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 겸 과학저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으로, 20세기 후반 대중들 사이에서 천문학 붐을 일으킨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을 쓴 것만 30권이 넘으며, 《코스모스》가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에덴의 용 등에서는 인류학이나 생물학도 다뤘다.
1934년 11월 9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유대인이었다.
4살때 부모님이 데려간 뉴욕 엑스포의 '미래의 미국' 코너에 깊은 인상을 받고 과학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13살에 교내에서 과학동아리를 만들어 화학에 대한 설명을 하여 학생들을 이해시킬 정도로 똑똑하고 설명을 잘 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16세에 대학을 입학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조기 입학에 대한 규정이나 법률이 미비한 상태였고 조기 대입이 가능한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보낸다. 어린시절에는 우주보단 생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석학사 시절에는 자유전공, 물리학에 대해 전공하였고 졸업논문도 생명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마찬가지로 15세에 대학에 입학한 또 다른 천재 과학자 린 마굴리스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둘은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프레드 휘플박사의 눈에 띄어 하버드에 교수로 가게 되나 이름이 알려지고 방송활동 등으로 바깥활동이 잦아진 칼 세이건을 못마땅하게 여긴 건지 하버드에서 종신교수 채용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코넬 대학교에서 바로 칼 세이건을 스카웃하여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코넬 대학교 천문학 및 우주과학과의 데이비드 덩컨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NASA에서 마리너, 파이오니어,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선 등등 온갖 우주 탐사선 계획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2번째 3번째 부인을 만나게 되고 3번째 부인과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책이 코스모스 이다. 세이건의 업적은 과학에 대한 연구 그 자체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면모가 강하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연구 업적이 부족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우주생물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지목되는 사람이 칼 세이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불멸의 업적을 인류사에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업적들만 봐도 학자로서 그의 실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2년간 투병해온 골수이형성 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 (myelodysplasia))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1996년 12월 20일에 별세했다. 이후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착륙 지점은 고인을 기려 '칼 세이건 기념 기지'로 명명되었다. 그의 유해의 일부는 달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코넬 대학교가 위치한 뉴욕 이타카(Ithaca)에 묻혀있다.
미국에서 천문학자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으로, 우연찮게 코스모스가 방영하던 1980년 당시, 다른 드라마 작가들이 죄다 파업을 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볼 만한 시리즈가 되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창백한 푸른 점》, 《코스모스》 죽기 직전에 출판한 《에필로그》 등이 유명하다. 세이건은 천문뿐 아니라 진화, 비과학 등에 대한 책도 많이 썼다. 인간의 뇌를 다룬 《에덴의 용》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 특히 그는 미신, 유사과학, 비과학적인 요소를 매우 싫어하는 회의론자로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등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세이건의 저서 중 유일한 소설인 《콘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간혹 칼 세이건이 SF 소설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옛날에는 나무위키의 SF 문서에도 3대 그랜드마스터로서 로버트 하인라인 대신 잘못 들어가 있었을 정도. 세이건 본인은 《콘택트》의 영화화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촬영 기간 중에 사망하였다. 영화는 이듬해인 1997년 개봉하여 흥행에도 성공.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 탐사에 매우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생물학적, 사회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접근하였다. 그의 발의로 보이저 탐사선에는 인류 문명의 수백 가지 언어로 기록된 인사말과 지구의 위치, 인간의 모습 등이 녹음된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 프로그램을 주도하기도 했다. 소설 콘택트도 SETI 프로그램에서 스토리가 출발한다.
냉전 시대에는 핵전쟁이 발발하면 지구에 핵겨울이 발생하여 지구상의 생명체가 핵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결국 절멸하고 말 것임을 경고하며 핵무기 감축 운동에도 이바지했다.
칼 세이건은 대중화뿐 아니라 주류 학계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 학자다. 대표적인 업적이 행성과학과 우주생물학의 이론적인 바탕을 마련한 것과, 이를 바탕으로 NASA의 화성 탐사 계획인 바이킹 계획의 총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그가 주도한 바이킹 계획에 의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성의 실태의 상당 부분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그가 학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며 학자들 중에서도 주류 중 주류였다. 괜히 미국 천문학계의 아이콘이 아닌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미남이고 여자 여럿 울렸는데, 결혼을 세 번 했다.
첫 번째 아내는 생물학자 린 마걸리스로, 아들 도리언과 제러미를 낳고 이혼했다. 린 마걸리스 역시 세이건 못지않은 본좌급 학자로서, 미토콘드리아의 내공생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최근 진화생물학을 논하는 데에는 빼놓을 수 없는 학자. 아들 도리언 세이건도 생물학자라 그와 함께 쓴 저서들도 있고, 국내에도 몇 권이 번역되어 있다.
두 번째 아내는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지구의 위치와 인간의 모습을 그린 린다 잘츠만으로, 중년이 되고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혼. 잘츠만과의 사이에 아들 닉 세이건을 두고 있다. 닉 세이건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골든 레코드에 들어간 영어 인사말을 녹음하기도 했다.
세 번째 결혼 상대가 많이 알려져 있는 앤 드루이언 여사.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 제작에 관한 책임자로서 일을 하던 가운데 그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과정은 약간 불륜논란이 있다. 여튼 그녀는 세이건이 가장 사랑한 사람으로, 《코스모스》는 드루이언 여사에게 헌정되었다. 드루이언은 세이건의 배우자일 뿐만 아니라 사상적 동지이기도 해서, 세이건과 함께 반전 운동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종교관
칼 세이건의 어머니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불가지론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유대교 교육을 받았고 보수적인 토라 회당에도 다녔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교 교육을 지루해했으며 모든 신앙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신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신이 우주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면 과학적으로 증거를 대고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으니, 나는 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는 신을 믿을 수 없다'였다. 즉, 세이건은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데에서 알 수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세이건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다.
(빅뱅이론이 맞다면) 그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주에 아무런 물질도 없었다가 갑자가 생겨났다면, 어떻게 그랬을까? 이에 대해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인 대답은 신 혹은 신들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면, 다음 질문을 물어야만 한다. '그럼 그 (우주를 창조한) 신은 어디서 왔는가?' 만약 이것이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 그냥 우주의 기원이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혹은 신이 항상 존재해왔다고 한다면, 간단하게 그냥 우주가 항상 존재해왔다고 결론 짓는게 낫지 않겠는가? 창조할 필요없이 그냥 여기 항상 있었다고 말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한때 이 질문들은 오직 종교와 신화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 우주론은 우리가 이 태고의 수수께끼들과 마주하게 해준다.
- <코스모스> Ep. 10 (1990년도판)
오늘날 떠도는 루머 중에는 세이건이 종교에 귀의했다거나 혹은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세이건은 어디까지나 불가지론자였고 스스로도 그리 여겼다. 그는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고 철학적, 문화적인 관점에서 존중해주었으며, 자신의 저서에서도 종교적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물론 종교의 핵심 교리와 중심적인 믿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불신하긴 했다.
길게 늘어진 수염을 가지고 천상에 앉아서 모든 참새들의 추락을 세고 있는 커다란 백인의 모습을 한 신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신이라는게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의미한다면, 확실히 신은 존재한다. 물론 이런 신이 심정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게 기도한다는게 말이 되겠는가?
- "Scientists & Their Gods" in U.S. News & World Report Vol. 111(1991)
결론을 내리자면 그는 기본적으로 회의주의자였고 기성종교에 대해서는 분명한 불신자였지만, 그렇다고 종교에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즉, 확신에 찬 무신론자도 아니었으며 모든 가능성에 열린 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불가지론자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세이건은 암에 걸린 이후 가족들이 신을 믿으라고 하자 거부했으며 임종이 다가왔을 때조차 거절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이 직접 집필한 소설 콘택트를 보면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는 발언이 어떤 의미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콘택트는 우주를 창조한 신이 실존하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중의 창조주는 원주율 값 안에 자신이 창조한 우주에서 탄생할 지적 생명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와 같은 메시지를 숨겨놓았다. 인간이 원주율을 소수점 아래 1020 자리 넘게 계산하자 0과 1로만 이루어진 부분이 나타났고, 이를 화면에 배열하자 0으로 된 배경에 1로 된 작은 원이 나타났다. 원주율과 같은 수학상수는 우주를 창조할 때부터 정해두지 않는 이상 아무리 발달한 외계 문명이라도 조작할 수 없는 것이므로, 원주율 속에 숨겨진 메시지는 지성을 가진 신적 존재가 우주를 계획적으로 창조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정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현재는 무신론자도 유신론자도 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주요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 앤 드루이언 공저. 내 차고 안의 용이라는 개념이 유명하다.
에덴의 용 (The Dragons of Eden)
에필로그 (Billions & Billions): 유작.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앤 드루이언 공저
콘택트 (Contact): 세이건의 유일한 소설. 영화로도 나왔다.
코스모스 (Cosmos)
혜성 (Comet)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Scientific Experience):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서술한 책.
칼 세이건의 말(Conversations with Carl Sagan): 세이건 생전의 주요 인터뷰를 모아놓은 책.
창백한 푸른 점 (The Pale Blue Dot): 탐사선 보이저에 대한 이야기.
지구의 속삭임 (Murmurs of Earth): 보이저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 대한 이야기. 앤 드루이언 등 공저.
코스믹 커넥션 - 우주에서 본 우리(The Cosmic Connection: An Extraterrestrial Perspective )
브로카의 뇌(Broca's Brain): 창조설 까는 책. 이 책의 7장에서는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열람전에]라는 유사과학자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