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 이한직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 오신다.
회초리를 드시고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옛날에 옛날에―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윈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문장 7호, 1939.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머리 속세 그려 보아야 한다. 화자는 동물훤에서 낙타를 바라보면서 옛날의 늙으신 선생님을 떠올리고, 동심(童心)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 시인은 초기에는 카프(KAPF) 계열의 정치 지향성과 모더니즘의 주지시를 모두 비판하고 순수시를 지향했으며, 1950년대에는 현실을 초탈한 내면 지향의 시를 추구했다.
▶ 성격 : 회고적, 시각적
▶ 표현 : 직유법, 은유법
▶ 구성 : ① 회상의 시작(제1연)
② 선생님 회상(제2연)
③ 선생님에 대한 추억(제3연)
④ 낙타를 통한 연상(제4연)
⑤ 동심의 세계 동경(제5연)
▶ 제재 : 낙타
▶ 주제 : 동심의 세계 동경
<연구 문제>
1. 이 시에 나오는 화자인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 문장으로 쓰라.☞ 화자는 화창한 봄날 오후에 동물원의 잔디 위에서 낙타를 보며 옛 스승을 생각하고 있다.
2. 이 시를 두 단락으로 나눈다면 어디서 나누는 것이 좋겠는가? (1)둘째 단락에 해당하는 첫 어절을 쓰고, (2)그 이유를 밝혀라.
☞ (1) 낙타는~
(2) 앞 부분은 눈을 감고 회상한 내용이고, 뒷 부분은 눈을 뜨고 본 현실의 세계이므로.
3. 낙타와 시적화자, 그리고 옛 선생님이 어떻게 비유 관계를 맺게 되며, 그 비유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하여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쓰라.
☞ 화자는 낙타를 바라보며 옛 은사님을 낙타에 비유했다. 그리고 낙타처럼 늙은 은사님께서 항상 과거를 추억하시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다가 제3연에서 전환이 일어난다. 이번엔 거꾸로 낙타를 옛 은사님의 늙으신 모습에 비유하고, 그 낙타와 자기 자신을 비유한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도 역시 옛 은사님처럼 과거의 동심을 회고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제1-3연은 화자가 눈을 감고 생각한 세계로 선생님이 등장하고, 제4-5연은 현실로 되돌아와 눈앞에 본 세계로 낙타가 등장한다.
늙은 낙타의 모습에서 늙은 은사의 모습을 연상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데, 이것은 동심의 세계를 잃고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선생님=낙타=나’의 동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겠다.
어느 따뜻한 봄날 오후에 동물원을 찾아가 잔디 위에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긴다. 눈을 감으니 문득 어린 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고서 걸어오신다.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그 선생님은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서 있는 낙타처럼 항시 ‘옛날에 옛날에’ 하면서 옛날을 그리워하셨다. 여기서 낙타를 등장시킨 것은 선생님과 낙타를 동일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 옛날에―’ 하는 암전(暗轉) 속에 선생님의 모습은 천천히 사라진다. 여기까지가 눈을 감고 회상한 것이다.
제4연에서 무대가 밝아지면서 화자는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까지는 시적 화자가 선생님이었으나 낙타로 바뀐다. 낙타는 옛날의 선생님처럼 늙어서 쓸쓸하게 보인다. 그리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화자도 어른이 된 지금 삭막한 세상에서 선생님과 낙타처럼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 화자도 낙타처럼 동물원에서 잃어버린 동심의 옛 이야기를 더듬고 있는 것이다.
이한직은 순수시를 지향하는 시인이나, 이 시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주지적, 감각적인 경향을 따르고 있다. 가능한 한 감정을 배제(排除)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중요시했다든가, 대상을 일정한 거리에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회상(回想)을 내용으로 하여 쓴 시는 쓸쓸함, 외로움, 그리움 등의 감상(感傷)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그러한 감정을 지적(知的)으로 처리하여 밝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풍장(風葬)
- 이한직
사구(砂丘) 위에서는
호궁(胡弓)을 뜯는
님프의 동화가 그립다.
계절풍이여
카라반의 방울 소리를
실어다 다오.
장송보(葬送譜)도 없이
나는 사구 위에서
풍장이 되는구나.
날마다 밤마다
나는 한개의 실루엣으로
괴로워했다.
깨어진 오르간이
묘연(杳然)한 요람(搖籃)의 노래를
부른다, 귀의 탓인지.
장송보도 없이
나는 사구 위에서
풍장이 되는구나.
그립은 사람아.
(문장 4호, 1939.5)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이한직의 첫 추천작으로, 정지용은 심사평에서 “선이 활달하기는 하나 치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라는 불만과 함께 ‘외래어의 잦은 사용’을 꼬집으며 시적 기교만 부린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처럼 이 시는 의도적으로 서구적 체취를 풍기고자 많은 외래어를 등장시키고 있으며, 3연과 6연에서는 같은 시행의 반복을 통하여 시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연에서는 ‘그리운’을 ‘그립은’으로 변형시키는 우리말 구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풍장’이란 원래 시신(屍身)을 한데 내버려 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소멸되게 하는 원시적(原始的) 장례법(葬禮法)을 뜻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만 18세의 시인이 처해 있던 일제 말기의 절망적인 사회상을 상징하며, 그 속에서 ‘괴로워하’며 자유와 안식을 갈망했던 시인의 애끓는 마음은 ‘그리움’으로 나타나 있다.
낙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시집 적막강산, 1963)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무성한 녹음’과 ‘열매’를 위하여 떨어지는 꽃송이, 즉 낙화를 통해 이별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통찰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인 1957년에 썼다고 한다. 17세에 등단하여 일찍이 그 조숙성을 세상에 드러낸 바 있는 시인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대 중반의 청년이 썼다고는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시는 차분한 어조로써 삶의 보편적 측면에 대한 깨달음과 체념, 생의 예지 같은 것을 펼쳐내고 있다. 물론 시인의 내부에 서려 있는 젊음으로 해서 감상적 색채가 완전히 탈색한 것은 아니더라도 전후의 절망과 허무가 완전히 가셔지지 않은 당시의 문단 상황에서 이같이 정제된 서정시를 보여 주었다는 점은 이 작품의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시의 첫 연은 낙화의 아름다움을 서술하는 부분으로, 작품 전체의 주제와 인상을 집약하고 있는 경구이자 압권이다. 시인은 떨어지는 꽃을 보며 그 꽃의 사라짐을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환치해 놓는다. 사랑과 이별이 젊은이의 몫임에는 틀림없지만, 시인은 그것을 다만 젊은이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 범사의 보편적 국면으로 확대시킨다. 그러므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낙화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랑하면서도 떠나야 할 것을 알고 떠나가는 연인일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는 탐나는 자리라 하더라도 그에 연연하지 않고 떠나가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꽃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별이나 죽음도 그 참된 의미를 알고 이루어질 때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고귀한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3연은 1연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사랑의 사라짐과 나의 떠남을 꽃이 떨어져 분분히 흩날리는 모습으로 보여 준다. 4․5연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사랑과 이별의 아픈 체험을 거쳐 나의 청춘도 사라짐을 노래한다. 4연의 결구행이나 다름없는 시행을 5연으로 굳이 독립시킨 시인의 의도는 이 시가 사랑의 별리나 젊음의 아픔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는 영혼에의 축복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1행으로 이루어진 5연을 중심축으로 전후가 상호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전반부의 ‘젊음 ― 고뇌’와 후반부의 ‘성숙 ― 인내’의 대립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퇴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5연은, ‘낙화’가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열매’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 즉 통과 제의(通過祭儀) 같은 것임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네 삶도 그같이 무성한 녹음과 풍성한 결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청춘기의 고통을 슬기롭게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 준다.
6․7연은 이러한 깨달음이 심미적 의장(衣裝)을 통해 표현된 부분이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과 같은 표현은 내면의 추상적 사고를 가시적(可視的) 정경으로 나타낸 것으로, 고통의 인내가 내면적 아름다움과 관련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 장면이다. 또한 지금 겪는 아픔이 성숙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슬픔 자체는 부정할 수 없기에 마지막 시행에서 물의 이미지를 이용, 눈물의 형상을 암시하고 비애의 정서를 형상화하였다.
<맥락읽기>
1.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람은? ☞ 나
2.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 낙화(꽃이 떨어지는 모습)
3. ‘나’는 꽃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는가?
☞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 알고 가는 이는 아름답다.
☞ 나의 청춘이 꽃답게 죽는다.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다.
3-1.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 나의 사랑, 나의 결별
4. 이렇게 화자는 꽃이 지는 모습에서 자신의 사랑과의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
4-1. 자신이 만약 자기의 사랑과 이별을 했다면, 어떤 감정이 될까?
☞ 슬퍼요, 절망적일꺼예요. 죽고 싶을 것이다.
4-2. 그러면 이 시에서 이별이 주는 느낌은 어떠한가? 슬프고 절망적인가?
☞ 아니오. 아름답고 거룩한 느낌.
4-3. 시의 어느 부분에서 그것을 알 수 있지?
☞ 뒷모습이 아름답다.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무성한 녹음,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한다.
5. 이 시에서의 이별은 이별이 주는 보편적 정서(슬픔, 허무, 절망)와는 달리 아름다운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면 이 시에서의 이별의 의미를 낙화의 의미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
5-1. 이 시속에서 ‘낙화’는 꽃이 지는데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
☞ 열매
5-2. 이렇게 낙화가 결실로 이어지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할 때 나의 사랑과의 결별은 무엇으로 이어질까?
☞ 영혼의 성숙
5-3. 어느 부분에서 알 수 있지?
☞ 7연
5-4. 이렇게 이 시에서 ‘낙화’를 통해 인식한 ‘사랑, 청춘,과의 이별’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다. 이 시에서 이별의 의미는?
☞ 성숙을 위한 아픔, 더 큰 것을 위한 이별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시집 적막강산, 1963)
* 단말마 :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 석탄기 : 고생대 중엽으로 이 시기 후반에 파충류․곤충류가 출현하였다.
<감상의 길잡이>
이형기는 시적 대상을 보다 내면화된 영역으로 끌어들여, 소위 ‘정감의 미학’을 추구함으로써 서정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감각성을 살리기 위해 치밀한 언어의 구사에 노력하지만, 화려한 수사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 자연에 대한 친애감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정서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내밀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 첫 시집 적막강산에 이어 돌베개의 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지향과 함께 자기 존재에 대한 고독한 상념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 시도 정교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적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 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김수영의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금성 3호, 1924.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작품은 1924년에 발표한 것으로 시인의 신선한 감각, 상징적 수법, 탁월한 연상작용에 의해 봄이 주는 감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치밀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에 의한 이 시는 당시 상징적 수법과 함께 독자적 위치를 지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성격 : 감각적, 상징적, 즉물적
▶ 심상 : 시각, 청각, 후각적 심상
▶ 특징 : ① 비유의 아름다움― 시인의 세련된 감각
② 감각미
③ 각운 : 각 연 첫 행의 ‘-에’운(韻)과 각 연 둘째 행의 ‘-아’운(韻)
▶ 구성 : ① 고양이의 털 ― 봄의 향기(제1연)
② 고양이의 눈 ― 봄의 생명력(제2연)
③ 고양이의 입술 ― 봄의 나른함(제3연)
④ 고양이의 수염 ― 봄의 생기(제4연)
▶ 제재 : 고양이
▶ 주제 : 봄의 감각
<연구 문제>
1. 시적 정서가 다음 시와 가장 거리가 먼 연은?
☞ 제3연
산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길 위에 다가오는 꽃숨의 설레임 |
부는 바람을 따라 손짓하면 조용히 들리는 봄의 숨소리. |
2. 이 시를 ‘감각적․정태적 이미지’와 ‘관념적․동태적 이미지’로 나눈다면 관념적․동태적 이미지에 해당하는 두 연은?
☞ 제2연, 제4연
3. 각 연의 의미를 아래의 낱말로 나타낼 때, 각 연에 해당하는 낱말을 순서대로 쓰라.
☞ 제1연 : 촉감, 제2연 : 정염, 제3연 : 권태, 제4연 : 소생
권태(倦怠), 촉감(觸感), 소생(蘇生), 정염(情炎) |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고양이를 통해 봄이 주는 감각을 집약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고양이의 털→봄의 향기, 고양이의 눈→봄의 불길, 고양이의 입술→봄의 졸음, 고양이의 수염→봄의 생기’의 연관성은 시인의 뛰어난 감각과 예리한 관찰력을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여러 감각 중 시각적 이미지가 가장 많이 등장하지만 후각, 청각의 이미지도 나타난다. 한 마리의 고양이에게서 봄의 전체적인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이 시인의 뛰어난 점이다. 또, 이 시 전체가 감각적․정태적인 것(제1,3연)과 관념적․동태적 이미지(제2,4연)의 대칭적 구조로 되어 있고, 각 연의 문장의 구조가 통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면적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율적인 면에서도 각 연 첫 행의 ‘-에’운(韻)이나 둘째 행의 ‘-아’운(韻)이 주는 완전한 각운의 기교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가 뛰어난 연상을 통해 봄을 감각적으로 체득한 것이나, 완벽에 가까운 구조적 통일성을 지닌 것은 평가할 만한 요소이지만, 내면 세계나 의식의 깊이는 없다. 아무튼 섬세한 감각과 상징적 표현은 당시에 있어 시인의 독자적 위치를 마련해 주었다.
조선의 학도여
- 이광수
그대는 벌써 지원하였는가,
- 특별지원병을 -
내일 지원하려는가
- 특별지원병을 -
공부야 언제나 못하리
다른 일이야 이따가도 하지마는
전쟁은 당장이로세
만사는 승리를 얻은 다음날 일.
승패의 결정은 지금으로부터.
시각이 바쁜지라 학교도 쉬네.
한 사람도 아쉬운지라 그대도 부르시네.
1억이 모조리 전투배치에 서랍시는 오늘.
그대는 벌써 뜻이 정하였으리,
- 나가리이다, 나가 싸우리이다 -
- 싸워서 이기리이다 -
- 미영(米英)을 격멸하고 돌아오리이다 -
조국의 흥망이 달린 이 결전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마루판
단판일세, 다시 해볼 수 없는 끝판
그대가 나가서 막을 마루판싸움
아세아 10억 -
칠 같은 머리
흑보석 같은 눈
황금색 살빛
자비와 인과 맑은 마음과
충과 효와 정렬(貞烈)과
예의와 겸손과
근면과 화평과,
이러한 정신,
이러한 문화,
온유하고 순후한
10억의 운명이 달린 결전.
거룩한 우리 향토
아세아의 성역을
짓밟아 더럽히던,
적을 쫓으라 - 하옵신 결전.
이 싸움 이기고 나서
아세아 사람의 아세아로
천년의 태평이 있을 때
그 어떤 문화가 필 것인가.
아세아는 세계의 성전
세계의 낙원, 이상향
신앙과 윤리와 예술의 원천
그러한 아세아를 세우려고
맹수 독충을 몰아내는 성전(聖戰)
일본 남아의 끓는 피로
아세아의 해(海)와 육(陸)을
깨끗이 씻어내는 성전
- 이 성전의 용사로
부름받은 그대 - 조선의 학도여
- 지원하였는가, 하였는가
- 특별지원병을 -
그대, 무엇으로 주저하는가
부모 때문인가
충 없는 효 어디 있으리,
그대 처자를 돌아보는가
이 싸움 안 이기고 어디 있으리
부모길래, 처자길래, 가라, 그대여,
병역의 의무 없이도
가는 그대의 의기(義氣) -
그러므로 나라에서
특별지원병이라 부르시도다.
의무의 유무(有無)를 논하리,
이 사정 저 형편 궁리하리,
제만사(除萬事) 제잡담(除雜談)하고
나서라 조선의 학도여
그대들의 나섬은
그대들의 충의(忠義), 가문의 영예,
삼천만 조선인의 생광(生光)이오, 생로(生路),
1억 국민의 기쁨과 감사.
남아 한번 세상 나,
이런 호기(好氣) 또 있던가,
일생일사(一生一死)는 저마다 다 있는 것,
위국충절은 그대만의 행운
가라 조선의 6천 학도여,
삼천만 동향인(同鄕人)의 앞잡이 되라,
총후(銃後)의 국민의 큰 기탁(寄託)과
누이들의 만인침(萬人針)을 받아 띠고 가라
- 11월 2일 새벽 네시 「매일신보」 1943.11.4
<해 설>
※ 친일시의 한 전형으로 소개.
“대체 내선일체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재래의 조선적인 것을 버리고 일본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일언이폐문하면 이것이다. 그리하여서 조선 2천 3백만이 모두 호적을 떠들추어보기 전에는 내지인인지 조선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최후의 이상이다. 그러므로 내선일체가 되고 아니되는 것은 오직 나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일조일석에 될 것은 아니지마는 우선 일본국민이기에 필요한 것은 성화같이 습득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니 이것이 빨리 되면 빨리 조선인에게 행복이 오고 더디게 오면 더디게 행복이 오고 만일 조선인이 이 공부에 게으르면 마침내 올 것이 아니 오고 말 것이다.”
그러면 시급한 것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첫째가 황실에 대한 충성의 정조의 함양이다. 일본인의 황실에 대한 감정은 실로 독특한 것이어서 조선인으로서 그 정도에 달하자면 깊고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항용 우리 조상네가 충군애국이라던 그러한 충이 아니다.
일본인의 충에 대한 감정은 한자의 충(忠)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 도리어 유태인의 여호와에 대한 충에 접할 것이다. 일본인은 내가 향유한 모든 행복을 천황께서 받잡은 것으로 생각한다. 내 토지도 천황의 것이오, 내 가옥도 천황의 것이오, 내 자녀도 천황의 것이오, 내 몸도 생명도 천황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황께로부터 받자온 몸이길래 천황이 부르시면 언제나 부탕도화라도 한다는 것이오, 자녀도 재산도 천황께서 받자온 것이매 천황께서 부르시면 고맙게 바친다는 것이다. 천황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신 때문이다. 이것이 지나나 구주의 군주애 신민관계와 판이한 점이다.
조선인은 이 점을 바로 파악하여야 한다. 그 순간부터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다 천황께서 주신 것으로 따라서 언제든지 천황께 바칠 것으로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의 신체제의 초석이다.
더구나 조선민중은 과거에는 황은을 편파하여 왔거니와 앞으로 의지하고 안길 곳이 진실로 황은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인은 앞으로 내지인보다도 더욱 많은 황은에 답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처지에 있느니 따라서 더욱 많이 천황께 대해 감사와 충성을 바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말씀하기 황송한 일이기 때문에 말로 다하기 어려운 것이니 오직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는 다 절실히 깨달을 것이다. <이광수, 「매일신보」 1940.9.5~12일>
비둘기
- 이광수
오오 봄 아침에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
죽은 그 애가 퍽으나도 설게 듣던 비둘기
그 애가 가는 날 아침에도 꼭 저렇게 울더니.
그 애, 그 착한 딸이 죽은 지도 벌써 일년
<나도 죽어서 비둘기가 되고 싶어
산으로 돌아 다니며 울고 싶어> 하더니.
(조광, 1936.5)
<감상의 길잡이>
민족주의에 입각한 계몽적 문학관으로 일관했던 춘원의 문학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이 작품은 비둘기를 소재로 하여 죽은 딸아이에 대한 슬픈 기억을 그린 2수의 연시조로 300편이 넘는 그의 많은 시가 중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느 봄날 아침, 작가는 비둘기가 되고 싶다던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저 새가 혹시 아이의 혼령이 현신(現身)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진한 육친의 정을 느끼고 있다. 병실 창가로 날아들던 비둘기를 바라보며 그 비둘기처럼 건강한 삶을 갈망하던 딸아이의 모습과, 일년 전 아이의 임종을 지켜보던 가슴 저린 아픔들이 아침에 듣게 된 비둘기 울음 소리와 더해져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봄의 생동감과 아이의 죽음을 대조시키는 방법으로 자신의 슬픈 마음을 강조하는 한편, 두 수의 마지막을 ‘-더니’로 끝맺음으로써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그리움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다.
거울
- 이 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오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햇겠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가톨릭 청년 5호, 1933.10)
* 외로된 : 한 쪽으로 치우친. 어떤 일에 골몰한.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거울은 의식의 분열, 자동 기술법 등 초현실주의적 특징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상(李箱)은 특이한 관찰력으로 사물의 모습을 대칭적으로 보여 주는 거울의 기능에 착안하여 현대인이 겪는 자아 분열 현상을 형상화한다. 즉, 이 시는 자아가 분열해 가는 과정과 그에 대한 지각을 보여줌으로써 존재의 역설적 의미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 성격 : 자의식적, 주지적, 심리적
▶ 어조 : 냉소적, 자조적 어조
▶ 특징 : 자동 기술법.(초현실주의 시의 자의식의 세계 표출 방법)
▶ 표현 : 역설적 표현
▶ 구성 : ① 거울 속의 밀폐된 세계(제1연)
② 의사 소통 단절(제2연)
③ 자아 상호간의 단절(제3연)
④ 거울 때문에 ‘나’와의 대면이 가능함(제4연)
⑤ 자아의 이중화(제5연)
⑥ 분열된 두 개의 모순된 자아(제6연)
▶ 제재 : 거울에 비친 ‘나’
▶ 주제 : 자아의 분열과 자의식.(자기이면서도 자기가 아닌 분열된 삶을 누리는 현대인의 비극적 자아상)
<연구 문제>
1. ㉠, ㉡의 의미를 각각 풀어 쓰라.
☞ ㉠ : 일상의 자아와 본연의 자아가 화해에 이를 수 없을 만큼 분열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 : 나의 의사와는 다른 사업, 즉 본연의 자아가 일상의 자아와는 다른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뜻이다.
2. 이 시에는 하나의 자아와 또 다른 하나의 자아가 존재한다. 이 두 자아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두 어절로 답하라.
☞ 대립과 조화.(대립과 공존)
3. 이 시에서 ㉢의 이중성을 한 문장으로 써 보라.
☞ 거울은 자아와의 단절과 매개의 이중성을 지닌다.
4. 제4연과 제5연의 역설(逆說)을 5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 제4연에는 거울이 가지는 이중적 의미의 역설(逆說)이, 제5연에는 부재(不在)와 실재(實在)의 역설(逆說)이 나타나 있다.
<감상의 길잡이>
여기서 거울은 자기 성찰의 한 방편이다. 그 거울을 통하여 시인은 일상에 매몰된 채 망각한 ‘나’ 본연의 모습을 본다. ‘거울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햇겠오’는 자기 성찰의 기회가 없이 자아의 탐구가 불가능하다는 말일 터이다. ‘거울 속의 나’가 객관화된 ‘나’라면, 자아를 발견하려는 주관적인 의지에 관계없이 객관적인 ‘나’는 존재한다. 그것이 이 시에는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거울속의내가있오’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적인 ‘나’와 객관화된 ‘나’ 사이의 거리감이다. ‘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가 뜻하는 바는 자기 소외의 감정이다. ‘나’는 ‘거울 속의 나’, 즉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서먹서먹해 하고 곤혹을 느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하지만 끝내 결렬된다. 이미 일상의 ‘나’와 본연의 ‘나’가 화해에 이를 수 없을 만큼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일상의 허위에 길든 ‘나’의 눈으로는 ‘거울 속의 나’가 하는 것이 진실된 것으로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외로된 사업’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하려 든다. 그런데 사실 진찰받아야 할 사람은 ‘거울 속의 나’가 아니라 일상의 ‘나’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상의 거짓에 매몰된 자신의 허위를 고발하는 하나의 역설(逆說)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李箱)의 거울이 이와 같이 이해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도 건전한 사고(思考)를 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시 제15호에 오면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권총을 겨눈다. 그것은 그가 분열된 자아를 수습하지 못하고 자기를 구속하는 본연의 ‘나’로부터 탈출하여 일상의 ‘나’ 속에 안주하려는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이 땅에 출현한 최초 모더니스트
이 상(李箱)의 문학세계
― 그는 내게 암호였고, 암초였다 ―
이상(李箱).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 1910년 음력 8월 20일 서울 사직동에서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1937년 4월 17일 27세의 나이로 동경에서 폐결핵으로 사망.
이것이 자연인 이상(李箱), 아니 김해경의 호적부다. 그러나 우리 현대문학의 기원을 탐색해 들어갈 때 그의 사후 문학적 생애는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시인 고은(高銀)은 그의 이상평전에서 「이상은 그의 시대를 정규적인 상황의식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 자신의 고민을 시대에 만화처럼 투여함으로써 그가 산 시대 전부를 희극으로 몰수해 버린 예술가의 광태를 유감없이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매우 행복한 파산자였다」라고 쓰고 있다.
오만과 천재성에서 비롯된 자의식과 일제의 식민지가 되던 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식민지의 주민으로 근대라는 화두(話頭)와 부딪치며 살다간 그는 아닌게 아니라 이 땅에 출현한 최초의 모더니스트였다.
그의 문체는 흔히 점토질로 불리거니와 국한문혼용체는 그만 두고라도 기하, 아라비아 숫자, 일본어, 그리고 선과 각의 무수한 기호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기호들의 실험실에 갇혀 박제의 문학을 낳게 되었다.
돌아보건대 고등학생인 나이에 나는 저 식민지의 잔재인 삭발머리와 검정교복 차림이었으므로 <삼중당>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이상 시소설집을 교복 주머니에 넣고 허장을 부리고 다녔으니 이상(李箱)이 곧 내게는 암호였고 암초였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으랴. 피로에 극(極)한 새벽엔 또 누군들 그의 시 거울이나 꽃나무를 한번쯤 외지 않았으랴. 그 바닥 모를 권태와 허무의 쓰디쓴 맛봄 없이 어찌 이십대의 저 어둠침침한 교각 밑을 지나왔으랴. 우리는 그이처럼 조숙과 과속으로 살 수 없었으므로 아주 느리게 미완성의 질곡을 지나오면서 꼽추 화가 「구본웅」이 그린 「책임의사」 이상(李箱)의 환영을 얼핏얼핏 바라보지 않았던가.
그가 전후문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한국문학 또한 카프와 함께 그의 피를 수혈해 생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달린과 아스피린으로 연명하며 카프의 저쪽에서, 가의식(假意識)만으로 혼자 근대라는 회색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자 했던 그는 그리하여 자칭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살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 있어서 「이상(李箱)의 발견」은 한 연호(年號)의 발견이며 동시에 근대의 발견이란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
그의 소설 날개의 끝머리에서 한국 현대문학은 이렇게 되풀이하며 무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윤대녕/ 소설가>
오감도(烏瞰圖)
- 詩제1호 -
- 이 상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十三人의兒孩는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
兒孩와그러케뿐이모였소.
(다른事情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中의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의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좃소.
그中의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그中의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좃소.
(길은뚤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
「조선중앙일보」(1934년7월24일)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오감도는 일제치하의 억압된 실존적 불안을 그린 작품으로 자동기술법의 실험적 수법을 사용하여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의 경향을 보이는 난해한 시이다.
반복의 수법을 사용한 이 작품은 피해망상, 과대망상과 같은 병적인 상태에서 쓰여진 것이라 볼 수 있으나, 확대 해석하면 인간애를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성격 : 주지적, 관념적, 심리적, 상징적
▶ 어조 : 비판적, 냉소적 어조
▶ 특징 : ①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의 영향
② 실험적 수법
▶ 구성 : ① 13인의 아이가 도로를 질주함(제1연)
② 13인의 아이가 무섭다고 함(제2-3연)
③ 그 중의 어느 아이가 무서운 아이이든, 무서워하는 아이든 무방함(제4연)
④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않아도 좋음(제5연)
▶ 제재 : 실존적 삶의 모습
▶ 주제 : 식민지 지식인의 공포 의식과 좌절 의식.(무의미의 의미. 인간애의 소망)
<연구 문제>
1. 시인이 갈망한 세계는 무엇인지 30자 정도로 쓰라.
☞ 인간애가 회복되어 인간과 인간의 의사 소통이 자유로운 세계
2. 이 시가 초현실주의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 까닭을 50자 내외로 쓰라.
☞ 그 까닭은 표현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자동기술의 수법을 섰기 때문이다.
3. 이 시에는 일제치하에서 살았던 우리 지식인들의 어떤 의식이 나타나 있는가?☞ 공포 의식과 좌절 의식
4. 이 시에 사용된 표현 기법을 열거하라.
☞ 상징법, 역설법, 반복법
<감상의 길잡이>
보통의 서정시에 친숙한 독자의 눈으로 보면 이 작품은 매우 어려워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난감할 것이다. 우선 표면화된 내용을 좇아 요약해 보기로 하자.
(1) 13인의 아이가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한다.
(2) 13인의 아이가 모두 무섭다고 한다.
(3) 그 중 누가 무서운 아이고 누가 무서워하는 아이라도 좋다.
(4)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다. 먼저 13이라는 숫자에 대해 눈여겨 보자. 이 숫자는 어쩐지 불길하다는 느낌을 준다. 서양 사람에 의해 유포된 관념이지만,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의 사람 수가 열셋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 중에 누군가가 예수를 밀고했다. 무서운 자가 그들 속에 끼어 있는데,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모를 때 느끼는 불안감이 심각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무서운 아이이고, 모두가 무서워하는 아이들이기도 하다는 말이 된다. 이 불안이 13인의 아이를 질주하게 한다. 공포로부터의 탈출인 셈이다. 그런데 그 길이 ‘막다른 골목’이라도 좋고 ‘뚫린 골목’이라도 좋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일까.
이 말은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지아니하야도좃소’라는 구절과 통한다. 아무리 달린다 하여도 공포는 끝내 따라올 것이므로, 공포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할 것이므로, 길이 뚫렸든 막혔든 달리든 달리지 않든 마찬가지라는 뜻이 된다. 공포로부터 해방될 길이 없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가 이 시에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 소통이 단절된 사회의 공포를 드러내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참다운 인간 관계를 갈망하는 시인의 마음이 역설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하겠다.
꽃나무
- 이 상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爲)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가톨릭 청년 2호, 1933.7)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초현실주의 기법을 원용하여 쓰여진 작품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비이성적, 비논리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자유로운 연상 작용으로 기술된 것이다. 따라서, 상식과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띄어쓰기를 무시했다든가 연(聯)과 행(行)의 구분을 배제한 것도 기존 시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난해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꽃나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상으로 생각하는 꽃나무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서정의 대상이지만, 이 시의 꽃나무는 의식(意識)을 가지고 있는 사물이다. 시인의 자의식을 투영한 것으로 시적 화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이 시에는 두 개의 꽃나무가 나온다. 하나는 ‘벌판 한복판에 있는 꽃나무’이고, 또 하나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이다. 이 두 꽃나무는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왜 달아나야 했는지도 알아야 이 시의 이해는 가능하다.
▶ 성격 : 심리적, 내면적, 관념적, 주지적
▶ 경향 : 초현실주의적인 경향
▶ 심상 : 인간의 내면 의식의 심상화. 심상의 병치
▶ 어조 : 고뇌하는 지식인의 자아 성찰적 어조
▶ 표현 : 역설법, 자유 연상법 사용
▶ 특징 : ① 띄어쓰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기존의 문법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② 시의 율격을 배제함으로써 음악적인 요소를 무시했다.
③ 반이성(反理性)에 입각한 역설적인 기법을 썼다.
▶ 구성 : ① 자아의 상황 설정(제1,2문장)
② 두 자아의 통합 노력(제3문장)
③ 자아 통합의 불가능 인식(제4문장)
④ 자아 분열에 대한 공포(제5문장)
⑤ 좌절과 허탈 상태(제6문장)
▶ 제재 : 꽃나무.(자아의 분열)
▶ 주제 : 자아 성취를 위한 욕구와 좌절
<연구 문제>
1. ㉠과 ㉡을 시인의 의식 속에 설정해 놓은 두 자아로 볼 때, 이 둘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30자 내외로 설명하라.
☞ 두 자아는 공존하고 있으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2. 화자의 노력이 한갓 도로(徒勞)였음을 표현하고 있는 시어를 하나 쓰라. ☞ 흉내
3. 다음 시의 내용과 의미가 가장 잘 통하는 문장을 이 시에서 찾아 쓰라.
☞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오 이상(李箱)의 거울 |
<감상의 길잡이>
여섯 문장으로 구성된 이 시는 독자에게 당혹감을 주는 매우 난해한 시이지만,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1)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 ― 시인의 자유 연상에 의해 의식 속에 설정해 놓은 자아(自我)다. ‘벌판 한복판의 꽃나무’는 시인의 일상 속의 자아, 또는 현상적 자아이다.
(2)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 현실적 자아가 놓여 있는 상황이다. 남과 교류가 불가능한 단독자로서 고독한 자아이다.
(3)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 현실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에 도달하려는 갈망이며 몸짓이다. 여기에서 ‘들판 한복판에 있는 꽃나무’는 일상적인 나, 즉 현실적 자아이고,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는 이상적 자아 또는 본질적 자아이다. ‘열심으로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는 현실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꽃나무’는 실제하는 것도 아니고, 서정적 대상도 아니다.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는 인간처럼 서술되어 있다. 자유 연상에 의하여 화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4)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 현실적 자아가 이상적 자아에 도달할 수 없음을 진술한 것이다. 통합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다.
(5)나는막달아났소 ― 현실적 자아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이상적 자아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화자인 ‘나’가 달아났다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거리(距離) 행동과 의식의 괴리(乖離)에서 오는 좌절을 표출한 것이다.
(6)한꽃나무를위(爲)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 화자의 성찰적 고백이며 허탈감의 표현이다. 화자는 꽃나무가 한 것처럼 열심히 제가 생각했던 꽃을 피우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으로, 결국은 이상적 자아에 접근도 못하고 흉내에 그쳤다는 뜻이 된다.
결국, 이 시는 시인이 현실과 이상, 행동과 의식의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데서 오는 갈등과 좌절을 꽃나무를 통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의 시 거울이 자아 분열을 실감하고 통합을 위하여 소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지만 실패하고 만 것이라면, 이 시는 열심히 통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시(詩)
- 이 상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 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들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 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가톨릭 청년』 2호, 1933.7)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시인 특유의 알레고리 수법을 통해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표면적 주제 속에 시적 화자의 내면 세계를 감추고 싶은 욕망이라는 심층적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편에서 제시되는 ‘커다란 돌’과 ‘어떤 돌’, 그리고 나의 관계를 바로 셋째 단락인 ‘작문’에서 나타나는 ‘그대’와 ‘나’의 관계를 통해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시인의 전유물이다시피한 자아 분열 현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 분열의 형식적 반영물이라 할 수 있는 알레고리 수법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다.
먼저 첫 단락에서 화자는 ‘커다란 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셋째 단락의 ‘사랑하던 그대’를 알레고리화한 것이며, 그 돌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은 ‘그대’가 험난한 세파(世波)에 놓여져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단락의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라는 구절은 연인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레 떠났음을 뜻하며,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는 ‘그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음을 알려 준다. 셋째 단락의 ‘작문’은 이 시를 해석하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에서 ‘커다란 돌’이 ‘그대’를,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에서 ‘어떤 돌’이 ‘그대’에게 생긴 새로운 애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화자가, 떠난 연인에 대해 갖는 그리움의 마음을 자신의 연적(戀敵)에게 행여 들켜 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을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은 것으로 표출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들통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화자는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다며 자신의 내면을 감추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시는 겉으로는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마지막 단락을 고려해 보면 자신의 내면 세계를 감추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자폐적 의식 세계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정(家庭)
- 이 상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가톨릭 청년』34호, 1936.2)
* 제웅 : 짚으로 만든 모조 인형.
* 식구 : 여기서는 아내의 호칭.
<감상의 길잡이>
이상의 시는 대부분 행과 연의 구분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문장의 전통적 기법이나 의식, 심지어는 인생에 대한 상식적인 질서까지도 거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적 배려로서 이상은 실제 생활에서도 그와 같은 다다(dada)적 경향을 많이 보여준 문단의 기인(奇人)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철저한 독백으로 자의식의 내면을 토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자의식적 관념을 드러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일상적 삶에 대한 사색을 통해 고립되고 폐쇄된, 생활 부재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다른 시들과 구별된다. 자신의 현실적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제목에서부터 생활적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가정>으로 되어 있어 시인이 겪던 생활의 아픔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화자는 자신의 삶이 도무지 사람 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문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게 됨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된다. 그런 화자에게 ‘밤’은 ‘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르’는 대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생활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갖는 강박 관념과 자책의 표현이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문패’를 볼 때마다 가장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참으로 무력해짐을 느끼는 화자는 그럴수록 ‘제웅처럼자꾸만감해가’는 부끄러움을 갖게 된다. 자신이 비록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한 가정의 당당한 일원으로 생활하고 싶은 욕구로 ‘봉한창호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 달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화자는 곧 이어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처럼월광이묻었다’라며 날카롭고 냉혹한 이미지인 ‘서리’와 ‘월광’을 통해 비정한 현실 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갈등을 토로하게 된다. 그리고 ‘병을앓는’ 것같이 가난에 시달리는 자신의 가정 형편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집을 저당 잡히는 착각에 빠지는 고뇌의 심경을 밝히지만, 고통에 굴복하기는커녕 생활이 없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안열리는문을열려고’ ‘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리’는 노력을 보여 주는 생활인으로서의 진지함이 나타난다. 이 작품의 내면에는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인의 삶을 동경하는 화자의 모습이 배어 있는데, 이것은 <꽃나무>, <거울> 등에서 줄기차게 보여 주던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분열 현상을 화자의 자의식 내부에서 경험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라 하겠다.
이 작품에서 보여 준 건전한 생활인으로의 의식 변화가 그로 하여금 1936년 6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이끌어 준 것으로 보이며, 아울러 그 해 10월 새로운 문학을 위한 재충전과 건강한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위해 도일(渡日)하게 한 기틀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창작 시기를 보면 ‘금홍’과 헤어진 이후이며, ‘변동림’과 결혼하기 이전이므로 작품 속의 아내는 ‘권순옥’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인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아내는 허구적 존재로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상은 2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온몸으로 살아간 시인이었다. 백부(伯父)의 양자(養子)로 입양되어 겪은 유년 시절의 독특한 체험과 가정의 파산으로 인해 미술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포기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기술자의 길을 선택한 소년 시절의 번민과 좌절, 구인회 가입과 폐결핵으로 점철된 실의와 절망의 청년 시절, 요양차 배천 온천에 갔다가 이루어진 기생 ‘금홍’과의 비정상적 부부 관계나 그녀와 헤어진 후 여급 출신 ‘권순옥’으로 이어진 이상스런 애정 행각, 그리고 자신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고 사랑해 준 이화 여전 출신의 ‘변동림’과의 짧았던 정상적인 결혼 생활 ― 이러한 27년의 생애를 살면서 그는 총 90여편의 시를 남겼다. 이 중 절반 가량은 일문(日文)으로 쓰여진 것으로, 그는 모국어 의식도 지니지 않은 채 단지 기호(sign)적 장치로서의 문학만 추구하였다. 그것이 시에서는 지금까지 본 것과 같은 전통적 시 형식의 파괴와 언어적 유희로 나타나고, 소설에서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사소설(私小說)의 창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날
- 이성복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1980)
<감상의 길잡이>
이성복은 평상인들을 뛰어넘는 특유의 상상력에 의한 자유 연상의 기법으로 등단부터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시인이다. 현실과 직결되며 현재의 불행을 구성하는 온갖 누추한 기억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연상은 초현실주의 시를 방불하게 하는 현란한 이미지를 빚어낸다. 이처럼 현실과 밀착된 기억에서부터 창출해내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바로 왜곡된 현실을 고발하는 시적 방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보편적이고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대시킬 수 있다. 삶의 범주 차원에서 그의 시가 암시하는 것은 모든 사물은 상관적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유일한 핵심은 없다는 점이다.
이 시는 연상의 원리를 특징으로 하는 이성복의 초기시 대표작이다. 시적 화자의 연상에 의해 그려지는 일상의 소묘는 무감각하게 마비된 병든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에서 가족이란 삶의 기본 단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초기시에서는 주로 피폐하고 타락한 현실의 초상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인 아버지의 움직임에서 출발한 연상 작용은 여동생과 어머니에 이어, ‘나’에까지 이른다.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 비해 무기력하게 소일하는 화자 자신의 자괴감을 엿볼 수 있다. 젊은 그가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행동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비추어 전방의 무사함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불안한 휴전 상태가 삶의 조건이 되어 있는 현실은 전방이 무사하기만 하면 세상은 완벽하다는 아이러니를 유발시킨다. 이러한 연상의 고리는 통치의 미비함을 무마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시 상황을 강조하던 당시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은밀한 비판을 이루기도 한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없는 것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뒤이어 나타나는 창녀들에 대한 연상을 통해 화자는, 이 현실이 없어야 할 것조차 있는 부조리의 세상임을 강조한다. 게다가 더욱 섬뜩하게 이어지는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의 연상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으로까지 연결되는 강한 현실 부정에서 비롯된다. 집일을 돕는 애들의 연상은 가장인 아버지의 피로한 일상으로 다시금 이어지고, 여동생의 데이트에 대한 상상에 이어 ‘멋진 여자’를 본 기억으로 가 닿는다. 자신의 잘 풀리지 않는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끝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과격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완벽한 세상’에서 태평스럽게 노닥거리는, 그러나 전혀 편하지 않은 ‘나’의 현실은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들이 모두 다 새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며,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 삶까지 솎아내는 것’과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 무너뜨리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는 등 곤고한 사람들의 삶에 가 닿는다. 그러다가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의 / 다정함’을 떠올리기도 하고 교통 사고로 인해 여러 사람이 죽는 사건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향락을 즐기기만 할 뿐,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한다며 씁쓸해 한다. 결국 화자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시행으로 시상을 마무리하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궁핍과 퇴폐의 현실적 삶 속에 살아가는 존재일 뿐 아니라, 이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한 곳인지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벼
-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시집 우리들의 양식, 1974)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마치 죄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겸손한 내면적 성찰로 속을 채운 벼는 분노를 억제할 줄도 알고,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안다. 벼들은 서로 어우러져 의지하고 살며,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떠나는 지혜도 갖고 있다. 겉으로 나약한 것 같으나, 속으로 옹골차게 익어가는 벼를 통해, 비록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지만,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갈 때 더 큰 힘과 사랑을 갖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 성격 : 예찬적, 상징적, 낭만적
▶ 어조 : 격정적 어조
▶ 구성 : ① 기 : 벼의 외면적 모습(제1연)
② 승 : 벼의 내면적 덕성(제2연)
③ 전 : 벼의 내면적 태도(제3연)
④ 결 : 벼에 대한 예찬(제4연)
▶ 제재 : 벼
▶ 주제 : 서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
<연구 문제>
1. 벼의 내면 세계를 감각적으로 드러낸 부분을 두 군데 찾아, ‘관형어+체언’의 형태로 쓰라. ☞ 불타는 마음, 더운 가슴
2. 벼의 삶의 자세를 ‘인내와 희생’이라고 볼 때, 그에 적절한 시행을 각각 찾아 보라.
☞ (1) 인내 :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2) 희생 :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3. 벼를 인간에 비유할 때, ‘달인(達人)의 경지’를 드러냈다고 할 만한 부분을 찾아 하나의 완결된 문장으로 쓰라.
☞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안다.
4. 자기 희생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아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쓰라.
☞ 이 피 묻은 그리움, / 이 넉넉한 힘….
<감상의 길잡이>
이성부는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고통 속에서 쟁취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이웃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도 비켜설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저항적인 현실 인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으면서도, 그의 시에 등장하는 슬픔, 울음, 어둠, 기다림, 노여움 등은 기쁨, 빛, 만남, 사랑 등으로 번역되는 여운을 남겨 준다.
제1연은 벼를 한 줄기씩 보면 나약하기만 하다. 금새 쓰러질 듯하고 금방 목이 부러질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꿋꿋이 살아간다. 익어 갈수록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자세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간다.
제2연은 홀로 설 때는 연약하지만 뭉치면 큰 힘을 내는 벼의 모습은 바로 민중의 모습이다.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아온 백성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는 강렬한 불은 간직하고 있다. 언제든 타오를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은 떠나가야 할 때 소리 없이 떠날 줄도 안다.
제3연은 벼는 어질고 현명한 존재다. 맑은 하늘을 보면서 서러움을 달랠 줄도 알고 불어오는 바람에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안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줄 아는 현명함과 분노를 참을 줄 아는 자제력도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식한다. 그의 가슴에는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고 있음을.
제4연은 벼는 피흘리고 베어지지만 자기 희생을 통해 넓은 사랑을 베풀게 된 것에 민족하고 말없이 쓰러진다. 베어져 쓰러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벼는 안다. 쓰러짐은 새로운 일어섬의 준비이며, 이러한 연속성 속에서 인간의 삶이 유지되는 것을 그는 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려 살 때, 더 큰 사랑의 힘이 생기는 법이다.
<맥락읽기>
1. 시 속에서 말하는 이는? ☞ 나와 있지 않다. ‘나’라고 하자.
2. 시적 대상은? ☞ 벼
3. ‘벼’의 외면적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부분을 모두 찾아보자.
☞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 벼가 춤출 때
4. ‘벼’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부분을 찾아보자.
☞ 튼튼해진 백성들
☞ 불타는 마음들
☞ 피 묻은 그리움
☞ 넉넉한 힘
5. 나는 ‘벼’를 단순한 사물로 보고 있는가?
☞ 아닌 것 같다. 다른 것으로 환치시켜 보고 있다.
5-1. 그렇다면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시 속에서 나오는 말로 찾아 보자. ☞ 백성들
6. ‘벼’와 ‘백성들’이 일치되는 부분을 찾아 보자.
☞ 깊이 익어서 스스로를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더 튼튼해진 백성들
☞ 죄도 없이 죄 지어서 불타는/ 마음들
☞ 서러운 눈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 저의 가슴이 더운 줄을 안다.
7. 이런 ‘백성들’은 어떤 ‘백성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 가난하고 힘 없는 서민들이지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 홀로 설 때는 연약하지만 뭉치면 큰 힘을 내는 민중들
8. 그렇다면 나는 ‘벼’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지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때 더 큰 힘과 사랑의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화論
민족의 봄을 갈망한 이상화
시인 이상화(1901-1943)는 1920년대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 상황 속에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백조’ 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여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등과 교유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통분을 격렬한 정조로 노래한다. 이상화의 저항적인 의식은 기미 독립 만세 운동에서부터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학생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고, 독립 운동의 주동자로서 활동한 바 있다. 그러나 만세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고, 그 정신적인 좌절을 딛고 일어서면서 문학의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상화의 시에는 두 가지의 시적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퇴폐적인 정서와 병적인 관능이다.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시인의 정신적인 대응 방식의 하나다. 물론 그가 관심을 보였던 프랑스 상징파의 시적인 영향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침실로」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열정은 ‘마돈나’라는 시적 대상을 놓고,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시인의 애절한 심사가 잘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환상과 관능으로 휩싸여 있다. 그러나 그 관능적인 요소들이 모두 대상에 대한 신비화를 돕고 있기 때문에, 시적 열정 자체를 더욱 고양시키고 있다 할 것이다.
이상화 시의 또 다른 경향은 저항적인 의식이다. 이것은 앞의 열정이나 퇴폐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의 시적 경향 자체가 모두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관능에 머물러 있거나 퇴영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시적 의지를 구현한다.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하여 「선구자의 노래」, 「역천」 등에서 이러한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퇴폐적인 정서, 병적인 관능, 저항 의식 담은 시로 식민지 시대 대응
이상화는 1920년대 중반 한때 계급 문학 운동에 가담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모순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고,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진 1930년대 중반에는 중국 일대를 방랑하면서 식민지 백성의 한을 토로하였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고향인 대구에서 청년 학도들을 가르치면서 민족혼을 심어 주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조국 광복에 대한 그의 간절한 꿈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는 병으로 1943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20년대 시인 김소월의 비극적 현실 인식과 한용운의 역사에 대한 신념 사이에서 이상화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상화의 현실 감각은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보다 더 비장하고 절망적이다.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경우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정 자아가 이상화의 시에서는 파멸하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무자비한 고통의 현실을 이상화는 어둠의 동굴, 죽음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시적 주체로서의 서정적 자아는 어둠의 현실을 등지고 동굴과 밀실 속으로 도피하고 격앙된 어조로 삶의 구원을 희구한다.
이상화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어둠의 현실을 뚫고 현실의 한복판에 나서는 경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서정 자아는 강인한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시대 상황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면서 자신을 세우고자 한다. 비록 나라를 빼앗겨 압제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민족혼을 새롭게 불러일으켜 세울 수 있는 봄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으며, 그 비장미가 곧 저항적인 정신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全文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에서 당대의 상황은 압제의 현실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속에도 봄은 찾아온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질서이다. 이 섭리를 놓고 시인은 빼앗긴 땅에 찾아올 광복의 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봄에 신명 잡힌 것처럼 다시 일어선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 주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3·1운동 이후 민족사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아를 바로 세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언제나 오늘 보이는 사람마다 숨결이 막힌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움도 없이
참외꽃 같은 얼굴에 선웃음이 집을 짓더라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 맛도 없이
고사리 같은 주먹에 진땀물이 굽이치더라
저 하늘에다 등창이나 뚫어랴 숨결이 막힌다. ― 「조선병」
이상화의 현실 인식의 구체성을 앞의 시만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예는 드물다. 닫혀 있는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을 풀기 위해 시인은 ‘저 하늘에다 등창이나 뚫어랴’라고 외쳐댄다. 현실의 암울성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 극복 위해 계급 문학 운동 가담, 중국 방랑하며 식민지의 恨 토로
이상화는 다음의 「시인에게」라는 작품을 통하여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낳을 수 있기를’ 이렇게 다짐하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위해 그는 스스로의 희생도 각오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 바로 그것은 시인의 영광만이 아니라, 시인이 사는 조국의 영광에 해당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때라야
시인아 너의 존재가
비로소 우주에 없지 못할 너로 알려질 것이다.
가뭄든 논에는 청개구리의 울음이 있어야 하듯.
시인아 너의 영광은
미친 개 꼬리도 밟는 어린애의 짬없는 그 마음이 되어
밤이라도 낮이라도
새 세계를 낳으려 손댄 자국이 시가 될 때에 있다.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 ― 「시인에게」의 일부
* 글쓴이 : 권영민 / 1948년생, 서울대 국문과 교수
李相和의 삶과 문학
이상화는 별호를 4개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인생 역정과 관계를 가진다. 문단에 나오기 전인 20세 이전에는 ‘무량(無量)’이라는 불교 용어로 호를 지었다. 요새 말로 하면 ‘한량없는’이라는 뜻인데 사실상 그 시절 그는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고 마음먹어 못한 일없고 남에 뒤질 것 하나 없는 ‘무량 대복’을 지닌 청년이었다.
‘상화(尙火)’는 문단에 나온 후 ‘항상 불같이’ 작품을 써낼 때 자주 사용하던 호다. 22년에서 26년, 그 기간이 ‘상화(尙火)’가 열심히 문학 활동을 했던 때고 그 후로는 도망 다니고 체포되고 감옥살이하고 중국을 방랑하면서 고초를 겪느라고 제대로 작품 활동을 못했다.
‘상화(想華)’라는 호도 사용했는데 그것은 그가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중국에 가서 지은 호라고 볼 수 있다. 지명수배자의 운명이라 활동은 활동대로 못하고 쫓기는 자의 불안 공포에 찌들린 마음을 ‘만주 독립운동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으려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본명과 발음이 같은 별호를 사용하다가 36년 무렵부터는 ‘백아(白啞)’라는 호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백치와 벙어리’처럼 살지 않으면 안될 시절이었다. 가산은 완전히 날아갔고 심리 상태도 백치처럼 되고 싶었고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모두로부터 도피하고 싶던 시절의 호이다.
이 호들 중에서 지금의 문단 후배들은 ‘상화(尙火)’를 통용 호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활발히 詩作할 때의 호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비(詩碑)에도 ‘상화시비(尙火詩碑)’라 새겼다. 그러나 그가 사망했던 43년, 해방 2년 전해에 세운 묘비에는 ‘백아(白啞)’란 호를 새겼다. ‘詩人白啞李公諱相和之墓’라고 한문으로 새겨 일제의 억압을 피했다. 해방후 48년에야 ‘상화(尙火)’라 새긴 시비로 고쳐졌다. 10세된 막내아들이 「나의 침실로」 한 구절을 써넣고 수필가 김소운(金素雲)의 글을 대구 서예계의 대가 서동균(徐東均)의 글씨로 새겨 제대로 된 시비를 세웠다.
상화(尙火) 4형제 중 오직 그 자신만 불운한 인생을 살았을 뿐 다른 형제들은 ‘신화적 존재’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쟁쟁했다. 독립운동을 해도 상화(尙火)는 국내에서 하는 바람에 그 유일한 유산인 시 원고가 압수 당하고 누가 출판하겠다고 가져가서는 분실되고, 자신은 도망 다니고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마음은 울분에 차고 몸은 고달프게 살다 죽었지만 그의 형 상정(相定)은 일찍 만주로 망명해서 중국군 사령부에서 장군도 되고 해방 후에는 시, 서화 특히 전각(篆刻) 등으로 유유자적 예술 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상화(尙火)의 동생 상백(相伯)은 서울대 교수에, 문학 박사에, 대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등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고 막내동생 상오(相旿)는 문무겸전한 기질을 타고나서 어릴 때는 형 상화(尙火)와 함께 「백조」 동인의 일원으로 동인지 「거화(炬火)」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커서는 사격에 재능을 발휘해 이렇다 하는 수렵인이 되기도 했다. 상화(尙火) 혼자만 죽어라 죽어라 해서 가산이나 탕진하고 어머니 속이나 태우며 살다가 병을 얻어 아까운 나이에 참담한 일생을 마감했다.
형제들에 비해 고약한 사주팔자를 타고난 상화(尙火)지만 가장 뚜렷한 이름을 세상에 남긴 형제는 바로 그여서 ‘詩人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명언이 그로 인해 생기게 되었다.
상화(尙火)는 기질적으로 순수 서정 시인이지만 시대 상황이 그로 하여금 음풍농월이나 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22년부터 26년까지 4년간 그는 상당한 시편들을 모아 두었고 박종화(朴鐘和)와 상당량의 문학 대담 형식의 편지도 교환했는데 그 원고들이 모두 실종 상태다. 상화(尙火)를 지극히 숭앙했던 임화(林和)가 그의 시집을 출판하겠다며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고 임화(林和)가 북한에서 제법 끗발을 잡는 듯 하다가 남로당 숙청때 같이 숙청됨으로써 그 원고들의 행방도 묘연하다. 박종화가 가지고 있던 상화(尙火)의 문학론 편지들과 시고(詩稿) 몇 편이 있어 이것을 출판하겠다고 상화(尙火)의 제자 이문지가 가져갔는데 곧 6·25가 터져 피난통에 이 원고들이 또 사라져 버렸다. 하여간 상화(尙火)는 이처럼 지지리도 복 없는 일생을 살다 갔다.
그러나 문학 복은 없어도 여자 복은 넘치게 있는 상화(尙火)여서 그것이 오히려 ‘고뇌의 재료’라고 김팔봉(金八峰)이 글에 썼다. 장안 3대 미남에 상화(尙火)가 꼽힐 정도였고 매너 좋은 신사로 정평이 나 있는 데다 문학적 재능과 지성까지 갖추었으니 미인들이 주위에 운집할 것은 자명한 이치겠는데 ‘한번도 스캔들을 만들지 않은 도덕 군자’라고 김팔봉(金八峰)이 평가 한 것은 다소 소다수가 섞인 발언일 듯하다.
그의 연시(戀詩) 「이별을 하느니」 중에서 몇 구절을 뽑아 봐도 그가 얼마나 지독한 연애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 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 겠느냐.
우리 둘이 나뉘어 생각하며 사느니보다 차라리 바라보며 별이 되자…
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우리 몰래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
우리 둘이 나뉘어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피울음 우는 두견이 되자.
어쩌면 너와 나 떠나야 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뉘어야 겠느냐?
우리 둘이 나뉘어 미치고 마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두 마리 인어로나 되어서 살까.
상화(尙火)에게 여복이 많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부인인 서순애(徐順愛)씨에게는 죽을 맛이었다. 백부가 어거지로 붙인 혼인이라 처음부터 마음에 없었는데 공부하러 간다고 핑게대고 상화(尙火)는 서울로 튀었다. 그후 7년간 소생이 없다가 집이 북새판 터지고 쫓겨다니느라 정신없을 2?년에 겨우 장남을 낳았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그 자식이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 아들이나마 살지를 못하고 죽어 버리니 徐여사는 결국 카톨릭에 마음을 의지해서 기구한 인생, 모진 목숨을 지탱했다.
상화(尙火)는 술과 여자에 의지해서 모진 목숨 부지하다가 35년 무렵 ‘백치와 벙어리(白啞)’로 호를 고치고부터 마음을 잡아 학교 무보수 교사 노릇도 하고 신문 총국도 하고 아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때부터 ‘내 마누라야’ 하며 끔찍이 위해 주었다. 또 늦게나마 철이 들어서 국문학사를 집필했다. 춘향전을 영역한다 하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43년에 사망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개벽 70호, 1926.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이상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 시를 실은 <개벽>은 곧 폐간(1926)되고 말았다. 1920년대의 암울한 시대에 귀중한 저항시로 남아 있다.
제1,2연과 제9,10연이 서로 대응하는 관계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성격 : 낭만적, 상징적, 저항적
▶ 구성 : ① 조국 상실의 현실(제1연)
② 광복이 된 조국 천지를 상상함(제2연)
③ 조국과의 일체감을 회복하고 싶은 심정(제3연)
④ 국토와의 친화감(제4연)
⑤ 풍요와 성장에의 감사(제5연)
⑥ 봄을 맞이하는 유별난 기쁨(제6연)
⑦ 동포와 일체감을 느끼고 싶음(제7연)
⑧ 국토에 대한 한없는 애착(제8연)
⑨ 현실을 재인식, 자신을 자조함(제9연)
⑩ 조국 상실의 현실 인식(제10연)
▶ 제재 : 국권 상실의 현실과 봄의 들판
▶ 주제 : 국권 상실의 울분과 회복에의 염원
<연구 문제>
1. 이 시가 나의 침실로 등 이상화의 1920년대 초기의 시적 경향과 구별되는 바를 쓰라.
☞ 관능적, 감상적, 낭만적 경향을 극복하고 국권 상실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한 저항시로 쓴 점이 다르다.
2. 현실 인식에 기초한, 저항적인 의식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시행을 찾아 쓰라.
☞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3. ㉠이 상징하는 의미를 쓰라.
☞ 조국 해방의 아득한 지평
4.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한 지식인이 겪는 아픔을 가장 잘 표현한 두 어절의 말을 찾아 쓰라. ☞ ‘다리를 절며’
<감상의 길잡이>
이상화 시인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우울한 낭만주의자로서 출발한다. 3·1운동의 좌절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20년대 중반부터 우리 문단은 냉정한 현실 인식을 회복하게 된다. 이 시도 그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것은 ‘빼앗긴 들’에 과연 참다운 삶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제1연에서 이 질문을 던지고 마지막 제10연에서 이에 대해 대답한다. 나머지 연들은 이러한 대답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대칭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시의 제2연과 제9연을 비교해 보면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은 열려 있는 조국 해방의 지평을 의미한다. 그 지평을 향해 ‘한 자국도 섰지 마라’,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는 강박에 사로잡혀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꿈속을 가듯’ 화자는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은 그에게 ‘푸른 웃음’이기도 하지만, ‘푸른 설움’이기도 한 것이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그는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한 지식인이 느끼는 아픔이 ‘다리를 절며’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러한 아픔 속에서 발견한 것이 허황한 관념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의 실체라는 점이다.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로 표현된 빈농(貧農)의 아내와 누이에 대한 뜨거운 눈물을 우리는 이 시에서 본다. 창백한 지식인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는 싱싱한 표현을 가능케 했으리라.
나의 침실로
--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 내 말
- 이상화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挑)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덴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촉(燭)불을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 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에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백조 3호, 1923.9)
* 목거지 : 여러 사람이 놀이나 잔치 등에 모이는 일. ‘모꼬지’의 방언.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3·1운동 직후 지식인들의 절망은 낭만주의적 시인들에게 슬픔, 그리움, 죽음의 동경 및 예찬을 주제로 안겨 주었다. 나의 침실로는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죽음의 예찬은 병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추악한 현실에 대한 부정 의식이며 진실로 순수의 미학에 충실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의 역설적인 표현인 셈이다.
▶ 성격 : 낭만적, 감상적, 격정적, 현실도피적, 퇴폐적
▶ 특징 : 불행한 현실을 떠나 미지(未知)의 아름다운 세계를 동경하는 시인의 세계관을 표현
▶ 구성 : ① 마돈나와 만나기를 바람(제1-2연)
② 먼동이 트기 전에 만나기를 바람(제3연)
③ 침실로 가기를 바람(제4연)
<제5연~제9연 생략>
④ 새로운 행동에 대한 결의(제10연)
⑤ 초시간적 공간인 침실로 가기를 바람(제11연)
⑥ 마돈나와 만나기를 바람(제12연)
▶ 제재 : 마돈나, 침실
▶ 주제 : 아름답고 영원한 안식처의 희구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의 상징 의미를 한 문장으로 말해 보라.
☞ 마돈나는 화자를 구원하는 젊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억압받는 조국을 구원해 주는 존재를 복합적으로 상징한다.
2. 이 시 가운데서 화자가 절박하게 느끼는 구체적 상황이 나타난 구절들을 찾아서 차례로 쓰라.
☞ ‘먼동이 트기 전으로’, ‘어느덧 첫닭이 울고’,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3. 이 시에서 (1)㉡을 달리 표현한 두 어절의 말을 찾아 쓰고, (2)그 상징 의미도 쓰라.
☞ (1) 부활의 동굴
(2) 사랑의 완성을 위한 죽음과 부활의 장소.(영원 속에 그리는 동경의 세계, 자신이 이상화(理想化)하고 있는 상태)
4. 이 시에 나타난 ‘죽음의 예찬’을 시적 정조(情調)와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60자 정도로 설명하라.
☞ 추악하고 괴로운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식의 산물이며,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의 역설적 표현이다.
<감상의 길잡이>
지금은 밤도 모든 향연의 막바지에 다다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 순간, 즉 먼동이 트기 직전이다. 깊어 가는 밤이 아니고 막 새려는 밤이기 때문에 마돈나를 부르는 나의 마음은 한층 다급하다. 새벽이 오기 전에 나는 내 몫의 일을 해야 한다. ‘마돈나’와 ‘나’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과 같은 존재이며, 밤이 감에 따라 ‘침실’의 의미는 무화(無化)되어 버릴 것이다. 별이 그렇듯이, 나는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존재이기에, 밤이 가기 전에 무언가를 결행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는 초조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시 나의 침실은 ‘사랑=죽음’이라는 등식에 기초해 있다. 김흥규 교수는 침실의 이중적 의미에 주목한다. 전반부(제1~6연)에서는 침실이 관능적인 쾌락의 장소이지만, 후반부(제7~12연)로 가면서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 간다.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침실’이란 바로 죽음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의 종말로서의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동굴’이다. 죽음으로써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린다. 달리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적 절망 속에서 세계를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유일한 길은 죽음으로써 항의하는 것뿐이라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라는 말은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죽음을 통해 사랑을 실현하려는 능동적이고 저항적인 몸짓을 나타내 준다. 사랑과 죽음을 둘러싼 그의 낭만적 열정은 흔히 관능과 애정에의 도피 행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퇴폐적인 죽음으로의 도피나 단순한 죽음의 예찬으로만 읽을 것은 아니다. 도덕적 결단이 문제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냉정함보다는 오히려 낭만적 열정이 중요한 몫을 차지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의 침실로가 시인이 18세 때인 1919년을 전후해서 쓰여진 것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맥락 읽기>
1. 시적 자아는 누구인가? ☞ 나
2.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 마돈나
3. ‘마돈나’는 언제까지 나에게 와주어야만 하는지 詩 속에서 찾아보자. ☞ 1연2행, 3연2행, 4연2행, 6연1행, 7연1행, 12연1,2행
4. ‘나’는 ‘마돈나’를 만나 무엇을 할려고 하는가?
☞ 침실로 가려고 한다.
5. 자, 그럼 이것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 “나는 마돈나를 기다려서 먼동이 트기 전에 침실로 가려고 한다.”
6. 자, 윗 문장의 ‘나’, ‘마돈나’, ‘먼동이 트기 전’, ‘침실’의 의미만 알면 이 시 를 이해할 수 있지요.
7. ‘나’는 어떤 인물인지 시 속에서 찾아보자.
☞ ‘마돈나’를 애절히 기다리고 있는 남자.
8. 그런데 왜 ‘마돈나’는 ‘먼 동이 트기 전’에 나에게 와야만 할까? 그 이유를 시 속에서 찾아보자.
☞ 2연 2행 :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9. 왜 하필 ‘마돈나’는 ‘먼 동이 트기 전’에 나에게 와야만 하는지 그걸 한 번 구체적으로 설명해볼까?
☞ 그것은 다음 에피그램(경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지요.
→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 그러니,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인 밝은 대낮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꿈꿀 수 있는,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밤(먼동이 트기 전)을 택했겠지
10. 그런데 지금 詩 속은 어떤 상황이지?
☞ 먼 동이 틀려고 하고있다.
11. 그러면 지금 서정적 자아의 심정은 어떠할까? ☞ 절박하다.
12. 서정적 자아가 절박한 심정이기 때문에 이 詩의 운율은 어떠하지? ☞ 전체적으로 호흡이 급박하고 템포가 빠르다.
13. ‘나’는 ‘마돈나’를 만나서 침실로 갈려고 하지요. 자, 그럼 침실은 어디에 있지? 이 시 속에서 한 번 찾아보자.
☞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14. 자, 그럼 침실에 어떻게 갈려고 하는지 시 속에서 찾아보자.
☞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끄을려 가지 말고!
15. 자, 침실이 있는 곳과 침실로 가는 태도를 알겠지.
그러면, 이 시 속에서 침실과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들을 찾아보자. ☞ 오랜 나라, 부활의 동굴,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16. 침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 도피처, 죽음의 세계, 아름답고 영원한 안식처
17. 자, 다 되었지. 그럼 마지막으로 ‘마돈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시 속에서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들을 찾아보자.
☞ 나의 아씨, 마리아
18. ‘마돈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 성모 마리아, 사랑하는 젊은 여성, 잃어버린 조국, :구원의 여성상
19. 시인이 왜 이렇게 퇴폐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를 썼을까?
☞ 3.1운동의 실패와 일본을 통하여 유입된 서양의 세기말적 풍조의 영향으로.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
― 간도 이민을 보고
- 이상화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間島)와 요동(遼東)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겨가도다
진흙을 밥으로,해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드면, 단잠은 얽맬 것을 ―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 가거라!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자폭(自暴) 속에 있는 서울과 시골로
멍든 목숨 행여 갈까, 취해 사노라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피울음을 울으면, 설움은 풀릴 것을 ―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버려라!
(개벽 55호, 1925.1)
*해채 : 시궁창에 고인 더러운 뻘물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또는 맵고 쓴 나물.
*마구 : 마구간.
*검 : 신(神) 또는 조물주.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간도 이민을 보고’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일제의 온갖 수탈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간도와 요동벌로 떠나가는 유이민(流移民)들의 고통을 통해 당대의 암울했던 현실 상황을 극명히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 2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1연에서는 ‘쫓김’의 이미지가 주가 되어 간도 유이민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포자기에서 오는 갈등과 간도 이민의 수난상을 직시하면서 이 땅에 남아 처절한 삶을 부지해야 하는 아픔을 묘파하고 있다. 그에 따라 1연에서 어느 간도 유이민으로 설정되었던 시적 화자는 2연에서 이 땅에 남아 치욕스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민족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가도다’라는 감탄형과 동일 시어의 반복을 통해 점층적으로 비극적 정감을 상승시켜 격정적 분위기를 이루는 첫 행에 이어 ‘주린 목숨 움켜 쥐고, 쫓겨가는’ 유이민의 처절함과 ‘진흙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 마구나, 가졌드면, 단잠은 얽맬’ 수 있을 것이라는 궁핍상과 절박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일제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분노를 배가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신(神)께 소망하는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가거라!’라는 자학적인 절규는, 죽음이 도리어 행복했던 당대의 처절한 민족 실상을 드러내 주는 동시에,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라는 2연의 첫 행 속에는 ‘과연 이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가’라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깊은 회의와 탄식이 내포되어 있다. 뒤이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 상황에 대한 저항 의지는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 피울음’을 토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어둔 밤’과 같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말없는 돌’처럼 침묵과 인내로서의 저항 의지, 그리고 ‘피울음’이라는 적개심이 동시에 분출되어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버려라!’라는 저항 의지의 정점으로 연계된다. 그러므로 1연의 ‘주린’이 배고픔의 육체적 고통을 의미한다면, 2연의 ‘취한’은 모순된 현실 상황을 그대로 살 수 없다는 정신적 고뇌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1․2연이 모두 7행이고, 각 행의 종지형(終止形)이 동일한 형태로 된 구성의 견고함은 주제의 치열성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이 작품을 보다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게 하고 있다.
통곡(痛哭)
- 이상화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닯아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개벽 68호, 1926.4)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식민지 백성들의 비탄과 적개심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일제에 의한 조국 강토의 강점으로 두 발을 뻗을 수도 없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생존권마저 상실당한 당시 현실에 대한 강한 울분과 저항 의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참담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하소연하고자 하나, ‘하늘’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함께 나눌 수도 없는 초월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식민지 현실을 절대적 한계 상황으로 인식한 결과이자, 지상의 모든 불행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고 해결하려는 지상주의적 항거 자세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흘기니 / 울음이 터지‘는 것과 같은 분노와 저주에 떨다가 ‘해야 웃지 마라 / 달도 뜨지 마라’라는 부정적 저항 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상실된 주권과 박탈된 자유의 조국 현실이란 해와 달이 없는 것과 동일한 암흑의 상태이기 때문에 식민지 치하의 치욕스런 삶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민족의 생존권이 복원된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뜨거운 삶의 의지로 분출되고 있다.
병적 계절(病的季節)
- 이상화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림이 보기에 이리도 설은가.
귀뚜리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긴 밤을 새네.
가을은 애달픈 목숨이 나누어질까 울 시절인가 보다.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이 그만 하나 둘 잦아지려는가.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떼가 한 배 가득 구비치네.
가을은 구슬픈 마음이 앓다 못해 날뛸 시절인가 보다.
하늘을 보아라 야윈 구름이 떠돌아다니네.
땅 위를 보아라 젊은 조선이 떠돌아다니네.
(조선지광 61호, 1926.11)
<감상의 길잡이>
상화의 시 상당수에는 그가 처했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현실 인식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세상의 허위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로, 당대의 참담한 모습이 주로 ‘밤’과 ‘울음’으로 나타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강렬한 사랑과 함께 그에 대한 회복의 갈망이 민족의 활화산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밤’의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지닌 의미는 대체로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슬픔과 고통의 이미지이며, 밤은 곧 ‘울음’과 ‘눈물’ 등의 구체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 인식은 마침내 식민지 치하의 참담한 상황하에서 보다 비극적으로 심화됨으로써 그의 시는 비관적 인식의 단계를 넘어서서 일체를 부정하는 태도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을 부정적 현실 인식으로 부를 수 있다면, 이는 당대의 모순과 불합리에 대한 전면적 거부 태도라 할 것이다.
이 시는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찬 식민지 치하의 파행적인 현실을 ‘병’의 이미지로 구체화하여 부정적인 현실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으로, <몽유병(夢遊病)>, <조선혼(朝鮮魂)>과 같은 작품처럼 ‘잃어버림’과 ‘멀어짐’의 이미지를 통해서 ‘젊은 조선’의 비극적인 상황을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리’는 가을날, 시인은 우리의 ‘젊은 조선’이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있거나 안정된 가운데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뜬눈으로 ‘긴 밤을 지새는 귀뚜리’ 같은 처지가 되어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을 모두 상실해 버리고 그저 ‘땅 위’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구슬픈 마음’은 ‘앓다 못해 날뛸 시절’로 제시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현실 상황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민족이 처한 고통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파악한 시인은 울분과 적개심을 동시에 표출하게 된다. 특히, ‘기러기’․‘귀뚜리’․‘떨어진 나뭇잎’․‘홀아비’․‘헤매는 바람떼’․‘야윈 구름’․‘떠돌아다니네’와 같은 하강적 이미지 시어 내지 소멸적인 이미지들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당대 민중들의 모습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절망의 극점에서 표출되는 현실에 대한 부정 정신의 표상인 ‘병’을 통해 시인의 현실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현실 인식은 시인으로 하여금 모순의 현실과 적극적으로 대결 양상을 취하게 함으로써 당대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저항적 태도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위독(危篤) 제1호
- 이승훈
램프가 꺼진다. 소멸의 그 깊은 난간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장송(葬送)*의 바다에는 흔들리는 달빛, 흔들리는 달빛의 망또가 펄럭이고, 나의 얼굴은 무수한 어둠의 칼에 찔리우며 사라지는 불빛 따라 달린다. 오 집념의 머리칼을 뜯고 보라. 저 침착했던 의의(意義)가 가늘게 전율하면서 신뢰(信賴)의 차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시방 당신이 펴는 식탁(食卓) 위의 흰 보자기엔 아마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
(현대시 13집, 1967)
* 장송(葬送) :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어 보냄.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자의식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서술적 심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우리가 대했던 많은 시들은 객관적 대상을 지닌 것들이었다.
시인은 이 시를 비대상(非對象)의 시라고 규정한다. 비대상은 무(無)의 세계이고, 무(無)의 세계는 실존적 각성이 환기하는 의식의 운동이라 주장한다. 결국, 이 시는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심상을 언어로 엮어낸 내면 탐구의 시이다.
▶ 성격 : 초현실적
▶ 어조 : 자의식적 어조
▶ 특징 : 심상으로 꿈틀거리는 내면 의식을 언어로 조직함.
▶ 시상 전개 : 자의식의 어두움, 절망, 고독을 여러 단편적 사물들로 나타내고 있다.(서술적 심상)
▶ 구성 : 단련시(전체적으로 연작시)
▶ 제재 : 무의식적 내면 세계의 심상
▶ 주제 : 자의식의 어두운 내면 세계
<연구 문제>
1. 이 시에 ‘위독’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21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 이 시는 무의식의 내면 세계를 심상으로 나타낸 것이지만, 그 내면 세계가 참담, 처절, 고독 등의 정서적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참담, 처절, 고독 등의 정신 상황은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 상황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위독’이라는 말은 시의 분위기를 제목으로 붙인 것이며, 동시에 현실에 대한 진단의 뜻도 있다.
2. 이 시는 시인의 어떤 의도에서 쓰여진 것인지 5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무의식의 심상들을 언어로 조직하여 새로운 세계의 존재화를 시도하기 위해서이다.
3. 이 시에서 사용한 문학상의 기법을 두 어절로 쓰라.
☞ 자동 기술법
4. 이 시에서 가장 처절한 내면 상황을 나타낸 시구를 찾아 쓰라.
☞ ‘파헤쳐진 새’
<감상의 길잡이>
김춘수가 ‘무의미의 시’를 내세우는 데 대해, 이승훈은 ‘비대상(非對象)의 시’를 제시한다.
이 시는 제1호에서 제9호까지 연작시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로서의 구체적 대상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의미의 맥락 없이 ‘위독’이라는 말의 심상을 모티프로 삼아 쓰여진 산문시인 것이다.
이 시는 무의식적 내면 공간에 떠오르는 시어(램프’․‘난간’․‘장송의 바다’․‘망또’․‘어둠의 칼’․‘불빛’․‘집념의 머리칼’․‘차건 손’․‘흰 보자기’․‘새’)를 통해 현대인의 절망이나 고독의 감정을 드러내 주고 있다.
자동 기술법에 의한 이런 표현들은 비유적 기법이 아니라, 서술적 기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즉, 참담하고 처절한 감정적 분위기를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단어(언어의 상호 충돌이라 함.)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의 첫 구절을 보면 ‘램프가 꺼진다’라는 상황 설정을 하고 있다. 램프가 꺼진다는 것은 밝음에서 어둠으로의 변화이다. 즉, 내면 세계의 어두움의 시작인 것이다. 그 어두움의 깊이는 ‘소멸의 그 깊은 난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장송의 바다에는~불빛 따라 달린다.’의 부분은 음산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통해 처절함과 한없는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비대상(非對象)의 시, 자동 기술법에 의한 시로서 이 작품은 현실의 병적(病的) 징후를 ‘위독’한 것으로 규정한다. 많은 시어는 특별한 의미 맥락보다 시 전체 분위기에 기여할 뿐이다.
큰 노래
- 이성선
큰 산이 큰 영혼을 가른다.
우주 속에
대붕(大鵬)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설악산 나무
너는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산정(山頂)을 바라보며
몸이 바위처럼 부드럽게 열리어
동서로 드리운 구름 가지가
바람을 실었다. 굽이굽이 긴 능선
울음을 실었다.
해지는 산 깊은 시간을 어깨에 싣고
춤 없는 춤을 추느니
말없이 말을 하느니
아, 설악산 나무
나는 너를 본 일이 없다.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너의 번뇌를 들은 바 없다.
밤에 길을 떠나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파문도 없는 밤의 허공에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너를 보았다.
다 타고 스러진 잿빛 하늘을 딛고
거인처럼 서서 우는 너를 보았다.
너는 내 안에 있다.
(시집 절정의 노래, 1991)
<감상의 길잡이>
이성선은 1970년 등단 이래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혼탁한 시속(時俗)에 때묻지 않은 순수 서정의 자연 세계를 노래하는 매우 특이한 시인이다. 그가 즐겨 찾는 시적 대상은 산, 바다, 별, 나무와 같은 자연물이다. 그는 이 자연물에 대한 관조를 통해 얻은 자족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간결하고 명징한 언어로 포착하여 소위 정신주의 시 세계를 형상화한다.
이 시는 번뇌와 고통 뒤에 새롭게 탄생하는 절정의 세계를 노래하는 한편, 그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흥미롭게 제시한다. 연 구분이 없는 전 25행의 단연시인 이 시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인 1~13행에서 화자로 대치된 시인은 설악산 어느 한 줄기에서 ‘산정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큰 나무’를 바라본다. 그 나무는 ‘우주 속에 / 대붕의 날개를 펴고 / 날아가’며,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시인은 밤마다 그 나무에서 ‘춤 없는 춤’을 보고 ‘말 없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렇다면, 나무가 그에게 전해 주는 무언의 몸짓이란 무엇인가? 모두(冒頭)에서 제시한 ‘큰 산이 큰 영혼을 기른다’라는 지극한 평범한 진실을 통하여 시인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설악산이 기르는 ‘큰 나무’는 무엇을 뜻하는가?
둘째 단락인 14~19행에서 시인은 설악산 나무를 본 일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하고 나서, 나무가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것을 듣기도, ‘거인처럼 서서 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되는 역설을 통해 셋째 단락에서 마침내 나무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단락에서 시인은 ‘없다’라는 종결 어미를 세 번에 걸쳐 반복함으로써 ‘있다’라는 역설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너를 본 일이 없다’, ‘너의 번뇌를 들은 바 없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설악산 ‘큰 나무’는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깊고 깊은 번뇌와 절망을 거쳐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있음을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우주 어느 분’이란 바로 깨달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 깨달음 뒤에 비로소 절정의 노래가 가능해지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큰 나무’가 부르는 ‘절정의 노래’는 비로소 시인의 것이 된다.
셋째 단락인 20~25행에서 ‘다 타고 스러진 잿빛 하늘’의 희생을 딛고서 절정의 환희를 노래하는 나무가 시인의 내부 속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결국 그 나무는 시인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천상과 지상의 두 수평선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인처럼 서서 우는’ 나무가 시인 자신이라는 것은 시인의 정신이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고통스런 통과의례를 거쳐 마침내 우주와 합일되어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서는 자신의 모습을 ‘너는 내 안에 있다’라는 구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물론, 우주와의 이러한 물아일체의 경지는 때묻지 않은 자연 세계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구도자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시집 봄비, 196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봄은 만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약동의 계절이다. 이러한 봄을 맞이하여 시인은 싱싱하게 물오른 자연의 활기찬 모습을 전통적 율조에 맞추어 예찬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제재를 한국적 정서(情緖)로 시화(詩化)한 이 작품은 김소월과 김영랑이 재창조해 놓은 전통적 ‘한(恨)’의 세계와 접맥되어 있다.
▶ 성격 : 낭만적, 관조적, 심미적, 상징적
▶ 심상 : 시각적 심상이 주조
▶ 운율 : 3음보의 율격, 두운과 각운
▶ 표현 : 봄비로 촉발되는 내면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함.
▶ 어조 : 봄비가 그치면 만물이 약동할 것을 기대하는 희망적인 어조
▶ 시상 전개 : ‘내 마음 강나루’에서 시작하여 ‘보리밭길, 꽃밭, 들판’ 등으로 시야가 확대되면서 애상적 정서가 승화됨.
▶ 구성 : 점층적 구성
① 기 : 풀빛이 짙어 올 강 언덕(제1연)
② 승 : 푸르른 보리밭길 종달새(제2연)
③ 전 : 처녀애들 짝하여 설 꽃밭(제3연)
④ 결 : 아지랑이 타오를 땅(제4연)
▶ 제재 : 봄비
▶ 주제 : 봄비 내리는 날의 애상적 정서
<연구 문제>
1. 이 시에 나타난 대상(자연)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관념의 표상이라는 점을 알려 주는 근거가 될 만한 시구를 찾아 쓰라.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
2. 이 시를 전통시의 계승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두 가지 이상 쓰라. ☞ 3음보의 율격, 전통적인 한(恨)과 애상의 정서
3. 이 시와 정지상의 송인(送人)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략히 기술하라.
☞ (1) 공통점 : 제1연의 시상과 송인(送人) 기연(起聯)의 시상이 동일하다.
(2) 차이점 : 봄비는 애상적 정서를 극복하는 반면, 송인은 이별의 절대적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수복의 시는 일반적으로 섬세한 감성과 한국적인 정감을 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관조적, 친화적 태도를 전통적 율조에 의탁하여 깔끔하게 형상화하고 있어서 전통시의 장점을 훌륭히 소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시는 곧 다가올 봄을 예상하며 겨울의 긴 잠에서 깨어나 약동할 자연의 충일(充溢)한 생명력을 노래한 작품이다. 시의 화자는 대지를 적시는 봄비를 바라보며 비가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의 풀빛이 더욱 푸르러지고 종달새가 노래하며, 처녀애들의 화사한 얼굴과 꽃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다툴 것이라는 즐거운 공상에 잠긴다. 말하자면, 화자가 그리는 강나루 언덕, 보리밭의 종달새, 꽃밭과 처녀애는 실재하는 대상이라기보다 화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 즉 관념화된 대상일 뿐이다. 이것은 이미과 이별한 화자가 겨우내 고통스러워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풀빛이 서럽게 여겨지고 보리밭에는 종달새만 외로이 날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가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면서도 전통적 애상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에서 봄의 봄다움이 가장 선명하게 묘사된 곳은 제3연이다. 봄비가 그치면 다투어 필 온갖 꽃의 화사함과 역동성이 시 전체를 지배하는 감상성을 극복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벙글어질’이란 시어는 곧 피어날 꽃의 다양한 모습과 처녀애들의 무르익은 육체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것을 공감각적인 표현이라 보기는 어렵더라도 꽃과 꽃으로 상징되는 처녀애들을 ‘시새워 벙글어질’이란 구절로 결합시킨 솜씨는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제1연은 고려조의 뛰어난 시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의 첫 구절을 연상케 한다. 참고로 송인(送人)의 전문(全文)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긴 언덕 위 풀빛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 남포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말
- 이수익
말이 죽었다. 간밤에
검고 슬픈 두 눈을 감아 버리고
노동의 뼈를 쓰러뜨리고
들리지 않는 엠마누엘의 성가(聖歌) 곁으로
조용히 그의 생애를
운반해 갔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린다,
그를 덮은 아마포(亞麻布) 위에
하늘에는 슬픈 전별(餞別)이.
(시집 우울한 샹송, 1969)
<감상의 길잡이>
맑고 아름다운 서정시로써 이 시대의 어둠을 맑게 정화시켜 주는 소중한 시인의 한 사람인 이수익은 첫 시집 우울한 샹송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투명한 지성으로 비애의 정서를 고양시킴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황금 부분을 조용히 갈고 닦아온 시인이다. 흔히 잔잔한 우수와 비애의 정서, 명징한 이미지와 언어의 세계, 상실감 회복의 미학으로 평가받는 그는 평자에 따라서는 소월과 지용의 장점만을 섞어놓은 시인, 또는 타고난 천성의 시인이라는 극찬을 듣기도 한다.
이 시는 그의 첫 시집 우울한 샹송에서 가장 완벽한 구조의 서정시로 손꼽는 작품으로, 삶의 허망함과 죽음의 막막함을 투명한 지성적 통제 아래 절제된 감정으로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전 9행의 소품이지만, 시인이 이 작품에 기울인 시적 의장(意匠)의 치밀성과, 각 시어나 시행마다 쏟아넣은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 설정된 시적 상황은 지극히 단순하다. ‘간밤에 말이 죽었고, 오늘 아침 그 말의 주검 위에 비가 내린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시적 대상인 말의 죽음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겉으로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지만, 시인은 애정을 가지고 따스한 시선으로 말의 죽음을 바라본다. 검고 슬픈 눈을 가진 말의 순결성, 그동안 말이 견뎌야 했던 노동, 어느 누구 한 사람 지켜 주지 않았던 최후, 그 말의 죽음을 위로하듯 내리는 비 등, 시인이 관찰하고 명상하는 내용 속에는 이와 같은 사랑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맞이하게 되는 생명의 종식에 대한 안타까움, 외로운 영혼이 지닌 순결성에 대한 명상이 시행 사이에 응결되어 있다.
시인은 먼저 말이 죽었다는 사실을 첫 행에서 제시한 다음, 말의 순결성과 고통스런 삶의 과정을 2, 3행의 ‘두 눈을 감아 버리고’와 ‘뼈를 쓰러뜨리고’라는 대구 형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다음에는 말의 고독한 영혼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4~6행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운반해 갔다’라는 구절은 말의 노동 행위와 연관되는 표현으로 절묘한 효과를 자아낸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노동으로 평생을 보냈을 말이므로 죽어서도 자신의 삶을 죽음으로 운반해 갔을 것이라는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을 엿보게 하는 이 구절에서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생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그 다음 7~9행은 하늘이 말을 위해 베풀어 주는 전별 의식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가 내린다’ 다음의 쉼표(,)와 ‘슬픈 전별이’ 다음의 마침표(.)이다. 앞의 쉼표는 호흡의 단절을 막고 뒤의 마침표에서 시상이 끝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므로 서술어가 생략된 채 마침표로 끝나 버린 마지막 시행의 공백 뒤에는 죽음의 침묵과 적막이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을 바라보고 느끼는 시인의 허망함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사장 끝에
- 이시영
“지금 부숴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 소장이 알면 ......”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흙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맥락 읽기>
1. 시적 자아가 시의 내부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 시 밖에서 관찰자의 입장에 있다.
2. 시 속에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가?
☞소장, 인부들, 여자, 어린 것들
3. 인부들은 공사장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 소장의 명령에 따라 집을 부수려한다.
4. 여자는 어떤 처지에 있는가?
☞ 곧 철거 당할 무허가 건물에 살고 있다.
5. 여자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
☞ 어린 것들의 발을 덮어 주고 깜깜한 밖을 내다 보고 있다.
6. 7~8행에 나타난 여자의 행동의 바탕이 깔린 여자의 심리 상태를 상상해서 말해 보자.
☞ 내부의 것을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으려 한다.
<참고>
♣ 과연 ‘불빛인듯’ 덮어 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여자의 행동이 단순히 삐져나온 아이들의 발을 덮어 주는 모성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
☞ 불빛은 바로 사람이 지금 건물 안에서 자지않고 깨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철거 나온 사람들과 대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인부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고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불빛이 새 나가게 되면 당장 나가라든가 언제까지 집을 비우라는 식으로 사태가 진행되기 때문에 어쨋든 깨어 있는 흔적을 노출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빛인듯 덮어 주고’에는 어떤 불안과 초조함이 배어있는 것이고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표현이다.
정님이
- 이시영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매 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 주며 맛있니 맛있니
하늘을 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 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여주더니
왜 가 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 섣달 긴긴 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랑잘그랑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 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 나올 것만 같더니
한 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 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시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 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시집 만월, 197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었던 심각한 문제들 ―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에서 생겨난 비참한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 주고 있다. 명랑, 쾌활하고 순박하기만 했던 정님이가 식모로, 방직공장 여공으로, 색시집의 창녀로 전락해 갔던 당시의 사회 문제들을 부각시키면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무력하고 왜소하기만 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드러나 있다.
▶ 성격 : 독백적, 사실적, 회상적
▶ 구성 : 수미쌍관의 구성
① 용산 역전 늦은 밤 내 팔을 끌던 여인(제1-4행)―화제 제시
② 정님이 누나에 대한 추억(제5-28행)―과거
③ 용산 역전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제29-31행)―현실
▶ 제재 : 정님이 누나
▶ 주제 : 상실에 대한 그리움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점층법을 사용한 효과를 15자 내외로 쓰라.
☞ 누나에 대한 그리움 강조
2. 누나가 떠난 뒤의 그리움이 가장 고조된, 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쓰라.
☞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 이내 달려 나올 것만 같더니
3. 이 시의 ㉠은 1970년대의 어떤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지 100자 정도로 쓰라.
☞ 도시화, 산업화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생겨난 사회악으로 말미암아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로 전락해 버린 우리 이웃의 모습을, 순박함을 박탈당한 가녀린 여인들의 수난의 모습을 보여 준다.
4. ㉡을 통해 화자가 드러내려 한 것은 무엇인가? 60자 정도로 설명하라.
☞ 누나가 오지 않는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상황과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므로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감상의 길잡이>
이시영은 전통적 서정시 형식에 서사성을 담아내고 있는데, 서사성의 세계는 보편성과 객관성이 강조되는 세계다. 이러한 수법은 불우한 이웃들의 삶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정립하려는 노력과 열정의 결과이다.
그의 시는 70년대의 산업화 과정 속에서 토속적인 삶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연의 구분은 없지만 내용의 흐름에 따라 3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4행은 시적 소재가 제시되는 부분이다. 공간적 배경(용산 역전)과 시간적 배경(통금이 임박한 시각) 속에, 인물(내 팔을 끌던 여인)이 등장한다. 소설의 도입부와 같은 표현을 통해 시적 소재가 선명하게 제시된다.
제5-28행은 정님이 누나는 순박하고 쾌활하고 명랑하며, 나를 극진히 사랑했던 착한 여인이었다. 세심하게 나를 아껴 주었던 누나는 나에게 ‘누나’이기도 했고, 사랑의 대상인 ‘소녀’이기도 했다. 그러한 누나였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은 ‘왜 가 버렸는지 몰라’, ‘왜 바람처럼 가 버렸는지 몰라’, ‘한 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와 같이 점층법을 통해 간절한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 ‘몰라’는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너무 잘 안다’는 반어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식모로, 방직공장의 여공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다가 끝내는 창녀로 전락해 버린 ‘누나’에 대한 그의 연민의 정과 그리움이 간절히 드러난다.
제29-31행은 수미쌍관의 구성으로 시상은 다시 현실로 전환된다. 용산 역전 깊은 밤의 여인의 삶은 도시화, 산업화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생겨난 사회악으로,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로 전락해 버린 우리의 이웃이며, 순수함과 순박함을 박탈당한 가녀린 여인들의 수난의 모습이며,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바로 순수에의 영원한 그리움인 것이다.
옮겨 앉지 않는 새
- 이 탄
우리 여름은 항상 푸르고
새들은 그 안에 가득하다.
새가 없던 나뭇가지 위에
새가 와서 앉고,
새가 와서 앉던 자리에도 새가 와서 앉는다.
한 마리 새가 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한 나무가 다할 때까지 앉아 있는 새를
이따금 마음 속에서 본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지 않는 한 마리의 새.
보였다 보였다 하는 새.
그 새는 이미 나뭇잎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 새는 이미 나뭇가지일까.
그 새는 나의 언어(言語)를 모이로
아침 해를 맞으며 산다.
옮겨 앉지 않는 새가
고독의 문(門)에서 나를 보고 있다.
(시집 옮겨 앉지 않는 새, 1979)
<감상의 길잡이>
자아 성찰을 통해 존재의 내면을 탐구하여 실존적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는 이 시는 참신한 감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기 괴리(自己乖離)의 현실 세계를 다양하게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시인이라 평가받고 있는 이탄의 대표작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새들’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상적 인간들을 뜻하며, ‘한 마리 새’는 실존적 삶을 자각한 존재로 시인 자신을 의미한다. 한편, ‘새들이 가득한 푸르른 여름’은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이 현실 세계를 표상한다.
일상적 인간인 ‘새들’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날기도 하고, 한 가지에 여러 마리가 앉아 싸우기도 하는 등 마치 자신들이 누리는 이 미망(迷妄)의 세계가 가치의 모든 것인 양 향락을 구가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만 감각적 세계의 유한적 자유일 뿐,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벗어나서 누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인식한 ‘한 마리의 새’인 시인은 ‘하늘’이라는 무한한 공간 중 극히 일부의 공간일 뿐인 ‘나뭇가지’에 존재하면서 향락적인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가지에 매달려 ‘나뭇잎’이 된 새, 곧 실존적 삶을 자각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새’가 ‘나뭇잎’으로 변화하는 존재의 탈바꿈은 바로 존재의 자기 초월을 의미하는 동시에,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왜냐 하면, 나뭇잎의 조락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떨어진 나뭇잎이 땅에 묻혀 새순이 되어 돋아나는 것은 부활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존재의 초월을 이루는 열쇠는 바로 ‘고독의 문’으로 형상화된 자아 성찰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옮겨 앉지 않는 새가 / 고독의 문에서 나를 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것임을 알게 해 준다. 이렇듯 이 시는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을 통해 일상적 삶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과 죽음까지도 초월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철학적 삶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 이용악
나는 죄인처럼 수그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고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아모것두 바라볼 수 없다만
너의 가슴은 얼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안다
다른 한 줄 너의 흐름이 쉬지 않고
바다로 가야 할 곳으로 흘러 내리고 있음을.
지금
차는 차대로 달리고
바람이 이리처럼 날뛰는 강건너 벌판엔
나의 젊은 넋이
무엇인가 기대리는 듯 얼어붙은 듯 섰으니
욕된 운명은 밤 우에 밤을 마련할 뿐.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 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마르고
얼음길을 거츨다 길은 멀다
길이 마음의 눈을 덮어줄
㉡검은 날개는 없느냐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북간도로 간다는 강원도치와 마조앉은
나는 울 줄 몰라 외롭다
(시집 낡은 집, 193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는 작중화자는 곧 시인 이용악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터전을 잃고 얼어붙은 두만강 다리를 건너가면서 민족의 욕된 운명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화자의 이야기 상대는 의인화된 두만강이다. 이 두만강은 민족의 역사를 지켜 보고 증거해 주는 상징이다.
▶ 성격 : 고백적, 남성적, 상징적
▶ 특징 : ① 두만강과의 은밀한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음.
② 점층적 확장 구조
③ ‘강(江)’의 상징성을 부각시킴.
▶ 표현 : 의인법, 돈호법, 반복법, 비유법의 사용
▶ 구성 : ① 기 : 자유도 없이 죄인처럼 사는 나의 굴욕적인 모습(제1연)
② 승 : 얼어붙은 강물 밑으로 흐름이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감을 자 각하는 나(제2연)
③ 전 : 욕된 운명의 밤(제3-4연)
④ 결 : 북간도로 이민간다는 강원도 사람과 마주 앉은 나(제5연)
▶ 제재 : 두만강
▶ 주제 : 유․이민(流移民)의 욕된 운명에 대한 자괴심(自愧心)
<연구 문제>
1. ㉠을 확인시켜 주는, 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그 처음과 끝 어절을 쓰라. ☞ ‘다른 ~ 있음을’
2. ㉡이 뜻하는 바를 쓰라.
☞ 고통과 괴로움을 초극하고 싶은 작은 소망
3. 이 시의 ‘강’과 다음 시의 ‘강’은 국경의 강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상 차이가 있다. 각각 어떤 면에서 차이가 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 (1) 두만강 : 역사의 단절을 거부하고 역사에 대한 애정과 절망감을 이겨내려는 의지의 강.
(2) 천치의 강 : 비통하고도 무서운 민족의 현실을 외면하는 강.
너를 건너 키 넘는 풀 속을 들쥐처럼 기어 색다른 국경을 넘고자 숨어 다니는 무리 맥풀린 백성의 사투리의 향려(鄕閭)를 아는가. 더욱 돌아오는 실망을 묘표(墓標)를 걸머진 듯한 이 실망을 아느냐. 강안(江岸)에 무수한 해골이 뒹굴어도 해마다 계절마다 더해도 오직 너의 꿈만 아름다운 듯 고집하는 강아, 천치의 강아. ―이용악, ‘천치(天痴)의 강아’에서 |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강을 의인화하여 화자의 감정을 이입시킨 작품이다. 두만강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지켜 보고 증거해 주는 상징물로 이해된다.
제1연은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는 작중화자가 만주행 유․이민(流移民) 열차에 몸을 싣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간다. ‘자랑도 자유도 없이’라는 진술로 보아 화자의 굴욕적인 내면을 짐작할 수 있다.
제2연의 얼어붙은 두만강은 저 깊은 강 밑바닥에 또다른 한 줄기의 물줄기가 쉬지 않고 은밀히 바다로 흘러간다. 가야 할 역사의 흐름, 결코 역사는 단절될 수 없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제3연은 바람이 이리처럼 혹독하게 불어대는 벌판에 작중화자의 넋이 우리 민족의 욕된 운명에 대한 죄인으로서의 자괴심과 죄책감을 안고 얼어붙은 듯 서 있다.
제4연은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오늘날과 같은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강, 두만강아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화자는 외친다. 준엄한 자기 질책과 자기 반성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제5연은 결국 마음의 눈을 덮어 줄 검은 날개를 희구하고 있다. 절망적인 현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작중화자의 미미한 힘으로는 욕된 역사의 흐름을 극복할 길이 없다. 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그는 울 수도 없어 외롭다.
<맥락읽기>
1.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나
2. 화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두만강을 건너는 기차안에
3. 화자가 기차를 타고 가는 지금은 하루 중 어느 때인가? ☞ 한밤중
4. 화자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 두만강을 건너 어딘가 먼 곳으로, 간도로, 조국을 떠난다.
5. 화자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화자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시구를 찾아보자.
☞ 나는 죄인처럼 수그리고 /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 조고마한 자유도 자랑도 없이 앉았다.
☞ 나는 울 줄을 몰라 외롭다.
6. 그런 시어들로 볼 때 화자의 지금 심정은 어떠한가?
☞ 아주 죄스럽고 욕되고 우울하고 쓸쓸하다.
7. 화자는 지금 기차안에서 무얼 하고 있나?
☞ 차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8. 창밖으로 보는 화자의 시선이 집중되는 대상은 무엇인가? ☞ 두만강
9. 화자가 캄캄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두만강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
10. 화자가 보고 있는 두만강은 어떤 모습일까?
☞ 잘 보이지는 않지만 꽁꽁 얼어 붙어있다.
11. 정말 그럴까?
☞ 아니오. 겉모습은 그렇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는 그 흐름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12. 그렇게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두만강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바다로
13. 두만강이 흘러가고 있는 곳인 바다를 달리 표현한 시구를 찾아 보아라. ☞ 가야할 곳
14. 결국 두만강은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 가야할 곳
15. 그러면 화자가 본 두만강은 어떤 모습이라 할 수 있나?
☞ 맵찬 날씨(혹독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그 할 바를 다하며 자기목적, 자기목표에 충실한 의연한 모습
16. 이 시에서 두만강은 화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 힘든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는 꿋꿋하고 믿음직한 모습, 또 나약한 자신에 힘과 용기를 주기도 하는 존재이다.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맑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시학, 1940.8)
* 호개 : 호가(胡歌), 호인(胡人)들의 노랫소리
* 눈포래 : 눈보라.
* 불술기 : 불수레, 즉 태양
낡은 집
-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모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세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한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시집 낡은 집, 1938)
* 은동곳 : ‘동곳’은 상투를 튼 뒤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물건.
금, 은, 옥, 산호, 밀화, 나무 등으로 만드는데, 관자와 함께 재료에 따라 부귀(富貴)의 정도를 드러내는 남자의 장신구.
* 산호 관자(珊瑚貫子) :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금, 은, 옥, 산호, 뿔, 뼈 등오로 만듦.
* 무곡(貿穀) : 장사하려고 많은 곡식을 사들임.
* 둥글소 : ‘황소’의 방언으로 큰 숫소를 말한다.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는 콩을 싣고 다니다가 늙어 버린 숫소를 일컫는다.
* 싸리말 동무 : 싸리말은 싸리비. 함경도에선 아이들이 이것을 말 삼아 타고 놂.
이 시에서는 ‘어렸을 때 마마를 함께 앓으면서 싸리말을 타고 나았던 친구. 즉, 죽마고우(竹馬故友).
* 짓두광주리 : 함경도 방언으로 바늘, 실, 골무, 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반짇고리’.
* 저릎등 : 겨릅등의 함경도 방언. 저릎의 표준어 ‘겨릎’은 ‘껍질을 벗긴 삼대’. 따라서 ‘저릎등’은 긴 삼대를 태워 불을 밝히는 장치.
* 갓주지 : 갓을 쓴 절의 주지승(住持僧). 옛날에는 아이들을 달래거나 울음을 그치게 할 때 이 갓주지 이야기를 했다고 함. 어떤 이는 이 낱말을 ‘갖주지’의 오기(誤記)로 보고 ‘갖가지’ 즉, ‘가지가지’의 방언으로 해석하기도 함.
* 글거리 : 그루터기.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을 베고 남은 밑둥. 그루. 이 시에서는 ‘돌보는 이 없어 황폐한 모습.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용악의 초기시는 이미지즘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그러나 해방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 참여하면서 유․이민(流移民) 문제를 비롯하여 일제하의 민족 현실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 작품은 국권을 상실한 민족의 처절한 현실, 사랑하는 조국을 뒤에 두고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로 떠날 수밖에 없던 유랑민들에 대한 연민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사회상과 수난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 시를 읽어 보자.
▶ 갈래 : 서사시, 자유시, 이야기시[譚詩]
▶ 성격 : 설화적, 서사적, 향토적, 상징적
▶ 특징 : ① 시의 첫머리에 제재인 ‘낡은 집’에 대한 작자의 주석적 설명이 나타나 있다.
② 개인의 가족사적인 일대기 형식을 취한 단편 서사시로 직설적 표현이 주로 나타나 있다.
③ 처절한 민족의 아픔을 설화 형식을 빌어 표현했다.
▶ 구성 : ① 어른들이 들려 준 낡은 집에 대한 이야기(제1연)
② 자취를 감춘 털보네 낡은 집의 모습(제2연)
③ 뿌리 뽑힌 삶의 정황(제3-5연)
④ 털보네 가족의 이향(離鄕)(제6연)
⑤ 털보네가 간 곳을 짚어 보는 이웃 어른들(제7연)
⑥ 황폐해진 낡은 집의 모습(제8연)
▶ 제재 : 일제 때 폐허가 된 낡은 집
▶ 주제 : 일제치하 멀리 떠나버린 유랑민들에 대한 연민.(일제치하 농촌의 궁핍상)
<연구 문제>
1. 이 시는 화자의 직접 체험에 의한 진술 부분과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직접화법에 의해 진술한 연과 (2)간접화법을 통해 진술한 연을 각각 지적하라.
☞ (1) 간접화법 : 제1연
(2) 직접화법 : 제3,4연
2. 이 시를 서사시로 볼 수 있는 근거로 옳지 않은 것은?
☞ ④
① 인물, 사건, 배경 등 설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② 화자가 등장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③ 전개되는 사건이 인과 관계에 따른 구성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
④ 음악성과 낭만성을 존중하여 음울한 분위기와 극적 상황을 설정하였다.
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고 있다.
3. 이 시에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적 배경은 어디인가? ☞ 항구
4. 이 시에서 ㉠은 어떤 꿈인지 그 뜻하는 바를 밝혀라.
☞ 소박하고도 작은 꿈.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고향 마을의 흉가(凶家)라고 꺼리는 ‘낡은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제의 압제를 피해 고향을 뒤로 하고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로 떠돌던 수많은 유․이민(流移民)들의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설화성은 이야기 줄거리에서 감지할 수 있다.
퇴락한 낡은 집에는 털보네가 살아왔고 그 집 아들은 화자인 ‘나’의 친구였으며, 그 친구가 아홉 살 되던 해 겨울, 그 가족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1930년애 후반의 삶의 고달픔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흉가(凶家)라고 꺼리는 ‘낡은 집’은 곧 우리 민족(주로 농민들)의 몰락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또한 ‘항구’는 식민지 수탈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농민들의 피땀어린 농산물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실려 나가던 곳이다. ‘늙은 둥글소’가 일제의 수탈에 등이 휜 농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면, 시름시름 타들어가는 ‘저릎등’은 속타는 농민의 심정을 생각케 한다.
<맥락 읽기>
1. 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는 어휘나 시구가 있다면 찾아보자.
☞ 은동곳 : ‘동곳’은 상투를 튼 뒤에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물건. 금, 은, 옥, 산호, 밀화, 나무 등으로 만드는 데 관자와 함께 재료에 따라 부귀(富貴)의 정도를 드러내는 남자의 장신구이다.
☞ 산호관자(珊瑚貫子) :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금, 은, 옥, 산호, 뿔, 뼈들로 만듦.
☞ 무곡(貿穀) : 장사하려고 많은 곡식을 사들임.
☞ 둥글소 : 황소의 방언으로 큰 수소를 말한다.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는 콩을 싣고 다니다가 늙어버린 수소를 일컫는다.
☞ 싸리말 동무 : 어렸을 때 마마를 함께 앓으면서 싸리말을 타고 나았던 친구. 죽마고우(竹馬故友)
☞ 짓두광주리 : 함경 방언으로 바늘, 실, 골무 헝겉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받짇고리.
☞ 저릎등 : 방언인 ‘저릎’의 표준어는 ‘겨릎’으로 껍질을 벗긴 삼대. 따라서 ‘겨릎등’은 긴 삼대를 태워 불을 밝히는 장치이다.
☞ 갓주지 : 갓을 쓴 절의 주지 스님. 옛날에는 아이들을 달래거나 울음을 그치게 할 때 갓주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함. 어떤 이는 이 낱말을 ‘갖주지’의 오기로 보고 갖가지. 즉 가지가지의 방언이라고 해석함.
☞ 글거리 : 그루터기.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 따위를 베고 남은 밑둥. 그루. 나무나 곡식 같은 것의 줄기의 아랫 부분. 곧 돌보는 이 없어 황폐한 모습.
2. 이 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 어둡다. 황폐하다.........
3. 그런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시어를 찾아보자.
☞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흉집, 낡은 집, 늙은 둥글소, 초라한 냄새, 글거리만 남은…
4. 중심 소재가 되는 장소는? (시적 대상) ☞ 낡은집
5. 낡은집이 잘 묘사된 부분은? ☞ 1, 8연
6. 왜 집이 이렇게 날았나?
☞ 아무도 살지 않으므로, 살던 사람이 떠났으므로.
7. 그 집에는 누가 살았나? 내 동무와 그 가족, 즉 털보네 가족
8. 털보네의 살림살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어떤 집안인지 말해 보자.
☞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느니라. //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 가난한 서민 계층, 하층민, 농토가 없는 장삿꾼, 품일하는 사람.....
9. 털보네의 가난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을 찾으면?
☞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10. 왜 털보네는 집을 떠났을까?
☞ 각자 시를 읽어보면 짐작하겠지. 너희들의 짐작이 맞단다.
11. 그들은 어디로 갔겠는가? 그것을 찾아볼까?
☞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 더러는 오랑캐령쪽으로 갔으리라고
☞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 이웃 늙은이들은
☞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12. 거기로 떠난 그들의 미래는 어떠할 지 짐작해서 말해보자.
☞ 어둡다. 암담하다.......... 겨울철이라는 시대적 배경.
13.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시어는?☞ 오랑캐령, 아라사
14. 어느 시대인가? ☞ 일제시대
오랑캐꽃
- 이용악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구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인문평론, 1939.10)
* 도래샘 : 도랑가에 저절로 샘이 솟아 빙 돌아서 흘러 나가는 우물(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
* 오랑캐꽃 : 제비꽃, 병아리꽃, 씨름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등의 이칭이 있음.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시의 서두에 오랑캐꽃에 대한 자신의 해설적 설명이 붙어 있다. 시인은 먼 옛날 오랑캐(여진족)가 고려와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김동환의『국경의 밤』에 등장하는 비극적 여주인공 ‘순이’가 바로 여진족의 여자로 등장하는데, ‘오랑캐꽃’이나 ‘순이’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당대적 현실 상황을 암유(暗喩)하는 것이다.
▶ 성격 : 낭만적, 민족적, 독백적
▶ 표현 : ① 이 시는 재래의 서정적 감정 처리 방식과 서사적인 표현 방식을 동시에 포용하고 있다.
② 이 시인은 오랑캐꽃을 마치 가깝게 다가가서 이야기하듯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③ 간접화법의 종결어미 ‘갔단다’와 영탄적 종결어미 ‘흘러갔나’를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경과를 나타냈다.
④ 유사 어휘를 반복 사용하였다.
▶ 구성 : ① 고려 군사에 쫓겨간 오랑캐(제1연)
② 세월이 덧없이 흘러감(제2연)
③ 오랑캐꽃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슬픔(제3연)
▶ 제재 : 오랑캐꽃
▶ 주제 : 유․이민(流移民)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연구 문제>
1. 오랑캐가 오랑캐꽃으로 명명(命名)됨으로써 비롯되는 존재의 슬픔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연약하고 순수한 우리 민족의 한없는 억울함과 비통함.
2. 이 시와 관련하여 다음 ( )에 알맞은 시인의 이름을 쓰라.
☞ 김소월, 김영랑
이 시는 ( ), ( )으로 이어오던 서정적인 독백 형식의 전통적인 시적 표출 방식 위에 다양한 서사적 표출 방식을 혼용하고 있다. |
3. 이 시에서 제1연의 ㉠‘오랑캐’와 제3연의 ㉡‘오랑캐꽃’의 ‘오랑캐’는 엄밀하게 분석하면 그 의미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120자 내외로 설명하라.
☞ (1) ㉠ ‘오랑캐’ : 북방 민족의 하나인 여진족으로, 우리 민족을 넘보던 적대적(敵對的)의미가 담겨 있다.
(2) ㉡ ‘오랑캐꽃’의 ‘오랑캐’ : 식물 자체로서의 이미지 그대로, 남을 해치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 결부된 의미로 사용되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인의 고향은 함북 경성이다. 옛날 이곳에는 국가의 통치권 밖에서 살아가던 여진족의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몇 백년 동안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고려 때 윤관(尹瓘)의 여진 정벌로 인해 장정들은 전장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후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여러 대를 살게 된다. 머리를 깎은 탓에 세상에서는 이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다.
김동환의『국경의 밤』에 등장하는 ‘순이’가 바로 그런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인데 이용악의『오랑캐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이들을 통해 두 시인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채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당대적 현실 상황을 암유(暗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오랑캐꽃은 북방 오랑캐의 혈통이나 관습과는 관계없는 야생의 꽃이다.(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장수꽃 또는 제비꽃이라고 한다.)
결국 화자는 처음에는 오랑캐와 오랑캐꽃을 동일 선상에 놓고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조명하였지만, 얼마 안가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먼 옛날 고려 즉, 우리 민족에 의하여 쫓겨간 오랑캐(여진족)의 모습이 오늘에 와서 상황이 반전된 우리 민족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의 혹독한 압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 준 시라고 하겠다.
<맥락 읽기>
1. 1연에서 쫒은 자와 쫒겨난 자를 지적해 봅시다
☞ 쫒은 자 : 구려 장군님
☞ 쫒겨난 자 : 오랑캐
2. 쫒겨난 자의 상황을 짐작해 봅시다.
☞ 경황없이, 정신없이... 구려 장군님의 표현대로라면 혼비백산해서...
3.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 돌봐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낙(약한 자)과 지켜야 할 자존심(우두머리)도 버리고 가야 할 절박한 상황.
☞ 맑게 흐르는 도래샘도 정든 초가집도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 가랑잎처럼
4. 오랑캐가 쫒겨간 뒤 구려민들의 삶은?
☞ 구름이 태평스럽게 골짜기를 흐르듯, 평온한 삶이 수백년 동안 계속되었다.
5. 3연을 통해서 볼 때 말하는 이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나?
☞ 너, 오랑캐꽃
6. 허고 많은 이름 놔두고 왜 하필 오랑캐 꽃인가?
☞ 너의 뒷 모양이 머리테를 드리인 오랑캐와의 뒷머리와도 같기 때문
7. 오랑캐와 오랑캐 꽃의 차이점이 있다면?
☞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고,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른다.
8. 오랑캐의 피한방울 받지 않은 채 오랑캐라 불린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 기가 막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9.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나온 시대적 상황(1939년)을 고려할 때 그 시대의 오랑캐 꽃은 누구이겠는가?
☞ 우리 민족
10. 말하는 이가 오랑캐 꽃에게 해 주고 있는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 두 팔로 햋 빛을 막아 줄께,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11. 오랑캐꽃(우리 민족)이 울 수없었던 이유와 오랑캐꽃(우리 민족)에 대한 작중 화자의 태도는?
☞ 고구려 장군님이 오랑캐로 부터 오랜 투쟁 끝에 지켜내고 대대로 삶을 이어오던 이 땅을 어이 없이 빼앗긴 기막힌 심정으로 인해 울 수도 없음. 작중 화자는 오랑캐 꽃의 처지를 같이 슬퍼하고 오랑캐꽃의 슬픔을 토로하도록 유도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려 한다.
12. 결국이 시는 누가 무엇을 노래한 시인가?
☞ 작중 화자는 외세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중의 아픔을 오랑캐꽃을 통여 노래하고 있다.
북(北)쪽
- 이용악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
(시집 분수령, 1937)
<감상의 길잡이>
이용악은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로 발생했던 국내외 유이민(流移民)의 비극적 삶을 깊이 통찰하고, 이를 빼어난 시적 감수성과 튼튼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작품화한 시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막혀 40년이 넘게 논의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30, 40년대 우리 시문학사의 빈약한 공간 속에 우뚝 자리잡게 된 위대한 민족 시인의 한 사람이다.
이 시는 ‘고향 상실감’에 대한 독특한 시적 정서가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패배주의와 절망의 몸짓만이 두드러진 박용철의 ‘고향’(1931)과도 다르고, 개인의 회고적 서정에 머무르고 만 정지용의 ‘고향’(1932)과도 차별되는 특유의 시적 정조가 단 6행 속에 명료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의 ‘고향’은 단순한 향수 대상이 아닌, 현실 상황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고통받는 현실적 삶과 역사의 시적 등가물로 치환되어 있는 고향이다.
이 시는 화자의 내면 감정을 표백하는 독백의 성격을 지닌다. 화자는 지금 자신의 고향이 위치한 ‘북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 시름에 찬 화자의 내면은 마지막 구절인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로 명징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 다시 풀릴 때’라는 묘사적 표현은 화자의 고향인 ‘북쪽’의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암시하는 동시에 화자의 근심어린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북쪽’을 향하여 시름에 찬 화자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가운데,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라는 객관적 서술이 2행에 삽입되어 있다. 이 구절은 ‘북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화자로 하여금 시름을 겪게 하고 있는 동인(動因)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는 경우, 화자의 주관을 배제시킨 채 객관적인 서술로 표출하게 되면,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물론 그 구체적인 사건이란 다름아닌 당대의 사회․역사적 상황, 즉 일제하의 우리 민중들이 겪는 고난과 수탈의 비극적 상황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는 고향을 그리는 주관적 표출과 함께, 그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비극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법을 배합하여 개인의 주관적 서정을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사회적 차원의 정서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 이용악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시집 분수령, 1937)
* 아므을만(灣) : 흑룡강 하류의 아무르 지역.
* 니코리스크 : 시베리아 하구의 항구 도시 니콜라에프스크를 가리킴.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러시아를 넘나들며 상인으로 삶을 꾸려가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최후를 통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물론 이 아버지가 시인의 실제 아버지였는지의 사실 여부는 작품 감상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체험을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 북방 지역에 삶의 근거를 둔 어느 유랑 조선인의 허망한 죽음을 형상화한 것은 틀림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세도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금을 얻기 위해 소금을 싣고 러시아 영토를 넘나들며 장사를 하였던 것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용악의 시가 대부분 그러한 비극적 삶의 체험 세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은 아버지가 ‘우리집도 아니고 / 일가집도 아닌 집 / 고향은 더욱 아닌 곳’ ‘아라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비참한 심정을 서정적으로 표출한 데 이어, 2연에서는 아버지의 과거 삶과 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 마디 남겨두는 일도 없었고’라는 구절에서 그의 죽음이 객사(客死)일 뿐 아니라, 급작스러운 죽음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술은 화자 개인의 가족사적 비극 체험을 지나 당대 조선 민중의 비극적 삶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는 당대 유이민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그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르쳤다.’라는 표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고,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 없이 돌아간 뒤 /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라는 표현은 죽음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제시이다. 이렇게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인 묘사와 사건의 제시를 통해 장면 위주로 전달함으로써, 그 처참한 현장이 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달되는 한편, 그만큼 슬픔의 강도도 커지는 시적 효과가 있다. 4연은 1연의 반복으로, 소위 수미 상관의 구조로 주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안정감을 부여시키고 있다. 여기서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는 표현은 때마침 집 주위에서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에 대한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끼는 화자의 참담한 내면 심경을 대변해 주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후의 밤’에 가득 찬 ‘풀버렛소리’는 화자가 통곡하는 슬픔의 강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국경을 넘나들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 결국은 낯선 땅에서 ‘침상 없는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시베리아 유이민의 참담한 실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협동, 1947.2)
<감상의 길잡이>
1945년 겨울에 창작되고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에 수록된 이 시는 이용악의 시에서는 보기 드문 연가풍의 작품이다. 1939년 이용악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최재서가 주관하던 인문평론의 편집 기자로 근무하다가 1942년 고향 경성(鏡城)에 돌아가 있던 중, 1945년 해방되자마자 귀경(歸京)하여 그 이듬해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게 된다. 이 시는, 해방 직후 혼자 상경하여 서울에서 외롭게 생활하던 그가 무산(茂山)의 처가에 두고 온 그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이지만, 의미상으로는 기․승․전․결의 전형적 형식에 수미 상관의 구조를 곁들인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기]에서 시인은 ‘북쪽 작은 마을’에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있으며, 2~3연[승]에서는 어느덧 시인이 상상의 날개를 펴고 북쪽의 가족을 찾아가는 모습이 제시되어 있다. 그 곳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 백무선 철길’을 이용해 ‘느릿느릿 밤새어 달려’야 다다르는 깊은 산골이다. 지금쯤이면 그 곳으로 향하는 화물열차의 검은 지붕에도 눈이 내릴 것이며, 가족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4연[전]에서 화자는 그들이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그러므로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이라는 시행의 ‘차마’라는 시어 속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응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 어쩌자고 잠을 깨어’라는 구절은 바로 시인이 머물고 있는 서울도 잉크병마저 얼게 할 정도로 추운데, 그 곳 무산의 가족들은 얼마나 추울까, 하는 화자의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잘 드러나 있다. 5연[결]에는 ‘북쪽 마을’에 함박눈이 쏟아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묻는 단순한 질문이라면, 5연은 동일한 시행이면서도 시인의 그리움 내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마침내 눈으로 화하여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잉크도 얼어붙게 할 정도의 추위를 몰아오는 ‘함박눈’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것을 ‘복된 눈’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태도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가족들을 처가에 남겨 두고 상경하였던 그로서는 ‘눈’을 새 시대를 위한 하늘의 축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시는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함박눈’과 추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으며, 잉크마저 얼어붙게 하는 모진 추위는 역설적으로 시인의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 주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육사論
독립의 열망을 시에 담은 이육사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 본명은 원록(源祿)이지만 그는 활(活)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육사’라는 호는 그가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의 수인 번호 64의 음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그가 불굴의 투사이면서도 시인일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죄수 번호를 아호로 삼는 풍류와 정신의 여유를 이념 및 의지와 함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육사는 1904년 음력으로 4월 4일에 태어나서 1944년 양력으로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운명했으니 그의 생애는 39년 7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짧은 일생의 후반을 그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중국을 왕래하고 형무소와 유치장을 드나들며 보냈다. 그러나 그가 시인으로서 활동한 것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이었으니 육사는 시인이기에 앞서 투사였던 것이다.
투사와 시인이라는 보기 드문 양면을 가진다는 것은 비범한 개인적 자질에 연유하는 것이지만 그 자질은 그의 혈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육사는 경북 안동의 원촌(遠村)이라는 마을에서 이퇴계 선생의 14세손으로 태어났으나 그의 집안은 안동의 유가(儒家)로서는 특이한 데가 있다. 그것은 그의 조부인 이중식(李中植)옹이 그 당시의 안동 유생 중에서는 드물게 진보적인 선각자의 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신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고장에 보문 학숙(普文學塾)을 창설하여 육사도 집에서 한학을 배우는 한편 거기서 신학문에도 눈뜨게 되었다.
그러나 육사의 투사로서의 자질은 친가보다는 외가로부터 물려받은 바 큰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외가는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애국 투사를 배출한 경북 선산(善山) 임은(林隱)의 허씨 집안이었다. 그 집안에서 생장한 육사의 모부인(母夫人)은 자기의 아들 육형제에게 자장가처럼 들려 준 것이 친정의 항일 투쟁의 이야기였다. 육사는 그 육형제 중의 둘째로 청년기부터 백씨인 원기(源褀)와 바로 밑의 아우인 원일(源一)과 함께 의열단(義烈團) 등의 항일 독립 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함께 옥고를 치렀다.
독립운동하다 체포돼 감옥 생활할 때 죄수번호 64를 號로 쓴 투사시인
육사의 시단 활동은 그 기간이 짧기도 하였지만 그 기간동안에도 부단한 감시와 잦은 검속 등으로 시작에만 전념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그리 왕성한 것은 못 되었고 따라서 남긴 작품도 30편 미만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청포도」, 「절정」 및 「광야」와 같은 명편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절정」과 「광야」는 투사 내지 혁명가로서의 작자의 삶과 시가 탁월하게 통합된 희귀한 작품들이다.
여기서는 특히 유고로 남겨졌던 「광야」 한 편만을 들기로 한다. 그것은 이 작품이 아직도 현대시를 전공하는 국문학 교수들 사이에서조차 부적절하게 읽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曠野)」 전문
내가 생각하기에 흔히 잘못 읽혀지고 있는 것은 특히 이 작품의 셋째 행과 끝 연의 첫행이다. 즉,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를 닭이 울지 않았다고 읽는 것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는 조국의 해방을 내다보는 것으로는 너무 아득하다고 보는 읽기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오독(誤讀)은 어형(語形)과 어의(語意)에 너무 얽매인 데에 기인하고 있지만, 한편 작품 전체의 시적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첫째,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의 ‘…으랴’라는 종결형은 ‘…을까’와 같은 어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문장의 첫머리에는 ‘어데’라는 강조하는 부사까지 곁들여 있어 이 문장만을 떼어놓고 보면 ‘어디 닭 우는소리 들렸겠느냐’는 이른바 수사적 의문으로 읽혀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의 뜻은 ‘닭 우는소리는 절대로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행을 그렇게 읽으면 이 작품의 첫 연은 논리적으로나 운율적으로나 어조에 있어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자연스러워진다. 그것은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는’ 천지 개벽의 순간에 닭이 울지 않았다는 사실을 갑작스럽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는 분들은 천지 개벽의 순간에 닭은 없었을 터이니까, 그 순간의 정적을 나타내기 위하여, 또는 이 작품에 있어서의 ‘광야’는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자기들의 읽기를 정당화한다.
혁명가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상을 숭고하게 표현한 不朽의 작품 남겨
일견 논리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해석은 너무나 사실의 차원에 얽매인 것에 불과하다. 이 첫 연과 작품 전체의 운율과 어조를 섬세하게 저울질할 때 그 행은 ‘어데선가 닭 우는소리가 들렸으리라’고 읽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읽기가 된다. 닭 울음소리는 우리에게는 꼭두새벽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에 천지 개벽의 순간에도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렸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시적 상상이다.
둘째, ‘다시 천고의 뒤에’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워 온 이 시인으로서는 뜻밖의 소리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너무 사실의 차원에 얽매인 읽기이다. 이 작품은 직접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한 혁명가의 원대한 이상을 유구한 시간과 공간 속에 설정한 작품이다. 따라서 하늘이 처음 열리던 ‘까마득한’ 과거에 대해 ‘천고의 뒤’는 까마득한 미래를 가리킬 뿐 조국의 광복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광야」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스케일이 큰 작품이며 육사의 상상력이 최고도로 발휘된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혁명가 시인이 자기의 이념 내지 이상을 가장 숭고하게 표현한 최후의 작품, 이른바 ‘백조의 노래(swan so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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