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Humanities/서양사 Western History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관계, 유고 내전, 티토

Jobs9 2024. 10. 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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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양국은 유고슬라비아 내전기간에 갈등


역사적 관계
중세
슬라브족들이 6세기 ~ 7세기부터 발칸 반도로 이주하면서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에도 슬라브족들이 많이 이주했다. 슬라브족들은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이주하면서 현지주민들과 통혼이 자주 이뤄졌다. 그리고 슬라브족들이 많이 이주한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슬라브화가 되었고 슬라브족들이 크로아티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등을 세웠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영토에 이주한 슬라브족들은 동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정교회, 키릴 문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리스의 영향도 받았다. 다만, 크로아티아 지역은 프랑크 왕국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정체성이 나뉘어졌다. 

 

근세
크로아티아 왕국이 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된 뒤,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세르비아 왕국은 동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다가 동로마 제국에서 독립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를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19세기부터 약화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발칸 반도에 진출했다. 그리고나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지역을 차지했고 크로아티아 지역은 물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이 반발했다.

 

20세기
1910년대에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러시아 제국이 세르비아를 지지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며 세르비아 왕국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선포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이스트리아 반도가 이탈리아의 영토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나치 독일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점령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세우고 나치 독일에 부역하여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패전이 계속되며 소련군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나치 독일을 몰아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티토가 소련과 거리를 두고 서방 국가들과 가깝게 지내는 정책을 추진하며 소련과는 관계가 안 좋았다. 티토가 사망하기 전까진 유고슬라비아는 분열되지 않고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들도 친하게 지냈다.  

80년대에 티토가 사망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90년대초에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났다.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먼저 독립했지만,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90년대에 내전이 매우 격렬했고 양측간 학살이 발생했다. 95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간의 학살이 발생되고 스레브레니차 학살까지 발생되었다. 

 

21세기
현재에도 양국은 갈등이 존재한다. 게다가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언어에서도 차이점을 강조하는 등 견제하고 있다. 

세르비아산 초콜릿을 아이들에게 선물한 대통령이 사과를 표시하면서 크로아티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고 세르비아는 인종주의적이라고 분노했다.# 

2019년 11월 14일,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측에 옛 유고연방 승계금 1억 4,850만 달러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 교류
양국은 종교를 제외하고 언어에서 공통점이 많다. 특히,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가 매우 가깝다보니 세르보크로아트어라고 불리고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세르비아는 정교회를 믿고, 크로아티아는 천주교를 믿는 등 종교적으로 차이가 있다. 또한, 문자에선 크로아티아가 로마자, 세르비아가 키릴 문자/로마자를 사용하고 있어서 차이점도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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