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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국어/현대문학 540

강원도의 돌, 마종기 [현대시]

강원도의 돌 마종기 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 참 이쁘더군, 강원도의 돌. 골짜기마다 안개 같은 물 냄새 매일을 그 물 소리로 귀를 닦는 강원도의 그 돌들, 참, 이쁘더군.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 물 속에 누워서 한 백 년, 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 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더군. 참, 이쁘더군, 말끔한 고국(故國)의 고운 이마, 십일월에 떠난 강원도의 돌.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향토적, 낭만적 - 어조 : 일상적 대화의 어조 - 사상적 배경 : 동양의 도교(노장사상) - 제재 : 돌 - 표현 ㆍ 반복과 변조를 통해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ㆍ 중심 대상(돌)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ㆍ 친근감이 느껴지는 일상 대화식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고향, 윤동주 [현대시]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개관 - 성격 : 상징적, 관조적, 자의식적 - 표현 : 자아의 대립에 의한 갈등 구조 - 주제 : 진정한 고향(영혼의 고향, 이상 세계)에의 동경 - 제재 : 자의식의 세계 중요시어 및 시구 * 나 → 개인적 자아. 백골과 아름다운 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

성호부근(星湖附近), 김광균 [현대시]

성호부근(星湖附近) 김광균 Ⅰ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Ⅱ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 머얼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다. Ⅲ 앙상한 잡목림(雜木林) 사이로 한낮이 겨운 하늘이 투명한 기폭(旗幅)을 떨어뜨리고 푸른 옷을 입은 송아지가 한 마리 조그만 그림자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글픈 얼굴을 하고 논둑 위에 서 있다. 개관 - 제재 : 호수 - 주제 :..

설일(雪日), 김남조 [현대시]

설일(雪日)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개관 - 주제 : 신의 존재를 느낌으로써 고독을 극복하고, 너그러운 삶을 살아가려는 새해의 다짐 - 성격 : 감각적, 서정적, 기원적 - 표현 : ..

춘향유문, 서정주 [현대시]

춘향유문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개관 - 주제 ⇒ 시공을 초월한 여인의 불변불멸의 사랑 - 성격 : 전통적, 고전적, 낭만적, 이상적, 초월적, 불교적 - 표현 * 여성적이고 섬세한 어투 * 독백 형식의 문체 * 4음보의 안정된 율격 * 대조법, 대구법 중요 시어 및 시구풀이 *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

너에게, 신동엽 [현대시]

너에게 신동엽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진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터 새 순 돋듯 허구 많은 자연 중(自然中)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개관 - 제재 : 너(소중한 이) - 주제 :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은 소망과 의지 / '나'의 사후에도 이어지게 될 연인(혹은 후손)의 삶에 대한 배려 - 성격 : 서정적, 의지적, 자기희생적, 미래지향적 - 표현 : 유언의 형식, 희생양 모티프 / 동일한 통사 구조의 반복으로 운율감과 화자의 의지 강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 돌아가는 날 → 화자가 죽는 날 * 너 →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데, '사랑하는 사람', '죽음을 통해서라도 얻어 내야 할 이상과 희망', '더 나은 사..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이용악 [현대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이용악 삽살개 짖는 소리 눈보라에 얼어붙은 섣달 그믐 밤이 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범은 자옥 자옥을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 주셨지. 졸음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 등불이 깜빡 저절로 눈감을 때꺼정 다시 내게로 헤여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뜰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기다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 [현대시]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개관 - 제재 : 풀잎 - 주제 : 고달픈 삶의 체험과 생명에의 외경감 / 운명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삶 - 성격 : 사색적, 선(禪)적, 산문적 - 표현 : 그윽한 어조와 서술적 이미지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단장 → 斷(끊을 단) 章(글 장) / '짧은 시가나 문장'이란 의미로,..

춘설, 정지용 [현대시]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어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개관 - 제재 : 이른 봄에 내린 눈(춘설) - 화자 : 비록 꽃샘 추위가 남아 있더라도 핫옷을 벗어던지고 봄이 주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음. - 주제 : 이른 봄에 내린 '춘설'에 대한 감각적인 느낌 - 성격 : 서정적, 감각적 - 표현 * 봄에 대한 느낌을 시각, 촉각, 후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 돋보임. * 봄에 대한 화자의 태..

길, 김소월 [현대시]

길 김소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이 하나 없소. 개관 - 성격 : 전통적, 애상적, 민요적, 상징적 - 표현 * 3음보 율격의 정형성(각 연이 3음보 2개로 이루어짐. 2연은 1개로 됨) * 각운('-소', '-오')에 의한 운율 형성 * 어두에 일정한 운(ㄱ음운) 배치 * 하소연하는 어조(하오체) * 소박하고 일상적인 구어체 * ..

길, 김기림 [현대시]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낳은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

흰 바람벽이 있어, 백 석 [현대시]

흰 바람벽이 있어 백 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 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

백석,白石,白奭,백기행, 백석 시 모음,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 언어 구사 모더니스트

백석,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

즐거운 편지, 황동규 [현대시]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 일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개관 - 성격 : 서정적, 고백적, 의지적, 낭만적 - 표현 * 시각적 심상 * 줄글로 이루어진 산문시 * 반어적 표현과 자연현상에 빗댄 표현이 돋보임. * '그..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 반어법, 시간의 흐름 시상 전개 [현대시]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개관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 성격 : 서정적(抒情的), 애상적(哀想的) - 어조 : 쓸쓸하고 외로우면서도 잔잔하고 담담한 여성적 어조 표현 : 비유법, 상징법, 반어법(여성적인 어조와 경어체의 사용을 통해 화자의 심정을 절실하게 드러내고, 분위기를 차분하고 경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감각적인 시어를 사용해서 시의..

[현대시] 자화상, 서정주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

[현대시] 참회록(懺悔錄), 윤동주

참회록(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개관 치욕스러운 역사를 경험한 화자가 암울한 시대에 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느끼는 부끄러움과 고뇌를 고백하고 있다.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

십자가, 윤동주 [현대시]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개관 - 성격 : 기독교적, 상징적, 저항적, 의지적 - 표현 : 역설적 표현. 상징어의 사용, 시·청각적 심상, 기승전결의 구성 방식, 속죄양 모티브 - 주제 : 조국광복을 위한 자기희생 의지. 고난을 짊어지려는 희생적인 의지(속죄양 의식)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햇빛 → 추구해오던 대상, 정의로운 삶의 지표. 순결과 광명을 상징하는 이상의 빛, 조국광복 * ..

[현대시]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때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시어 풀이 *플랫폼(platform) :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 승강장. *간신(艱辛)한 : 힘들고 고생스러운. *..

[현대시] 기항지 1, 황동규

기항지 1 황동규 걸어서 항구(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 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개(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개관 - 성격 : 묘사적, 시각적, 주지적, 감각적, 상징적, 사색적 - 표현 * 대상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며, 이 묘사를 통해 화자의 내면을 표출함. * '한지(寒地), 지전(紙錢), 용골(龍骨), 수삼개(數三個)' 등의 한자어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듦. * 시간의 흐름과 시..

종소리, 박남수 [현대시]

종소리 박남수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의 음향이 된다. 개관 - 성격 : 주지적, 남성적, 역동적, 시각적, 의지적 - 표현 : 파열음(ㅊ,ㅌ,ㅍ)의 사용으로 감정과 어조의 긴장 및 격앙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형태에 의한 적절한 통제. 의인법, 도치법, 은유법 - 주제 : 자유의 확산과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 - 종소리의 심상 :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주지주의 [현대시]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홀로 어디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지은이 : 김광균(金光均)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주지적. 감각적. 회화적, 애상적 심상 : 시각적, 촉각적, 공감각적 이미지(1연..

그날이 오면, 심 훈 [현대시]

그날이 오면 심 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개관 - 성격 : 참여적, 저항적, 격정적, 의지적..

귀천(歸天), 천상병 [현대시]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개관 - 성격 : 관조적, 독백적, 낭만적, 낙천적, 능동적, 시각적 - 표현 : * 3음보의 반복과 변조 * 담백하고 평이한 진술 * 맑고 투명한 이미지 구사 * 독백조의 진실한 어조 * 반복을 통한 주제의 선명성 확보 - 주제 : 죽음에 대한 관조적 수용 생의 긍정과 죽음에 대한 달관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하늘 → 일차적으로는 '죽음의 세계'를 의미. 이승과 저승 그 어디에도 존재하는, 인간이 온 곳이고 또한 갈 곳인 우주 혹은 영원성의 ..

귀뚜라미, 황동규 [현대시]

귀뚜라미 황동규 베란다 벤자민 화분 부근에서 며칠 저녁 울던 귀뚜라미가 어제는 뒤꼍 다용도실에서 울었다. 다소 힘없이. 무엇이 그를 그 곳으로 이사 가게 했을까, 가을은 점차 쓸쓸히 깊어 가는데. 기어서 거실을 통과했을까, 아니면 날아서?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그가 열린 베란다 문턱을 넘어 천천히 걸어 거실을 건넜으리라 상상해 본다. 우선 텔레비전 앞에서 망설였을 것이다. 저녁마다 집 안에 사는 생물과 가구의 얼굴에 한참씩 이상한 빛 던지던 기계. 한번 날아올라 예민한 촉각으로 매끄러운 브라운관 표면을 만져 보려 했을 것이다. 아 눈이 어두워졌다! 손 헛짚고 떨어지듯 착륙하여 깔개 위에서 귀뚜라미 잠을 한숨 잤을 것이다. 그리곤 어슬렁어슬렁 걸어 부엌으로 들어가 바닥에 흘린 찻물 마른 자리 핥아 보고 ..

귀고(歸故), 유치환 [현대시]

귀고(歸故) 유치환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松栢)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트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가면 우리 집은 유약국 행이불언(行而不言)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冊曆)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新刊)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개관 - 성격 : 감상적, 감각적, 회고적, 토속적 - 표현 : 귀향하는 과정을 공간의 이동에 따라 드러냄. 공간의 수축작용이 나타남. 포근하고 다정한 어조 - 제재 : 고향 - 주제 : 고향에 돌아와..

국경의 밤, 김동환 [현대시]

국경의 밤 김동환 제1 부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놓고 밤새 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이”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 촌민(村民)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

국화 옆에서, 서정주 [현대시]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개관 - 성격 : 불교적, 자성적, 전통적 - 운율 : 7·5조, 3음보의 율격이 기본 - 표현 ① 기승전결의 한시적 구성방식 ② 7 · 5조, 3음보의 운율 : 고유의 정서 환기 ③ 1, 2, 4연은 국화꽃이 피기까지의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의 시적 표현에 해당 ④ 불교적 세계관(인연설) : 가을에 피는 국화가 소쩍새 ..

국토서시(國土序詩), 조태일 [현대시]

국토서시(國土序詩)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개관 - 성격 : 격정적, 참여적, 민중적, 반복적 - 표현 : 동일한 통사구조의 반복 반복법과 점층법 - 주..

국수, 백 석 [현대시]

국수 백 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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