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놀이
-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西便)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벌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여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아아, 좀 더 강렬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맥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4월달 다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느끼는 사람 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봄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드러벡이고, 물결치는 뱃숡에는 조름 오는 ‘잊음’(리듬)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 ―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 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정욕(情欲)을 이끄는 불구경도 인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없는 술도 인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間斷)없는 장구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리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제, 뜻있는 듯이 삐걱거리는 배잣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 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는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로라, 사로라! 오늘 밤! 너의 발간 횃불을, 발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발간 눈물을…….
(창조 창간호, 1919.2)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자유시로 평가된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가신 임으로 인해 죽고 싶은 마음과 주위 사람들의 흥겨운 불꽃놀이로 표현되는 삶 사이에 놓여 갈등을 겪지만, 괴로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난다.
▶ 성격 : 낭만적, 상징적, 감상적
▶ 시상전개 : 현재→과거회상→현재
▶ 구성 : ① 4월 초파일 - 상황 제시 (1연)
② 불놀이를 보면서 죽음에 대한 충동과 삶에 대한 의욕이 교차됨 (2연)
③ 불놀이 뒤 격정이 지난 후의 화자의 허탈감 (3연)
④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자조 (4연)
⑤ 현실과의 갈등을 초극하여 강한 삶의 의욕으로 치달음 (5연)
▶ 제재 : 4월 초파일의 불놀이
▶ 주제 : 임을 잃은 슬픔과 그 극복 의지
<구조 분석>
제1연 |
불꽃놀이의 흥성스러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나
대조
제2연 |
꽃, 봄 : 소생, 부활의 심상
강물 : 소생과 희망을 가로막는 심상
불 : 생명이나 강렬한 정열의 상징
물 불
(죽음) 대조 (삶)
제3연 |
불놀이가 끝남 화자의 허탈감
제4연 |
강물 배
대조
삐걱거리는 배 화자의 무력감
제5연 |
어둡고 애처롭던 시의 분위기가 급전됨.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던 언덕’ : 지향점
‘너의 애인이~뱃머리를 돌리라’ : 화자의 의지 강조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대조되는 두 시어를 찾아 그 상징적 의미를 쓰라.
☞ ‘물’과 ‘불’은 대조되는 시어로서, ‘물’은 죽음이나 소생과 희망을 가로막는 상징이며, ‘불’은 삶이나 강렬한 정열의 상징이다.
2. 제2연에 나타난 화자의 궁극적 태도를 밝혀 25자 내외로 쓰라.
☞ 현실의 괴로움과 슬픔을 의지로써 극복하려 한다.
3. 제2연에서 시상의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된 소재를 찾아 쓰라.
☞ 매화포
4. ㉠의 이유가 될 만한 시구를 찾아 쓰라. ☞ 가신 임 생각에
5. ㉡은 공간 개념이 드러난 시구이다. 이 말과 함축 의미가 같은 말로서 시간 개념이 드러나 있는 두 어절의 말을 찾아 쓰라.
☞ 사랑의 봄
<감상의 길잡이>
‘불놀이’는 우리 근대시의 형성·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의 하나이다. 이전의 시들이 내용으로 하는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벗어나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했다는 점, 일체의 운율적 제약을 벗어나 감정의 자유로운 유출에 합당한 산문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최초의 본격적인 자유시’로 평가되어 왔다.
식민지 상황에 놓인 한 젊은이가 정서적 불안과 분열을 노출하는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움직이는 기본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는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그림자’와 ‘밝음’이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 양면임을 뜻한다.
현실이 ‘나’에게 어둠(그림자)으로 느껴지는 것은 임이 죽었기 때문이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라는 말은 오직 임만이 나의 존재 이유라는 뜻이다. 사월 초파일 날, 한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는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을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매화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 놓는 시뻘건 불덩이를 보며 그는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물’이 죽음이라면 ‘불’은 삶의 표상이다. 이와 같이 어둠과 밝음, 물과 불, 죽음과 삶이 갈등하는 가운데 이 시는 전개된다. 서로 대립하는 사물과 욕구 사이에서 주인공은 극도의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는 바, 넷째 연의 ‘괴상한 웃음’이라는 표현은 갈등 속에 일그러진 비정상적인 심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맥락 읽기>
1. 말하는 사람은 있는가 누구인가? ☞ 나
2. 하루 중 어느 때인가? ☞ 저녁무렵 ~ 한밤중
3. 화자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가?
☞ 1) 성문 위에서 사람들이 매화포를 터뜨리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 2) 배 위에서 걸판진 술자리를 벌이고 놀다가 혼자 떨어져 울고 있다.
4. 그의 심적 상태는? ☞ 괴롭고 슬프다.
5. 그는 왜 그런 심적 상태에 있게 되었나?
☞ 소중한 그 무엇을 잃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었다.
6. 여러분이 화자와 같은 처지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은가 ?
☞ 운다. 죽고 싶다. 술을 마신다. 두문불출한다. 여행을 떠난다. 디스코텍에 간다.
7. 화자의 괴롭고 슬픈 심적 상태가 잘 드러나 있는 시구를 각연에서 다 찾아보자.
☞ 1연 : 나만 혼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 2연 : 에라 모르겠다.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음 살라버릴까.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뛰어 들어 버릴까. 죽어 버릴까)
☞ 3연 : 배 밑창에 누우면 까닭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 4연 :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울음이다.
8.그렇다면 어떻게 하고 싶다는 얘긴가? ☞ 괴로워 죽고 싶다.
9. 자 이제까지 얘기한 것을 바탕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다는 형식으로 상황을 정리해 보자.
☞ 어떤 청년이 저녁무렵에서 한방중까지 강가와 강에 띄운 배 위에서 사랑을 잃은 슬픔으로 무척 괴로워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죽고 싶어 한다.
10. 이 시의 주된 정조, 어조는? ☞ 슬픔 괴로움, 비탄조
11. 이 시에서 주된 정조,어조와 약간 다르거나 상반된 정조, 어조가 드러나 있는 부분을 찾아 보자.
☞ 2연 마지막 부분(아아 좀더 강렬한 ~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 5연 마지막 부분(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 너의 빨간 눈물을...)
12. 이런 상반된 정조, 어조가 하고 있는 역할은?
☞ 괴로움 슬픔 비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13. 이 시의 주제를 말해보자.
☞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은 슬픔과 그 극복의 몸부림
샘물이 혼자서
- 주요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리운다.
- (학우 창간호. 1919.1)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샘물이 흘러가며 산야(山野)에 울리는 맑고 아름다운 음향과 고운 서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근대시가 단지 형태상의 자유로움만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근대인의 감정과 체험을 담는 것이어야 한다면, 이 작품의 근대적 의의는 그다지 크다고 보기 어렵다. 이보다는 ‘태서문예신보’(1918)에 발표된 김억의 ‘봄은 간다’, 그리고 주요한의 ‘불놀이’가 당대 시인들의 고뇌, 비애, 격정을 담은 시편들로서 주목된다.
▶ 성격 : 서정적, 감각적(시각, 청각), 관조적
▶ 형태 : 2음보 3행 단위의 3연으로 된 자유시
▶ 표현 : 도치, 의인, 반복과 변조.(의미가 이완되어 시적 긴장을 잃지 않도록 도치법을 썼고, 제1,2연이 반복과 변조로써 음악성을 살렸음.)
▶ 구성 : ① 경쾌하게 흐르는 산골짜기의 샘물 (1연)
② 명랑하게 흐르는 산길의 샘물 (2연)
③ 산야에 울리는 샘물의 소리 (3연)
▶ 제재 : 산골짜기에서 들판으로 흘러가는 샘물의 모습
▶ 주제 : 샘물이 흘러가는 맑고 아름다운 서정
<연구 문제>
1. 이 시를 본격적인 현대시로 문학사적 의의를 둘 때, 이전 시대의 작품과 내용면의 차이점을 20자 내외로 밝혀 쓰라.
☞ 계몽성 및 교술성을 탈피하여 개인적 서정을 노래했다.
2. 각 연의 시상의 전개에 따른 감각의 변화를 짚어 보라.
☞ 시각(제1연) ― 시각(제2연) ― 청각(제3연)
3. 이 시에서 한국 서정시의 보편적 정서를 드러내는 시어를 찾아 쓰라. ☞ 혼자서
4. 이 시의 제1,2연에서 사용된 도치법의 시적 효과를 쓰라.
☞ 의미가 이완되어 시적 긴장을 잃지 않도록 한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불놀이’ 보다 한 달 앞서 발표되었고 형태도 안정되어 있다. 1910년대의 시로서는 균형미와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 제1연과 제2연의 형태는 같고, 제3연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제1,2연의 둘째 행은 3·2음절 2음보 형식인데, 제3연의 둘째 행은 3·3음절 2음보 형식이다. 제1,2연은 도치법을 썼고, 각 연의 셋째 행이 같은 형식에 어휘의 변이(變異)를 보여 준다. 제1,2연을 부사어로 끝내어 동적인 방향성과 그 미완성 상태를 나타내고, 제3연의 셋째 행을 서술형 종결어미로 끝맺음으로써 시상(詩想)을 마무리하고 있다. 자유시라고는 하지만 여러 모로 형태적인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의인화된 샘물의 흐름이 산과 들과 하늘에 투명하고 밝은 음향으로 확산되어 울리는 전개 과정을 보여 주는 이 시는 심정과 공간 모두가 확대되어 가는 ‘열림의 시’이다. 밝음을 향하여 열려 가는 이 시의 시상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삶의 질곡(桎梏) 속에서 비탄과 절규를 토로하기보다 오히려 밝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감으로써 새 삶을 열려는 소망을 보여 준다.
빗소리
-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지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듯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들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폐허 이후’(1923. 2)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주요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구체적이고도 선명한 이미지 제시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리고 ‘불놀이’에서 보여 준 산문적 경향과는 달리 전통적인 율격을 살리면서도 자유로운 형식으로 발전시켰으며, 순우리말로 되어 있어 쉽고 안정된 표현 효과를 거두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성격 : 서정적, 시각적
▶ 어조 : 여성적 어조
▶ 표현 : 반복, 도치, 의인, 직유
▶ 구성 : ① 뜰 위에 속삭이는 봄비(1연)
② 비가 오기 전의 따뜻한 봄바람(2연)
③ 다정한 손님같이 속삭이는 봄비(3연)
④ 남 모를 기쁜 소식을 전하는 봄비(4연)
▶ 제재 : 비 오는 모습
▶ 주제 : 고요하고 은근하고 기쁜 봄비의 서정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화자가 대상에 대해 느끼는 친근감이 어디에 연유한 것인지를 밝혀 쓰라.
☞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기 때문이다.
2. 다음 말 속에 이 시인의 동요(童謠)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동요적 어법이 이 시의 표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두 가지만 지적해 보라.
☞ 하나는 한자어를 기피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에 노래하는 형식으로 된 문학이 있었다면 대개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중국을 순전히 모방한 한시(漢詩)요, 둘째는 형식은 다르나 내용으로는 역시 중국을 모방한 시조요, 셋째는 그래도 국민적 정조를 어지간히 나타낸 민요와 동요입니다. 그 세 가지 중에서 필자의 의견으로는 셋째의 것이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
3. 이 시에서 다음 이미지가 사용된 대목을 찾아 쓰라.
☞ (1) 청각적 이미지 :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2) 시각적 이미지 : 다정한 손임같이 비가 옵니다.
(3) 촉각적 이미지 :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전반부(제1,2연)가 비가 오는 것 또는 오려고 하는 날씨를 감각적으로 표현하였다면, 후반부(제3,4연)는 그것을 보다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봄밤에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화자는 ‘다정한 손님’이 ‘남 모를 기쁜 소식’을 전해 주러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를 단순히 자연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빗소리에 의탁하여 민족 해방의 촉촉한 꿈에 젖어 드는 작자의 은밀한 심경을 읽을 수도 있다. 그 은밀하고 밝은 분위기는 이 시의 동요적 어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밝은 분위기는 20년대 초의 다른 시인들의 퇴폐적이고 우울한 시풍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지만, 거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그의 밝은 감정이란 김흥규 교수의 지적대로, ‘절망이 어떤 실제적 비전이나 의지에 의해 극복된 결과가 아니라, 다만 병적인 색채를 피하고 밝은 것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심정적 동기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시’란 시인 자신의 말처럼 ‘거기 담긴 사상과 정서와 말이 민중의 마음과 같이 울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와 같은 훌륭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념적인 현실 인식은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는 민중의 실체를 잡기에는 허약한 것이었다. 그의 시를 지탱하는 힘은 이러한 순진무구한 애국적 열정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감각적 형상 능력에 있다. ‘밤’은 마치 큰 어미새가 그 새끼들을 품어 주기 위하여 날개를 벌리고 있는 듯한데, ‘비’는 그 품 속으로 기어드는 병아리같이 몰래 속살거리고 있다는 표현은 아주 재미있다.
귀천(歸天)
- 千祥炳
나
하늘 |
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집 주막에서, 197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무구(純眞無垢)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한국의 전통적인 토종의 시인이자 영원한 자유인으로, 오직 술과 문학만으로 살았던 시인의 삶과 비애를 평이한 말과 형식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시이다.
▶ 성격 : 시각적, 서술적
▶ 운율 : 3음보의 반복과 변조
▶ 어조 : 내면적, 독백적 어조
▶ 표현 : 1) 감정이입
2) 반복법, 상징법
▶ 특징 :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의 정신을, 세속을 초월한 달관의 세계와 조화시킴.
▶ 구성 : ① 기 : 이슬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리라.(1연)
② 서 :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리라.(2연)
③ 결 : 하늘로 돌아가 이 세상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3연)
▶ 제재 : 귀천(歸天)
▶ 주제 : 삶에 대한 달관과 죽음에 대한 체관.(삶을 초극한 죽음에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는 시인이 추구해 온 세계가 어떤 세계로 나타나 있는가? 두 어절로 답하라.☞ 무욕(無慾)의 세계
2. 이 시에서
하늘 |
이 상징하는 의미를 40자 내외로 쓰라.
☞ 지상의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유로움과 초월성을 획득한 세계
3. 화자는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라고 말했지만 언표(言表)된 사실과 내심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 말이 지니는 역설적 의미를 한 단어로 쓰라. ☞ 괴로웠다.
<감상의 길잡이>
세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매 첫행에서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죽는다는 뜻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말대신에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사람의 말투다. 두고 가야할 세상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無慾)의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하늘로 돌아가면서 그가 동반할 것이라고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과 ‘노을빛’밖에 없다는 말에서도 이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운 자의 달관을 보게 된다. 이승에서의 삶을 하나의 ‘소풍’에 견줄 수 있다면, 화자는 마치 하늘에서 잠시 귀양살러 온 신선과도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를 신선 같은 삶을 산 자의 노래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의 삶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어지간히 괴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에 놓인 말없음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 아름다웠더라는 말은 괴로웠다는 말의 역설처럼 들리지는 않는가.
그러나 괴롭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괴로웠다고 말하지 않는 데 이 시인의 미덕이 있다.
<맥락 읽기>
1. 시 속에서 말하는 이는? ☞ 나
2. 시의 화자는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추측해보자)
3. 시의 화자가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하늘’로 돌아 가는 것.
4. 그 때의 상황은 어떨까?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5. 이런 상황을 가진 날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곳을 찾는다면?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6. (우리의 삶에서) 그 날은 언제일까? ☞ 죽는 날
7.시의 화자는 자신이 살던 이 세상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할까? ☞ 소풍같이 아름다운 날
7-1. 정말로 그러했을까?
8. 이 시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시구를 찾는다면?
☞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9. ‘하늘’이라는 말이 지닌 추상적 의미를 생각해볼까?
☞ 평안한 집, 평온
새
- 千祥炳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 날이 와,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情感)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시집 새, 1971)
<감상의 길잡이>
천상병의 시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끊임없이 가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생을 일정한 직업도 없이 완전한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던 그였기에 가난은 결코 그가 떨쳐 버릴 수 없던 운명 같은 것이었지 모른다. 그의 ‘가난’은 <소릉조(小陵調)>의 ‘저승 가는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에서 한 정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시인은 지긋지긋한 가난의 극한에서도 괴로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느니, 아,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라는 달관의 경지로 뛰어넘는 명상적 세계를 펼쳐 보인다. 가난하기에 저승에 갈 염려도 없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역설의 진실을 가지고 살던 시인은 이 작품 <새>를 통해 <귀천>의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소중한 ‘날개’를 얻게 된다. 새는 인간이 신성(神性)에 근접할 수 있는 상징적 매개체가 되는 것으로,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하늘에 오르고 싶어하는 비상(飛翔) 의지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곤궁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삶을 고통스러워하거나 세상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귀나 영화 같은 세속적 가치를 잊고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외롭고 고달픈 ‘영혼의 빈터’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이 꿈꾸는 ‘새 날’은 ‘내가 죽는 날, / 그 다음 날’에나 올 것을 예감하며 그 때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있다. 그 때 ‘살아서 / 좋은 일도 있었다고 / 나쁜 일도 있었다고 /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세상의 평화를 고요한 마음으로 응시하며 ‘낡은 목청을 뽑’을 것이라고 자신과 약속한다. 이와 같이 죽음으로써 삶을 되돌아보는 방법을 통해 비로소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된 시인에게서 우리는 깊은 혜안(慧眼)을 갖고 있는 선승(禪僧)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가난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시인의 태도는 그로 하여금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삶의 달관을 갖게 해 준다. 죽은 후에도 세상을 무념무상의 상태로 관조하고 싶어했던 시인은 새가 되어 ‘하늘로 돌아간’ 지금도 천상 세계에서 ‘그렇게 우는’ 모습으로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일(秋日)에 --
- 千祥炳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천상병, 시집 ‘주막에서’(197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조금은 진부하고 산문적이면서도 그 단순, 소박함으로 하여 어떤 시적 운율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자신의 신상 진술에 이어 어떤 개인적이거나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신비에 대한 경이감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시가 지닌 기능 중의 하나가 우리의 의식을 굳어 있는 틀에서 해방시켜 인간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 성격 : 개인적, 관조적, 실존적
▶ 특징 : 단순, 소박한 개인의 정황을 진술하고, 그러한 괴롭고 고단한 삶에 대한 일반적 결론이 아닌, 삶의 신비로움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드러냄.
▶ 구성 : ① 기 : 가족 및 개인적 정황(제1-4연)
② 서 : 개인적 의견 표출(제5-6연)
③ 결 : 삶에 대한 경이감(제7연)
▶ 제재 : 인생의 깊이
▶ 주제 : 고절감을 통한 삶의 깨달음.
<연구 문제>
1. 이 시가 드러내고 있는 표현상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지닌 가치에 대해 그의 시 세계와 연관지어 170-200자 정도로 쓰라.
☞ 그의 시가 설명적 서술이나 넋두리조(調), 단순한 시각 그리고 동어 반복적인 요소 등의 단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면에서 스케일이 크고 깊지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곤궁한 삶의 극한 속에서 세속의 때묻은 관습이나 타산적인 생활 양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인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일깨워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 화자의 감정이 가장 고조된 연은? ☞ 제6연
3. 이 시에서 시인이 겪는 갈등의 원인과 양상을 두 가지로 제시하라.
☞ (1) 가족과의 헤어짐에서 오는 고독과 단절감
(2)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한 절망과 좌절감
<감상의 길잡이>
천상병의 시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끊임없이 가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생애(全生涯)에 걸쳐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 수밖에 없던 그로서 시대와 불화를 겪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가난과의 끈질긴 갈등과 화해 속에서 가난 길들이기에 이력이 알 것도 자명한 이치이다. 가난이란 어쩌면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한 운명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 시의 핵심은 고절감이며, 가난으로 인한 소외감이다. 가족․친척들과 떨어져 있음에서 오는 고독과 단절감이 표층적인 정서를 이루며 경제적인 궁핍에 기인하는 뼈저린 가난의 체감이 그 심층 의식에 해당한다. 특히, 제4연의 ‘여비가 없으니 / 가지 못한다.’라는 시구 속에는 뿌리깊은 가난에 대한 절망과 좌절감이 이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이러한 가난의 문제가 한탄이나 진부한 타령으로 끝나지 않고 시적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즉, 가난에 지치고 병들어서 세상을 혐오하고 저주하는 게 아니라, 제5-6연에서 보여 주듯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와 같이 아이러니에 의한 연민의 정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가난으로 찌들고 병들었다면 저승 가기가 쉬울 것이 분명한데도, 오히려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라고 뒤집어 놓고 있다.
이러한 반전(反轉)으로 인해 ‘생각느니, 아,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라는 구절처럼 가난이 삶의 한 본성이며, 그것을 통해 인간이 비로소 진실해질 수 있고, 깊이 있게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획득하게 된 데에 이 시의 참뜻이 있다. 가난이야말로 인간을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근원적인 힘이며 시적 진실의 핵(核)을 이룬다는 뜻이다.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 최남선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ᄯᅡ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태산(泰山) 갓흔 놉흔 뫼, 딥턔 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 무어냐,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ᄭᅡ디 하면서
ᄯᅡ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내게는, 아모것, 두려움 업서,
육상(陸上)에서 아모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者)라도,
내 압헤 와서는 ᄭᅩᆷᄯᅣᆨ 못하고
아모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디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압헤는.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콱.
텨……ㄹ썩,텨……ㄹ썩,텩, 쏴……아.
나에게, 뎔하디, 아니한 者가,
只今ᄭᅡ디, 업거든,통긔 하고 나서 보아라.
秦始皇, 나팔륜*, 너의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의역시(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르리 잇건 오나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됴고만 山 모를 의지(依支)하거나,
됴ㅅ쌀갓흔 뎍은 섬 손ㅅ벽만한 ᄯᅡᆼ을 가디고,
고속에 잇서서 영악한 톄를,
부리면서, 나 혼댜 거룩하다 하난者,
이리 둄 오나라, 나를 보아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나의 ᄯᅣᆨ될 이는 한아 잇도다,
크고 길고, 널으게 뒤덥흔 바 뎌 푸른 하날.
뎌것은 우리와 틀님이 업서,
뎍은시비(是非) 뎍은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업도다.
됴ᄯᅡ위 세상(世上)에 됴 사람텨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뎌 세상(世上) 뎌 사람 모다 미우나,
그 중(中)에서 ᄯᅩᆨ 한아 사랑하난 일이 잇으니,
담(膽) 크고 순정(純情)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才弄)텨럼, 귀(貴)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少年輩), 입맛텨 듀마.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소년 창간호, 1908.11)
* 나팔륜 : 나폴레옹
<핵심 정리>
▶ 성격 : 계몽적
▶ 제재 : 바다(새로운 문물)
▶ 주제 : 소년의 시대적 각성과 의지
▶ 율격과 형식
전 6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각 연이 규칙적으로 7행이다. 그리고 각 연이 정형적인 율격에서는 벗어나 있으나, 매 연마다 동일한 패턴의 율격이 반복되어 전체적으로 단순한 느낌을 준다. 즉, 각 연은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라는 의성어가 앞뒤에 나오고, 3·3·5 내지 4·3·4·5 등의 음수율이 배치되어 정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또, 이 시는 담화체 형식을 취해 주제 전달의 효과가 강조되고 있으나, 이러한 대화체로 인해 시적인 긴장을 잃어 산문적으로 확산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 Byron의 장편시 ‘소년 해롤드의 순례(Child Harold's Pilgrimage)’의 마지막 부분의 일본어 번역을 참조한 일종의 번안시라는 견해도 있다.
<감상의 길잡이>
1908년 <소년> 창간호 권두시로 발표된 이 노래는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신체시의 효시작이다. 개화가사와 창가의 율조에서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리고 표현의 미숙성과 시어의 생경감은 당시 여건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하는 장쾌한 의성어에는 모든 것을 씻어내리는 바다의 이미지 속에 구시대의 잔재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강렬히 갈망하는 지은이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바다와 소년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신선함, 무한히 열린 時空間의 전개 가능성을 노래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더 나아가 구시대의 모든 것을 개혁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때묻지 않고 대담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지은이의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것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꽃 두고
- 최남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北風)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 없는 살기(殺氣)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 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表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어
그의 부귀 기상 나타낸 성(盛)한 모양 탐하여
주책(主着)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 오직 혼자 특별히
약간 영화 구안(榮華苟安)치도 아니고, 허다 마장(許多魔障) 겪
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억만 목숨을 만들고 늘어 내어 길이 전할 바
씨 열매를 보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소년 7호, 1909.5)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통해 제기된 우리 시가의 근대성 획득 문제가 그대로 대두되고 있는 작품으로, 1․2연의 자수율이 동일할 뿐 아니라, 표현도 진부한 설명의 차원에 머물었으나, 시적 발상과 행간의 처리 등에 있어서는 전대에 비해 한결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분히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의 이 시는 1연에서는 꽃을 즐겨 맞는 이유를, 2연에서는 꽃을 즐겨 보는 이유를 노래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꽃을 즐겨 맞는 이유는 ‘아리따운 태도’와 ‘향기로운 냄새’라는 꽃의 표면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더운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꽃의 내면적 의미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꽃은 ‘칼날 같은 북풍을 더운 기운으로써’ 대신해 주고, ‘인정 없는 살기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주는 존재로서 따스한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우주 만물을 소생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꽃을 즐겨 보는 이유는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부귀 기상 나타낸 성한 모양’이라는 꽃의 순간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씨 열매’가 표상하는 꽃의 구원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꽃의 두가지 속성, 즉 ‘아리따움’․‘향기로움‘․’평화로움‘․’부귀함‘ 등이 갖는 현상적 아름다움과 ‘더운 기운’․‘깊은 사랑’․‘씨 열매’ 등이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 중에서, 본질적이고 심층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꽃이 새로운 서구 문명을 상징하고 있다면, 이 시의 주제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참다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화라는 거센 물결에 편승하여 여과 없이 유입되고 있던 서구 문명에 대하여 시적 자아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최상급의 수식어로써 예찬하고 있다. 아울러 서구 문명의 수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는 비주체적, 비역사적 시대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육당이 가지고 있던 현실 인식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잣대요, 육당을 위시로 한 그 당시 개화론자들의 한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점이라 하겠다.
* 시적 자아(The Poetic I)
시 속에서 시인의 서정을 드러내는 인물로서 시인과 세계를 매개하는 주인공이 된다.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며, 시인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가공의 존재로서 시적 화자라고도 한다.
세속 도시의 즐거움․2
- 최승호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곡하던 여인은 늦은 밤 손익을
계산해 본다.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고
(큰 도적에게 큰 슬픔 있으리라)
누워 있는 알거지의 빈 손,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은
냉동실에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데
흑싸리를 던질지 홍싸리 껍질을 던질지
동전만한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
그들은 죽음의 밤에도 킬킬대며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다.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
쥐들이 이빨을 가는 밤에
쭉정이 되는 추억의 이삭들과 침묵 속에서
냄새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기웃거리는
죽음의 왕.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홑거적 덮은 알몸의 주검이
혀에 성에 끼는 추위 속에 누워 있는 밤,
염장이가 저승의 옷을 들고 오고
이제 누구에게 죽음 뒤의 일을 물을 것인지
그의 입에 귀를 갖다댄다
죽은 몸뚱이가 내뿜는다 해도
서늘한
허(虛)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 1990)
<감상의 길잡이>
최승호의 시는 진지한 명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가 펼치는 시적 의장도 무겁고 절제된 운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노래하거나 읊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는 ‘들여다 보는’ 것이며, 독자는 명상하는 시인의 곁에서 함께 명상하도록 권유받는다. 그가 첫 시집 대설주의보에서부터 일관되게 명상하는 대상은 ‘죽음’과 도시화 현상에 겪는 일상적 경험들이다. 그는 그것에서 비정하고 절망적인 관찰자가 되어 현대인의 본질적 모순을 정확히 읽어낸다. 죽음에 관한 명상의 매개로 사용하는 소재들은 ‘지하철’, ‘자동 판매기’, ‘자동차’, ‘변기’, ‘똥’, ‘기계’, ‘공해’ 등 다양한 도시적 물상들로, 그가 가진 비판적 세계관이 문명화 또는 산업화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위기감 속에서도 그는 결코 종교적 초월이나 내면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속악한 세계는 반드시 속악한 인물을 통해서만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그의 시는 현대인들의 본질을 그 같은 모순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른 도시시들처럼 경박하지도 유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각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시는 지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 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의 표제시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세속화된 현대인들의 모순된 삶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제목 ‘세속도시의 즐거움’이란 세속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비극적 삶을 역설과 반어로 나타낸 것이다. 문명의 세속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왜곡의 전형적 양상은 물신(物神) 숭배로, 이 시에서 우리는 이 물신 숭배가 빚어낸 극단적인 인간 소외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감으로 인한 단순한 의미의 소외감이 아니라, 영안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죽음의 비애라든가 엄숙함, 또는 진지함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인간 왜곡 현상으로서의 극한적 소외이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에 의해 관찰된 영안실 풍경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풍경은 남편의 죽음인지, 시부모의 죽음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 곡하던 여인’이 ‘늦은 밤 손익을 / 계산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며, 두 번째 풍경은 영안실을 찾아온 문상객들이 보여 주는,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로서의 모습이다. 주검을 옆에 두고도 슬픔에 잠기지 않는 대신, 오히려 진지한 자세로 부조금을 계산하는 여인의 모습과,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이 아니라, 문상을 돈버는 기회로 삼고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는 우리 시대의 문상객들을 보여 주는 데 시인은 조금도 인색하지 않다. 이러한 극단적 인간 왜곡을 보여 주면서도 시인은 그 추악한 세속적 욕망의 인간 소외를 증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늘한 / 허’를 느끼고 있다. 그것도 죽은 자에서가 아니라, 산 자에게서 느끼는 허전함이라는 데서 이 시인이 추구하는 문명 비판의 시 세계가 허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아울러 죽음이라는 자연적 현상을 생전에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은 나아가 ‘큰 도적에게 큰 슬픔이 있으리라’라는 극단적인 역설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그것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생의 마지막 귀결점이 아니라, 육신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거룩한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이 시인에게서 우리는 왜곡된 인간 존재의 슬픈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 창간호, 1936.11)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정열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5행의 짧은 글 속에 쏟아넣은 작품이다. 5행을 모두 ‘말라, 달라, 생각하라’는 명령형 어미로 맺고 있어 시의 어조가 단호하고 힘이 있다. 화자는 젊은 화가다. 묘지의 모습은 한 폭의 살아 있는 그림이다.
▶성격 : 정열적, 낭만적
▶운율 : 각운.(‘~라.’)
▶어조 : ① 정열적 삶을 원한는 젊은이의 낭만적 목소리
② 강렬하고 단호한 명령형의 어조
▶구성 : ① 빗돌을 세우지 말라. ― 인습의 거부(1행)
② 무덤 주의에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2행)
③ 보리밭을 보여 달라.(3행)
④ 해바라기는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4행)
⑤ 노고지리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5행)
▶제재 : 해바라기
▶주제 : 정열적인 삶에의 의지
<연구 문제>
1. <시인부락>의 동인들은 대개 인습을 거부하고 삶의 참모습을 중시했는데, 이 시에서 인습을 상징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 빗(碑)돌
2. 제1행과 제2행의 이미지에 대해 대조적으로 진술하라. 단, 무덤이라는 말을 넣고 80자 이내의 문장으로 쓰라.
☞ 생명 없는(이끼낀) 빗(碑)돌이 선 음산한 무덤과 정열적인 생명을 상징하는 노오란 해바라기로 둘러싸인 밝은 무덤의 이미지는 매우 대조적이다.
3. 제2행에서 제5행까지의 내용은 밝은 느낌을 주는데, 이것에 기여하는 핵심적인 시어를 차례대로 쓰고, 각각의 상징적인 의미도 쓰라.
☞ 해바라기 : 정열적인 사랑
보리밭 : 풍요로운 생명의 출렁임.
노고지리 : 생명을 가지고 날아오르는 나의 꿈
4. 이 시의 어조는 강렬하고도 단호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완결된 한 문장으로 쓰라.
☞ 이 시의 어조가 강렬하고도 단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5행 모두 명령형 어미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는 시이다. 화자가 젊어서 죽은 화가로 되어 있다. 다섯 행 모두가 ‘말라’, ‘달라’, ‘생각하라’ 따위의 단호한 명령형으로 종결되고 있고, ‘해바라기’, ‘보리밭’ 같은 소재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와 어울려 정열적인 삶에의 의지가 표현된 작품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고 하겠다.
화자인 청년 화가 ‘나’는 자신의 무덤에 ‘차가운 빗돌’을 세우는 대신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말한다. 죽음을 거부하고 정열적인 삶에의 의지를 드러내는 표현일 터이다.
해바라기 줄기 사이로 ‘보리밭’을 보여 달라는 당부도 강렬한 생명의 욕구를 나타낸 것이다. 계절을 달리하는 ‘해바라기’와 ‘보리’가 한자리에 놓일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들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고 육신의 죽음에도 아랑곳없는 끊임없는 삶에의 욕구이다.
그래서 화자는 ‘해바라기’가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날아오르는 나의 꿈’으로 생각되기를 바란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못다 한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이 시의 화자는 화가로 되어 있지만, 이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전라도 길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신천지, 1949.4)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6․25 동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 <신천시> 4월호에 발표된 12편의 작품 중의 하나로서 이 시의 부제(副題)는 ‘소록도로 가는 길’이다. 전라남도 고흥군에 속해 있는 나병 환자들의 요양원이 있는 소록도는 성한 사람들로부터 유리(遊離)된 하나의 유형지였다. 1949년 5월에 첫 시집 <한하운 시초(韓何雲詩抄)>가 정음사에서 발간되었는데 그가 나병 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충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성격 : 애상적
▶특징 : 끝없는 천형의 길을 걸으며 애수와 절망의 극한을 사실적으로 그림.
▶구성 : ① 숨막히는 더위 속에 걷는 황톳길(제1연)
② 문둥이끼리 만나면 반가워함.(제2연)
③ 더위 속, 절름거리며 걷는 황톳길(제3-4연)
④ 발가락이 또 한 개 떨어져나감.(제5연)
⑤ 멀기만 한 소록도 가는 길(제6연)
▶제재 : 소록도로 가는 길
▶주제 : 나병 환자들의 유랑과 고독.(인간 세계에서 소외된 자의 고독과 유랑)
<연구 문제>
1. 이 시의 제목인 ‘전라도 길’이 상징하는 의미를 60자 내외로 쓰라.
☞ ‘전라도 길’은 ‘소록도로 가는 길’로서, 인간 세계에서 소외된 나병 환자들이 걷는 고독과 유랑의 길이다.
2. 나병 환자라는 천형(天刑)의 수인(囚人)이 되어 끝없는 고독과 유랑의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을 가장 극한적으로 표현한 시행을 찾아 쓰라. ☞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3.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이의 설움이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시행을 찾아 쓰라.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감상의 길잡이>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나환자 수용소를 찾아가는 문둥병 환자의 고달픈 역정이 그려져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라는 구절과 ‘가도 가도 천리’라는 구절에서, ‘천리 길’이란 실제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천형(天刑)의 길을 걷는 문둥이의 희망 없는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
그 아득하고 막막함 속에서 어쩌다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고 화자는 진술한다. 이 진술 속에는 몸이 성한 세상 사람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이의 설움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미덕이 있다.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는 구절은 읽는 이에겐 몸서리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사실만을 말하는 데 그친다. 서럽다든지 어쨌다든지 하는 감정을 일체 드러내지 않고,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천형(天刑)의 길을 걷는 시인의 냉엄한 현실 인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人間事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시집 보리피리, 195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韓何雲의 詩 中에서도「보리피리」는 일반에 가장 널리 알려진 시편이다. 다른 뛰어난 시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노래 때문이었다. 1957년 작곡가 趙念씨(74)가 당시 중앙방송라디오(현재 KBS)의 청탁으로「금주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에 이 곡을 발표, 대단한 호응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서정적인 토속 정서가 깃들인 시편을 가곡으로 만든 예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曲 자체도「보리피리」의 정서를 잘 반영하며 신명 속에서 서러움을 불러내는 명곡이었던 것이다.
이 시가 <서울신문>에 발표됨으로써 한하운에게 ‘보리피리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으며 그의 제2시집 <보리피리>의 표제(表題)가 되었다.
이 시는 나병(癩病)에 걸려 걸시과 명시 속에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던 시인이 보리피리를 불며 인간적 고독, 향수, 천형(天刑)과도 같은 괴로움을 달래는 눈물겨운 모습을 떠올려 준다.
▶성격 : 서정적, 회고적, 민요적
▶표현 : 압축된 표현과 의성어의 반복
▶구성 : ① 보리피리 불며 고향을 그리워함.(제1연)
② 어린 시적 꽃 청산을 그리워함.(제2연)
③ 거리와 인간사를 그리워함.(제3연)
④ 방황하던 산천에 얽힌 비애(제4연)
▶제재 : 보리피리를 부는 정한
▶주제 : 인생 방황의 정한과 향수.(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삶의 인고)
<연구 문제>
1. 이 시는 인간의 근원적인 향수와 문학적 보편성이 어우러져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각 연별로 다루어진 대상과 감정을 각각 2-3 어절로 쓰라.
☞ 제1연 : 고향에 대한 그리움
제2연 : 어린 시절의 그리움
제3연 : 인간사에 대한 그리움
제4연 : 방랑의 서러움
2. 이 시에서 (1)애수 어린 정서를, 운율을 통해 살리고 있는 두 시행을 찾아 쓰고, (2)그 이유도 밝히라.
☞ (1) ‘보리피리 불며’, ‘피 - ㄹ 닐니리’
(2) 두 시구를 반복함으로써 음악성을 살리고 있다.
3. ㉠의 뜻을 쓰라. ☞ 사람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거리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작자는 나병 환자로서의 비통과 울분과 괴로움을 시적 여과 장치를 통하여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제1연에는 새파란 보릿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던 옛날 고향의 봄 언덕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제2연에서는 보리피리를 불면서 떠오르는, 유년(幼年) 시절의 고향-꽃동산과 청산-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그렸다.
제3연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거리와 뭇 인간들의 삶과 일을 그리워하고 있다.
제4연에서는 자신이 방랑하던 여러 산과 강, 그 눈물나던 언덕들에 얽힌 한 맺힌 비애의 심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의 음악성은 ‘보리피리 불며’, ‘피 - ㄹ 닐니리’를 반복함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이 보리피리 소리는 화자의 가슴 속에 추억, 그리움, 향수와 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를 진한 감동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병으로부터 오는 절망과 세상 사람들과 유리된 채 유랑 생활을 해야 하는 고독 속에서 고향과 어린 시절 그리고 세상사가 그리워 보리피리를 부는 시인의 다음 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청운의 뜻이 어허,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아랑곳없이 다 잊은 듯 산천초목과 인간의 애환이 다시금 아름다워 스스로 나의 통곡이 흐느껴진다. 나를 사로잡는 것, 그것은 울음 속에서 터지는 모든 운율이 나의 노래가 되고 피리가 되어 조국 땅 흙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역(驛)
- 韓性祺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驛)이 있다.
빈 대합실(待合室)에는
의지할 의자(椅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急行列車)가 어지럽게 경적(警笛)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線路)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驛)처럼 내가 있다.
(문예, 1952.5)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인생의 의미를 역에 비유하여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시인의 허무주의적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다. 한성기의 작품은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물의 본질에 대한 사색적 탐구가 아니라, 관조에 의한 새로운 발견과 재구성을 통해 참신성과 경이감을 풍겨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는 그 어떤 특별한 표현 기교도 없을 뿐더러 남달리 깊은 철학 사상을 담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기교의 기교로써 완벽한 시적 완결성을 갖춤으로써 일체의 작위성(作爲性)을 배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단순히 평범한 작품으로 폄하(貶下)할 것이 아니라, 시인의 노련한 수련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이 시인의 말처럼 ‘역’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의지할 의자 하나 없’는 ‘빈 대합실’같이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아득한 선로’처럼 끝없는 세월 속에서 미래에의 무지갯빛 환상을 꿈꾼다. 그러나 ‘푸른 불 시그널’처럼 반짝이던 그 꿈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 지나가’는 급행열차와도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새로운 열차를 기다리듯 또다시 꿈을 키우며 더러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그 행복은 언제나 한순간 ‘꿈처럼 어릴’ 뿐이며, ‘눈이 오고 /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대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인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생각하는 인생의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 위대한 삶을 살건, 아니면 초라한 삶을 살건 간에 결국 그것은 ‘없는 듯 있는 듯’ 서 있는 하나의 ‘조그마한 역’에 불과한 것이다.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시골의 조그만 역. 조그맣고 한산한 역이지만 인생과 시간, 온갖 현실이 질타하면서 지나는 곳이다. 사람도 살아있는 한 인생과 시간의 온갖 풍상을 겪게 마련이며, 그런 의미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큰 역, 작은 역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역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특별한 기교 없이 평범한 스케치로 전개하다가 역의 풍경에서 일시에 시인의 외로움으로 환치시키는 노련함을 보이고 있다.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조그맣고 한산한 역
* 제2,3연 - 텅빈 대합실과 한적함
* 제4,5연 - 한적한 역과 같은 나의 존재
3. 주제 : 조그맣고 한적한 역과 같은 나의 고독함
4. 제재 : 조그마한 역
5. 표현 특징 : ① 직유법 ② 담담하고 쓸쓸한 분위기
한용운論 1
역설의 미학으로 광복을 노래한 한용운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진보적인 개혁승으로서, 혁혁한 독립 투사로서, 또한 시집 「님의 침묵」(1926)의 시인으로서 입체적인 성격을 지닌다. 만해는 한국 근대사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한 민족적 선구자인 동시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성취함으로써 문학사의 전환을 보여 준 신문학사 최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만해의 불교사적 공적은 그가 「조선 불교 유신론」(1910), 「불교대전」(1913) 등을 통해 이 땅의 침체됐던 불교를 개혁하여 근대화하고자 노력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불교 개혁 운동 또는 불교 근대화 운동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불교 운동은 그것이 민중 불교, 생활 불교 운동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니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만해는 민족 운동사에 있어서도 3·1운동의 주도적 참여는 물론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대요(세칭 「조선 독립의 서」)를 통해 자유 사상·평등 사상·민족 사상· 민중 사상· 진보 사상,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철학을 기미 독립 운동의 사상적 기저로서 체계화한 데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일제 패망 직전 극도의 궁핍 속에서 심우장 냉돌 위에서 순국하기까지 보여 준 정신의 일관성과 지절은 참으로 귀한 민족적 사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만해의 의미는 문학사의 측면에서 드러난다. 시집 「님의 침묵」이 지니는 전통성과 현대성이 이 땅의 전통 문학사와 현대 문학사를 이어 주는 매개 고리로서 작용하는 것과 함께 순수 문학과 참여 문학이라는 문학의 근본 모순을 탁월하게 꿰뚫어 냄으로써 작게는 문학사의 이원론 극복의 가능성을, 그리고 크게는 식민 사관 극복의 실마리를 실천적으로 열어 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를 침묵과 모순의 시대로 보고 역설의 정신과 희망의 시로 극복 시도해
「님의 침묵」의 내용 구조는 전체서 88편이 ‘떠남→떠남 후의 고통· 슬픔→희망으로의 전이→만남’이라는 기· 승· 전· 결 구조로 짜여져 있으며, 정신적인 면에서 그것은 ‘소멸→갈등→생성(이별→슬픔→재회)’이라고 하는 변증법적 구조를 지닌다. 말하자면 이별의 시가 아니라 생성(만남)의 시이며, 절망의 시가 아니라 희망의 시, 기다림의 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는 뜻이다. 임을 이별한 시대는 바로 상실의 시대, 침묵의 시대인 것이며 그러기에 언젠가 맞이하게 되는 만남의 시간이란 바로 낙원 회복의 시대, 광복의 시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시집 「님의 침묵」은 사적(私的)인 면에서는 연애시로서의 성격을 지니지만 공적(公的)인 면에서는 저항시, 민족시의 차원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이별 후의 고통· 슬픔→만남’의 모습은 ‘국권 상실→상실 후의 고통· 슬픔→국권 회복’으로 상승됨으로써 「님의 침묵」을 희망의 시, 기다림의 시로서 불멸의 위치에 놓여지게끔 했다는 뜻이다. 「님의 침묵」은 시대 정신과도 정합성을 이루는 동시에 영원 정신과도 상동성을 지님으로써 사상성과 예술성, 현실성과 영원성이 조화를 이룬 한 전범(典範)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일제의 강점으로 인한 식민지 상황하에서는 정상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과 불합리의 시대를 침묵의 시대, 임이 부재하는 시대로 파악하며 부정적인 시대 인식과 역설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참된 문학적 저항의 전범을 보여 준 것이다.
특히 형이상학적인 깊고 높은 깨달음을 다양하게 드러냄으로써 철학성의 깊이를 보여 주는 것과 함께 그것을 필부 필부(匹夫匹婦)의 대중적 정감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려 한 것은 귀중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전통 문학사에서 지식인 문학으로서의 한문학(漢文學)과 서민 문학으로서의 구비 문학적인 것의 변증법적 합일을 지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집에 충청 지방의 방언과 토속적인 정감이 지속적으로 활용되어 민족어의 완성이 지역어의 총화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 준 것도 의미를 지닌다. 세속적인 정감의 진솔성이 불러일으키는 인간적 설득력과 함께 방언 및 토속어가 환기하는 향토적인 친근함의 정서는 만해 시가 민중 정신 또는 민족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실질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님의 침묵」에는 여성적인 정조가 관류하는 바, 이것은 정감적인 호소력을 유발하기 위한 표현 방법일 뿐 그 내면에는 모순에 대한 저항과 현실 극복의 정신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애처로움은 실상 남성적 지배 폭력에 대한 대응, 또는 현실적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응전 방법일 뿐 그 내면에는 선비 정신으로서 저항 정신 및 극복 정신이 깔려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만해 시에는 ‘타고르’ 등 외래시의 영향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만해는,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에 피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 「타고르의 시 가르테니스토를 읽고」의 일부
에서 보듯이 타고르에게서 부족한 능동적인 역사 의식 또는 저항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타고르 시를 비판적·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향가, 고려가요, 한시(漢詩), 시조 등 전통 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래 문학을 비판적· 주체적으로 수용해 바람직한 의미에서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성취하고 있는 데서 그의 문학사적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일제 패망 직전 심우장 냉돌 위에서 순국, 저항 시집 「님의 침묵」 남겨
무엇보다도 한국 근대시를 논하는 데 있어 만해와 그의 문학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거봉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단지 그의 문학이 지닌 예술적 형상서의 우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그의 문학이 지닌 문학사적 위치 때문만도 아니다. 그와 그의 문학은 험난한 역사를 살아가는 예지와 용기를 일깨워 주며, 현실적인 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신념과 희망을 불러일으켜 준다는 점에서 참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끊임없는 실천과 행동,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념과 사상의 일관성이야말로 만해 정신의 위대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국민, 국가에 있어서나 그 나라 겨레들이 애송하고 추앙해 마지않는 국민 시인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와 투쟁, 그리고 문학 예술이 함께 하면서도 실천과 사상, 그리고 일관성이 더불어 빛나는 만해야말로 이러한 국민 시인으로 사랑 받고 존경받아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 글쓴이 : 김재홍 / 1947년생, 경희대 국문과 교수, 계간지 「시와 시학」주간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 님의 침묵 : 영원한 진리의 말 없는 말. 초월적인 존재의 음성.
* 정수박이 : ‘정수리’의 뜻. 머리 위에 숨구멍이 있는 자리.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님이 침묵하는 시대’의 ‘님’을 잃은 슬픔과 새로운 신념을 노래한 서정시로서, 시집 <님의 침묵>의 전체 주제를 함축한 표제시(表題詩)로서 서시(序詩)의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상상력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님’의 상징 의미를 알아야 하며 또 화자는 어떤 원리를 통해 ‘님’을 잃은 슬픔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여 보다 큰 만남을 성취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 성격 : 낭만적, 상징적, 의지적
▶ 어조 : 연가풍의 여성적 어조, 영탄적 어조
▶ 특징 : 불교의 윤회설과 공(空) 사상에 바탕을 둠.
▶ 구성 : ① 기 : 님과의 이별(1-4행)
② 승 : 이별 후의 슬픔(5-6행)
③ 전 : 새 희망에의 의지(7-8행)
④ 결 : 불굴의 의지적 사랑(9-10행)
▶ 제재 : 님과의 이별
▶ 주제 :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존재의 회복을 위한 신념과 희구)
<연구 문제>
1. 이 시와 한용운의 다른 작품『알 수 없어요』의 귀결점은 동일하나 출발점은 다르다. 서로 다른 출발점의 차이를 창작 동기와 비교하여 100자 내외로 쓰라.
☞ 『님의 침묵』은 님과의 이별을 인식하고 그 이별이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데에서 출발하였고,『알 수 없어요』는 아름다운 자연 현상을 통해 님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2. 제1행의 ‘아아’와 제9행의 ‘아아’에 함축되어 있는 시적 화자의 정서를 각각 한 단어로 쓰라.
☞ 제1행의 ‘아아’ : 슬픔
제9행의 ‘아아’ : 기쁨
<해설> 제1행의 ‘아아’는 이별을 자각하고 확인하는 데서 오는 슬픔을, 제9행의 ‘아아’는 헤어짐은 곧 만남이기 때문에 나는 님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도달한 법열(法悅)을 함축하고 있다.
3. ㉠에 담긴 역설적 의미를 20-30자 내외로 쓰라.
☞ 나는 님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하여 님 안에 존재합니다.(또는, 나의 마음은 님 이외의 존재에 관심이 없습니다.)
4. 제9행에서 ‘님은 갔지마는’이 객관적 사실을 말한 것이라면,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주관적 의지에 해당된다. 주관적 의지가 드러난 부분의 처음과 마지막 어절을 쓰라.
☞ 그러나 ~ 믿습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님은 갔습니다.’라고 하여 님과의 이별을 확인하는 말로 시작된다. 이어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와 같이 점층적 반복법을 사용하여 이별의 상황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님이 떠나가고 없는 상황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든다. 그런데 제7행에서 이 슬픔은 ‘희망’으로 전환된다.
이 시의 뛰어난 점은 이와 같이 이별의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역전시킨 구조에 있다. 그렇다면 슬픔을 희망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삶에 있어서의 만남과 헤어짐의 실상(實相)을 깊이 있게 깨닫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구절에 나타나 있듯이, 만남은 곧 헤어짐이요, 헤어짐은 곧 만남이라는 것, 다시 말해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의 전제 조건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떠나갔다고 생각하던 ‘님’은 사실은 떠나간 것이 아니라 다만 ‘침묵’하고 있을 뿐임을 알게 되고, 그 침묵하고 있는 님을 위해 ‘스스로도 주체할 길 없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시는 상상력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님’이 누구이냐에 따라 시의 내용과 주제가 달라질 수 있다. ‘님’을 ‘조국’, ‘불타(佛陀)’, 또는 ‘조국과 불타가 일체가 된 존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님’이 지니는 전체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일부로써 한정시켜 버릴 우려가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의 서문『군말』에서 시인은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말대로 ‘님’은 위의 해석들을 포괄하는 ‘그리워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맥락 읽기>
1. 애기하는 이는? ☞ 나
2. 지금 내게 어떤 일이 생겼나?
☞ 사랑하는 님이 떠났다. 이별하게 됐다.
3. 어떤 심정인가? ☞ 슬픔에 빠져있다.(6행)
4. 계속 이별의 슬픔 때문에 절망감에 빠져 있는가?
☞ 아니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붓는다.(7행)
5. 감정이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계속 슬프기만 하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7행)
☞ 님은 떠났지만 반드시 만날 것이라고 확신하므로(8행)
☞ 님을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므로 화자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구나.
6. 님을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 님에 대한 사랑이 강하게 드러난 곳은?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9행)
7. 이런 확신을 가진 나는, 님이 오는 그날까지 어떻게 기다리는가? (어떻게 해야 님이 빨리 올 수 있는가?)
8. 그런 자세가 나타난 부분은?
☞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主人)은 “거지는 인격(人格)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生命)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罪惡)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者)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倫理), 도덕(道德), 법률(法律)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시집 「님의 침묵(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식민지 시대의 굴욕적인 삶의 절망을 극복하고 참다운 가치로서의 ‘당신’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현실 인식 태도는 어떠하며, ‘당신’(님)의 상징 의미는 무엇인가, ‘님을 잃은 나’의 확장된 의미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도록 하자.
▶성격 : 명상적, 상징적, 산문적
▶구성 : ① 1연 : 절망적 현실 인식
② 2,3연 : 당신 존재의 확인 계기
③ 4연 : 절망 속에서 당신을 봄
▶제재 : 당신
▶주제 : 굴욕적인 삶의 절망을 극복하고 진정한 가치를 추구함.
<연구 문제>
1. ‘주인’과 ‘장군’에 각각 대응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 ‘주인’- 황금, ‘장군’- 칼
2. 이 시에서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이 겪는 굴욕적 처지를 상징하는 시어 하나를 찾아 쓰라. ☞ 거지
3. ‘남에게 대한 격분’이 일제에 대한 분노라고 한다면, ‘스스로의 슬픔’이 뜻하는 구체적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 조국(주권)을 상실한 데서 오는 자책감
4. (1)부정적 현실 속에서 화자가 겪는 갈등이 잘 드러난 시행을 찾아, (2)그것의 의미와 그가 궁극적으로 선택한 삶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200자 정도로 쓰라.
☞ (1)“영원히 사랑을 받을까~당신을 보았습니다”
(2)“영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저편에 존재하리라고 추측되는 초월적 진리 속으로 은퇴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한다는 뜻이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기보다는 몽롱한 상태로 현실과 영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화자는 식민지 현실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이런 세 가지 인간 유형이 보여 주는 비역사적인 태도를 부정하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부정적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실의 모습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없음’으로 파악되고 있다. ‘땅이 없고’ ‘추수가 없고’ ‘인격이 없고’ ‘생명이 없고’ ‘민적이 없고’ ‘인권이 없다’라는 구절에는 ‘당신’이 가신 것에서 연유하는 절망적 현실 인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당신’을 잃고 홀로 선 ‘나’는 거지와 같이 모멸(侮蔑) 당하고, 마침내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인권과 정조(貞操)까지도 유린당하는 절망적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순간에 보게 되는 ‘당신’, 그는 구원과 희망의 표상인 동시에 불의와 폭력에 항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의 온갖 규범이 지배자의 권력과 금력을 유지하기 위한 헛된 징표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과 역사의 부정과 자포자기 속에서 갈등할 때 ‘나’는 또 ‘당신’을 보는 것이다.
「영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저 너머에 존재하리라고 생각되는 초월적인 진리 속으로 은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한다」는 것은 역사를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기보다는 몽롱한 상태로 현실과 영합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식민지 현실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이런 세 가지 인간 유형이 보여 주는 비역사적인 태도는 만해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끝내 인간 역사의 발전을 믿고 역사 속에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가슴에 부활하고 있다.
알 수 없어요
- 韓龍雲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시집「님의 침묵」(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님의 침묵」과 함께 만해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 구분 없이 단련으로 구성된 이 시는 제1-5행과 제6-7행의 두 단락으로 구분된다. 제1-5행은 각 행이 의문형의 한 문장으로 끝나고, 제6행에서는 직설적 화법을 쓰면서 제5행까지의 심상들을 종합하여 결언하고 있다. 님에 대한 절실한 소망을 강하게 표출하면서도 평이한 말씨로 이어지고, 정연한 구조 속에 내면의 깊이와 함께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성격 : 명상적, 신비적, 관조적, 관념적, 구도적, 역동적, 역설적
▶어조 : 연가풍의 여성적 어조
▶표현 : 1) 여성편향의 고백적 戀歌風의 호소와 경어체로 경건하고 겸허한 심정을 격조 높게 표현.
2) 상징법, 은유법, 설의법, 반복법을 구사.
▶특징 : ① 경어체 사용과 어구의 반복
② 자연적 심상(현상)의 의인화
③ 상상력의 비약을 통한 의미의 심화
④ 섬세하고도 순수한 우리말을 구슬처럼 엮어서, 禪의 세계를 바탕으로한 구도적(求道的) 염원을 나타냄.
▶핵심어 : 누구
▶구성 : ①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을 통한 님의 존재(모습) 제시(1-5행) ② 님에 대한 끊임없는 정진(또는, 절대자를 향한 신앙의 고백)(6-7행)
▶제재 : 신비한 자연.(자연 현상)
▶주제 : 절대자를 향한 구도적(求道的) 염원.(님에 대한 동경과 구도 정신)
▶시어 풀이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생명이 없어진 空의 상태에서 생명의 상태인 有로 화하는 윤회(輪廻)와 영생 불사(永生不死)임.
* 누구의 밤 : 절대자가 없는 빈 공간 (=임의 沈黙)
<연구 문제>
1. ‘어떤 비극적인 황홀함’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행을 찾아 쓰라. ☞ 연꽃
2. 이 시에는 불교적 명상이 드러나 있다. ㉠‘지리한 장마’와 ㉡‘검은 구름’이 상징하는 의미를 각각 쓰라.
☞ ㉠ ‘지리한 장마’- 깨닫지 못하는 중생이 보내는 시간
㉡ ‘검은 구름’- 번뇌
3.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는 무슨 뜻인가? 100자 정도로 설명해 보아라.
☞ 어둠의 시대에 ‘나’는 자신을 태워서 어둠과 싸워서 ‘님’이 사라진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자 한다. 그 불태움의 행위는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그칠 줄 모르는 지속적인 것임을 나타낸다.
<감상의 길잡이>
연 구분 없이 단련 구성인 이 시는, 의문형으로 끝나는 몇 개의 행이 계속되다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에 와서 일단 커다란 변화를 주고 다시 의문형으로 종결되는, 내용상 앞뒤 2연의 구조이다.
앞부분(1-5행)이 자연 또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현현(顯現)하는 ‘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비해 마지막 한 행에는 ‘님’이 없고 ‘나’만 있다. ‘님’이 없는 상황의 어둠이 ‘밤’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앞부분(1-5행)은 님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의 밝은 분위기를 가진 것이다.(1-4행은 밝은 대낮, 5행은 노을지는 저녁)
제1-4행에서 ‘님’은 나에게 점점 가까이 느껴진다. 처음에 님은 발자취 소리만 나다가 먼 빛으로 얼굴이 보이고, 좀더 가까이 다가와서 입김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내 귓가에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것은 매우 밝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제5행에서는 그러나 님과의 이별의 순간이 온다. 그것은 저녁의 침침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비극적 순간이 장엄한 시처럼 느껴진다.
제6행에서 님은 사라지고 나는 어두운 ‘밤’에 홀로 남겨진다. 그 밤 속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 나의 가슴은 약한 등불을 켜게 된다. 그 등불은 절대적인 님의 존재에 비해서, 또 님과의 이별이라는 엄청난 현실 앞에서는 당장은 ‘약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이 나의 가슴은 끊임없이 타올라 그 등불이 언젠가는 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비추어 줄 횃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의 시에서, ‘이별’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그리고 타고 남은 재가 어떻게 기름이 될까? 그의 이러한 특유의 논리가 시짐 <님의 침묵>에 실린 모든 시를 지배한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것은, ‘포도주가 눈물이 되고 한밤을 지나면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된다.’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별이 님의 존재를 깨닫는 계기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세상이 온통 타락했을 때, 그 거짓된 세상을 부정함으로써만 진실을 얻을 수가 있다. 이별은 곧 위대한 부정이며 더 큰 긍정을 얻기 위한 전제이다.
그것은 염무응 교수가 지적했듯이,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보다 더 큰 긍정에의 길을 준비하는 불교적 변증법』의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은 이별, 즉 임의 不在가 참된 ‘님’의 존재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는 이치다.
정천한해(情天恨海)
- 한용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 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만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 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늘 수만 있으면
한(恨)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天)에 떨어지고 한해(恨海)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 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恨)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恨) 바다를 건느랴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시집 님의 침묵, 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대립되는 두 개념, 곧 정(情)과 한(恨)이 하나가 되어 ‘님’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대립적 관계에서 합일적(合一的) 경지로의 이행(移行)이다. 그리고 정한(情恨)이 단순하고 어설픈 감정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로의 정신적 승화를 시도하고 있다.
▶성격 : 서정적, 관념적, 불교적
▶표현 : ① 대립적 두 개념의 대구형 배열
② 역설법의 효과적 사용
▶구성 : ① 기 : 현실 극복 의지, 인간의 유한성의 극복 가능성 제시(제1-2연)
② 서 : 정신적 승화 시도(제3-4연)
③ 결 : 초월적, 절대적 님에게로 귀의(제5-7연)
▶제재 : 정(情) 하늘, 한(恨) 바다
▶주제 : 정한의 극복을 통해 님에게 귀의함.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정한은 한 인간의 감정의 차원을 넘어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로도 볼 수 있다. 시인이 부정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현실의 상황을 25자 내외로 쓰라.
☞ 일제의 탄압으로 고통받는 민족의 참담한 현실
2. 다음 글을 바탕으로 이 시에서의 부정의 궁극적 의미를 간략히 서술하라.
☞ 정한을 극복함으로써 정신적인 승화로 이끈다.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천하에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다는 것을 온 인류가 말하지만, 파괴가 없이 유신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조선 불교 유신론』중에서 |
3. (1)‘정(情) 하늘, 한(恨) 바다’와 다음 시의 밑줄 그은 시어에 쓰인 표현법을 지적하고, (2)그 효과를 50자 내외로 쓰라.
☞ (1) 은유법
(2) 추상어와 구체어를 결합함으로써 구체어의 특징을 살려 추상어의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님의 사랑은 불보다 뜨거워서 근심 산(山)을 태우고 한(恨) 바다를 말리는데 님의 손길은 너무도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님의 손길』중에서 |
<감상의 길잡이>
가을 하늘이 높다고 해도 그리움으로 가득찬 마음만 못하고, 깊을 대로 깊어진 봄 바다보다 가슴 속에 사무친 한(恨)이 더 절실하다. 그리는 정이 두터워지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마는 얄팍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진실하기가 힘들고, 정 때문에 깊어진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지는 않겠지만, 쉽게 잊어버리기란 힘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결국, 시적 화자를 포함한 인간 모두의 유한성을 지적한 것으로, 억압받는 민족 현실로까지 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랑이 진정 이루어진다면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정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원한을 극복하여 오히려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한은 깊을수록 신비로운 것이리라. 그리워하고 원망하는 대상이 사라지고,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정한이 없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리리라.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대상이나 마음이 없다면 존재 가치나 존재 의미에 대한 의문 제기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정이 세상 어느 것보다 고귀하고 소중한 것인 줄 알았는데, 님의 초월적이고 드높은 세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리워하다 사무쳐 버린 한의 세계가 가장 깊고 절실한 줄 알았는데, 님의 심오하고 은근한 세계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유한하고 부족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대상에 대한 사모의 정과 그 과정에서 생긴 원한을 모두 지워 버리고 더 나은 세상으로 승화시키려면 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님에게로의 귀의는 필연적 귀결이다.
행인과 나룻배(原題: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 |
로 나를 짓밟읍니다.
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감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깁흐나 엿흐나 급한 여을이나 건너감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낫가지 당신을 기다리고 잇슴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 보지도 안코 가심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아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 감니다.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행인.
(시집 님의 침묵, 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나룻배와 행인을 제재로 하여 참된 사랑의 본질이 자(慈), 인(忍)에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나룻배와 행인으로 비유된 나와 당신의 관계, 나의 태도, 나의 깨달음을 불교적 세계관과 관련지어 이해하도록 하자.
▶ 성격 : 명상적, 상징적
▶ 어조 : 여성적 어조
▶ 표현 : 쉬운 우리말 표현 속에 깊이를 담음.
▶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① 기 : 나와 당신의 관계(제1연)
② 승 : 당신의 무심함과 나의 희생(제2연)
③ 전 : 인고(忍苦)하며 기다리는 나(제3연)
④ 결 : 나와 당신의 관계(제4연)
▶ 제재 : 나룻배와 행인
▶ 주제 : 참된 사랑의 본질인 희생과 믿음.〔불교적 자비와 법인(法忍)〕
<연구 문제>
1. 남에게 모욕과 박해를 받아도 화내지 않으며, 또한 모든 것이 공(空)임을 깨닫는 경지를 법인(法忍)이라 한다. 이러한 인(忍)의 경지가 잘 드러난 두 구절을 찾아 쓰라.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2.
흙발 |
의 상징 의미를 한 단어로 쓰라. ☞ 번뇌
3. 불교에서 말하는 제도(濟度)를 형상화한 시행을 찾아 쓰라.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4. ㉠에 내포된 의미를 20자 정도로 쓰라.
☞ 중생은 불도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기․승․전․결의 4단 짜임으로 되어 있다.
제1연에는 나와 당신의 관계가 제시되어 있다. 나룻배에 비유된 ‘나’는 만해 자신 또는 불도(佛道)를 가리키며, 행인에 비유된 ‘당신’은 중생(衆生)을 가리킨다.
제2연에는 ‘당신’에 대한 ‘나’의 헌신적 태도가 형상화되어 있다. 당신은 번뇌 때문에 불도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비를 베풀어 당신으로 하여금 생사라는 고해(苦海)를 건너게 한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라는 구절은 제도(濟度)를 뜻한다.
제3연에는 인고(忍苦)하며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나는 속세의 괴로움, 번뇌를 겪으며 모든 중생이 구제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나, 중생은 무심하게도 불도의 은혜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反)이라, ‘당신’이 언젠가 오실 거라고 굳게 믿으며 남에게 모욕과 박해를 받아도 화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 참고로 제시하는 신경림의『뗏목』과 이 시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하지
강을 다 건너고도
뗏목을 떠메고 가는 미친 놈이 어데 있느냐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
명진 스님이 하던 말이다.
저녁 내내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절 방
문을 열어 는개로 뽀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릭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져야 할 것들을 떠메고
땀 뻘뻘 흘리며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찬송
- 한용운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볕의 첫걸음이여!
님이여, 당신은 義가 무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거지의 거친 밭에 福의 씨를 뿌리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옛 梧桐의 숨은 소리여!
님이여, 당신은 봄과 光明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弱者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慈悲의 菩薩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의 봄바람이여!
▶시집 <님의 침묵>(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만해의 ‘님’은 시집 <님의 침묵> 서문인『군말』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신앙적 대상이자 민족 또는 조국인 동시에 어떤 초월적 대상이기도 하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님의 존재의 고귀성과 구원성 등 속성을 밝히고, 그에 대한 믿음과 송축과 기원의 마음을 돈호, 영탄, 비유로 표현해 내고 있다. 전체 3연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각 연의 첫 행은 첫 행끼리, 제2행은 제2행끼리, 제3행은 제3행끼리 그 구조가 동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시를 이해해 보자.
▶성격 : 송축적, 기원적
▶심상 : 시각적, 청각적, 촉감적 심상
▶운율 : 산문율, 통사 구조상의 반복에 의한 운율
▶어조 : 예찬적, 열정적, 여성적 어조
▶표현 : 돈호법, 반복법, 영탄법, 은유법, 상징법
▶구성 : ① 지고한 님(제1연)
② 의로운 님(제2연)
③ 자비의 님(제3연)
▶제재 : 님에 대한 믿음과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한 기원
▶주제 : 님에 대한 송축(頌祝)과 기원(祈願)
<연구 문제>
1. 제1연의 ‘아침 볕의 첫걸음’과 제3연의 ‘얼음 바다에 봄바람’은 어떤 점에서 동격이 될 수 있는지 60자 내외로 쓰라.
☞ ‘아침’과 ‘봄’은 각각 ‘어둠’과 ‘겨울’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광명과 평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동격(同格)으로 볼 수 있다.
2. ‘삭삭기 셰몰애 별헤, 구은 밤 닷 되를 심고이다.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유덕ᄒᆞ신 님믈 여ᄒᆡᄋᆞ와지이다.’<정석가>와 그 시적 의미가 유사한 시행을 찾아 쓰라.
☞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읍소서.’
3. 식민지 현실 속에서 핍박당하는 우리 민족의 처지를 나타내는 시어 둘을 찾아 쓰라. ☞ 거지, 약자
4. (1)한용운의『님의 침묵』에 나오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와 의미가 통하는 시구를 찾아 쓰고, (2)그 말에 내포된 의미도 쓰라.
☞ (1) 옛 오동의 숨은 소리
(2) 깨달음에서 오는 진리의 숨은 소리.(님의 은폐성)
5. 한용운과 김소월의 작품에 나오는 ‘님’의 차이점을 한 문장으로 쓰라.
☞ 한용운의 ‘님’이 돌아오는 희망의 님이라면, 김소월의 ‘님’은 돌아오지 않는 절망의 님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각 연이 3행으로 된 서정시다. 각 연의 1행은 1행끼리, 3행은 3행끼리 서로 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각 연의 마지막 행에 님의 존재를 은유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이 은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는 제목 그대로 ‘님’에 대한 송시(頌詩)이지만, 님의 실체는 그 비유로 어림이 가는 어떤 존재일 뿐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만해는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서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부처일 수도 있고, 우주의 근본 원리일 수도 있으며, 독립 운동가로서의 그의 면모에 비추어 보면 조국이나 민족일 수도 있는 그 어떤 존재일 터이다.
그 존재를 첫 연에서는 ‘아침 볕의 첫걸음’이라 하고, 제2연에서는 ‘옛 오동의 숨은 소리’라 하고, 제3연에서는 ‘얼음 바다에 봄바람’이라고 은유하고 있다. 님을 ‘아침 볕의 첫걸음’에 비유한 것은 암흑과도 같은 사바 세계의 어둠을 깨치는 지혜로운 존재라는 뜻으로, ‘옛 오동의 숨은 소리’에 비유한 것은 깊고 오묘해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리의 존재라는 뜻으로, ‘얼음 바다에 봄바람’에 비유한 것은 얼어 붙은 듯한 세상을 녹여 내는 자애로운 존재라는 뜻으로 각각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만해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그 님이 영원토록 천국의 사랑을 받기를 찬송하며, 물질적․정신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중생 혹은 암흑 속에 핍박받는 우리 민족에게 복을 내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맥락 읽기>
1. 시적 대상은 무엇입니까?(화자는 무엇에 대해 노래하고 있나요?) ☞ 님이요.
2. 각연의 같은 행들을 자세히 보면 형식이 비슷합니다. 형식의 공통성을 정리해봅시다.
☞ 1행 : 님이여, 당신은~ㅂ니다
☞ 2행 : ~옵소서
☞ 3행 : 님이여, 사랑이여, ~여
3. 시적 대상인 님을 가리키는 표현을 모두 찾아 봅시다.
☞ 당신,사랑,백번이나 단련한 금결,아침 볕의 첫걸음, 옛오동의 숨은 소리, 얼음 바다의 봄바람
4. 위 질문의 답들은 화자가 님을 부르는 여러가지 다른 이름이다. 이런 이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자.
☞ 사랑 : 님은 사랑의 존재이다.
☞ 백번이나 단련한 금결 : 아주 순수하고 순결한 존재이다.
☞ 아침 볕의 첫걸음 : 밝음, 희망, 출발,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불러오는 존재
☞ 옛오동의 숨은 소리 : 신비하고 숭고한 존재.
☞ 얼음 바다의 봄바람 : 겨울을 물리치고 봄, 따뜻함을 가져다 주는 구원의 존재
5. 이렇게 보면 각연의 같은 형식만 비슷한게 아니라 내용에서도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각 행들의 공통적인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 1행 : 님의 속성, 2행 : 님에 대한 요구 사항, 3행 : 님을 찬양함
6. 서정적 자아(시적 화자)는 시적 대상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 1행 :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으라. // 영원히 오래 오래 살고 언제나 정의의 편이 되어 주시오
☞ 2행~3행 : 약한 자의 편에 서 주시오.
7. 2와 3으로 볼 때 화자는 시적 대상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습니까?
☞ 찬양 존경의 대상이며, 의지의 대상, 절대적 존재로 본다.
이별은 美의 創造
- 한용운
이별은 美의 創造입니다.
이별의 美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黃金과 밤의 올[絲]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永遠의 生命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임이여,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美는 이별의 創造입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만해의 시 전체를 꿰뚫는 역설의 미학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님의 이별을 자기 존재의 구성 요소로 가지기 때문에 이별은 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요, 반대로 이별이 없다면 님의 존재도 깨달음도 없게 된다.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에의 길을 준비하는 이러한 불교적 역설, 변증법은 만해 시의 근간을 이루며,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단조로움을 극복하여 무한한 역동감을 느끼게 해 준다.
▶성격 : 불교적, 명상적, 사색적, 역설적
▶어조 : 여성적 어조
▶특징 : 첫 행과 끝 행의 이별과 미의 등식 관계(이별=미)를 통해 이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함.
▶구성 : 수미 쌍관의 구성
① 이별은 미의 창조임(1행)
② 이별의 미를 인식하는 계기(2행)
③ 이별의 의미(3행)
④ 미는 이별의 창조임(4행)
▶제재 : 이별
▶주제 : 재생의 원천으로서의 이별에 대한 예찬
<연구 문제>
1.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로 시작해서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로 끝나는 이 시는 같은 구조가 되풀이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그의 시『포도주』에는 ‘한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바, 이것도 같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한용운의 시를 움직이는 철학적 논리를 60자 내외로 설명하라.
☞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에의 길을 준비하는 변증법의 논리에 기초해 있다.
2. 미의 창조로서의 이별은 시인에게 어떤 계기가 되는지 50자 내외로 답하라.
☞ 재생을 가져 오는 반전의 출발점(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자 님과의 합일을 가져오는 계기
3. 미의 창조를 님과의 합일(合一, 불도에의 완전한 귀의), 또는 민족과 조국의 밝은 미래로 본다면, 시대적 상황에서 본 ‘이별’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40자 내외로 쓰라.
☞ 정체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암담한 일제 치하의 현실을 거부하는 자세
4. 이 시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글의 ( ) 안에 적당한 한자를 쓰라.
☞ ① : 會 ② : 空
離則( ① ) ( ① )則離, 色卽( ② ) ( ② )卽色 |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첫 행과 끝 행은 이별이 미(美) 자체라는 등식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만해의 기본적 사상과 시 자체의 형식성에 완결미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시행에는 이별의 미적 요소를 지니지 못한 대립 심상이 제시되어 있다. ‘아침의 바탕[質] 없는 황금’, ‘밤의 올[絲]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는 영원한 생명’, ‘시들지 않는 푸른 꽃’에 존재하지 않는 이별의 미는 무엇일까? 이 구절에는 밝음이 어둠의 전제에서 그 의미가 있듯이, 긍정적 가치는 부정적 가치의 존재에서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다.
아침의 영롱한 빛의 바탕 없이 광휘(光輝)로움을 빛낼 수 없는 황금, 어둠의 근본 바탕이 없이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이 가치를 얻을 수 없는 생명, 시들음 없이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수 없는 꽃이기에, ‘다시 만남’이라는 미의 창조를 위한 이별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이별을 통해 제3행에서와 같이 역설적으로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 그러니 이별은 미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
타고르의 시(詩) GARDENISTO를 읽고
-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해가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를 읽고 난 뒤, 그것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문학관 및 종교관이 나타나 있어 주목을 끈다. 타고르는 동양 최초로, 그것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인으로서 노벨 문학상(1913년)의 수상자가 된 사람이다. 우리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던 그가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던 당시의 많은 우리 문학인들에게 ‘동방(東方)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가 이 땅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917년 육당의 청춘을 통해서였으며, 본격적인 소개는 김억에 의해서였다. 만해의 님의 침묵에 수록된 시편들은 타고르의 본격적 도입 이후 창작된 작품이며,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그 전개에 끼친 타고르의 영향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타고르의 시 ‘Gardenisto’라는 작품은 ‘원정(園丁, 정원사) The Gardener’의 에스페란토 역(譯)이다.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타고르의 시에 상당히 감동받았으면서도 전적으로 타고르의 시 세계에 공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타고르의 시에 나타나는 초월적 세계에의 지향에 대하여 만해는 많은 이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만해에 의하면 현실을 떠나 영원한 피안(彼岸)의 세계를 노래하는 타고르의 시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경건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절망의 노래요, 죽음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시는 타고르의 시에 대한 만해의 소감을 ‘벗’이라고 지칭된 타고르에게 들려 주는 형식으로 된 전 4연 구성의 자유시이다.
1연에서 만해가 평가하는 타고르의 시는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이나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의 향기’와도 같이 대단히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아무리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 살아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일견 희망의 노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희망을 포기한 ‘절망인 희망의 노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2연에서 만해는 그에게 눈물을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라고 한다. 떨어진 꽃에 눈물을 뿌리는 일은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3연에 이르면 더욱 분명해져 그의 시를 ‘무덤을 그물친 황금의 노래’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현실의 생명과 유리된 허황한 아름다움만을 가진 노래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추’는 것은 현실의 삶을 위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고 있는 만해로서는 그에게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발을 세우’라고 진심으로 충고한다. 즉, 고통스런 현실의 역사를 회피하지 말고, 그 안에서 참된 가치의 실현을 위해 싸우라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마침내 절망적 현실인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게 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4연에서 만해는 그의 시에 대한 감상을 종합적으로 ‘부끄럽고 떨리는’ 것으로 말하고 나서, 왜 ‘내가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것인지 밝힘으로써 자신의 문학관이자 종교관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종교란 현실을 떠난 영원한 내세로 구원시켜 주는 데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의 고통에 맞서 능동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해 주는 데 그 가치가 있으며, 문학 또한 그 같은 사명에 충실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만해는 이 시를 통해 지금과 같은 암울한 현실 상황하에서 필요한 것은 절망적 노래가 아니라, 현실 상황과 대결하며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삶을 이루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복종
-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한용운의 시는 진리에 대한 열렬한 구도심(求道心)과 조국애의 사랑이라는 두 가지 지향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사랑의 원리와 자유에 대한 투시(透視)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왜 나의 행복이라고 하는가를 파악하고, 아울러 당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를 역사적 상황과 관련지어 살펴 보도록 하자.
▶성격 : 명상적, 산문적
▶어조 : 여성적 어조
▶특징 : 불교적 명상을 바탕으로 낭만적 시풍과 여성 편향적 연가풍(戀歌風)의 경향을 띠고 있다.
▶구성 : ①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이 나의 행복(제1
② 당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복종할 수 없음(제2연)
▶제재 : 복종
▶주제 : 절대자에의 복종의 기쁨
<연구 문제>
1. 이 시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쓰라.
☞ 당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당신에 대한 복종이) 나의 행복이다.
2. 이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화자가 복종을 좋아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다섯 어절 내외로 쓰라.
☞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
3. 이 시가 ‘조국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때, 왜 당신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복종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40자 내외로 쓰라.
☞ 다른 나라(일본)에 복종(충성)하기 위해서는 조국을 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4. 만해(萬海)는『조선 독립 이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 비추어 보면『복종』의 첫 행은 완벽한 역설일 수 있다. 첫 행을 다음의 말에 합당하게 고쳐 쓰라.
☞ 남들은 복종을 사랑한다지만, 나는 자유를 좋아하여요.
인간 생활의 목적은 참된 자유에 있는 것으로서 자유가 없는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으며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아까워할 것이 없으니 곧 생명을 바쳐도 좋을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당신을 사랑하는 정’을 ‘자유’와 ‘복종’이라는 상반되는 두 이미지로 포착하고 있다. 이 시에서의 ‘복종’은 타율적인 강요에 의한 굴종(屈從)이나 속박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자발적, 능동적인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사랑을 위한 희생이며, 헌신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서의 복종은 막연한 자유보다 오히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이별이 더 크고 빛나는 만남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되듯이, 자발적인 복종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 ‘아름다운’ 자유를 얻기 위한 실천이라는 깨달음이 이 시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자수(刺繡)
- 허영자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실
따라서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1966)
* 상 싶다 : 성싶다.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여성적인 섬세함과 강렬한 생명력이 결합된 시풍이 특징인 허영자의 대표작으로, ‘수놓기’라는 일상적인 일을 통해 고뇌와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한 시이다. 여성적인 소재와 언어와 감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격 : 서정적, 여성적, 성찰적
▶시상 전개 : 점층적 전개
▶구성 : 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를 놓음.(제1연)
② 번민은 가라앉고 아름다운 심성의 경지에 다다르게 됨.(제2-3연)
③ 사랑의 슬픔도 참아 내고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듯함.(제4-6연)
▶제재 : 자수(刺繡)
▶주제 : 수놓기를 통한 번뇌의 극복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의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찾아 쓰라.
☞ 사랑의 슬픔
2. ㉠이 뜻하는 바를 25자 내외로 쓰라.
☞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여러 가지의 갈등과 괴로움
3. 마지막 연에 담긴 의미를 완결된 한 문장으로 쓰라.
☞ 수놓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맑고 정돈된 마음의 상태가 극락 정토로 표현되는 영원한 평화에도 가까워질 수 있을 듯하다.
4. ㉡과 비교적 그 의미가 통할 수 있는 시구를 찾아 쓰라.
☞ ‘처음 보는 수풀 / 정갈한 자갈돌의 / 강변’
5. 고뇌를 견디는 방법, 극기의 방법을 상징하는 말을 이 시를 참고하여 한 어절로 쓰라. ☞ 수놓기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문맥이 순탄하고, 분명한 3개의 문자이 여섯 연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세 개의 의미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 단락(제1연)을 보면 화자가 수(繡)를 놓는 것이 어떤 실용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임을 알게 된다.
수(繡)를 놓으며 색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꾸며 놓은 ‘수풀’이나 ‘강변’에 이른다. 그 ‘수풀’이나 ‘강변’은 마음의 평정을 구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수(繡)틀 속에 스스로가 마련한 내면적 상상의 세계이다.
그런데 화자가 무엇 때문에 ‘가슴 속 아우성’을 느끼며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일까가 궁금해진다. 그 해답은 제5연에서 구할 수 있다. ‘사랑의 슬픔’으로 해서 화자는 괴로워하고 있으며 그것을 달래기 위해 수(繡)를 놓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임을 살아서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화자는 ‘극락 정토 가는 길’을 수(繡)틀 속에 그려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화자는 수(繡)를 놓는 행위를 통해 사랑의 슬픔을 극복하고 절대적인 구원을 얻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 |
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발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 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 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흗날 밤, 맨재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命)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러웁게 놀리더이다.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백조 3호, 1923.9)
* 시왕전 : 저승에 있다는 10여 명의 왕을 모신 절간의 법당.
* 상두꾼 : 상여를 메는 사람.
* 감중련 : ‘팔괘(八卦)의 하나인 감괘(坎卦)의 상형(象形). 방위는 정북(正北),‘물’의 상징. 여기서는 ‘태연히 함’의 뜻.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삶의 고통과 비애를 주제로 한 이 시는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의 감상적(感傷的)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조>의 실질적인 주재자(主宰者)로 활동한 홍사용의 성장 과정이나 체질적으로 센티멘털한 그의 성격에서 이 작품의 감상적 성향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3․1운동의 좌절로 인한 민족적 패배감과 지식인으로서의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서 창작된 탓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격 : 산문적, 감상적, 비관적, 낭만적
▶어조 : 하소연하는 어조
▶표현 : 사설(辭說)과 영탄을 섞은 대화체
▶특징 : ① 감상적 낭만주의를 주조로 함.
② 격정적 고통과 슬픔의 내면화
③ 지나친 감상(感傷)의 직설적 토로가 시적 긴장감을 이완(弛緩)시킴.
▶구성 : ① 나 ― 눈물의 왕(제1연) 전생
②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눈물(제2연)
출생
③ 어린 왕의 숙명적 탄생(제3연)
④ 어머니의 옛이야기에 슬피 우는 어린 왕(제4연)
⑤ 죽을까 겁나서 우는 왕(제5연)
⑥ 상두꾼의 노래와 새 울음에도 슬퍼하는 왕(제6연) 소년 시절의 슬픔
⑦ 남모르게 혼자 우는 것이 버릇이 된 왕(제7연)
⑧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우는 왕(제8연)
⑨ 나 ― 눈물의 왕(제9연)
▶제재 : 나의 삶.(조국의 현실)
▶주제 : 삶에 가득차 있는 비애.(민족 수난의 설움)
<연구 문제>
1. 화자의 슬픔이 내면화된 곳은 어느 연인가? ☞ 제7연
2. 이 시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시어를 찾아 쓰라. ☞ 파랑새
3. 가난한 농군의 아들인 자신을
눈물의 왕 |
이라고 자처하는 까닭을 4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 자기 땅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이 비극적 주인공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으므로.
4. 이 시의 화자가 현실을 대하는 태도로서 옳지 않은 것은?
☞ ①
① 의지적 ② 애상적 ③ 우수적 ④ 절망적 ⑤ 폐쇄적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화자 ‘나’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왕’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갈고 심어야 할 땅을 빼앗긴 농군의 아들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비극적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쫓겨난 왕이기에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눈물의 왕’일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은근히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비애의 감정을 노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의 비애는 기본적으로는 고고(呱呱)의 성(聲)으로 시작되는 인간의 탄생이 상징하는 숙명적인 성격에 근거하는 것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비애의 감정은 사회적 성격을 지닌 것임을 이 시는 보여 주고 있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고, 아이들은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 놀려대는 가운데 자기만의 외로운 세계에서 ‘나’는 성장해 간다. 이런 외로움 속에서 희망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 보기도 하지만, 그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좌절감 같은 것이 그를 내적(內的)으로 성숙시키게 되고, 이제는 남 앞에서 드러내놓고 우는 대신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버릇이 생겨나고 산길을 헤매며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이 시의 ‘비애’는 홍사용 자신의 성장 과정이나 개인적 기질(氣質)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3․1운동의 좌절에서 오는 1920년대 시인들의 절망감에도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이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7)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황지우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 수록된 작품이다. 본 시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작가가 현실적 삶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 그리고 피곤하고 역겨운 현실을 탈피하여, 좀더 바람직하고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 작품이다.
▶성격 : 낭만적, 현실비판적
▶구성 : ① 애국가 경청(1-2행)
② 이상향을 향한 새들의 비상(飛翔)(3-10행)
③ 시적 화자의 이상과 현실적 좌절(11-20행)
▶제재 : 새
▶주제 : 암울한 현실적 삶에 대한 좌절감
<연구 문제>
1. 작품 전체의 시상으로 보아, 이 세상은 삶의 안식처가 못된다. 세상에 대한 화자의 냉소적 태도를 엿보게 하는 시어(의태어) 셋을 찾아 쓰라.(단, 같은 시어는 한 번만 쓸 것.)
☞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2. 화자는 자신의 좌절감을 우리 모두의 운명론적 좌절로 비약시키고 있다. (1)그것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하는 시어와 (2)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쓰라.
☞ (1) 우리도
(2)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 주저앉는다.
3. ㉠과 같은 표현은 시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문법적으로는 호응되지 않는다. 어법에 맞게 고쳐 쓰라.
☞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4. 이 시의 문맥상 내용으로 보아 ㉡과 대조되는 의미로 쓰인 시구를 찾아 쓰라.☞ 삼천리 화려 강산
<감상의 길잡이>
군사 정권의 폭압적인 정치 속에서 숨죽이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정부에서는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 애국가를 부르도록 조처했다. 군사 정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일깨워 주자는 의도였을 터이다. 영화를 즐기러 간 사람이 차렷 자세를 하고 어둠 속에 서서 마치 엄숙한 의식을 베풀 때처럼 애국가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삼천리 화려 강산’을 떠나 줄지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흰 새떼의 영상을 보며 화자는 우리도 대열을 이루어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고통스런 폭압적 정치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삼천리 화려 강산’은 차라리 역설일 뿐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애국가의 끝 구절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서둘러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이 시인은 그것을 ‘주저앉는다’는 말로 마무리짓는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사람이 ‘주저앉는다’는 말 속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절망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는 훌륭한 독자이다.
<맥락 읽기>
1. 애기하는 이는? ☞ 우리, 우리 속의 나
2. 지금 어디에 있을까? ☞ 극장, 영화관
3.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영화 시작 전 일제히 일어서서 애국가를 경청하면서 배경 화면을 보고 있다.
4. 애국가의 어느 부분을 듣고 있는가?
☞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5. 그때 화면에서는 어떤 장면이 나오나?
☞ 을숙도의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
6. 이 장면을 시적 화자는 어떻게 표현했는가?
☞ 자기들끼리(새들끼리)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 자기들 세상을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7 새가 날아가는 장면은 어떤 느낌을 주나?
☞ 자유롭다, 즐겁다………
8. 시적 화자는 이것을 보고 어떻게 느낄까? ☞ 부럽다
9. 시적화자는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가?
☞ 새처럼 우리도 한 세상 떼어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10. 실제 시적 화자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새들과의 차이점을 생각해서)
☞ 새는 떠나고 우리는 주저 앉는다.
11. 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하는가? 이 세상은 시적 자아에게 만족스러운 세상일까? ☞ 아니요
12. 마음에 안드는 세상이란 생각을 하게된 부분을 시속에서 찾으면?
☞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서서 들어야만 하는 점.(과거 한 때 영화관에서 애국가 상영이 강제된 적이 있었단다.)
13.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서 일제히 일어서서 애국가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 아뇨
14. 부자연스러운 애국가를 왜 틀어 줬을까?
☞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15. 애국심이 고취되었을까? ☞ 아뇨
16. 왜 ‘주저앉는다’로 시를 끝냈을까? ‘주저앉는다’에서 시적 자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떠나고 싶었더던 심정과 대비하여 무력함의 토로 (개인의 의지와 그걸 짓밟는 현실에 대한 무력함)
촛불
- 黃錦燦
촛불!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 때부터 종말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다.
어두움을 밀어내는
그 연약한 저항
누구의 정신을 배운
조용한 희생일까.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한정된 시간을
불태워 가도
슬퍼하지 않고
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
춤추는 촛불. ---시집 「산새」(197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딸을 잃고 난 후의 슬픔을 시작(詩作)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지상적이고 유한적 삶을 ‘촛불’에 형상화하여 그 슬픔을 시로 표현함.
▶ 표현 : 의인법, 상징법
▶ 구성 : 제1연 : 촛불의 종말
제2연 : 촛불의 희생
제3연 : 시간을 모르는 운명
제4연 : 꽃으로 향유된 촛불
▶ 제재 : 촛불
▶ 주제 : 촛불의 희생과 달관(達觀)
보릿고개
- 황금찬
보릿고개 |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블랑은 유럽,
와스카란은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시집 <현장>(196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황금찬의 시는 우리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인식과 정감의 집약이다.』[하현식(河賢埴)의「꿈과 현실의 辨證法」(<현대시학> 1986. 1)]라고 한 것처럼, 이 시에서도 작가 자신의 뼈저리게 가난했던 지난날의 삶은, 개인의 시련이자 곧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적인 수난이었음을 자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성격 : 낭만적, 의지적, 체험적, 비극적
▶심상 : 시각적 심상
▶구성 : ① 온 가족의 슬픔(제1연)
② 우리 민족의 고난과 대비된 외국의 산(제2연)
③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운명(제3연)
▶제재 : 보릿고개
▶주제 :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삶의 애환
<연구 문제>
1.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뼈아픈 고난과 수난의 척도(尺度)를 화자의 감성(感性)으로 나타낸 시구를 찾아 쓰라.
☞ ‘해발 구천 미터’
2. (1)
보릿고개 |
가 상징하는 의미를 50자 내외로 쓰고, (2)또 그것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구를 이용하여 ‘관형어+체언’의 형태로 쓰라.
☞ (1) 우리 민족이 운명적으로 넘어야만 했던 수난의 계절이며, 생사(生死)를 가름하는 절박한 고개
(2) 동생의 죽음
3. 화자인 ‘소년’에게는 시련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 의지를 상징하고 있는 소재를 찾아 쓰라. ☞ 하늘
4. 다음 중 ㉠이 뜻하고 있는 내용을 가장 옳게 표현한 것은?
☞ ①
①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다.
②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③ 다른 산에 비해서 웅장하다.
④ 누구도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다.
⑤ 민족의 희망인 영봉(靈峯)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우리 민족의 헐벗고 가난했던 삶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대다수의 국민이 처해 있던 가난, 그 가난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참한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지난날의 우리 민족의 수난사(受難史)를 모르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보릿고개’는 어떤 산의 고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넘어야만 했던 가난의 고개인 것이다. 가을에 거둔 쌀이 겨울 한철 나기에도 부족한 것이어서 이듬해 봄 보리가 날 때까지 굶주리던, 넘기 힘든 고비를 ‘보릿고개’라 이름한다.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굶주림, 그 가난은 할아버지로부터 화자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 아니 대다수의 국민이 겪어야 했던 수난이자 눈물겨운 삶의 고개였다. 따라서, 그 고개를 잘 넘으면 한 해극 그럭저럭 살 수 있고, 넘지 못하면 죽음과 직결되는 운명의 고개였던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년’은 화자인 나와 동일한 인물인데, 배고픈 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고 하늘이 ‘한 알의 보리알’로 보인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가난과 기아로 점철(點綴)되던 과거의 시대적 여건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겠다.
신초(醋)歌
- 황명걸
얼마나 맛좋을까.
고운 국수발 맑은 육수
갖은 고명에
배도 한 조각 떴겠다
꿩 완자도 한 알 얹혔으니,
눈치가 촉새 같은
계집이라고 곁에 있어
조금 초를 쳐 주면
그 냉면 얼마나 맛좋을까.
얼마나 잘 될까.
날로 헐벗어 가던 가난
사사건건 틀어져만 가던 일
난마처럼 뒤얽히던 생각
이런 불행한 사태들이
하나 둘 바로 풀리는 듯할 때,
감초아줌마같이 원만한
여편네라도 곁에 있어
좀 거들어만 준다면
그것들이 얼마나 잘 될까.
한데 얼마나 힘드냐.
어느 모임 어느 직장 어느 동네나
애써 성사시킨 일 그르치게 하고
겨우 차지한 자리 가로채고
멀쩡한 사람 헐뜯어 내리는
장화홍련의 계모년같이 고약한 심보의
초치는 놈 있으니,
게다가 제 어미 장단에 춤추는
장쇠녀석 같은 놈 있으니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드냐.
초 치지 마라.
하긴 봉이 김선달이
쉰 죽에 초 쳐 팔아먹었다지만,
발끈한 청년이 변심한 계집의 얼굴에
초산 뿌려 앙갚음했다지만,
좋은 건 좋은 거고 초는 촌데
근량깨나 나가는 불알 찬 친구들이여,
남 망치고 저 망치는 초일랑
아예 치지 마라.
(창작과 비평 1969. 봄호)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1969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처음 발표되었던 것을, 1976년『한국의 아이』라는 표제로 간행된 시집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져서 다시 발표된 작품이다. 형식상 8연으로 되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4연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또한, 시대적 상황을 대화 형식으로 고발한 참여시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성격 : 독백적, 호소적, 현실참여적
▶구성 : ① 냉면에 초를 친 맛(제1-2연)
② 내조의 힘(제3-4연)
③ 훼방으로 힘든 세상(제5-6연)
④ 훼방을 마라.(제7-8연)
▶제재 : 혼탁한 현실
▶주제 : 바람직한 삶의 희원(希願)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화자의 호소가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된, 연속된 두 시행을 옮겨 쓰라.
☞ 남 망치고 저 망치는 초일랑 / 아예 치지 마라.
2. 이 시를 네 개의 내용 단락으로 나누었을 때,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화자가 바라는 이상 실현의 어려움을 노래한 단락은? ☞ 3단락
3. 이 시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시적 화자가 경계하는 대상을 비유한 세 어절의 말을 찾아 쓰라.
☞ 초 치는 놈.(장쇠녀석 같은 놈)
4. 이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초(醋)’가 어떻게 다른지 한 문장으로 쓰라.
☞ 전반부가 초의 긍정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초의 부정적 측면을 말하고 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대조하여 소망과 경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전 8연으로 되어 있지만 독립된 한 행을 그 다음 연에 붙여 읽으면 4단락으로 볼 수 있겠다. 이것은 내용상 다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얼마나 맛 좋을까’, ‘얼마나 잘 될까’로 시작되는 부분이 초(醋)의 긍정적 측면을 말하고 있다면, ‘한데 얼마나 힘드냐’, ‘초치지 마라’로 시작되는 부분은 초의 부정적 측면을 말하고 있음이 눈에 뜨인다.
알다시피 초는 조미료이다.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맛은 아니다. ‘냉면’에 적당히 초를 치면 맛이 한결 상큼해지겠지만, ‘쉰 죽’에 초를 쳐 팔아먹는다면 이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초친 놈’이라는 말이 있다. 난봉이나 부려서 사람 구실할 여망(餘望)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근량깨나 나가는 불알 찬 친구들이여, / 남 망치고 저 망치는 초일랑 / 아예 치지 마라.’라는 말로 끝난다. 이런 자들 때문에 ‘세상 살기 얼마나 힘드냐’고 화자는 반문한다. 이 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말이 어눌(語訥)하지 않고 초친 맛처럼 시원시원해서 재미있다.
벽모(碧毛)의 묘(猫)
- 黃錫禹
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터 되는
사막의 수풀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다보면서
(이 애, 너의
온갖 오뇌(懊惱),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 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폐허 창간호, 1920.7)
<감상의 길잡이>
우리 현대시사에서 최초의 난해시(難解詩)로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은 ‘영혼의 구제’라는 관념적 사상으로 인해 발표 당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먼저 ‘벽모(碧毛)’는 파란 털을 의미하며, ‘묘(猫)는 고양이를 뜻한다. 괄호로 묶인 7행 이후의 시행은 푸른 털의 고양이가 시인에게 속삭이는 영혼의 대화로, 이처럼 이 시는 형식에서부터 매우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나’는 모두 시인의 분신으로서 ‘고양이’는 심성의 간교한 악마적 모습이요, ‘나’는 심성 본래의 선한 모습이다. 즉,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악(惡)의 고양이가 본래적 자아이며, 현상으로 나타나는 나의 선(善)한 모습이 현실적 자아이다.
어느 날 영혼의 낮잠터인 사막 위 숲 그늘에서 안식을 취하던 나는 고양이를 만난다. 영혼의 낮잠터인 그 곳은 사막과 숲 그늘이 어우러진 곳으로, 악과 선이 함께 존재하는 시인 자신의 마음이다. 그 때,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내 삶의 태양과 기독이 되어준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온갖 고뇌와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사랑으로 구제해 주겠다.”고 속삭인다. 여기서 ‘태양’과 ‘기독’은 삶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양이가 시인에게 속삭이는 말은 “선하게 살아가는 데서 발생하는 모든 괴로움과 운명을 구제하여 강하고 철저한 삶으로 변모시켜 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黃東奎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시집「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조류에 대한 시인 의식(意識)이 바퀴라는 한 물체를 통하여 삶의 진실성과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굴러가야할 바퀴처럼 삶의 세계도 당연히 굴러가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굴리고 싶은 마음
* 제2연 - 정체된 모든 것을 굴리고 싶은 마음
3. 주제 : 이상을 향한 전진의 의욕
4. 제재 : 바퀴
5. 성격 : 암시적, 상징적, 주지적, 사회비판적
6. 표현 : 반복법, 상징법
기항지(寄港地)․1
- 黃東奎
걸어서 항구(港口)에 도착했다.
길게 부는 한지(寒地)의 바람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긴 눈 내릴 듯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지전(紙錢)에 그려진 반듯한 그림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반쯤 탄 담배를 그림자처럼 꺼 버리고
조용한 마음으로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정박(碇泊) 중의 어두운 용골(龍骨)들이
모두 고개를 들고
항구의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數三個)의 눈송이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현대문학 149호, 1967.6)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차가운 겨울날의 항구 모습과 눈송이를 통해 차분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다. 화자의 감정이나 사상은 배제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중심 이미지는 정박해 있는 배이며, 그 배의 앙상함이 주는 쓸쓸함과 겨울밤 흩날리는 눈송이가 주는 황량함이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화자는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도착한 항구는 화자가 머문 곳이자 배가 정박한 곳이다. 항구는 떠나는 배와 도착하는 배가 머무르는 곳으로, 여행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항구는 화자의 방랑과 안주가 접합된 장소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한다. ‘길게 부는 한지의 바람 /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드는 스산한 겨울밤, 마치 눈이라도 내릴 듯 불빛이 낮게 느껴지는 항구에서 화자는 우울한 마음으로 밤 풍경을 바라보며 서 있다. 화자의 막막한 심정은 ‘구겨 넣고’, ‘꺼 버리고’와 같은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되어 나타나 있다. 항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화자는 이제 ‘조용한 마음으로 /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화자는 그 곳에서 정박중인 배들이 모두 항구 쪽으로 뱃머리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멀리 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지친 항해를 끝내고 항구로 돌아와서 편안히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 화자는 자신도 오랜 방랑을 끝내고 정박 중인 배처럼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그 때,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의 눈송이’가 ‘하늘의 새들’과 함께 날아오른다. ‘눈송이’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는 속성을 가진 것으로 화자의 방황하는 젊음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구절은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발을 현란한 이미지로 그려냄으로써 화자의 암울한 의식을 자극하는 동시에, ‘하강’의 이미지를 ‘상승’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이룬다. 막연함, 차가움, 덧없음 등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소재들과 화자의 우울한 심리가 얽혀 있던 전반부의 황량한 이미지가 후반부에 이르러 정박해 있는 ‘배’로 집중됨으로써 앞의 서성거림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극적 전환을 이룬다. 즉, 거대한 용골의 모습으로 정박해서 ‘항구의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배의 이미지는 어둡고 암울한 현실을 버텨 이겨내는 견고함의 의미를 화자에게 떠올려 준 것이다. 그로부터 비로소 화자의 암울했던 의식은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정화되고 오랜 방황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그만 사랑 노래
- 黃東奎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1978)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제목이 의미하듯 일종의 ‘사랑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연시(戀詩)는 대개 실연의 상처를 노래하거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함으로써 임을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자의 고독과 상처를 드러내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누가 떠났고 누가 남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실연이라는 상황에 두 사람 모두 연루되어 있음을 암시할 뿐, ‘어제를 동여맨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두 사람의 행복했던 어제와 내일을 단절시키는 편지일 것임은 분명하다. 그 어제의 사라짐과 함께, 길과 길 아닌 것, 즉 어제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어제의 사라짐은 ‘어린 날 /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는 이미지와 연관된다. ‘돌’이 어린 날의 어떤 특정한 추억과 관련된다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돌의 상태는 분명 그 추억이 더 이상 행복하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깨어진 금들’은 바로 이러한 깨어진 추억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으로, 추억의 그 빈 자리엔 이제 ‘몇 송이 성긴 눈’만 날릴 뿐이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눈은 화자가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 외쳐 보아도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그렇다면, 이 화자가 갖는 그 비극적 운명은 무엇일까? 이 시가 창작된 70년대 초 암울했던 현실 상황과 관련한다면 ‘어제를 동여맨 편지’나 ‘문득 사라진 길’은 지난날 추구해 오던 가치가 억류되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로 상징된 사회적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화자는 바람직한 방향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돌과 ‘한없이 떠 다니는’ 눈송이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 노래’는 한 개인에게 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국가와 같은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그만 사랑’이 아닌 ‘큰 사랑’으로 심화, 확산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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