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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국어/현대문학 540

교외(郊外) Ⅲ, 박성룡 [현대시]

교외(郊外) Ⅲ 박성룡 바람이여,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無形)한 것이여,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 불어 다오, 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번 불어 다오. 바람이여, 아, 사랑이여. 개관 - 성격 : 서정적, 희망적, 자연 친화적 - 제재 : 바람 - 주제 : 자연에 대한 사랑과 활기찬 삶에의 소망. 외로움의 서정과 자연에 대한 사랑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바람 →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대상을 상징함. *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 삶의 열정과 활력이 식은 생활(현재의 생활) *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 삶의..

교목, 이육사 [현대시]

교목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湖水)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개관 - 성격 : 남성적, 의지적, 저항적, 상징적 - 표현 * 간결하고도 강인한 어조를 띤 구절로 인해, 이육사 시의 특유한 분위기를 형성 * '차라리, 아예, 차마' 등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시어 사용 * '말아라, 아니라, 못해라' 등 자연스럽지 못한 표현 → 격정적인 의지를 일상적인 어법만으로는 만족하게 드러낼 수 없기에 다소 과격한 시어를 사용한 게 아닌지……. - 제목 *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시인의 삶의 모습 비유 * 시인의 신념이..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이문재 [현대시]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이문재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 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린 겨울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가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나무들 개관 - 성격 : 문명비판적 - 특성 ①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의식이 드러..

광고의 나라, 함민복 [현대시]

광고의 나라 함민복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아름답고 좋은 것만 가득 찬 저기, 자본의 에덴동산, 자본의 무릉도원, 자본의 서방정토, 자본의 개벽세상――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휴먼테크의 아침 역사를 듣는다. 르네상스 리모컨을 누르고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휴먼퍼니처 라자 침대에서 일어나 우라늄으로 안전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토피아의 전등을 켜고 21세기 인간과 기술의 만남 테크노피아의 냉장고를 열어 장수의 나라 유산균 불가리~스를 마신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 누군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을까. 사랑하는 여자는, 드봉 아르드포 메이컵을 하고 함께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꼼빠니아 패션을 입는다 간단한 식사 우유에 켈로그 콘프레이크를 먹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과목, 박성룡 [현대시]

과목 박성룡 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薄質)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滅裂)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 흔히 시를 잃고 저무는 한 해, 그 가을에도 나는 이 과목의 기적 앞에서 시력(視力)을 회복한다. 개관 - 성격 : 서정적, 사색적, 인식적, 관조적 - 표현 : 경이로움과 감탄적인 어조. 투박한 한자어와 '사태, 경악'과 같은 돌발적 시어를 사용하여 신선한 느낌을 표현함. - 제재 : 과목 - 주제 :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감탄, 자연의 생명력 시상의 흐름(짜임..

고향 앞에서, 오장환 [현대시]

고향 앞에서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개관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감각적, 비극적, 애상적 - 표현 : 다양한 감각적 표현 현재형의 사용으로 작품의 사실감 고조 회한과 자책 속에서 쓸쓸하고 애잔한 목..

고향 소식, 박재삼 [현대시]

고향 소식 박재삼 아, 그래, 건재약 냄새 유달리 구수하고 그윽하던 한냇가 대실 약방…… 알다 뿐인가 수염 곱게 기르고 풍채 좋던 그 노인께서 세상을 떠났다고? 아니, 그게 벌써 여러 해 됐다고? 그리고 조금 내려와서 팔포 웃동네 모퉁이 혼자 늙으며 술장사하던 사량섬 창권이 고모, 노상 동백기름을 바르던 아, 그분 말이라, 바람같이 떴다고? 하기야 사람 소식이야 들어 무얼 하나, 끝내는 흐르고 가고 하게 마련인 것을…… 그러나 가령 둔덕에 오르면 햇빛과 바람 속에서 군데 군데 대밭이 아직도 그전처럼 시원스레 빛나며 흔들리고 있다든지 못물이 먼 데서 그렇다든지 혹은 섬들이 졸면서 떠 있다든지 요컨대 그런 일들이 그저 내 일같이 반갑고 고맙고 할 따름이라네. 개관 - 성격 : 감각적, 회고적, 서정적 - 특..

고향, 백 석 [현대시]

고향 백 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개관 - 성격 : 서사적, 회고적 - 표현 * 시각적, 촉각적 심상 * 다정다감한 어조 * 인물 사이에 주고받는..

고풍의상, 조지훈 [현대시]

고풍의상 조지훈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杜鵑)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胡蝶)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의 편지, 김혜순 [현대시]

고층 빌딩 유리창닦이의 편지 김혜순 저녁엔 해가 뜨고 아침엔 해가 집니다. 해가 지는 아침에 유리산을 오르며 나는 바라봅니다. 깊고 깊은 산 아래 계곡에 햇살이 퍼지는 광경을. 해가 뜨는 저녁엔 유리산을 내려오며 나는 또 바라봅니다. 깊고 깊은 저 아래 계곡에 해가 지고 석양에 물든 소녀가 붉은 얼굴을 쳐드는 것을. 이윽고 두 개의 밤이 오면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됩니다. 그리곤 당신들의 유리창문에 달라붙었다가 그 창문을 열고 들어가려 합니다. 창문을 열면 창문, 다시 열면 창문, 창문, 창문 …… 창문 밤새도록 창문을 여닫지만 창문만 있고 방 한 칸 없는 사람들이 산 아래 계곡엔 가득 잠들어 있습니다. 밤새도록 닦아도 닦이지 않는 창문.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창문,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두꺼워지는 큰골..

고재국, 최두석 [현대시]

고재국 최두석 유난히 뚝심 세었던 동갑내기 고종사촌 고재국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상경해 쟉크 염색 기술을 배웠다. 지독한 염료 냄새에 콧구멍은 진즉 마비되고 늘 골머리까지 띵하더니 상경한 지 삼 년 만에 한 모금 피를 토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굼벵이로 술을 담거 먹었다. 초겨울 마람 엮어 지붕 갈 때 썩은새 속에 굼실거리는 살진 굼벵이로, 매미의 유충이 굼벵이라던가. 농사일 뒷전에서 거들며 지내기 일 년 만에 매미 소리처럼 가슴이 시원해진 그는 다시 상경하였고 굼벵이술을 계속 먹으며 십여 년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쟉크 염색 공장을 차렸다. 비록 동업이지만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고 내 선생 월급을 묻고는 미소 짓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 그는 요즘 미칠 지경이란다. 아니 미쳐서 돌아다..

겨울 일기, 문정희 [현대시]

겨울 일기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처럼 죽음만 꺼내 씹었다. 나는 누워서 편히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린 이 겨울 개관 - 성격 : 절망적, 체념적, 반어적 - 특성 ① 1연과 3연의 반어법 ② 임을 잃은 슬픔을 절망적이고 체념적인 어조로 노래함. ③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린 상실감을 겨울의 이미지로 설정하여 삭막함과 쓸쓸함을 드러냄. ④ 자연물과의 대조를 통해 상실감을 드러냄. - 제재 : 이별로 인한 고통 - 화자 : 이별로 인해 절망하고 체념하는 태..

겨울 숲에서, 안도현 [현대시]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 사방 가슴 벅찬 폭설..

겨울 바다, 김남조 [현대시]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虛無)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靈魂)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개관 - 성격 : 명상적, 회고적, 주지적, 상징적, 종교적 - 특성 * 자기 응시적 독백체와 기도조의 어조로 화자의 정서를 표현함. * '물(생성, 차가움)'과 '불(소멸, 뜨거움)'의 대립적 이미지를 통해 주제의식..

겨울 들녘에 서서, 오세영 [현대시]

겨울 들녘에 서서 오세영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 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개관 - 성격 : 교훈적, 존재론적, 관조적, 역설적 - 표현 * 통사구조의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강조함. * 관조적 태도로 겨울 들판을 통해 깨달음에 이름. * ..

겨울나무를 보며, 박재삼 [현대시]

겨울나무를 보며 박재삼 스물 안팎 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 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이제 마흔 가까운 손등이 앙상한 때는 나무들도 전부 겨울나무 그것이 되어 잎사귀들을 떨어내고 부끄럼 없이 시원하게 벗을 것을 벗어 버렸다. 비로소 나는 탕에 들어앉아 그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음을 부우연 노을 속 한 경치로써 조금씩 확인할 따름이다. 개관 - 성격 : 성찰적, 관조적 - 특성 ① 자연물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화자의 심정을 형상화함. ② 감정적인 태도와 관련된 것을 모호하게 표현함. - 제재 : 겨울나무 - 화자 : 지난날의 삶에 대한 성찰과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해 자각하는 자 - 주제 : 겨울 나무를 통해 중년의 ..

검은 강, 박인환 [현대시]

검은 강 박인환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生)과 사(死)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靜寞)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城砦)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개관 - 성격 : 직설적, 상징적, 대조적, 비극적 - 표현 : 평서형 종결어미의 사용으..

거울, 박남수 [현대시]

거울 박남수 살아 있는 얼굴을 죽음의 굳은 곳으로 데리고 가는 거울의 이쪽은 현실이지만 저쪽은 뒤집은 현실. 저쪽에는 침묵(沈默)으로 말하는 신(神)처럼 온몸이 빛으로 맑게 닦아져 있다. 사람은 거울 앞에서 신의 사도(使徒)처럼 어여쁘게 위장(僞裝)하고 어여쁘게 속임말을 하는 뒤집은 현실의 뒤집은 마을의 주민이다. 거울은 맑게 닦아진 육신을 흔들어 지저분한 먼지를 털듯, 언제나 침묵으로 말하는 신(神)처럼 비어 있다. 비어서 기다리고 있다. 개관 - 성격 : 비판적, 풍자적, 자아성찰적, 대립적 - 표현 : 거울을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의인화하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함. 역설 및 반어적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위선적인 삶을 풍자함. - 제재 : 거울 - 화자 : 위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과 그..

거울, 이 상 [현대시]

거울 이 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 것이요.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알아듣지 못하는딱한귀가두 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개관 - 성격 : 초현실주의적, 자의식적, 냉소적, 관념적 - 표현 * 역설적 표현 * 자동기술법(마치 정신병자가 무의식적으로 지껄이는 상태를 자기 자신에게 응용,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지껄이는 독백이나 입에 오른 사고를 비판이나 수..

거산호(居山好) Ⅱ, 김관식 [현대시]

거산호(居山好) Ⅱ 김관식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를 그리며 산다. 개관 - 성격 : 탈세속적, 자연 친화적, 동양적 - 표현 : 역설적 표현으로 주제를 강조함. 유한한 인간사와 자연의 영원성 대조 반문명적, 반 세속적인 소박한 생활관 제시 안빈낙도, 유유자적하..

거문고, 김영랑 [현대시]

거문고 김영랑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디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饗宴)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개관 - 성격 : 상징적, 전통적, 현실참여적 - 특성 ① 거문고를 기린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임. ② 대상의 현재 상황을 부각하여 시적 정서를 형성함. ③ 기린과 '이리떼' '잔나비떼'의 대비를 통해 주제 의식을 암시함. - 주제 : 국권 상실을 극복하기를 소망함. 중요시..

개봉동과 장미, 오규원 [현대시]

개봉동과 장미 오규원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 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의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개관 - 성격 : 문명 비판적, 상징적, 주지적 - 특성 ① 구체적 지명을 사용하여 현장감을 부여함. ② 이질적인 소재를 대비시키면서 현대..

강강술래, 김준태 [현대시]

강강술래 김준태 추석날 천 리 길 고향에 내려가 너무 늙어 앞도 잘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드린다 어느덧 산국화 냄새 나는 팔순 할머니 팔십 평생 행여 풀여치 하나 밟을세라 안절부절 허리 굽혀 살아오신 할머니 추석날 천 리 길 고향에 내려가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면서 언제나 변함없는 대밭을 바라본다 돌아가신 할아버님이 그렇게 소중히 가꾸신 대밭 대밭이 죽으면 집안과 나라가 망한다고 가는 해마다 거름 주고 오는 해마다 거름 주며 죽순 하나 뽑지 못하게 하시던 할아버님 할아버님의 흰 옷자락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 도깨비들이 춤추던 대밭을 바라본다 너무 늙어 앞도 잘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면서 강강술래 나는 논이 되고 싶었다 강강술래 나는 밭이 되고 싶었다. 개관..

강강술래, 이동주 [현대시]

강강술래 이동주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목을 빼면 서름이 솟고 백장미(白薔微) 밭에 공작(孔雀)이 취했다. 뛰자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뉘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발 상모가 마구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갈대가 스러진다 기폭(旗幅)이 찢어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개관 - 성격 : 전통적, 비유적, 감각적, 애상적, 낭만적 - 표현 * 세심한 시어의 조탁 *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조화로 춤사위를 묘사함. * 춤의 속도(느림→빠름) 변화에 따라 시상이 전개됨. - 주제 : 강강술래를 통해 느끼는 전통 민속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한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여울에 몰린 은어떼 → 춤추기 위해 모여든 여인들의 모습을 비유함. 생동감 있는 움..

감초(甘草), 김명수 [현대시]

감초(甘草) 김명수 어느 건재약방 천장마다 황지봉투 속에 매달린 감초여 어느 약탕관, 약봉다리 속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감초여 오만한 노란색의 얼굴로 건방지게 들어 있는 감초 토막이여 단맛 하나로 오직 달콤한 맛 한가지로 이 세상 온갖 인간들의 병치레에 군림만 하려드는 감초여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사실은 비웃음인 줄 모르는 감초여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너를 칭송하는 말인 줄만 아는 감초여 네가 없어도, 네가 없어도 사실은 너끈하게 약봉다리가 약봉다리인 감초여 언제까지나 어느 약방 파리똥 앉은 천장마다 매달리려만 드는 감초여, 감초 토막이여. 개관 - 성격 : 냉소적, 비판적 - 표현 : 일상적 사물의 특징에 착안하여 시상을 전개함. 냉소적 어조를 통해 감초와 같은 인간형을 비판함. - 주제 ..

간(肝), 윤동주 [현대시]

간(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개관 - 성격 : 우의적, 의지적, 상징적, 저항적 - 표현 : 동서양의 설화와 신화의 차용 및 접목 두 자아의 대비를 통해 정신적 순결성을 강조함. 화자와 동일시되는 두 대상(토끼-항거의식, 프로메테우스-속죄양 의식)을 등장시킴. - 토끼의 '간'과 프로메테우스의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 생물의 생명을 유..

가즈랑집, 백 석 [현대시]

가즈랑집 백 석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 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 사촌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 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

가정, 이 상, 제웅의식 [현대시]

가정 이 상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 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 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개관 - 주제 : 일상적 삶에의 동경 - 표현 : 이 상의 시는 이 작품을 포함해서 대부분 행과 연의 구분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적 배려로서 문장에 ..

가정, 박목월 [현대시]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개관 - 성격 : 독백적, 상징적 - 중요시구 * 지상 → 삶의 공간(현실세계) * 눈과 얼음의 길 → 얼음..

가재미, 문태준 [현대시]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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