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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한국사 1139

톈진 조약(天津條約)- 청과 일본이 갑신정변 사후

1885년(고종 22)_ 4월 18일, 청과 일본이 갑신정변 사후 처리를 위해 체결한 조약. 1882년 청은 임오군란 진압을 명분으로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킨 후,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강화하였다. 1884년 12월 4일, 급진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발발하자 청은 청국 군대를 출동시켜 정변 세력을 진압했다. 일본은 정변을 피하여 귀국한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 공사를 다시 보내어 조선과 교섭하게 하였으나, 친청 세력이 재집권한 조선 정부는 일본이 정변 주동자들을 비호하였고, 그들을 일본으로 피신시킨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와 함께 2개 대대의 병력을 보내어 조선 정부가 협상에 응하도록 위협하였고, 오히려 갑신정변 과정에서 일본 측이 입은 피해..

부들러, 유길준, 한반도 중립화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중립론」을 집필한 것은 1885년(고종 22년) 말이다. 그는 미국 유학 중 갑신정변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소환 명령을 받고 귀국하자마자 유폐되었다. 그의 「중립론」은 이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는 갑신정변 이후 1885년 3월 영국의 거문도 점령, 청일 간의 톈진 조약 체결과 그에 따른 공동 철병, 5월 제1차 조러 밀약 사건 폭로 등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팽팽한 긴장 속에 전개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0월 위안스카이(袁世凱, 1859~1916)가 조선에 부임했고, 조선에 대한 속방화 정책을 심화할 목적으로 조선의 안전을 청국에 의지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조선으로서는 독자적인 주권 수호를 도모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만 할 시기였다...

미쓰야 협정-미쓰야, 장쭤린

1925년 6월 조선 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矢宮松)와 중국 펑톈성(奉天省) 경무처장 위전(于珍) 사이에 체결된 재중한국인 단속에 관한 협정. 중국의 동북3성(東北三省), 곧 만주에는 일찍부터 많은 한인이 거주했고, 이를 배경으로 한인의 항일 민족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이에 일본은 1920년 간도를 침공하여 만주 일대 한인 거주지를 초토화하고 독립군과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군 활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제는 압록강과 두만강변의 병력을 증강시키고 간도 지역의 경찰력을 대폭 증강시켰다. 또한 한국 민족 해방 운동에 근본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만주의 사실상 지배자였던 펑톈 군벌 장쭤린(張作霖, 1873~1928)을 상대로 만주 지역 한인 단..

이범윤(李範允)-간도관리사, 동의회 회장,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일제강점기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신민부 고문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02년 6월 간도시찰원, 1903년 7월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가 되어 간도지방의 한인보호에 힘썼다. 특히, 사포대(私砲隊)를 조직하고 연발총을 비치하여 군사훈련을 시켰으며, 모아산(帽兒山)·마안산(馬鞍山) 및 두도구(頭道溝) 등에 병영을 설치하였다. 그래서 한인의 지위는 향상되었고 청국의 조세징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중에는 50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참전하여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이범윤의 부대는 사포대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구한국군과 의병 출신들이 포함되어 있어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다. 1905년 청국측의 강력한 철수 요구를 받은 정부로부터 소환명령이 내려졌으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청국령을 떠나 노령..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地圖), 독도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地圖) 일본 /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85년 제작 / 96.4×74.1cm / 서정철 기증 소장 : 서울역사박물관 18세기 후반 일본의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한국과 일본 주변 4국의 위치와 관계, 각 나라의 영역과 그 경계 및 주변 각국의 지리 및 풍속을 소개한 군사지리서『삼국통람도설』을 간행하면서 부록으로 첨부했던 지도이다. 울릉도와 독도 옆에 '朝鮮ノ持二(조선소유)'라고 적혀있어 당시 일본인 스스로 두 섬이 조선의 영토가 분명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 울릉도 독도

칙령 제41호 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도감(島監)을 군수로 개정하는 건 제1조 울릉도를 울도라고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의 등급은 5등으로 할 것 제2조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할 것 제3조 개국(開國) 504년(1895) 8월 16일자 〈관보〉 중 ‘관청 사항란’ 내에 울릉도 이하 19자를 삭제하고 개국 505년(1896) 칙령 제36호 제5조 ‘강원도 26군’의 ‘6’자는 ‘7’자로 개정하고 안협군(安峽郡) 아래에 울도군 ‘3’자를 추가해 넣을 것 제4조 경비는 5등군으로 마련하되 현재 아전의 정원도 갖추어지지지 못하고 제반 업무가 처음 만들어지므로 해당 도(島)가 거..

원수부(元帥府)-대한제국, 황제 직속 최고 군통수기관.

대한제국 때 설치되었던 황제 직속의 최고 군통수기관 1897년 2월아관(俄館)에서 경운궁(慶運宮)으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해 자강(自强)을 꾀하는 동시에 근대적 개혁을 추진해 갔다. 이러한 자강의 의지를 바탕으로 1899년 군통수권을 장악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였다. 즉, 군통수권자인 황제가 대원수로서 모든 군기(軍機)를 총괄하고 육해군을 통령하며, 황태자는 원수로서 육해군을 하나로 통솔하기 위해 황궁(皇宮) 안에 원수부를 둔 것이다. 내용 원수부는 국방·용병(用兵)·군사의 명령을 장악하고 군부(軍部)와 경외(京外) 각 대(隊)를 지휘, 감독하기 위해 원수부 안에 군무국(軍務局)·검사국(檢査局)·기록국·회계국을 두었다. 이들 각 국의 관장사무를 보면 대략 다..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갑오개혁

조선 말기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던 최고 정책결정 기관. 1894년(고종 31) 6월 25일부터 같은 해 12월 17일까지 존속하였다.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다음 흥선대원군을 추대한 친일파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에 이전부터 논의되어 오던 제도 개혁을 실시하고 새로운 정권의 탄생에 따른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합의체의 형식으로 구성된 초정부적(超政府的)인 입법·정책결정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구는 서울 주재 일본공사관의 서기관 스기무라[杉村濬]가 발의하고 대원군과 친일파 개혁 관료들이 동의함으로써 성립되었으며, 1882∼1883년간에 존속하였던 기무처(機務處)의 이름을 따서 대원군이 명명한 것이다. 내용 1) 조직구성 발족 당시 ..

관민공동회-독립협회, 박성춘

1898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독립협회가 서울 종로에서 대소관민을 모아 국정 개혁안을 결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개최한 집회. 독립협회는 열강의 침탈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 지배층의 압제로부터 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정 개혁에 의한 근대적 자강 체제(自彊體制)의 수립이 긴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근대적 자강의 실현은 관민의 협력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진보적인 관료들을 중심으로 개혁 내각을 수립하게 하고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민선 의회를 설립해, 개혁 내각과 민선 의회의 협력을 통해 국정 전반에 걸쳐 근대적 자강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요컨대, 독립협회가 근대적 자강 체제의 수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국정 개혁안을 관민이 공동으로 선언하게 하고 이를 함께 추진해..

전로한족회 중앙총회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재러 한인 독립운동 단체. 개설 1917년 8월 러시아 혁명이 계기가 되어, 러시아에 입적한 한인의 대단결을 위해 전로한족회가 조직되었고, 회장에 김야코프가 취임하였다. 1917년 12월에 전로한족회 중앙총회가 우수리스크[소왕령]에 만들어졌고 회장으로 문창범이 취임했다. 연추, 추풍, 수청, 하바롭스크, 하마탕 등 각처에 전로한족회를 설치하였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는 7명의 의원을 두었다. 의원들은 회장과 부회장을 선거하는 권한이 있었고 회장과 부회장은 집행 위원이 되어 모든 사무를 처리하였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에서는 각 지방의 인구릍 계산하여 지방 대표를 뽑았고 그 외에 또 각 단체의 대표를 참여하게 하였다. 설립 목적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는 러시아..

조선상고사감(朝鮮上古史鑑), 안재홍

안재홍이 -우리나라 고대사와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모아 수록한 역사서 안재홍은 민족주의 사학자 중 드물게 고등교육[일본의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을 받았다. 동제사(同濟社), 3·1운동, 신간회(新幹會), 조선어학회 등과 관련을 맺으며 독립운동에 나섰고 여러 번 투옥되었다. 또한, 조선일보 사장 재직시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와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를 지면에 연재하도록 하였다. 어릴 때부터 술사가(述史家)를 희망했으나, 일제의 강점으로 말미암아 정치학을 공부하였다. 1930년대 전시체제의 강화로 거듭 투옥되는 상황에서 ‘정치로써 투쟁함은 한동안 거의 절망의 일이오 국사(國史)를 연찬(硏纘)하야 써 민족정기를 불후(不朽)에 남겨둠이 지고한 사명임을 자임(自任)’하고 10여 ..

낭가사상(郎家思想), 풍류[風流], 신채호

신채호가 1920년대에 한국고대사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전통적인 민족사상. 당시 민족사학자들은 일제식민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던 일본 관학자들의 식민사관에 정면으로 맞서, 왜곡되고 날조된 한국사를 재정립하여 국가와 민족의 자강과 독립을 위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이들 역사인식의 일반적인 특징인 정신사관은 신채호의 낭가사상을 비롯하여 박은식(朴殷植)의 ‘혼’, 문일평(文一平)의 ‘조선심(朝鮮心)’, 정인보(鄭寅普)의 ‘얼’, 최남선(崔南善)의 ‘조선정신’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낭가사상은 여타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정신사관에 비해 보다 구체적으로 인식, 서술되고 있어 단연 이채롭다. 낭가사상은 민족적이고 근대지향적인 실학사상과 당시 서구의 주된 사상 조류인 민족주의를 수용..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신채호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단군시대로부터 백제의 멸망과 그 부흥운동까지 서술하고 있다. 1931년에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되었고, 이후 1948년 종로서원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되었다. 원래 이 책은 신채호의 『조선사』 서술의 일부분이었으나, 그 연재가 상고사 부분에서 끝났기 때문에 『조선상고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전 1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 총론, 2편 수두시대, 3편 3조선 분립시대, 4편 열국쟁웅시대(列國爭雄時代) 대(對) 한족 격전시대, 5편 (1) 고구려 전성시대, (2) 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6편 고구려·백제 양국의 충돌, 7편 남방제국 대 고구려 공수동맹, 8편 3국 혈전의 시(始), 9편 고구려 대수전역..

백남운(白南雲)-「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상」

일제강점기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상」 등을 저술한 학자. 경제학자, 정치인.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38년에는 이순탁(李順鐸)·노동규(盧東奎) 등 동료 교수 그리고 학생 10명과 함께 ‘조선사정연구회사건’으로 일제에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8·15광복 직후인 1945년 9월에는 조선학술원을 설립, 원장에 취임하고 민족문화연구소도 설립하였다. 같은해 12월에는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정학 교수로 미군정의 임명사령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해인 1946년 2월에는 김두봉(金枓奉)·한빈(韓斌) 등이 북한에서 결성한 조선신민당의 경성특별위원회(후에 남조선신민당으로 발족)의 위원장을 맡는 한편, 좌익세력의 집결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단의 의장 및 상임위원·경제대책위원 등으로 정치활동을 하..

정약용(丁若鏞)-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조선후기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 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

지청천(池靑天)-한국독립당 군사위원장,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

일제강점기 한국독립당 군사위원장, 한국독립군 총사령관, 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군인. 한말 무관학교(武官學校)에 입교, 2학년 때 1, 2년생 40여 명과 함께 정부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陸軍中央幼年學校)에 들어갔다. 이 때는 본명인 지대형을 사용하였다. 유년학교는 뒤에 일본사관학교 예과가 된 3년제이며, 다시 본과 2년이 있는데, 유학 도중 한일합병이 되어 본과에 편입되었다. 제26기생으로 1913년 졸업, 중위가 되면서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일무력항쟁을 지도하기 위해 일본의 병서와 군용지도를 가지고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찾았다.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하고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만주군정부(滿洲軍政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간부가 되었..

삼균주의(三均主義), 조소앙, 임시정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조소앙이 독립운동의 기본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체계화한 민족주의적 정치사상. 내용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에 균등생활을 실시하려는 주의’이다. 완전균등을 대전제로 하면서 이의 실현을 위해 정치적·경제적·교육적 균등을 주장하고 있다. 1920년대 말 기본적 구상이 정립되고, 한국독립당의 정강에 채택되었으며, 1941년 11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의 기본이념으로 공포하였다.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 이후 가혹한 정치적 유린과 토지수탈 등 경제적 파탄 및 심한 교육차별대우를 받았던 한민족은 민족적 자각을 통해 정치적 독립과 자유를 지향하고, 경제적인 자립을 추구하며, 무차별 평등교육의 실현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독립운동 진..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임오군란, 수호조규속약

1882년(고종 19) 8월 30일(음력으로 7월 17일) 임오군란으로 빚어진 양국 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 6개조의 본조약과 2개조의 수호조규속약(修好條規續約)으로 되어 있다. 역사적 배경 임오군란 이후 청일 양군의 한성진주와 흥선대원군의 청국 납치 문제 등이 민씨정권의 재집권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이후 군란 뒤처리를 위한 조ㆍ청ㆍ일 3국의 절충 협의가 다각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군란 때 일본세력의 조선 침투에 민족적 의분을 품고 있던 병사들과 시민들에 의해 공사관이 습격당했고, 별기군(別技軍) 교관 호리모토(堀本禮造)등 수 명이 살해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이끄는 청군 3,000명이 한성에 진주하면서 청국의 정치적 영향은 커졌다. 이로 인..

수신사(修信使) 1876

조선 말기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 이전까지는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하는 사신을 통신사(通信使)라 불렀으나,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이후 수신사로 바뀌었다. 이는 양국이 근대적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뜻이다. 내용 1. 제1차 수신사(1876) 임진왜란 이후 조선수신사일기은 일본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의 간청으로 국교를 재개하고 고종 초년까지의 260여 년 동안 10여 차례 일본으로 통신사를 보냈다. 일본의 사절 역시 여러 번 조선에 와서 양국 사이에는 평화적 외교가 진행되었고, 동시에 부산에서는 왜관무역(倭館貿易)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의 태도가 전과 같지 않자 쇄국주의자였던 흥선대원군은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이 은퇴하고..

조선책략(朝鮮策略)-황준헌 역사서, 김홍집

청나라 황준헌이 개항기 한국이 당면한 국제적 지위를 논하고 그 대외책을 시사한 역사서. 1880년(고종 17)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 초명은 宏集)에 의해서 당시 청국 주일공사관 참찬관(參贊官)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을 기증받아 귀국해 고종(高宗)에게 복명과 동시에 바쳤다. 내용 이 책략의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방아책(防俄策)의 방법으로서 친중국(親中國)과 결일본(結日本)·연미국(聯美國)함으로써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남침을 방어하기 위해서 연미국수교론(聯美國修交論)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미국은 강대(强大)·공명(公明)·정의(正義)의 나라로 조선에 대해서 이를 얻을 욕심은 없고, 오히려 조선을 이롭게 할 것이라 하여 미국과 수호..

최익현의 5불가소(왜양일체론)

최익현의 5불가소(왜양일체론)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이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 체결 직전인 1876년(고종 13년) 1월 23일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려 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올린 글이다. 조약을 체결하려면 도끼로 자신의 목부터 자르라는 비장한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이 상소에서 그는 일본과 수호 조약을 체결하면 안 되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조목조목 열거하였다. 특히 일본이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 서양의 앞잡이이므로 서양이 곧 일본이요, 일본이 곧 서양이라는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을 주장함으로써, 정부 내에 일본과 서양을 분리하여 조약 체결은 과거 일본과의 외교를 회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한 강한 반대를 표시하였다. 아울러 서양의 2차 공산품에 맞서 조선이..

육영공원(育英公院)1886-헐버트, 최초 관립학교

육영공원(育英公院) 1886년(고종 23)에 설립되었던 관립학교. 우리 나라 최초의 관립 근대학교로서 1894년에 폐교될 때까지 양반고관 자제들을 수용해 근대교육을 실시해 인재를 키웠다. 1883년 미국에서 돌아온 보빙사(報聘使) 민영익(閔泳翊) 일행은 근대화를 위한 몇 가지 건의를 하였다. 이 때 근대문명 보급을 위한 근대학교 설립을 제기하였다. 또한 보빙사 수행원으로 해외근대문명을 견문할 수 있었던 홍영식(洪英植)·서광범(徐光範)·변수(邊燧) 등 개화정객들의 노력이 있어 마침내 육영 공원설치의 윤허가 내려졌다. 그러나 이 해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육영공원의 개교는 지연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측에 요구한 3명의 교수요원이 도착한 1886년 9월 23일에야 개교하였다. 육영공원의 학칙인 내부의 계사(啓辭)에..

근현대사 연표 정리

▨ 시대사(근현대) ▨ 개항기 핵심 ■ 1860~70년대 대내적 대외적 · 비변사 혁파 → 의정부와 삼군부 · 서원혁파(47개 외), 만동묘 철폐 · 호포제 실시 · 경복궁 중건(당백전, 원납전) · 대전회통, 육전조례 * 북경조약(1860) : 러시아와 국경 · 병인박해(1866) ← 남종삼 ·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7) · 병인양요(1866.9. Rose) : 한성근(문수)·양헌수(정족) · 오페르트 도굴사건(1868.4) · 신미양요(1871. Rogers) : 어재연(광성보), 갑곶 ⇨ 척화비건립 [대원군 집정기](1863~1873) * 위정척사 운동 : 통상반대운동, 척화론. (이항로, 기정진, 김평묵 등) [1876년] - 개항 * 척사운동(최익현 지부복궐소) : 개항불가론, ‘왜양일체..

잡스 한국사 2020.07.06

조선시대 연표 정리

조선전기 연표 ※ 조선사회의 특징: ①중앙정치: 왕도정치 중시, 중앙집권적 관료제 성격 강화, 관직의 분화, 언로와 견제장치 발달(3사, 경연·서연), ②지방제도: 중앙집권력 강화(전 군현에 지방관 파견(향소부곡 소멸), 道제의 확립, 향리의 지위격하 등), 향촌자치의 발달, ③사상: 성리학적 통치이념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대외관계 태조 (1392~1398) · 권지고려국사 · 한양천도(1394) · 1차 왕자의 난(1398) · 의흥삼군부 설치 (군무기능 분리) o 조선경국전(정도전), 경제육전(조준) o 고려국사(정도전) o 불교: 도첩제 실시 ·요동수복계획(정도전;진도작성) 정종 ·개성천도 (1399) ·2차 왕자 난(1400) 태종 (1400~1418) · 한양재천도(1405) · 사원토지..

잡스 한국사 2020.07.06

신문 두문자 암기-한성순보,독립신문,황성신문,제국신문,대한매일신보,만세보,경남일보,한성주보

신문 두문자 암기 한성순보~관보성격의 최초의 신문, 박영호 박문국 박문파네 한최 독립신문~최초의 근대적 일간지, 순 한글판 독립근육 독일 황성신문~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남궁억 만민급파1898 황야 제국신문~부녀자 계몽 순한글 일간지 제부 대한매일신보~항일운동 선봉(신민회기관지), 검열회피 베델 발행인 1904 대항 만세보~천도교기관지, 일진회 공격, 사회진보주의, 혈의 누 만천 경남일보~최초의 지방신문 한성주보➜독립신문➜황성신문➜만세보 ※친일신문~경성일보, 매일신보, 국민신보, 법정신문, 대한신보 경매 국법대 ● 신문 - 한(국의) 독(한) 황제(는) 대만(을) 경매(했다) 한 한성순보 독 독립신문 황 황성신문 제 제국신문 대 대한매일신보 만 만세보 경 경향신문 매 매일신문 Q 다음 지문이 가리키는 ..

잡스 한국사 2020.05.21

강화도 조약(1876)-조일수호조규, 조미수호통상조약,임오군란, 조일수호조규속약, 제물포조약, 임오군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조일통상상정 83

두문자 암기 ● 강화도조약 이후 조약 순서- '수일(이는) 미수(다) 이 규약(은) 무역 통일' 수일 조일수호조규, 강화도조약 미수 조미수호통상조약 이(임) 임오군란 한발빨리 1882 규약 조일수호조규속약, 제물포조약임오군란 후속대책으로 같은날 조인 무역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82 통일 2차조일통상상정 83 ● 강화도 조약 체결 배경 국내 정세의 변화 : 흥선 대원군의 하야(1873) → 고종의 친정 체제 수립, 민씨 세력이 정권 주도 → 청과 전통적인 외교 관계 유지, 일본에 유화 정책을 폄 자율적 배경 : 통상 개화론의 대두(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 타율적 배경 : 일본에서 정한론 대두, 일본의 포함 외교 →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문호 개방 강요(1875) ● 성격 조선의 문호 개방, 최초의 근대..

잡스 한국사 2020.05.21

대한제국, 광무개혁

● 광무개혁 - "광양시 간식평 실무" 광무-칭제건원 양전사업-지계발급 시위대, 원수부 간도(북간도관리사 이범윤), 울릉군 설치 식산흥업정책 실시 평식원 설치 실업 기술학교 설립 무관학교 설립 ● 대한 제국의 성립 1. 배경 정부 관리·유생·독립 협회 등이 고종의 환궁 요구,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일본의 세력 균형 2. 대한 제국의 성립(1897) 고종이 아관 파천 이후 1년 만에 환궁 → 자주독립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칭제건원(연호 - 광무, 국호 - 대한 제국),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 거행 ▶ 대한 제국의 성립과 그 성격 여러 신하와 백성, 군사들과 장사치들이 한결같은 소리로 수십 차례나 글을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라고 일제히 제의하였다. 내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

잡스 한국사 2020.05.21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준비, 민족 통일 전선,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한인애국단, 한국독립당,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준비 활동 ● 국제회의의 진행 1. 카이로 회담(1943)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일본 항복 후의 문제 합의 참가 국가 : 미국, 영국, 중국의 수뇌 참가 합의내용 : 상호 협력과 전후 일본의 처리 문제 합의,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의 독립 약속 2. 얄타 회담(1945. 2.)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 참여, 소련의 대일전 참전 문제 합의 3. 포츠담 회담(1945. 7.) 미국, 영국, 중국의 수뇌 참여, 일본의 즉각적 항복 요구, 한반도 독립 약속 재확인 연합국의 한국 독립 약속의 내용 미ㆍ영ㆍ중 3국은 조선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조선이 자주독립할 것을 결의한다. 이 목적으로 3국..

잡스 한국사 2020.05.21

친일파 청산, 반민특위, 농지 개혁

Q 다음 법령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제1조 일본 정부와 통모하여 한・일 합병에 적극 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 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 또는 일본 제국 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 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위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① 이 법령에 따라 특별 재판부가 설치되었다. ② 이 법령의 제정은 제헌헌법에 명시된 사항이었다. ..

잡스 한국사 2020.05.19

흥선 대원군, 병인양요, 신미양요

흥선 대원군 집권 무렵의 정세 1. 국내 세도 정치에 따른 정치 기강 문란과 부정부패, 농민 봉기의 빈발, 동학과 천주교의 확산 2. 국외 연해에 이양선 출몰과 통상 요구, 러시아의 연해주 차지 정치 개혁 1. 인사 개혁 안동 김씨 일족 제거 → 세도 정치 폐단 제거,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2. 제도 개혁 비변사 축소·폐지 → 의정부와 삼군부 부활 3. 법전 정비 대전회통, 육전조례 편찬 4. 국방 강화 수시로 출몰하는 이양선 대비 → 수군 강화(수군 통제사의 지위 격상), 훈련도감의 군사력 증강, 해안 지대에 보루 설치 수취 체제 개혁 1. 목적 삼정의 문란 시정 →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확충 도모 2. 전정 일부 지역 양전 실시 → 양안에 빠진 토지(은결) 색출, 지방관과 토호의 토지 겸병 금지 ..

잡스 한국사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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