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한국사 사전

전로한족회 중앙총회

Jobs 9 2020. 9. 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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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재러 한인 독립운동 단체.

개설
1917년 8월 러시아 혁명이 계기가 되어, 러시아에 입적한 한인의 대단결을 위해 전로한족회가 조직되었고, 회장에 김야코프가 취임하였다. 1917년 12월에 전로한족회 중앙총회가 우수리스크[소왕령]에 만들어졌고 회장으로 문창범이 취임했다. 연추, 추풍, 수청, 하바롭스크, 하마탕 등 각처에 전로한족회를 설치하였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는 7명의 의원을 두었다. 의원들은 회장과 부회장을 선거하는 권한이 있었고 회장과 부회장은 집행 위원이 되어 모든 사무를 처리하였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에서는 각 지방의 인구릍 계산하여 지방 대표를 뽑았고 그 외에 또 각 단체의 대표를 참여하게 하였다.

설립 목적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는 러시아 혁명 이후 입적한 한민족의 대단결을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며, 한인들의 자치제 실현을 목표로 하였다.

변천
1917년 4월 20일 노령 한인협회 발기회 명의로 한인 사회의 결집을 위한 대규모 회의가 소집되었다. 당시 주도권은 원호인 지도자인 최재형과 문창범 등 9명이 가지고 있었다. 대회는 1917년 5월 21일부터 30일까지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에서 개최되었다. 대표자의 구성은 3분의 2가 원호, 3분의 1은 여호였다. 여호 대표자들은 노령 한인협회 내에 귀화인과 비귀화인을 막론하고 모든 한인을 망라할 것을 주장했으나 원호인들은 여호인들에게 의결권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조직 문제를 둘러싼 분열은 케렌스키의 임시 정부를 지지할 것인지 소비에트를 지지할 것인지를 둔 정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조직 문제와 정치적 견해 차이는 회의의 분열을 가져왔다. 소비에트 지지를 표명한 대표자들은 대회장에서 탈퇴했다. 회의장에 잔류한 다수파는 회의를 진행했고, 중앙 기관으로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를 설립하였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는 백군의 옴스크 정부에게 참정권을 얻어 냈다. 그러나 케렌스키가 패배하고 콜차크 정부가 패퇴하면서 1919년 2월 25일 소비에트에 맞추어 다시 조직을 하게 되었고, 중국령의 단체[남만주, 북만주]와 합쳐서 대한국민의회로 명칭을 바꿨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러시아로 입적한 한인들의 자치제 실행과 권리 신장이 활동의 주 목적이었다. 출판 분야에서는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에 신문사를 설립하고 일주일에 2회씩 『청구신보』를 발행하기로 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의연금 모금을 통해 우수리스크에 사범 학교를 창설했다.

의의와 평가
러시아 내 소수 민족인 귀화 한인들의 자치와 권리 신장에 기여를 했으나 항일 운동의 과제에 대해 소홀했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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