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

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03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 9 2024. 5. 12. 09:28
반응형
김유정(1908~1937)

 

소설가. 강원도 춘성군 신남면 증리에서 출생했다. 1929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 문과를 중퇴하였다. 1935년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단 몇 년 사이에 “금 따는 콩밭”(1935), “만무방”(1935), “산골”(1935), “가을”(1936), “따라지”(1937) 등 30여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어렵게 자랐으며 작가가 된 뒤에도 심한 생활고(生活苦)와 폐결핵에 시달렸다. 그의 문학 세계는 희화(戱畵)와 골계(滑稽)가 특징이며 그의 세계 인식의 태도는 냉철하고 이지적이기보다 해학이 가득 차 있다. 그의 작품은 인물의 우직함과 엉뚱함, 결말에서의 의외적 행동, 서술자의 특수한 역할과 아이러니, 반미학적(反美學的)일 만큼 수치의 감정이 이완된 육담(肉談)과 속어(俗語) 등 그 담론(談論), 즉 언어에 있어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웃음의 뒤에는 그의 불행한 삶과 우울에서 오는 애수가 배어 있고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을 당대의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삶을 고통에 대한 웃음으로서의 대응으로 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동백꽃”, “봄․봄”(1935), “산골 나그네”(1936)와 같이 농촌의 자연스러운 생활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과 착취 받는 농촌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낙비”(1935), “만무방”, “총각과 맹꽁이”(1933), “가을”(1936) 등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김유정은 농촌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노출시키면서도 그것을 웃음으로 치환시키는 우회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 금 따는 콩밭

 

1. 줄거리

깊은 구덩이 속에서 영식은 암팡스런 곡괭이질을 한다. 금을 캐기 위해 영식은 콩밭 하나를 잡쳤다. 약이 올라 죽을 둥 살 둥 눈이 뒤집혀 곡괭이질만 한다. 영식이 살기 띤 시선으로 수재를 노려본다. 몹시 미웠다. 이 놈이 풍치는 바람에 애꿎은 콩밭 하나만 결딴을 냈다. 이 기미를 알고 마름[地主]은 대로(大怒)하였다. 굴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산을 내려오는 마름과 맞닥뜨렸다. 마름은 구덩이를 묻지 않으면 징역을 갈 줄 알라고 포악을 떤다. 구덩이 안에서 영식은 흙덩이를 집어 들어 수재의 머리를 내리친다. 어느 날, 콩밭에서 홀로 김을 매고 있는데 수재가 ‘이 밭에 금이 묻혔으니 파 보자’고 했고, 몇 차례 거절을 했으나 아내의 부추김도 있고 하여 선뜻 응낙을 했던 것이다. 저녁도 아니 먹고 드러누운 영식은 산제(祭)를 지내기 위해 아내에게 쌀을 꿔 오도록 한다. 닭이 두 홰를 치고 나서 떡 시루를 이고 콩밭으로 향한다. 영식은 밭 가운데에 시루를 놓고 산신께 축원을 한다. 아내는 그 꼴을 바라보며 독이 뾰록 같이 오른다. 아내가 점심을 이고 콩밭으로 갔을 때 남편은 얼굴에 생채기가 나고 수재는 흙투성이에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내가 분통을 건드리자, 영식은 아내의 머리를 후려친다. 콩밭에서 금을 따는 숙맥도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아내에게 영식은 발길질을 한다. 조바심이 난 수재가 “터졌네, 터졌어, 금줄 잡았어.”하고 황토 흙을 보이며 외친다. 영식이 처(妻)가 너무 기뻐서 고래등같은 집까지 연상할 때 수재는 오늘밤에 꼭 달아나리라고 생각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강원도 어느 산골)

◎ 경향 : 사실주의적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음침한 무덤 같은 구덩이 속

전개 - 수재와 싸우는 영식. 수재의 꼬임과 아내의 부추김으로 온통 구멍이 뚫린 콩밭

위기 - 산제 후에 절망에 빠진 영식

절정 - 아내에게 발길질하는 영식에게 ‘금줄 잡았다’고 외치는 수재

결말 - 오늘 밤 달아나리라 생각하는 수재

◎ 주제 : 절망적 현실에서 허황된 꿈과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가난이 몰고 온 어리석은 꿈의 비극

◎ 출전 : <개벽>(1935)

 

3. 등장 인물

◎ 영식 : 본래 금광에는 이력(履歷)도 흥미도 없는, 성실하고 우직한 농사꾼. 그러나 수재의 꾀임에 빠져 금을 찾으려 하다 콩밭만 망치는 안타까운 인물

◎ 영식의 처 : 섣부르게 농사만 짓다가는 비렁뱅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고, 남편을 부추겨 일을 저질러 놓고 보자는 무모한 인물

◎ 수재 : 일확천금의 횡재를 노리고 금줄을 찾아 헤매며 남을 충동질하는 허황된 사내

 

4. 이해와 감상

금(金)을 따기 위해 콩밭에 뚫은 구덩이 속은 황토 장벽으로 좌우가 콕 막히고 무덤 속 같이 쿠더부레한 흙내와 냉기만이 가득 찬 장소이다. 이것은 당시 우리 농민들이 처한 현실의 표상이다. 1930년대, 인간 생활의 기본 조건이 갖춰 있지 않은 생활 이전의 절망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 조건에서 무식하고 무력한 주인공은 자신의 생존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꿈을 좇는다. 주인공이 금줄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가난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고자 하는 생활적 욕구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삶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선택이다. 그런데 문제는 금 또는 돈이 지니는 양가성(兩價性)이다. 금은 부(富)의 표상인 동시에 파멸로 향하는 길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주인공은 콩밭만 망치는 마신(魔神)의 미끼에 걸리게 되며, 더욱 불행하게도 ― 이것은 희극인데 ― 자신의 욕망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지 못한다는 데 이 소설의 해학성이 있다. 또한, 이 소설에는 1930년대의 농촌 현실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다. 농촌 생활의 궁핍 현상과 그런 가난의 상태를 벗어나서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삶의 양식이 보편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참고> 김유정의 다른 작품들

□ 따라지 : 1937년 <조광(朝光)>지(誌)에 발표. 셋방살이하는 서민과 집주인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풍자와 애수를 섞어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 그의 문학적 특성인 정확한 문장과 독특한 문체가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 땡볕 : 1937년 <여성(女性)>지에 발표.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길을 덕순이는 아내를 지게에 지고 대학 병원으로 찾아간다. 기영이 할아버지의 말로는 병원에 가면 월급도 주고 병도 고쳐 준다는 것이었다. 열네 살 된 조선 아이가 어른보다도 더 부대한 것을 보고 이상한 병이라고 붙잡아 들여서 한 달에 십 원씩 월급을 주고, 그뿐인가 먹이고 입히고 하며 연구하고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덕순이가 아내를 지고 병원에 찾아가 산부인과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간호부를 통해 아내의 뱃속에는 어린애가 있는데 나오려다 그대로 죽었다며 수술을 하지 않으면 1주일도 못 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덕순이가 “월급 같은 건 안 주나요?”하고 물었는데 간호부는 “월급이요?”하고 놀라면서 “제 병 고쳐 주는데 무슨 월급을 준단 말이요?”하고 톡 쏘는 바람에 덕순은 기가 죽고 말았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배는 안 째요”라고 말하는 아내를 다시 지게에 지고 돌아 나오는 덕순의 걸음은 무거웠다. “저 사촌 형님께 쌀 두 되 꿔다 먹은 거 부디 잊지 말고 갚우.” “그러구 임자 옷은 영근 어머이더러 사정 얘길 하구 좀 빨아 달래우”하는 아내의 말을 필시 유언이라고 깨달으면서 쇠뿔도 녹일 듯한 뜨거운 땡볕 아래를 땀을 흘려 가며 내려오는 것이었다. 김유정의 대표작으로 흔히 “봄․봄”을 들지만, 이 “땡볕”은 객관소설로나 심리 소설로 성공한 작품으로, 그의 어느 작품보다 인생의 애수가 깃들어 있는 소설이다. 84년 하명중(河明中)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 봄․봄 : 1935년 <조광(朝光)>지에 발표하였다. 머슴으로 일하는 데릴사위와 장인간의 희극적인 갈등을 매우 익살스럽고도 해학적으로 그린 농촌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 아내가 될 점순이는 16살이다. 나는 데릴사위로 작정된 채 3년 7개월이나 돈 한푼 안 받고 일을 했지만 심술 사나운 장인 영감은 점순이가 아직도 덜 자랐다고 성례를 미루기만 한다. 어느 날 점순이 말에 힘을 입은 나는 장인과 대판 싸웠다. 점순이야 내 편을 들겠지 했는데 웬걸, “에그머니!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하고 내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우는 게 아닌가. 결국 터진 머리를 불 솜으로 손수 지져주며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말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하는 장인의 말을 듣게 된다.

□ 소낙비 : 1935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 1석 당선작. 원명은 “따라지 목숨”이다. 가난한 농부 춘호는 산골 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노름 밑천 2원이 없어 젊은 아내를 때리며 돈을 구해 오라고 한다. 춘호의 아내는 마을 부자인 이주사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친 쇠돌 어멈을 찾아 나선다. 가는 도중 소낙비가 쏟아지고 이주사가 쇠돌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밖에서 기다리며 생각하다가 이 주사 혼자 있는 쇠돌네 집으로 들어가 몸을 맡기기로 약속하고 다음날 2원을 받기로 한다. 이튿날 춘호는 돈을 얻어 빚을 갚고 서울로 가서 아내와 안락한 생활을 하겠다는 기대에 차 아내를 곱게 단장시켜 이 주사에게로 보낸다. 유랑 농민의 적빈(赤貧)과 아내의 성(性)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도 수치를 모르는 도덕성의 마비를 해학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참고> 김유정의 작품 세계

김유정의 작품 세계는 작가 자신의 실제 생활 내지 주변 인물들의 생활상과 밀착되어 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방탕한 형의 억압된 분위기에서 자랐다. 장성하여서는 폐결핵과 가난에 시달리면서, 소박맞아 온 누이에게 얹혀 살기도 했다. 고향에서 들병이들과의 무질서한 생활, 모처럼 손대었던 금광의 실패, 실연(失戀) 등 김유정의 주변에서 일어난 상황들은 그로 하여금 작품 속에다 해학 뒤에 괴어 있는 일말의 애수(哀愁)를 새겨 놓도록 만든 것이리라. 형의 방탕으로 가산이 몰락하고 가난에 쪼들리는 자기의 처지를 그린 “형”, “연기”, “따라지”, 금광에 손댔다가 실패한 경험과 관련된 “금”, “금 따는 콩밭”, 시골 들병이들과의 어지러운 생활을 그린 “솥”, “총각과 맹꽁이”, “산골 나그네”, “아내” 등에서 김유정의 자화상을 본다.

이 같은 김유정의 소설에서 파악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향토성 : 김유정 소설의 배경은 대체로 산골 농촌이다. “소나기”, “산골”, “만무방”, “산골 나그네”, “동백꽃”, “가을”, “봄․봄” 등이 그런 작품이다. 김유정 소설의 향토성은 작가의 채취다. 김유정이 강원도 춘성군 실레 마을 산골 출신이기 때문이다.

□ 해학성 : 김유정의 소설에는 한국적인 특유의 해학이 스며 있다. “봄․봄”은 해학성을 띤 대표적인 작품이고, “아내”, “총각과 맹꽁이”, “땡볕”에도 애수 어린 해학이 깃들어 있다.

□ 풍자성 : 김유정 소설 도처에 스며 있는 해학은 단순한 소극(笑劇)의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전통적인 해학에 접맥되어 있으며, 그것은 또한 풍자성을 동반한다. 김유정 소설의 풍자성은 1930년대 우리 소설의 한 경향과 흐름을 같이 한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태평천하” 등도 함께 공부할 문제다.

□ 인물의 우직성(愚直性) : 김유정 소설의 인물 가운데는 소박하고 우직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점순이 키만 크면 성례시켜 준다는 교활한 장인에게 속아 사는 “봄․봄”의 주인공, 다 자란 콩 포기를 뽑아 내고 금을 캐내려는 “금 따는 콩밭”의 주인공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타산적인 전달형 사내’나 ‘야무지고 외향적인 여인’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다.

 

<참고> 김유정의 삶과 창작 배경과 사랑과 숙명적인 우울

김유정의 집안은 천석지기의 지주였고, 고향인 강원도 산골(춘천에서 한 이십여 리 가량)이었지만 서울에도 백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러나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로 집안을 관리하던 큰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 때 그는 마을의 주막집을 드나들며 집시와 같은 생활을 하고 들병이들과 어울린다. 이러한 경험은 김유정의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들병이는 남편 있는 여인이 시골 주막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몸을 파는 것을 말한다. 들병이의 남편은 아내를 매음시켜 생계를 꾸릴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조차 한다. 이러한 남편의 의식, 즉 ‘들병이 사상’이 김유정 문학의 출발점에 놓여 있는데, 그것이 드러난 작품으로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두꺼비”, “안해” 등을 들 수 있다. 고향에 있을 당시 김유정은 충청도 광업소(금광)에서 몇 달 동안 현장 감독을 한 적이 있었다. 또 고향 실레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물골’에서는 사금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곳 개울 바닥은 온통 파헤쳐져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김유정은 금을 찾아 횡재를 노리는 인간 군상을 그려 낼 수 있었다. 작품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등이 바로 그러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1933년 서울로 올라온 김유정은 폐결핵을 앓는다. 그는 주야로 원고를 쓰면서 병마와 싸웠다. 1937년 3월 29일 김유정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삼십여 편의 작품을 남겨 놓은 채 세상을 떴다. 경기도 광주의 누님 집에서 누님과 매형이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하게 임종을 맞았다. 그의 시신은 유언대로 화장되었고, 유골은 한강에 뿌려졌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삶과 여자, 그리고 성격을 덧붙인다면, 그가 생전에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에 대한 김유정의 그리움은 남달랐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말하는 ‘그리움’은 모두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었다고 훗날 고백할 정도였다. 세상의 그늘을 모르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어린 김유정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연이은 아버지의 죽음과 가세의 급속한 쇠락은 어린 김유정을 자신만의 내성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후 폐결핵에 시달리며 김유정은 깊은 우울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람을 싫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좀더 적절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주위의 인물을 경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 버릇이 결국에는 말없는 우울을 낳습니다”(김유정, [어떤 부인을 맞이할까]에서). 어머니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과 숙명적 우울, 이러한 상태에서 김유정은 두 여인(박녹주, 박봉자)을 향해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무한정 조르듯이 하지만 그의 우울과 그리움은 여인과의 사랑에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김유정이 박녹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26년 휘문고보 4학년을 휴학할 즈음이었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박녹주의 모습을 보고 반하여 김유정은 연정을 품기 시작한다. 그는 박녹주에게 연정을 호소하는 편지를 띄웠으나 번번이 무시되자 그녀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호소하였다. 혈서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유정보다 연상이고 기생 생활을 하던 박녹주는 끝끝내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박녹주는 다음과 같이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편지질이오? 학생이 기생과 무슨 연애를 하자는 말이오?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박녹주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에서). 또 다른 사랑은 1936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김유정은 박봉자에게 연애 편지를 보냈다. 이전 박녹주의 경우처럼 편지에 대한 회신은 없었다. 수개월에 걸쳐 서른 통의 편지를 보냈을 때 박봉자는 다른 사람과 약혼한다. 김유정은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박봉자는 그 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김유정의 편지는 서른 통 정도 받았다. 먼저 오빠의 손에 겉봉이 뜯긴 다음 내가 편지를 읽었다. 지금 여성들은 다르겠지만, 당시는 아무리 신여성이라 해도 김유정 같은 뜨거운 구애에는 침묵을 지킬 도리밖에 더 있었겠는가?”([박봉자 여사의 실연기] <문학사상> 1974년 7월호)

 

▶ 동백꽃

 

1. 줄거리

‘나’는 점순네 소작인의 아들인데, 닭싸움으로 늘 속이 상했다. 얼마 전에 점순이가 준 감자를 받아먹지 않은 뒤부터는 더욱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점순이는, 힘센 자기네 수탉과 우리 닭을 싸우게 해서 조그마한 우리 수탉을 괴롭히는가 하면, 우리 씨암탉을 잡아 마구 두들겨 주기도 했다. 화가 난 ‘나’는 우리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여 싸우게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늘도 산에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 산기슭에서 점순이가 또 닭싸움을 시키고 있는데, 우리 닭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러 있다. 홧김에 점순네 수탉을 때려죽인 ‘나’는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점순이는 용서해 주겠다고 하며, ‘나’를 잡고 동백꽃 속에 넘어져 버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인심이 순하고 소박한 산골 마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제재 : 동백꽃 핀 봄날 산골 마을의 젊은 남녀

◎ 주제 : 산골 마을 젊은 남녀의 순박한 사랑

◎ 문체 : 이 작품에는 토속어와 개인어가 풍부하게 구사된다. 이것이 그의 소설에 활력을 주고 산문성을 확보하게 한다. 지문이나 대사에 구어가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김유정의 소설에는 토속어, 방언, 개인어가 많이 쓰인다(의성어, 의태어에 유의).

◎ 표현 : 표현의 아이러니 - 점순이의 말투. ‘나’를 좋아하면서도 오히려 짓궂은 행동으로 괴롭힌다. 점순이는 성(性)을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황의 아이러니 - 주인공 ‘나’의 우직한 행동은 가난(소작인)과 어리석음 때문에 빚어진다.

◎ 구성

발단 - 닭싸움으로 나의 기를 자꾸 올리는 점순

전개 - 나흘 전 감자를 준 호의를 거절당한 점순. 우리 닭을 더욱 학대함.

위기 - 닭에게 고추장을 먹여 싸우게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음.

절정 - 빈사 지경의 우리 닭을 보고 화가 나서 점순네 닭을 때려죽임.

결말 - 점순이가 닭 사건을 봐 주기로 함. 함께 동백꽃 속에 파묻힘.

◎ 제재 : 동백꽃

◎ 주제 : 산골 젊은 남녀의 순박한 사랑

◎ 출전 : <조광(朝光)>(1936)

 

3. 등장 인물

◎ 나 : 소작인의 아들. 순박하고 천진하며 감수성이 둔한 편이나, 저 나름의 눈치는 없지 않다. 우직한 인물의 전형

◎ 점순이 : 마름집 딸. 깜찍스럽고 조숙하여 ‘나’의 무딘 감수성을 자극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도발한다. 개성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김유정 소설의 예술성을 대표한다. 토속적인 배경을 통하여 일제 강점기 우리 고향의 또 다른 한 모습과 인간의 강박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단편 소설이다. 소작인과 마름이라는 신분 관계에 약간의 갈등은 내포되어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이고 강조점은 향토성과 토속적 미학에 있다. “동백꽃”은 인생의 봄을 맞아서 이성에 눈떠 가는 사춘기 남녀의 애정의 풍속도로 보는 관점과, 사회 계층간의 관계에 강조점을 두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의 줄거리로 볼 때, 계층 문제보다는 순박한 시골 청소년의 사랑이 주제로 다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유정 소설 일반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현실에 대한 대결 정신보다는 익살스럽고 유쾌한 현실 파악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웃음을 머금을 수 있다. 즉, 토속적 어휘의 숨김없는 구사로 나타나는 인물의 희화(戱畵)에 의해, 우직하면서도 애련(愛憐)을 지닌 인물을 제시하고 있다. 농촌만이 가지는 독특한 풍속이나 풍물, 방언 또는 속어의 구사, 향토적 배경 등은 앞서 든 해학적 어조와 더불어 이 작품의 토속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김유정의 작품 세계는 향토성, 해학성, 풍자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하의 농촌의 궁핍성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순수한 토속적 농촌 사회를 서정적으로 표현하였다. 나와 점순이는 소작농의 아들과 마름의 딸이라는 관계에 있지만, 이들 사이의 계층적 갈등보다는 사춘기 남녀의 순박하면서 미묘한 사랑의 감정과 심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나’는 순박하고 천진하면서도 우직한 데 비해, 점순이는 활달하고 앙큼하면서 도전적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성격적 차이에서 오는 사춘기 남녀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산골의 동백꽃을 배경으로 구수한 토착어를 사용함으로써 흙 냄새 물씬 풍기는 향토적 서정성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구성은 시간적인 계기성을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현재와 과거가 인과적인 결속을 위해서 역전 교체되는 특징을 보인다. 작품의 시간적 구조는 현재, 과거, 현재의 순으로 구성되는데 이것은 닭의 싸움을 매개로 한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연결된 것이며, 인물 행위의 동기를 해명하는 유기적 구성이다. 시간적인 관계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갈등과 분규에 해당하고 시간적인 현재가 갈등의 정점을 이루었다가 다시 화해의 대단원으로 종결되어 있는데, 시간적인 현재, 즉 갈등의 심화를 먼저 제시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 갈등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절반 가량을 과거로 서술하고 있다. 또 여기서 닭싸움은 ‘나’와 점순의 심리를 매개하는 구성적 장치이며, 동백꽃에 쓰러져 뒹구는 결말은 일종의 경악법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상 특징을 보인다.

 

<참고> 김유정의 문학 세계

□ 농촌과 농민 :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생활 양식을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연민의 아픔을 수반한 웃음을 통해 희화적, 해학적으로 드러냄을 그 본질적 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만무방”에서는 그 특유의 해학성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착취 체재에 내재하는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 형인 응칠과 아우인 응오는 서로의 성격적인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취득, 분배 양식에 내재하는 모순에 대립하고 있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계급 투쟁적 해결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결말의 ‘내 걸 훔쳐야 할 운명’의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의 피폐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 사회사와 현실 인식 : 김유정의 민중 지향적 현실 인식은 그가 산 시대의 정치․경제․사회 등과 독립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동시대적 특수성 및 제약성과의 일정한 관계 아래 형성된 것이다.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김유정이 자신의 소설에서 즐겨 다룬 당시의 우리 농촌은 더욱 궁핍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물론 일본의 한국 농촌에 대한 일관된 수탈 정책에 주로 기인한 것이다. 이들은 식민지 통치 초기부터 한국을 그들의 식량 공급지로 묶어두기 위해서 ‘토지조사사업’(1910년대)과 ‘산미증식계획’(1910년대)을 단행해 왔고, 1920년대 초부터는 이른바 ‘농촌 진흥 운동’을 일으켜 침략 전쟁의 뒷바라지에 차질이 없는 가혹한 식량 공급을 강요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주제를 강화하여 지주를 보호하는 대신 자작농과 자작 겸 소작농을 몰락시켜 완전한 소작농으로, 소작농을 세궁민으로, 세궁민을 화전민이나 이농민으로, 이농민을 공장의 값싼 노동자나 도시의 토막민 내지 걸인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일본의 식민지 농업 정책에 의한 한국의 경제적 궁핍화는 농촌에서 시작하여 도시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김유정의 그와 같은 현실 인식, 일제의 식민지 통치 체제 내지 농업 정책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한국 농민의 피폐한 삶의 일면을 정직하게 꿰뚫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들에 의하면 예컨대 농사는 열심히 지어도 빚밖에 느는 것이 없는 농민이 막다른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갖가지 비정상적인 탈출을 시도하는 농민 생활의 실상을 그는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농촌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시각이 그 무렵 다른 농촌 소설가들의 그것과는 달리 농민을 비롯한 민중, 즉 대다수 한국인에 대하여 깊은 이해와 일체감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 궁핍의 의미 : 김유정의 작품 거의 어디서나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되풀이되는 모티브는 ‘궁핍’이다. 물론 이 모티브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그 자신이 경험한 가난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비도시(주로 농촌)에서는 노동력이 없는 아이와 노동을 자의로 기피하는 만무방을 제외하면 순수한 무직자는 한 명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는 그런 사람을 제외하고도 무직자는 네 명이고, 직업이 밝혀져 있지 않은 사람 가운데 무직일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세 사람을 합치면 일곱 명, 즉 전체의 23%나 된다. 이러한 현상은 그때도 지금과 같이 농촌에서보다 도시에서 구직하기가 어려웠음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겠으나, 그보다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따른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서 농촌은 극도로 피폐해지고 도시에는 무작정 유랑 농민이 흘러들고 지식인의 실업화가 가속화되어 가던 당시의 우리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유정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과반수를 가난한 농민과 무직자가 차지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 주인공들의 재산 정도가 대부분 빈민층이라는 사실은 그의 작품들이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당시 한국인의 궁핍한 경제적 삶을 상당히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김유정 소설에서 보게 되는 해학의 문체와 정신을 잠깐 뒤로 미루기로 한다면, 그와 같은 당시 현실의 궁핍상에 대한 그의 인식은 철저하다고 할 만큼 실제로 그의 작품 거의 어디에나 반영되어 있다. 이를테면 아내의 정조를 파는 일이 그 남편의 적극적인 동의와 권유, 어려움, 즉 ‘궁핍의 문제’가 전제되어 있다. 확실치도 않은 체금에 운명을 걸 수밖에 없었던 영식(“금 따는 콩밭”)의 무모한 행위 역시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농사로 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사람들 가운데는 다른 농촌으로 유랑하는 응칠(“만무방”의 주인공)의 처지나, 도시로 흘러 들어간 덕순(“땡볕”의 주인공)의 형편은 모두 비참하기 짝이 없으며 그런 처지나 형편은 항상 경제적 빈곤과 크게 연관되어 있다. 김유정은 “만무방”의 화자 입을 빌려, 일본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기인한 한국 농촌 빈궁의 원인을 직접 말하는 대신, ‘농사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남는 건 남의 빚뿐’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김유정의 그러한 비판적 시대 인식은 민중 의식과 결합됨으로써 좀더 선명한 가능성과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 민중의 인식 : 김유정에 있어서 민중이란 가난하고 바보스러운 농민이거나 뻔뻔하고 영악스러운 도시의 빈민이다. 따라서 그들은 맹꽁이․따라지․머슴․이농민․유랑 농민․만무방․들병이, 혹은 품팔이․실업자․걸인․술집 여급 등이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착하고 성실하기를 바랄 수 없듯이 그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진지한 현실 인식을 가진 작가라면 그들을 허황하게 미화시키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의 민중 인식은 민중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민중을 과대 평가하거나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들의 온갖 약점을 그대로 시인하고 숨김없이 노출시키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그들에 대한 튼튼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게 되고 그들 자신의 처지에서 직접 그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에 김유정 문학의 매력과 그의 민중 인식이 지닌 건강함이 있다. 그가 최초로 발표한 “총각과 맹꽁이”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열심히 농사에 종사해 오던 가난한 총각 덕만이가 맹꽁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한편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로부터 벗어나려는 소망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그는 우리에게 서글픔을 느끼게도 한다. 그들 모자가 모두 일을 해서 근근히 먹고 지내는 형편인데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아들(덕만이) 장가들일 비용 마련을 위해서 남한테 미리 돈을 꾸어 쓰고 그 대가로 딸은 남에게 줘버렸고, 또 그 돈을 이미 진 빚 갚는 데 녹여버린 처지다. 따라서 덕만이는 그런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 가정도 이루고 싶은 생각에서 들병이와 결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를 데리고 술장사를 해서 소도 사고 아들도 낳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농사에 근면하고 성품이 우둔한 덕만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들병이와의 결혼이라는 그 허황한 꿈을 그는 스스로 실현하기 위해서 주변머리 없는 태도를 보이다가 오히려 동료들로부터 무안만 당하고 그녀를 소유하고자 한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이처럼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희화한 것은 “솥”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솥”의 주인공 근식이는 “총각과 맹꽁이”의 덕만이보다 인간으로서의 진실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그 희화화는 강한 풍자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근식이에게 있어 진실성의 결핍이란 그의 과오가 단순히 들병이의 간교한 꾀임에 속아서 아무런 목적 없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자기 일신의 안락 도모에 급급하여 가족의 생활을 굳이 외면하고 저지른 잘못이라는 데 있다. 농촌을 무대로 한 가난한 사람들의 우둔으로 인한 과오는 “따라지”나 “봄과 따라지”와 같이 도시를 무대로 한 작품의 등장 인물들에서는 변덕스럽고 영악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 서민층에 대한 이 작가의 그와 같은 객관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김유정이 그들에 대해서 지속해 온 이해와 애정은 상실된 일이 없었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도 일본의 수탈 정책 아래 일그러진 인물상을 가장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촌 현실의 주요 국면을 예리하게 파헤친 것은 “만무방”이다. 1930년대 일제의 식민지 농업 정책이 지주 제도를 보호․강화하는 대신 자작농과 자작 겸 소작농을 순 소작농으로, 나아가서는 이농민과 유랑 농민으로 몰락시키고 있었던 당시, 김유정은 “만무방”에서 그렇게 몰락한 농민의 일그러진 모습을 응칠, 응오 형제와 같은 인물들을 통해서 정직하게 보여준다.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가는 식민지 상황은 응오와 같은 진실한 농군보다도(뒤에 가서는 응오 자신도 일종의 도둑이 되지만) 예의나 염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응칠이와 같은 만무방이 되기에 알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응칠이는 부쳐먹을 농토가 없고 아내와 자식과도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극빈 유랑 농민이다. 가난으로 인해서 가치관이 정상을 벗어나 이 땅 삼천리 강산에 널려 있는 곡식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고 생각하는 그는 몇 번의 절도와 도박의 전과가 있기도 하다. 그런 응칠이뿐만 아니라 그 밖의 농민들도 한결같이 생활은 빈궁하고, 대부분 요행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노름꾼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응칠이와 같은 절도 전과자이다. 응칠이의 전락된 형상과 더불어 앞에든 1930년대 한국 농촌 사회가 빚은 왜곡된 농민상과 흡사하다. 그러나 김유정은 이런 농군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래 따뜻한 형제애의 소유자이며 현실의 억울한 희생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만무방”에서 농촌 현실의 궁핍으로 인한 농민의 고통과 타락, 그 속에서도 잃지 않는 그들의 형제애와 당시의 농촌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항 의식을 보게 된다. 바로 여기서 또 이 작가의 건전한 민중 의식 내지 일정한 현실 인식을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김유정이 자기 작품들에서 식민지 시대 한국의 궁핍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판 의식은 그의 특이한 민중 의식 내지 민중 사랑에 기초하여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민중 의식은 민중의 약점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 해학적 문체와 민중 언어 : 민중이나 현실에 대한 김유정의 인식은 그의 해학적 문체와도 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 자신의 독특한 민중 사랑과 현실 인식은 그의 작품에 나타난 반어적 표현이나 해학적 문체, 혹은 민중 언어의 구사 같은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로 형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민중 인식 내지 현실 인식이 당대의 역사적․사회적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 일정한 수준을 지니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그의 해학적․반어적 문체를 비롯한 여러 표현상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가령 “봄․봄”과 같은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이 작품은 마름의 횡포가 자행되는 당시 농촌 사회의 모순과 그 모순에 희생되는 농민(민중)의 고통을 반영한 점에서 작자의 현실과 민중에 대한 인식을 제시한 것이다. 마름이 젊은 농부를 데릴사위라고 하는 정략적 약혼의 희생물로 삼아 그 노동력을 수년간 무보수로 착취함으로 해서 빚어지는, 데릴사위인 ‘나’와 ‘나’의 장인인 마름과의 갈등이 “봄․봄”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위선적 성격의 장인과 그의 속임에 빠진나와의 갈등이 뛰어난 해학적 기교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학적 표현은 그 갈등의 진정한 원인으로서의, 당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제대로 추구하는 데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 소설이 현실의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동시에 흥미로워야 한다면 그는 해학적 문체로 그 중요한 것의 일부분을 희생시킨 대신 흥미로움을 살린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동백꽃”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은 동백꽃 피는 농촌을 배경으로 계층이 다른 사춘기 남녀간의 갈등과 화해를 밀도 있게 다룸으로 해서 향토적인 사랑의 미학을 보여준다. 눈치 없고 모자라는 ‘내’가 점순이의 은근한 사랑의 표현과 구애의 동작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점순이 사이에는 반어적 상황 내지 해학적 싸움이 벌어진다. 점순이가 ‘나’에게 구운 감자를 준 것이나, ‘우리’ 닭을 여러 차례 곯린 것은 점순이의 ‘나’에 대한 일종의 애정 표시이고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해서 이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또 그 갈등의 양상은 해학적이 된다. 그러나 그 갈등의 원인은 ‘나’의 눈치 없는 우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요인은 마름의 딸인 점순이와 소작인의 아들인 ‘내’가 서로 계층이 다르다는 데도 있다. ‘나’는 점순이보다 계층이 낮기 때문에 점순이가 구운 감자를 나에게 주면서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을 내는 것이 마땅치 못했고, 따라서 ‘나’는 그 감자 받기를 거절했던 것이다. 점순이의 뜻이야 어떻든지 그녀가 ‘나’에게 계층적인 열등감 내지 불안감을 자극하므로 ‘나’는 그런 점순이에게 일종의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또 점순이에 대한 ‘나’의 그러한 감정은 이미 ‘어머니’가 ‘나’에게 주의시켜 준 말로 그 동기가 부여된 바도 있다. 이 작품의 결말은 그러한 계층 차이가 ‘나’와 점순이와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애정을 나눈 이 두 사람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헤어지는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거듭 생각해야 할 것은 “동백꽃”이 주로 상대의 애정 표시를 깨닫지 못하는 주인공의 딱하고 우스꽝스러운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유정의 그런 능청스러운 익살은 그의 창작이 지닌 특이한 흥미요 매력임이 분명하다. 또 그런 해학적 표현이 한국 농민의 전통적 언어 감각과 향토적인 정서를 생생하게 제시하는 데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계층 문제를 비롯한 당시 농촌 사회의 당면 과제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데 일종의 역작용을 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의 현실 인식이 지닌 일정한 한계가 반어나 해학의 문체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체로 인해서 그의 현실 인식이 약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땡볕

 

1. 줄거리

덕순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가난한 농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내의 배에 이상이 생겼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다. 그러다가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특이한 병을 가진 사람들은 연구용으로 무료로 치료를 해 준다는 말을 듣고, 아내를 지게에 지고 병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아내의 병은 특이한 병이 아니라 태아가 자라다가 죽은 것으로 밝혀져 무료 치료를 받지 못한다. 당장 수술하여 죽은 태아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내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병원의 이야기를 듣고도 그는 돈이 없어 아내를 지게에 지고 돌아온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농촌, 서울)

◎ 성격 : 비극적, 사실적, 해학적, 휴머니즘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서민들의 투박한 언어를 사용하여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대로 서술함.

◎ 구성 :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결말’의 4단 구성

◎ 주제 : 가난으로 인한 비극과 부부간의 애정

◎ 출전 : <여성>(1937)

 

3. 이해와 감상

김유정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어리석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도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가난하여 죽어 가는 아내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사주는 등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 준다. 아내도 자신의 죽음보다 남아 있을 남편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보여 준다. 김유정은 이런 순박한 인물들을 통하여 물질로 혼탁해져 가는 세상에 진정한 부부간의 사랑을 형상화하여 보여 주고 있다.

 

▶ 만무방

 

1. 줄거리

전과자요 만무방인 응칠은 동생 응오의 동네에서 송이 파적을 하며, 갖다 팔아 돈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러나 보통 농민들은 맛도 보지 못하는 송이를 먹다가 고기 생각이 나서 근처에 돌아다니는 닭을 잡아먹는다. 숲에서 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를 도둑맞았다는 말을 듣고 성팔을 의심해 본다. 사실 응칠이도 5년 전에는 처자와 함께 살던 성실한 농군이었다. 빚을 갚을 길이 없어 가족과 함께 한밤중에 도망을 쳐서 구걸로 연명하다가 아내의 제안으로 헤어진 뒤로부터 절도와 도박 등으로 살아가다가 감옥에까지 드나들게 된다. 그러다가 동생 응오가 그리워 찾아왔던 것이다. 응오는 순박하고 성실한 모범 농군이었지만,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삭초와 도지, 장리 쌀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 없이 빚만 늘어가게 되자, 지주의 착취에 맞서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 벼를 도둑맞은 것이다. 응칠은 전과자인 자신이 도둑으로 지목될 것 같아 오늘밤에는 도둑을 잡고 동네를 뜨기로 마음먹는다. 응칠이 응오의 논으로 가던 중 산 속 굴에서 노름판이 벌어져 있는 것을 보고 거기 끼어 들었다가 논 가까이에 숨어서 도둑을 기다린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복면을 한 그림자가 나타나 벼를 훔치는 것을 보고 몽둥이로 내리친 뒤 복면을 벗긴다. 그 순간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그 도둑은 바로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자기 논의 벼를 자기가 훔친 것이다. 눈물을 흘리던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의 손을 뿌리치는 응오를 몽둥이질로 쓰러뜨린다. 응칠은 한숨을 쉬며 동생을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강원도 산골)

◎ 성격 : 반어적(‘응오’가 자신이 애써 가꾼 벼를 자기가 오히려 도적질해야 하는 상황)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응칠이는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하며 송이로 요기를 하고 닭을 잡아먹음.

전개 - 응오네 벼가 도둑 맞은 사실을 듣고 응오 집에 들렀다 살벌해진 현실에 개탄함.

위기 - 그믐 칠야에 산꼭대기 바위굴에서 노름을 하고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함.

절정 - 도둑을 잡고 보니 동생임을 알고 어이가 없어 우두망찰함.

결말 - 황소를 훔칠 것을 거절하는 동생을 몽둥이질하여 등에 업고 산에서 내려옴.

◎ 주제 : 식민지 농촌 사회에 가해지는 상황의 가혹함과 그 피해

◎ 출전 : <조선일보>(1935)

 

3. 등장 인물

◎ 응칠 : 평범하게 살던 농민이었으나, 빚으로 인한 가난 때문에 만무방으로 전락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닥치는 대로 생활하는 인물

◎ 응오 : 진실하고 모범적인 농민이나, 자신이 가꾼 벼를 자신이 도둑질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함.

◎ 기타 인물 : 성팔, 기호, 용구, 머슴, 상투쟁이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며, 농촌을 떠나려는 소작농들

 

4. 이해와 감상

“만무방”은 응칠과 응오 형제가 궁핍한 삶 가운데 상반된 길을 걸어온 이야기이다. 전과 4범의 건달인 형 응칠은 절도에도 능한 노름꾼이며 사회적 윤리의 기준에 위배되는 만무방(‘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다. 이와는 달리, 동생 응오는 모범적인 농군임에도 벼를 수확해 봤자 남는 것은 빚뿐이라는 절망감으로 벼 수확을 포기한다.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 맞는데 범인을 잡고 보니 의외로 동생인 응오였다는 아이러니, 일년 농사를 짓고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뿐이라는 인식은 당시의 소작농들의 상황을 잘 파악하게 한다. 응오가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에 놓이는 데 반하여 형 응칠은 반사회적인 인물이며 적극적 행동형이다. 모범적인 농군을 반사회적인 인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같은 응칠의 행위가 오히려 농민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왜곡된 사회에 대한 냉소주의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인물들의 현실 개선의 의지는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반사회적인 수단-도박, 절도 등에 의해 현실의 극복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작가가 제시한 인물들의 행위가 타락한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음은 타락한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작가는 1930년대의 현실 상황을 반어적으로 파악했으며, 그것은 김유정에게 있어 수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구조를 인식하고 왜곡된 사회 현실의 모순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당시 소작인들의 궁핍상을 반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소설 미학의 측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준다. 주인공의 대범하고 적극적인 행동이 반사회적인 것일수록, 그것이 농민 계층의 꿈이 되고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아이러니이다. 이는 30년대와 같은 모순된 사회에서 응칠과 같은 반사회적인 행동 양식이야말로 당대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씁쓰레한 메시지를 환기하고 있다.

 

▶ 봄․봄

 

1. 줄거리

내 아내가 될 점순이는 열 여섯 살인데도 불구하고 키가 너무 작다. 나는 점순이보다 나이가 십 년이 더 위다. 점순네 데릴사위로 3년 7개월이나 일을 해 주었건만 심술 사납고 의뭉한 장인은 점순이의 키가 작다는 이유를 들어 성례시켜 줄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나는 ‘돼지는 잘 크는데 점순이는 왜 크지 않는지’ 고민을 하기도 한다. 서낭당에 치성도 드려 보고 꾀병도 부려 보지만 도통 반응이 없고 장인은 몽둥이질만 한다. 그러는 가운데 점순이는 나에게 ‘성례를 시켜 달라고 장인에게 조르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점순이의 충동질에 장인과 대판 싸움을 벌였는데, 장인이 나를 땅 바닥에 메치자 나는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쥔다. 장인은 놓으라고 헛손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지만 나는 더욱 세게 움켜쥔다. ‘할아버지’를 연발하던 장인이 점순이를 부르자, 점순이와 장모가 나와 갑자기 장인의 역성을 드는 바람에 오히려 얻어맞기만 한다. 그러나 장인은 나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결국 가을에 성례를 시켜 준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강원도 산골)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 : 해학적

황소 같은 우직한 주인공의 행동 → 인물의 희화화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말투 → 문체의 열등화

◎ 구성

발단 - 결혼을 둘러싸고 ‘나’와 장인간의 갈등 내용 제시

전개 - ‘나’와 장인간의 갈등이 차차 심각해져 감(뭉태, 점순의 역할).

절정 - ‘나’와 장인 사이의 해학적 활극 장면

결말 - 절정 부분 속에 삽입됨(희극적 효과를 노림). “내가 매를~일터로 나갔다.” 부분

◎ 주제 : 의뭉스런 주인과 우직하고 천진스런 머슴 사이의 해학적 갈등상과 그 해결

◎ 출전 : <조광(朝光)>(1935)

 

3. 등장 인물

◎ 나 : 점순이를 아내로 얻기 위해 데릴사위로 들어가, 장인(마름)이 시키는 대로 새경도 받지 않고 3년 7개월 동안 오로지 농사일만 하는 순진한 머슴

◎ 장인 : 자신의 딸을 미끼로 여러 명의 데릴사위를 번갈아 두고, 무보수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교활하고 욕심 많은 영감

◎ 점순 : 다소 능동적인 여성으로서 소극적인 태도를 지닌 ‘나’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아버지와 싸움을 붙여 놓고, 결국에는 아버지의 편을 듦.

 

4. 이해와 감상

1935년 <조광> 12월호에 발표. 혼인을 핑계로 일만 시키는 교활한 장인과 그런 장인에게 반발하면서도 끝내 이용당하는 순박하고 어리숙한 머슴 ‘나’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희극적 상황의 설정과 유머러스한 토속적 언어 사용, 엇갈린 시간 구성이 뛰어나다. 김유정의 작품은 본래 산골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향토성과 한국적 해학성과 풍자성, 소설 속 인물들의 소박함과 우직성 등을 독특한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점은 이 소설에서는 일만 시켜 먹고 약속한 장가를 보내주지 않는 장인 영감의 수염을 낚아채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김유정 특유의 문체로 익살스럽게 인물을 그려낸 작품인 것이다. 황소같이 우직한 주인공의 행동과 욕설, 그리고 무지에서 나오는 소박하고도 우직한 발상 등 희화화된 주인공의 실태가 인물의 성격 표출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봄․봄”은 김유정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원도 산골이라는 향토적인 배경에서 일어나는 해학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데릴사위라는 봉건 사회적인 모순된 제도를 상황으로 한 희극적 주인공 ‘나’가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믿고 충실해 보지만 결과는 착각과 희극적인 장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의뭉스런 주인과 그 주인이 사위 삼겠다고 약속한 우직한 머슴 사이의 갈등이 익살스러운 문체로 형상화된다. 가난하고 무식하나 순결하기 그지없는 사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에 걸맞은 토속어를 실어 가진 자들의 약삭빠른 세태주의를 꼬집으면서 한편에서 꾸밈없는 삶의 건강성을 일깨우는 김유정 문학의 걸작이다. 대부분의 평자들이 김유정 문학의 현실 규탄과 저항의 정신이 없음을 지적하지만 이 작품에는 최소한의 현실 비판과 풍자적인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봄․봄”은 김유정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희극적 인물상과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갈등 양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앞으로 장인이 될 마름과 데릴사위 머슴이 혼인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동시에 리얼하게 그려 나간다. 작중 화자인 주인공 ‘나’는 점순이와 혼인을 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3년 7개월을 무일푼으로 머슴살이를 하는 인물이며, 점순이는 은근히 ‘나’에게 행동할 것을 종용하는 인물이다. 주요 사건은 ‘나’와 장인(봉필)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이장이나 친구 뭉태 등은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모르는 체함으로써 사건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친근감 있게 표현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기법을 이용하여 ‘나’의 우직하고 순박한 성품과 행동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여기에 대조적 인물로서 등장하는 장인과의 갈등이 희극적으로 과장되어 작품 전반에 웃음이 넘치게 한다. 딸의 키를 핑계로 혼례를 미루고 일만 시키는 장인의 술수, 아버지의 행동에 반발하여 ‘나’를 충동질하는 점순이의 당돌함, 장인의 술수에 대항하나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나’의 우직함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희극적 상황은 확장된다. 이러한 해학적 분위기와 개성적 인물의 부각은 김유정의 독특한 문체에 힘입은 바 크다. 김유정은 토착적인 속어, 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말투 등을 익살스럽게 사용하는 데 뛰어나다. 이 작품에서도 ‘나’의 어리숙한 말투는 작품 전체의 해학적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엉뚱하고 과장된 희극적 갈등 양상을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게 한다. 또한, 사건의 진행은 시간적 순서에만 따르지 않고 부분적으로 뒤바뀜으로써 ‘장인님’과 ‘나’ 사이의 갈등을 긴장감 있게 고조시킨다. 갑작스런 역전에 의해 화해로 결말을 유도하고 있다. 이 점에서 “봄․봄”은 작품 전체의 사건 전개가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단편 소설 구성의 뛰어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끝으로, 김유정 소설의 풍자성은 1930년대 소설의 한 경향과 흐름을 같이 한다. 문체에 있어서는 서민들의 생활에 밀착된 토착어를 저속하지 않게 쓰는 간결한 문체, 지문에서의 독백체로 된 고백 대화의 묘미, 묘사와 대화에 의한 장면 제시의 극적 방법 등 다채로운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1930년대 농촌 사회의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갈등 구조를 읽어 낸다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농촌 젊은이들의 순박한 사랑이 중심일 것이다.

 

<참고> 해학으로 묘사된 농촌 현실의 비애

□ 어리석음의 해학 : 이 작품의 작중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은 어느 농촌의 봉필이라는 마름(마름이란 지주와 소작인 중간에서 지주의 대리 노릇을 하는 사람의 직책인데, 이 작품에서 마름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하고 있음)의 데릴사위로 들어와 있다. 딸(점순)이 자라는 동안 그 집에 살면서 일을 해 주면 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들어왔는데, 4년이 지나도록 아직 성례를 시켜 주지 않은 상태다. 이유인즉슨 딸이 아직 채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상 점순은 그 사이 열여섯 살이나 되었는 데도 주인공의 겨드랑이께만큼 정도에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벌써 4년째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한 채 머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머슴이라면 새경(머슴이 일한 대가로 주인에게 받는 보수)이라도 받을 터인데, 머슴이 아니라 어엿한 데릴사위니 새경을 달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4년 간 공짜 일을 해 주는 주인공은 일단 바보스럽다고 할 수 있다. 봉필은 큰딸을 시집 보내기 전에도 그렇게 데릴사위를 들여(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마구 갈아치워 가면서) 장장 10년 동안 공짜 일을 시켜 먹었고, 이제 둘째딸을 그렇게 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주인공이 일을 곧잘 하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제 여섯 살인 셋째 딸에 대한 데릴사위를 들일 수 있을 때까지는 주인공을 붙잡아 두자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정은 주인공이 한 동네에 뭉태라는 청년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이치에 닿는 그런 사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여태껏 주인공은 그런 사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묵묵히 일만 해 온 것이다. 우리는 일단 이런 우직한 인물의 어리석음에 대해 웃음을 머금게 된다. 참다 못하여 아내가 될 점순이마저도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흉보고 탓할 때까지 주인공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기만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작품은 주인공이 애초에 계약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라는 막연한 계약은, 만약 점순의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면(사실 더 크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그야말로 영원히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올 가을에는 혼례를 치르도록 한다는 새로운 약속을 받아내든지, 아니면 머슴 산 셈치고 새경을 받아 내든지 양단 간에 결정을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이런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고 해서 이 작품의 해학의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작품에서 주된 웃음은, 주인공이 이런 깨달음과 결심을 한 뒤에 벌이는 행동과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추하는 장면에서 주로 유발된다. 과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앞 단락에서 이야기한) 장인의 엉큼한 속셈에 넘어가 4년 동안이나 공짜 일을 해 준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고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주인공의 어리석은 행동은 그 뒤에도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자신의 결심에 따라 주인공은 장인과 온갖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이 또한 한 편의 코미디가 된다. 주인공은 장인의 엉큼한 지혜에 맞서거나 그것을 능가할 만한 지혜를 발휘해서 장인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로 장인과 생식기를 붙잡고 늘어지는 등의 드잡이(서로 엉켜 붙어 뒹굴면서 시끄럽게 퉁탕거리는 아이들의 거친 장난 짓)를 하여 우리를 즐겁게 웃기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그런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목적을 지혜롭게 관철시키지 못한다. 표면적인 작품의 결말은 장인의 생식기를 붙잡고 늘어진 덕분에 장인으로부터 “올 가을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라는 언질을 받아 내고 주인공은 그것이 정말인 줄 알고 아주 고마워하지만, 장인의 계산 속을 알고 있는 독자들은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며, 다시 한 번 주인공의 어리석음에 대해 웃음을 머금게 된다. 더욱이 그 동안 자신의 편이던 점순이로부터도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라는 원망을 듣게 되지 않는가. 실상 주인공은 또 한 번 실수를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 해학과 풍자에 드러나는 골계미의 차이 : 이처럼 주인공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인공의 어리석음에 대해 비난할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어조가 조금도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채만식의 “치숙(痴叔)”과 한 번 비교해 보자. “치숙”에서도 어리석음을 드러내어 웃음을 유발하는 인물은 “봄․봄”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중 화자이다. 그러나 “치숙”의 작가는 화자의 어리석음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숨기지 않으며 반어를 통해 신랄한 풍자를 가한다. 반면 “봄․봄”의 주인공에 대해 작가는 비판이 아니라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풍자와 해학의 중요한 차이다.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희극미를 흔히 골계(滑稽)라고 하는데, 골계에도 물론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인 골계로 풍자(諷刺, satire)와 해학(諧謔, humour)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골계의 주체가 어떤 의식을 가지고 골계를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풍자는 신랄한 조소와 비난을 가지고 불합리한 사물에 대해 예리한 공격을 가하는 데서 나오는 골계이다. 예컨대 채만식의 “치숙”에서는 주인공이 잘못된 생각으로 치숙을 공격함으로써 역으로 작가나 독자로부터 비판을 당하는 이중적인 공격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나 비판을 우스꽝스럽게 하는 경우가 풍자다. 풍자는 비판이고 공격이기는 하되 직설적이고 엄숙한 비판이 아니라 어딘지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통한 간접적인 비판으로서 웃음을 동반한다. 그에 반해 공격이나 비판 없이 주인공의 바보스러운 행동만으로 우리를 우습게 만드는 것을 해학이라고 하는데, 해학에는 풍자와 대조적으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동정이 스며들어 있다. 김유정의 작품에서는, ‘풍자’가 우세한 채만식의 작품과 대조적으로 ‘해학’이 두드러진다. “동백꽃”이나 “봄․봄”을 보라. 어디에도 작가에 의한 비판적인 공격성의 구석이 없다. 물론 작품 속의 갈등은 없을 수 없고 갈등에 따른 인물들 간의 상호 공격도 없지 않다. “동백꽃”의 나와 점순이 사이가 그렇고, “봄․봄”의 나와 장인(현재의 장인이 아니라 미래의 장인이 될 사람이긴 하지만) 사이가 그렇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갈등은 어느 한 쪽에 작가의 궁극적인 비판이 뚜렷이 가해지는 그런 풍자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사실 “봄․봄” 주인공의 어리석음은 그의 순박하고 우직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인데, 순박함이라든가 우직함이란 인간적 덕성의 하나로 꼽히면 꼽혔지 사악성(邪惡性)으로 꼽히지는 않는다. “봄․봄”의 주인공이 어리석게 행동을 하는 것도 그의 순박한 성격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다. 순박한 성격의 주인공은, 자신을 진정한 사위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계산 속으로만 대접하는 장인과 맞부딪치면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곧 계산 속이 빠른 인물과 맞서게 됨으로써 순박한 주인공은 계속 피해를 당하는 어리석은 인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이 양자의 관계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면, 이 작품이 주는 웃음의 의미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양자의 관계는 어떠하며 이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통해 작가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그리고자 한 것일까?

□ 해학 뒤에 숨은 비극적 현실 : 어리석으면 어리석었지 결코 영악하거나 지혜로운 인물로 그려지지 않은 주인공이지만, 그는 작중 화자로서 자신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동안은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를 몰라서 가만히 있었을 따름이지 자신이 장인에게 당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모르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장인에게 당하는 자신의 처지가 결코 자기 혼자만의 사정이 아님을 주인공은 은근히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장인으로부터 상욕을 들은 뒤에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다음 서술을 보자. “우리 장인님은···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 세워 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하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 참봉 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 장인께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 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 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앉는다. 이 바람에 장인님 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 놈이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그래도 굽신굽신하는 게 아닌가.” 1930년대의 우리 농촌, 1할도 안 되는 지주가 전 농토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자기 농토가 없는 대다수의 농민들은 그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작인이었다. 소작료는 대개 수확량의 5할이 넘었으니, 농민들은 피땀을 흘려가며 1년 농사를 지어 봐야 생산물의 반 이상을 지주들에게 고스란히 바쳐야만 했다. 일제 하에서나마 근대화가 되면서 대지주들은 대개 땅은 그대로 소유한 채 도시로 이주하였고(예컨대 염상섭의 “삼대”에 나오는 조덕기의 집안이라든가 채만식의 “태평천하”에 나오는 윤직원 영감은 도시에 진출한 대지주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이들을 대신하여 농촌에서 지주의 땅과 소작인들을 관리하는 직책이 마름이었다. “봄․봄”의 주인공의 장인이 바로, 읍으로 진출한 배 참봉 댁의 마름인 것이다. 마름은 소작인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으니, 여기서 그려지고 있듯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대로 소작권을 떼어 자신의 마음에 드는 농민에게 주었다. 땅(소작권)을 떼는 것은 다른 밥벌이가 없는 농민들에게는 굶어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위의 인용문은 순박하고 우직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코믹한 어조로 서술되고 있지만, 바로 이러한 불합리한 그리고 농민들에게는 더없이 ‘비극적인’ 농촌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수확량의 5할 이상이나 되는 소작료 외에도 농민들은 마름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 다른 노동을 바쳐야만 했다. 주인공의 운명도 바로 이러한 일반 농민들의 운명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주인공이 자기 땅을 가지고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왜 일찌감치 장인의 사기술로부터 벗어나지 않았겠는가. 그 외에도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 비극 속에 녹아 든 건강한 농촌 문학 : “봄․봄”의 해학 뒤에는 이와 같은 비극적 현실에 대한 진지한 형상화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순박한 주인공의 눈으로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작가는 농촌 현실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건강함을 잃지 않는 농민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이 참다운 예술성을 성취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다. 일제 시대 우리 문학에는 농촌의 사정을 그린 작품이 대단히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농민은 우리 전체 인구의 80~90%를 차지하고 있었고, 농촌의 현실은 곧바로 조선 전체의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민 문학은 지식인 작가의 계몽적인 입장에서 쓰여져, 농민 자신보다는 농민을 계몽하는 지식인 주인공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광수의 “흙”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의 사이비 계몽적 농민 문학에 비해, “봄․봄”은 주인공의 우직하지만 건강함이 유발하는 해학을 통해 당시 우리 농촌 현실을 한층 더 진정한 형상화로 끌어올리고 있다(신승엽-문학평론가).

 

▶ 소낙비

 

1. 줄거리

흉작과 빚쟁이의 위협 때문에 야간 도주를 한 춘호는 아무리 떠돌아 다녀도 살 방도가 없다. 그래 생각해 낸 것이 노름이다. 그러나 밑천 2원이 없어 울화가 치민 그는 아내를 때리며 돈을 구해 오라고 윽박지른다. 매를 맞고 뛰쳐나온 춘호의 처는 돈을 구할 방도를 생각하다가, 마침 이 마을 부자인 이 주사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친 쇠돌 어멈 네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소낙비를 만나 밤나무 밑에서 피하던 중 이상한 일을 목격한다. 아무도 없는 쇠돌 어멈 집에 이 주사가 들어가지 않는가. 춘호의 처는 밖에서 기다리며 생각하다가 이 주사 혼자 있을 쇠돌 어멈 집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한 시간쯤 뒤, 다음날 2원을 받기로 하고 이 주사와 헤어진다. 이튿날, 춘호는 2원을 얻어서 빚도 갚고 서울로 가서 아내와 함께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아내를 곱게 단장시켜 이 주사에게로 보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어느 농촌)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자연 묘사를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적으로 제시함.

전개 - 춘호가 아내에게 돈을 구해 올 것을 강요함.

위기 - 춘호의 아내는 이 주사에게 몸을 허락함.

절정 - 춘호의 아내가 돌아와 돈을 구하게 되었음을 알림.

결말 - 춘호가 아내를 단장시켜 이 주사에게 보냄.

◎ 주제 : 농촌 사회의 현실적 모순과 도착된 성 윤리 풍자

◎ 출전 : <조선일보>(1935)

 

3. 등장 인물

◎ 춘호 : 돈도 없고 배우지도 못한 소박하고 우직한 인물

◎ 춘호의 처 : 희생적이며 순박한 여인

◎ 이 주사 : 탐욕과 아집의 인간

◎ 쇠돌 어멈 : 물욕에 집착하는 여인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따라지 목숨”이라는 원제목으로 <조선일보> 신춘 문예의 당선작이다. 원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고향을 버리고 타관으로 떠도는 1930년대 한국 유랑 농민의 서글픈 삶의 한 단면을 그린 작품이다. 실제로 1930년대 우리나라 농가의 경제 사정과 부채 문제는 매우 심각했으며 당시 토착 농민의 상당수가 궁핍과 고리 대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당시의 농촌 상황을 생각할 때, 작중 인물의 경제적 궁핍은 당대의 빈궁하고 괴로웠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작중 인물들은 성실하게 살려고 했으며,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생활의 보금자리를 갖겠다는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다. 남편은 아내의 매음(賣淫)을 재촉하고 아내는 남편의 매가 무서워 매음을 행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의 태도이다. 남편은 매질을 해서 아내를 매음(賣淫)길로 내보낸다. 그의 아내 역시 매음을 모욕과 수치로 여기면서도 남편에게 매맞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양치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무리 빈곤하다지만 자기의 아내로 하여금 몸을 팔게 하는 행위나, 몸을 팔아서라도 숨돌리고 살아 보려는 아내의 행위는 보편적인 우리의 윤리 의식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극도의 가난 속에서 윤리나 도덕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춘호 내외의 윤리 의식 결여를 탓하기에는 그들의 무지와 빈곤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탐욕과 가난 때문에 아내에게 매음을 사주(使嗾)하거나 아내를 매매(賣買)하는 경우는 김유정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춘호처럼 돈에 대한 허망한 탐욕에 이끌린 남자들은 아내를 가축이나 물건으로 취급하거나 성(性)을 생계 수단으로 이해하면서도 하등의 도덕적 수치감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만무방”과 같이 빈곤 때문에 도덕성이 압살(壓殺)당하는 사회적 아픔을 페이소스(pathos) 짙게 그려 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현실 속에서 비리의 구렁으로 떨어지는 농촌 사회의 현실적 모순과 도착된 인간상을 도박에 미친 농부를 소재로 풍자했다.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줄기 할 듯 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 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살매 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를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뫼 밖으로 농군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 숲에서 거칠어 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이 글은 서두 부분으로서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묘사는 바로 주인공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들을 지배해 나갈 배경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삭막한 배경은 그 당시의 사회 현실이 힘들고 어두운 농촌의 궁핍상을 암시하여 주인공들로 하여금 불행 속으로 빠져들게 할 것임이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을 뜻한다.

주인공 춘호가 처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작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고향인 인제를 등진 지 벌써 삼 년이 되었다. 해를 이어 흉작에 농작물은 말 못되고 따라 빚장이들의 위협과 악다구니는 날로 심하였다. 마침내 하릴없이 집세간을 그대로 내버리고 알몸으로 밤도주하였던 것이다. 살기 좋은 곳을 찾는다고 나 어린 안해의 손목을 끌고 이 산 저 산을 넘어 표랑하였다. 그러나 우정 찾아 들은 곳이 고작 이 마을이나 산 속은 역시 일반이다. 어느 산골에 가 호미를 잡아 보아도 정은 조그만치도 안 붙었고 거기에는 오직 쌀쌀한 불안과 굶주림만이 품에 벌려 그를 맞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김유정의 다른 작품인 “가을”의 주인공 복만이에게나 “만무방”의 응오나 응칠이에게나 “안해”의 ‘나’에게나 마찬가지이다. 김유정은 이들 주인공들의 행동을 현실적 배경과의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다. 김유정은 30년대 한국의 궁핍화한 농촌의 모순과 갈등을 리얼하게 형상화하고 사회 구조적 악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해 각자 나름대로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춘호도 이렇게 할 수 없는 현실적 상황에서 아내에게서 그 방법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삼사십 원 따서 동리의 빚이나 대충 가리고 옷 한 벌 지어 입고는 진저리나는 이 산골을 떠나려는 것이 그의 배포였다. 서울로 올라가 안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고 둘이서 다구지게 벌면 안락한 생활을 할 수가 있을 텐데 이런 산골에서 굶어 죽을 맛이야 없었다. “소낙비”의 춘호는 이농(離農)한 유랑인이다. 타관 사람이어서 땅뙈기도 붙일 수가 없고, 장리를 얻을 수 없어 어려움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춘호는 마침내 ‘나이 젊고 얼굴 똑똑하고 갓 잡아온 새댁 모양’인 아내에게 도박 자금 이 원을 졸라댄다. 그는 아내에게 돈을 구할 방도가 별 달리 없다는 걸 안다. 아내는 움직이지 않는다. 남편은 노기충천하여 불현듯 문지방을 떠다밀며 눈을 흡뜨고 벽에 기대인 지게 막대를 휘두르며 아내의 연한 허리를 모질게 후려친다. 매질은 아내에게 매춘을 초래하고 돈 마련이 가능해지자 춘호는 행복한 꿈에 잠긴다. 춘호는 돈이 잡히면 서울로 올라가서 안해는 안잠을 재우고 자기는 노동을 하며 생활하리라 생각한다. 소설상의 도박 행위가 흔히 인륜을 교시하는 도식성에 흐르기 쉬운데 유정의 도박은 생사를 결단하는 처절하고 엄숙한 투쟁이다. “소낙비”의 춘호는 매춘을 종용하고 ‘아내’의 남편은 처를 작부로 만들어 주막을 경영해 보려 한다. 처의 정조를 팔거나, 웃음을 파는 것은 정상적 가정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부부 관계의 파탄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두 부부가 행복한 생활을 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정조이다. 행복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트기 위하여 아내는 매음을 하고 남편은 그것을 묵인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의 농촌 현실이며 삶의 방식이었다. 김유정은 어두운 식민지 시대의 모순과 아픔을 골계라는 방법론으로 통하여 우회적으로 부조리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한(1908~1996)

 

소설가. 경남 동래 출생. 호는 요산(樂山). 동래고보 졸업 후 동결 제일외국어학원에서 1년 간 공부를 하고, 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제에 항거하다가 구금되었다. 그 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 대학 문과를 중퇴했다. 1936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 “사하촌”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고, 1945년 해방 이후 <민주신보> 논설 위원과 부산대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할 무렵 한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1966년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에 복귀했고, 1969년 중편 “수라도”로 제6회 한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옥심이”(1936), “항진기”(1937), “제3병동”(1969), “뒷기미 나루”(1969) 등이 있고, <김정한 소설집>(1974) 등의 작품집이 있다.

 

▶ 모래톱 이야기

 

1. 줄거리

이 글은 관찰자인 ‘나’의 20년 전의 경험담이다. K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나룻배 통학생인 건우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다. 건우가 살고 있는 섬이 실제 주민과는 무관하게 소유자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를 쓴 건우의 글을 읽는다. 가정 방문차 그 ‘조마이 섬’으로 찾아간 날, 깔끔한 집안 분위기와 예절 바른 건우 어머니의 태도에서 범상한 집안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는다. 거기서 ‘나’는 건우의 일기를 통해 그 섬에 얽힌 역사와 현재에 대해서 알게 된다. 주머니처럼 생긴 ‘조마이 섬’은 일제 시대에는 동척(東拓)의 소유였고, 해방 후에는 나환자 수용소로 변했다. 그것을 반대하는 윤춘삼 영감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였다. 그 후 어떤 국회의원이 간척 사업을 한답시고 자기 소유로 만들어 버렸다. 논밭이 섬사람들과 무관하게 소유자가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선비 가문의 후손임에도 건우 네는 자기 땅이 없다. 아버지는 6․25 때 전사했고, 삼촌은 삼치 잡이를 나갔다가 죽었다. 어부인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의 몇 푼 벌이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윤춘삼氏를 만난다. 그는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로 과거 한때 ‘나’와 같이 옥살이한 경험이 있다. 그의 소개로 갈밭새 영감을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그 해 처서(處暑) 무렵, 홍수 때문에 섬은 위기를 맞는다. 둑을 허물지 않으면 섬 전체가 위험하여 주민들은 둑을 파헤친다. 이 때 둑을 쌓아 섬 전체를 집어삼키려던 유력자의 하수인들이 방해한다. 화가 치민 갈밭새 영감은 그 중 한 명을 탁류에 집어던지고 만다. 결국, 갈밭새 영감은 살인죄로 투옥된다. 2학기가 되었으나 건우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다. 황폐한 모래톱 ‘조마이 섬’은 군대가 정지(整地)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사실적 농민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시대부터 1960년대) / 공간(낙동강 하류 ‘조마이’ 섬)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어조 : 권력의 횡포에 대한 분노를 띤 어조

◎ 주제 : 소외 지대 인간의 비극적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 구성

발단 - 건우 소년에 대한 ‘나’의 관심. 가정 방문

전개 - 조마이 섬 사람들의 비참한 삶. 윤춘삼氏와 갈밭새 영감에게 들은 섬 이야기

위기․절정 - 조마이 섬 에 덮친 홍수. 조마이 섬 주민을 구하려고 둑을 허물다 갈밭새 영감은 살인죄를 저지름.

결말 - 폭풍우가 끝난 뒤의 이야기

 

3. 등장 인물

◎ 나 : K중학교 교사. 건우의 담임이자 소설가(이 작품의 관찰자)

◎ 건우 : K중학교 학생. 조마이 섬에서 통학을 한다.

◎ 갈밭새 영감 : 건우의 할아버지. 외압에 억눌리지 않는, 의지가 굳은 어민

◎ 건우 어머니 : 건우의 홀어머니. 정결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준다.

 

4. 이해와 감상

1966년 <문학>에 발표된 이 작품은 낙동강 하류 명지면에 살았던 건우라는 소년과 그의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 그리고 소년의 젊은 홀어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유력자의 횡포 앞에 땅을 빼앗기고, 더욱이 건우 할아버지의 투옥으로 귀결되는 비극적 구성이지만, 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건우의 담임 선생 ‘나’는 “언젠가는 이 땅이 너희들의 것이 될 거야.”하고 말함으로써 낙관주의적 면모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소외 지대를 의미하는 ‘조마이 섬’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소외 지대 인간의 비참한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을 주(主) 내용으로 하고 있다.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농민 문학의 한 전형이다. 이 소설은 ‘조마이 섬’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비뚤어진 시대상에 항의하고, 서민의 고난을 증언한 작품이다. 내 땅을 부당하게 빼앗고 섬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유력자에게 저항하는 한 농민의 항의의 몸짓을 통하여 그늘진 농촌 현실과 생존의 힘겨움을 그려내고 있다. 이는 김정한이 그의 작품에서 즐겨 다룬 소재로서 농촌 현실에 직접 파고 들어가 자기 것으로 육화하고 고발하는 작가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농민 문학의 한 전형을 이룬다.

둘째, 행동 문학의 속성을 지닌다. 이 작품의 절정은 갈밭새 영감이 유력자의 하수인을 강에 집어 던진 대목이다. 이것은 분명 행동성을 보인 것인데 모래톱을 휩쓴 홍수의 와중에서 그 섬을 구해 내기 위하여 유력자가 만든 엉터리 둑을 파헤치는 행동, 이는 갈밭새 영감이 부당하게 수탈 당하고 억울하게 짓눌린 삶을 되찾으려는 행위로서 ‘자기 희생을 통한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행동 문학의 속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셋째, 리얼리즘의 문학이다. 이 작품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전형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낙동강 유역의 곤궁한 삶과 살 터전을 잃고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는 소외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현상을 그대로 그리는 이야기꾼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비리와 비도덕적 권력에 대항했던 체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어두운 삶의 모습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인간형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것은 생존권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가장 현실적인 휴먼 드라마라고 하겠다.

 

▶ 사하촌(寺下村)

 

1. 줄거리

가뭄이 심한 여름날, 치삼 노인이 감나무 아래에서 미꾸리를 찧고 있다. 그 미꾸리는 딸이 류마치스에 좋은 약이라고 보내 준 것이다. 치삼 노인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만다. 이 때 들깨라는 그의 아들이 들어와서 중들이 물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중놈들이 미워서 그 동네에 못 살겠다고 한탄을 한다. 자식들을 위해서 논을 바쳐야 한다는 중의 말을 믿고 절에 자기의 논을 시주했던 치삼 노인은 중놈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섬짓해 진다. 원래 이 마을에서는 물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수도 사무소에서 저수지를 만든 후부터 물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저수지의 물꼬를 열어 대주지만 상보의 논에만 물이 가고 하보의 논에는 물이 잘 닿지 않으므로 아래․위 논의 농사를 짓고 있었는 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논에 물을 먼저 끌어간다. 곰보인 고 서방이 수통문을 좀더 크게 열다가 중하고 싸움이 붙는다. 곰보는 농사 조합 서기 기봉이에게 얻어터지고 다른 중들에게도 죽도록 매를 맞는다. 그리고 나서는 논이 떼일까 걱정을 한다. 그 날 밤, 들깨와 철한이 중들의 논두렁을 무너뜨리고 자기들의 논에 물을 댄다. 중들은 아우성을 치고 고 서방은 고소해 한다. 주재소에서는 고 서방을 연행해 간다. 동네 사람들은 축문을 지어 바치며 기우제를 지내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납부금 때문에 퇴학을 당하고 만다. 절에서 간평을 나온 중들은 실정을 보지 않고 진수를 통하여 소작료를 물리는데 다 털어 주어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면에서는 호세를 받으러 나왔는데, 같은 날 성동리에 사는 들깨, 고 서방, 구장들 사오 인이 보광사 농사 조합으로 농자금 지불 기한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러 갔다. 그러나 그들의 논에는 차압표가 붙고 만다. 고 서방은 야반 도주를 하고, 농부들은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요구하기 위해 빈 짚단을 들고 줄을 지어 보광사로 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민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중기) / 공간(한밭에 시달리는 보광사 가까이 있는 농촌)

◎ 성격 : 사실적

◎ 문체 : 간결체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궁핍해진 농촌 환경 묘사

전개 - 소작료 납부 문제로 인한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위기 - 지주의 횡포에 대하여 농민들의 불만 고조

절정 - 농민들이 보광사에 가서 소작료 항의

결말 - 농민들이 집단으로 보광사로 떠남.

◎ 제재 : 모순된 농촌 현실

◎ 주제 : 농민을 통한 민족적 현실의 모순 비판과 농민 의식의 발현. 모순된 농촌 현실에서 수탈로 고통받는 모습과 현실 극복의 의지

◎ 출전 : <조선일보>(1936)

 

3. 등장 인물

◎ 절 땅을 소작하며 고통받는 성동리 농민들 : 치삼 노인, 들깨, 봉구, 고 서방 등

◎ 성동리 농민을 학대․착취하는 계층 : 보광사 중, 순사, 군청 주사, 농사 조합 평의원

※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농촌 현실의 모순이 몇몇 영웅적 인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통받는 농민 전체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작가 의식 때문에, 특별한 주인공의 삶보다 보광리와 성동리 사람들 전체의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치중하고 있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6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신춘 문예 당선작으로 단편 소설이다. 여름철 농민들에게 가장 두려운 자연적 재해인 심한 가뭄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 절 아랫마을 성동리 사람들의 고난이 그려지고 있다. 가뭄에 겹쳐서 빚어지게 되는 저수지를 둘러싼 이웃 간의 싸움은 중들의 간교함과 농민 조합의 허상을 잘 묘파(描破)해 주는 소재이다. 또한 자신의 잘잘못을 따져 보기도 전에 파출소에 고발한다는 위협에 겁을 먹는 고 서방 같은 인물은 순박하면서도 무지한 농민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절의 논에 목숨을 걸고 소작을 하는 성동리 사람들에게 절이라는 것은 말만 들어도 경외(敬畏)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절에서 가을철에 추수한 양에 비례해서 소작료를 물리기 위해 조사하는 간평을 나와서는 논을 돌아보지도 않고 무거운 소작료를 매기고 돌아간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면사무소에서는 각종 세금, 특히 호세를 징수하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자기들이 농사지은 모든 것을 절과 면사무소에 바치고 굶는 일뿐이다. 빈 짚단을 들고 절을 향해 가는 동네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자라고 있다. 그들은 절을 불태울 수도 있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과 문체에 대하여 지적을 하면, 공간적 배경은 일제 하의 소작농들이 모여 사는 농촌 마을이며, 시간적 배경은 가뭄이 극심해서 모든 것이 타 들어가는 초여름이다. 이러한 시간적․공간적 배경 자체가 모순된 현실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구실을 하며, 작품 속에서 전개될 갈등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보광사’라는 절 소유의 땅을 소작하여 살아가는 성동리 마을 농민들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릴 뿐 아니라, 흉년에도 힘겨운 소작료를 모두 바쳐야 하는 일제 하의 모순된 농촌 현실이 이 같은 갈등의 원천이다. “사하촌”은 서두에서부터 사건 전개의 환경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는 상징적 기능도 발휘한다. 낡고 초라한 오막살이집, 가뭄으로 메마른 흙바닥과 늙은 감나무, 얼굴에 땟물이 흐르는 발가벗은 어린애의 울음 등의 묘사는 모두 참담한 현실과 장차 전개될 사건의 어려움을 말해 준다. 특히 메마른 뜰 가운데 바둥거리는 지렁이의 모습은 농민들의 고통을 암시하는 짙은 상징성을 띠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의 문체는 매우 진지하고 사실적이며 분위기는 매우 무겁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하촌”이 농민들의 절박한 생존 문제와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수라도(修羅道)

 

1. 줄거리

시할아버지 허 진사는 경술국치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을 하다 서간도에서 유골로 돌아오고, 시동생 밀양 양반은 3․1운동 때 일제에 죽음을 당하고, 일제에 반항해 온 시아버지 오봉 선생은 고등계 형사에게 미행을 당하다가 태평양 전쟁이 고비에 다다를 무렵 이른바 한산도 사건이라는 애국 지사 박해 사건에 걸려 갖은 고초를 겪어 그 여독으로 일찍 타계한다. 한편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다니던 아들은 학병을 피해 숨어 다녀야 했고, 집안일을 도우며 양딸 구실을 하던 옥이마저 전쟁 말기에 여자 정신대로 끌려 갈 뻔했다. 여섯 남매의 어머니로 며느리와 손자를 거느리게 된 수난의 여인상 가야 부인은 8․15 광복을 맞이하고도 신통한 일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문체 : 당당하고 강건한 문체와 서정적 문체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일제 강점기부터 대한 민국 초기, 낙동강 유역의 어느 농촌

◎ 구성

발단 - 손녀 분이의 가야 부인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됨.

전개 - 시조부의 운명(殞命) 등 흔들리는 집안 사정 속에 불심에 의지하는 가야 부인

위기 - 시아버지 오봉 선생의 투옥과 사망

절정 - 사위가 혼인 증명을 만들어 옥이를 구함. 사위와 옥이가 가야 부인의 주선으로 결혼

결말 - 광복 후, 가문의 피폐. 가야 부인의 죽음

◎ 제재 : 오봉 선생의 지조와 가야 부인의 덕행

◎ 주제 : 선비의 애국 지절 정신과 현모양처의 인고의 미덕 혹은 초월 의지

◎ 출전 : <월간문학>(1969)

 

3. 등장 인물

◎ 가야 부인 : 효부(孝婦)로서 일제 시대의 수난사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인고(忍苦)의 표상. 불도(佛道)에 귀의함으로써 한(恨)의 일생을 마감하는 한국 전통의 여인상

◎ 허 진사 : 가야 부인의 시조부

◎ 오봉 선생 : 가야 부인의 시아버지로 완강한 성품에 서릿발같이 매운 기상의 선비. 민족의 굳센 기상과 절개를 드높인 지절의 인간상

◎ 이와모도 구장 : 일제에 협력하는 친일파. 주민에게 피살당함.

 

4. 이해와 감상

“수라도(修羅道)”란 불교에서 아수라(阿修羅)라는 악마들이 살고 있는 곳을 말한다. 그것은 곧 어둠의 시대를 그리는 소설의 작품 세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생애의 폭이 넓고 깊었던’ 가야 부인의 괴로운 과거와 의젓한 처신을 중심에 놓고 시댁인 허 진사 댁의 가족들이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겪는 수난사를 그리고 있다. 또한 중편인 이 작품은 한국 종교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한 작품으로, 4대에 걸친 가족의 수난사(受難史)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읽을 수 있다. 죽음을 당하는 이와모도 구장의 묘사에서 외세에 기생한 친일 세력들의 말로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작가적 양심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도경 형사였던 이와모도의 장남의 출세에서 비틀거리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 못한 현대사의 파행을 묘사하고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가족의 수난과 이에 대응하는 가야 부인과 오봉 선생의 인고(忍苦), 지절, 초월(超越)의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부처님의 세상살이를 고통의 바다, 곧 고해(苦海)라 했다. 욕망의 불길이 꺼지지 않는 인간의 육신을 법화경은 ‘불난 절[火宅(화댁)]’에 비유하였다. 세상살이의 한복판에는 여덟 가지 고통[八苦(팔고)]이 있다고 불가(佛家)에서는 말한다. 태어나고 늙으며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에,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 하는 고통[愛別難苦(애별난고)], 미우면서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원증회고)], 구하나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구불득고)], 육체, 감각, 상상, 마음결, 의식의 작용이 빚어내는 고통을 합친 것이 팔고(八苦)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요조숙녀(窈窕淑女)요 현모양처(賢母良妻)인 가야 부인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수라도(修羅道)’를 헤치는 고통의 행로이다. 김정한의 여느 작품은 승부를 건 투쟁 일변도의 선명한 노선을 밟는데, 이 작품은 그 같은 단계를 하나 더 뛰어넘고 있다. 오봉 선생의 서릿발같은 기상과 지절 정신(志節精神)은 ‘송죽(松竹)’으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 유학의 혼을 당당히 이었고, 가야 부인의 효성 역시 그러하다. 게다가 가야 부인은 종교적 초월의 세계에로 발돋움하는 영적인 승리를 지향하므로 돋보인다. 가야 부인의 초월은 현실 도피가 아닌 그 극복이다. 그녀는 현실을 외면한 적이 없다. 가족을 위하여 살신성인(殺身成仁)에 가까운 헌신을 했고,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허드렛일까지 몸소 하며 모든 사람을 자애(慈愛)로이 대하였다. 이른바 부모 모시기[侍父母(시부모)], 손님맞이하기[接賓客(접빈객)]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불의(不義)한 세력에 고초를 받아 옥고(獄苦)를 마다 않는 시아버지를 깍듯이 공경하여 목놓아 울 줄 알았다. 그런 가야 부인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는 높은 체념(諦念)의 자세를 보인다. 가야 부인은 천수경 정도밖에는 불교의 진리는 잘 모르나, ‘마음이 부처님[心卽佛(심즉불)]’의 경지에 들고 있다. 시부의 뜻을 어겨서까지 미륵당을 세우는 가야 부인은 전통이 창조적으로 계승, 투영된 바람직한 한국 여인상의 전형이다. 김정한의 “수라도”는 한국 종교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준 걸작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69년에 발표하여 한국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 제3병동

 

1. 줄거리

이 작품은 중증 폐결핵에다 장질부사로 입원한 노파 오룡댁과 그의 딸 강남옥이라는 처녀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돈을 소유하지 못해 소외 계층이 된 이들이 입원한 제3병동은 ‘3등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건물부터 1, 2동(棟)과는 매우 다르다. 천장에서 무시로 물이 새어 뚝뚝 떨어지고 어둠침침한 골마루에 삐걱삐걱 소리나는 시커먼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다. 오룡댁 노파의 간호를 위해 그의 딸인 강남옥 처녀는 노파의 침대에서 숙식을 같이 한다. 그러다가 강남옥도 장질부사에 걸리는데 그녀에겐 입원비도 치료비도 없다. 의사 김종우는 딱한 처지에 있는 강남옥을 진찰해 주고 약도 지어 주고, 입원 수속할 형편이 못 되는 걸 알면서도 병원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강남옥의 매트리스도 구해다 준다. 같은 병실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딸이 가망 없음을 알고 퇴원하려고 짐을 챙기자 그 딸은 삶의 애착 때문에 하염없이 운다. 이들이 떠나는 애처로운 모습에서 삶의 회의를 느꼈음인지 강남옥은 한동안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오룡댁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고 간신히 얻은 매트리스 한 장마저 병원측에 발각되어 빼앗긴다. 그녀가 병원으로부터 받은 것은 밀린 치료비 청구서뿐이었다. 마침내 오룡댁은 죽고 병원측에서는 입원비를 다 내지 않았다 하여 노파의 시신을 사흘 동안이나 시체 안치소에 방치해 놓는다. 강남옥은 누구의 동정도 받기 싫은 심정에서 김종우 의사나 간호원들의 친절도 거북해 하며 결국 자신을 3등 인생이라고 자학한다. 그래도 시체실의 인부들이 산 사람은 먹고살아야 된다고 죽을 갖다 줄 때는 3등 인간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의 아버지 강 노인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지만, 모든 걸 체념한 듯 돌 같이 굳은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2. 핵심 정리

◎ 배경 : 병원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주제 : 근대화 물결 속에서 가난한 자의 소외와 삶의 애환

 

3. 이해와 감상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물질 만능주의 풍조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돈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자연히 소외 계층이 되고, 또 돈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인간미를 상실한 채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현실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기본으로 하는 병원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모녀는 병원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이 3등 인간인 모녀에게 살아 있는 양심으로 나타난 사람이 김종우이다. 착실한 의사의 아들로서 이른바 중학과 고등학교, 대학까지 일류란 데를 나와 레지던트 코스를 밟고 있는 젊은 의사 김종우는 전염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남옥 처녀의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김종우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의술을 베풀 줄 아는 사회 공헌형 인물로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서슴없이 도움을 베풀려는 의식, 즉 인간에 대한 존엄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김종우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 가난한 처녀를 적극적으로 치료하게 된다. 전염병을 앓는 어머니와 같은 숟가락을 사용하는 강남옥의 무지한 행동은 의학적으로는 몽매할지 몰라도 현대 의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적 감동과 충격이 김종우로 하여금 모녀에게 대가 없는 최선을 다하게 만든 것이다. 병원측의 눈을 피해 모녀를 무료로 치료해 주고 매트리스도 구해다 주는 등, 이러한 김종우의 행동은 물질 문명의 이기주의에 대한 인간적 대항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을 해소시키는 중개역을 한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정한은 의사 김종우를 통해 그간의 작품에서 보여 주었던 치열한 작가 정신을 재조립하고 있으며,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의 항거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결말은 오룡댁의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김종우의 행동하는 양심과 인간 됨됨이는 암담하지만은 않은 현실의 일면을 대변했다 하겠다.

 

▶ 평지

 

1. 줄거리

허 생원은 앉아서 당하기만 하다가 어느 날 땅을 불하받았다는 유력자의 비서와 소극적인 대결을 벌인다. 결국 비서의 코피를 터뜨리게 되어 폭행죄로 구류를 살고 나온다. 이 일로 허 생원에게는 대결을 통한 저항 이력이 붙게 된다. 구류를 살고 나오던 날, 그는 그의 평지밭에 ‘××특수 농작물 단지’라는 팻말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오랫동안 쌓였던 분노와 약자의 설움이 분출된다. 그는 ‘무지렁이’들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자해적인 항쟁을 벌인다. 이러한 허 생원의 적극적인 행동은 이전까지의 소극적 저항에 대한 반발인 동시에 소극적 대결의 실패 경험에 대한 새로운 현실 대응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즉, 이러한 허 생원의 자해 행위는 패배 의식이 아니라 자아 극복을 위한 행동의 역설적 표현인 것이다. 허 생원은 자신이 경작하던 농지가 농업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유력자의 손에 넘어간 사실에 분개하여 방화 행위까지 하지만, 성미가 칼칼하고 대체로 시름에 많이 잠기고 허무 의식이 강한 허 생원은 자기가 한층 더 처량스럽게 느껴진다.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인생을 머슴살이한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허 생원의 가정은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며 화목하게 살아가는 민주적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가장인 허 생원의 적극적 현실 대응은 구체적이고 따뜻한 생활 감각과 사리와 의리를 따져서 정당한 삶을 살아가는 반석 같은 가정을 구축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인 것이다.

 

2. 핵심 정리

◎ 배경 : 근대화 물결에 휩쓸려 ‘농업 단지 조성’ 사업이 벌어지는 농촌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주제 : 부당한 농촌 현실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3. 등장 인물

◎ 허 생원 : 부당한 압력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맞서는 토착 농민

 

4. 이해와 감상

“평지”는 농업 단지 조성이라는 이름 아래 유력자들이 자행하는 횡포를 그려 낸 소설이다. 여기에는 토착민들인 농민들의 생활에 대한 시각이 엿보이고, 그러한 시각은 그들에게 인간 생존권을 회복시켜 주는 마지막 방법인 저항적 행동을 취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 “평지”는 소외당한 민중의 삶에 초점을 두고 역사 밖으로 밀려난 토착 농민들과 그 주위의 사람들을 역사 안으로 끌어 들여서 그들에게 인간됨의 주권을 회복시켜 주고 있는 작품이다. “평지”의 허 생원은 비천한 자기 운명의 실체에 눌리지 않고 역사의 움직임에 스스로 투신한 사람으로서 자기들의 사회와 집단에 쏠려 오는 온갖 외적 파괴 작용에 대해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는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한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현실이 억압과 질식을 강요하는 까닭에 서민들과 가난한 자들의 심정에 황량함과 반항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김정한의 작품 세계가 부조리한 현실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현장에서의 생동적인 체험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진지한 삶을 보여 주려는 작가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김정한의 소설 작품들은 억압과 수탈 속에서 끝없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는 리얼리즘 계통과 토지 문제와 농민들의 애환을 그린 농민 문학 계통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문학 세계는 인간 존엄성에 입각한 휴머니즘 문학이며 민중 문학으로 평가된다.

 

 

김주영(1939~)

 

경북 청송 출생. 서라벌 예대 졸업. 1971년 <월간문학>지에 “휴면기”가 당선되어 등단. 그는 평범한 삶을 민족사의 비극과 관련시켜 보여 주고 있으며, 경험된 자기 세계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갖고 집착하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머저리에게 축배를”, “도둑 견습”, “천둥 소리”, “새를 찾아서”, “아들의 겨울”, “목마 위의 여자”, “과외 수업”, “천궁의 칼”, “붉은 노을”, “객주”, “외촌장 기행”, “겨울새” 등이 있다.

 

▶ 새를 찾아서

 

1. 줄거리

나는 선림원 사지의 답사 여행을 가기 위해서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러나 지각한 나를 기다리지 않고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버스를 따라잡기 위하여 택시를 잡았다. 택시로 양양까지 가는 도중, 어렸을 때 누나와 새를 후리러 다닐 적을 회상하게 되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나이 차가 열 한 살이나 났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누나는 거의 어머니 맞잡이였다. 그녀는 막내인 나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새집을 후릴 때, 가계가 넉넉한 집 아이들은 덴찌라고 불리는 손전등을 가지고 다녔다. 새집 구멍에다 갑자기 덴찌 불빛을 들이대면 새들은 그 갑작스런 불빛에 놀라 혼수 상태에까지 이르러 꼼짝하지 못한다. 이때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새를 잡아내는 것이다. 덴찌가 없는 누나와 나는 새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누나와 나는 획기적인 일을 하나 생각해 내게 되었다. 바로 우리 집도 새들이 곧잘 깃들이는 초가집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 우리는 새 후리기에 착수했고, 새 한 마리를 방안에 가두는 데에 성공했다. 어두운 방안에서 새를 잡으려고 난리를 피웠으나 결국 새는 잡지 못했다. 택시는 양양을 거쳐 다시 오색 약수터까지 갔으나 거기에서도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다. 밤중에 낙산과 설악산 주차장을 모두 뒤졌으나 실패했다. 나는 다시 오색 약수터로 돌아왔다가 아침에 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원림사지로 갔다. 인적 없는 그 곳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앉아 똑같은 구도의 풍경을 응시하다가 한 마리의 새가 솔방울이 되는 것을 보았다. 절터에서 내려와 긴 계곡을 걸어서 선림원 사지로 가는 길 초입에 이르렀을 때 일행을 만났다. 일행은 나보다 먼저 출발했지만 나보다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회상 속의 어린 시절

◎ 주제 : 아름다운 삶과 생명에의 추구

 

3. 등장 인물

◎ 나 : 회사의 월급쟁이

◎ 누나 : 야맹증이 있는 데다 사시(斜視)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인물들이 찾고 있는 ‘새’는 삶이요, 생명이요, 아름다움이다. ‘새’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지도 모른다. 새를 ‘산 채로’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도로(徒勞)가 필요하다. 날아다니는 새를 잡으려면 나도 끊임없이 떠돌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부터 산 채로든, 죽은 채로든, 많은 사냥감을 노획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용의 주도한 작전에 의거하여 몰이꾼처럼 추격해 가면 그만일 터이다. 그러나 찾고자 하는 대상이 살아 있는 채로의 아름다움이라면 새잡이 꾼처럼 밤새도록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다.

선림원 사지(寺址)를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나레이터가 어린 시절에 누나와 함께 체험한 새잡이 이야기가 회상의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그 새잡이는 기다림과 헛된 노력의 연속이다.

 

▶ 아들의 겨울

 

1. 줄거리

학교에 입학하는 날, 7살 난 무도는 어머니한테 붙잡혀 목욕을 한 후 다섯 개의 단추가 온전히 제자리에 달려 있는 새 옷을 입고 뜰을 나섰다. 이발소를 지나 여인숙 앞에서 여인숙 집 딸 희자를 만났다. 희자는 저능아여서 나이가 14살인 데도 학교에 갈 엄두를 못 내는 계집애로 무도와 친한 사이였다. 무도는 희자와 함께 옹기 굴에서 놀다가 옹기점 사내에게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고 해가 진 뒤에 정신이 든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무도는 희자와 함께 도수장에 가서 소 잡는 것을 몰래 구경하다가 우연히 백정인 칠성이 아버지를 박술이가 낫으로 찔러 죽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언젠가 보았던 박술이와 어머니가 정사를 나누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며칠 후 무도는 채순미 선생이 급히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을 보고 뒤쫓아갔다. 채순미가 간 곳은 경찰 지서였다. 거기에서 희자 삼촌이 칠성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문 받는 것을 본 무도가 갈등 끝에 박술이가 칠성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경찰 지서에 말했다. 이로 인해 희자 삼촌은 풀려나고 박술이는 끌려갔다. 무도는 마을에서는 영웅이 되었지만 어머니께 종아리를 맞는다. 무도는 자기가 맞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동생 순도를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순도 친구인 사팔뜨기 계집애를 놀려 주었다. 어느 날, 무도는 물가에서 순도를 만나 헤엄치기 시합을 했다. 형을 이겨 신이 난 순도가 혼자서 헤엄을 치다가 물에 빠지자 무도는 순도가 죽게 내버려두었다. 살인 사건 연루 혐의로 도망 친 줄 알았던 어머니가 경찰 지서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순도의 시체를 발견했다. 가슴을 쥐어뜯는 어머니의 발악적인 슬픔, 너무나 처참한 모습으로 확인된 순도의 죽음, 그리고 애매하게 일그러진 마을 사람들의 표정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던 무도는 자신의 한 몸뚱이를 용납해 줄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마을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음을 눈치 챈 무도는 버스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어두운 기억을 가진 소년의 성장기

◎ 주제 : 소년기의 사랑의 갈등과 절망

 

3. 등장 인물

◎ 박무도 : 주인공. 최 과부의 첫째 아들. 자기가 하려는 일은 꼭 하고야 마는 개구쟁이.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함.

◎ 박순도 : 최 과부의 둘째 아들. 영악하고 용의주도함.

◎ 최 과부 : 무도의 어머니

◎ 희자 : 결단력이 없는 14살 난 저능아

◎ 희자 아버지 : 마을 의용 소방 대장. 양조장의 공동 투자자

◎ 채순미 : 무도의 담임 선생

 

4. 이해와 감상

“아들의 겨울”은 1979년 <전예원>에서 발간된 장편 소설로서, 숙명적이고도 비극적인 삶 속에 던져진 여인, 즉 주인공 무도의 과부 어머니의 삶을 기반으로 하여 살아가는 한 소년의 오이디푸스적인 사랑이 왜곡된 형태로 세계와 맞부딪치며 일으키는 갈등과 외로움, 그리고 절망의 몸짓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런 모성 탈환을 위한 처절한 몸짓 주위에는 반드시 도덕 가치를 여지없이 박살내며 튕겨지는 야성 그대로의 남성들이 둘러싸고 있기 마련이고, 이런 남성 주인공들은 일상적인 도덕률이나 법규의 탈을 완전히 벗은 채 생생한 욕구를 드러낸다. 과부 어머니가 딴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동생만을 사랑하는 것 같자 주인공은 외톨이가 된 괴로움에 싸인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줄 유일한 세계는 ‘희자’라는 네 살 위인 반편 소녀뿐이지만 그녀는 저능아이므로 주인공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하나의 여인으로 ‘채순미’라는 담임 선생이 있지만 그녀도 자신을 가늠하기에도 힘겨워 하는 판에 주인공에게 손이 미칠 수 없는 먼 거리의 여성이다. 소년은 외로워하고 절망하다가 결국 ‘고향’을 떠난다. 친숙한 세계로부터의 아픈 단절인 것이다.

▶ 외촌장 기행

 

1. 줄거리

‘나’는 산골의 작은 여인숙에 들렀다가, 대낮부터 통정을 하고 있는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여자가 밖으로 나와서 술 마시러 갈 것을 제의한다.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여자는 자기가 6개월 전에는 학교 선생님이었으며(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름은 분옥이라고 소개한다. 남자가 잠든 틈을 타서 빠져 나온 여자와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나’는 도덕적 갈등 없이 쉽게 정사를 치르게 된다. 한밤중에 가게 딸린 방에서 잠을 자던 ‘나’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여인숙의 그 사내(야바위꾼)에게 봉변을 당한다. ‘나’는 다음날 곧장 그곳을 뜨려 했던 당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그들을 따라 장터로 간다. 야바위꾼 사내는 걸쭉한 입담으로 촌사람들을 끌어 모아 놓고는 약 선전을 한다. ‘나’는 가겟방 숙소에 와서 잠깐 잠이 든다. 벽면을 타고 들려 오는 남녀의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역시 야바위꾼 사내와 분옥이라는 여자다. 그들은 예의 그 천박하고도 끈적끈적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특히, 여자는 얼른 정착하자고 조른다. 사내는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여자의 태도를 질타한다. 그러나 여자는 끄덕도 않고 계속 말대꾸를 한다. ‘나’는 방에서 나와서 읍내까지 걷기로 한다. 버스가 오지 않아도 한 시간이면 읍내에 당도할 것 같다. 그때 트럭이 보인다. ‘나’가 손을 들자 트럭은 멈추고 운전사 옆에는 분옥이라는 그 여자가 ‘나’를 모르는 체하고 앉아 있고 한 손으로는 운전사의 허리를 /끼고 있다. 짐작하건대, 그 야바위꾼이 낮잠 든 사이에 또 다른 사내를 잡은 것이다. 서너 시간 후면 역시 야바위꾼도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또 분옥이, 그 여자를 따라올 게 틀림없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산골의 ‘외촌장’이라는 조그만 장터)

◎ 성격 : 사실적, 풍자적, 희화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 : 짧고 투박한 하층민의 언어

◎ 구성

발단 - ‘나’는 방을 예약하러 갔다가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됨.

전개 - ‘나’와 여자가 함께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 남자에게 곤욕을 치름.

절정 - 그들이 장꾼들을 상대로 약장수 노릇 하는 것을 보다가 멱살잡이를 당함.

결말 - 여자는 남자가 잠든 사이 다른 남자를 만나려고 트럭에 승차했다가 나와 마주침.

◎ 제재 : 떠돌이 하층민의 삶

◎ 주제 : 떠돌이 하층민의 삶과 성 윤리의 타락

◎ 출전 : <문예중앙>(1982>

 

3. 등장 인물

◎ ‘나’ : ‘민세철’이라는 이름의 작중 화자로서 직업도 신분도 알 수 없는 보통의 남자. 산골 마을에서 하룻밤 지내면서 알게 된 남녀의 행적을 추적, 독자에게 보여 준다.

◎ 분옥 : 뚜렷한 목적 의식이나 가치관도 없이 야바위꾼 남자에게 얹혀 지내는 여자. 자유 분방한 관념을 지녔다.

◎ 야바위꾼 : 남자. 단순하고 거친 성격을 지녔으며 본능적 욕구대로 산다.

 

4. 이해와 감상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삶의 터전이 없는 하층민의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서 ‘외촌장’은 장터를 가리킨다. 장터는 탈(脫) 일상의 거리로, 기이하고 우연한 만남이 가능하고 낯선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공간이다. ‘나’는 거기서 야바위꾼 사내와 분옥이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그들은 성 윤리와는 거리가 먼 인간들이다. ‘나’는 그 여자와 통정을 하며 두 남녀의 미묘한 애증도 체험하는 이 작품은 김승옥의 “무진 기행”이나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처럼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무진 기행”이 1960년대의 정신적 폐허를 함축하고, “삼포 가는 길”이 탈도시적 소외 현상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내팽개쳐진 성 도덕, 가치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전통적 윤리관을 조금은 가지고 있는 ‘나’가 일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동질을 느끼나, 그녀는 성을 단지 쾌락의 도구로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것도, 근엄한 것도 없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사기든 야바위든 관계치 않는다. 하루 벌어먹고 살면서 쾌락을 얻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도 없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잠자리에서는 원색적인 말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내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잊어버린다. 이러한 새로운 사랑법 내지 윤리관은 마지막 장면에서 충격적으로 제시된다. ‘나’가 가겟집에 투숙한 그들을 확인하고 집을 나와 읍내를 향해 걷고 있는 동안, 여자는 남자가 잠든 서너 시간을, 또 다른 욕정으로 태우기 위해 트럭 운전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친 것이다. 트럭에 승차한 그녀의 ‘나’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은 어쩌면 나의 소심함, 그리고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도덕이란 꼬리표에 대한 비웃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잡스9급
 PDF 교재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
 
유튜브 강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