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부버, 나와 너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년 2월 8일 ~ 1965년 6월 13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종교철학자이다. 유대인 히브리 고전학자 솔로몬 부버의 손자이다. 빈에서 태어나 빈, 취리히, 베를린 등지의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배웠다(1896~1900).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초빙되어 종교철학·윤리학을 강의했다(1923-1933).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독일에서 피난하여(1923), 여러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보내고, 1938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사회철학 교수가 되었다. '나와 너'의 관계를 기조로 한 인격주의적 철학은 실존주의와 함께 제1차 대전 후의 유럽, 미국의 기독교 신학이나 철학, 또한 정신의학계에까지 넓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로젠츠바이크와 함께 구약성서의 새로운 독일어역을 시도하기도 하고, 하시디즘(신비주의적 유대교의 운동)에 깊이 참여하여 추진자가 되었으며, 유대교의 현대적 우위를 명백히 하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잡지 <유대인>(1916-24) 및 <피조물>(1926- )을 편집, 발행하였다.
주요저서
《나와 너》 (Ich und Du, 1923년
《사람들의 문제》 (Das Problem des Menschen, 1948년
Die Erzählungen der Chassidim, 1949.
Reden über Erziehung, 1953.
Der Jude und sein Judentum, 1963.
nachfolge, 1937.
Gemeinsames Leben, 1939.
1904년 빈 대학에서 '개체화 문제의 역사적 계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문서 운동과 교육 운동에 힘썼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현대 독일어로 번역했다. 불후의 명저 '나와 너'를 출간한 1923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로 초빙받아 유대교 철학을 비롯하여 윤리학 및 종교사를 강의하게 되는데 1934년 나치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1936 년 팔레스티나로 이주해서 1951년까지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있으면서 새로운 종교적, 문화적 시온주의 운동을 펼쳤다. 1951년 히브리 대학에서 은퇴하고 1949년에 자신이 설립한 예루살렘 성인교육원 원장이 되었다. 미국으로 몇 차례 강연 여행을 했으며. 1965년 예루살렘에서 87세의 나이로 그의 위대한 '대화의 삶' 을 마쳤다. 저서로는 '종교의 철학', '대화', '단독자에 대한 물음', '대화의 삶', '인간의 문제', '신앙의 두 유형', '유토피아로 가는 오솔길', '선과 악의 모습', '하시디즘의 메시지', '대화의 원리' 등이 있다. 작은 분량이지만 6년에 걸쳐 심혈을 길울여 펴낸 '나와 너'는 유럽 대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프롬, 베르쟈예프, 만하임, 데일리, 니버 같은 철학자와 교육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