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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국어/현대문학 540

봄은, 신동엽 [현대시]

봄은 신동엽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 버리겠지 개관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주체적, 현실 참여적 - 표현 * 기승전결이라는 전통적인 의미 맥락의 구조 * 단정적인 어조를 통해 통일에 대한 의지와 확신을 강하게 뒷받침해 줌. * 외세를 의미하는 시어(남해, 북녘, 바다, 대륙)는 추상적 지명으로,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의미하는 시어(제주, 두만, 삼천리 마을)는 보다 구체적 지명으로 제시함으로써 주제를 ..

답청, 정희성 [현대시]

답청 정희성 풀을 밟아라 들녘에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 수록 푸르른 풀을 밟아라. - 심상 : 주체적, 능동적, 저항적 이미지 - 표현 : 중의와 은유의 방법으로 주제를 부각 - 주제 : 봄을 쟁취하기 위한 시련과 의지 - 특징 : ① 자연물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여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② 명령형 어조를 사용하여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 해제 : 이 작품은 봄에 풀을 밟아 더 푸르게 자라게 하기 위한 ‘답청’이라는 풍속을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를 담금질하고 단련시켜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풀’을 밟힐수록 푸른, 즉 시련과 고난..

고향, 현진건, 일제 강점기, 농민(민중)의 참혹한 생활상 폭로 [현대소설]

현진건, 고향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형상화하여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 배경 ① 시간 - 일제 강점기 ② 공간 - 대구발 서울행 열차 안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일제 강점기 우리 농민(민중)의 참혹한 생활상의 폭로 * 특징 ① 1920년대 민족 항일기의 시대상을 조명함. ② 농토를 빼앗긴 농민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림. * 출전 : “조선일보”(1926)에 ‘그의 얼굴’로 발표했으나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서 ‘고향’으로 제목을 고침. 어휘 풀이 * 옥양목 : 생목보다 발이 고운 무명. 빛이 썩..

제야(除夜), 김영랑 [현대시]

제야(除夜) 김영랑 제운밤 촛불이 찌르르 녹아 버린다 못 견디게 무거운 어느 별이 떨어지는가 어둑한 골목골목에 수심은 떴다 갈앉았다 제운밤 이 한밤이 모질기도 하온가 희부연 종이 등불 수줍은 걸음걸이 샘물 정히 떠 붓는 안쓰러운 마음결 한해라 기리운 정을 모ㅎ고 쌓아 흰 그릇에 그대는 이 밤이라 맑으라 비사이다 시어 연구 *제운밤: 제야, ‘겨운’의 방언, 참거나 견뎌 내기 힘든 *무거운 어느별: 무거운 현실 *어둑한 골목골목: 어두운 현실 *제운맘: 한 해를 보내는 안타까운 마음, 수심이 가득한 마음 *희부얀 조히등불: 한지로 감싼 초롱불을 뜻함 *수집은 걸음걸이: 조심스럽고 조신한 걸음 *샘물: 정화수. 여인의 간절한 소망 *한해라 기리운정을: 지나간 한 해 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마음 주제 어두운 현..

맨발, 문태준 [현대시]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ㅡ,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

폐가에 부쳐, 김관식 [현대시]

폐가에 부쳐 김관식 길을 가다 보니 외딴 집 한 채가 비어 있었다. 무슨 이 집의 연척이라도 되는 양 앞뒤를 한 바퀴 휘둘러보다. 굴헝난 지붕에는 풀 버섯이 같이 자라고 썩은새 추녀 끝엔 박쥐도 와서 달릴 듯하다. 먼지 낀 툇마루엔 진흙 자국만 인 찍혔는데 떨어진 문짝 찢어진 벽지 틈에서 퀴퀴한 냄새가 훅 끼치고 물이끼 퍼런 바가지 샘에 무당개구리 몇 놈이 얼른 숨는다. 이걸 가지곤 마른 강변에 덴소 냅뛰듯 암만 바시대도 필경 먹고 살 도리가 없어 별똥지기 천수답과 골아실 텃논이며 논배미 밭다랑이 다 버려둔 채 지게품을 팔고 막벌이를 하더라도 도회지라야 한다고 ,,, 오쟁이 톡톡 털어 이른 아침을 지었을 게고 게다가 차 안에서 먹을 보리개떡도 쪘을 테지만 한번 떠난 뒤 소식이 없고 장독대 옆에 씨 떨어져..

그리움, 이용악 [현대시]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개관 - 제재 : 고향의 작은 마을과 함박눈 - 주제 : 북쪽에 두고 온 고향(가족)을 향한 그리움 - 성격 : 독백적, 연가적, 애상적 - 표현 :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안정감을 얻고 주제를 강조함. 의문형 종결어미를 통해 그리움을 극대화함. 시인의 전기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창작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눈 → 그리움의 매개체 * 북쪽 → 가족을 두고 온 ..

사월, 김현승 [현대시]

사 월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 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 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연돌(煙突)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녘에까지 해동(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迷信)의 달..

두보나 이백같이, 백석 [현대시]

두보나 이백같이 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언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아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전장포 아리랑, 곽재구 [현대시]

전장포 아리랑 곽재구 아리랑 전장포 앞 바다에 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 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 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우리나라 사랑 보았네 재원도 부남도 지나 낙월도 흐르면서 한 오천 년 떠밀려 이 바다에 쫓기운 자그맣고 슬픈 우리나라 사랑들 보았네 꼬막 껍질 속 누운 초록 하늘 못나고 뒤엉긴 보리밭길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멸치 덤장 산마이 그물 너머 바람만 불어도 징징 울음 나고 손가락만 스쳐도 울음이 배어 나올 서러운 우리나라 앉은뱅이 섬들 보았네 아리랑 전장포 앞 바다에 웬 설움 이리 많은지 아리랑 아리랑 나리꽃 꺾어 섬 그늘에 띄우면서. 시어 - 전장포 : 전남 신안군 임자면에 있는 항구 이름. - 덤장 :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막대를 박아 그물을 울타리..

우포늪 왁새, 배한봉 [현대시]

우포늪 왁새 배한봉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 되어 우항산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던 혈혈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켜 수염을 흔들곤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헤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 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드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잘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정호승 [현대시]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정호승 창 밖에 기대어 흰 눈을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잘할 수 있었으면 시로써 거짓말을 다할 수 있을까. 거짓말을 통하여 진실에 이르는 거짓말의 시를 쓸 수 있을까. 거짓말의 시를 읽고 겨울밤에는 그 누가 홀로 울 수 있을까. 밤이 내리고 눈이 내려도 단 한 번의 참회도 사랑도 없이 얼마나 속이는 일이 즐거웠으면 품팔이하는 거짓말의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생활은 시보다 더 진실하고 시는 삶보다 더 진하다는데 밥이 될 수 없는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 어떻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어떻게 한 사람의 희망이길 바랄 수 있을까. 공무원 두문자 암기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 공무원 국어 PDF 다운로드 공무원 영어 PDF 다운로드 공무원 한..

빌려줄 몸 한 채, 김선우 [현대시]

빌려줄 몸 한 채 김선우 속이 꽉 찬 배추가 본디 속부터 단단하게 옹이 지며 자라는 줄 알았는데 겉잎 속잎이랄 것 없이 저 벌어지고 싶은 마음대로 벌어져 자라다가 그중 땅에 가까운 잎 몇 장이 스스로 겉잎 되어 나비에게도 몸을 주고 벌레에게도 몸을 주고 즐거이 자기 몸을 빌려주는 사이 결구(結球)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라 알불을 달듯 속이 차오는 거라 마음이 이미 길 떠나 있어 몸도 곧 길 위에 있게 될 늦은 계절에 채마밭 조금 빌려 무심코 배추 모종 심어 본 후에 알게 된 것이다 빌려줄 몸 없이는 저녁이 없다는 걸 내 몸으로 짓는 공양간 없이는 등불 하나 오지 않는다는 걸 처음 자리에 길은 없는 거였다 시어 풀이 *결구(結球) : 야채의 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공 모양을 이룸 *알불 : 재 속에 묻히거..

자화상, 윤동주 [현대시]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며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개관 - 성격 : 성찰적 - 특징 ① 화자가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아 성찰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② 구어체의 산문적 진술을 통해 화자의 내면 고백을 효과적으로 ..

감자 먹는 사람들, 김선우 [현대시]

감자 먹는 사람들 김선우 어느 집 담장을 넘어 달겨드는* 이것은, 치명적인* 냄새 ​ 식은 감자알 갉작거리며* 평상에 엎드려 산수 숙제를 하던, 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감자가 좋아서 감자밥 도시락만 먹는 줄 알아. 열한 식구 때꺼리*를 감자 없이 무슨 수로 밥을 해대냐고, 귀밝은 할아버지는 땅 밑에서 감자알 크는 소리 들린다고 흐뭇해 하셨지만 엄마 난 땅속에서 자라는 것들이 무서운데, 뿌리 끝에 댕글댕글한* 어지럼증을 매달고 식구들이 밥상머리*를 지킨다 하나둘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엄마 밥주발엔 숟가락 꽂히지 않는다 ​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건 싫어하게 된다더니, 감자 삶는 냄새 이것은, 치명적인 그리움 꽃은 꽃대로 놓아두고 저는 땅 밑으로만 궁그는,* 꽃 진 자리엔 얼씬도 하지 않는, 열한 개의 구..

태양의 풍속, 김기림 [현대시]

태양의 풍속 김기림 태양아 다만 한 번이라도 좋다. 너를 부르기 위하여 나는 두루미의 목통을 빌려 오마. 나의 마음의 무너진 터를 닦고 나는 그 위에 너를 위한 작은 궁전(宮殿)을 세우련다. 그러면 너는 그 속에 와서 살아라. 나는 너를 나의 어머니 나의 고향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라고 부르마. 그리고 너의 사나운 풍속을 좇아서 이 어둠을 깨물어 죽이련다. 태양아 너는 나의 가슴 속 작은 우주의 호수와 산과 푸른 잔디밭과 흰 방천(防川)에서 불결한 간밤의 서리를 핥아버려라. 나의 시냇물을 쓰다듬어 주며 나의 바다의 요람을 흔들어 주어라. 너는 나의 병실을 어족들의 아침을 다리고 유쾌한 손님처럼 찾아오너라.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 태양일 수가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 놓고 태양아 네가..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김현승 [현대시]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김현승 무르익은 과실의 밀도(密度)와 같이 - 공감각적 이미지 잠든 내 어린것들의 숨소리는 작은 벌레와 같이 이 고요 속에 파묻히고, 별들은 나와 자연(自然)의 구조에 질서 있게 못을 박는다. 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解體)나 분석(分析)에는 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그리하여 이 끝나는 곳에서 - 낮, 이성의 시간 밤은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준다. 비유적 표현. 꽃 - 낮 / 열매 -밤 ​ 그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 새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 * 밤 : 중의적 의미로 활용되었다. 과일인 밤과 시간의 밤 ​[해제] 이 작품에서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는 밤(夜)을 생명을 품은 시간으로 인식하고, 밤이라는 추상적인 시간..

녹을 닦으며 -공초(供招)14, 허형만 [현대시]

녹을 닦으며 -공초(供招)14 허형만 새로이 이사를 와서 형편없이 더럽게 슬어 있는 흑갈빛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지나온 생애에는 얼마나 지독한 녹이 슬어 있을지 부끄럽고 죄스러워 손이 아린 줄 몰랐다. 나는,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깊고 어두운 생명 저편을 보았다. 비늘처럼 총총히 돋혀 있는 회한의 슬픈 역사 그것은 바다 위에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빗방울 그리 살아온 마흔세 해 수많은 불면의 촉수가 노을 앞에서 바람 앞에서 철없이 울먹였던 뽀오얀 사랑까지 바로 내 영혼 깊숙이 칙칙하게 녹이 되어 슬어 있음을 보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개관 - 제재 : 녹(삶의 부정성, 삶의 부끄러움) - 화자 : 녹이 슨 대문을 닦는 행위를 통해 부끄럽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성하..

살구꽃, 장석남 [현대시]

살구꽃 장석남 마당에 살구꽃이 피었다 밤에도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흰 돛배처럼 떠 있다 흰빛에 분홍 얼굴 혹은 제 얼굴로 넘쳐버린 눈빛 더는 알 수 없는 빛도 스며서는 손 닿지 않는 데가 결리듯 담장 바깥까지도 환하다 지난 겨울엔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늘이 튿어진 채 쏟아졌었다 그 꽃들을 피워서 제 몸뚱이에 꿰매는가? 꽃은 드문드문 굵은 가지 사이에도 돋았다 아무래도 이 꽃들은 지난 겨울 어떤, 하늘만 여러번씩 쳐다보던 살림살이의 사연만 같고 또 그 하늘 아래서는 제일로 낮은 말소리, 발소리 같은 것 들려서 내려온 新과 新의 얼굴만 같고 어스름녘 말없이 다니러 오는 누이만 같고 (살구가 익을 때, 시디신 하늘들이 여러 개의 살구빛으로 영글어올 때 우리는 늦은 밤에라도 한번씩 불을 켜고 나와서 바라..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 서정주 [현대시]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 서정주 외할먼네 마당에 올라온 海溢엔요. 예쉰살 나이에 스물한살 얼굴을 한 그러고 천살에도 이제 안 죽기로 한 신랑이 돌아오는 풀밭길이 있어요. 생솔가지 울타리, 옥수수밭 사이를 올라오는 海溢 속 신랑을 마중 나와 하늘 안 천길 깊이 묻었던델 파내서 새각시때 연지를 바르고, 할머니는 다시 또 파, 무더기 웃는 청사초롱에 불 밝혀선 노래하는 나무나무 잎잎에 주절히 주절히 매여달고, 할머니는 갑술년이라던가 바다에 나갔다가 海溢에 넘쳐오는 할아버지 魂身 앞 열아홉살 첫사랑쩍 얼굴을 하시고 중요 시어 및 시구 풀이 ​* 마당 → 삶의 터전 * 해일 → 마당(산 자)과 바다(죽은 자)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 * 천 살에도 이젠 안 죽기로 한 → 할머니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 풀..

다섯 살 때, 서정주 [현대시]

다섯 살 때 서정주 내가 고독한 자의 맛에 길든 건 다섯 살 때부터다. 부모가 웬 일인지 나만 혼자 집에 떼놓고 온 종일을 없던 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다듬잇돌을 베고 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어느 빠지기 싫은 바닷물에 나를 끄집어들이듯 이끌고 갔다. 그 바닷속에서는, 쑥국새라든가 —— 어머니한테서 이름만 들은 형체도 모를 새가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초파일 연등밤의 초록등불 수효를 늘여가듯 울음을 늘여 가면서, 침몰해가는 내 주위와 밑바닥에서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뛰어내려서 나는 사립문 밖 개울 물가에 와 섰다. 아까 빠져 있던 가위눌림이 얄따라이 흑흑 소리를 내며, 여뀌풀 밑 물거울에 비쳐 잔잔해지면서, 거기 떠 가는 얇은 솜구름이 또 정월 열나흩날 밤에..

고야(古夜), 백석 [현대시]

고야(古夜) 백석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뒤로는 어늬 山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山 어늬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

선우사 - 함주시초 4, 백석 [현대시]

선우사(膳友辭) - 함주시초 4 백석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며 단이슬 먹고 나이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나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플라타너스, 김현승 [현대시]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개관 - 성격 : 서정적, 명상적, 감각적, 자연친화적 - 표현 * 색채 이미지의 적절한 활용 * 대상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함. ..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현대시]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 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 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개관 - 주제 : 사랑의 상실로 인한 슬픔 / 암울한 시대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절망 - 성격 : 현실 참여적, 연가풍, 서정적, 상징적, 감상적, 성찰적, 애상적 - 표현 * 애상적이고 안타까운 어조 * 비약과 압축을 통해 시적 모호성을 추구함. * 서경을 통해 화자의 서정을 은근히 드러냄. * 상실과 소멸의 이미지(동여맨, 사라지고, 가리고, 깨어진,..

포스터 속의 비둘기, 신동집 [현대시]

포스터 속의 비둘기 신동집 포스터 속에 들어 앉아 비둘기는 자꾸만 곁눈질을 하고 있다. 포스터 속에 오래 들어 앉아 있으면 비둘기의 습성도 웬만치는 변한다. 비둘기가 노닐던 한때의 지붕마루를 나는 알고 있는데 정말이지 알고 있는데 지금은 비어 버린 집통만 비바람에 털럭이며 삭고 있을 뿐이다. 포스터 속에는 비둘기가 날아 볼 하늘이 없다. 마셔 볼 공기가 없다. 답답하면 주리도 틀어보지만 그저 열없는 일 그의 몸을 짓구겨 누가 찢어 보아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불속에 던져 살라 보아도 잿가루 하나 남지 않는다. 그는 찍어 낸 포스터 수 많은 복사 속에 다친 데 하나 없이 들어 앉아 있으니 차라리 죽지 못해 탈이다. 개관 - 주제 : 자유와 순수를 잃은 존재의 비극 - 성격 : 문명비판적, 우의적, 상..

대바람 소리, 신석정 [현대시]

대바람 소리 신석정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거릴지언정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 핵심 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주제 : 세속적 부귀영화를 초월하는 삶의 여유, 은둔과 달관의 삶에 대한 다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 3. 표현상의 특징 - 공감각적 심상 : 청각의 시각화, 후각의 시각화 - 생략법 : 여운을 남기는 효과 - 깨달음이 드러남 (= 인식의 전환) ..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현대시]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

찔레, 문정희 [현대시]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개관 - 제재 : 찔레꽃 → 찔레꽃은 가시를 품고 있는 꽃이라는 점에서 사랑의 아픔을 상징한다. 가시를 품고 있지만 찔레꽃은 봄날 흰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에서 사랑의 승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뾰..

수의 비밀, 한용운 [현대시]

수의 비밀 한용운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深衣)*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 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B]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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