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집 육사 시집, 194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광막한 공간과 아득한 시간을 배경으로 강인한 지사적 의지를 노래한 시다. 화자는 이곳에 서서 태초를 포함한 역사(歷史)를 생각하고, 미래의 찬란한 역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매화 향기’는 ‘고고한 기상, 강인한 기품’ 또는 ‘민족 정기’로 해석된다.
▶ 성격 : 의지적, 저항적, 참여적, 지사적, 미래지향적, 상징적
▶ 어조 : 남성적 어조
▶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전개
▶ 구성 : ① 광야의 원시성(제1연)
② 광야의 광막성(제2연)과거
③ 역사의 태동(胎動)(제3연)
④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그 극복 의지(제4연)현재
⑤ 영광스런 미래의 소망(제5연)미래
▶ 제재 : 광야(曠野)
▶ 주제 : 조국 광복에의 신념과 의지.(새 역사 창조의 의지)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1)역동적 심상이 가장 잘 나타났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들고, (2)그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수사법을 쓰라.
☞ (1)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
(2) 의인법(활유법)
2. 화자가 처한 상황을 대조적 심상으로 표현한 (1)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쓰고, (2)그것이 나타내는 뜻을 쓰라.
☞ (1)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2) 시적 화자가 처한 현재의 상황은 혹심한 추위처럼 가혹하며, 고고한 정신(민족 정기) 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3. ㉠, ㉡이 상징하는 의미를 각각 2-3어절의 말로 쓰라.
☞ (1) ㉠ : 민족사의 새로운 국면.(민족의 구원자, 위대한 민족 시인)
(2) ㉡ : 역사의 현장
4. 이 시에서 다음의 밑줄 그은 말과 그 함축적 의미가 같은 시어를 찾아 쓰라.
☞ 제4연의 ‘가난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제1-3연은 광야의 과거의 역사, 제4연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과 의지, 제5연은 미래의 소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연은 아득한 옛날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광야에는 사람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광야의 원시성을 뜻한다. ‘닭 우는 소리’는 대유법으로, 사람의 자취 또는 생명체를 뜻한다.
제2연은 산맥들이 바다를 향해 형성될 때에도 이 광야만은 침범하지 못했다. 광야의 광막성 또는 신성성을 뜻한다. ‘광야’는 역사의 현장으로 해석함이 좋다. 의인법을 사용하여 역동적 표현을 하고 있다.
제3연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 땅에 강물이 흐르고 길을 열었다. 문명의 탄생을 뜻한다. ‘강물’은 역사 또는 문명을 상징한다.
제4연은 상황의 인식과 현실 극복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평화로운 한반도에 일제의 가혹한 수난이 닥치고, 고고한 정신마저 빼앗길 위기에 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의 씨를 심어야겠다. ‘눈’은 가혹한 시련을 뜻하고, ‘매화향기’는 고고한 기상, 광복의 기운을 뜻하는 것으로 ‘눈’과 대조적 심상이다. ‘노래의 씨’는 가혹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생명의 의지, 또는 생명의 씨앗으로 이해된다.
제5연은 미래 지향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자기 희생을 통하여 이 땅의 후손들이 마음껏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현실을 극한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새 역사의 아침이 도래할 수 있게끔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남성적인 어조로 표현하여 강렬성을 더해 주고 있다.
절정(絶頂)
- 이육사
매운 계절(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문장 12호, 1940.1)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암담한 식민지 시대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그것을 초극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현실적 삶이 위축되어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새롭게 확대된 삶을 위한 전기(轉機)가 마련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수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은 저항시의 백미(白眉)이다.
극한적 한계 상황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자기 관조의 여유, 가열차고 준엄한 선비의 자세, 정연한 한시(漢詩)와 같은 구조, 대륙적이고 남성적인 당당한 목소리, 육사 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남성적, 지사적, 참여적
▶ 어조 : 의지적, 남성적 어조
▶ 구성 : ① 기 : 고통을 겪어야 하는 현실적 위치(제1연)
② 승 : 극한 상황(제2연)
③ 전 : 극한 상황(제3연)
④ 결 : 궁지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식(제4연)
▶ 제재 : 쫓기는 자의 극한 상황.(식민지 통치하의 시대 상황-겨울, 북방, 고원)
▶ 주제 : 극한 상황의 초극 의지.(극한 상황을 초극하려는 강렬한 정신)
▶ 내용연구
1) 구절풀이
① 매운 계절의 째찍 : 일제 치하의 가혹한 탄압을 상징한다.
‘계절’은 시간적 공간, 즉 시대상황의 표현이다.
②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하늘’은 소망, 가능성을 상징하며, ‘고원’은 1 연의 계절(시간), 북방(수평적 공간)에 대비하여 수직적 공간의 끝을 상징한다.
③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 ‘서릿발 칼날진’은 매서움의 느낌을 강화시켜줌. ‘그 위에 서다’ 는 그러한 절박한 상황에 대한 대결 정신을 형상화한 것.
2) 이 시의 시대적 배경과 주제의식
이 시는 1940 년에 발표되었다. 1940년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가장 가혹하던 암흑기였다.
국내의 합법적인 민족 운동은 전혀 불가능하였고, 해외의 독립운동도 간신히 그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바로 민족 말살이라는 극한적 위기 상황이 이 시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 시에서 육사는 바로 그러한 극한적 위기 상황을, 그에 걸맞는 간결하고 예리한 심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역시 이를 초극하려는 강렬한 의지 혹은 정신을 강렬한 상징으로 표상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시의 주제는 극한 상황을 초극하려는 강렬한 정신 혹은 의지가 된다.
3) 육사 시의 문학사적 의의
육사 시가 갖는 우리 문학사, 특히 시사적 의미는 다음 몇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1930년대 전반을 풍미하던 모더니즘의 비인간화 경향에 대한 비판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둘째, 고전적인 선비 의식과 한시의 영향으로 전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셋째, 한국시에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입김을 불어넣었다. 넷째, 죽음을 초월한 저항 정신과 시를 통한 진정한 참여를 보여 주었다. 특히 넷째 측면은 윤동주의 시작과 함께 일제 말 우리 민족 문학의 공백기를 메워주는 중요한 성과라고 할 것이다.
4) 서정적 자아와 심상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조국 상실과 민족 수난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결단의 자리에 서 있는 한 사람의 투사이다.
그는 의존할 아무런 현실적 유대도 없는 극한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고독한 긴장 속에 처해있다. 이러한 긴장감으로부터 남성적인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우리의 근대시가 일반적으로 여성 편향적 성격을 지녔던 데 반해(소월, 만해) 육사의 시는 남성적인 대결 정신과 강인한 대륙적 풍모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두 가지 대립되는 심상의 역설적 통합도 그러한 정신에서 나오는 현실 초극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5) 형식적 특성
이 시는 각 2 행으로 이루어진 연 4 개로 구성되어 있다. 시상은 1 연과 2 연에서 순차적, 점층적으로 전개되다가 3 연에서 전환하고 4 연에서 결말 맺어진다. 이는 한시의 절구의 기승전결식 시상 전개와 일치한다. 이 점에서 이 시는 동양의 고전적 전통에 접맥되고 있다.
6) 상징과 기법
① 남성적 풍모를 보여주는 시어 : 매운, 채찍, 갈겨, 휩쓸려, 서릿발 칼날진 等
② 매운 계절의 채찍 : 공감각적 은유. 미각과 촉각을 결합하여 겨울의 추위로부터 오는 불안의식을 심화하고 있다.
③ 서릿발 칼날진 : 서릿발과 칼날의 시적 효과가 서로 조응하여 매서움의 느낌을 강화시킨다.
④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 : 은유. 겨울과 강철의 매서움과 단단함이라는 복합 심상이 ‘무지개’와 결합하여 유미적 빛깔로 승화되고 있다. ‘겨울’의 이미지는 어두운 일제 치하의 현실을, ‘강철’은 광물성 이미지를 통한 저항 의식을 보여주며, ‘무지개’는 역설적 이미지를 통해 꿈과 희망을 암시한다.
<연구 문제>
1. 극한 상황에 대한 극복 의지가 깨달음의 경지로 나타난 시행을 지적하라.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2. 이 시에서 (1)수평 공간의 한계와 (2)수직 공간의 한계를 표상하는 시어를 각각 찾아 쓰라.
☞ (1) 북방 (2) 고원
3. 이육사의 준열한 선비 정신을 가장 잘 형상화하고 있는 시어를 찾아 쓰라. ☞ 서릿발
4. ㉠의 이유는 무엇인지 60자 내외로 쓰라.
☞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시적 인식의 세계로 끌어들여 정신적으로 초극하기 위해서.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형식은 마치 한시(漢詩)의 절구(絶句)처럼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완벽한 4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앞의 두 연에서는 외적(外的)인 극한 상황을, 뒤의 두 연에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의 시인의 의식을 보여 주어, 이 시가 크게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2연은 외적(外的) 상황의 공간을 점층적으로 더 날카로운 것으로 압축시킴으로써 극한 상황을 구체화시킨다. 즉, ‘북방→고원→서릿발 칼날진 그 위’로 시상이 전개된다.
제3-4연에 가면 외적 상황에서 내적 심리적 상황으로 전이된다. 이 극한적 상황은 너무도 날카로운 것이어서 비켜서거나 물러서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확실한 것은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자신의 의지로 견뎌 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긴장감 속에서 자기 희생의 결단이 내려진다. 모든 가능성이 박탈된 극한적 한계 상황 아래에서의 자기 초월 의지가 드러나 있다.
이 시에서 핵심이 되는 시구는 ‘강철로 된 무지개’이다. 강철과 무지개, 즉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두 이미지의 결합이 그것이다. 강철의 단단함과 차가움의 이미지에 칠색 무지개의 화려한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는 비극적 자기 결단의 순간에 느끼는 황홀감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된다.
청포도(靑葡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문장 7호, 1939.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저항 시인 이육사의 대표작의 하나로, 다른 작품과는 달리 치열한 투쟁의 의지가 내면화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청포도’라는 사물을 통하여 시의 밝고 선명한 분위기를 형성하여 억압된 시대의 장벽을 넘어서 평화로운 삶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잔잔한 마음의 자세로 노래하고 있다.
▶ 성격 : 상징적, 감각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특징 : 선명한 색채의 대조
▶ 구성 : ① 청포도로 표상되는 고향을 떠올림(제1연)
② 청순한 시간으로 나타나는 고향(제2연)
③ 아름다운 공간으로 나타나는 고향(제3연)
④ 전설의 내용(제4연)
⑤ 화자가 소망하는 세계(제5연)
⑥ 미래에 대한 순결한 소망(제6연)
▶ 제재 : 청포도
▶ 주제 : 조국 광복의 염원.(평화로운 삶에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청포도’가 상징하는 의미를 10자 내외로 쓰라.
☞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
2. 이 시의 대조적 심상의 시어나 시구들을 찾아내어 구별하여 색채별로 쓰라.
☞ * 푸른빛 :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청포
* 흰빛 :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
3. ㉠의 의미를 30자 내외로 설명하라.
☞ 어두운 역사 속에 괴로운 삶을 겪는 민족이나 지사의 시련
4. 이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를 두 문장으로 써 보라.
☞ 이 시에서 과거는 청신한 느낌을 주는 푸른빛의 이미지로, 미래는 순결한 느낌을 주는 흰빛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와 함께 고향의 맑고 깨끗한 이미지로써 조국 광복이 된 평화로운 세계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감상의 길잡이>
전 6연으로 된 이 시는 두 연씩 짝을 이루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겠다. 일제하에서 쓰여진 시 같지 않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밝다.
‘내 고장’은 바야흐로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며, 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는 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라기보다 ‘전설’이다.
첫째 부분(제1-2연)에서, 화자는 ‘청포도’를 통해 밝은 미래가 담긴 ‘전설’을 보고 있다.
이 ‘전설’은 그의 시 꽃에서는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으로 나타나는데, 이 시의 두 번째 부분(제3-4연)에 그 전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하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청포를 입은 손님’은 ‘청포도’에서 유추된 개념인 바, 그의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가까운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부분(제5-6연)은 그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리라는 굳은 믿음을 근거로 ‘손님’을 위해 작은 향연을 준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맞는 손님은 너무도 오랫동안 화해롭고 풍요로운 삶을 상실한 채 제 땅에서 유배당한 ‘고달픈’ 나그네이다. 마땅히 주인 노릇을 해야 할 그가 일제에 의해 나그네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 당시의 현실인 셈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이 시는 그것이 지닌 의미 이상으로 뛰어난 시적 표현을 보여 준다. 이 시에서 생생한 감각적 표현을 무시한다면 시를 읽는 즐거움은 반감되고 만다.
‘청포도’, ‘하늘’, ‘푸른 바다’, ‘청포’로 대표되는 푸른빛과 ‘흰 돛단배’,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으로 대표되는 흰빛의 밝고 선명함은 이루어져야 할 아름다운 꿈의 빛깔이기도 한 것이다.
꽃
-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육사시집(陸史詩集)」(1946)>
* 맹아리 : 꽃망울의 경상북도 방언.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일제말 국권 상실의 시기에 독립을 위해 몸바친 시인의 강렬한 의지가 표출된 작품이다.『절정』이 한계점을 인식하고 비극적 초월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삶의 비약적 상승(上昇)과 희망을 노래한 것으로 미래지향적이다. 그런 점에서『광야』와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자가 처한 위치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화자는 하늘도 끝난 곳,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곳, 추운 북쪽 툰드라의 척박한 땅에 있다.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저버리지 못할 약속’처럼 다가올 봄날을 위해 그는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날을 불러보고 있다.
▶ 성격 : 관조적, 영탄적, 의지적, 상징적, 저항적
▶ 경향 : 현실 참여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역동적 심상
▶ 운율 : 3음보의 변형
▶ 어조 : 강인하고 의지적인 남성적 어조
▶ 표현 : 상징에 의한 암시적 표현
▶ 특징 : 희망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시
▶ 시상 전개 : ① 점층적 전개
② 각 연이 서경에서 서정으로 표현됨.
▶ 구성 : ① 새 생명 탄생을 위한 노력(제1연)
② 새 생명 탄생을 위한 인고(제2연)
③ 새 생명 탄생의 환희(제3연)
▶ 제재 : 꽃
▶ 주제 : 새 생명 탄생의 의지.(참된 삶에 대한 의지와 기다림)
<연구 문제>
1. 이 시의 지배적 심상에 해당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 꽃
2. ㉡‘저버리지 못할 약속’은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인가? 본문에 나오는 낱말을 이용하여 쓰라.
☞ 극한 상황에서도 꽃을 피우겠다는 약속
3. ㉠, ㉢이 상징하는 의미를 쓰라.
☞ (1) ㉠ : 죽음과 고난을 이겨내는 강렬한 생명력과 의지.(새 생명)
(2) ㉢ : 생명력과 번영.(광복의 날)
4. 이 시의 화자는 어떤 사람인지 30자 내외로 쓰라.
☞ 암담한 현실을 초극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 의지를 지닌 사람.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적 상황 전체가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그리고 각 연의 첫 3행은 상황, 마지막 행은 화자의 의지(意志)를 표현하여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제1연은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밝은 내일, 즉 광복을 위하여 하루하루의 삶을 바쳐 정진하겠다는 것이다. 하늘도 끝나고 비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때에도 역설적으로 꽃은 피지 않는가? 결코 절망할 수는 없다. ‘동방’은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한반도를 가리킨다. ‘하늘도 다 끝나고’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한 상황의 표현이다. ‘꽃’은 새 생명의 탄생으로 해석된다.
제2연은 제1연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구체적이다. 추운 겨울에도 제비 떼가 까맣게 날아오는 봄을 기다리면서 꽃 맹아리가 옴작거리듯이 화자인 나도 지금은 가혹한 상황이지만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다.
제3연은 억눌림과 인고(忍苦) 끝에 찾아올 광복의 날에 환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은 억눌림 속에서의 몸부림을 뜻하고, ‘꽃 성(城)’은 혹독한 시대 상황이 걷히는 날, 즉 광복의 날을 뜻하며, ‘나비’는 광복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우리 민족과 동일시한 것이다.
이 시는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한 상황으로 인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인은 겨울과 새벽을 고통의 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교목(喬木)
-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인문평론 (1940.7)>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를 이해하려면 제재인 교목(喬木)과 화자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교목은 ‘높게 우뚝 서 있는 나무’로서, 화자와 동일시(同一視)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일제 치하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굽힘이 없이 살고자 한 시인의 삶의 자세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육사는 시와 생활을 일치시킨 시인이다. 이 시는 그의 생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육사는 20여 년간을 독립투쟁을 하다가 무려 17회에 걸쳐서 투옥(投獄)되었다. 어려운 시대를 사는 시인의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 주는 시라고 하겠다.
▶ 성격 : 지사적, 극기적(克己的), 상징적, 저항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어조 : 강인하고 의지적인 남성적, 부정적 어조
▶ 표현 : 상징에 의한 암시적 표현
▶ 특징 : ① 절제(節制)된 언어를 사용함.
② 각 연을 부정어로 종결시킴으로써 저항의지를 보임.
▶ 시상 전개 : 점층적 전개
▶ 구성 : ① 굽힐 수 없는 의지(제1연)
② 후회 없는 삶의 결의(제2연)
③ 극한적 상황에 대처(제3연)
▶ 제재 : 교목(喬木)
▶ 주제 : 극한 상황 대처를 위한 결의.(현실에 굴하지 않는 꿋꿋한 의지)
<연구 문제>
1. 이 시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저항 정신을 노래한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 문장 구조상의 특징을 설명하라.
☞ 모든 문장을 ‘말아라, 아니라, 못해라’ 등의 부정문(否定文)으로 표현했다.
2. 다음 시의 밑줄 그은 구절과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를 둘 찾아 쓰라. ☞ ‘세월’, ‘바람’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
3. 이 시는 일제하의 저항시다. (1)이 시에서 핵심이 되는 시구를 찾아 (2)그것이 상징하는 뜻을 쓰라.
☞ (1) ‘끝없는 꿈길’
(2) 조국 독립에의 의지.(끊임없는 독립 투쟁)
4. 이 시의 화자는 어떤 사람인지 이 시의 제목을 넣어 10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 ‘교목’은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라는 나무이다. 화자는 자신을 교목에 빗대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화자는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불태우면서 죽음으로써 대처하겠다는 준엄한 저항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각 연의 끝을 ‘말아라, 아니라, 못해라’ 등의 부정어(否定語)를 사용함으로써 강인한 저항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제1연은 현실에 대처하는 시인의 의연한 자세를 나무로 형상화하였다. 화자는 시련을 당하여 불타지만, 당당하게 맞서서 푸른 하늘을 향하여 우뚝 서 있겠다는 것이다. 비굴하게 자신의 의지를 굽혀 가면서 개인적인 영화(榮華)는 누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제2연은 암담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영화를 버리고 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택했지만 후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화자인 교목이 ‘꽃’ 대신 ‘거미줄’을 휘두르고 해방과 독립을 찾아가는 길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길이 의(義)롭기 때문이다. ‘낡은 거미집’은 제1연의 ‘꽃’과 대립되는 이미지로 궁핍한 삶을 뜻하며, ‘끝없는 꿈길’은 자유, 해방 또는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을 뜻한다.
제3연은 화자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가혹한 세월에 맞서 자신의 정열을 불태우면서 독립을 향해 가는 길에 극한적인 상황이 오면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거꾸러져 죽을지언정 의지를 버리지 않겠다. 그러니 이 결심은 어떠한 탄압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검은 그림자’는 암담한 상황, 절망적 상황으로 해석이 가능하고, ‘호수’는 물의 이미지로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바람’은 외부의 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제1연의 ‘세월’에 상응하는 이미지다.
이 시는 밖을 향한 목소리가 아니라 화자의 내면을 향한 다짐이며,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릴 수 없다는 극기(克己)의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많은 문인(文人) 또는 지사(志士)들이 탄압에 못이겨 결국 일제에 굴복하고 친일(親日)로 기울었으나, 이육사는 끝까지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했다. 이러한 시인의 내면 세계를 이 시에서 볼 수 있다.
<맥락읽기>
1. 화자는? ☞ 나? 시인? 나오진 않네!
2. 제목으로 비추어 봤을때 화자가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 교목
3. 시 속에서 ‘교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 1)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2)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4. 그렇담, 교목이 뭐지? 의미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사잔을 이용해 찾아보자. ☞ 줄기가 곧고 키가 큰 나무
# 여기서 우리는 화자가 노래하고 있는 대상이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선’ 교목이란 걸 알았다.
5.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화자는 단지 그 교목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교목’이 어떠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부분을 찾아볼까?
☞ 봄이 되어도 꽃피지 말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말아라.
6. 실제 교목이 그럴 수 있을까? 화자의 교목에 대한 바램은 화자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맞아요. 화자도 교목처럼 우뚝 남아서서 봄에도 꽃피지 않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결국엔 화자의 감정을 교목의 모습으로 말하고 있네.
# 자,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지. 시의 세부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생애’를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
7. 1연에서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의 의미를 알아볼까?
☞ 세월에 불탄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극복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 음 그렇게 볼 수 있겠네.
8.. 그런데 교목처럼 우뚝 남아 서자는 화자의 의지는 파악되었는데 왜 ‘봄에도 꽃피진 말아라’ 했을까? ‘봄에 꽃이 핀다’는 일반적 의미는?
☞ 1) 생명의 탄생
2) 번영과 번성(부귀 영화)
9. 그러면 ‘꽃피지 말아라’의 의미는?
☞ 1) 생명을 포기하여 꽃을 못 피울 망정 의지를 버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2) 부귀 영화를 거부하는 것
10. 2연 1행의 의미는? ☞ 화자의 궁핍한 삶
11. ‘끝없는 꿈길’의 의미는?
☞ 화자가 지닌 굳은 신념과 의지, 이상
12. ‘검은 그림자’의 의미는?
☞ 교목의 그림자이자 화자 자신의 그림자
13. ‘검은 그림자가 쓸쓸하면’의 의미는? 우리는 어떠할 때 쓸쓸해질까?
☞ 1) 외로울 때
2) 친구가 없을 때
3)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없을 때
# ‘검은 그림자가 쓸쓸하면’의 의미를 정리해보면?
― 자신의 이상과 신념이 견디기 어려운 유혹과 시련에 부딪혀 자신의 의지가 흔들리는 때
14. ‘호수 속 깊이 거구러져’의 의미는?
☞ 화자의 죽음. 다시 말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적극적 의미다.
15. ‘바람’의 상장적 의미는?
☞ 화자의 굳셈을 굽히려는 외부의 힘 : 유혹과 모진 시련
16. 이 시에서 화자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 부귀 영화와 어떤 영예로움도 거부하고 낡은 거미집의 상황에 후회하지 않고 그가 품었던 이상을 가지면서 외부의 힘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의
17. 이 시의 주제는?
☞ 삶을 포기하면서 까지 자신의 의지를 지키고자하는 결의
황혼(黃昏)
- 이육사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 5월의 병상(病床)에서
(신조선, 1935.12)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배경인 ‘골방’과 ‘황혼’의 함축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골방’은 화자가 처해 있는 밀실(密室)이지만 도피의 공간이 아니고, 번민과 고뇌를 통하여 지구의 반쪽을 내다볼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다.
‘황혼’은 스스로는 사라지면서도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품안에 안을 수 있는 사랑, 평화, 안식의 시간을 뜻한다.
▶ 성격 : 서정적, 상징적
▶ 어조 : 독백과 기원의 어조
▶ 특징 : 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함.
② 관념을 이미지화하여 표현함.
▶ 표현 : 상징과 비유(의인, 직유)
▶ 구성 : ① 자신과 인간의 처지 인식(제1연)
② 인간에 대한 애정의 갈망(제2연)
③ 애정의 대상 제시(제3,4연)
④ 아쉬움과 내일의 기대(제5연)
▶ 제재 : 황혼(黃昏)
▶ 주제 : 따뜻한 인간애(人間愛).(황혼을 통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추구)
<연구 문제>
1. 이 시의 시작 동기가 압축되어 나타나 있는 시행을 찾아 쓰라.
☞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2. 1920년대 초기의 낭만파 시인들이 흔히 쓰는 ‘밀실(密室)’과 이 시의 ㉠은 의미상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70자 내외로 설명하라.
☞ 1920년대의 ‘밀실’은 도피처로서의 폐쇄적 공간을 뜻하지만, 이 시의 ‘골방’은 지구의 반쪽을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열려진 공간이다.
3. 이 시의 ㉡이 상징하는 의미를 쓰라.
☞ 현실과 이상 세계의 통로.(죽어가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
4. 이 시에서 ㉢은 여러 가지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1)그러한 시어들을 찾아 쓰고, (2)그 이미지들이 지닌 공통점을 쓰라.
☞ (1) 별들, 수녀들, 수인들, 행상대, 토인들
(2) 이 이미지들은 소외 당하고 고통 받는 존재라는 공통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시적 발상의 계기는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5월의 어느날 골방의 커튼을 걷으며 황혼에 젖은 바다와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본다. 보기에 따라 아주 예사로운 이 정경은 그러나 시인에게 심상치 않은 인생의 기미를 느끼게 해 준다.
김영무 교수에 의하면, “황혼은 죽어 가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안아 들이는 크나큰 사랑”이며 그는 자신이 ‘황혼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아의 밀실[골방]의 커튼을 열고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날 별과 외로운 수녀, 감옥의 죄인들, 사막의 행상대, 아프리카의 토인 등 모든 외롭고 괴로운 존재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초연하고도 관조적인 태도로 막연한 인류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버림받고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뜨거운 입술을 보내는 점이다. 입맞춤의 대상은 제2,3,4연에 열거되고 있는데, 그것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에서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제2연의 ‘모든 것’이 제3연에서는 ‘별들’, ‘수녀들’, ‘수인(囚人)들’로 제시되고, 제4연에서는 ‘행상대’, ‘토인들’, ‘지구의 반쪽’으로 확산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점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는 결국 ‘골방’이라는 좁은 공간으로부터 ‘지구의 반쪽’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골방’은 1920년대의 시인들의 시에 흔히 나타나는 ‘밀실’이나 ‘동굴’의 폐쇄적인 공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지구’라고 하는 대신 ‘지구의 반쪽’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무엇보다 제4연에 열거된 ‘낙타 탄 행상대’나 ‘활 쏘는 토인들’의 의미를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우리는 앞에서 그의 사랑의 대상이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이기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온통 제국주의의 활극장을 이루고 있을 때, 그들은 아직도 ‘낙타’를 타고 ‘활’을 쏘는, 소위 비문명국으로 남아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당시의 우리 나라도 비슷하다. 세계가 온통 지배자의 나라와 피지배자의 나라로 양분되다시피 한 사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구의 반쪽’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연보(年譜)
- 이육사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하자.
나는 진정 강언덕 그 마을에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몰라.
그러기에 열여덟 새 봄은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내고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
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 했나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고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간(肝) 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졌다.
눈 위에 걸어가면 자욱이 지리라.
때로는 설레이며 바람도 불지.
(시학 창간호, 1939.4)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육사시에서 쉽게 떠올리게 되는 강인한 남성적 어조 대신 화자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고통과 질곡, 불안 의식 등을 잔잔한 어조로 솔직 담백하게 펼쳐 보여 주는 작품이다. 주지하다시피 육사는 40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다.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 대륙을 전전하며 항일 독립 운동에 일생을 바친 그는 자그마치 열일곱 번이나 일경에 체포되어 구금, 투옥 생활을 했으며, 결국은 낯선 중국 땅에서 옥사당하고 말았다. 이같이 화려한 항일 무장 투쟁 속에서도 그는 한 인간으로서 겪던 고뇌와 좌절을 솔직히 표출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연보>와 <노정기(路程記)> 등을 들 수 있다.
각 연이 2행으로 된 전 8연의 구성으로, 육사시 특유의 정형성을 보여 주는 이 시는 내용상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4연의 앞 단락은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흘러간 세월의 덧없음을 표출하고 있다.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화자에게서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나아가 ‘강언덕 그 마을에 /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모’른다고 인식할 뿐 아니라, ‘열여덟 새 봄은 /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냈다고 하면서, 고통과 슬픔 속에 흘러가 버린 자신의 삶을 슬픈 눈으로 되돌아 보기도 한다. 그러던 화자는 마침내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라며 극한적인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게 된다.
5~8연의 뒷 단락은 현재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과 질곡이 나타나 있다. 힘겨운 독립 투쟁의 유랑 생활을 하는 그이기에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어’ 있을 뿐이다. 또한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 간 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라는 구절에서 ‘서리’는 그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해 주며, ‘단풍’은 그가 자신의 삶을 이미 퇴색해 버린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지’는 고통의 극한에 자신이 처해 있음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끝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슬픈 긍정과 자기 위안을 보내는 비장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노정기(路程記)
- 이육사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들여다보며
(자오선, 1937.12)
<감상의 길잡이>
육사시는 조국의 상실이라는 극한적 상황에 의한 비극적인 자기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초기시에 주로 나타나는 심상은 ‘어둠’의 이미지이다. 조국을 잃고 세계와 단절되어 빛을 잃은 그가 어둠 속을 걸어온 자신의 삶의 역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노정기>이다.
이 시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시적 화자의 노정은 ‘물’의 흐름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마치 깨어진 뱃조각’처럼 여기저기 유랑하고 있기에, ‘흩어져 어설퍼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이야말로 다 부서진 티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화자는 행여 젊은 날은 어떠했을까 하고 뒤돌아 보지만,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쩡크’와 같은 고통이었으므로 그는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오른 상처만을 확 인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고, 현재의 삶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젊은 시절이지만, 화자에게는 그것이 항시 고통스러운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나날이었기 때문에, ‘남십자성이 비쳐주도 않’는 ‘흐릿한 밤’이요, ‘산호도는 구경도 못하는’ 고달픔일 수밖에 없었다. ‘산호도’는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시계(視界)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막막한 곳을 찾아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을 이끌고 가려고 하지만,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같이 ‘다 삭아 빠진 소라 껍질’에 붙어 살아온 그로서는 그저 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난 삶의 역정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고뇌 어린 삶의 역정기로서의 이 시는 그 전 노정을 ‘물’의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물’과 관련된 심상은 ‘배’․‘어촌’․‘포범’․‘서해’․‘밀항’․‘짱크’․‘조수’․‘암초’․‘산호도’․‘밀물’․‘소라’․‘항구’ 등으로, 특히, 마지막 시행의 ‘흘러간 생활’에서 ‘흘러간’이라는 ‘물’의 이미지를 그의 생활에 투사하여 귀결시킴으로써 화자는 이러한 노정을 통하여 비극적인 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치열한 현실 인식에서 배태된 이 비극적 자기 인식은 마침내 적극적인 저항 의지로 표출, <광야>, <절정> 등으로 가시화됨으로써 육사는 항일 저항 문학의 거대한 정점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자야곡(子夜曲)
- 이육사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막힐 마음 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문장 23호, 1941.4)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노정기>와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실향(失鄕)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고향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게 된 화자는 ‘수만호 빛이래야 할’ 고향에 대한 바램을 갖고 있지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른’ 현실의 고향을 생각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그리고 ‘파이프’라는 시어를 통해 화자가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화자는 어두운 밤, 어느 항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삭막해져 가는 고향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파이프’의 연기처럼 사라져 간 표랑(漂浪) 생활은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지도록 고향을 찾고 있지만, 그 고향은 이미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없는 빼앗긴 땅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이미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행위이다. ‘파이프’에 타오르는 ‘꽃불’은 3연의 ‘연기’와 연관된다. 화자에게 있어서 이 담배는 ‘꽃불’, ‘연기’가 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념의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꽃불’을 1연의 이미지와 연관시키면 ‘수만호 빛’과 서로 상통하게 된다. 이 때의 불은 고향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희망적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꽃불’이 향기롭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희망적 이미지는 쉽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시는 담배의 불빛과 연기가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을 상실한 화자는 4연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 상황을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라는 육사 특유의 역설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포근히 안길 공간, 즉 고향을 상실한 절규로, 그는 결국 ‘매운 술을 마시’며 절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슬픔의 격정은 5연에서 ‘강물’처럼 표랑의 의미를, ‘달’처럼 애상과 정감에 젖은 짙은 객수(客愁)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숨 막힐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슬픔의 격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는 파이프에서 타오르는 불빛 같은 향기로운 희망과 의지를 새롭게 가다듬는다.
물론 화자가 고향을 떠나 북방 이국의 객창에서 느끼는 이러한 실향 의식은 비극적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수만호 불빛’이 사라진 대신 ‘이끼’만 푸르게 자라난 고향을 원형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바람 불고 눈보래 치는’ 암울한 역사 현장 속으로 달려나가는 적극적 저항 의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내 소녀
- 오일도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
박사(薄紗)의 아지랭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시원 4호, 1935.8)
<감상의 길잡이>
1935년 문예지 시원을 창간한 오일도는 애상적이며 동양적인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여 기교를 탐내지 않는 소박한 시풍으로 청춘의 번뇌와 시대의 우수(憂愁)를 노래한 시인이다.
이 시는 말없음표로 대신한 한 개 연을 포함하여 모두 3연 38자의 지극히 짧은 형식으로 ‘읽는 시’가 아닌 ‘보는 시’의 전형(典型)이 된다. 떠나간 소녀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이 고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하는 이 시의 둘째 연은 바로 잊을 수 없는 ‘그 소녀’에 대한 화자의 간절한 그리움과 아지랑이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자, 소녀의 행방을 독자의 상상에 맡겨 버리는 표현이기도 하다. 셋째 연의 ‘박사’는 생견(生絹)으로 얇게 짠 옷감을 뜻하는 것으로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박사 같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는 감각적 표현이다.
성씨보(姓氏譜)
- 오래인 관습, 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 오장환
내 성은 오씨(吳氏).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룰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 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구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조선일보, 1936.10.10)
<감상의 길잡이>
오장환이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면서부터이지만,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한 것은 1936년 낭만,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월북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상재한다. 첫 시집 성벽은 1937년 2월까지 쓴 작품들을 모은 것이고, 둘째 시집 헌사는 그 이후부터 1939년 8월까지의 작품들을, 세 번째 병든 서울은 해방 이후부터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은 몇 작품을 제외하면 해방 전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시기적으로는 병든 서울보다 앞선다.
오장환의 시 세계는 대개 세 경향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성벽과 헌사에서 보여 주는 비애와 퇴폐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 지향의 세계요, 둘째는 나 사는 곳의 향토적 삶을 배경으로 한 순수 서정시의 세계요, 셋째는 병든 서울이 보여 주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세계이다. 그의 문학은 과거의 관습과 전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서구적 취향에 몰두하였다가 다시 고향을 발견하는 도정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오장환의 시 세계는 순수 모더니즘의 성격에 훨씬 가깝다.
이 시는 다음의 <성벽>과 함께 그의 초기시 세계를 뚜렷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에게 있어서 ‘성씨보―족보’란 한갓 ‘오래인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왜 ‘오가(吳哥)’인지 모른다. 단지 조상 때부터 그렇게 불려 왔기 때문이다. 족보를 살피자면 중국 청인(淸人)을 조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믿을 수 없다. 족보란 얼마든지 허위로 작성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매매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족보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역사 전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역사란 소라 껍데기처럼 속에 비해 무척 무거운 짐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는 분명한 어조로 단언한다.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라고.
이러한 극단적인 전통 부정은 이상(李箱)에게서 보듯, 모더니즘의 한 형태로서 자폐적 언어 유희로 나타날수도 있지만, 오장환의 전통 부정은 나름대로의 역사 인식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가계보’를 작성한 먼 조상을 ‘대국 숭배를 유심히 하고 싶어서’ 족보를 허위 작성하거나 매입한 ‘알 수 없는 종자’로 파악한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실은 자신이 지금 속해 있는 식민지 현실을 있게 한 모든 조상에 대한 부정이자, 그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러한 극단적인 부정의 내부에는 강한 혁명의 에너지가 살아 숨쉬고 있기 마련이다. 단지 오장환에게 있어서는 그 에너지가 본격적으로 분출되기까지의 시간이 다른 프롤레타리아 시인들보다 조금 더 걸렸을 뿐이다.
모촌(暮村)
- 오장환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 밑 양주(兩主)*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시인부락, 1936.11)
* 양주(兩主) : 바깥 주인과 안 주인, 즉 부부를 이르는 말.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1936년 4월 <시인부락>에 발표하였고, 시집 <성벽(城壁)>에 수록된 오장환의 초기시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시기는 시인의 문학 청년기에 해당하며, 근대 도시 현실의 체험과 모더니즘 문학의 영향 아래 새로운 시대 정신을 모색하던 때이다.
▶ 성격 : 서정적, 감각적
▶ 표현 : ①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한 서술 형식
② 행의 전개에 따라 의미가 점점 확장됨.
▶ 구성 : 단련시(單聯詩)
▶ 제재 : 이촌(離村)
▶ 주제 : 낡은 세계의 청산과 새로운 세계의 모색
<연구 문제>
1. 이 시는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하고 생활에 대한 설명도 없이 서술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인의 의도는 무엇인가? 25자 내외로 쓰라.
☞ 닫힌 공간으로서의 정태적 현실을 반영하려는 의도.
2. 다음은 오장환의 시 북방(北方)의 길이다. 모촌(暮村)과의 공통점을 창작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 관련하여 100자 내외로 쓰라.
☞ 극심한 가난과 가혹한 식민지라는 시대적, 사회 현실 때문에 자신들의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운명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 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
3. 이 시에서 시인이 극복하고자 하는 대상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시어를 찾아 쓰라. ☞ 움막
4. 이 시는 낡고 부정적인 세계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 부정의 대상이 무엇인지 10자 내외로 쓰라. ☞ 유고적인 관습과 전통
<감상의 길잡이>
식민지 현실 속에서 삶의 근거를 잃고 떠돌 수밖에 없던 1930년대 유랑 농민의 모습이 그려진 작품이다.
이용악의 낡은 집에서도 이와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전면에 나서지 않을뿐더러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정황을 묘사하는 냉정한 태도로 일관한다. 따라서, 대상으로 다루어진 부부와 그를 둘러싼 상황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 시의 서사적 골격은 비교적 단순하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 밑 양주(兩主)*는 밤새워 싸웠다.’와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움막을 작별하였다.’로 요약될 수 있겠다. 이 간단한 골격 속에 많은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박속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던 궁핍한 생활에 대해, 바가지를 꿰어 차고 유랑 걸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생활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지만, 이 생략과 응축으로 오히려 이 시는 효과적인 표현을 얻고 있다.
싸우고 작별하는 이 행위가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과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의 쓸쓸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단순한 배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부부의 심리적 분위기까지 느끼게 한다.
황혼(黃昏)
- 오장환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모 일도 안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워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알로 깔리어 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기-ㄴ 그림자는 군집의 대하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우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히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흐터저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띠엄띠엄 서 있는 포도(舖道)우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어 나의 마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 보낸다. 정든 고삿*.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어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鶴)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墮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시집 성벽, 1937)
* 저자 :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 큰 길거리에서 반찬거리를 사고 파는 장(場).
* 전서구 : 소식을 전하는 비들기.
* 고삿 : 마을의 좁은 골목. 고샅이 표준말.
* 아베 : 아버지.
<감상의 길잡이>
1930년대에 들어서 지식인 실업자[룸펜]들의 급격한 증가는 많은 문학 작품들의 주요 제재로 등장하는데, 소설로 보자면 채만식(蔡萬植)의 <레디메이드 인생>(1934), 유진오(兪鎭午)의 <김강사와 T교수>(1935) 등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문제는 1930년대에 들어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경제 공황으로 말미암아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 식민지 모순에 근본적으로 근거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1930년대 후반부터의 문학 세계는 그 동안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현실 인식이 내면화되어 상징적으로 표출되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먼 역사로의 도피이거나, 일상사의 사소함 속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획득하는 자기 침잠의 세계로 전환된다.
이 시는 이렇듯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지식인이 겪는 무력감과 소외감을 ‘황혼’의 이미지와 연관시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정든 고삿,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의 고향을 떠나온 ‘병든 사나이’로서 황혼의 거리에서 자신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서 있다. 일을 찾아 직업소개소에 들려 보지만, 자신과 같이 병든 사람이 할 일이라곤 전혀 없다. 자신의 키보다도 작은 가로수에라도 의지하고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는 병약한 몸으로서 거리를 나서 보았지만, ‘공복의 가는 눈’만 겨우 뜰 수 있을 뿐, 근육은 풀어져서 ‘힘없는 분노와 절망’ 속에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적 화자에게도 아름답던 고향의 추억은 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었지만, 이제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병든 학일 뿐이다. 그러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지만, 도시의 현실은 어떤가.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서 더 이상의 병약한 노동력은 요구하지도 않는다. 시적 자아는 비로소 자신의 ‘타태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져 보지만, 아무도 자신을 보아 주지 않는 황혼 속에서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릴 뿐이다.
이 시는 이처럼 황혼의 어스름에서부터 밤이 밀려오기까지의 시간적 경과 속에서 시적 자아가 가로수에 가만히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과 그 속에서 느끼는 지식인의 무기력과 절망감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작품 속에 지식인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젊음의 자랑과 희망’, ‘타태와 무기력’ 등의 이미지와 ‘노등’․‘포도’․‘전서구’․‘학’ 등의 시어는 그를 통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지식인적 성격을 어느 정도 드러내 준다. 한편으로 이 시는, 과거의 밝은 이미지와 현재의 어두운 이미지의 겹침 효과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전환하는 ‘황혼’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잘 조화되어, 시적 자아가 처한 비극적 환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날마다 야위어가는’ ‘병든 학’,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등의 구절에서 보듯, 그러한 비극적 환경이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식민지 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근거한다는 부분적인 표현은 1930년대 후반의 한국시의 내면화된 현실주의적 특성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소야(小夜)의 노래
- 오장환
무거운 쇠사슬 끄으는 소리 내 맘의 뒤를 따르고
여기 쓸쓸한 자유(自由)는 곁에 있으나
풋풋이 흰눈은 흩날려 이정표(里程表)* 썩은 막대 고이 묻히고
더러운 발자국 함부로 찍혀
오직 치미는 미움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
어메야, 아직도 차디찬 묘(墓) 속에 살고 있느냐.
정월(正月) 기울어 낙엽송(落葉松)에 쌓인 눈 바람에 흐트러지고
산(山)짐승의 우는 소리 더욱 처량히
개울물도 파랗게 얼어
진눈깨비는 금시로 나려 비애(悲哀)를 적시울 듯
도형수(徒刑囚)*의 발은 무겁다.
(사해 공론, 1938.10)
* 이정표 : 육로(陸路)의 이정을 기록한 일람표. 정리표(程里表).
* 도형수 : 조선 시대의 오형(五刑)의 하나. 곤장 10대와 복역 반 년을 한 등급으로 하여, 1년에서 3년까지의 5등급으로 나눠져 있었음.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을 ‘도형수’라고 하고 있다. 그런 그가 ‘무거운 쇠사슬’을 끌고 ‘차디찬 묘’ 속에 있는 ‘어메’를 찾아 눈길을 편력한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이 시를 이해하는 관건(關鍵)이다. 이것을 알면 ‘쓸쓸한 자유’, ‘더러운 발자국’, ‘치미는 미움’ 등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조건을 생각할 때 눈 위에 찍힌 ‘더러운 발자국’은 일제의 발자국일 터이고, ‘치미는 미움’도 일제에 대한 분노일 것이 분명하다. 결국 그런 마음으로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는 것인데, ‘낯선 집’은 바로 왜놈의 집일 것이다. 일제하에서 이만한 시가 쓰여진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고 하겠다.
▶ 성격 : 감각적
▶ 표현 : 시각과 청각에 의한 감각적 표현이 두드러짐.
▶ 구성 : 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짐(제1연)
② 도형수의 무거운 발길(제2연)
▶ 제재 : 잃어버린 모성
▶ 주제 :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비애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을 ‘도형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도 죄수인 그가 ‘무거운 쇠사슬’을 끌고 눈길을 편력한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6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 실제로 그가 죄수라는 뜻이 아니라, 식민지의 굴레를 쓰고 형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화자의 자기 인식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2. 이 시에서 화자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두 시어를 찾아 쓰라. ☞ 미움, 비애
3. 이 시에서 정서가 투영된 대상과 화자와의 관계를 두 문장으로 설명해 보라.☞ 처량한 산짐승의 울음 소리나 파랗게 얼어 버린 개울물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화자의 심리 상태가 대상물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대상은 화자의 심리를 반영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화자는 ‘도형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실제 죄수라는 뜻이 아니라 식민지의 질곡(桎梏) 속에서 죄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시인(화자)의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무거운 쇠사슬’과 같은 고난을 끌고 식민지 현실을 헤쳐가는 화자에게 설령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쓸쓸한 자유’일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정표를 들여다 보지만, 그것은 이미 썩어 흰눈 속에 파묻혀 버렸을 뿐 아니라 ‘더러운 발자국’까지도 함부로 찍혀 있다. 그 때, 그는 가슴 속으로부터 ‘치미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갑자기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지만, 그런 행위를 비웃듯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개가 짖는’ 소리뿐이다.
이제 화자는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러한 길을 따라 어머니가 묻혀 있는 ‘차디찬 묘’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큰 꿈을 안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정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낙엽송에 쌓인 눈’은 바람에 흩어지고, 어디선가 울부짖는 ‘산짐승의 우는 소리’는 더욱 처량하게 들려온다. 개울물은 파랗게 얼어 있고, 하늘에선 당장이라도 진눈깨비가 쏟아져 자신의 ‘비애를 적시울 듯’하기만 하다.
여기서 ‘낯선 집 울타리에 던지는 돌’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먼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낯선 집’은 일본인들의 집으로, 눈 위에 찍힌 ‘더러운 발자욱’은 일제의 발자욱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치미는 마음’이라는 구절도 역시 일제에 대한 분노로 해석될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 시를 항일 저항시의 하나로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난점이 뒤따른다. 우선 ‘돌’을 던진 사람은 분명 ‘도형수’인 화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돌을 던진 그의 행위가 역사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의식의 결과였다면, ‘돌’을 던지고 난 후에는 적어도 자신의 행위를 적어도 한 가닥 긍지로 인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산짐승의 우는 소리’만이 처량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행위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대응 의식의 소산이라기보다는 현실 상황에 대한 심한 좌절감을 느낀 화자가 다만 자신의 울분에서 벗어나고자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인 행동임이 분명하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장환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헌사(獻詞)를 발간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순수 서정 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고향 앞에서
-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잣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인문평론, 1940.4)
* 상고(商賈) : 장수.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향토 망경시(鄕土望景詩)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가 고향 앞에서로 개제(改題)한 작품이다.
고향을 버리고 살아 왔기에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화자의 쓸쓸한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고향을 버린 자가 느끼는 정신적 상실감이 당시의 시대적 현실과 결부되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오장환의 시에는 ‘귀향 회귀(歸鄕回歸)의 모티브’를 가진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감각적
▶ 어조 : 회한과 자책 속에서 쓸쓸하고 애잔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드러남.
▶ 표현 : ① 다양한 감각적 표현
② 현재형의 사용
▶ 구성 : ① 해빙이 될 무렵의 강가(1연)
② 사람이 그리워 나룻가에서 서성거림(2연)
③ 고향의 쓸쓸한 주막(3연)
④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감(4연)
⑤ 귀향하고 싶은 심정(5,6연)
▶ 제재 : 고향
▶ 주제 : 잃어버린 고향 앞에서 느끼는 향수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화자의 귀향이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창작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150자 내외로 쓰라.
☞ 식민지 치하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찾아야 할 대상이 내면적인 관념 속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지 못하는 한, 눈앞에 실재하는 고향 역시 과거 속의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화자의 고향 찾기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 이 시에 드러난 어조를 60자 내외로 쓰라.
☞ 완전한 고향을 찾을 수 없는 자의 회한과 자책의 정서가 쓸쓸하고 애잔한 분위기와 함께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3. 이 시와 다음 시의 화자가 지닌 소망의 공통점을 40자 내외로 쓰라.
☞ 현실적인 귀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돌아가고 싶은 화자의 망향(望鄕)의 정(情).
春來萬里客(춘래만리객) 보ᄆᆡ 왯ᄂᆞᆫ 萬里옛 나그내ᄂᆞᆫ 亂定幾年歸(난정기년귀) 亂이 긋거든 어느 ᄒᆡ예 도라가려뇨. 腸斷江城鴈(장단강성안) 江城에 그려기 高高正北飛(고고정북비) 노피 正히 北으로 ᄂᆞ라가매 애ᄅᆞᆯ 긋노라. ―<杜甫 「歸鴈」> |
<감상의 길잡이>
고향이 있어도 그 품에 안길 수 없는 사람은 고향을 잃은 자나 다름없다. 이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비극적인 것이다. 고향에 대해 가지는 그리움의 정서는 모든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안식처요,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따라서, 고향을 눈앞에 두고서도 갈 수 없는 화자의 처지는 깊은 회한과 자책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화자는 고향 근처의 주막에서 자신이 떠난 동안의 슬픈 고향 소식을 전해 들으며 집집마다 누룩을 띄워 술을 빚는, 전나무 우거진 고향 마을은 이미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음을 실감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조상의 무덤밖에 없다. 고향은 고향이로되 그리던 고향은 아닌 것이다.
완전한 고향을 찾지 못하고 고향을 바라보며 떠돌이 장꾼들에게 고향의 정취만이라도 확인하려는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기만 하다.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바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잘 형상화한 시다.
병든 서울
-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
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상아탑 창간호, 1945.12)
* 구루마 : 짐수레. 달구지.
* 구융 : ‘구유’의 사투리로 마소의 먹이를 담아 주는 나무 그릇.
<감상의 길잡이>
오장환은 일제 말기에 붓을 꺾지 않으면서도 친일의 길을 걷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초기시에서 보여 주었던 유교적 인습에 대한 부정과 반항의 세계가, 해방 이후에는 이 시에서 보듯, 새 시대에 대한 전망과 기대의 이미지로 발전되어 나타나게 된다. 신장병으로 인해 8․15 해방을 병상에서 맞은 오장환은, 광복의 감격과 어수선한 해방 정국에서의 울분과 좌절을 이 시를 통해 ‘병든 서울’이라는 상징어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인 ‘나’로 대치된 시인이 8월 15일 병원에서 운 것은 단순히 기쁨 때문이 아니라, ‘탕아로 /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해서였다고 믿었지만, 하루가 지난 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는 실로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날마다 병원을 뛰쳐나간다. 그러나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던 네거리의 ‘병든 서울’은 단지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무슨 본부, 무슨 본부 /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만 가득할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렇다. 병든 서울아 /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 아 다정한 서울아 /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라며 울부짖는다. 식민지 치하에서 ‘나’가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그저 술 먹고 돌아치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너도 나도 잡놈일 뿐이어서 서울은 오히려 다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일파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어제까지 황군(皇軍) 위문 공연을 다니던 문학인들이 오늘은 너도 나도 민족문학을 부르짖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정당을 구성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버린 해방 정국은 이미 그가 꿈에 그리던 그러한 마음 속 고향이 아니었다.
그의 이상은 ‘아, 인민의 이름으로 되는 새 나라’의 건설이건만,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병원에서 뛰쳐나와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과 함께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어느새 서울엔 다시금 ‘술취한 망종’이 다시 들끓고 있을 뿐이다. 잠시 동안 해방의 감격에 취해 있었던 그는 이제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과 ‘젊은이의 씩씩한 꿈들’을 보고 싶어서,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까지 다시금 반항할 것을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그는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눈을 뽑아 버리고,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쓸개를 내팽개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해방 정국의 감격과 울분을 노래하는 이 시는 이러한 격정이 호흡을 적절히 가다듬게 하는 선동적인 리듬감과 조화를 이루어, 거칠면서도 절제된 시인의 내면의 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개봉동과 장미
- 오규원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1978)
<감상의 길잡이>
오규원은 이 시대의 가장 개성 있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무의미한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일상적 감각에 대한 거역’이라는 시적 방법을 추구하는데, 이것은 비슷한 경향의 시인인 이승훈이 비대상의 시를 추구하는 것이나, 정현종이 철저하게 개성적인 이미지에 의지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는 사물의 존재를 감각적 인식에 따라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적는 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감각적으로 인식된 것을 뒤집어 놓음으로써 보이는 것을 감추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전도된 언어 속에서 역설의 원리에 따라 사물의 새로운 질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일상적인 감각이나 인습화된 개념을 벗어나기 위한 시적 방법으로, 결국은 그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도 관련된다.
이 시는 이질적인 두 존재인 ‘개봉동’과 ‘장미’를 한 자리에 공존시켜 양자 사이의 내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서 ‘장미’는 순수와 신비와 아름다움과 생명을, ‘개봉동’은 공장과 도시와 문명과 공해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순수한 삶을 훼손․파괴시키는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
첫째 연에서 ‘장미’는 ‘개봉동’ 입구의 길을 왼쪽으로 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로 나타나 있다. 비록 ‘장미’가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그가 가진 순수함은 ‘개봉동’ 입구의 길마저도 굽게 한다는 의미 있는 말을 첫 구절에 배치시켜 생명의 위대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와 함께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서 있는 장미를 뒤이어 보여 줌으로써 장미가 개봉동의 길에 흡수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개봉동의 길이 장미의 길로 이어지게 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이 ‘장미’가 ‘개봉동’ 주민으로 섞일 수 있는 한편, 서울 속에 피어 있으면서도 서울 밖의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법칙 속에서 살아가는 모순된 삶의 모습을 ‘개봉동’과 ‘장미’라는 이질적인 두 존재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장미’의 비밀스러운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와 아름다움과 신비와 생명의 표상인 장미야말로 이 시대 인간들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세계이며, 그러한 세계를 수용하거나 만나지 않는 한, 우리 시대의 막힌 문들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에게 있어 개봉동에 피어 있는 장미는 쉽사리 그 존재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런 탓으로 그는 이러한 장미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분명한 것은 길 밖에서 길을 이끌고 있는 장미의 세계를 소생시킬 때라야만,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바람직한 제 길을 찾을 뿐 아니라, 닫혀 있는 문도 활짝 열릴 것이라는 점이다.
방랑의 마음
- 오상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城)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지는 줄도 모르고…….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의 향기
코에 서리도다.
- ‘동명(東明)’ 18호(1923.1)
<핵심 정리>
▶ 성격 : 낭만적, 명상적, 불교적, 관념적
▶ 심상 : 감각적 심상
▶ 어조 : 차분하고, 고독하면서도 동경하는 곳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음.
▶ 특징 : 본질적인 삶에 대한 불교적 인식
▶ 시상전개 : 화자의 내면의식의 점진적 고조(시적 대상과의 합일)
▶ 구성 : ① 불안한 화자의 영혼(1연)
② 심안(心眼)으로 바라보는 바다(2연)
③ 육안(肉眼)으로 바라보는 바다(3연)
④ 바다와의 내적 합일(合一)(4연)
▶ 제재 : 마음 속의 풍경.(바다를 그리는 마음)
▶ 주제 : 방황과 불안을 초극한 또다른 세계에의 그리움.(안식의 추구)
<연구 문제>
1. 이 시는 인간의 현 존재가 지닌 불안과 근원적 문제를 ‘흐름’과 ‘바다’를 통해 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흐름’과 ‘바다’의 시적 의미를 쓰고, 그 상호 관련성을 190자 정도로 설명하라.
☞ ‘흐름’은 인간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과 동요를 뜻하며, ‘바다’는 그런 인간이 내면 속에서 동경하는 세계 즉, 안식과 정주(定住)의 공간(불안한 영혼을 안정시켜 주는 공간)이다. 그리고 ‘흐름’은 ‘바다’에 도달하기 위한 탐색의 과정이며, ‘바다’는 불안을 지닌 그의 ‘흐름’의 영혼이 갈구하는, ‘흐름’을 통해야 도달하는, 고통을 초극한 세계이다.
2. 불교적 세계관에 비추어 보아, ‘흐름’을 속세의 번뇌와 고통이라 한다면, ‘바다’의 상징 의미는 무엇인지 간단히 답하라.
☞ 해탈의 경지, 물심 일여(物心一如)의 경지
3. 동양의 시관(詩觀)에 의하면 시는 궁극적으로 대상(세계)의 자아(내면)화, 곧 물아 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름을 목표로 한다. (1)㉠의 표현상의 특징과 (2)문맥적 의미를 쓰라.
☞ (1) 공감각적 표현.(감각의 전이)
(2) 화자인 ‘나’가 동경하는 ‘바다’와 ‘나’는 드디어 내면 의식 속에 일체감을 이루고 있다.(화자인 ‘나’와 시적 대상인 ‘바다’가 하나가 된 경지)
4. (1)제1연에 있는 역설을 찾아내고, (2)그 까닭을 6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 (1)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2) ‘흐름’은 불안하고 유동적인 속성을 지니므로 보금자리가 쳐질 수 없는 것이다.(나의 혼은 어디엔가 정착하려 하지만 그것은 정착할 수 없는 유동적인 것이다. 그것이 삶의 본질적인 속성이기 때문이다.)
<감상의 길잡이>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 확실치 않으나 어떤 미지의 세계를 그리워하게 된다. 시인의 영혼이 자유로이 호흡할 수 없었던 1920년대의 식민지 상황에서, 이 시는 시심(詩心)이 지향하는 세계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보여 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니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이 불안할수록 더욱 더 안정된 세계를 희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시에서는 동양적 유심(唯心)의 세계에서 현대인의 존재 문제를 해결코자 한 시인의 고뇌를 ‘흐름’으로, 그것을 해탈한 일여(一如)의 세계를 ‘바다’로 나타내고 있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이란 그 그리움의 세계를 동경하며 떠돌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안정성을 나타낸다. 이 시에서 화자가 동경하는 ‘바다’는 그가 내면 의식 속에서 그리워하는 세계이며, 안주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바다가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한 나머지 옛 성 위에 울라 발돋움도 해 보지만 바다는 보이는 스 마는 듯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바다를 마음에 불러일으켜서 마음의 눈으로 바다를 보고 있다. 그러면 어느덧 바다의 향기가 코에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듯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을 수 있는 이 시는, 현실 속에 부재(不在)하는 어떤 동경의 세계를 향해 인간은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세계는 현실에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나 이룩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터이다.
모순의 흙
- 吳世榮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이 시는 인간의 삶에 대한 시인의 성숙한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삶은 유전하는 것이며 고정되거나 머무를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곧 불교적인 緣起說 혹은 輪廻說이 깔려 있다. 이 시에서 그릇은 인간의 모양이다. 흙으로 구워진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들은 곧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죽음이 두려워서 삶을 버린다면 인간의 삶 또한 무의미하다. 시인은 바로 이렇게 그릇에서 모순의 흙, 삶과 죽음의 양면성을 깨닫고 있다.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흙으로 빚은 접시의 깨어짐
* 제2연 - 영광의 순간에 그릇이 깨어지듯 인간은 죽는다.
* 제3연 - 인간도 물에 젖고 불에 탄다.
* 제4연 - 깨어져 완성되는 절대 모순의 접시가 되리라.
3. 주제 : 그릇의 깨어짐을 통해 생명의 완성을 느낌
4. 제재 : 그릇의 깨어짐
5. 표현법 : 수미쌍관법, 반복법, 연쇄법, 은유법
그릇 1
- 吳世榮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시선집 모순의 흙, 1985)
<감상의 길잡이>
오세영은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존재의 상처와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세상에 버려진 고독한 존재라는 것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일찍이 김춘수에 의해 제기된 것이지만, 김춘수가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릴케류의 서양 철학을 통해 탐구했다면, 오세영은 그 고뇌를 ‘무명(無名)’이라는 동양적 진리를 통해 탐구한다. 여기서 ‘무명’이란 본질적인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인 번뇌와 아집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이 무명의 상태에서 깨달음을 통해 존재가 본래적으로 지향해야 할 영원성과 무한성을 찾아가는 노정에 놓여 있는 한편, 존재의 깨달음을 얻은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양식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절제와 균형의 미덕이라는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담고 있는 형이상학적 작품이며, 근대적 이성주의라 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삶과 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수용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팽팽하고 긴장된 힘으로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그릇’이 ‘빗나간 힘’에 의해 ‘깨진 그릇’이 되었을 때, 그것은 아무것이나 베어 넘길 수 있는 무서운 ‘사금파리’의 ‘칼날’이 되어 그 내부에 감추고 있던 긴장된 힘의 본질 ― 날카로운 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릇’은 조화롭고 질서 잡힌 ‘원’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매우 불안하고 긴장된 형태로 자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사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단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 본래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이 시는 바로 그 같은 편향된 사고 방식이 가져올 수 있는 획일화된 이념, 사상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깨진 그릇’에 비유하여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그릇’이 절제와 균형이 잡힌 합리적인 세계라면, ‘깨진 그릇’은 절제와 균형이 무너진 비합리적인 세계가 되며, 그러한 왜곡된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맹목의 사랑’을 강요하는 매체가 바로 ‘칼’인 것이다.
처음엔 조화롭고 균형 잡힌 ‘원’의 세계인 ‘그릇’이었지만, 그것이 깨어질 때, ‘원’이 주는 원만한 세계는 마치 ‘칼날’과 같은 예리한 무기가 지배하는 기형적(畸形的) 세계로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잘못된 세계는 사람들에게 단선화된 이념만을 강요함으로써 정상적인 삶을 구속하고 억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에서 ‘그릇’과 같은 모나지 않은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시인의 중용적 생활 자세와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 의지를 찾아낼 수 있다.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 양주동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 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문예공론, 창간호, 1929.5)
<핵심 정리>
이 시는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민족 부활의 미래를 ‘튼튼한 젊은이’․‘어린 학생’․‘갓난 아이’ 등에서 발견하고 민족주의의 바탕 위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조선의 맥박’에 굳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는 계몽성이 강한 교훈적 내용의 작품이다.
생경한 비유와 산문적 서술, 그리고 ‘-이로다’ 등의 전근대적 영탄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족주의를 이념적으로 추상화시키지 않고 ‘맥박’․‘숨결’ 등의 생명적 요소로 파악하여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한밤’ → ‘새벽’ →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상 전개와, 여기에 상응하여 ‘절망’ → ‘희망’ → ‘활기’로 펼쳐지는 시적 상황의 변화는 추상적인 내용을 보다 더 구체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청산(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 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시집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1981)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삶이 산 너머 산이요, 물 건너 물이라지만 절대로 버리지 못하는 희망 하나로 어려움들을 누르면서 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였다. 거친 세상의 바닥에서 희망 하나로 견디는 사람들의 가슴 안에 쌓인 한을 노래하였다. 전통적인 한국 문학의 공통된 주제를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하면 ‘한(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는 한(恨)을 뛰어 넘어 희망의 세계로 발돋둠하고 있는 시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성격 : 서정적, 낭만적, 상징적
▶표현 : 화자가 누구에겐가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청자는 드러나 있지 않음.
▶시상 전개 : ① 한(恨)에서 희망으로
② 어둠에서 밝음으로
▶구성 : 단련시(單聯詩)
▶제재 : 청산, 꿈, 새벽, 큰 강
▶주제 : 한(恨)의 초극(超克). (불행한 현실을 떠나 미지의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마음)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이상향으로 쓰인 시어를 찾아 쓰라. ☞ 청산
2. 이 시의 시상 전개 방법을 두 가지로 밝히라.
☞ (1) 어둠에서 밝음으로
(2) 한에서 희망으로
3. 이 시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된 주된 수사법은?
☞ 반복법
4. 이 시에서, 다음 글의 밑줄 그은 부분과 관계 있는 시어나 시구를 모두 찾아 쓰라.
☞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새벽 안개, 흙먼지 재, 강
이 어려운 세상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느낌을 겸허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그의 시는 이 시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데서도 중요한 뜻을 갖는다 하겠다. |
<감상의 길잡이>
불행한 현실을 떠나 미지의 아름다운 세계를 동경하는 작가의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이 시의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된 ‘청산’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그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향으로 노루, 사슴이 마음대로 뛰어 노는 낙원일 수도 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가 깃들인 평화의 땅일 수도 있다. ‘청산’이 나를 부르거든 나는 이미 새벽 안개 속에 그곳을 향해 떠났다고 일러라. ‘흙먼지 재를 쓰고 / 머리 풀고 땅을 치며’ 떠났다고 일러라.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도 극복하고 청산에서 아름답고 순수하게 살고 싶은 작가의 심정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또한, 현실에 대한 체념적인 면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체념은 결코 무능과 무기력의 소치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굳센 이성의 발로이고, 진정한 의미의 용기이다. 나아가서 인간으로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봄날
- 여상현
논두렁가로 바스락 바스락 땅강아지 기어나고
아침 망웃 뭉게뭉게 김이 서리다
꼬추잠자리 저자를 선* 황토물 연못가엔
약에 쓴다고 비단개구리 잡는 꼬마둥이 녀석들이 움성거렸다
바구니 낀 계집애들은 푸른 보리밭 고랑으로 기어들고
까투리는 쟁끼* 꼬리를 물고 산기슭을 내리는구나
꿀벌떼 노오란 장다리* 밭에서 잉잉거리고
동구밖 지름길론 갈모*를 달아맨 괴나리봇짐*이 하나 떠나간다
성황당 돌무데기 우거진 찔레나ᇚ엔
사철 하얀 종이쪽이 나풀거리더니 꽃이 피었네
느티나무 아래 빨간 자전거 하나
자는 듯 고요한 마을에 무슨 소식이 왔다
(시집 해방기념시집, 1945.12)
* 저자를 서다 : 장이 서다. 여기에서는 잠자리들이 매우 많다는 의미.
* 쟁끼 : 장끼[수꿩]의 방언.
* 장다리 : 무나 배추 따위의 꽃줄기.
* 갈모 : 기름 종이로 만들어,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는 것.
* 괴나리봇짐 : 걸어갈 때 등에 짊어지는 조그마한 봇짐.
<감상의 길잡이>
1936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등단한 여상현은, 해방 이전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해방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현실 인식이 뚜렷한 일련의 시들을 발표하면서 뒤늦게 고평된 시인이다.
이 시는 해방기념시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해방의 감격을 어떠한 흥분도 없이 담담히 서술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자신의 시집에서는 이 시를 해방 이전의 시와 함께 취급하고 있어서 창작 연대가 분명하지 않다. 만약, 해방 이전에 창작된 작품이라면, 이 시의 의미는 만주 유랑민의 소식을 전해받는 것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시는 제목에서 보듯 어느 봄날의 ‘자는 듯 고요한 마을’의 풍경을 친근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1~5연까지는 논, 연못가, 보리밭, 성황당을 배경으로 한 봄날의 한가하고 나른한 풍경이 계속된다. 각 연은 모두 2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4연은 각 행마다 봄날을 맞는 동물과 인간의 행위를 병치시켜 놓아서, 봄날이 베풀어 주는 여유로움이 물아일체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다. 5연에서는 성황당이 지니는 기복(祈福)의 인간적 행위와 찔레나무의 순환적 질서가 맞물려 이러한 봄날의 표정이 해마다 반복됨을 암시한다. 이러한 여유로움은 마지막 6연에서 ‘느티나무 아래 빨간 자전거 하나’의 출현으로 갑자기 긴장감에 휩싸인다. 특히, 그 색깔을 봄날의 밝은 이미지 속에서 뚜렷이 눈에 띄는 ‘빨간’색으로 설정함으로써 그 돌연한 ‘무슨 소식’의 실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분명 ‘자는 듯 고요한 마을’을 흥분으로 깨우는 어떤 소식이 온 것이 분명하다. 그 소식은 무엇인가. 비록 봄날이라는 시기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소식을 ‘해방’의 메시지로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분수
- 여상현
슬픈 역사가
오수에 잠긴 고궁
홰를 치며 우는
닭의 울음이 어데서 들릴 것만 같다
하늘을 쏘는 분수
지열과 함께 맹렬히 뿜는 의분이런가
장(墻) 넘어 불타는 아스팔트 거리에는
생활이 낙엽처럼 구르고 ――
텅 비인 정원엔 성조기 하나
‘공위(共委)’* 휴회후, 원정(園丁)*은 때때로 먼 허공만 바라볼 뿐
비둘기 깃드는 추녀 끝엔 풍경이 떨고
꼬리치며 모였던 금붕어떼 금새 흩어진다
노상 속임수 많은 여름 구름은
무슨 재주를 필듯이 머뭇머뭇 지나가는데
내 마음의 분수도 사뭇 솟구치려 하는구나
(덕수궁에서)
(시집 칠면조, 1947.9)
* 공위(共委) : 미소공동위원회.
* 원정(園丁) : 정원사.
<감상의 길잡이>
이 시도 앞의 <봄날>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지닌다. 1~6연까지의 각 연은 모두 2행으로 구성되어 어느 여름날의 ‘고궁’[덕수궁]의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마지막 7연에 가서야 시적 자아의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다. 한낮 ‘슬픈 역사가 / 오수에 잠긴 고궁’은 ‘홰를 치며 우는 / 닭의 울음이 어데서 들릴 것만 같’을 정도로 고요와 침묵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한 정밀감(靜謐感)의 이미지보다는 권태에 가깝다. ‘장(墻) 넘어 불타는 아스팔트 거리에는’ 비록 ‘생활이 낙엽처럼 구르고’ 있지만, ‘공위(共委) 휴회 후, 원정(園丁)은 때때로 먼 허공만 바라볼 뿐’ 정원은 텅 비어 있다.
이러한 고궁의 권태를 깨뜨리는 동적인 이미지의 표상이 바로 분수이다. 시적 화자는 이 분수를 일러 ‘지열과 함께 맹렬히 뿜는 의분’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1947년 여름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독립된 통일 민주국가의 성립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분노의 표상이다. 이러한 시인의 현실 인식은 ‘슬픈’, ‘의분’, ‘낙엽처럼’, ‘텅 비인’, ‘먼 허공’ 등의 시어에서도 드러나지만, 마지막 연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노상 속임수 많은 여름 구름은 / 무슨 재주를 필 듯이 머뭇머뭇 지나’가는 한여름의 풍경 속에는 믿지 못하는 여름 날씨뿐 아니라, 짐작할 수 없는 요지경 정치판에 대한 시적 화자의 부정적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내 마음의 분수도 사뭇 솟구치려 하는구나’라고 하여 비로소 자신의 속내를 직접 내비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현실 인식에서 기인하는 시적 긴장도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평이한 시어의 선택과 단순한 구조 속에서 권태와 역동성이 뚜렷이 대비되는 이미지의 구사로써 탁월한 시적 형상을 성취하고 있다.
柳致環의 삶과 문학
청마(靑馬)와 이상(李箱)은 여러모로 대조되는 시인이다. 청마는 건강한 몸을 지녀서 고래 술을 평생 마시고도 끄떡없었는데 이상(李箱)은 20대 중반에 얻은 폐결핵을 극복하지 못하고 28세로 요절했다.
이상(李箱)이 생(生)의 의미를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자기 모멸에 빠져 몸부림치고 있을 때 청마는 「생명의 서(書)」 같은 시집을 내놓으며 삶의 정열에 들끓었다. 이상(李箱)이 인간의 삶 자체를 거부하고 저항하면서 의식적으로 ‘애욕의 진흙탕’에 뛰어든 반면 청마는 「깃발」, 「바위」 등을 발표하면서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를 바라보며 일생을 살았다.
이렇게 다르면서도 둘은 친하게 지냈다. 이상(李箱)은 신상에 이상이나 변화가 있을 때는 꼭 청마에게 엽서를 띄워 알려주곤 했다. 이상(李箱)이 절망을 극복해 보려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이 청마였다. 청마는 그러므로 국내에서 이상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다.
이상(李箱)은 어느 날 일본으로 간다면서 느닷없이 청마를 찾아왔다. 둘은 항구의 싸구려 술집에서 엉망진창이 되도록 마셨다. 생명력이 충천한 시인 청마와 생명력을 찾아 얻어 보려는 이상(李箱)이 만난 술자리이니 그 순간만은 의기투합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날밤, 지금은 불타고 없는 부산 우체국 건너편에 있는 조선 여관이란 삼류 여인숙에서 지내고 이튿날 저녁 둘은 관부연락선 부두에서 영원한 작별의 손을 마주 흔들었다. ‘이상(李箱)은 까마귀 같은 퀭한 눈에 커다랗게 입을 벌려 흥소했다.’ 이것이 청마가 기록한 이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청마는 친계(親系)로부터는 강직한 성품을 이어받고 모계(母系)로부터는 후덕한 덕성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청마의 성격 규정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로 대표되는 양면성에서 찾아져 왔고, ‘의지와 사랑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청마는 타고난 저항 정신을 피 속에 용해시켜 놓고 있었다. 그는 우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래고보 학적부를 보면 조선어, 영어, 한문은 늘 갑(甲;9점)인데 국어(일본어), 화학 등은 병(丙;4점)을 면치 못했다. 또 그는 결석을 잘 했다. 병이 났다고 결석계를 내고 학교엘 잘 빠졌는데 학적부에 기록된 ‘체격란’에는 항상 ‘갑(甲)’으로 되어 있다. 가기 싫은 학교를 꾀병 내고 안 갔음이 분명한데 그러고도 석차는 27명중 7등이었다.
청마는 학교하고는 연분이 적었던 모양으로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했으나 마음에 안 들어서 1학년도 다 못 채우고 걷어치웠다. 그러고는 다시는 학교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일본에 건너가서 사진 학원에 들어가 사진 기술을 배운다. 사진관을 열어서 먹고 살 요량으로 한 것인데 사실상 그는 평양에서 그후 사진관을 차렸다. 그러나 그것도 서너 달만에 다 털어먹고 부산에 내려와 백화점 점원 노릇을 했다. 이것이 청마의 20대 모습이다.
30대 시절 청마는 만주 등지로 방황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외아들 ‘일향(日向)’을 잃게 된다.
얼어붙은 땅에 외아들의 시신을 파묻고 마음이 여린 청마는 종래 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다.
사람도 나도 접어주지 않으려는 이 自虐의 길에
내 열번 敗亡의 人生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悔悟의 앓음을 어디에 號泣할 곳 없어.
「황야에 와서」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만주 연수현에서 농장 관리인 노릇을 6년간 하다가 청마는 해방을 맞아 40대의 나이로 귀국하게 되고 그때부터 문화 활동과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청마의 저항성이 가장 돋보일 때가 자유당 말기 정치적 부정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타고난 반골(反骨) 기질이 3·15 부정선거를 도저히 묵과하지 못한다.
그 환도를 찾아 갈라
비수를 찾아 갈라
식칼마저 모조리 시퍼렇게 내다 갈라
그리하여 너희들 마침내 이같이
기갈들려 미치게 한 者를 찾아
손에 손에 그 시퍼런 날들을 들고 게사니같이 덤벼
남 나의 어느 모가지든 닥치는대로 컥컥 찔러….
청마가 얼마나 통분 격분했으면 이런 살기 등등한 詩를 썼을까. 그는 그때 여기저기 신문 잡지에 정치 부패를 저주, 성토하는 시를 발표했다.
그 시절이 바로 청마의 경주(慶州) 시절이다.
55년부터 59년까지 그는 경주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었고 그 기간동안 그는 ‘나는 시인이 아니다’면서 자유당 정치와 그 불의를 단죄하는 투사의 칼날을 휘둘렀다. 59년 9월 10일 그는 강요에 의해서 교장직을 물러나게 되고 그후 2년간 심한 신경통을 앓으며 낭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기간동안 그는 대구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정치권을 질타하는 시를 계속 발표했다. 그 시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이다.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먼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를 땅에 묻는다. ― 1960년 3월 13일 ‘동아일보’
이 시가 나온지 1개월 6일만에 4·19가 일어났고 그가 그 동안 발표한 시편들을 묶은 시집들이 다투어 나왔다. 61년 5월 청마는 마침내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되어서 그리워하던 경주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청마는 바로 그 ‘덕목’으로 높은 추앙을 받게 되고 그후 문단에서나 교육계에서 크게 기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투사’의 일을 떠나 곧 ‘詩人’의 자리로 돌아왔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ㅎ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에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동아일보, 1960.3.13)
♣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자유당 말기의 사회상과 시인의 처신을 노래한 앙가지망(사회참여)적 저항시 작품.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지조를 지키는 이의 긍지
* 제2연 - 부정한 사회현실
* 제3연 - 뜨거운 저항 의지
* 제4연 - 지조와 정의에 대한 결의
* 제5연 - 현실의 고발
* 제6연 - 땅에 묻는 뜨거운 노래
3. 주제 : 사회 정의(正義)의 고취
4. 소재 : 부정부패한 사회
5. 시어의 상징 의미
* 겨울 - 희망을 잃고 얼어붙은 시대(자유당 말기)
* 뜨거운 노래 - 시인의 부정부패한 사회에 대한 분노
* 땅에 묻는다 - 진실을 담은 뜨거운 노래를 씨앗처럼 묻어 자라기를 기다리겠다.
깃발
-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조선문단, 1936.1)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청마 초기시의 주된 정조인 연민과 애수의 서정을 통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허무의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전 9행의 단연 형식의 이 시는 비유적 비교와 반어적 대조를 통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진술(陳述)에 의존하여 대부분 관념시가 되고 있는 일반적인 청마시에 비해, 이 시는 체험의 윤리적 의미를 중시한 수사적 차원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진술 대신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는 중심 이미지인 ‘깃발’에 ‘아우성’․‘손수건’․‘순정’․‘애수’․‘마음’이라는 5개의 참신한 보조 관념이 연결된 확장 은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곧 깃발은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으로 ‘푸른 해원’이라는 이상향을 동경하는 ‘순정’을 상징하며, ‘애수’와 ‘마음’은 이상향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좌절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푸른 해원의 하얀 깃발’이라는 색채의 대조 속에는 이 두 상반된 태도가 적절히 대응되어 있다.
다시 말해, 깃발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서 이상향을 향한 ‘아우성’의 몸짓으로 의지와 집념의 자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깃대를 떠날 수 없는 숙명적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하고 만다. 결국 이 작품은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해 절망하는 감상적 허무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인 줄 알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깃발의 펄럭이는 모습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맥락 읽기>
1. 화자는? ☞ 나 또는 시인
2. 화자는 무엇을 바라보는가? ☞ 깃발
3. 그런데 깃발의 모습은 이 시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가? ☞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4.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되고 있나?
☞ ① 소리없는 아우성
②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③ 순정
④ 백로처럼 날개를 편 애수
⑤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
** 이 시에서는 깃발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깃발에서 받은 화자의 느낌과 생각이 관념적으로 위의 다섯 가지로 표현된 것을 알 수 있겠다.
5. 화자는 깃발의 어떤 모습에서 이러한 정서를 얻었는지 ‘깃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자.
☞ 앞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있고 바닷가 절벽 위에는 깃대에 매달린 깃발이 푸른 해원을 향해 아우성치 듯 펄럭이고 있어요.
6. 4번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 표현 중에서 공통적인 것끼리 나누어 보면? ☞ ①②③과 ④⑤
7. ①②③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 ①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주는 느낌은? → 무엇을 향한 갈망
②에서는 ‘푸른 해원을 향한 동경과 향수.
③에서는 지극히 순수한 감정임을 말해 준댜.
7-1. 정리해 보면?
☞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푸른 해원을 향해 갈망. 동경. 향수를 느낀다고 볼 수 있겠네.
8. ‘푸른 해원’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이미지는?
☞ ① 떠나고 싶은 곳
② 미지의 세계
③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
** 결국엔 화자가 추구하는 세계. 이상향으로 보면 되겠네.
9. 그런데 이상향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인데 왜 ④ 와 ⑤에서 ‘애수와 슬픈 마음’이 생길까? (깃대에 매달려 있는 깃발의 속성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
☞ 깃발은 이상향에 도달하려 몸부림치치만 깃대에 매달려 있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결국에는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한 한계를 화자는 깃발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리고 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문예 초하호, 1953)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허무의 극복이라는 의지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정념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일반적인 청마시와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어찌보면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센티멘탈리즘에 휩싸인 사춘기적 연정을 노래한 듯한 이 시는 진정한 행복의 가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지극히 순결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현실에 만연되어 있는 이기주의, 자기 중심적 사고에 의해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를 원하거나, 먼저 사랑하기를 꺼리는 그릇된 풍조에 참사랑의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이 시는 수미상관식 구조에 의해 의미를 강조하는 한편, 청마 특유의 관념적, 남성적 시어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부드러운 정감이 넘치는 여성적 시어만을 구사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1연에서는 주제에 해당하는 명제를 모두(冒頭)에 제시함으로써 ‘너’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뿐 아니라, 그 사연까지도 밝고 아름다운 것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에메랄드빛 하늘’이라든가 ‘환히 내다뵈는’이라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화자의 행복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연에서는 우체국에 와서 편지를 부치거나 전보를 치는 사람들을 각기 다른 표정을 통해 화자가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있다. 우체국에 온 사람들은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하는 편에 서 있는 이들이란 것이 화자의 생각이다. 3연에서는 화자가 ‘너’와의 애틋한 연분을 밝히고 있다. 그 연분은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 피어난 ‘진홍빛 양귀비꽃’과 같다는 표현으로써 그 연분을 승화시키고 있다. 사랑은 고단한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더욱 필요한 법이고,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애틋한 사랑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4연에서는 1연에 내세운 명제를 다시금 반복함으로써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는 것의 소중함과 행복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일월(日月)
- 유치환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슬소냐.
머언 미개(未開)ㅅ 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哀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恥辱)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좋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義)에 즘생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悔恨)인들 남길소냐.
(문장 3호, 1939.4)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첫 시집 청마 시초에 수록되어 <생명의 서>와 더불어 세칭 ‘생명파’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한 작품이다. 그가 일제 압제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북만주로 탈출하기 1년 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의 치열한 생명 의식과 사회악에 대한 준열한 윤리 의식을 결합하여, 생명파 시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전 6연의 구성이나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1연)에서는 광명의 지표인 백일(白日)에 대한 확신을 갖는 화자가 망명(亡命)을 결행(決行)하고 있으며, 2단락(2~3연)에서는 문명 이전의 건강하고도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희구와 함께 애련에 빠지는 약하고 속된 감정을 경계하고 있다. 3단락(4연)에서는 원수와 그 아첨배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정의를 결의하고 있으며, 4단락(5~6연)에서는 극에 달한 증오심으로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치열한 윤리적 대결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원수’란 생의 모순과 부조리는 물론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모든 요인들을 의미한다.
망명살이 어디에고 ‘백일(白日)’로 표상된 밝고 정의로운 세상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화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그 곳 별과 비바람의 대자연 속에서 우주 섭리를 근심하면서 살아가는 미개적 유풍의 원시적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지(知)’․‘정(情)’․‘의(意)’를 열렬히 사랑하되 사랑과 연민에는 빠지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다짐한다. 왜냐하면, 애련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원시적 삶을 사는 자연인에게는 부끄러움이고, 이 애련을 초극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성신’․‘비와 바람’․‘일월’ 등의 원시적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한편, 화자는 민족의 원수인 일제와 그들에게 아첨하는 민족 배반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증오밖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증오는 불의와 부정한 세력에 대한 것이므로 당연히 ‘옳은 증오’임을 굳게 믿고 있다. 설령 그 곳에서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결코 원수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으며, 어느 뜻하지 아니한 때,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은 결코 버릴 수 없기에 어떠한 후회나 한탄도 있을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불의(不義)와 악(惡)에 대한 타협 없는 증오와 대결의 의지를 관념적 시어와 강건하고 비장한 어조로 나타내고 있으며,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을 추구하는 이러한 의지적 태도로 말미암아 청마를 흔히 ‘의지의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생명(生命)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對面)ㅎ게 될지니.
하여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존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동아일보, 1938.10.19)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일월(日月)>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유치환의 시정신을 극명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전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본연(本然)의 생명을 추구하여, ‘출발’ → ‘수련’ → ‘성취’의 과정을 통하여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 극한적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청마시의 전형을 제시한다.
1연은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다 발견한 지식의 한계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절망하여 ‘아라비아 사막’으로 상징된 구원의 세계로 떠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곳은 작열하는 태양과 고뇌와 방황의 알라신만이 계신 ‘영겁의 허적’으로 혹독한 고행과 절대적 고독의 현장일 뿐이다. 2연은 모든 것이 사멸하고 뜨거운 태양만이 내리쬐는 열사의 땅에서, 시적 화자가 구도자의 기도하는 자세로 오랜 고행과 수련의 고통을 겪은 다음, 마침내 진실된 자아, 생명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3연은 참된 자아가 허위와 위선에 물들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순수한 생명체의 삶을 되찾지 못할 때는, 차라리 그 곳에서 미련없이 목숨을 버리겠다고 절규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시적 화자가 떠나가는 아라비아 사막은 ‘허적’이 주는 하강력(下降力), 곧 온통 허무뿐인 죽음의 세계이며, 역설적으로 ‘열사’가 갖는 상승력(上昇力), 곧 뜨거운 생명이 샘솟는 세계이기도 하다.
고통의 극한, 극도의 고독에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유치환의 논리는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을 찾아야 한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이렇게 죽음 속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유치환의 생명 탐구 방법은 청마 특유의 허무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도리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장 철학(老莊哲學)의 허무 사상과도 그 맥락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비교적 많은 관념어를 사용하고 있고, 각 연의 1․2행이 모두 진술(陳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구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바위
- 유치환(柳致環)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삼천리, 1941.4)
<맥락 읽기>
1.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나
2. 그 사람이 하려는 말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 보자
☞ 바위가 되리라. 되겠다.
3. 나는 어떤 바위가 되고 싶어 하는지 시 속에서 찾아 보자.
☞ 애린에 물들지 않고,희로에 움직이지 않고,비 바람에 깍여도 함묵하고,생명도 망각하고,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깨어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
4. 정말 바위가 되겠다는 얘기인가 ?
☞ 아니오
☞ 바위처럼 되겠다,바위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얘길테지요
5. 바위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단단하다. 변치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다.
6. 바위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 무뚝뚝한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 감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사람
7. 화자는 왜 바위가 되고자 하는가? 화자는 지금 어떤 처지에 있을까?
(3번의 답을 참고해서 생각해 보아라.)
☞ 애린에 물들어 있고, 희로에 움직이고 있고, 비 바람에 깍여도 함묵하지 못하고(감정의 내적 정리,절제가 안됨), 생명도 망각하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으며(달관하거나 초월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 꿈꾸면 노래하고 깨어지면 소리친다. 이런 자책감으로 변화하고 싶은 심정. 바위가 되고 싶음.
광야(曠野)에 와서
- 유치환(柳致環)
흥안령(興安嶺)*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광막(曠漠)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나니의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 번 패망(敗亡)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의 탈주(脫走)할 사념(思念)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거장(停車場)도 이백 리(二百里)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鐵壁) 같은 절망(絶望)의 광야(曠野)!
(시집 생명의 서, 1947)
* 흥안령 : 북만주의 지명.
* 암수 : 어두운 수심.
* 호읍 : 목놓아 소리 내어 욺.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40년 봄, 유치환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로 탈출해서 생활할 때의 경험을 노래한 작품으로 <일월>의 후편(後篇)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적 공간인 ‘광야’는 그가 탈출했던 북만주를 의미하며, 이 시는 ‘미개적 유풍’을 따르며 ‘성신’과 ‘비바람’과 더불어 사는 자연적 삶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떠났던 그 곳이 사실은 암울한 땅임을 깨닫고 절망하는 모습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학’․‘패망’․‘회오’와 같은 관념어가 많이 쓰인 까닭에 구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조국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모든 시인에게 있어 조국에 대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요, 벗어날 수 없는 형극(荊棘)의 길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조금도 슬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의지의 시인’답게 당당한 목소리로 의로운 길을 걷는 선비로서의 의연함을 보여 주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전 17행의 자유시 구성의 이 시는 의미상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9행으로 화자가 만주에서 겪는 고달픈 생활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탈출한 곳은 ‘흥안령 가까운 북변’이다. 그 곳까지 가면서 그는 ‘죽어도 뉘우치지 않’겠다고 몇 번씩이나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일제와 끝까지 맞서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얼마쯤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곳에 도착하고 보니 ‘이레째 암수의 비 내리’는 ‘광막한 벌판의 끝’일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그 곳에서 하는 일 없이 ‘화툿장을 뒤치고 / 담배를 눌러’ 끄는 무의미한 생활을 계속한다. 화자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망나니’와 같은 것으로 규정하며 진지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시 나를 과실함’이라는 구절을 통해 조국을 탈출했던 자신의 행동이 결국은 잘못된 것임을 솔직히 고백하기도 한다.
둘째 단락은 10~17행으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자책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조국을 떠나온 그는 자신의 과거 행동과 현실 생활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자학의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그는 속 시원히 울어버림으로써 ‘회오의 앓음’을 씻어낼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그 어디에도 ‘호읍할 곳’이 없음을 깨닫고는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자학의 모습을 보인다. 견딜 수 없는 답답함에 화자는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지만, ‘탈주할 사념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불의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광명의 땅이라 믿고 찾아왔던 그 곳이 결국은 ‘암담한 진창에 갇힌’ 암흑의 땅임을 깨닫게 된 화자는 마침내 조국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결심도 해 보지만, 그 곳은 ‘정거장도 이백 리 밖’에 있는 ‘절망의 광야’일 뿐이다.
울릉도
- 유치환(柳致環)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시집 울릉도, 1948)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청마의 시에서 흔히 보게 되는 어떤 사상성이나 인생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울릉도라는 하나의 섬을 통하여 국토와 조국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민족 공동체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서의 시인은 국토의 일부분인 울릉도에 감정이입하여, 섬의 외로움과 본토(本土)에 대한 그리움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백의 멧부리’인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된 조국 강토가 ‘울릉도’라는 막내로 마무리되었다는 울릉도의 형성 과정을 말한 1․2연에 이어 3․4연에서는 ‘창망한 물굽이’로 인해 근심스레 떠 있는 울릉도의 가냘픈 모습과, 항상 ‘사념의 머리를 곱게 씻고’ 있는 울릉도의 가냘픔과 경건함을 보여 주고 있다. 5․6연에서는 본토에 대한 그리움이 마침내 조국애로 승화되어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혼란하기만 했던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정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게 된다.
울릉도를 소재로 하여 애국심을 고양시키고자 한 것이 시인의 의도라 하더라도, 이 시는 관념적인 차원에 머물고 만 느낌을 준다. 그것은 청마 시의 특성에서도 기인되겠지만, 직접적인 울릉도 체험 없이 다만 지도책만 펴 놓고 시를 쓴 데 그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불길
- 유진오
그리운 사람이 있음으로 해
더 한층 쓸쓸해지는 가을밤인가 보다
내사 퍽이나 무뚝뚝한 사나이
그러나 마음 속 숨은 불길이
사뭇 치밀려오면
하늘도 땅도 불꽃에 싸인다
아마 이 불길이 너를 태우리라
이 불길로 해
나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밤은 숨막힐 듯 기인가 보다
불길이 스러진 뒤엔
재만 남을 뿐이라고
유식한 사람들은 말하더라만
더러운 돼지 구융*같이 더러운 것
징글맞게 미운 것들을
모조리 집어 삼키는 불길!
이것은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나는 일찍이 이렇게
신명나는 그리고 아름다운
불길을 사랑한다
낡은 도덕(道德)이나
점잖은 이성(理性)은 가르친다
그것은 너무나 두렵고
위험(危險)하지 않느냐고
어리석은 사람아
싸늘한 이성 뒤에 숨은
네 거짓과 비겁을
허물치 말까 보냐
네가 생각지도 못한
꿈조차 꿀 수 없던 그런 것이
젊은이 가슴에 손에 담겨서
그득히 앞으로만 향해 간다
외곬으로 타는 마음이 있어
괴로운 밤
나의 사랑 나의 자랑아
나는 불길에 싸여버린다
(시집 창, 1948)
* 구융: 구유의 사투리. 구유는 마소의 먹이를 담는 큰 그릇.
<감상의 길잡이>
“시인이 되기는 바쁘지 않다. 먼저 투철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시는 그 다음에 써도 충분하다.”고 유진오는 자신의 시집 창의 발문(跋文)에서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정치적 입장과 투쟁 경력으로 인하여 흔히 그의 시는 정치성이 강하고 혁명적 사상성이 투철하다고 판단하기 쉬운데, 이러한 판단에 맞는 시는 주로 초기의 <장마>, <횃불>, <3․8 이남>,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 등의 작품들이 해당한다. 그는 1946년 <누구를 위한 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의 창작으로 인하여 1년의 감옥 생활을 겪는데, 그 이후에는 선전 선동적인 시들보다는 그러한 투쟁 의식이 한층 내면화된 한 차원 높은 시들을 창작해 내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언급에 비추어 본다면, 오히려 그는 투철한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서정적 시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불길>은 바로 그러한 그의 내면화된 투쟁 의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먼저 시적 화자는 어느 겨울 밤, ‘그리운 사람이 있음으로’ ‘더 한층 쓸쓸해’짐을 느낀다. 그는 ‘퍽이나 무뚝뚝한 사나이’여서 가슴속의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마음 속 숨은 불길’에 휩싸일 뿐이다. 그 때 마음 속의 불길은 하늘과 땅에 가득하고 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그리운 이까지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거세게 타오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쓸쓸하고 / 안타까운 밤은 숨막힐듯’ 길기만 할 뿐이다. 시적 화자는 여기에서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하여 ‘불길이 스러진 뒤엔 / 재만 남을 뿐이라고 / 유식한 사람들은 말하’지만, 불길은 ‘돼지 구융같이 더러운 것’과 ‘징글맞게 미운 것들을 / 모조리 집어 삼키는’ 것으로서, 단순한 개인적인 연정의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표상으로 승화된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신명나는 그리고 아름다운 / 불길을 사랑’하지만, 그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동시에 ‘두렵고 위험’하기까지 한 선택임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불길을 회피하는 것은 ‘싸늘한 이성 뒤에 숨은’ ‘거짓과 비겁’의 행위여서, 그는 ‘젊은이 가슴에 손에 담겨서’ ‘그득히 앞으로만 향해 가는’ 투쟁의 의지를 새삼 불태운다. 그러나 그것은 외롭고 고독한 선택이고 ‘외곬으로 타는 마음’이어서 괴롭기도 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그의 ‘사랑’과 ‘자랑’인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투쟁의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괴로움을 솔직히 드러내 준다. 그러면서도 감상(感傷)과 흥분을 억제하면서 내면화된 의지를 가다듬는 성숙한 시인의 진면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향수
- 유진오
금시에 깨어질듯 창창한
하늘과 별이 따로 도는 밤
엄마여
당신의 가슴 우에
서리가 나립니다
세상메기 젖먹이
말썽만 부리던 막내놈
어리다면 차라리
성가시나마 옆에 앉고 보련만
아!
밤이 부스러지고
총소리 엔진소리 어지러우면
파도처럼 철렁
소금 먹은듯 저려오는 당신의 가슴
이 녀석이
어느 곳 서릿 길
살어름짱에
쓰러지느냐
엄마여
무서리 하얗게
풀잎처럼 가슴에 어리는
나의 밤에
당신의 옷고름 히살짓던*
나의 사랑이
지열(地熱)과 함께
으지직 또 하나의
어둠을 바위처럼 무너뜨립니다
손톱 밑 갈갈이
까실까실한 당신의 손
창자 속에 지니고
엄마여
이 녀석은 훌훌 뛰면서
이빨이 사뭇
칼날보다 날카로워 갑니다
(신천지, 1949.2)
* 히살짓다 : 헤살짓다. 짓궂게 훼방놓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유진오의 마지막 창작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그가 지리산에 문화공작대로 들어가서 지하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悔恨)이 그의 투쟁 의지와 맞물려 적절히 형상화된 작품이다.
이 시는 그 의미 단락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전반부는 4연까지로 여기에는 주로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별빛 뚜렷한 어느 날 밤에 시적 화자는 그 별들을 바라보며, 지금 어디에선가 마찬가지로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자식 걱정에 ‘가슴 우에’ 하얗게 ‘서리가 나’릴 것이지만, 자신은 그 어머니를 위해 아무 것도 해 드릴 수가 없다. 오히려 ‘총소리 엔진소리 어지러우면 / 파도처럼 철렁 / 소금먹은 듯 저려오는’ 걱정만 끼쳐드릴 뿐이다. 늘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는 사소한 소리에도 놀라 ‘이 녀석이 / 어느 곳 서릿 길 / 살어름짱에 /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졸이는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회한은 5연 이후의 후반부에서 ‘지열(地熱)과 함께 / 으지직 또 하나의 / 어둠을 바위처럼 무너뜨리’는 투쟁 의지로 승화된다. 시적 화자는 ‘손톱 밑 갈갈이 / 까실까실한’ 어머니의 손을 자신의 가슴[창자]속에 꼭 담고, 그 거친 삶의 마디를 통해 승리의 의지를 가다듬는다. 그럴 때, ‘훌훌 뛰면서’ 즐겁게 투쟁할 수 있고, 그러한 굳센 투쟁 의지에 ‘이빨’은 ‘사뭇 / 칼날보다 날카로워’ 가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에는 부모 처자를 버리고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선택한 당대 한 지식인의 회한과 의지가 애처롭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개인적 고뇌가 감상(感傷)으로 표출되지 않고 절제와 상징으로 내면화되어 있음은 오히려 그러한 지극한 서정을 극대화시켜 주는 효과를 얻는다. 이는 분명 시인의 미덕이지만, 그렇게 훌륭한 시인을 대다수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시문학사의 현실은 분명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램프의 시
- 유 정
날마다 켜지던 창에
오늘도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앉았다.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
램프를,
그 따뜻한 것을 켜자.
얼어서 찬 등피(燈皮)여, 호오 입김이 수심(愁心)되어
가라앉으면
석윳내 서린 골짜구니
뽀얀 안개 속
홀로 울고 가는
가냘픈 네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전쟁이 너를 데리고 갔다 한다.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은 어디냐.
안개와 같이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지는 내 그리운 것아.
싸늘하게 타는 램프
싸늘하게 흔들리는 내 그림자만 또 남는다.
어느새 다시 오는 밤 검은 창 안에 ― .
(여원, 1958.3)
<감상의 길잡이>
일본에서 시작한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귀국한 이후 6․25를 전후해 우리말로 시 창작을 재개한 유정 시인은 평이한 언어와 일상적 소재를 통하여 현실과 생활을 반영시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화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 시는 전쟁으로 페허화된 절망적인 현실을 램프의 불빛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늘도 /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자는 그 어둠 속에서 마치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어둡고 두려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화자는 ‘램프를, / 그 따뜻한 것을 켜’려고 ‘얼어서 찬 등피’를 ‘호오 입김’ 불어 닦는다. 그러자 램프의 ‘석윳내’ 같은 화약 냄새가 풍기던 ‘골짜구니’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가냘픈 뒷모습’을 보이며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로 떠나 버린 그들은 바로 ‘전쟁이 데리고’ 간 사람들로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가 화자의 가슴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6․25의 폐허 속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감이 삶의 비애감과 어울려 절망적인 분위기로 나타나 있다. ‘내 그리운 것들아’라고 소리쳐 불러 보지만, ‘안개와 같이 /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진 그들은 돌아올 줄 모르고, 화자의 허탈한 마음 안에선 ‘램프’만 ‘싸늘하게 타’오를 뿐이다. 어두운 방안 한구석 ‘싸늘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화자가 깊은 ‘수심’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다시’ 밤은 ‘검은 창 안’에 가득차 흐른다.
이 시는 전쟁의 아픔을 반추하며 그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어와 회화적 기법을 이용한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염원을 ‘램프’의 불빛처럼 보여 줌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인의 비극적 체험과 소망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 준다.
혼자 선 나무
- 劉庚煥
나무 위로 바람 없이
날아 오르는 꽃잎을
아이가 쳐다보고 있다.
뾰죽탑 위로 바람 없이
오르내려 흩어지는 구름 조각 끝
아이가 턱에 걸고 있다.
날아오르는 일이
가장 하고 싶던 갈망이었음을
뉘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었던 때
꽃잎보다 구름보다 높게
전봇대만큼 키 크는 꿈을
대낮 빈 마을에서 아이가 꾼다.
그 아이는 지금껏 혼자인
늙지 않으려는 나.
<핵심 정리>
1. 시적(詩的) 의의
시의 제목처럼 나무는 서정적 자아의 내면의 한 모습이며, 어린아이적 옛 일을 회상하는 수법을 통하여 지난 날의 그의 이상을 짐작케 하는 시이다. 꿈의 고백을 통하여, 시인은 지금도 부단히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며 헝클어진 자신을 재발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시상의 전개
* 제1,2연 - 이상을 추구하던 모습 회상
* 제3,4연 - 고독하게 꿈 꾸던 시절 고백
* 제5연 - 자신의 재발견
3. 주제 : 자아 발견의 순수 의지
4. 제재 : 혼자 선 나무
5. 성격 : 상징적, 의지적
6. 시어의 상징 의미
* 날아오르는 꽃잎 : 理想
* 구름 조각 : 理想
윤동주論
화해와 융화의 세계 열어 준 윤동주
한국 현대 시인 중에서 특히 윤동주(1917-1945)의 생애는 우리에게 한 시인의 심성, 시인과 사회적 배경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에 들어 있는 전편의 시들은 한 시인의 순결한 젊은 영혼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눈부신 순수의 빛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맑고 밝아서 투명한 소리가 날 것 같은 색깔, 어디서 우는지 몸은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들리는 뻐꾸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흐르는 산 속의 샘물처럼 우리의 영혼을 씻어 내린다. 그와 어릴 적부터 가까웠던 친구인 문익환 씨의 회고에 따르면 “나는 그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언제나 넋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는 아주 고요하게 내면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가 보여 주고 있는 전기적 요소와 시적 사유의 결합은 자의식의 흐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시」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하늘과 땅의 근원적 질서 속에서 그의 본질은 스스로를 응시하며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우주 속에서 느끼는 세월과 그 흐름이 가져다주는 변화, 그 모든 것은 생명과 죽음, 존재와 소멸의 내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의 괴로움은 어둡고 부정적인 인간의 실존이 지니는 보편적 상황과 함께 어두운 일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괴로움의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분리되어 있는 자아를 직시하는 자기 성찰의 과정에서 그의 부끄러움의 시어가 탄생한다. 그의 부끄러움은 대부분 진실을 추구하는 의식 세계와 현실적 삶 사이의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대적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응시하며 자신에 대한 물음 던져
윤동주는 유별나다고 할만큼 시대적 현실을 포함한 세계를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감지했다. 그의 예민한 촉수는 늘 세계를 향해 곤두서 있다.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쉽게 쓰여진 시」 전문
그의 최후의 시로 알려진 「쉽게 쓰여진 시」에는 손을 내미는 나와 또 다른 나의 대립이 있다. 이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식민지의 청년 윤동주와 지배국인 일본으로 건너온 유학생인 자신과의 대립이며, 또한 일상적 인간과 시인으로서의 자아, 그리고 밤과 아침의 대립이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어 있다. 하지만 시인은 이제 대립되는 세계 사이에서 좌초하지 않고 두 사람의 자신을 악수시킨다. 따뜻한 체온의 나눔이 감지되는 이 악수의 이미지는 먼길을 돌아온 시인의 또다른 자기 응시가 되는 것이다.
‘우물’이나 ‘거울’의 이미지가 동적으로 변화해 자기 성찰과 수련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길’의 공간이다. 「서시」의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라는 운명적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윤동주 시의 곳곳에서 여기저기로 뻗어 있는 ‘길’들과, ‘길 모퉁이’, ‘뒷골목’, ‘어느 낯선 거리’에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의 일부
「길」의 공간성은 언제나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길은 바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길이며, 거기에 다다르기 위해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정신적 세계로서의 길이다. 시인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부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참함을 넘어서 끊임없이 가야 하는데, 이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 여전히 담 저쪽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곳에 남아 있는 자아가 화자가 잃어버린 참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관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 현재 잊고 있는 존재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먼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가는 것이며, 고통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길의 선택을 계속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이며, 이러한 결의나 다짐의 태도는 윤동주 시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결국 윤동주의 시와 그의 생애가 모색되어 있는 초점은 따뜻한 화해의 세계로 모아진다. 어둠과 빛, 자기 부정과 긍정, 환자와 건강인, 그리고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극복하게 하는 사랑과 정다움 등 의미의 대응 관계를 이루는 두 세계를 하나로 묶는 융화의 세계인 것이다. 그 균형과 조화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떠나며, 자아의 탐구와 실천 사이의 끊임없는 상충 속에서 요동하는 괴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예리한 현실적 상황과 이상적 가능성의 부딪침 사이에서 윤동주의 감수성은 공존을 시도한다. 그 감수성은 모순된 명제를 동시에 포용하면서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나와 타인을 결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화해, 공존, 융화의 세계 보여 주어 대립적인 것을 조화시켜
따라서 윤동주의 모든 시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그것을 긍정적 깨달음에로 이끌어 주는 의미 체계를 구성한다. 그 두 대립되는 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항은 어린 날의 추억이나 친구들, 어머니와 순이, 때로는 이웃 사람들로 표상 되고 있다. ‘노여움, 억울함, 아까움 같은 것을 마음속에 조용히 새기고는 늘 변함없는 미소로 사람을 대하던’ 그의 성품은 밤비 속에서 아침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열쇠를 사람들 사이의 연대 의식으로 융화하려는 시 정신과 일치된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부정적인 현실의 나를 극복하여 시적 초월로 자기 존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모색의 과정을 보여 준다. 대상을 주관화시키는 이미지의 처리법, 자기가 또 하나의 자기에게 다짐하는 미래 지향적 시제, 흐르듯 이어지는 시어의 연속적 흐름, 산문적 형식 등 그의 시를 특징짓는 모든 경향들은 이러한 그의 내면적 요구와의 연관에서 해명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시를 쓰는 행위는 괴로워하는 자기가 희망을 가지라고 부추기는 또 다른 자기에게 내미는 악수였고, 나와 타자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연결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들은 이웃과의 연대 의식을 우리 모두에게 깨우치는 따뜻한 화해의 시학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尹東柱의 삶과 문학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全文
윤동주는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한편으로 대시인의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생존시에 문인으로 자처하지도 않았고 문단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흔한 동인회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문단 친구도 없다.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시집이 발간되면서 ‘사후(死後)의 훈장’처럼 그에게 시인의 타이틀이 붙여졌고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 징역형을 받고 옥사했다고 해서 ‘저항 시인’이라는 ‘덤’까지 붙여 주었다.
1918년에 태어나서 45년 해방을 6개월 앞둔 2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옥사한 그는 참으로 여한이 많은 일생을 산 인물이다. 우선 그는 장가를 한 번도 못 가 보았다. 공부한다고 일본을 오락가락 하다가 결혼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혼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 감옥살이 신세가 되었고 감옥에서 사망하니 물론 혈육이 있을 리 없다.
생존시에 ‘시인’ 소리를 못 들은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직장이란 것도 가져 보지 못했다. 그 시절 남자 나이 20세 전후가 되면 결혼하고 취직해서 남자로서 갖출 것은 대충 갖추는 것이 관습인데 그는 문학 공부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모든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성격이 무섭도록 침착한 그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일은 전혀 오불관언이었다.
윤동주는 자기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결벽증이 있었다. 다듬고 또 다듬고 해서 완벽하다고 스스로 판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라도 보여주지 않았다. 또 그는 작품을 무슨 잡지에 발표하기를 몹시 꺼려했다. 남들이 그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붙이는 것을 그는 불쾌하게 여겼다. 하얀 항아리에 흙칠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생시에 이처럼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그가 사망한 이듬해 경향신문에 「쉽게 씌어진 시」가 발표되었고 2년후인 48년 1월에 그의 시 30여편을 수록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10주기가 되는 55년에 같은 제목의 시집이 나왔는데 이 책에는 88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래서 윤동주는 ‘죽어서 시인이 된 시인’이다.
앞에 적은 그의 시 「서시」의 깨끗함에 비해 그의 죽음은 너무나 처참하다. 맑게 살고 싶은 그의 뜻과는 정반대의 죽음이었다. 그는 2년 선고를 받고 일본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목도 대단히 애매 모호하다. 43년 한국 학생 대표들이 중국 장개석(張介石) 총통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가던 도중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조선 독립을 도와 달라는 탄원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일경(日警)은 한국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멍청한 학생은 빼고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은 무조건 잡아갔다. 공부밖에 모르는 윤동주가 여기에 휘말린 것이다.
윤동주를 비롯해서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된 한국 학생들은 정체 모를 주사를 매일 맞았다고 한다. 면회 간 친척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東柱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몸은 살이 다 빠져 해골 같았고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또 형무소 간수의 말에 의하면 東柱는 운명할 순간에 뜻모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무렵 그의 고향집에 2통의 전보가 배달되었다. 먼저 온 것이 ‘2월 16일 東柱 사망 시체 가져가라.’였고 후에 온 전보는 ‘東柱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사망 시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구주 제대에 해부용으로 제공함.’이었다. 그러니 먼저 붙인 전보가 나중에 도착한 것이다. 시체를 가져가라 한 것은 해부용으로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 몸이 엉망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東柱의 맑디맑은 정신과 독약 주사를 맞으며 실험용 몰모트가 된 그의 육신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나뉘어졌다. 그의 영혼은 대시인의 명예를 얻었고 그의 처참한 육신은 고향 북간도 용정땅 東山교회 묘지에 묻혔다. 東柱는 성격적으로 예술의 틀에 갇힌 사람이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문학서라면 보이는 족족 밤을 새워 읽어 젖혔다. 간도(間島) 화룡현에 있는 明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용정 광명중학교를 오락가락하며 다니다가 38년 연희 전문 문과에 들어가는 동안 그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방면의 공부에만 전념했다.
감옥살이하는 동안에도 고흐에 관한 저작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는데 화집, 전기, 서간집 등이 상당수 있었고 판화 잡지 「백과 흑」을 여러 권 구입하였다. 그의 성적표를 보면 음악 점수가 아주 좋다. 또 그는 스포츠에도 재주가 있어서 농구 선수, 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으며 대나무를 기다랗게 쪼개어서 스키를 만들어서 타기를 즐겼는데 그 당시 스키 재주로 東柱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멋쟁이인 그는 그의 인생을 미완성인 채 남기고 백골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시편을 남기고 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또 다른 故鄕에 가자. ― 「또 다른 고향」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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