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대 한중 외교 사행로에 위치한 중국으로 진입하는 관문.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화이사상(華夷思想)을 갖고 있었다. 즉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화이(華夷)의 기준을 만리장성으로 삼았다. 발해의 노룡두에서 시작되는 만리장성은 산해관 각산장성(角山長城)과 연산산맥을 넘어 서쪽 사막의 감숙성 가욕관(嘉峪關)까지 약 6,400㎞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인공 건축물이다. 문명(文明)과 비문명(非文明)으로 대체되는 화이를 가르는 기준이 만리장성이었던 만큼 산해관의 안쪽을 관내(關內), 밖을 관외(關外)라 불렀다. 이 관문을 들어서야 중화(中華)의 세계, 즉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중국을 왕래했던 조선의 외교사절 역시 요동의 사행노정(使行路程)을 경유하여 중국의 수도인 연경(燕京, 지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