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나희덕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개관
- 제재 : 중의적 의미를 지닌 '땅끝' → 땅끝은 우리나라 최남단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단순히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말만이 아니라 화자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한 발짝만 나아가면 바다라는 점에서 '땅끝'은 화자가 처한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땅끝의 의미는 2연의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 3연의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이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 주제 :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역설적 극복
- 성격 : 사색적, 성찰적, 관조적, 회상적
- 표현 : 삶의 본질을 관조하는 독백적 어조
역설적 인식을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함.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여 시상을 전개함.
실제 지명을 모티프로 해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사색함.
'땅끝'의 중의성을 활용하여 인생의 의미를 노래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산 → 현실적 장애물이나 고난
* 고운 노을 → 어린 시절의 삶의 희망, 꿈, 이상
* 그네 → 현실 극복의 수단, 꿈을 향한 노력과 시도
*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 꿈을 향한 노력과 열정
* 어둠 → 삶의 부정적 측면. 꿈과 이상의 좌절
* 그넷줄이 /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 감정이입의 대상 / 꿈이 좌절된 후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의 절망감이 투영됨.
*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 여기서의 '땅끝'은 환상 속의 아름다운 곳(이상적이고 희망적인 공간)을 의미함.(과거)
*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 어린시절의 환상, 성인이 된 후의 깨달음
*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 여기서의 '땅끝'은 삶의 절망과 좌절의 순간을 의미함(현재). / 인생의 시련을 공간적으로 인식함.
* 파도 → 삶에서 계속되는 시련, 고통, 절망감
* 뒷걸음질 → 삶에 대한 애착, 절망적 삶이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
*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 삶의 위기 상황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절망의 끝을 의미
* 땅의 끝 → '땅끝'이라는 표현보다 화자의 절망적인 상황이 한층 강조됨.
*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 새로운 인식에로의 전환(시상 전환)
*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 → 역설적 인식. 극한 절망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가치와 희망 / 절망과 두려움의 끝에서 삶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됨.
* 늘 젖어 있다는 것 → 역설법, 희망을 품고 있다는 의미, 절망 속의 아름다움
* 그걸 보려고 /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깨달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먼 곳에 대한 동경 속에 살았던 시절 회상
- 2연 : 험한 삶에서 느끼는 절망감
- 3연 :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느끼는 절망감
- 4연 : 절망의 끝에서 깨닫는 역설적 희망
이해와 감상
'땅끝'이라는 이름의 마을을 소재로 하여 좌절과 고통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이다. 육지의 끝에 놓인 '땅끝'은 시작과 끝의 경계라는 점에서 일종의 극한 상황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화자는 이러한 공간에서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찾고 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지만 이러저러한 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오히려 그러한 속에서 다시금 희망을 찾아 나가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타던 시적 화자는 아름다운 노을을 삼켜 버리는 어둠을 만나게 되고, 그넷줄은 불안하게 떨듯 위태롭기만 하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간 '땅끝'에서도 파도가 땅을 먹고 올라오는 상황을 보며 위태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시적 화자는 위태로움 속에 오히려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역설적 인식에 도달하고 절망에서부터 벗어날 힘을 얻게 된다.
1연에서는 아름다움을 좇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노을의 아름다움, 그러나 그것은 노을이 곧 어둠에 잡아먹히던 절망의 기억이다. 2연과 3연에 와서는 어른이 되어 살면서 땅끝에 선 것과 같은 절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음을 노래한다. 4연에 이르러서, 어른이 된 지금 그 절망의 끝에 서 보니 절망 속에 오히려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절망과 슬픔 속에 스며 있는 아름다움의 경이로움을 노래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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