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능금, 김춘수 [현대시]

Jobs 9 2023. 11. 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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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

김춘수

1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2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充實)만이
익어 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가을이 그에게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3
놓칠 듯 놓칠 듯 숨가쁘게
그의 꽃다운 미소를 따라가면은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개관

- 제목 '능금' :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관념적 이데아'의 육화(肉化)
- 주제 : 존재의 비밀과 경이로움

- 성격 : 주지적, 상징적, 관조적, 무의미시(절대시)
- 표현 * 한국의 전통적 정서가 지성의 통제를 받은 이미지와 적절히 조화됨
* 간결하고 담백한 표현과 적절한 수식
* 소재를 독특하게 해석하여 이미지로 전달함.

중요 시구
그리움 → 능금의 실체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 조작이 아닌 내적 필연성에 따라 이루어진(자연스러운 성취)
빛깔, 향기, 무게 → 능금의 내면적 본질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표출된 상태
눈부신 축제 → 능금이 전해주는 그리움의 정도, 흐뭇한 충족감. 성숙을 이룬 존재의 경이감
충실 → 내적인 성숙
애무의 눈짓 → 햇살(자연의 섭리, 신의 은총)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 → 능금의 내면과 감정의 세계(신비한 존재의 본질)
그득히 물결치는 ~ 바다가 있다. → 역동적 심상을 활용하여 대상(바다)의 속성을 부각시킴.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그리움으로 살고 그리움으로 다가와 축제의 여운을 새기는 능금
- 2연 : 세월 속에서 내적 충실(존재의 속살)을 채워 온 능금이 받는 사랑
- 3연 : 마침내 도달해서 만나게 되는 능금의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경이감)

 

이해와 감상
무의미시(절대시)를 쓰는 시인의 작품이지만, 이 시는 그래도 의미의 세계를 다소 보여주고 있다.  '능금'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시인은 '인식'의 눈을 맑힌다. 과일로서의 능금, 단순한 관능미의 상관물로서의 능금으로 보고 읽어서는 능금의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  능금이라는 존재에게 끊임없는 물음을 보내며 결국 그의 비밀을 알아낸다. 능금의 존재는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실체)을 드러내며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인식의 시'는 '대상의 무화(無化) 내지는 소멸'을 가져온다.  따라서, 이 시는 사물의 거죽을 벗기고 숨겨진 진실을 발견해 내는 마음의 눈으로 읽고 감상해야 할 것이다. 
1의 부분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리움'이다.  능금은 무엇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면서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지니게 되고, 마침내 그 성숙의 무게로 인해 떨어져 내려 온다는 것이다.  이 때의 그리움은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풍부하게 하는 것이요, 남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운 결실과 기쁨을 베푸는 생명의 힘이다. 
2의 부분에서는 능금과 가을 사이의 사랑에 찬 교감을 노래한다.  능금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사이 즉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의 충실을 더해가는데, 가을이 그에게 따사로운 햇살로 사랑의 애무를 보내 준다.  아름다운 생명의 성숙과 그를 둘러싼 자연 사이의 행복한 합일의 모습이다. 
3의 부분은 이렇게 해서 성숙한 능금이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바다처럼 넓고 깊은 생명과 감정을 담고 있는 것임을 노래한다.  조지훈은 '이슬 한 방울에도 온 우주가 어리는 것이 시의 세계'라 말한 바 있다.  김춘수는 바로 능금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생명의 무한한 그리움과 충만함이 이루는 내면의 바다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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