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Celts)은 인도유럽어족의 한 일파인 켈트어파를 쓰는 인도유럽인을 가리킨다. 갈리아의 라틴어 켈타이/(Celtae)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또한 켈트 미술과 같은 문화적 특성이 고고학적 증거로서 발견되는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붉거나 금발에 땋은 머리를 하며. 유럽 최초로 바지를 입음으로써 활동하기 좋도록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날개달린 투구를 썼다. 또한 로마에서 포도주를 먹을 때 이들은 벌써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이상의 이미지는 켈트족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르네 고시니의 만화 《아스테릭스》는 로마군에 맞서 싸우는 켈트족들의 이야기다. 켈트인은 금세공으로 유명하다. |
할로윈(Halloween) 유래 기원전 500년대의 고대 아일랜드 켈트족 풍속으로 알려진 '삼하인'(samhain) 신앙문화는 11월1일을 새해로 맞이하는 신년일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 켈트족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1년간 살아있는 사람의 몸속에 머물렀다가 내세로 떠나간다고 믿었다. 이후 로마가 켈트족을 정복한 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교황 보니파체4세가 11월 1일을 모든 성자들의 날(All Hallow Day)로 정하면서 켈트족의 풍속이 전야제(Hallows' eve 또는 Halloween)를 통해 할로윈(Halloween)으로 유래하게 되었다. |
켈트족은 영미권에서 Celts(/kɛlts/, 가끔 /sɛlts/라고도 함)라고 합니다.
켈트족은 유럽 역사에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민족들 중 하나이며, 로마와 아주 오랫동안 대립각을 세워왔던 전사민족이기도 했습니다.
켈트족은 인종학적으로 붉은 눈머리카락, 푸른 눈, 사각턱, 커다란 체격, 흰 살결로 묘사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아는 게르만족보다 좀 더 붉은 기운이 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물론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켈트족은 수많은 부족들로 구성되어있었으며, 단 한 번도 통합된 적은 없었고, 긴급한 상황일 때만 느슨한 연합을 구성했습니다.
흔히 켈트족의 세력범위를 갈리아~이베리아로 알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 지역은 후기 켈트족 영역이고, 아직 로마가 에트루리아의 똘마니 노릇하고 있었을 때부터 전 유럽을 휩쓸고 다니고 식민지도 건설했습니다. 정확히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지만, 켈트족은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주무대를 옮겼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가 아는 켈트족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노네스족Senones의 브렌노스(Brennos,혹은 브렌누스Brennus, 브렌Brenn; 참고로 현재 영어-켈트식 이름 Brian의 원형 혹은 같은 유래로 추정 가능)가 로마를 침략해 항복을 받아낼 때, "패자에게 재앙을(라틴어; Vae Victis)!"이라는 명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켈트족에 대한 첫번째 기록은, 켈트족의 그리스 침공이었습니다. 그리스 침공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래도 그리스인들에게 최초로 켈트족이라는 존재를 각인시켜줬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주로 로마인들과의 충돌이 다수인데, 아무래도 로마가 아직 반도를 통일하지 못했을 때부터, 즉 아직 에트루리아 식민지였을 때부터 알프스 남부는 켈트족의 영향이었고, 심지어 에트루리아도 종종 켈트족의 침략을 받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켈트족은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지지하기도 했고, 또마 로마가 반격을 할 때까지 수시로 이탈리아 북부의 동맹도시들과 식민도시들을 침략하기도 했답니다. 또한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그리스의 헬레니즘 왕국들을 뚫어버리고 아나톨리아(현 터키 일대) 지방으로 이주까지 해서 갈라티아(Galatia; 켈트족의 땅)라는 명칭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훗날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정복하고 아나톨리아의 켈트족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놈들이 있을 줄이야!"
로마는 이러한 켈트족들을 잠재우고 영토 확장을 위해 수시로 갈리아와 이베리아로 원정을 떠났으며, 상당한 성과를 올리게 됐습니다. 다수의 켈트족들로부터 충성을 받아내고, 공격적인 켈트족들을 잠재우면서 이베리아와 갈리아를 식민통치하게 됐습니다.
웨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의 반란이 있기 전까지는, 산발적인 저항만 있었는데, 웨르킨게토릭스의 대규모 반란을 율리우스 가이우스 카이사르Iulius Gaius Caesar의 진압 이후로는 이렇다할 저항없이 그저 로마의 식민지로 삼다가 사라져갔습니다. 이는 정치적인 규합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규합도 같이 이뤄졌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대륙의 켈트족이 사라진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로마와의 통합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오직 브리타니아 섬과 에린(아일랜드) 섬으로 이주한 켈트족만이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고, 나머지는 사실상 로마와 통합되어 사라지거나 오늘날 프랑스 인종의 근간이 됐습니다.
켈트족은 상당히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민족주의 시절 다시 부각됐는데, 고대 켈트족의 영토였던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각광받았고, 영국에서는 제국주의 시절에 발굴된 켈트족들의 유물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잊혀졌던 켈트족을 불러냈습니다.
오늘날, 고대 켈트족의 후예 알려진 민족은, 북프랑스의 브르타뉴, 영국의 웨일즈와 콘월, 맨 섬,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민족이 있습니다.
켈트족에 속하는 인종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켈트어파 언어를 사용하고, 켈트족 신앙을 믿는 인종들을 일컫습니다.
여러 명칭들과 명칭의 유래
우선, 켈트족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Keltoi에서 파생됐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지만, 원시 인도유럽어인 *cel(t)-'자르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Keltoi를 처음 기록한 밀레투스의 헤카타이우스에 의하면 맛실리아(Massilia; 현재 마르세이유Marseille)에 사는 인종이라고 하며, 아무래도 그곳에 사는 켈트족의 한 일파에서 이름을 따낸 것 같습니다.
다르게 켈트족을 가리키는 라틴어 Gallus는, 켈트족의 한 일파를 가리키는 말이자 원시 켈트어 *galno에서 파생된 말로, 그 의미는 '힘', '용기'로 추정됩니다. 로마에서 이 gal(l)-로 시직되는 지명은 모두 켈트족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cf. Gallia, Galatia)
한편, 게르만족은 켈트족을 *Wal(a)haz 등으로 불렀는데, 이 말의 뜻은 '외국인'이며, 그 중 앵글로-색슨족은 '외국인의, 외래의'를 뜻하는 *walhiska-에서 파생한 Wælisċ(오늘날 웨일즈의 어원)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게르만족은 로마인들에게도 *Wal(a)haz라고도 불렀지만, 정황으로 봐서는 원래 로마인보다는 켈트족을 일컫는 말로 보입니다.
근원과 주무대
켈트족(할슈타트Hallstatt-라 텐La Tène 문화권)의 전파 과정
1. 개나리색; 할슈타트 문화(B.C. 800 무렵)
2. 황갈색; 할슈타트 문화권(B.C. 500 무렵)
3. 초록색; 라텐 문화권(B.C. 450 무렵)
4. 진한 초록색; 라텐 문화권(B.C. 250 무렵)
로마 시대의 주된 켈트족 활동 범위가 갈리아라서 갈리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학자들이 추정하는 켈트족의 본거지는 중유럽쪽입니다.
중유럽의 할슈타트 지역을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켈트족은 서진을 하기 시작했으며, 약 기원전 500년 경에는 갈리아와 이베리아로 세력권을 넓히고, 브리타니아 남부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유럽과 중유럽의 켈트족은 게르만족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켈트족의 주무대가 갈리아와 이베리아로 옮겨진 이후, 즉 로마의 게르마니아 전쟁 당시 게르만족 족장 중 켈트식 명칭 혹은 이름을 지닌 족장들이 대거 기록됐고, 카이사르도 로마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은 켈트족, 즉 웨르킨게토릭스의 부하들과 부족들이 대거 게르만족 영역으로 도망쳤다고 저술했습니다.
켈트족의 구분
켈트족은 오늘날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P-켈트족과 Q-켈트족으로 나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륙 켈트족과 섬 켈트족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첫번째 분류는 원시 켈트어 kʷ의 변형에 따라 나눈 것인데, P-켈트족은 kʷ가 p로 변했고, Q-켈트족은 k로 변화됐습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P-켈트족으로 나뉘는 켈트족은, 갈리아의 켈트족들과 브리타니아 켈트족들이 속해있습니다.
Q-켈트족으로 나뉘는 켈트족은, 이베리아 켈트족들과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켈트족들입니다.
두번째 분류는 단순하게 대륙과 섬으로 구별짓는 것입니다.
대륙에 속한 켈트족은 다시 갈리아와 이베리아로 나뉘고, 섬 켈트족은 브리타니아 계열과 아일랜드 계열로 나뉩니다. 참고로 스코틀랜드 켈트족은 아일랜드 계열인데, 아일랜드 계열 켈트족이 브리타니아 북쪽을 침공하면서 퍼지게 된 일파입니다.
언어와 문화
언어
우선, 가볍게 언어부터 짚고 가자면, 켈트족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켈트어군에 속합니다.
원시 켈트어에는 8가지 격이 있었다고 보며, 갈리아어는 7개의 격이 있었습니다.
남쪽의 라틴어와 굉장히 유사한 편인데, 일부 언어학자들은 그 점을 들어 로마가 점령한 갈리아 및 이베리아의 켈트족이 손쉽게 언어적으로 동화하여 오늘날 라틴 국가에서 사용하는 서민 라틴어Vulgar Latin의 근원이 됐다고 봅니다. 그 대표적인 언어가 프랑스어입니다. 프랑스어는 서민 라틴어 계열 중에서, 가장 많이 켈트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cf. Proto Celtic *Ekʷos/ekʷos/, Gaulish Epo(s)/epo(s)/ ↔ Latin Equus/ekʷus/ "horse"
cf. Gaulish Vernos/wernos/ → French Verne/vɛʁ/, Vergne/vɛʁɲ/ "(white) alder"
또한 게르만어하고도 다소 비슷한 편이며, 특히 게르만족의 많은 어휘에 영향을 줬습니다.
cf. Proto Cetlic *mori/mori/ ↔ Proto Gerrmanic *mari/mari/ "water, sea, lake, ocean"
cf. Proto Celtic *rīxs/riːxs/ → Proto Germanic *rīks/riks/ "ruler, chieftain"
문화
켈트족은 전형적인 유럽의 전사문화였으며, 다양한 하위 부족들이 있는만큼, 부족들 간의 개성이 컸습니다. 유목을 하는 부족들도 있었고 농경을 하여 정착하는 부족들도 있었습니다.
켈트족은 비록 그리스와 로마의 저술가로부터 야만인으로 치부됐긴 했지만,오늘날 유물들로 봐서는 상당히 발전된 문화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보석과 금속세공을 잘했고, 추운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켈트족들은 따스한 옷을 잘 만들었습니다.
특히 켈트족은 기하학적인 문양을 아름답게 세공할 줄 알았고, 이는 훗날 영국에서 켈트족 열풍을 불려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대표적인 공통된 켈트족의 문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켈트족은 바지를 입었습니다. 유럽에서, 혹은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바지를 입고 다니던 민족이 켈트족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가장 먼저 여성이 바지 입은 민족은 고구려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맥주가 처음 소개된 것은, 로마가 갈리아인들과 접촉할 때라고 합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이 포도주를 마시고 있을 때, 갈리아인들은 이미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조법으로 따지지면, 맥주가 포도주보다 더 고차원적인 음료라고 합니다.
켈트족의 문신 문화는 굉장히 유명한데, 그리스 역사학자들은 켈트족을 다른 유럽 바르바로스들과 비교할 때, 문신을 크게 주목했습니다. 물론 다른 민족들도 문신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다수의 켈트족이 문신을 했다고 봅니다.
머리를 딿은 것 역시 켈트족의 주된 특징입니다. 옆머리를 딿아서 내리는 것 말입니다. 켈트족이 왜 머리를 딿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이 켈트족의 풍습을 배운 게르만족들이 따라서 머리를 딿은 것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켈트족은 뿔투구, 혹은 날개투구를 착용했습니다. 뿔투구라고 완전히 뿔처럼 뾰족한 것을 단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형상이 마치 뿔이 달린 것처럼 생겼다는 것입니다. 날개투구 역시, 투구에 날개를 단 것이 아니라, 뿔투구와 같은 형상입니다. 이러한 뿔투구들은 내구력이 약했으므로 아무래도 지휘관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많이 발굴되지는 않았습니다. 학계에서 말하는 뿔투구나 날개투구는 이름만 다르지, 사실상 같은 투구입니다.
또한 켈트족은 적들, 특히 지휘관들의 목을 베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이는 켈트족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인데, 켈트족은 생명의 근원은 심장보다도 머리(뇌)에 있으며, 적의 머리를 자르면 상대방의 힘을 얻음과 동시에 그 머리가 자신의 사역마가 되어 도움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잘린 머리는 허리춤이나 말의 안장, 벽 및 기둥에 걸어놨습니다. 대륙 켈트족들이 머리사냥을 했다는 것은 그리스-로마 학자들이 기록했고, 섬 켈트족은 확실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알려진 대표적인 켈트족 전승인 아서왕 전설의 녹색 기사 이야기도 이러한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기독교화가 된 이래로도 유지했다고 하며, 적들의 머리를 자르는 풍습은 중세 시대, 앵글로색슨족들에게 굴복할 때까지 지속됐다고 합니다.
켈트족의 문화는 특히 게르만족에게 많은 영향을 줬는데, 카이사르나 여러 학자들이 언급했던 것처럼, '게르만족은 켈트족을 스승처럼 모셨다'고 할 정도로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여성
한편, 켈트족에게 있어 여자의 역할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했습니다. 여성들은 아름다웠으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켈트족은 여자들이 결혼할, 또는 연애할 남자들을 선택한다고 저술했습니다.
또한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전쟁에 나가기도 했고, 왕권-지배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수가 아닌 소수긴 했지만 말입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켈트족 여자가 사절로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럴만큼 켈트족은 상당히 남녀가 평등한 편이었습니다.
수많은 기록에서 켈트족의 여성은 곧 전사라고 했습니다.
전쟁
켈트족은 전형적인 전사 민족으로, 전쟁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게르만족처럼, 켈트족은 경제적 이득을 전쟁의 최고 중점으로 뒀던 걸로 보입니다.
켈트족의 전투 방식에 대해, 스트라본Strabon, 리비우스Libius, 파우사니아스Pausanias, 플로루스Florus 등은 마치 짐승 같이 싸운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정규적인 군사 체계를 지니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족장 혹은 귀족들을 중심으로, 주로 부족 단위로 싸웠습니다. 또한 웃통을 벗고, 혹은 홀딱 벗고 싸웠다는데, 그렇다고 갑옷을 만드는 기술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켈트족은 예전부터 미늘갑옷을 선보였습니다.
켈트족은 다른 고대 유럽인종들처럼 근접전에 능했지만 활을 잘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켈트족은 투창이 잘 발달됐습니다. 켈트족의 검인 Gladio(s)는 로마의 Gladius의 좋은 모티브가 됐고, 여러 무기들이 게르만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켈트족은 상당히 청동과 철을 잘 다뤘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굉장히 수준이 높았다고 합니다.
또한 켈트족은 전차(카로스Karros; 전차 혹은 4륜전차)를 잘 이용했는데, 로마와 갈리아 부족 간의 싸움에서, 로마는 갈리아 부족들의 전차를 보고 많이 배웠다고 합니다. 켈트족의 갈리아는 보통 중형~대형에 속하며, 기동성과 내구력 모두 우수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켈트의 Karros는 라틴어 Carro의 어원이 됩니다.
켈트족의 기병에 대해서는 딱히 전해진 바가 없다만, 우선 켈트족의 원래 무대였던 중부 유럽과 갈리아 평원 지역을 봐서 기병을 양성하기가 수월하며, 근처의 게르만족의 예를 봤을 때, 상당히 훌륭한 기병 전력을 지닌 것으로 추측됩니다. 반면 로마는 기병을 키우기 힘든 조건(이탈리아 반도에서는 기병을 키우기에는 평원이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이므로, 상대적으로 켈트족에게 밀렸을 것으로 조심스레 추정합니다.
한편, 켈트족들이 로마의 영향권에 놓게 되자, 켈트족의 전술은 굉장히 로마처럼 변해갔고, 나중에는 거의 로마와 동일해졌습니다. 나중에는 원래 전통적인 켈트-게르만적인 야만스러운 싸움 방식을 거의 포기했는데, 이는 문화-인종적으로 로마화가 거의 완성됐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신앙
켈트족은 인도-유럽 신앙에서 파생된 켈트족 신앙을 믿었습니다.
빛의 신 Lugos(또는 Lugus, 아일랜드의 Lugh)를 중심으로 섬겼으며, 부족마다 주신은 달랐습니다.
켈트족은 따로 신전을 짓는다기 보다는 근처에 있는 장소, 즉 언덕이나 숲, 호수를 신전으로 삼아 드리우드들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했고, 신들과 대자연에게 곡식이나 동물들을 바치며, 부족이 잘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성스러운 나무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했다고 저술했습니다.
켈트족들의 신들은 대자연의 힘을 상징화하였으며, 신들은 항상 삼위일체, 또는 세 명이서 같이 행동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후기 철기 시대까지 신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한편, 유럽의 요정 이야기, 즉 곤충 날개가 달린 작은 요정 이야기들은 켈트족의 신화 혹은 이야기가 변형되어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요정들 이야기는 다른 유럽 신화나 전설에서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켈트족이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를 다뤘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으나, 아일랜드 신화를 보면 손쉽게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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