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길
김지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개관
- 화자 :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몸 팔러 가야 하는 서러움을 애절한 어조로 노래하는 사람
- 주제 :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의 비애
- 성격 : 의지적, 애상적, 현실 참여적, 비판적, 고발적
- 표현 : 반복과 점층적 확대를 통해 화자의 처지와 의지를 강조함.
수미상관의 구조(1연과 3연)
회한과 비애가 섞인 어조
운율과 정서 면에서 민요적인 분위기가 드러남.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상 독백에 해당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간다. / 울지 마라 간다. → 남겨진 이에게 하는 말로, 반복을 통해 시상을 응축시킴.
*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 힘겹고 고달픈 현실 및 여정을 상징함.
* 팍팍한 서울길 → 고달픈 삶이 기다리는, 생존을 위해 향할 수밖에 없는 곳
* 서울 →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공간
* 몸 팔러 간다. → 결연한 의지, 서글프고 우울한 분위기, 비장한 느낌 / 서울에서 육체 노동자(일용직 노동자나 술집 여급)로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 화자의 처지
*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 꽃피어 돌아오리란 →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만으도 기쁘다는 의미임.
*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 고향으로 돌아로 기약이 없는 막막한 심정
* 모질고 모진 세상 →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의 각박함
* 분꽃, 밀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사물
*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 화자의 회한의 정서가 깊이 담김. 시각과 후각적 이미지 / 고향을 떠나지만 고향을 결코 쉽게 잊지 못할 것임.
* 사뭇사뭇 ~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 꿈과 상상으로만 고향에 돌아오는 안타까운 현실, 또는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 하늘도 시름 겨운 목마른 고개 → 서울로 몸 팔러 가야 하는 현실에 하늘도 시름 겨워 함. 감정이입된 표현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우는 이를 남겨두고 노동력을 팔러 떠나는 서울길
- 2연 : 그리운 고향을 두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떠나야만 하는 비극적 상황
- 3연 : 목마른 고개를 넘어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60년대 말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떠나야만 했던 이농민들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몸 팔러 간다', '팍팍한 서울길', '하늘도 시름 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서울로 가는 그 길은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며 가기 힘든 길이다. 화자는 서울이 '모질고 모진 세상'임을 알고 있고, 그곳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기만 할 것이며 자신은 몸을 파는 일을 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면서 그곳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 나타난 것은 경제 부흥의 기치 아래 추구해 온 산업화로 인해 상실되어 가는 농촌의 삶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우리가 걸어 온 산업화의 길이 우리의 전통적 삶의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우리 농촌은 왜곡된 경제화 정책과 농촌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쇠퇴 일로를 걷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한 농민들의 대규모 이농(離農) 현상과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몰려간 농민들은 단순히 노동력만을 파는 것을 지나 여인들은 몸을 팔게 되었음은 물론, 결국에는 농촌의 삶 또는 그들의 정신마저 도시에 팔게 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이농 현상은 단순히 농촌만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동시에 한국인 모두가 고향을 잃어 버리게 됨으로서 심각한 고향 상실 의식을 갖게 되었다.
삶의 원형적이고 화해로운 질서로서의 고향 공간은 사라져 버린 대신, 시멘트로 대표되는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인 도시 문화만이 이 땅에 남게 되었다. 이 시는 바로 이러한 이농 현상과 그로 인한 농촌 문화의 붕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서글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표현은 '간다 / 울지 마라 간다'는 구절의 세 번에 걸친 반복에 초점이 놓여 있다. 이 구절이 작품의 서두, 중간, 결말 부분에 놓여 시상을 개폐시킴은 물론 시상을 응축시키는 기능도 갖고 있다. 몸을 팔기 위해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표현은 그 결연한 의지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서글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비장한 느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묘미는 이러한 단호함과 비장함이 한데 맞물려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에서 시적 긴장이 생겨나는 것이며, 그 긴장의 구도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며 주제를 강조시키고 있다.
한편, 화자는 서울에서 일용 노동자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몸 팔러 가'는 상황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비감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수출 주도형의 경제 구조 지탱을 위한 저임금과, 농민들에 대한 정부의 저곡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할 수 없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맹세할 수도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고향을 떠나 '모질고 모진' 서울로 향해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결코 고향의 '분꽃'과 '밀냄새'는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고백 속에는 화자의 회한과 분노가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의 시는 원초적 삶을 영위하는 데 저해되는 현실을 강렬한 언어로 비판한다.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체념에 떨어지지 않고 깨어 있으려는 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올바른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그의 시는 비극적인 삶의 체험을 처절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표출한다.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시 「오적」을 『사상계』에 발표하게 되는데, 구비문학의 풍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부패와 거짓을 신랄하게 질타한 이「오적」과 더불어 「비어」는 장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으나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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