도 이미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여 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지금, 무엇들을 하고 있을꼬. 한 해에 단 한 번 연하장을 보내 줄 따름의 벗에까지, 문득 구보는 그리움을 가지려 한다. 이제 수천 매의 엽서를 사서, 그 다방 구석진 탁자 위에서…… 어느 틈엔가 구보는 가장 열정을 가져, 벗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다. 한 장, 또 한 장, 구보는 재떨이 위에 생담배가 타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온갖 벗의 이름과 또 주소를 엽서 위에 흘려 썼다…… 구보는 거의 만족한 웃음조차 입가에 띠며, 이것은 한 개 단편소설의 결말로는 결코 비속하지 않다, 생각하였다. 어떠한 단편소설의―물론, 구보는, 아직 그 내용을 생각하지 않았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
① 벗들과의 추억을 시간순으로 회상하고 있다.
② 주인공인 서술자가 주변 거리를 재현하고 있다.
③ 연상 작용에 의해 인물의 생각이 연속되고 있다.
④ 전보가 이동된 경로를 따라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해설】 정답 ③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 갈래 : 중편소설, 심리소설, 세태소설, 모더니즘 소설, 사색적 · 자전적 성격의 소설 - 배경 : 1930년대 타락한 식민지 시대 서울(남대문, 경성역, 종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실질적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다름없다.) - 표현상 특징 * 1일 동안의 여로 형식을 취함(원점 회귀의 여로 구조) * 전통적인 서사 구조(플롯 중심)는 약화되고,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른 회상의 구조가 강화되어 있음. * 무기력한 지식인의 일상 묘사 * 심리 묘사와 관찰의 조화(의식의 흐름) * 만연체 문장 * 모더니즘 기법의 응용(외출(산책)의 모티프, 몽타주와 오버랩 기법) - 갈등 구조 : 뚜렷한 사건을 가지지 않으며 인물들도 구보와 구보 이외의 관찰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갈등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큰 갈등의 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소설가와 생활인, 곧 '예술과 생활의 대립'이다. 구보가 직업을 가지고 생활인이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황금을 좇는 친구들, 이 모두가 구보에게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들과 달리 생활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한다. 이러한 내면의 갈등은 결국 생활과 창작을 함께 해 나가겠다는 결심으로 끝을 맺는다. - 주제 * 일상성의 회복을 꿈꾸는 지식인의 고독 * 1930년대 무기력한 한 소설가의 눈에 비친 일상과 세태 * 식민지 현실에 살아가는 무기력한 소설가의 일상사와 자의식 |
① 벗들과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엽서를 쓰려고 하고 있을 뿐, 벗들과의 추억을 시간순으로 회상하는 내용은 제시문에 없다.
② “문득, 제비와 같이 ~ 자전거가 지나간다”에서 서술자가 주변 거리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서술자는 주인공 구보가 아니라 외부 서술자. 이 글은 주인공 구보의 시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
③ 해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박태원의 자전적인 소설로, 주인공 구보가 경성(서울)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겪는 사소한 일들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물의 심리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글은 전보를 배달하는 자전거가 지나가는 모습을 본 구보의 연상 작용에 의해 그의 생각이 연속되면서 전개되고 있다. 즉 구보의 생각은 ‘전보를 받고 싶다 생각함 →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벗들에 대한 생각함 → 친구들에게 엽서를 쓴다고 생각함’ 등으로 전개
의식의 흐름 - 시간의 순서와 논리성을 무시한 채 등장인물의 의식, 생각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함. - 등장인물의 사고, 기억, 연상 등을 그대로 포착하여 기술함. - 등장인물이 보고 듣는 외부적 사건보다, 그것을 계기로 떠올리는 생각이 서술의 중심 내용을 이룸 |
④ 전보가 이동된 경로는 제시문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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