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잡스 국어/현대문학 540

향수, 김광균 [현대시]

향수 김광균 저물어 오는 육교 위에 한 줄기 황망한 기적을 뿌리고 초록색 램프를 달은 화물차가 지나간다. 어두운 밀물 위에 갈매기 떼 우짖는 바다 가까이 정거장도 주막집도 헐어진 나무다리도 온 ―겨울 눈 속에 파묻혀 잠드는 고향. 산도 마을도 포푸라나무도 고개 숙인 채 호젓한 낮과 밤을 맞이하고 그 곳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조그만 생활의 촛불을 에워싸고 해마다 가난해져 가는 고향 사람들. 낡은 비오롱처럼 바람이 부는 날은 서러운 고향. 고향 사람들의 한 줌 희망도 진달래빛 노을과 함께 한번 가고는 다시 못 오지. 저무는 도시의 옥상에 기대어 서서 내 생각하고 눈물지움도 한 떨기 들국화처럼 차고 서글프다. 핵심 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어조: 그리움과 추억이 있는 회상적인 어조 - 제재: 고향과..

길, 신경림 [현대시]

길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

사랑, 전봉건 [현대시]

사랑 전봉건 사랑한다는 것은 열매가 맺지 않는 과목은 뿌리째 뽑고 그 뿌리를 썩힌 흙 속의 해충은 모조리 잡고 그리고 새 묘목을 심기 위해서 깊이 파헤쳐 내 두 손의 땀을 섞은 흙 그 흙을 깨끗하게 실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삼킨 어둠이어도 바위 속보다도 어두운 밤이어도 그 어둠 그 밤을 새워서 지키는 일이다. 훤한 새벽 햇살이 퍼질 때까지 그 햇살을 뚫고 마침내 새 과목이 샘물 같은 그런 빛 뿌리면서 솟을 때까지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개관 - 제재 : 사랑, 과목(果木) - 주제 : 온갖 정성과 마음을 쏟아야 하는, 사랑의 참된 의미 - 성격 : 비유적, 상징적 - 특성 ①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시상의 안정을 꾀함. ② 사랑하는 것을 과목을 키우..

꽃덤불, 신석정 [현대시]

꽃덤불 신석정 태양(太陽)을 의논(議論)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太陽)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城)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太陽)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 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내갔다. 다시 우러러 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噴水)처럼 쏟아지는 태양(太陽)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내용 1. 갈래 : 자유시,..

대숲 아래서, 나태주 [현대시]

대숲 아래서 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서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을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도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

바퀴벌레는 진화 중, 김기택 [현대시]

바퀴벌레는 진화 중 김기택 믿을 수 없다. 저것들도 먼지와 수분으로 된 사람 같은 생물이란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시멘트와 살충제 속에서만 살면서도 저렇게 비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 살덩이를 녹이는 살충제를 어떻게 가는 혈관으로 흘려보내며 딱딱하고 거친 시멘트를 똥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입을 벌릴 수밖에 없다. 쇳덩이의 근육에서나 보이는 저 고감도의 민첩성과 기동력 앞에서는. 사람들이 최초로 시멘트를 만들어 집을 짓고 살기 전, 많은 벌레들을 씨까지 일시에 죽이는 독약을 만들어 뿌리기 전, 저것들은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흙과 나무, 내와 강, 그 어디에 숨어서 흙이 시멘트가 되고 다시 집이 되기를, 물이 살충제가 되고 다시 먹이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빙하기, 그 세월의 두꺼운 얼음 속..

광장, 김광균 [현대시]

광장 김광균 비인 방에 호올로 대낮에 체경(體鏡)을 대하여 앉다 슬픈 도시엔 일몰이 오고 시계점 지붕 위에 청동 비둘기 바람이 부는 날은 구구 울었다 늘어선 고층 위에 서걱이는 갈대밭 열없는 표목(標木) 되어 조으는 가등(街燈) 소리도 없이 모색(暮色)에 젖어 엷은 베옷에 바람이 차다 마음 한 구석에 벌레가 운다 황혼을 쫓아 네거리에 달음질치다 모자도 없이 광장에 서다 주제 : 도시 속에서 느끼는 개인의 고독과 불안 작품 감상 이 시는 도시 문명 속에서 개인이 겪는 고독감과 불안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자는 ‘비인 방’에 ‘체경(거울)’을 대하여 앉아 고독감을 느낀 후 황혼 무렵 낯선 ‘광장’으로 달음질쳐 나온다. 화자는 차가운 바람에 의식이 깨어 광장에 모자도 없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는 화..

정주성, 백석 [현대시]

정주성 백 석 산(山)턱 원두막은 뷔였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城)터 반디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있는 듯이 크다란 산(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 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개관 - 주제 : 역사적 허망함에도 계속되는 일상적 삶의 행위 - 성격 : 감각적 - 특성 ① 평서형 종결어미로 끝맺어 형태적 통일성을 드러냄. ② 감각적(시각, 청각) 이미지가 두드러짐.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을 통해 시적 상황을 제시함. * 2연 → 비유적 표현을 활용하여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함. * 3연 → 시간이..

외할머니집 뒤안 툇마루, 서정주 [현대시]

외할머니집 뒤안 툇마루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만은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갈래 : 산문시,..

성묘(省墓), 고은 [현대시]

성묘(省墓) 고은 아버지, 아직 남북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 소금 장수로 이 땅을 떠도신 아버지. 아무리 아버지의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 안에 선지가 생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두만강의 회령 수양버들을 보셨지요. 국경 수비대의 칼날에 비친 저문 압록강의 붉은 물빛을 보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남북의 마을을 다니시면서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때로는 서도(西道) 노래도 흥얼거리고 꽃 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한마디로, 세월은 흘러서 멈추지 않는 물인지라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이 땅에 남지도 않고 아버지는 하얀 소금이 떨어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남북 통일이 되면 또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남북을 떠도는 청청한 소금 장수가 되십시오...

산길에서, 이성부 [현대시]

산길에서 이성부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발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초토의 시 1, 구상 [현대시]

초토의 시 1 구상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少女〕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핵심 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성격 : 현실적, 희망적 3. 화자 : 전쟁의 비참함에 비애를 느끼는 사람(나) 4. 시적 상황 : 피난민촌에서 아이들을 바라봄 5. 정서와 태도 :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느낌 6. 제재 : 6·25 전쟁 직후의 상황 7. 주제 : 전쟁의 상처로 인한..

연탄 한 장, 안도현 [현대시]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개관 - 제재 : 연탄 한 장 - 주제 : 남을 위해 희생..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현대시]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개관 - 제재 : 물 - 주제 : 완전한 조화와 합일을 통해 원시적 생명력을 회복하는 삶에 대한 희구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 표현 : 미래 가정법..

어떤 귀로, 박재삼 [현대시]

어떤 귀로 박재삼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에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 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 놓는다. 개관 - 화자 :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 - 주제 : 어머니의 고생과 사랑에 대한 회상 - 성격 : 서정적, 애상적, 회고적 - 특성 ① 대구 형식의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함. ②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어머니의 고생과 사랑을 형상화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새벽 서릿길, 촉촉한 밤이슬 → 어머..

폭풍, 정호승 [현대시]

폭 풍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 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개관 - 제재 : 폭풍 - 화자 : 폭풍 속의 나무와 새와 꽃을 바라보는 이 - 주제 : 폭풍(삶의 시련과 고통)을 대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 - 성격 : 비판적, 의지적, 설득적, 교훈적 - 특성 ① 의인화를 통해 대상의 이미지를 구체화함. ② 반복을 통한 운율감 획득 및 강조의 효과 ③ ..

산유화, 김소월 [현대시]

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개관 꽃이 피고 지는 자연 현상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근원적 고독감을 노래하고 있다.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관조적, 민요적, 전통적 * 제재 : 산에 피는 꽃 * 주제 : 존재의 근원적 고독 * 특징 ① 1연과 4연이 내용과 구조 면에서 서로 대응됨. ② 종결 어미 ‘-네’를 통해 각운의 효과를 얻고 감정의 절제를 보여 줌. ③ 3음보를 여러 행에 걸쳐 배열하거나 한 행에 배열함. * 출전 : “진달래꽃”(1925) 시어 * 산유화(山..

어떤 출토(出土), 나희덕 [현대시]

어떤 출토(出土)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움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개관 - 제재 : 늙은 호박(깨달음의 매개체) - 주제 : 늙은 호박을 통해 깨달은 숭고한 희생정신 - 성격 : 반..

느티나무로부터, 복효근 [현대시]

느티나무로부터 복효근 푸른 수액을 빨며 매미 울음꽃 피우는 한낮이면 꿈에 젖은 듯 반쯤은 졸고 있는 느티나무 울퉁불퉁 뿌리, 나무의 발등 혹은 발가락이 땅 위로 불거져 나왔다 군데군데 굳은살에 옹이가 박혔다 먼 길 걸어왔단 뜻이리라 화급히 바빠야 할 일은 없어서 나도 그 위에 앉아 신발을 벗는다 그렇게 너와 나와는 참 멀리 왔구나 어디서 왔느냐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느냐 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으며 하늘을 보는데 무엇이 그리 무거웠을까 부러진 가지 껍질 그 안 쪽으로 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가는데 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 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 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

조찬, 정지용 [현대시]

조찬 정지용 해ㅅ살 피어 이윽한 후, 머흘머흘 골을 옴기는 구름. 길경 꽃봉오리 흔들려 씻기우고. 차돌부리 촉 촉 죽순 돋듯. 물소리에 이가 시리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 쪽에 쪼그리고,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알을 쫏다. 개관 - 제재 : 비 온 뒤 아침 풍경 - 주제 : 비 온 뒤 아침 풍경을 바라보는 화자의 서글픈 심정 - 성격 : 감각적, 관조적, 묘사적 - 특성 ① 절제된 표현을 통해 시적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② 자아를 감추고 풍경을 베끼듯이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 ③ 현실에서 어느 정도 비껴선 관조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④ 감각적 이미지와 의태어의 적절한 활용으로 아침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⑤ 1연 2행의 규칙적인 배열, 애상적이고 관조적인 어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길경 →..

여우난 곬족(族), 백석, 묘사적 심상 [현대시]

여우난 곬족(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

율포의 기억, 문정희 [현대시]

율포의 기억 문정희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개관 - 주제 : 바닷가 사람들의 생명력 넘치는 경건한 삶 - 성..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현대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 ·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4월의 가로수, 김광규 [현대시]

4월의 가로수 김광규 머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잘렸다 전깃줄에 닿지 않도록 올해는 팔다리까지 잘려 봄바람 불어도 움직일 수 없고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아 숨막히게 답답하다 라일락 향기 짙어지면 지금도 그날의 기억 되살아나는데 늘어진 가지들 모두 잘린 채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가의 수양버들 새 잎조차 피어날 수 없어 안타깝게 몸부림치다가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어 몸통으로 잎이 돋는다 *토르소 : 머리와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으로 된 조각상 주제 : 생명력을 상실한 가로수의 비애 4.19혁명 정신을 상실한 1980년대 지식인에 대한 안타까움 이해와 감상 : 인간에 의해 가지와 잎이 잘린 채 토르소처럼 몸통만 남게 된 가로수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비정함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 책 구매 없..

낡은 집, 최두석 [현대시]

낡은 집 최두석 귀향이라는 말을 매우 어설퍼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다리를 저는 오리 한 마리 유난히 허둥대며 두엄자리*로 도망간다.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그들의 딸이 사는 슬레이트 흙담집, 겨울 해어름*의 집안엔 아무도 없고 방바닥은 선뜩한 냉돌*이다. 여덟 자 방구석엔 고구마 뒤주가 여전하며 벽에 메주가 매달려 서로 박치기한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냇가 빨래터에서 오셔서 콩깍지로 군불을 피우고 동생은 면에 있는 중학교에서 돌아와 반가워한다. 닭똥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 나가 일당* 서울 광주 간 차비 정도를 버는 아버지는 한참 어두워서야 귀가해 장남의 절을 받고, 가을에 이웃의 텃밭에 나갔다 팔매질* 당한 다리병신 오리를 잡는다. 시어 풀이 *어설퍼하다 : 일이 몸에 익지 않아 엉성하고 거칠다고 ..

울타리 밖, 박용래 [현대시]

울타리 밖 박용래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天然)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해제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고향의 소녀와 소년, 들길의 풍경과 길을 따라 흐르는 물을 묘사하여 그 천연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울타리의 안과 밖, 인간과 자연이 모두 천연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노래함으로써 시적 화자가 소망하는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핵심 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서정적, 향토적, 자연 친화적 *제재: 울타리 밖..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현대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개관 ..

상행, 김광규 [현대시]

상행(上行) 김광규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으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현대시]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 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개관 - 주제 → 순수한 민족적 삶이 보장되는, 민중 민주 통일 사회에 대한 갈망 - 성격 : 현실 참여적, 저항적, 직설적, 상징적 - 표현 * 단호한 명령투의 어조 * 반복과 대조적 시어를 통해 주제의식을 강조함 * 직설적 표현으로 부정적 인식을 표현함.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껍데기 → 거짓(가짜), 허세, 외세, 무력, 독..

수라, 백석 [현대시]

수라(修羅)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