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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Humanities/인물, 사람 People 158

독립운동가 조완구 선생

조완구(趙琬九) 선생은 상해에서 대한민국 국회인 임시의정원을 만들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다. 선생은 임시정부가 혼란을 맞자 한국독립당을 결성해 임시정부의 조직을 재정비했다. 해방 후 조국에 돌아와 분단을 막기 위해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 조완구 선생은 1881년 3월 20일(음력) 서울 계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899년 내부 참봉을 지냈다. 1902년 내부 주사(主事)에 임명됐다. 그러나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요하며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하자 25세의 나이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 선생은 일제가 국가 주권을 침탈하자 곧바로 관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대종교를 찾았다. 대종교는 을사5적 암살을 도모하던 나철(羅喆)이 세웠다. 당시 대종교는 단군을 섬기는 민족..

독립운동가 백일규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김주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백일규(1880년 3월 11일~1962년 5월 31일)선생을 2010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2월 한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의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입단증서 등 관련자료 16점이 전시된다. 선생은 1880년 3월 평안남도 증산군 성도면 오화리에서 부친 백린(白麟)과 모친 송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스무 살 때까지 고향에서 한학을 배웠고 동학접주로도 활동했다. 평안도와 함경도 등 각지를 여행하던 선생은 미주이민을 결심하고 1905년 6월 진남포를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했다. 하와이 에와 사탕수수 농장으로 배치된 선생은 고된 노동 중에서도 한인친목단체인 ‘에와..

독립운동가 심남일 의병장

금정 국사봉 의병본부는 ‘호남의소’ 사령부였다. 그리고 ‘호남의소’의 핵심은 ‘영암 의병’이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남평·능주·보성·강진·장흥·해남·나주·무안 등 전남 중·남부지역을 호남 의병들이 장악하였다. 사진은 일본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에 체포되어 대구 감옥에 갇혀 있던 호남 의병장들의 모습이다. 앞줄 왼쪽부터 송병운, 오성술, 이강산, 모천년, 강무경, 이영준, 뒷줄 왼쪽부터 황장일, 김원국, 양진여, 심남일, 조규문, 안규홍, 김병철, 강사문, 박사화, 나성화. 심남일은 1871년 2월 10일(음력) 전남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새터(咸平郡 月也面 新基)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학문을 닦아 사서삼경에 능통하였고, 향리에서 면장(面長)·향교장의(鄕校掌議)·도의사(道議事) 등을 역임하고 또 서당의 훈..

독립운동가 동언 이중언 선생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ㆍ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중관(仲寬)이며, 호는 동은(東隱)이다. ㆍ185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10년 향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ㆍ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다. "나라 위해 목숨 던지니, 동포들이여 꺾이지 말라“ 이중언(1850∼1910) 선생은 1850년 안동 예안의 하계마을에서 퇴계 12대 손으로 태어났다. 1879년 5월 대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정5품)에 제수되었다가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권 침탈을 목도하고 낙향했다. 일제가 1895년 10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공포하가 이에 항거하여 안동 예안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은거 중이던 선생은 선성의진의 이중린 대장 휘하 전방장으로 의병..

독립운동가 김익상 의사

상하이 3대 의거의 독립운동가들육삼정 의거(1933년 3월 17일)를 기획한 백정기 의사, 훙커우 의거(1932년 4월 29일)를 거행한 윤봉길 의사, 황포탄 의거(1922년 3월 28일)의 김익상 의사.​​​상하이의 항구, 황포탄(黃浦灘). 사연이 많은 곳은 으레 향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황포탄은 그런 곳이다.​피천득은 30년대 황포탄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했다. ‘유태인, 백계(白系) 노서아 사람, 서반아 사람, 인도인들’, 그리고 ‘실직자, 망명객 같은 대개가 불우한 사람들’이 고국을 그리면서 ‘기억을 밟고’ 서성이는 곳. 한결같이 ‘영창에 비친 소나무 그림자를 회상’하면서 향수병을 달래고 있는 곳. ‘친구와 작별하던 가을 짙은 카페, 달밤을 달리던 마차, 목숨을 걸고 몰래 넘던 국경’의 모습이 ..

노르웨이 천재 작가 '뭉크'

(1893) ​ 에드바르트 뭉크 (1896) 노르웨이 출신의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는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상실감이었는데, 그 상실감은 유년 시절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여러 번 겪은 데서 비롯되었다. 뭉크 나이 5세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13세에는 두 살 위 누이가 같은 폐병으로 죽었다. 여동생 중 하나는 우울증으로 인한 착란 증세로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그 후 아버지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동생마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뭉크는 생애 내내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의 싸움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질병, 광기, 죽음이 자신을 둘러..

193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지 피란델로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이다(Life is a very sad piece of buffoonery.)" 이 말은 루이지 피란델로의 예술론이지만 그의 인생론이기도 했다. 193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처 안토니에타( Antonietta Portulano)라는 존재가 있었다. 피란델로의 고민의 배후에는 아내가 있었다 피란델로의 작품 가운데에는 인간존재의 이중성, 광기 등 정신의 위기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그는 자기의 이중성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던 작가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가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평생 동안 고민했다. ​ 이러한 고민은 처 안토니에타(An..

사이키델릭,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사이키델릭 록(영어: psychedelic rock) 애시드 록, 드러그 록 또는 사이키델릭 현란한 조명효과에 마약을 한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환각적인 분위기 특징 ​ 미국의 1960년대를 사이키델릭의 시대라고 한다. 사이키델릭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LSD, 메스칼린, 실로시빈이라는 환각을 가져오는 약물과 그 약물로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약물이라 하면 질겁을 할 사람도 많겠지만, 사실 6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약물들은 합법적이었다. ​ 약국에서 누구나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러한 약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학 주변에는 연구자들이 주최하는 연구용 LSD 체험 모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를 보러 가는 것보다는 LS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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