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1901~1936) |
본명 대섭(大燮). 서울 출생. 경성제일고보 재학시 3․1운동에 참가하여 4개월 간 복역, 출옥 후 상하이[上海]로 가서 위안장 대학[元江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부터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계에 투신, 이듬해에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하였다. 1930년에는 “동방의 애인”, 1931년에는 “불사조(不死鳥)”를 각각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1933년에는 “영원의 미소”, 1934년에는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다. 1935년에는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1981년에는 일본에서도 이 책이 번역․간행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집으로 “그 날이 오면”이 있다.
▶ 상록수
1. 줄거리
한 신문사 주최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한 박동혁과 채영신은, 어느 날 주최측이 베푼 위로회에서 함께 보고 연설을 한 것을 계기로 알게 된다. 학교를 졸업한 뒤 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교청년연합회 특별 파견자의 신분으로 경기도 청석골로 각각 내려가 농촌 사업에 헌신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형편과 사업의 진행 과정을 편지로 의논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동지 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여 혼인을 약속하게 된다. 그러던 중 영신이 청석골의 ‘청석 학원’ 낙성식에서 맹장염으로 졸도한다. 동혁은 수술을 한 영신의 곁에서 정성껏 간호한다. 그런데 간호를 하고 다시 학산리로 돌아와 보니 동네의 악덕 지주이자 고리 대금업자인 강기천이 동혁의 농민 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농우회원들을 매수하는 등 온갖 농간을 부리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동혁의 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동혁은 동생의 죄를 자신이 대신 뒤집어쓰고 잡혀 간다. 그 후 감옥에서 풀려 난 동혁이 청석골에 갔을 때 영신은 과로로 병이 재발하여 이미 죽어 버린 뒤였다. 영신의 죽음을 알고 난 동혁은 이제부터는 두 사람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한곡리로 돌아온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농민 교화 소설(농촌 계몽 소설)
◎ 배경 : 1930년대의 가난하고 낙후된 농촌(청석골)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평이하고 감성적이며 호소력이 강한 문체
◎ 의의 : 실천적 인물을 소재로 한 본격 농촌 계몽 소설
◎ 구성
발단 - 동혁과 영신은 농촌 계몽 운동에 투신함.
전개 - 동혁과 영신의 활동과 일제의 방해
위기 - 과로로 인한 영신의 입원. 지주와 일제의 농간에 의해 동혁은 수감됨.
절정 - 영신의 헌신적인 노력과 죽음
결말 - 동혁은 영신이 못다 이룬 농촌 계몽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함.
◎ 주제 : 농촌 계몽 운동을 하는 남녀의 순결한 애정. 농촌 계몽을 위한 헌신적 의지
◎ 출전 : <동아일보>(1935)
3. 등장 인물
◎ 박동혁 : 의지적인 농촌 계몽 운동가
◎ 채영신 : 동혁의 애인. 여성 기독 청년회 특파원으로 청석골 원재 집에서 머무르면서 계몽 운동에 헌신적인 활동을 보임. 인내력이 강하고 신중한 성격
4. 이해와 감상
심훈의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 소설 특별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남녀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의 모델은 실제 인물들. 충남 당진에서 농촌 계몽 운동을 하고 있던 심훈의 조카 심재영(沈在英)이 박동혁의 모델이고, YMCA의 후원을 받으며 경기도 화성군 샘골에서 농촌 교육과 농촌 계몽 운동을 하다 병으로 죽은 최용신(崔容信)이 채영신의 모델이다. 위 줄거리에서 보듯 “상록수”는 농촌 계몽 운동을 시대적 배경으로 깔고 있다. 농촌 계몽 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맞서 192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1931년 동아일보사가 창간 십 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브나로드(‘민중 속으로’라는 뜻의 러시아어) 운동을 벌임으로써 엄청난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번져 나간다. 그러나 1935년에 이르러 일제의 탄압과 규제 때문에 그만 중단되고 만다. 이처럼 “상록수”의 탄생 배경에는 브나로드 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소설을 통해서라도 이 운동의 정신을 지속시키려 한 동아일보사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씌어진 “상록수”는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한 축으로 삼아,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하는 지식인들의 모습과 당시 농촌의 실상을 감동적으로 그림으로써, 농민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이 소설은 박동혁과 채영신으로 대표되는 이상적 인간상의 제시와 함께 당시 열악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농촌의 현실과 이의 극복을 위한 노력을 형상화하였다. “상록수”의 두 남녀 주인공은 이 땅의 브나로드(1870년 러시아에서 학생들이 벌인 계몽 선전 운동)운동의 선구자로서 철저한 극기 정신으로 암울한 일제 치하의 농촌을 구제하기 위한 희생적이며 선각자적인 행동과 헌신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채영신은 자신을 한없이 억제하면서 독신주의자를 자처했고 끝내 노처녀로 숨을 거둔다. 그는 기독교적 휴머니즘 정신에 따라 이를 실천해 나갔다. 흔히 기독교적 휴머니즘이라고 하면 개량주의적 자세라고 비판하지만 그녀는 “아는 것은 힘, 배워야 산다.”며 문맹 퇴치를 주장하는 동시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 말라”, “우리를 살릴 사람은 결국 우리뿐이다”에서 보듯이 무엇보다도 자신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하려는 자립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내보이고 이를 실천하였다. 또한 박동혁 역시 영신 못지 않게 투철한 계몽주의자로서 남녀의 애정보다는 농촌 계몽 사업을 더욱 중시하였다. 거의 금욕까지 해 가면서 영신과의 마지막 순결을 유지한 인물이었다. 또한 그 역시 강한 이념과 의지의 소유자이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남다른 뜨거운 눈물을 간직한 인물이었다. 간추린다면, 박동혁은 의지적인 농촌 계몽 운동가이고, 채영신은 박동혁의 애인으로서, 여성 기독 청년회 특파원으로 청석골 원재의 집에 머무르면서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적인 활동을 보이는, 인내력이 강하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당시 신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산골에서 농촌 운동을 하다 과도로 숨진 최용신에 대한 신문 기사였다. 여기에다 심훈은 또한 그때 경성 농업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에 돌아와 ‘공동 경작회’를 만들어 농사 개량과 문맹 퇴치 운동을 벌이던 자신의 장조카 심재영을 모델로 하여 “상록수”를 썼던 것이다. 말하자면 심재영을 박동혁, 최용신을 채영신으로 바꾸고, ‘공동 경작회’를 농우회로 바꾸었으며, 그밖에 지명도 이름만 바꾸었을 뿐 실제 지역을 무대로 하는 등 실제적인 것을 토대로 하고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한편의 작품으로 완성했던 것이다. 결국 “상록수”는 문맹 퇴치, 미신 타파 같은 소극적 계몽 운동의 중요성을 부각한 작품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제 운동을 벌여야 함을 강조한 작품이다. 심훈은 이러한 운동이 탁상공론이나 이론적인 것이 아닌 대지에 뿌리박은 꿋꿋한 상록수처럼 실제적인 현실에 토대를 두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보여 주고 있던 청년층에게 주인공들의 희생적인 삶과 사랑의 지고성을 보여 주려 한 심훈의 작가적 자세는 참으로 소중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이 소재만 농촌에서 따 왔을 뿐 농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으므로 농민 소설이 아니라거나, 이 소설이 표방하는 계몽이 농민의 현실에 바탕하지 않은 지식인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계몽이라는 점에서 관념적이고 감상적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참고> “상록수”의 제목에 얽힌 일화
박동혁의 모델로 된 심재영의 회고에 따르면 “삼촌은 나보다 11년 연장이었기에 매우 친하게 지냈지요. 작품을 다 쓰고 나서 제목 문제로 고심하더군요. 내게 골라 보라고 내놓은 것은 ‘해당화’, ‘여명’, ‘상청수(常靑樹)’, ‘상록수’ 등이었지요. 나는 ‘상청수’보다 ‘상록수’ 쪽을 권했어요.”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상록수’는 실상 ‘해당화’였고 이는 작품 중 ‘해당화 필 때’라는 제목의 한 장이 말해주듯, 동혁이 영신을 처음 껴안을 때의 대사 그대로이다. ‘해당화는 지금 이 가슴속에 새빨갛게 피어 있지 않았어요.’라고 동혁이 말하는 대목, 그러니까 이 작품은 사랑의 이야기였던 것”이라고 하여 “상록수”가 남녀간의 애정이 중심인 대중 통속 소설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고> 농민 문학에 대하여
□ 농민 문학의 등장 배경 : 농민 문학이란 농촌의 문제와 농민의 삶을 그린 문학을 말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농민 문학은 1930년대와 1970년대에 특히 활발하게 나타났다. 1930년대에 농민 문학이 활성화되었던 배경에는 더욱 가혹해진 일본의 경제 수탈 정책이 놓여 있다. 당시 조선의 전체 인구 중 80%가 농민이었으므로 일제의 경제 수탈은 농촌과 농민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토지는 소수의 일본인 지주와 친일 지주의 손에 집중되었고,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의 처지로 떨어졌다. 농민들은 궁핍에 시달렸고, 만주나 간도 등지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제의 수탈에 맞서 농민들은 농민 조합을 결성하고 소작 쟁의를 벌였다. 그리고 학생과 지식인들은 1920년대 천도교 중심의 조선 농민사의 활동을 시작으로 YMCA나 YWCA의 계몽 운동, 1929년 조선일보사의 문자 보급 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농민 계몽 운동을 벌이며 적극적으로 농촌 문제에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가들이 계몽 운동과 농촌의 실상을 작품화함으로써 1930년대에 ‘농민 문학’이라는 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 1930년대 농민 문학의 유형 : 1930년대 농민 문학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카프 문학 쪽, 1920년대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문학을 논하던 카프 문학 진영은 1930년을 기점으로 농민 계급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평론가 안함광과 백철의 이른바 ‘농민 문학 논쟁’을 거치면서 이론적인 토대로 형성해 간 카프 진영은 그 성과물의 하나로 <농민 소설집>을 묶어 낸다. 특히 카프 작가 이기영은 “서화(鼠火)”(1933), “고향”(1934) 등을 통해 농민의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함으로써 1930년대 농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다. 이기영 외에 조명희의 “낙동강”, 권한의 “목화와 콩”과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사실주의이고 계급주의적인 경향을 고수한 카프 진영의 농민 문학은 1930년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현실적인 농민문학 유형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유형은 민족주의 문학 쪽. 합법적인 농민 계몽 운동과 관련된 작품이 대부분인데, 이를테면 수양동우회의 이념에 따라 펼쳐진 농민 교육 운동의 산물인 이광수의 “흙”(1933)이나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를 중심으로 펼쳐진 브나로드 운동의 산물인 심훈의 “상록수” 등이 그것이다. 일반 대중의 호응은 컸으나 지식인 중심의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계몽 사상 고취라는 한계를 가져 관념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농민 자각형의 유형. 박영준의 “모범 경작생”이나 이무영의 “제1과 제1장” 등이 대표작이다. 이것은 농민 계몽 운동과 맥을 함께 하는 측면도 있지만 비판적인 농민 의식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앞의 것과 차이가 있다. 그 외에 김유정의 “봄․봄”(1935), 이태준의 “농군”(1939), 박화성의 “고향 없는 사람들”(1936) 등도 농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들이다.
▶ 직녀성
1. 줄거리
인숙은 이한림의 막내딸로서 전통적 가문의 가정교육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녀는 여덟 살 때 두 살 아래인 윤 자작의 막내아들 봉환과 약혼을 하였고 열 네 살 때 결혼을 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혼인을 하게 된 인숙은 신랑과 함께 지내지도 못하고 어린 시누이와 함께 자면서 심한 시집살이를 겪는다. 그녀는 친정 부모님이 그리워 죽을 지경이었으나 시댁에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달려갔으나 이미 운명한 뒤였다. 겨우 초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시증조모가 돌아가셨다. 겨우 삼 년이 지났을 때에야 남편인 봉환과 부부로서 생활하게 되어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인 봉환이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일본으로 간 남편 봉환은 자기를 견우성에, 인숙을 직녀성에 비긴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봉환은 일본에서 신여성과 깊이 사랑에 빠지게 되어 방학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급기야 봉환은 인숙에게 이혼할 것을 요구해 온다.
2.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5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장편 소설로서 “영원의 미소”, “상록수”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직녀성”은 주인공 인숙의 비극적 삶의 굴절을 통하여 조혼(早婚)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관을 바탕으로 한 신식 결혼관을 주제 의식으로 하는 계몽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주제 : 조혼 제도의 폐습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 결혼의 필요성).
안국선(1878~1926) |
신소설 작가. 호는 천강(天江). 청․일 전쟁(淸日戰爭)이 발발한 1894년 도일. 경응의숙 보통과와 동경전문학교에서 수학한 대표적인 개화 지식인의 한 사람이다. 귀국 후에 정치 운동을 하다가 참형을 선고받기도 하고 전라도에 유배되기도 하였었다. 한일 합방 후 1911년에는 군수가 되기도 하였으나 6개월만에 사직하고, 실업계에 투신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정치원론”(1907), “연설법방”(1907) 등을 저술하기도 하였으며, 1915년 이 땅의 최초의 근대적인 단편 소설집 <공진회(共進會)>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공진회>는 그 내용이 친일적인 성향을 띠고 있어 훗날 안국선이 친일 인사(親日人士)로 변모하게 됨을 잘 알려 준다. 그의 작품 세계가 지닌 특징은 현실 비판적인 요소의 우화적 표출과 함께 시대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적 일환의 사실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 금수회의록
1. 줄거리
이 작품은 ‘금수 회의소(禽獸會議所)’라는 모임 장소에서 8종류의 동물들이 회의를 통하여 인간의 온갖 악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회장인 듯한 물건’이 금색 찬란한 큰 관을 쓰고 영롱한 의복을 입은 이상한 태도로 회장석에 올라서 개회 취지를 밝힌다. 이 회의의 안건은 ‘제일, 사람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할 일, 제이,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할 일, 제삼,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인류로서 자격이 없는 자와 있는 자를 조사할 일’ 등이었다. 이러한 안건을 가지고 토의를 시작한다. 이 때 제일석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물을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내용은 [반포의 효(反哺之孝)]를 예로 들면서 인간을 비난한다. 그리고 제이석의 여우가 등단하여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듯한 간사한 목소리로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들면서 인간의 간사함을 성토한다. 제삼석의 개구리는 [정와어해(井蛙語海)]의 예를 들어 분수를 지킬 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인간을, 제사석의 벌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예를 들어 인간의 이중성을, 제오석의 게는 [무장공자(無腸公子)]의 예로써 외세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비난한다. 그리고 제육석에 앉아 있던 파리는 [영영지극(營營之極)]을 들어 인간의 욕심 많은 마음을, 제칠석에서는 호랑이가 [가정이맹어호(苛政而猛於虎)]를 들어 인간의 험악하고 흉포한 점을 성토한다. 제팔석에서는 원앙이 [쌍거쌍래(雙去雙來)]를 예로 들어 인간의 더럽고 괴악한 심성을 폭로한다. 끝으로 회장이 나서더니, “여러분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다 옳으신 말씀이오. 대저 사람이라 하는 동물은 세상에 제일 귀하다, 신령하다 하지마는 나는 말하자면, 제일 어리석고 제일 더럽고, 제일 괴악하다 생각하오. 그 행위를 들어 말하자면 한정이 없고 또 시간이 진하였으니 고만 폐회하오.”라며 폐회를 선언한다. 이 때 그 회의 장소에 모였던 짐승들은 일시에 나는 자는 날고, 기는 자는 기고, 뛰는 자는 뛰고, 우는 자도 있고, 짖는 자도 있고, 춤추는 자도 있어서 인간의 온갖 악증을 성토하며 돌아간다. 이러한 동물들의 인간 세태 성토 광경을 보고들은 ‘나’는 “내가 어찌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욕을 보는고!”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기독교적 설교 형식을 빌어 인간 구원의 길을 역설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마지막 설교는 다음과 같다. “예수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 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2. 핵심 정리
◎ 갈래 : 신소설, 단편 소설, 우화 소설, 액자 소설, 정치 소설
◎ 성격 : 풍자적, 우화적, 토론체
◎ 문체 : 산문체, 연설문체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의의 : 개화기의 혼란한 세태를 비판한 우화․정치 소설
◎ 구성 : 여덟 마리의 동물이 차례로 인간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회의 광경을 ‘나’가 관찰
사회자의 선언
제일석(第一席) - 까마귀 : 반포지효(反哺之孝) - 부모에 대한 효도 강조
제이석(第二席) - 여우 : 호가호위(狐假虎威) - 간사한 행동 경계
제삼석(第三席) - 개구리 : 정와어해(井蛙語海) - 분수를 지킬 줄 모르는 행동 경계
제사석(第四席) - 벌 : 구밀복검(口蜜腹劍) - 정직함 강조
제오석(第五席) - 게 : 무장공자(無腸公子) - 지조와 절개 강조
제육석(第六席) - 파리 : 영영지극(營營之極) - 형제, 동포간의 우애 강조
제칠석(第七席) - 호랑이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포악하지 말 것을 강조
제팔석(第八席) - 원앙 : 쌍거쌍래(雙去雙來) - 부부 금슬 강조
◎ 제재 : 동물 회의
◎ 주제 : 인간 사회의 모순과 정치 비리 풍자. 인간 세계의 모순과 비리와 타락성 풍자
◎ 출전 : <금수회의록>(1908 황성 서적업 조합 간행)
3. 등장 인물
◎ 까마귀 : 불효함 풍자
◎ 여우 : 외세에 의존하여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고 동포를 압박하는 일 풍자
◎ 개구리 : 사람들은 좁은 소견으로 외국의 형편을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나라는 망하여 가는데 썩은 생각으로 갑갑한 말만 함.
◎ 벌 : 입으로는 꿀 같은 말을 하고 배에는 칼을 품은 마음을 지님.
◎ 게 : 인간의 창자는 썩어서 옳은 창자를 가진 사람이 없음.
◎ 파리 : 이익만을 쫓아 서로 싸우는 인간 풍자
◎ 호랑이 : 인간의 사나움 지적
◎ 원앙 : 사람의 음란함 풍자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8가지의 동물이 인간의 제반 악증(惡症)을 성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간 사회와 정치의 비리를 풍자하고 있으며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인간을 논박한다. 참여 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며 ‘나’라는 1인칭 관찰자가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를 성토하는 회의장에 들어가 동물들의 연설을 기록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의 구성을 이루는 회의 형식은, 비록 대화식의 토론 진행은 아닐지라도 단상에 나와 발언할 때에는 반드시 회장으로부터의 발언권을 얻고 나오는 것이라든지, 합당한 발언(현실에 대한 비판이 절정에 이르는)에 이르러서는 ‘손뼉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공명을 얻는 광경 등 일련의 회의 진행이 근대의 정견 발표회를 방불하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이 소설은 동물들의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 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즉 우화 소설이며 또한 정치 소설로서 계몽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곧 여덟 가지의 금수를 등장시켜, 그들이 인간의 제반 악증(惡症)을 성토하는 형식에 의해 암시되고 있다. 인간을 성토하는 연사로 등단한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새 등은 연설을 통하여 인간을 논박하는데, 추상적인 내용을 동물들의 습성에 의탁해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설정된 것이 특징이며, 그것이 풍자성을 띠고 생생하게 부각되고 있다. “금수회의록”에서 드러난 작자의 태도는 당시 사회와 국민들에 대한 강렬한 풍자와 비판 정신이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이제까지 제기된 문제를 기독교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안이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수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느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 자매는 깊이 깊이 생각하시오.”로 끝나는 대목은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을 침탈하고 내정(內政)의 부패가 극심하던 시기에 전혀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발전에 대한 이해와 현실의 문제점을 통찰하는 예지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안국선으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한계로 보이며, 이 점은 그가 친일 인사로 변절하여 ‘공진회’를 쓴 사실에 견주어 볼 때 충분히 검증될 수 있는 사실이다.
<참고> 우화․정치 소설
주로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행위의 우매함과 타락함을 풍자, 비판하고 이를 계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특이한 기법의 서사 문학이다. 이런 양식의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의도된 저항 정신의 발로이자 건강한 도덕심을 제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정치 소설은 정치 사상이 지배적 역할을 맡고 있거나 정치적 환경이 지배적인 배경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국민의 정치적 계몽과 개인적 정견 발전 내지 사회 개량 수단으로 나타나거나, 국권 신장 의식을 반영하고 부패 관료의 학정을 폭로하는 풍자적 무기로 이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소설을 포함시킬 수 있다.
<참고> “금수회의록”의 문학사적 의의
“금수회의록”은 안국선이 1908년 2월 황성 서적업 조합에서 발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안국선의 대표적 작품으로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 사회를 풍자한 우화 소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한 동물로는 사회를 맡은 익명의 동물과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토론회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인간들의 비인간성과 부도덕을 비판하고 토론하고 있다. 따라서 “금수회의록”은 토론체 소설이다. 또한 그 내용이 정치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에서 정치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 인력거꾼
1. 줄거리
김 서방은 그의 아내로부터 술을 끊고 성실히 살아갈 것을 권유받는다. 그 말에 김 서방은 “그러세! 제길, 술 먹으면 개자식일세.”라면서 다짐한다. 김 서방 내외는 ‘술 끊고 부지런히 살기로 다짐’한 후, 부자 되고 잘 살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 밝은 날을 맞았다. 김 서방의 아내가 머리에 꽂은 귀이개를 빼내어 가지고 구멍가게에서 쌀 서너 움큼을 팔아다가 부엌 구석의 검불을 닥닥 긁어 밥을 지어먹은 후에 김 서방은 인력거를 세 얻으러 나간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는 인생의 고달픈 생활이 절실하게 그려져 있으며, 성실한 삶을 향한 인간적 노력이 담겨 있다.
2. 이해와 감상
“인력거꾼”은 단편집 <공진회>(1915)에 수록된 연작 소설 중의 한 편이다. <공진회>에 수록된 “기생”, “시골 노인 이야기”와 함께 계몽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력거꾼 김 서방이라는 전형적 인물을 이야기체의 해설적 문장을 통해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록 문체상으로는 전근대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으나 압축된 대화나 묘사적 표현이 눈에 두드러진다. 따라서, 일상어를 통한 실생활을 묘사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화기 신소설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서술자의 관점에서 교훈주의적 의식을 지나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금수회의록”과는 달리 구국과 계몽 의식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 비판 의식이 약화되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생활․오락성이 강한 교훈적 목적과 총독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작가 의식이 변절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문학관의 변화는 정치적 이념 구현을 위한 교훈적 계몽이라는 목적 의식의 과잉 상태에서 비롯된다. 안국선의 이러한 문학관의 변화는 그가 청도 군수를 사임하고 나서 다시 소설에 관심을 두어 “기생”, “시골 노인 이야기”, “인력거꾼”을 연작 형태로 수록하여 간행한 단편집 <공진회>에 잘 나타나 있다. <공진회>는 모순된 사회 현실을 철저히 규탄하는 “금수회의록”과는 달리 나약한 방관자, 패배주의에 빠져 버린 현실 순응주의자로서 일제의 통치 질서의 미덕을 그리고 있는 친일적인 작품집이다.
안수길(1913~1990) |
소설가. 호는 남석(南石). 함남 함흥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수학. 1935년 <조선문단>에 “적십자 병원장”이 당선되어 등단함. 간도에서 주로 <만선일보>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만주에서의 유민의 삶을 그린 작품이 많다. 해방 후 귀국하면서부터 사회와 밀착된 소재의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는데, 광복 직후의 혼란상을 그린 “여수(旅愁)”가 그 대표작이다. 그는 현실의 아픔에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예리하게 묘사하려는 리얼리스트였는데, 그것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 “북간도”이다.
▶ 북간도(北間島)
1. 줄거리
월강(越江)이 금지되어 있는 두만강 건너편 비옥한 토지를 개간하여 이한복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간도(北間島)에서 농사를 짓는다. 어느 날 밤, 몰래 감자를 가져 온 그는 아들 장손(2대) 때문에 관가에 잡혀가서 신관 사또에게 당당히 북간도의 현실을 말하고는 곤장 열 대를 맞고 풀려난다. 한편, 사또는 이한복을 다시 불러 함께 백두산 정계비를 확인하기에 이르고, 이후로 정부의 협조로 북간도의 이주가 시작된다. 이런 사실을 안 청국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그러나 이한복을 중심으로 한 비봉촌 사람들은 끝까지 항거한다. 어느 날, 창윤(3대)이 청국인 지주 밭에서 감자를 캐다가 잡혀 청국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한복은 손자의 억지 변발을 가위로 자르다가 분함에 쓰러져 죽고 만다. 비봉촌에는 차츰 청국인 지주 동복산의 주구(走狗)로 변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그의 송덕비를 세우게 된다. 그날 밤 송덕비 비각이 불타고, 창윤은 용정으로 도망가서 사포대에 지원한다. 얼마 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살았으나, 자식 정수(4대)의 교육과 지주의 잦은 압력으로 용정으로 옮긴다. 정수는 신명 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창윤은 기와 굽는 일이 잘 되어 가는데 1차 세계 대전이 터진다. 정수는 자신에게 항일 의식을 길러주던 교사 주인태와 같이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고 만세를 부르짖는다. 김좌진 장군 휘하에 있는 정수는 일본군과 교전도 하였으나 주위의 설득과 애인 영애의 권유로 자수, 형(刑)을 살고 나온다. 옥에서 나온 정수는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가지나 다시 잡혀 옥에 갇힌다. 1945년 8월 15일, 정수는 영애의 마중을 받으면서 감옥에서 나온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대하 소설, 역사 소설
◎ 배경 : 시간(1870년 조선 말기부터 광복까지) / 공간(만주의 북간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경향 : 사실주의
◎ 의의 : 염상섭, 박경리 등과 함께 민족적 리얼리즘 작가로서 간도 이주민의 투쟁으로 점철된 삶과 애환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 구성
1부 - 이한복 일가, 북간도 비봉촌 이주. 청국 관헌과 토호들의 횡포로 고난을 겪음.
2부 - 1909년 간도 협약으로 더욱 악화된 조선인 이주민의 생활
3부 - 청인들의 압력으로 비봉촌을 떠나 용정에 정착. 대화재로 기와 부업이 활기를 띰.
4부 -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청인들의 배일 감정 고조. 조선인 이주민들의 독립 운동
5부 - 일본군에 대항하는 독립군의 항전. 정수의 활약상. 일본의 패배와 함께 정수의 출감
◎ 제재 : 4대(代)에 걸친 이민 수난사
◎ 주제
① 땅에 대한 농민(간도 유민)들의 애착과 강렬한 민족 의식, 자주 정신
② 한민족의 주체적 저항과 창조적 삶의 역사
◎ 출전 : 1959~67년까지 <사상계> 연재. 5부작
3. 등장 인물
◎ 이한복(1대) : 자주 정신이 강하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당을 차려 손자를 가르친다. 민족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 간도 이주 1세대
◎ 장손(2대) : 청국인 지주(地主) 송덕비 제막에 협조하지 않는다.
◎ 창윤(3대) : 송덕비 비각을 불사르고 용정으로 가 사포대에 가입하고 사포대를 조직
◎ 정수(4대) : 4대 중 공부를 가장 많이 했고 독립군에 가담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 최칠성 : 현실주의자
◎ 장치덕 : 현실주의자도 아니고 이상주의자도 아닌, 중간적 인격자
4. 이해와 감상
어느 개인보다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다룬 서사시적(敍事詩的) 성격을 지니고 있다. 1870년경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의 사이에 이한복 일가 4대가 겪는 수난과 민족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그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그린 대하 소설이다. 19세기 후반부터 광복될 때까지 우리의 역사를 배경으로, 간도를 개척하고 삶의 근거지를 마련했던 이주민들이 보호해 줄 정부를 가지지 못하여 망국 인으로서의 통한을 처절하게 겪는 과정이 서술된다. 농토를 두고 청나라 사람들과 계속 갈등을 겪어야 했고, 일본의 세력이 간도까지 미치면서 다시 새롭게 일본과의 갈등과 충돌을 겪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 '민족의 얼'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고심하는 모습이 리얼하게 전개된다. 시대적인 특수성과 백두산 정계비가 있는 간도라는 지역적 특수성, 그리고 민족사의 문제가 망국인의 문제와 결부되어 제기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역사의 격변기에 대응하는 우리 민족의 세 가지 인물 유형이 제시되어 있다. 이한복, 장치덕, 최칠성 세 사람은 변경 지방에서 살다가 간도에 건너가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다. 그들은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전래의 이야기를 믿고 일을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 정부는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귀화할 것을 종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지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고 청나라의 법률에 따르지 않는 한 추방하겠다고 압력을 가한다. 이 때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 직결된다. 청나라에서 변발 흑복을 강요했을 때 최칠성은 이에 응했고, 장치덕은 머리만 깎아 버렸으나 이한복은 이에 철저히 항거한다. 최칠성은 배신형, 장치덕은 적응형, 이한복은 저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인물의 가세나 태도는 그 의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행동 양식에서 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참고> 표현상 특징
1. 허구적인 인물 속에 실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 역사와 소설을 연계 짓기 위해서 현재부터 충분히 떨어진 실제의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과거가 시대적 배경으로 제시되면서 허구적 요소와 결합되었다.
2. 사건의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해 생략법이 사용되었으며 그것을 통해 사건의 전체적인 변모를 파악하려 하였다.
3. 보여주기보다는 말하기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간결하고 대담하게 설명하며, 그 성격의 심리적 갈등은 사건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4. 사건이 소설 전면에 드러나며 사료의 해석 없이 그대로 지문 속에 사용하였다.
<참고>
이 작품은 5부작으로 구성된 것으로, 1959년 처음 발표된 이래 1967년에서야 비로소 완성된 대하 장편이다. 간도를 배경으로 1870년경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약 80여 년에 걸친 한국인의 수난사가 이한복 일가의 4대에 걸친 삶을 통해 잘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민 생활의 억울함과 신산한 삶의 모습에 관심을 보인 초기의 간도 소설과는 달리, 이 소설은 간도에서도 변함 없이 조선의 국적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비순응주의자들의 이념과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에는 역사의 격변기에 대응하는 우리 민족의 세 가지 인물 유형이 제시되어 있다. 즉 이한복, 장치덕, 최칠성은 변경 지방에서 간도로 건너가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다. 그러나 청나라 정부는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서 귀화할 것을 종용한다. 만일 자신들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땅을 빼앗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변발 호복을 강요했을 때 최칠성은 이에 응하고, 장치덕은 머리만 깎아 버렸으나, 이한복은 이에 철저히 항거한다. 즉 최칠성은 배신형, 장치덕은 적응형, 이한복은 저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인물의 가세나 태도는 후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행동 양식에서 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 제3인간형(第三人間型)
1. 줄거리
한때 작가였다가 6․25 동란 후 피란지 부산에서 교원 노릇을 하는 ‘석’은 같은 작가였다가 동란 중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던 친구 ‘조운’ 을 만난다. ‘석’은 친구의 차를 타고 가면서 그의 동란 중 소문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친구가 숨어서 이룩한 대작에 대한 평을 받으려고 불쑥 나타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두 사람은 술을 시킨다. ‘석’은 친구가 권하는 술에 금방 취한다. ‘석’은 차안에서 궁금했던 말을 꺼냈으나, 친구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종이 꾸러미를 내어놓는다. 거기에는 검정색 넥타이와 ‘조운 선생’이라고 쓰인 봉투가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선생님(조운)의 호의는 고맙지만 자신의 길은 이미 작정되어 간호 장교에 지원했음을 알리는, ‘미이’란 여성의 것이었다. ‘조운’은 ‘미이’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 ‘미이’는 문학 소녀였으며, 가정이 부유했고, 명랑한 성격으로 ‘조운’을 무척 따랐다. 동란 이후 집안이 크게 기울어지고, 성격도 많이 변했다. ‘조운’은 그녀에게 다방을 차려 주어 도우려 했으나, ‘미이’는 며칠의 여유를 구하더니 새로운 사명을 찾아 간호 장교를 지원했다. 말을 마치며 ‘조운’은, ‘미이’가 전쟁을 겪으며 제 갈 길을 바르게 찾는 데 반하여 자신은 깊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석’은 ‘조운’에게 가졌던 호기심과 기대감 대신 강렬한 ‘미이’의 인상을 떠올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전쟁 당시) / 공간(부산과 그 전의 서울)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자조적(自嘲的), 반성적(反省的)
◎ 구성
발단 - 피란지 부산. 안일과 나태에 빠진 ‘석’의 생활
전개 - 친구 ‘조운’의 방문. 그 간의 사정에 대한 ‘석’의 궁금증
위기 - 작가다운 태도와 멀어지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두 친구의 자조(自嘲)
절정 - ‘미이’란 여성의 과거 행적을 들려주는 ‘조운’
결말 - ‘석’의 깊은 감동과 자책감
◎ 주제 : 지식인의 좌절과 방황 그리고 새로운 인간형의 탐구
◎ 출전 : <자유 세계>(1953)
3. 등장 인물
◎ 석 : 전쟁 전 신문사에서 작가 활동. 피란지 부산에서 생계를 위해 교원이 됨. 친구 조운을 만나 조운을 따르다 간호 장교로 입대한 ‘미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 조운 : 본명 최춘택. 자기 성찰에 충실한 작가였는데 전쟁 중 자동차 사업가로 변신, 안일한 삶을 추구한다. 역시 ‘미이’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 미이 : 모 회사 중역의 딸로 ‘조운’을 사모하는 철부지 문학 소녀였으나 전쟁 중 가족의 죽음을 보며 신념의 인간으로 성숙되어 간다. 조운의 경제적 도움을 거절하고 간호 장교로 지원한다.
4. 이해와 감상
6․25와 피란지에서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조명된 소설이다.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작품인데 이 작품은 “검정 넥타이”로 개제(改題)되어 일본어로 번역 <친화(親和)>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6․25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세 가지의 인간상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의 사명의 의미를 물음과 동시에 생활과 사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6․25 전쟁이 남긴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핀 작품으로서 이 소설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 작가 ‘조운’이다. 그는 ‘독특한 철학적인 명제를 난삽한 문체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개성이 뚜렷하다. 더욱이 자신에 충실하고 문학에 대한 결백성을 굳게 지켜 존경을 받는다. 세속적인 것에 초연하고 세상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동료들뿐 아니라 문학 소녀들 사이에도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6․25가 일어나자 그는 문학을 버리고 사업에 손을 대어 돈을 번다. 몸이 불어나고,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는 일도 없어졌고, 술과 여자 속에 살아간다. 6․25전 반세속적이었던 그가 철저하게 세속적인 인물로 변신한다. 둘째, 문학 소녀 ‘미이’이다. 중역의 외동딸로, 입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하나 하나가 부박한 일면이 있는 아가씨였다. 문학을 하겠다고 조운을 따라다니는 미이는 6․25가 일어나 집안이 몰락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하고, 인간의 소명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조운’의 경제적인 도움을 거절하고 간호 장교 시험을 치른다. 셋째, 작가요 교사인 ‘석’이다. 그는 6․25 전에는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작품을 써 왔다. 6․25가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는 ‘생활을 위하여’ 교사로 취직하지만, 교사로도 충실하지 못하고 작가로서도 그렇지 못하여 늘 번민 속에 있다. 그래서 그는 “조운의 말대로 조운은 동란의 압력으로 그의 사명을 포기하였고, 동란을 통하여 미이는 용감하게 시대적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나는 … 사명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것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말라 가는 … 나도 동란이 빚어낸 한 타입이라고 할까?” 하는 자책감에 빠진다. 이 소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이 어떻게 변모되는가를 살핀 것으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안회남(1909~?) |
서울 출생.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외아들. <개벽>지의 사원으로 입사한 뒤 약 10년 간은 창작 생활에만 몰두. 예술파에 속한 작가로서, 일본 문단의 신흥 예술파를 솔선해서 소개했다. 전기에는 작가의 신변, 가정사를 제재로 한 심리 추구가 주조를 이룬 작품을, 후기에는 완전히 신변적인 세계로서 그가 주로 취재한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들을 상대로 한 가정사이거나 친구와의 교우 이야기이다. 또한 본격 소설론에서 소설의 목표를 인생의 묘사, 특히 인생의 단면의 묘사에 있다고 했으며, 이어 “나의 일생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연애와 결혼과 문학”이라고 주장했다. 193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발(髮)>이 3등으로 당선되어 등단했고, 일본 징용 후 귀국하여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했으며, 월북하여 이후 별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본래 프로 문학의 작가가 아니었던 그로서는 북한의 체제 하에서의 문학 활동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인생의 현실적 단면을 묘사하면서 역사와 현실 의식을 폭넓게 수용한 작품을 쓴 작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애인”, “남풍”, “탁류를 헤치고”, “소”, “상자”, “농민의 비애”, “철쇄 끊어지다”, “대지(大地)는 부른다”, “전원” 등이 있다.
▶ 남풍(南風)
1. 줄거리
남풍이 솔솔 불어오고 보리가 누렇게 익는 계절에 산모롱이에 있던 삼봉이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놀림감이 된 미친 큰애기를 보고 있었다. 과거 큰애기가 열 살도 못 되었을 때, 후에 길러서 혼인하기로 하고 삼봉이는 큰애기네 집 머슴살이를 했다. 그러나 큰애기가 열 여덟 되던 해에 혼인 밑천으로 기르던 양돼지를 잃어버려 다시금 머슴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끝내 큰애기 아버지 배가(哥)는 큰애기를 윤 주사의 첩으로 보낸다. 삼봉이는 큰애기와 성사시켜 주겠다고 속여 머슴살이만 시킨 것을 알고는 배가(哥)네 집을 나와 다른 마을로 가서 머슴을 살았다. 한편, 큰애기는 윤 주사의 학대를 이기지 못해 정신 이상자가 되어 들판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삼십이 넘은 노총각 삼봉이는 미친 큰애기를 불쌍히 여기고 아내로 삼겠다고 결심한 뒤 소나무 사이로 뛰어가는 큰애기를 쫓아간다. “넌 내 거다. 넌 내 거여.” 삼봉이는 속으로 이런 말을 외며 뒤지지 않고 따라갔다. 한참을 쫓고 내빼고 하는 사이에 석양 무렵의 햇빛은 마지막 따뜻한 기운을 뱉어 놓았고 솔솔 바람 남풍은 언제까지나 부드럽게 불어오고 있었다.
2. 핵심 정리
◎ 배경 : 1930년대 농촌
◎ 시점 : 3인칭 관찰자
3. 등장 인물
◎ 삼봉 : 배가(哥)에게 속아서 십여 년을 머슴으로 살고 큰애기를 윤 주사에게 빼앗겼으나 저항도 못하고 미쳐버린 큰애기를 사랑하게 되는 순수한 총각
4. 이해와 감상
머슴 삼봉이가 주인댁 딸인 큰애기와 결혼하고 싶어 머슴살이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김유정의 <봄봄>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이 작품은 안회남이 소설로 쓴 [김유정론]이라 할 수 있다. 안회남은 초기의 신변적 세태 소설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사회와 삶을 총체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식을 표방하고 있으나 이 <남풍>은 군데군데 사건의 개연성을 결여한 것 때문에 <봄봄>에 비해 공감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빚고 있다.
▶ 농민의 비애
1. 줄거리
서대응 노인은 밥 한술 얻어먹을 생각으로 이 선달네 집 앞까지 눈을 치우지만 별 소득이 없다. 노인은 손녀를 데리고 최만돌의 집에 가지만 그 집에서도 호박죽 외에는 내놓을 것이 없다. 서 노인은 육십 평생 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지 못하고 살아왔다. 일본으로 쌀이 공출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해방이 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난은 서 노인만의 일이 아니다. 최만돌은 구장집 행랑살이를 하면서 밤에는 야학을 연다. 면사무소에서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일을 봐 주지 않기에 야학에 와서 모두들 열심히 글을 배운다. 서 노인도 제법 글을 쓸 줄 알게 되었다. 야학을 끝내고 돌아오던 서 노인은 노루를 발견하고 잡으려 하지만 지쳐 쓰러지고, 개가(改嫁)하여 살다가 마침 다니러 왔던 며느리(영이 어머니)가 발견하여 간호한다. 영이가 엄마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하자 서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손녀를 제 어미에게 보낸다. 며칠 후 서 노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영이 어머니의 새 남편 김월봉은 징용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람인데, 아내가 도망치고 없자 그녀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서 노인이 죽자 서 노인의 집으로 이사한 그들은 노인이 경작하던 이 선달의 논에서 얼마쯤 얻을 것을 기대했으나 이 선달은 품삯만 주고 만다. 마침 면사무소 창고에서 벼 가마니를 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공출로 실려 가는 것이라, 농민들은 길을 막는다. 관청에서 나온 사람들은 농민들에게 배급할 쌀을 찧기 위한 것이라 속이고 벼 옮기는 일을 강행한다. 버티던 농민들은 길을 비켜 주며 언젠가는 자신들이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꾼의 총소리와 함께, 서 노인이 남기고 간 빗자루와 나막신 앞에 노루가 쓰러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농민 소설
◎ 배경 : 해방 후 어느 산골, 농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사실적
◎ 의의 : 해방 직후 더욱 심해진 농민의 궁핍상을 그렸다.
◎ 제재 : 농민의 궁핍화 현상
◎ 주제 : 궁핍한 농민의 삶과 비애
3. 등장 인물
◎ 서대응 노인 : 늘 굶주림에 시달리는 소작농
◎ 영이 : 서 노인의 유일한 희망인 손녀
◎ 영이 어머니 : 남편이 징용으로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자 개가(改嫁)하는 불행한 여인. 서 노인의 며느리
◎ 최만돌 : 서 노인의 이웃에 사는 인물로 인정이 넘치는 순박한 농부
◎ 이 선달 : 간교하고 욕심 많은 지주
◎ 김월봉 : 징용에 나갔다 돌아와 영이 어머니와 인연을 맺는 농민
4. 이해와 감상
1948년 <문학>에 발표된 중편 소설. 해방 후 미 군정이 일제 때의 공출 제도를 부활시킴으로써 농민들의 생활이 더 비참해지는 현실을 다룬 작품. 제목 그대로 해방이 되었음에도 점점 더 궁핍해지는 농민의 삶과 그 비애를 그리고 있다. 착하고 성실한 ‘서대응’ 노인이 왜 자살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에 초점을 맞추고 읽을 필요가 있다.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절실한 문제로 실감 있게 형상화된 작품이 드물다.'는 평을 받기도 했던 이 작품은, 해방 직후 풍요로움의 기대가 좌절된 후, 소작농을 대표하는 ‘서대응’ 노인을 통해 당대 농촌 현실의 비참한 상황을 생존권의 차원에서 그려 낸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경제적인 궁핍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자 자살의 길을 택함으로써, 기대 좌절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 아니라 고통의 내적 수용이라는 체념적 방식을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서 노인의 죽음을 단순히 가난에서 온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가난에 이은 혈육의 단절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아들은 징용에 끌려가 해방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혼자 살던 며느리는 개가(改嫁)를 했다. 유일한 혈육인 손녀를 데리고 살던 노인에게 가난은 무서운 것이었다. 게다가 손녀 ‘영이’마저 그 어머니에게로 보낸 후 노인은 혈혈 단신이 된다. 가난 그리고 없어진 혈육, 바로 이것이 서 노인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서 노인의 삶과 함께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당대 우리 농촌의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자신의 땅을 갖고자 하는 소작농들의 기대가 가능해 보였던 해방 직후의 현실이 끼니를 때우고 구차한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일제 강점기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 현실은 “논을 주마.”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된다. 농민들은 농사짓고 소작료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얻기 위해서, 또 땅을 부쳐먹는 죄로, 지주에게 반(半) 종노릇까지 해야 하는, ‘농촌에서도 왈행랑’이라 부르는 착취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 노인의 삶의 고통이 구체적으로 현실에 매개되지 않은 채 작가의 관념으로 노출되는 결함을 안고 있는 이 작품은, 특히 쌀 배급 문제, 쌀 파동 등이 당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나 현실 상황과의 상호 연관 속에서 서술되지 않고,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비판되는 한계를 지닌다.
염상섭(1897~1963) |
소설가. 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횡보(橫步).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출생했다. 1917년 교오또오부립중학을 졸업하고 케이요오 대학 문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대학을 중퇴했다. 평소 고집과 술이 세기로 유명해서 호가 횡보(橫步)였고 오랫동안의 문단 생활에도 내성적이고 아집이 세 특별한 친구가 없었다. 스스로 에밀 졸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으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20년 <폐허>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이다. 이 때 <개벽>에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했다. 이후 “만세 전”(1923), “제야”(1923), “삼대”(1932), “두 파산”(1948), “짖지 않는 개”(1952) 등을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의 대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자연주의적 인생관과 사실주의적 창작 태도가 일관되어 흐르고 있다. ② 빠른 사건의 진행보다는 현실의 느린 전개, ③ 무거운 문어체의 문체를 보인다. ④ 염상섭이 즐겨 다루는 대상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으나 가난에 시달리는 중간 계층으로 생존의 위협은 받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 두 파산(破産)
1. 줄거리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는 정례 어머니한테 전에 교장을 했던 영감이 변리 이자를 받으러와 밀린 것 중 한 달치 만을 받아 가면서 김옥임의 빚 20만원도 갚으라고 한다. 이 20만원은 동업의 조건 하에 썼던 10만원이 빚으로 둔갑한 것이다. 정례 모친은 생활이 어렵게 되자 남편을 졸라 집을 잡히고 30만원을 은행에서 얻어 문방구를 하다 돈이 모자라 동경 유학 당시 친구인 김옥임에게 손을 벌리게 되고 집에 있던 남편이 마지막 남은 땅을 팔아 택시를 운영하며 도리어 문방구의 돈을 돌려쓰고 갚지 못하게 되자 교장 영감의 돈 5만원도 빌려쓰게 된 것이다. 김옥임은 이익금으로 20만원을 챙기고도 동업자금을 빚으로 만들어 버리고 교장과 손을 잡고 문방구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20만원은 김옥임에게 빚졌으니 그녀에게 갚겠다고 한다. 일 주일 후 정례 어머니는 정류장에서 옥임을 만나게 되고 길거리에서 창피를 당하게 된다. 김옥임은 동경 유학 후 일제시대 중경 도지사였던 남편의 후실로 들어가 호강을 하다 해방 후 반민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날 중풍으로 누운 남편과 살고 있었으며 앞날이 불투명해 지자 고리대금업자로 나섰고 아이가 없었다. 그녀는 자식과 호남의 젊은 남편이 있는 정례 어머니에 대한 열등 의식이 있어 은연중 화풀이하는 면도 있었다. 정거장 일이 있었던 다음 날 옥임의 말을 듣고 온 교장에게 정례 어머니는 자신은 물리적 파산자이고 옥임은 정신적 파산자라고 말하며 20만원 표와 현금 20만원을 옥임에게 주라고 한다. 두 달 후 교장의 빚은 갚았으나 석 달째 문방구는 교장의 이북에서 내려 온 딸에게 넘어 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김옥임은 값을 더 얹어 이익을 보았고 정례 어머니는 빈손으로 나갔다. 그 일이 있은 후 정례 어머니는 앓아 눕게 되고 정례 아버지는 김옥임에게 보복하겠다고 아내를 위로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세태 소설, 시정 소설(市井小說)
◎ 배경 : 시간(해방 공간) / 공간(서울 황로현 부근)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문체 : 치밀한 묘사적 문체
◎ 표현 : 성격의 병행 대조 기법. 자연주의적 인생관과 사실주의적 창작 태도가 일관되어 흐르고 있다. 순 객관적인 표현 양식이 돋보인다.
◎ 경향 : 사실주의, 객관적 서술
◎ 구성
발단 - 해방 후 정치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은행 빚으로 가게를 여는 정례 어머니
전개 - 장사가 어려워지자 옥임에게 빚을 얻어 가게를 운영함.
위기 - 정례 아버지의 자동차 사업 실패와 이자마저 못 갚는 정례 어머니
절정 - 김옥임에게 진 빚 때문에 망신당하는 정례 어머니
결말 - 정례 어머니가 옥임에게 가게를 뺏기고 옥임의 성격 파산을 한탄함.
◎ 주제 : 물질적․정신적으로 파산된 인간을 통한 해방 후 혼란한 사회상 풍자. 물질 만능의 세태 풍자
◎ 출전 : <신천지>(1949)
3. 등장 인물
◎ 정례 어머니 :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차려 놓고 생계를 유지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아 빚을 지고 친구인 김옥임에게 가게를 넘긴다.
◎ 김옥임 :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였던 젊은 시절과 달리, 오로지 돈놀이에 매달려 친구까지도 저버리는 정신적 파탄자
◎ 정례 아버지 : 가난하면서도 새로 찾은 나라를 위해 정치 일선에 나서기도 함. 어수룩한 자동차로 김옥임에게 사기 칠 궁리를 함.
◎ 김옥임의 남편 : 친일파 고위 관리
◎ 교장 : 김옥임의 부탁으로 정례 어머니에게서 돈을 받아 냄.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광복 직후 서울 근교에서 문방구점을 열어 고생만 하다 끝내 가게를 빼앗기는 정례 어머니와, 그녀에게 빌붙어 무지막지하게 돈을 뜯어내는 김옥임(본래는 정례 어머니의 친구임)을 통해, 광복 직후의 혼란상 속에서 금전 만능주의가 판을 치게 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정례 어머니는, 경제적 무능력에 빠진 소시민이 성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몰락해 가는 과정(‘경제적 파산’)을, 그리고 김옥임은 윤리나 도덕과 무관하게 오로지 돈만이 자신이 살 길이라 생각하면서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과정(‘정신적 파산’)을 각각 보여 준다. 이와 같은 두 파산의 배경은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이다. 새로운 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건설될 것인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돈만이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옥임처럼 친일파로서 사회적인 비판이 두려운 사람들은 물론, 정례 어머니 같은 소시민조차도 생활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돈에 집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당시 혼란기를 대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두 여인을 통해, 물질 만능주의의 세태를 풍자하고, 동물적인 생존 경쟁만 강요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작가는 이 두 여인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두 여인이 왜 이러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심리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정황을 균형 있게 보여 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들의 파산에 대해 사실적이고도 심층적인 인식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그들을 파산에 이르게 만든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시대야말로 비판받아야 할 궁극적인 대상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의 구성상 특징은, 부분적으로 과거 장면이 삽입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시간 순서에 따른 평면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정례 어머니와 김옥임의 상황이나 심리가 교차하면서 서술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표현상 특징으로는, 우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사실적이고도 정확하게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며, 아울러 작중 상황을 한편으로는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황에서 인물이 지니는 심리를 서술자의 객관적인 논평이나 해설을 곁들여 전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물을 복합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인물에게 여러 모습이 있음을 같이 보여 줌으로써 인물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끝으로, 서울 지방의 사투리를 풍부하게 구사하여 세밀하고 복합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 만세전
1. 줄거리
일본에 유학 중인 ‘나’(이인화)는 서울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연말 시험도 포기한 채 귀국한다.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과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관계 등으로 ‘나’의 마음은 음울하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정자(靜子)가 있는 술집에 들러 술도 마시고, 카페에도 가보고, 음악 학교 학생인 을라(乙羅)도 만나 본다. 귀국하는 배에 올라서도 짖궂게 미행하는 일본 형사에게 계속 시달리면서 울분을 삭인다. 배 안의 욕실에서 우리 나라 노무자들을 경멸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라 없는 설움과 압박과 곤궁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나라 노무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휩싸인다. 그런 상황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서울의 집에 와 보니, 현대 의학으로는 넉넉히 고칠 수 있는 유종(乳腫)을 앓고 있는 아내를 방치한 채, 아버지는 술타령이나 하면서 재래식 의술에 맡겨 결국 아내를 죽게 만든다. 집안에는 출가했다가 과부가 되어 돌아온 누이, 종손(宗孫)인 종형, 그 밖의 과객들이 득실거려 도무지 안정을 얻을 수 없다. 다시 유학 길에 오르려 하지만, 집안 식구들의 만류로 발이 묶였고, 재혼을 하라는 형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상중(喪中)에 일본에 있는 정자의 간절한 편지를 받는다. 새 길을 찾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에게 새 출발을 축하한다는 편지와 함께 돈 백 원을 보낸다. 사회고 집안이고, 구더기가 들끓는 공동 묘지 같은 답답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는 불쌍한 아내, 사랑보다 연민이 앞섰던 가련한 아내를 생각하면서 탈출하듯 다시 동경으로 떠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시간(1918년 겨울) / 공간(동경과 서울, 그리고 오가는 열차 안)
◎ 성격 : 사실적, 현실 비판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구성 : 전체 9장으로 여행의 일정을 따라 전개되는 기행 형식
발단 -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 준비를 함.
전개 - 일본의 여러 곳의 술집을 전전하면서 답답한 심회를 드러냄.
위기 - 연락선 안에서 조선인을 멸시하는 일본인에게 분개함.
절정 - 부산 → 김천 → 서울 → 집안, 모두 답답한 분위기로 가득함.
◎ 제재 : 일제 강점기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
◎ 주제 : 일제 강점 하에서 억압받는 우리 민족의 비참한 생활상.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
◎ 출전 : <신생활>(1922)
3. 등장 인물
◎ 나 : 이인화. 동경 W대학 문과 재학생으로서 자조적(自嘲的) 자기 분석에 철저한 인물. 죽어 가는 아내 때문에 귀국하지만 그 죽음 앞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으며,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겨우 무덤 속을 빠져나간다.’라고 토로하는, 깊은 허무주의 성격의 소유자
◎ 김천 형님 : 소학교 훈도(교사), 보수적 성격
◎ 아내 : 유종으로 죽음.
◎ 아버지 : 고루한 사고 방식을 지님.
◎ 정자 : 카페의 여급. ‘나’의 애인으로서, 편지를 통해 나를 다시 동경으로 돌아오게 한다.
◎ 김의관 : 사기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22년 “묘지(墓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가 2년 후 단행본 “만세 전(萬歲前)”으로 개제(改題)하여 완결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 서울과 동경을 배경으로, 한 지식 청년의 눈에 비친 사회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즉, 무단 정치라는 식민지 정책 하에서 조선인의 자아 비판, 사회의 본질과 생태를 냉철하게 분석한 작품이다. 전체의 줄거리는 일본 유학생인 주인공이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하는 이야기다. 동경에서 고베, 시모노세키, 부산, 김천 등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가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떠나는 여로가 소설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짓궂게 따라붙는 일본인 형사, 곤궁에 허덕이는 조선인 노동자, 어린 처녀를 첩으로 들여 아들 낳기를 바라는 형, 친척집을 뜯어먹으려는 일가붙이들,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아내의 유종을 재래식 의술에 맡겨 죽게 만드는 가족들의 무지 등을 목격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조선 사회를 ‘구더기들이 들끓는 묘지’라 말하며 무덤을 탈출하듯 다시 동경으로 떠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전형적인 지식인소설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본래 지식인 소설이라 하면 전통과 풍속에 좌우되는 사회 관계와 가족 관계는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비논리적인 사회와 가족을 향해 논리로 자기를 관철하려는 비장함과 유치함이 지식인 소설의 본질을 이룬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 같은 지식인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3․1 운동 직전의 조선 사회가 가진 삶의 총체적 표현을 지향한다. 즉, “만세 전”은 당대 조선 사회의 모든 모순과 추악함이 그것에 대한 모든 미적지근한 저항감과 더불어 총체적으로 묘사된, 작지만 거대한 시대의 벽화라 하겠다. 이 작품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일제 강점 아래 3․1운동 직전의 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핍박받고 수탈 당하는가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일제로부터 탄압 받아 궁핍하고 암울한 조선의 모습을 구더기가 들끓는 공동묘지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었다. 또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본의 고장이나 광산에 팔아 넘기는 것, 즉 값싼 노동력의 착취를 본문에서 나타내었다. 두 번째는 주인공 이인화의 의식 구조이다. 주인공은 아내 위독의 전보를 받고도 곧장 귀국하지 않았고, 귀국 중에 민족의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울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내가 죽자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동경으로 떠나고 만다. 또, 주인공은 무덤 속을 빠져나간다고 하면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공동 묘지로 파악하면서 현실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나의 행위는 나의 자율적인 선택에 달려있으며 어떠한 선험적인 도덕도 여기에 간섭할 수 없다’는 근대적 자아의 각성이 주인공의 위악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 의식은 다분히 허무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허무주의는 일본의 수도인 동경을 탈출구로 삼는 한계는 있으나, 우리 민족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동경에서 서울로 왔다가 동경으로 되돌아가는 여로가 중심이 되어 있다. '동경→ 동경서 신호→ 하관에서 배를 탐→ 연락선으로 부산 도착→ 부산에서 술집을 기웃거림→ 부산서 출발, 김천을 거쳐 서울 도착→ 서울 집의 분위기→ 서울에서의 배회→ 아내의 죽음, 동경으로 출발'이라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원점 회귀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것이나, 카페의 여급 정자와의 관계, 끊임없이 일본 경찰에 쫓기는 것 등이 그의 과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 삼대(三代)
1. 줄거리
대지주인 조부 조의관은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일 정도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구세대의 전형이고, 아버지 상훈은 신 문물을 받아 들였으나, 이중 생활에 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는 과도기적 인간형이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의 소유자이나, 조부와 아버지의 부조리 속에서 재산을 지켜 나가는 일에 한정되어 적극성을 잃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으로 그려진다. 덕기의 조부 조의관은 고루한 봉건 의식의 소유자이다. 어렵사리 모은 거액의 재산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를 받들고, 가문의 명예를 키워나가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 는다. 칠순 노인이면서 부인과 사별 후 서른을 갓 넘긴 수원댁을 후취(後娶)로 들여 네 살 박이 딸까지 두고 있다. 조의관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아들 조상훈이다. 맏아들이면서도 집안 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교회사업에 골몰해 집안의 돈을 바깥으로 빼돌리는 데만 혈안이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구나 조의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봉제사를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우상 숭배라고 반대하고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들보다도 손자인 덕기에게 더 큰 믿음을 가진다. 집안의 모든 일도 손자인 덕기와 의 논해서 결정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재산 관리도 덕기에게 일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은 위선자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에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요, 교회 장로인 그는 교회를 통한 사회 운동과 교육 사업에 큰 뜻을 품고 집안의 재산으로 그런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민족 운동가의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실생활은 구린내나는 축첩(蓄妾)과 노름, 그리고 술로 얼룩진 만신창이 난봉꾼의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살피던 운동가의 딸인 홍경애와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고도 무책임하게 내동댕이치는가하면, 당대의 오입쟁이들이 출입하는 매당집이란 곳엘 드나들면서 나이 어린 여자들과 불륜의 관계에 빠진다. 덕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른 신세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 김병화처럼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병화가 하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조를 하기는 해도 그 자신은 법과를 마쳐 판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있다. 자신의 그런 꿈이 가끔 운동가인 병화의 조소를 받아도 크게 개의하지 않는다. 병화는 목사인 아버지와 사상 대립으로 가출해서 이곳저곳 떠돌면서 기식하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뜻은 절대 굽히지 않는 반면, 덕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정면 충돌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세대를 달리하는 그들 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잠재되어 있던 조씨 가문의 불화와 암투가 정면에 드러난 것은 조부의 임종을 앞두고 생긴 재산 분배 과정에서였다. 조의관의 후취인 수원집과 그를 조의관에게 소개해준 최참봉 등은 재산을 가로챌 욕심으로 유서 변조를 계획하고 조의관을 독살(毒殺)한다. 의사들의 배설물 검사로 비로소 중독이 판명되자 상훈은 더 명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사체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범인 찾기도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러나 손자 덕기가 나타나 수원집 일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재산 관리권은 덕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상훈은 법적 상속자인 자신을 건너뛰고 아들인 덕기에게 그 권리가 넘어가자 유서와 토지문서가 든 금고를 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한편, 상훈에게 농락 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후 버림받았던 홍경애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술집 여급으로 나가면서 생계를 꾸려가지만 해외의 독립 운동가인 이우삼과 연계를 가지면서 그를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경애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병화와 자주 만나는 사이에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조그마한 잡화상을 경영하며 경찰의 눈을 속이지만 그것이 다른 운동가인 장훈 일파들의 오해를 사게 되어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한편, 이우삼이 국내를 다녀간 뒤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어닥친다. 비밀 조직인 장훈 일파는 물론, 가게를 운영하며 경찰의 눈을 피해 있던 병화와 경애도 검거된다. 그리고 덕기도 병화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혐의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다.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훈은 비밀 유지를 위해 코카인으로 음독 자살을 한다. 장훈의 자살로 갑자기 조사가 미궁에 빠지자 연행되거나 검거되었던 사람들은 다 풀려 나오게 된다. 가짜 형사를 등장시켜 금고와 문서를 훔쳐냈던 상훈도 결국 훈방 조치로 풀려난다. 덕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느끼면서 이제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 얹힌 조씨 가문의 유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망연해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세태 소설, 사실주의 소설, 가족사 소설(역사의 변화 속에 있는 한 가족의 융성과 몰락의 과정을 서술하는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식민지 시대인 1930년대) / 공간(서울 중산층의 집안)
◎ 문체 : 만연체, 요설체(饒舌體)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회장식(回章式. 전 42장)
◎ 구성 : 5단 구성
발단 - 유학생 덕기가 방학차 다니러 왔다가 떠나며 조부, 아버지의 첩, 병화 등이 등장
전개 - 집안의 뒤엉킨 인간 관계를 알게 되는 덕기
위기 - 조의관의 위독과 수원집의 모략
절정 - 조의관의 사망 후 집안의 갈등 심화. 어수선해진 사회 환경으로 주요 인물 피검
결말 - 덕기는 무혐의로 풀려나 앞으로 살 방도를 모색
◎ 주제 : 일제 강점기 중산층 가문의 현실 대응과 몰락
◎ 출전 : <조선일보>(1931)
3. 등장 인물
◎ 조의관(할아버지) : 조선조 말기 중인 계층의 인물로 돈과 실리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현실주의자. 스스로의 봉건 의식을 수호하려 노력하는 인물(보수적) / 조씨 가문의 가장. 지난 시대의 고루한 사고 방식과 인습에 젖어 있는 봉건주의자. 자기 개인의 이익과 집안의 위신을 높이는 일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완고한 인물로서, 을사조약을 전후해서 사회가 혼란해지자 2만냥이라는 큰돈으로 의관 벼슬을 산다. 다음에는 남의 족보에 끼어 들어가서 가문을 뽐내려 하고, 이 때문에 큰 돈을 들여 족보를 만드는 대동보소를 운영한다. 아들이 기독교에 물들어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리라는 이유 때문에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 조상훈(아버지) : 조의관의 아들로 개화기를 대표하는 인물. 새로운 시대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 방탕한 생활을 일삼기에 여념이 없다(개화적) / 조의관의 아들이며, 조덕기의 아버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신사이며,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덕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한 데가 있다. 기독교 신앙과 합리주의적 사고 방식 때문에 아버지 조의관의 가문 치장이나 족보 사업을 쓸모 없는 일로 보아 반대한다. 사회사업을 돕기 위해 집안의 돈을 쓰기도 하지만, 뚜렷한 실천적 의식이 없이 안이하게 살아가며 여자 문제도 개운치 못하다.
◎ 조덕기(아들) : 수동적 온건성을 지닌 인물로 조부 조의관의 봉건적인 세계와 아버지 조상훈의 새로운 세계의 대립을 긍정하는 점층적 인생관을 가진 지식인이기 때문에 할아버지 조의관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재산도 물려받게 되는 인물(절충적) / 조상훈의 아들. 일본 유학을 하는, 고등학교 학생. 할아버지 조의관의 명에 따라 전통적 관습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치 의식을 모색하는 인물로서,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한다. 자신의 앞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입장에서 새로운 삶의 길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젊은이이다.
◎ 김병화 : 목사의 아들이며, 사회주의 활동을 하기 위하여 집에서 뛰쳐나온 청년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프롤레타리아이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0년대 서울의 보수적인 중인 출신의 중산층 집안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의 삼대가 전개하는 심리적 갈등과 가치관의 차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가족사(家族史)를 통해 시대사를 보여 준 작품으로 계급 문학과 민족 문학의 이념적 갈등과 일제 강점하라는 시대 속에서 민족의 현실을 파헤치고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작품 속에서의 사건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나고 있지만, 세대간의 서로 다른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이 작품은 만석꾼인 조씨 일가의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각기 다른 가치관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린 장편 소설인데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나고 있지만, 세대간의 서로 다른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조의관은 봉건 제도의 전형적 구세대 인물이며 20대의 후처(後妻)(수원집)에게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탐욕의 인간으로 나타난다. 아들 상훈은 신 문물과 기독교에 기울어진 신사이긴 하지만, 애욕과 축첩(蓄妾)의 이중 생활에서 재산만 탕진하는 무기력, 무의지의 과도기적 인물로 그려져 있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으나, 이러한 불협화음 밑에서 재산을 지키는 데 한정되고, 적극성을 가지지 못한 미적지근한 순응형이다. “삼대(三代)”의 인간 드라마는 조부의 죽음을 둘러싸고 재산 상속욕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 인물들의 추악성이 절정에 이르고, 김병화가 추구하는 인간에의 길, 필순 아버지의 혁명가로서의 불행한 일생 등에서는 대조적으로 새로운 삶을 전개하려는 안간힘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전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보면, 우선 가족 내부의 갈등으로 조의관과 상훈 사이의 갈등이 있는데, 보수와 개화의 이념상의 갈등에서 시작하여 재산 상속권을 두고 심화된다. 한편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든다면 이 경우 중심 인물은 김병화가 되는데, 그는 타락한 중산층의 삶은 물론, 이를 조장하며 그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식민지 질서 전체에 대해 맞서고 있다. 덧붙인다면, 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1930년 전후해서는 김병화와 같이 마르크스 사상에 경도된 지식인 청년이 많았다. 일제는 1920년에 들어서면서 무단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통치 노선을 바꾸게 되는데 이 틈을 타 우리 민족은 왕성한 사회 운동을 펼친다. 일본으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극도의 궁핍이란 현실적 사회 문제로 인해 사회주의 사상, 사회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그 결과 1920년대 사회 운동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일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이에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좌우 합작을 위한 노력이 제기되고, 1927년 신간회의 결성에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30년 전후는 ‘신간회’를 통한 좌우 합작과 그 노력의 결렬 등 식민지 역사상 사회 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삼대(三代)”에서 작가는 새로운 세대인 덕기, 병화 등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은 일제의 식민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였으리라 생각된다.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회적 계층 간의 갈등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적, 사회적 변동 속에서 세대 교체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참고> “삼대”의 배경
□ 시간적(시대적) 배경 : 일제 강점기, 1930년대 초 - 이 시기는 일제가 식민 통치의 기반을 확고히 하면서 조선인의 궁핍화를 촉진하고, 민족 의식이나 사회 의식을 가진 세력에 대해서는 통제와 가혹한 탄압을 더하여 가던 때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유산(有産) 계층이나 점진적인 민족 계몽을 주장하던 집단들은 서서히 일제의 통치에 이끌려 가거나, 혹은 찬동하고 나섰다. 한편, 1920년대 초반에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의 여러 단체가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 주는 듯하였으나, 이들 역시 통제와 탄압이 강화되면서 지하로 숨는 등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 공간적 배경 : 서울, 중산층 집안 - 이는 작가 염상섭이 나고 자랐으며, 자신의 의식을 형성했던 공간이다. 이 때문에 이 곳은 작품으로 변용되었을 때, 생생한 묘사와 구체적인 생활의 제시에 의해 사실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서울은, 식민지적 현실이 그 모순의 여러 단면을 지닌 채, 급박하게 변모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산층 집안이란 돈을 중심으로 하여 비틀린 인간들의 심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다. 바로 이런 측면이 당대 현실을 생동감 있게 형상화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 “삼대”의 갈등
□ 가족 내부의 갈등 : 조의관과 그 아들 상훈 사이의 갈등을 우선 지적할 수 있다. 이들 사이는 보수와 개화의 이념이 서로를 갈라놓는 듯 보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대립은, 이런 가치관의 차이가 재산권을 쥔 조의관에 의해 손자인 덕기로 가계 유지와 재산 보호의 상속권을 넘겨줌으로써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상훈과 덕기의 갈등도, 표면적으로는 홍경애를 둘러싼 도덕의 문제인 듯하나, 재산권의 상속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대립에 의해 심화되었다. 결국, 가족 간의 갈등의 중심은 돈이라 하겠다.
□ 개인과 사회의 갈등 : 이 경우 중심 인물은 김병화이다. 그는 타락한 중산층의 삶은 물론, 이를 조장하며 그 바탕을 마련하고 있는 식민지 질서 전체에 대해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조의관, 상훈 등과는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마르크스주의자인 피혁을 추종하여 지하 활동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한다.
<참고> “삼대”의 인물 제시 방법
이 소설은 제 3자인 서술자가 인물과 사건에 대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서술 상황에 대해 간섭하는 시점을 취하고 있다. 대개 이런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에서는 서술자에 의해 인물의 성격이 직접 논평적으로 진술됨이 일반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삼대”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주요 등장 인물의 성격이 그들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암시되고 있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즉, 이 소설에서의 인물 성격 제시는 서술자에 의한 직접적 제시 이상으로 인물의 간접적인 암시에 의존하고 있다. 조부의 대화에 보면, 그의 세심하고 시비(是非) 가리기를 일삼는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어 성격의 간접적 제시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물의 성격 제시 방법은 시점에 따라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의 문장이 지닌 성격에 따라 판단된다.
<참고> “삼대” 전체의 인물 구조표
(가) 가족을 이루는 인물군(人物群) : 가족 내부의 갈등을 보여 주는 인물
(나) 시대적인 이념을 보여 주는 인물군 : 정신적 편향성을 보여 주는 인물
(다) 삶을 구체화하는 인물군 : (가), (나)의 인물군을 연결시키는 부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등장 인물 (가)
[조의관] --- (부인) --- 수원집(후처)
|
(창훈) ··························· 상훈 ············· 부인 --- 홍경애(첩) / 김의경(첩)
: |
(문기) ······· (덕희) ····· [덕기] ··········· 부인
□ 등장 인물 (나)
(부) ---- (모)
목사
(부) ─┐ | ┌ (부)
혁명가 |─ 필순 ········ [김병화] --- 홍경애 ──| 애국지사 : 옥사
(모) ─┘ / \ └ (모)
전 여교사 피혁 장훈
□ 등장 인물 (다)
······························ 매당 ··········· (최참봉) ······· 수원집 ---조의관
: : : :
조상훈 ---------- 김의경 (어멈) (지 주사)
*보기 - [ ] : 중심 인물 / --- : 직접적 관계 / ···· : 간접적 관계 / ( ) : 주변적 인물
<참고> “삼대”의 장별 줄거리
제1장에서는, 덕기가 방학이 되어 서울에 왔다가 다시 유학길을 떠나려고 짐을 꾸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첫 장면에서 작품의 중요 인물 셋이 암시되어 있다. 덕기와 그의 조부인 조의관, 그리고 덕기의 친구인 김병화이다. 중산층 출신의 부잣집 손자인 덕기와, ‘마르크스 보이’인 김병화를 보여 줌으로써 1930년대의 풍속도를 먼저 제시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홍경애와 조상훈이 소개되는데, 술집 여급으로 있는 홍경애는 조상훈의 첩이고, 상훈은 덕기의 아버지이며, 부친인 조의관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진작부터 따로 나와 살고 있다.
제3장에서는, 조의관의 집안 분위기가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덕기의 집안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조부, 서조모 밑에 덕기 내외가 들어와 살고 있고, 조의관은 첩인 수원집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손자나 증손자보다 귀여워했다는 점이 나타나 있다. 또, 수원집이 덕기와 그 식구들을 시기한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제4장에서는, 덕기의 중학 동창생이며 유일한 친구인 병화가 소개된다. 목사인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아 가출하여 일본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서울에 와서 가난한 생활을 한다. 사회 비판적이자 퇴폐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병화는 어린 여직공 필순네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제5장은, 병화의 과거가 제시되어 있다. 병화가 왜 목사인 아버지와 불화 관계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 반동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문제삼고 있다. 하숙집의 정체도 드러난다. 하숙집은 그야말로 가난한 곳이었다. 덕기는 여기서 필순을 만나는데, 그 아비는 주의자였으나,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어 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살며, 병화는 식객 노릇을 하고 있다.
제6, 7장에서는, 홍경애와 관련된 일들이 드러난다. 홍경애의 아버지는 수원의 교역자이자 애국 지사로, 3․1운동 때에 옥에 드나들어 병이 들었으며, 마침내 비참히 죽었다. 조상훈이 이 집안을 돌보다가 홍경애를 유린하여 딸까지 낳는다. 이 아이가 조덕기의 이복 누이동생인 셈이다. 그런데 덕기와 경애는 소학교 동창생이다. 덕기의 추억에 담긴 소학 시절에 함께 크리스마스 연극을 했던 단짝 홍경애에 관한 것이었다.
제8장에서 제10장까지는, 이 소설에서 중시되어야 할 세 가지 충돌 사건이 드러난다. 그 첫째는, 문중 회의에서의 충돌이다. 조씨 가문의 증조부 제사가 있어 대소사가 한꺼번에 모이고, 가문을 둘러싼 물질적 이해 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즉, 가문을 빛내기 위해 대동보소(족보)를 만들자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조상훈의 갈등이 드러나게 된다. 둘째 충돌 사건은, 여인들의 갈등이다. 수원 집, 덕기 모, 덕기 처 사이에서 벌어진 감정의 갈등이다. 셋째 충돌은 홍경애의 문제로 인한 상훈, 덕기 사이의 갈등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엽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것은 돈으로 인한 갈등이다.
제11장은, 덕기가 경도로 떠난 뒤에 서울의 풍경이 그려지고, 홍경애를 사이에 두고 조상훈과 김병화가 술집에서 쟁탈전을 벌이는 일이 그려진다.
제12장은, ‘바커스’의 여급 홍경애를 두고, 김병화, 조상훈, 그리고 일본인 청년들이 패싸움을 벌여 파출소로 붙들려 가는 이야기이다.
제13장은, 조상훈이 여자를 낚아채는 방식이 자세히 소개되고, 조상훈이 홍경애를 불러 김병화의 관계를 따지면서 아이의 소유권을 아비로서 주장하나, 아이를 내놓고 살 수 없는 홍경애인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긴장 관계에 접어든다.
제14장은 덕기가 서울을 떠나면서 병화에게 쓴 편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덕기는 편지 속에 학비 중 십 원이라는 돈을 떼어 가난한 병화의 용돈으로 쓰게 배려를 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필순 양이 공부할 의향이 있으면 돕겠다는 의미의 말을 남긴다. 이 글을 읽은 병화는 덕기의 감상성과 덕기가 필순의 미모에 반해 어떤 야심을 가진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나, 곧 덕기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제15․16장은, 외투와 관련된 사건의 이야기이다. 조상훈이 병화에게 준 외투 속에는 김의경이 조상훈에게 보낸 편지가 들어 있어, 조상훈은 이 편지를 찾고자 안절부절못하고, 홍경애는 그 편지를 쓴 여인의 정체를 몰라 몸이 달아 있는 장면이 묘사된다. 부잣집 아들이 오입쟁이 노릇을 하는 삶의 풍속도라 할 것이다. 또, 홍경애가 한갓 술집 여급이고 조상훈의 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당원 피혁(皮革)과 사상적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것 역시 192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하의 서울의 풍속도에 속하는 것이다.
제17장은, 덕기가 보낸 편지를 필순이 읽고 반응하는 이야기이다. 덕기는 이 편지에서 병화의 융통성 없는 투쟁 감정과 필순을 자신의 사상이나 습관 속에 몰아넣으려는 것은 죄악이라고 비판한다.
제18장은, 조상훈 집 하인인 아범에 의해 제 2의 홍경애인 김의경의 정체가 드러난다. 난봉꾼 조상훈이 유치원 보모인 김의경을 후려 깊은 관계에 빠지자, 홍경애의 질투심은 불타오른다. 아범 이름은 김원삼이요, 처자가 줄줄이 달린 50대의 사람이다.
제19장에서는, 홍경애의 마음의 비밀이 드러나 있다. 김의경에 대한 질투심이 김병화에 대한 애정으로 변질된 듯한 낌새를 보여 준다.
제20장에서는, 매당의 위치가 드러난다. 홍경애는 조상훈이 매당집을 통해 김의경을 소개받았을 뿐 아니라, 거기를 통해 두 사람이 만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또, 수원집이 매당집을 드나들고 있음을 목도한다.
제21장에서는, 1920년대 부르주아 풍속이 잘 포착되어 있다. 매당이라는 은폐된 조직을 통해 부잣집 아들이며, 교회에 다니며, 교사의 신분인 조상훈의 외도가 가능하였다.
제22장에서는, 수원집이 중심점을 이루고 있어, 매당집과 수원집의 생리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감기가 악화되어 사랑에서 안방으로 옮아 와 자리 보전을 하고 누운 조의관을 독차지한 수원집은, 자기 위치를 굳히기 위해 덕기 모, 조상훈, 덕기 처는 물론, 덕기까지 중상 모략한다. 조상훈도 매당을 들어 수원집을 역습하기도 한다.
제23장은, 피혁이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바커스’를 중심으로 홍경애, 김병화, 필순 등도 한 덩이가 되어 형사들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제24장은, 김병화가 덕기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피혁이 해삼위로 또는 모스크바로 떠난 후, 남녀 학생 수삼 인을 선발하여 해삼위, 모스크바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필순을 생각하나, 필순의 생각이 평범한 보통 여자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한다. 필순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일본 같은 데 가서 편안히 대어 주는 학비나 받아쓰는 것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병화는 처자가 있는 덕기의 돈으로 유학을 한다면, 첩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런 심경을 털어놓는다.
제25장에서는, 조의관의 병의 악화로 인해, 덕기의 귀국 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의관의 병세가 악화되자, 영감은 덕기를 보고 싶어하고, 상속 문제로 인해 유학 중인 덕기를 불러오느냐 마느냐 하는 차에, 상훈과 같은 항렬인 조창훈 일당은 전보를 친다고 하고는 결국 묵살하고, 덕기 여비로 내놓은 돈까지 잘라먹고 속이게 된다. 그러나 덕기는 덕희가 친 전보를 보고 서울에 도착, 덕기가 오지 못하도록 전보를 치지 않은 도당들인 창훈, 최 참봉, 수원집 등의 음모 소용돌이에서 의젓한 태도를 보여 준다.
제26장에서는, 조부는 덕기에게 열쇠 꾸러미를 넘겨주면서 조씨 집안의 열쇠를 맡아야 한다는 것, 그 열쇠에 덕기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말과 함께 공부라든지 경도행 포기를 엄명한다.
제27장에서는, 변한 병화의 모습이 덕기의 눈을 통해 관찰되고 있다. 덕기는 병화가 변한 것은 홍경애와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병화는 사나이다운 일을 획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28장에서는, 조상훈과 덕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원집이 부추기고, 본인도 어느 정도 원하는 바, 조의관은 입원을 하게 된다. 열쇠 꾸러미를 넘겨받은 덕기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금고 앞에서 금고를 열려고 애쓴 흔적을 보게 되고, 이어 금고를 열어 본다. 그 속에는 재산 분배가 되어 있었다.
제29장은, 덕기를 중심으로 수원집, 20년 간 집안 일에 봉사했다는 지주사, 일가 떨거지인 창훈, 약삭빠른 지주사 등이 물질적 이권을 노리는 일들이 드러나고, 덕기는 지주사를 통해 매당 집의 존재를 알고 흥미를 가지나, 조의관의 약 시중에 관해 의문을 가진다. 필시 기생 어멈 같은 어멈이 수원집과 최 참봉의 사주를 받아 약에다 무슨 독물을 넣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제30장에서는, 조씨 가문의 대들보였던 조의관이 죽는다. 대학 병원 의사가 본 바에 따르면, 조의관은 비소 중독(砒素中毒)으로 판단이 된다. 한방의에게 의심의 초점이 가나, 한방의에게서는 중독될 만한 의문점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서, 최후의 의심은 약 시중을 하던 어멈과 수원집으로 집중되나, 그 이상의 추궁은 없다.
제31장은, 병화의 갑작스런 변화가 이야기된다. 피혁이 후배 양성 자금으로 두고 간 돈으로 홍경애와 병화는 반찬 가게를 차려, 필순네 식구들을 가게에 옮아오게 하였다. 자금주는 홍경애요, 필순네 식구와 필순, 병화가 가게를 꾸려 나가기로 한 것이다.
제32장은, 병화가 가게를 차리게 됨에 따라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병화는 가게를 차린 돈의 출처가 상속자인 덕기에게서 나왔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지만, 돈의 행방에 대한 추궁이 벌어져 병화는 7명의 주의자들에게 납치되어 폭행을 당한다. 필순의 아비 홍경애도 역시 협박과 폭력을 당한다. 덕기는 행방 불명된 병화를 찾아 나서고, 병화 때문에 감금당해 고초를 겪는 홍경애, 속 태우는 필순을 돌보고, 얻어맞아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진 필순의 아비를 병원에 입원시켜 밤샘을 한다. 덕기의 이런 헌신적 노력 앞에 병화는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눈물을 보이고 만다.
제33장에서는, 1920년대 사상 운동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사상 운동이 깡패 도당들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깡패 도당은 보호색의 역할을 한다. 7명의 주의자들 중에 두목격인 장훈은 병화의 자금 출처가 피혁에서임을 안다. 장훈이 병화를 공격한 것은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려고 한 것이요, 병화를 반성시키고자 함이요, 병화에 대한 형사들의 의혹을 엷게 해 주려는 의도라고 자신은 주장한다. 장훈과 피혁과의 관계로 보아 장훈은 병화보다 한 수 위의 인물이거나, 피혁까지도 감옥에 팔아먹은 파렴치한쯤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제34장에서는, 갈빗대가 부러져 병원에 있는 아비를 문병하는 덕기의 도움에 고마워하는 순진한 필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필순의 아비의 병원비나 기타의 일들을 덕기가 자진해서 도맡았을 때, 김병화와 홍경애가 경찰에 잡혀갔을 때 가게 밑천을 대 주었다는 사실의 확인 여부로 경찰에 불려 갔을 때에 필순은 안타까워하고, 거칠고 세속적인 어른 사회를 체험함으로써 필순의 순진함은 빛난다.
제35장에서는, 부모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홍경애, 김병화가 경찰에 구속되고, 자금 출처가 계속 문제가 되나, 덕기와 일단 손발이 맞아 사건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홍경애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홍경애 모친은 상훈으로부터 경애 몫을 얻어내려는 물욕을 보이고, 순진하던 어머니가 변하는 모습이 경애에게는 놀랍게 보일 뿐이다. 덕기 모친은 수원집이 차지한 안방을 차지하고, 수원집을 몰아내는 일에 골몰한다. 덕기와 부친은 주먹다짐 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제36장에서는, 집안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초상 치르기, 병화의 일 때문에 뛰어다닌 것 등으로 인하여 덕기는 몸살 기운이 들고, 덕기에 대한 간단한 학력이 소개된다. 필순은 덕기의 병문안을 간다. 필순이 덕기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덕기도 그렇다는 면에서 애련이란 소제목이 설정되었다.
제37장은, 두 가지 소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하나는 조의관의 죽음을 두고 의사에게 덕기가 돈을 먹였다는 것이요, 둘째는 덕기 처와 덕기 모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필순에 대한 소문이다. 그러나 덕기는 필순이를 제2의 홍경애로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제38장은, 필순네 가게의 자금 출처로 인해 경애 모녀, 창훈, 병화, 필순, 덕기가 잡혀가고 덕기가 왜 의사에게 3백 원이나 사례를 했는가 하는 문제로 지주사, 한방의, 최참봉이 잡혀 들어간다.
제39장에서는, 겉늙은이 조상훈의 이야기이다. 아들이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조금도 심각히 생각하지 않고, 틈을 이용하여 열쇠 꾸러미를 훔쳐낸다. 치졸한 연극을 꾸며내어 금고를 열고 문서 및 유서를 위조한다.
제40장에서는, 피혁의 직계인 장훈의 최후를 냉철하게 그렸다. 이 사건의 비밀의 열쇠를 혼자 뒤집어 쓴 장훈은 혀를 깨물고 독약을 마셔 27세의 나이로 주의자답게 세상을 끝내었다. 여기서 피혁 사건은 마무리된다.
제41장에서는, 부친의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장훈이 죽음으로써 덕기의 혐의가 일단락 지어졌으나, 아버지 조상훈의 치졸한 음모가 드러난다. 부친의 소식, 금고 사건, 집안 걱정, 병화의 고초 등을 머릿속에 둔 덕기가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제42장에서는, 죄 없음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이다. 피혁 사건, 조의관의 독물 중독 사건 및 문서 위조 사건 등이 덕기의 움직임에 따라 일목 요연해지고, 사건은 동시에 해결된다. 기간은 20여 일이 걸렸으며, 조의관이 죽은 지 두 달 뒤에 해당된다.
▶ 표본실의 청개구리
1. 줄거리
‘나’는 불규칙한 생활과 권태로 고통과 갈등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신경 과민에 불면증까지 겹쳐 죽음의 유혹까지 느꼈다. H가 평양 방문에 동행할 것을 권유하여 ‘나’는 밀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 허락은 하였으나 여러 번거로운 일로 망설이다가 기차를 탔다. 대동강 가에서 기괴한 차림의 풍광 속에서 마음의 전환을 느끼며 H와 남포로 Y를 방문하여 김창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행들과 함께 그를 방문했다. 그는 삼원 오십 전으로 삼층집을 짓고 산다는 정신이상자였다. 그는 철학자연하였고 유유자적하는 자유인과도 같았다. 우리 모두의 욕구를 채워 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일종의 영감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세계 평화를 위한 모임을 조직한다는 것이었다. ‘나’가 남포를 다녀온 지 두 달쯤 되는 어느 날 Y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김창억이 집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우울한 심정이 되어 늘 거닐던 절벽 길을 걸었다. 그 날 밤 김창억에 대한 생각과 대동강 가에서 본 장발객의 신경질적인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 후 김창억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싫어하는 평양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후처의 친정이 있는 평양의 보통문 밖 짚더미 속에 살면서 걸식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김창억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경향 : 사실주의적 자연주의 경향
◎ 배경 : 시간(1920년대 전반기) / 공간(서울․평양․남포 등)
◎ 문체 : 만연체의 문장으로 산만하기는 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 거의 대부분의 사건을 평면적인 단순 구성으로 작품화하였다.
◎ 사상 : 세기말 사상(pessimism)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남포로 떠나기 전까지의 ‘나’의 정신적 고뇌와 심리적 갈등
전개 - 평양 도착까지의 과정과 대동강 가에서 여러 가지 일로 갈등과 분노를 겪음.
위기 - 남포에 도착하여 Y와 함께 김창억을 만나고, 그의 인생 내력을 알게 됨.
절정 - 김창억이 자신의 삼층집에 불을 지르고 종적을 감춤.
결말 - ‘나’의 침울한 심정과 김창억의 뒷소식
◎ 주제 : 3․1운동 직후, 패배주의적 경향과 우울 속에서 침체되어 있는 지식인의 고뇌. 젊은 지식인의 이상과 절망적인 현실
◎ 출전 : <개벽>(1921)
3. 등장 인물
◎ 김창억 :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보통학교 훈도 출신. 어머니와 아내가 죽고 재혼하나 감옥살이를 하게 되며, 출옥 후 아내가 창녀가 된 사실을 알고 정신 이상자가 되는 불행한 동적 인물
◎ 나(X) : 작품에서는 X로 나오며, 친구(H)와 남포에 가서 광인(김창억)을 만나 그의 미친 행위를 동경한 인물. 3․1 운동 패배 후 좌절감과 절망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린 지식인이며 정적 인물
◎ H, Y, 영희, 백부 : 보조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액자 구성으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겉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속이야기는 김창억이란 광인(狂人)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둘은 구조적으로 긴밀함이 없이 단절된 채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겉이야기의 시점은 물론 1인칭 시점이다. 속이야기는 전지적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 둘의 결합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화자가 속이야기의 주인공을 직접 대면하면서도 마치 다른 이야기처럼 다루고 있어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사실 화자인 ‘나’와 김창억은 정신적 성향에 있어서 매우 긴밀한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김창억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에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서투른 액자로 말미암아 그것을 깨뜨리고 있다는 데서 문제를 가진다. 이것은 염상섭이 이중 플롯의 기법을 쓰려는 의도가 앞선 나머지 만들어 낸 실패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작품이 그 처녀작인 만큼 곳곳에 결함을 가지는데, 자연주의를 염두에 둔 나머지 김창억의 병리 현상을 좇느라 구성이 탄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1-5장, 10장은 ‘나’의 이야기이며, 나머지 가운데 이야기는 김창억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여 김창억의 이야기인지 ‘나’의 이야기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물론 김창억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와의 유사성을 말하려고 하는 의도는 분명하지만, 김창억의 광기(狂氣)를 너무 소상하게 그려 마치 독립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위에서 말한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문학사적 의의말고도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것은 당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점이라 할 수 있는데, 식민지 초기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와 방황의 모습을 매우 예리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심리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즉 고뇌에 찬 지식인의 내면 세계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보면, 화자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있으며, 무력감과 정신적 초췌함, 광기와 우울 등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시대고(時代苦)와 연결될 듯하다. 질식할 것만 같은 세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광(發狂)을 하고 있는 화자의 고뇌가 묘사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내면 심리의 서술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것이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드러나고 있다. 개구리 해부 장면에서 본 전율과 공포의 기억이 연상되면서, 그 때의 메스가 풍기던 강렬한 공포감이 화자를 여전히 괴롭히고 있다. 메스와 햇살, 그리고 면도칼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화자는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 우울증의 극단은 자살 충동으로 드러난다. 이 자살 충동은 공포와 마력이 공존하는 심리로 나타난다. 화자는 메스의 날카로운 모습과 빛깔이 주는 공포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자꾸만 면도칼의 유혹에 빠져 간다. 이것은 그가 정신적 외상을 입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하는데, 죽음에의 충동에 사로잡힐 정도로 현실에 절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화자는 니코틴과 알코올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심신이 초췌해져 칩거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런 나날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극단의 절망을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 식민지 시대는 지식인으로 하여금 극도의 우울과 절망을 주었던 것이다. 화자가 절망하는 것은 그가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김창억과는 동궤(同軌)를 이룬다. 화자는 현실이 질식할 것만 같은 나머지 현실에서 이탈된 자들과 정신적으로 유대감을 가진다. 친구 H와 대동강을 거닐면서 본 장발 거지의 그 자유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다. 화자가 미칠 지경에 이른 것은 바로 침잠된 칩거 생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반대의 경우가 절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거지에게서 그 자유를 발견하였고, 그와 같은 삶이 하나의 구원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 자유와 광기에의 쏠림은 김창억을 만나면서부터 구체화된다. 김창억을 만난 충격적인 첫인상 부분을 보면, 화자는 김창억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호기심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낀 것이다. 이것은 화자 자신의 정신적 일면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화자의 고뇌를 들어 줄 구원의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창억은 광인이다. 그는 3원 50전으로 삼층집을 얼기설기 지어서 살아가는 자이다. 그는 ‘동서 친목회’를 혼자서 결성하여 그 사무실을 이 집에 두고 자신이 회장을 맡는다. 그리고 그 회원으로는 이 언덕 아래의 유곽에서 생활하는 창부들로 삼아 놓는다. 그러면서 세계의 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과 처방을 마련해 놓고 있다. 구주 대전의 참혹한 포연은 하나의 불의 심판이었다면서, 이 물질 만능의 시대를 헤쳐 가기 위해 동양과 서양이 친목하면서 도의를 두터이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요설적 재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 김창억의 광기에 의한 절대 자유와 명랑성에 대해 화자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화자는 절망의 출구를 그런 광기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김창억을 본 놀람을 친구에게 쓴 글에서 김창억의 절대 자유를 보고 감동하고 있는데, 광인 김창억은 광기 때문에 차라리 절망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한 자유민이 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바로 김창억의 경우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의 주제는 어느 정도 선명해지는데, 식민지 시대의 병적 우울과 절망,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광기와 기행(奇行)을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창억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에 집중되지 않아 ‘나’의 고뇌를 선명히 하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창억의 이야기가 중요성을 지니는 이유는 ‘나’의 삶과의 관련에서이지 김창억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닌 것이다.
<참고> 작품 보충 해설
1921년 8월부터 10월까지 <개벽>에 연재되었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염상섭의 첫 단편소설이며 3․1운동 직후의 패배주의적 경향과 우울함 속에 침체되어 있는 지식인의 고뇌를 드러낸 문제작이다. 광인(狂人) 김창억에 대한 탐방기와 그의 후일담을 ‘나’의 이야기와 중복시킴으로써 식민지 사회의 암울한 사회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염상섭의 작품 경향은 이광수류의 선각자 의식에서 벗어나 개인적, 실존적 고뇌를 사회적, 보편적 고뇌로 치환시키고 반대로 사회적, 보편적 고뇌를 개인의 실존과 결부시켜 이해하려는 근대적 예술인 특유의 자각을 담고 있다. 특히 이러한 자각은 그가 특정한 독자층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작품을 썼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즉 염상섭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 내에서 자신의 위치와 자아를 확인하고 발견해 가는 양식 있는 부르주아지(시민 계급)를 작품의 등장 인물과 독자층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이광수의 문학이 조선의 전 민족을 독자층으로 지향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모호하고 관념적인 약점을 지녔다면 염상섭의 이러한 나름대로의 뚜렷한 인식적 색깔은 긍정적 의미에서 시민 문학의 성장을 기대해 볼만한 진취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3․1 운동의 성격 자체가 전 민족의 의지를 하나로 모았던 시민 혁명의 모습을 띠고 있었던 만큼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그의 작품들은 일제의 교활한 문화 정책의 허실을 주의 깊게 주시하는 현실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중인계층의 서울 토박이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개인사와도 무관하지는 않다. 전통적으로 갑신정변과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 등 개혁의 배후에는 중인들의 근대적 자각이 있었던 것처럼 그의 중인 의식 안에는 당대의 현실을 실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김동인류의 소시민성과 구별될 수 있는 근거도 당대의 현실을 깊이 있게 주시할 수 있는 양식 있는 비판력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의 문체가 점액질의 끈끈함으로 표현되는 까닭도 지속적인 사고의 연장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그의 근대적 지식인 성향에서 야기되는 한 특질이다. 자연주의의 왜곡된 수입으로 간혹 논란이 있었으나 그의 인식의 혼란은 인정되더라도 특정 사조의 유입은 각 나라와 민족의 특수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변호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자연주의적 시각으로 그가 발견해 낸 것은 유교적 세계관 안에 존재하는 개인의 문제였다. 개인의식과 개성을 발견하고 이를 당시의 현실 감각으로 구체화시키려고 한 데서 그의 작품은 좀더 근대적 성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한국 현대 문학사상 최초의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어 ‘사실주의적 자연주의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1920년대 사회는 물론 인물의 내면까지 해부하듯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으나 여러 가지의 상징적 대화와 사건, 그리고 복합 구성 때문에 매우 난해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 시절, 박물 선생이 청개구리를 실험대 위에 놓고 심장과 폐를 해부해 내는 것은 육체적으로 파괴되고 정신적인 근거마저 상실한 현재 ‘나’의 처참한 생활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그 박물 선생의 청개구리 해부는 작가가 앞으로 이런 태도와 방법으로 인생이나 현실을 해부해 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당시의 현실에서 ‘나’의 표본이 될 만한 김창억이라는 인물을 해부대에 올려놓고 그의 생활과 심리를 실험적인 방법으로 해부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암시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 표현된 주된 모티프는 삶의 열정이나 지향을 갖지 못한 채 고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등장 인물을, 오장을 빼앗기고 버르적거리는 개구리의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해부된 청개구리가 사지에 핀을 박고 칠성판 위에 자빠진 형상은, 일제 강점기의 현실에서 지식인으로서 뚜렷한 의식체계를 세우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울한 나의 내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당시 지식인들을 내세우는 것으로서 육체적으로 파괴되고, 정신적 근거를 상실한 모습인 것이다. 말초 신경만 예민하게 발달한 '나'와 정신 이상자인 김창억이란 인물은 지식인의 고뇌를 대표하고 있는데, 특히 김창억의 정신 이상은 당시 지식인의 회의적이고 절망적인 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나’와 김창억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른바 닮은 인간임을 알 수 있다. 전부 10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장에서 5장까지, 그리고 마지막 10장은 1인칭으로 되어 있고, 6장에서 9장까지는 3인칭으로 씌어 있다. 결국,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와 ‘그’(김창억)인 셈이며 그 둘은 동질적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서술의 구체성보다는 생경한 관념의 노출이 심하다. 이는 내면적인 고뇌를 드러내고자 했던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이 작품과 3부작을 이루고 있는 “암야(暗夜)”, “제야(除夜)”와 함께 당대 지식인들이 겪는 정신적 우울증이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 이 작품에 나오는 해부 장면에서 개구리의 배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는 표현은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끝으로 흔히 이 작품을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계열의 소설이라고 알려졌으나 사실주의적 자연주의 작품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 임종(臨終)
1. 줄거리
병자는 병세가 회복될 기미가 없는데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병자가 병을 고치는 것보다는 병원비나 장례비 걱정을 한다. 병자가 퇴원을 원하자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병자를 퇴원시키지만 병자는 퇴원 후에 곧 죽고 만다. 병자가 죽자 모인 가족들은 죽은 사람의 유언과는 상관 없이 장례비용이 적게 드는 쪽으로 치르기 위해 서로 말다툼을 한다. 또, 병자는 원래 불교를 믿었으나 병원에 있을 때 간호사의 권고로 성당의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입관하는 자리에 찾아온 사람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종교에 따라 의식을 치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50년대) / 공간(서울)
◎ 성격 : 사실주의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인물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여 보여 줌.
◎ 제재 : 임종 직전의 심리와 장례 절차
◎ 주제 : 인간의 살고 싶어하는 욕망과 이기적인 마음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한 인간의 죽기 직전의 심리 변화와 병자를 둘러싼 가족들의 심리를 그린 소설이다. 인간은 죽음에 직면하면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인다는 것과 비록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병들게 되면 사람들은 귀찮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임종을 준비하고 있는 가족의 행동을 그린 현진건의 단편 소설인 “할머니의 죽음”과 상당 부분 유사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할머니의 죽음”은 죽음을 거부하려는 할머니의 허망한 몸짓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작위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임종을 앞에 둔 인심과 인정을 실감 있게 포착하고 있다.
▶ 전화(電話)
1. 줄거리
이 주사는 전화 추첨에 뽑혀 아내의 옷과 패물 등을 전당포에 잡히고 300원에 전화를 놓았다. 아내는 이틀 동안이나 애타게 첫 번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게 기대했던 전화는 아침 일찍 기생 ‘채홍’이가 남편을 찾는 전화였으므로 아내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한 이 주사는 ‘채홍’이로부터 전화를 받고 기분이 밝아져 퇴근길에 방문했으나, 채홍이는 약속이 있다며 아쉬운 듯 밤에 들러 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이 주사는 아침에 전화로 인한 아내의 심술을 생각하며 셔츠와 장갑을 선물로 사 가지고 돌아와 아내의 마음을 돌린다.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이 주사는 직장 동료인 김 주사의 전화를 받고 채홍이를 생각하며 외출을 한다. 그 동안에 아내는 채홍이가 남편을 찾는 전화를 받았고, 남편으로부터 채홍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는다. 아내는 마음이 상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야 귀가한 이 주사에게 전화의 쓰임이 건전하지 못함을 불평하며 못마땅해 한다. 이 주사는 아내를 달래며 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것을 제의한다. 마침 이 이야기를 들은 김 주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전화를 오백 원에 살 것이라 말한다. 이 주사는 이 돈으로 전당포에 잡힌 아내의 옷을 찾고, 본집과 기생 ‘기화’에게 김장을 마련해 준 후 나머지 돈을 용돈으로 쓸 생각에 흡족해 한다. 그러나 김 주사는 부친에게 칠백 원에 전화를 샀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백 원을 가로챈다. 그리고 이 주사를 속이고 몰래 사귀어 온 ‘채홍’이와 즐기며 새 양복을 맞추어 입는다. 이 사실을 안 이 주사의 아내는 김 주사 부자를 찾아가 이백 원을 돌려 받고 좋아한다. 전화를 놓은 지 며칠 사이에 사백 원이나 번 것이다. 아내는 이 주사에게 전화를 다시 놓을 것을 은근히 권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서울)
◎ 경향 : 사실주의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치밀한 설명적 묘사
◎ 구성
발단 - 전화를 놓고 전화 오기를 기다리던 아내는 남편을 찾는 전화로 말다툼을 한다.
전개 - 전화가 기생과 연락 수단으로 쓰임에 남편의 부도덕이 드러나고 갈등이 생긴다.
절정 - 남편은 여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화를 오백 원에 판다.
결말 - 김 주사가 중간에 가로챘던 돈이 발각되어 아내는 그 돈을 돌려 받고 좋아한다.
◎ 제재 : 전화, 이해 타산
◎ 주제 : 전화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부부간의 갈등과 인간의 약삭빠른 이해 타산
◎ 출전 : <조선문단>(1925)
3. 등장 인물
◎ 이 주사(남편) : 젊은 회사원으로, 물색 모르고 기생 채홍이에게 빠져 있는 인물
◎ 아내 : 남편의 비도덕적 행동에 화를 내면서도 생활에 만족하며 묵인해 주는 인물
◎ 채홍 : 기생. 이 주사와 직장 동료인 김 주사 사이를 오가며 농간을 부리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염상섭의 단편 “전화”는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의 세계와 흡사한 것 같다. 그만큼 이 소설은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전화를 놓은 다음날부터 전화를 되파는 날까지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내용으로 했다. 첫 번째 사건은, 이 주사 부부의 갈등과 대립이 나타났다. 아내는 남편의 뜻에 따라 자신의 옷과 패물을 전당포에 맡기고 전화를 놓지만, 전화는 오히려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와 갈등을 가져다 주는 물건으로 변해 버린다. 자신의 옷가지와 패물을 집어삼켰고, 기생이 남편을 찾는 등 온종일 화나게 해서 밤잠까지 뺏어가 버린다. 또, 미심쩍었던 남편의 부도덕한 생활이 밝혀져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사건은, 전화의 매매를 둘러싸고 이익에 약삭빠른 인간들의 생활 모습이 실감 있게 펼쳐진다. 이 주사는 아내와의 갈등 해소를 위해 김 주사 아버지에게 전화를 팔게 되는데, 김 주사는 중간에서 전화 판매 값을 속여 가로챈다. 등장 인물들이 이처럼 서로 속이고 속고 하지만 이들은 깊이 고민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이고 삶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소설에서 살아 있는 인간의 생동감을 맛볼 수 있고,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염상섭의 사실주의 작품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오상원(1930~1985) |
소설가. 평북 선천 출생. 1955년 <한국일보>에 “유예(猶豫)”가 당선되어 등단. 그는 주로 한국 전쟁으로 인한 이념 대립을 소재로 작품을 썼는데, 정치적 상황에 구체적으로 대면하지 않고, 그런 정치적 상황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개인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서는 구체적 상황이 적은 반면에 관념의 노출이 극히 심하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내적 고뇌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짙은 우울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1960년 이후 작품 활동은 뜸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작으로 “유예(猶豫)”, “균열”, “모반(謀叛)” 등이 있다.
▶ 유예(猶豫)
1. 줄거리
인민군에게 잡혀 죽음을 목전에 둔 심리적 갈등, 죽음의 무의미함과 전쟁의 비극성이 ‘그’의 의식 속에서 반복되며, 지나온 전투 상황과 패주(敗走) 경로가 떠오른다. 그가 인솔한 수색대는 북으로 진격하면서 몇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적의 배후 깊숙이 들어간 ‘그’의 부대는 본대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눈 속에 쓰러진 부하들을 버려 둔 채 여섯 명만이 눈을 헤치며 ××지점에 이르렀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로(大路)를 횡단할 때, 돌연 일발의 총성과 함께 누군가 쓰러졌다. 선임 하사였다. 그는 선임 하사를 부축하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이 가까워진 산 속에서 선임 하사는 슬픈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죽어 갔다. 그는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 속을 헤치면서 남쪽으로 걷다가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불안과 절망, 피로와 굶주림, 추위와 고독 속에 일주일째 되던 날 저녁 험한 준령을 넘었다. 인적 없이 황량한 마을. 그는 이상한 발소리를 들었다. 한쪽 벽으로 몸을 피하고 보니 인민군들이 한 청년을 죽음의 둑길로 내몰고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인민군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두 놈이 쓰러졌다. 일순간이 지나자 인민군이 응수를 해 왔다. 반격을 받은 그는 의식을 잃는다. 이후 몇 번의 심문이 있고 모든 것이 결정된다. 몸을 웅크리고 움 속 감방에 쓰러져서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들에게 끌려가 예정대로 남쪽으로 내닿는 둑길을 걷다가 총살될 것이다. 그는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자신의 삶을 끝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둑길을 걸어간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지자 자신은 모든 것이 끝났지만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심리 소설, 전후 소설
◎ 배경 : 시간(겨울.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기간인 현재에서 출발하여 과거, 미래를 거쳐 총살 직전의 현재) / 공간(전쟁으로 폐허가 된 어느 마을의 움막과 눈 덮인 대지)
◎ 경향 : 실존주의 경향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주인공의 자의식이 깊어질 때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보임)
◎ 문체 : 간결체
◎ 표현 : 의식의 흐름 수법
◎ 구성
발단 - 인민군에게 잡혀 총살당하게 된 그의 심리적 갈등이 제시됨.
전개 - 북으로 진격했으나 적의 배후 깊숙이 들어가 몇 차례 전투 후에 6명만 남음.
위기 - 인민군의 병사 처형 장면을 보다가 자신의 처지라 인식하고 응사 하다 부상당함.
절정 - 전쟁에 헛되이 죽는 인간 존재의 비극성이 눈 덮인 들판에 주제로 암시됨.
결말 - 죽음 직전의 마지막 의식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조시킴.
◎ 주제 :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고뇌와 죽음. 전쟁과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실존적 인식
◎ 출전 : <한국일보>(1955)
3. 등장 인물
◎ 그 : 이 소설의 화자이며 패주(敗走)하는 낙오병들의 소대장. 비인간적인 참혹성을 독백과 회상 형식으로 담담하게 표현하며 부하를 아끼고 정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전형적인 군인. 포로가 되어 결국 총살당함.
◎ 선임 하사 : ‘그’의 부하로서 극한 상황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함.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포로로 잡힌 국군 소대장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라는 삶의 유예 시간 동안 그가 느끼는 여러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처리하여 생생한 효과를 얻고 있다. 오상원은 이른바 전후 문학파(戰後文學派)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전쟁에 휘말려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인간의 생명, 그로 인하여 파괴되는 개인적 삶 등으로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작품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후 세대가 놓여 있던 회색 분위기와 그러한 분위기 속에 팽배했던 허무의식을 그려내는 데도 관심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인간 생명과 삶을 옹호하는 자세를 보여 준다. 특히, “모반(謀反)”과 같은 작품에서는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 때문에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혼란기의 오도(誤導)된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서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가 정신을 보여 준다. “유예”도 이러한 문학 정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포로가 되어 적군의 회유를 거부하고 처형당하기까지 그의 의식 속에 명멸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가치를 상실한 인간 생명 등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이 처한 현재 상황과 그와 관련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긴박감과 함께 인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눈’의 의미이다. 흰 눈은 총살당해 흐르는 붉은 피와 시각적으로 대조가 되면서,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비극성이 더욱더 강조되게 한다. 몇 사람이나 걸었을 흰 둑길은 그 위에서 몇 명이 죽어 나갔든지 간에 변함 없이 하얗다. 나는 이러한 흰 눈 속을 걸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흰 눈은 총살 직전의 나의 절망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그 차가운 순백의 이미지는 전쟁으로 인하여 인간 생명의 중요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차디찬 무관심의 세계를 상징한다. 흰 눈의 이미지는 인간이 하나의 전쟁의 도구가 되어 버리고 만 비극성을 강조하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교차시켜 가면서 주인공의 의식의 세계와 독백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순차성은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을 '의식의 흐름'이라 한다.
<참고> 의식의 흐름
작자의 개입에 의한 전지적 해설이나 직접적 언급 없이 작중 인물의 사상과 정서 그리고 어떤 소설적 상황에 대한 태도 등을 서술하는 수법을 말한다. 주인공이 행하는 행위나 그가 겪어 가는 사건을 그리기보다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흐르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의 파편들을 현재형으로 그림으로써 사건을 암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인물의 심리적 독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외적 사건을 그리는 기교인 내적 독백과 함께 쓰이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에서도 두 기법은 혼합되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기법들을 원용한 소설에서는 작중 인물 스스로에 대하 생각이나 타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과거의 상황 등이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주관 속에 철저히 용해되어 주관화된 채로 드러나게 된다.20세기 이후에 자주 구사되는 이유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이 매우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공감하는 데 비롯된다. 이러한 기법의 밑바탕에는 세계의 모든 모습이 한 개인의 주관적 의식 하에 파악되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정신분석학적 사고가 깔려 있다.
▶ 백지의 기록
1. 줄거리
의과대학 3학년 재학 중, 군의관이 되어 참전했던 형 중섭은 팔다리를 하나씩 잃은 불구의 몸으로 돌아오고, 상과대학 재학 중, 전쟁에 나갔던 동생 중서는 정신병을 얻어 돌아온다. <백지의 기록>은 이들 두 사람이 전쟁의 상처를 이기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이다. 중섭은 중위 계급장을 달고 야전 병원에 배치되었다. 휴전 협정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적의 공격이 한층 가열해져서 매일같이 부상병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어느 부슬비 내리던 날 밤, 중섭은 일선 연대장이 부상을 입었다는 급보를 받고 앰불런스에 몸을 싣고 포탄이 작렬하는 전선으로 달려갔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연대장을 태우고 돌아올 때, 한 부상병이 앰불런스 앞으로 뛰어나오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지만 병사 한 사람 때문에 지휘관을 죽일 수 없다는 부관의 협박에 부상병을 버려 두고 야전 병원으로 돌아왔다. 연대장을 병원에 인계한 중섭은 다시 앰뷸런스를 몰고 그 부상병을 찾아 전선으로 달려갔지만 부상병은 길가에 쓰러져 이미 숨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중섭은 적의 포탄을 맞고 쓰러진다. 야전 병원에서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손과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중섭은 육체적 부상과 함께 극도의 정신적 좌절감에 빠져든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중섭은 심한 좌절감으로 몽둥이처럼 뻣뻣한 팔목을 짓찧어 피를 내기도 하고, 집안 식구들에게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급기야는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중섭은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거기서 중섭은 병원장 조수로 있는 중학교 동창생 준을 만난다. 준 역시 전쟁에 나갔다가 얼굴조차 몰라볼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번득거리는 한 쪽 눈알, 콧구멍도 짜부라지고 오른손은 손가락이 세 개나 잘려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같은 부상병이면서도 준은 정신 의학을 공부하여 정신과 의사로 재기한 것이다. 준은 중섭을 전상(戰傷) 환자들이 재기하여 일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을’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중섭은 눈먼 사람, 다리 없는 사람, 팔 없는 사람 등이 모두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편, 동생 중서는 비록 육체적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정신적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마음을 덮고 있는 어둠을 헤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마치 파문이 지나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수면처럼 걷혀지지가 않았다. 중서는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책을 뒤적여 보지만 몇 페이지를 못 읽고 내동댕이쳐 버리곤 한다. 책 속에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정신적 탄력성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중서는 정착할 수 없는, 백지처럼 펼쳐진 수많은 시간들을 무엇인가로 채우기 위해 다방에 나가 앉아 줄담배를 피워 대고, 술을 마시고, 성순희라는 여자를 사귀어 보지만 삶의 공허 속을 헤맬 뿐이었다. 마침내 중서는 전쟁의 상처를 입은 정연을 정신 병원에서 만나게 된다. 정연 역시 전쟁의 피해자이다. 옛날의 애인인 중서도 못 알아볼 정도로 심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일선에서 당했던 일 때문에 모든 남자를 무서워하는 피해 망상증까지 보였다. 병원의 지극한 간호와 중서의 도움으로 정연은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를 낯선 땅에 묻고 일선 지대를 헤매다가 몸을 버린 가책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전쟁이 나에게 남긴 상처는 너무도 가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끝내 자살하고 만다. 시체실에서 흐느끼는 중서에게 중섭은 위로의 말을 던진다. “중서야, 그렇다고 낙심할 건 없어. 정연이는 죽었다만 나를 보렴. 우리는 더 꿋꿋이 살아야지.” 정연이를 공동 묘지에 묻고 돌아온 날 밤, 중섭네 가족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전쟁의 회오리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뒤에 처음으로 가족의 따뜻한 정을 맛보는 자리였다.
2. 핵심 정리
◎ 배경 : 6․25 전쟁의 극한적인 참혹한 현장
◎ 시점 : (전쟁의 피해자인 세 사람이 겪는 피해 의식을 그린)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인간의 전쟁에 대한 피해 의식과 삶의 과정
3. 등장 인물
◎ 중섭 : 의과대 재학중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전쟁의 와중에서 팔다리를 하나씩 잃은 불구자
◎ 중서 : 중섭의 동생. 전쟁으로 정신병을 얻은 환자
◎ 준 : 중섭의 중학 동창. 전쟁에서 심하게 다쳤지만 재기하여 정신과 의사가 된 인물
▶ 모반(謀叛)
1. 줄거리
‘민’은 중학을 마치고 조그만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가 중학교 동창인 ‘세모진 얼굴’에게 여러 번 자극 받아 비밀 결사에 가담한다. 그러나 막상 상대편을 암살하기로 한 날, 병석에 누워 있던 노모는 위독한 상태에 빠진다. 그렇지만 대(大)를 위하여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동료의 강압에 못 이겨 ‘민’은 암살 현장에 나서고, 노모는 동료의 손을 아들의 손이라 믿고 잡은 채 운명한다. ‘민’은 차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민’이 두 번째로 암살해야 할 사람은 X였다. 장소는 으슥한 골목길, 시간은 하오 4시, 민이 X를 쏘고 달아나면 부근에서 서성거리던 동료들이 지나가던 청년 하나를 때려 눕혀 실신시키고 범행 누명을 씌우게끔 계획이 짜였다. ‘민’은 거사를 강행하였다. 일은 각본대로 진행되었다. 호외를 보고 아연실색하는 시민들, 누명을 쓰고 구속된 청년, 구석진 방에서 축배를 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결사 대원들. 감쪽같이 피신한 ‘민’은 가책을 느낀다. 자기 대신 누명을 쓴 청년의 집을 찾아가 그의 여동생에게 병으로 위독하다는 그녀 어머니의 약값을 준다. ‘민’은 자기의 행동과 조직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조국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암살을 일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민’은 자기를 처형해 버리고 말겠다는 동료들의 협박을 뒤로하고 결사대를 떠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해방 직후 정치적 혼란기
◎ 시점 :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 경향 : 실존주의적
◎ 표현 : 시간의 역전 기법, 영화적인 표현 수법, 내적 독백 수법(의식의 흐름 수법)
◎ 구성
발단 - 4279년 늦가을, 암살을 모의하는 청년들이 선술집에 앉아 있다.
전개 - 암살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체포되었으나, 진범이 아님을 주장한다.
위기 - ‘민’은 자기가 저지른 암살 사건에 대한 갈등을 겪는다.
절정 - ‘민’은 동료의 설득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비밀 결사를 탈퇴하려 한다.
결말 - ‘민’은 비밀 결사를 탈퇴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찾게 된다.
◎ 주제 : 정치적 혼란과 조직의 폭력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탐구
◎ 출전 : <현대문학>(1957)
3. 등장 인물
◎ 민 : 주인공. 동창생의 권유로 비밀 결사에 가담. 암살 지령을 이행하나, 어머니의 죽음과 테러리스트로 몰린 한 청년의 비극이 계기가 되어 조직을 이탈한다.
4. 이해와 감상
정당 난립과 좌우익의 혈투가 치열했던 해방 직후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정치적 테러리스트의 휴머니티를 빈틈없는 구성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서사는 주인공 ‘민’이 비밀 결사에서 탈퇴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주인공 ‘민’이 비밀 결사를 탈퇴하는 이유가 이 소설에서 다루려고 한 중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이 비밀 결사에 들어가는 동기는 ‘세모진 얼굴에 여러 번 자극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비애국자를 사전에 제거해 버린다는 비밀 결사의 목적에 동의한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탈퇴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 비밀 결사의 목적에 회의를 품게 되어서다. 즉, 그가 하는 행위는 ‘하나의 의의를 갖는 반면 다른 하나의 의의를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의는 그 결사의 목적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양심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과 자기 대신에 체포된 청년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고, 또 대신 체포된 청년의 가족에 대한 죄책감의 경우는 결사의 목적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마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진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진정한 이유는 그러한 개인적인 문제들에 전혀 무관심한 조직의 비정한 생리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민’은 비정한 조직 세계에 대하여 ‘모반(謀反)’한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과 조직의 관계는 단절된 관계로 나타난다. 개인은 조직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만 있고, 조직은 그 조직의 목적에만 관심이 있다. 개인은 조직 내지는 정치에 휘둘릴 뿐이고, 그것은 개인에게 비인간적 삶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해방기 정치 세력간의 갈등보다는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길을 걷는 한 개인의 선택에 중심을 두고 있다. 드디어 '민'은 비윤리적, 비인간적 테러 행위의 실체를 깨닫고 인간성을 회복한다.
오영수(1914~1979) |
소설가. 호 월주(月洲). 경남 울산 출생. 1949년 <서울신문>에 “남이와 엿장수”, 1950년 “머루”가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문학을 삶의 구현이라고 보는 시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문학에 임하는 자세는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 그의 작품에는 운명과 대결하는 치열성이 사라지는 자리에 운명에 순응하는 동양적 세계관이 표출되어 있다. 토착적인 서정과 한국적인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리리시즘의 대표적 작가인데, 그 무대는 언제나 심산(深山)이나 갯마을 같은 곳으로 설정된다. 그 속에 순수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연 합일(合一)의 모습이 향토색 짙은 방언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 “화산댁이”, “후조”, “메아리”, “갯마을” 등이 있다.
▶ 갯마을
1. 줄거리
동해의 H라는 조그만 갯마을에 사는 해순이는 나이 스물셋의 청상(靑孀)이다. 보자기[해녀(海女)]의 딸인 해순이는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 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조개 껍질을 만지작거리고 갯냄새 에 절어서’ 성장한 여인이다. 열아홉 살 되던 해 성구에게 시집가자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 버린다. 그러나 해순이를 아끼던 성구가 칠성네 배를 타고 원양으로 고등어 잡이를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자, 해순이는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가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부양한다. 어느 날 밤 잠결에 상고머리 사내에게 몸을 빼앗긴 해순이는 그것이 상수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2년 전 상처하고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그의 이모집인 후리막에 와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 해순이와 상수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고 다시 고등어 철이 와도 칠성네 배는 소식조차 없다. 시어머니는 성구 제사를 지내고 해순이를 상수에게 개가시킨다. 해순이가 떠난 쓸쓸한 갯마을에 고된 보릿고개가 지나고 또다시 고등어 철이 돌아온다. 두 번째 제사를 앞두고 해순이는 시어머니를 찾아온다.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간 뒤 산골에서 견디다 못한 해순이는 훤히 트인 바다를 그리워하던 끝에 매구혼이 들렸다고 무당굿을 하는 틈을 타 마을을 빠져 도망쳐 온 것이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렛 달이 걸리고 달 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든다.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공간(동해안의 H라는 갯마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경향 : 사실주의적 경향
◎ 주제 : 바다(자연)에 대한 한 여인의 애착
◎ 구성
발단 - 갯마을 여인들의 인정 어린 삶. 해순이 성구와 사별(死別)
전개 - 해순이 상수와 재혼 후 산골로 들어감. 상수가 징용에 끌려감.
절정․결말 - 해순이 갯마을로 다시 돌아옴.
◎ 주제 : 바다(자연)에 대한 한 여인의 애착
◎ 출전 : <문예>(1953)
3. 등장 인물
◎ 해순이 : 해녀의 딸. 젊은 과부. 순박함.
◎ 성구 : 해순이의 첫 남편. 착실한 성격. 고기잡이 나가 행방 불명됨.
◎ 시어머니 : 인정이 있으며, 혼자된 며느리를 안타까워 함.
◎ 상수 : 해순이의 두 번째 남편. 징용에 끌려감.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갯마을’은 사회 현실과 두절된 공간이다. 문명이 미치지 않는 갯마을은 해순이의 두 번째 남편(상수)을 앗아간 ‘징용’만 아니라면 시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시간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순(海順)’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바다의 여자이고 바다의 일부이다. 그녀는 이 갯마을의 과부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청상(靑孀)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해녀 출신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고등어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게 되어 과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상처(喪妻)를 하고 나서 그의 이모집이 있는 이 갯마을에 와 있던 ‘상수’와 함께 갯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 버리자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왼통 바다만 같고…….’ 해서 죽은 남편의 제삿날 갯마을로 돌아온다. 이 작품의 특징은 서정성(抒情性)에 있다. 이러한 서정성에는 사회적인 문제나 윤리의 문제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해순’이가 ‘상수’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때 그녀는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상수’가 가자고 하니까 산골로 따라갈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등어 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과 함께 바다로 돌아온다. 자연과 동화된, 혹은 자연의 일부로 파악된 순수한 인간의 원형이다. 작품이 끝나기 직전, 그러니까 산골 생활에 진력이 나서 마구 바닷가로 뛰어가는 그녀를 두고 모두들 미쳤다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오직 바다만이 그녀의 유일신임을 극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 머루
1. 줄거리
석이는 올해 열 여덟 살이다. 두메산골인 용천골에서 어머니와 여동생 연이와 함께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석이에겐 같은 또래의 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렸을 때 함께 소꿉놀이를 하면 석이는 항상 신랑이 되고 분이는 각시 노릇을 하였다. 그러다가 석이의 말소리가 변하고 분이의 엉치가 바라지면서 둘은 약간씩 수줍음을 타게 되었다. 분이네 집에서는 석이를 대견하게 여겼다. 두 집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밭을 일구고 논을 갈며 사이 좋게 지냈다. 석이 엄마와 분이 엄마는 석이와 분이를 짝지어 주기로 말없이 굳게 약속을 하였다. 이른봄에 석이네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왔다. 두 집에서는 서로 자기 소나 되는 것처럼 번갈아 부렸다. 석이 엄마는 소가 커서 새끼를 낳으면 그것을 팔아서 석이 장가 밑천에 쓸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분이는 거의 날마다 석이네 집에 찾아왔다. 밤마다 머루를 먹었다. 분이는 유독 머루를 좋아했다. 가을이 거의 끝날 무렵 송아지는 코를 꿰었다. 석이 엄마는 송아지를 보며 꿈에 부풀었다. ‘내년 봄에는 틀림없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앞 논틀에서 난데없는 두 발의 총소리가 들려 왔다. 빨치산이 나타난 것이다. 분이 아버지는 이 사실을 읍내에 전하려고 뛰어가다가 그만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빨치산은 석이네 집으로 밀어닥쳐 양식을 빼앗고 소를 몰고 가려고 했다. 석이 엄마는 결사적으로 이를 제지하려 몸부림치다가 그들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집 두 집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는 곳을 묻는 사람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석이와 연이가 삼우제를 다녀오던 날, 분이네도 떠났다. 떠나면서 분이는 퉁퉁 부은 눈시울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다음 머루 철에는 꼭 돌아오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해 가을 고므재에는 머루가 탐스럽게 달렸건만 분이는 까마득히 소식이 없었다.
2. 핵심 정리
◎ 배경 : 두메산골인 용천골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산촌 사람들의 원초적인 애정과 삶
3. 등장 인물
◎ 석이 : 부지런하고 순박한 산골 청년
◎ 분이 : 순박한 산골 처녀. 석이의 친구
◎ 석이 엄마 : 자식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산골의 평범한 아낙
4. 이해와 감상
<머루>는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의 데뷔작이다. 그의 대표작인 <은냇골 이야기>, <후조>, <갯마을> 등과 함께 서정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세계를 제시하여 잊었던 고향에 대한 향수에 빠지게 하는 작품이다. 오영수는 서정적이며 토속적인 세계를 원초적인 인간상에 대한 애착과 결부시켜 향토적 미학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가이다.
▶ 요람기(搖籃期)
1. 줄거리
도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산간 마을이지만 ‘소년’은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봄철에는 들불놀이, 너구리 잡기를 하고, 아이들이 잡아 온 물까마귀를 그들의 대장격인 춘돌이가 꾀를 써서 다 먹기도 했다. 여름에는 밤 밭골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기도 하고 멱을 감다가 참외 서리를 하기도 했으면 밤에는 평상에 누워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가을이면 아이들과 콩서리를 해서 춘돌이가 시키는 대로 먹기도 하고, 결혼해 마을을 떠난 이대롱과 득이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연 날리기를 즐겼다. 연싸움이 특히 재미있었지만 정월 보름에 그 연을 날려보냈다. 꿈과 소망을 키우던 ‘소년’은 어느새 인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어른이 되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성격 : 향토적, 회상적, 수필적, 서정적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문체 : 간결체
◎ 표현 : 회상적 어투, 배경 중심의 분위기 소설
◎ 구성 : 계절의 변화에 따라 추보식, 병렬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발단 - 문명의 혜택이 없는 산간 마을에서 ‘소년’은 즐겁게 살았다.
전개 -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가도록 여러 체험을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결말 - ‘소년’은 꿈을 키우다 희비애환(喜悲哀歡)과 이비(理非)를 아는 어른이 되었다.
◎ 주제 : 천진 난만한 산골 소년의 생활과 추억
◎ 출전 : <현대문학>(1967)
3. 등장 인물
◎ 소년 : 순박하고 천진 난만한 산골 소년이다.
◎ 춘돌 : 한때 김 초시네 머슴으로 조무래기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호응해 주는 인물로 산골 소년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4. 이해와 감상
196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어린 시절의 회상을 중심으로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산골 아이들의 생활을 그려냄으로써, 현대 문명 생활 속에서 자칫 잊혀지기 쉬운 우리 농촌의 생활과 향토적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 산업화된 생활 속에서 자칫 잊혀지기 쉬운 향토적 정서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이 소설은 일반적인 단편 소설의 특징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사건들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도 없으며 이야기의 구성도 시간 순서에 따르는 평면적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건의 극적인 전개와 인물간의 갈등도 없이, 어린 시절의 체험들을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천진 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있어 독자에게 아늑한 즐거움을 주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재확인의 즐거움을 준다. 작가 오영수의 상당수 단편 소설에서 보이는 맑은 문체와 서정적인 흥취, 수필적인 따뜻한 정감, 각박하고 생기 없는 현실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인정미가 잘 나타난 아름다운 작품이다.
▶ 은냇골 이야기
1. 즐거리
은냇골이라는 아주 깊은 첩첩산중에 전설적인 골짜기가 있었다. 그 곳은 산이 첩첩으로 가리어 날짐승도 망설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는 전설이 하나 있었다. [약초 캐는 형제가 어느 날 은냇골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벼랑까지 왔다가 골짜기에 삼밭이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벼랑이 너무 험해 내려가지 못하고 표시만 해 놓고 되돌아갔다. 형제는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하고 며칠 후 다시 찾아왔다. 칡으로 바구니를 얽고 밧줄을 맨 다음, 몸집이 작은 아우가 먼저 줄을 타고 내려갔다. 한 바구니 두 바구니 자꾸 욕심을 내다가 동생이 줄을 타고 벼랑을 올라올 때 별안간 바위틈에서 가마솥 만한 거미가 나와 이 밧줄을 끊어 버렸다. 결국 형제는 안개 속에 싸여 묻혀 버렸다.] 그래서 이 은냇골에서는 후손이 벌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난 후에도 두세 집이 대를 이어 살아왔으나, 후손이 벌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화(雪禍)로 인해 두 집이 생매장되는 통에 절손(絶孫)되고 말았다. 이런 내력이 있는 곳인지라 그 후로 이 은냇골에는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이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상과는 등을 지고 살았다. 바깥 세상과 굳이 인연이 있다면, 그것은 생활용품을 장만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약초를 팔러 산을 내려갈 때뿐이었다. 산을 내려갈 때도 두 사람 이상이 갔다. 그것도 가족이 아닌 이웃을 엄정히 선정하여 보냈다. 어느 해 삼 두 뿌리를 갖고 도망가 버린 홀아비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 은냇골은 겨울이 유난히 길었다. 눈이 쌓이면 빤히 보이는 이웃끼리도 내왕을 못하는 곳이어서 눈이 내릴 쯤이면 꿩 한 마리를 잡아도 술 몇 사발을 걸러 이웃을 불러들여 정을 나누었다. 이처럼 그들은 한 가족처럼 지냈다. 장에 갈 사람이 선정되어 이들이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종일 마음이 설레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해가 져도 오지 않으면 관솔에 불을 켜 들고 모두 마중을 나갔다. 별나게 눈이 많이 온 어느 해, 겨울이 자나자 눈길을 트려고 할 때, 김 노인은 저 아래에서 눈길을 트면서 자기네 집 쪽으로 올라오는 만이를 발견했다. 만이 아버지 박 생원이 지난 겨울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친형제보다도 더 가깝다면 가까운 박 생원이 죽었다는 소식은 김 노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20년 세월을 육친 이상의 정분으로 살아 왔던 것이다. 김 노인은 지나온 20년 세월을 돌이켜 회상해 보았다. ― 김 노인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주인네 조카딸 덕이와 눈이 맞았다. 덕이가 아이를 배는 바람에 몰래 도망쳐 들어온 곳이 이곳 은냇골이었다. 김 노인네가 들어온 다음해 박 생원네가 들어왔다. 박 생원은 그의 형이 노름을 해서 가산을 탕진하여 집안이 엉망이 되자 그도 형의 노름에 끼어 들었다가 실수를 하여 쫓기다가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미 은냇골에는 양 노인과 양 노인의 아들, 며느리, 손녀가 있었고 또 지가(哥)네 부부와 젊은 문둥이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지독한 흉년이 들어 양 노인네가 흉년을 피해서 떠나게 되자 지가네, 박가(박 생원)네도 흉년이 지나면 다시 오겠다며 떠났다. 결국 은냇골에는 김가(김 노인)네 부부와 그 문둥이와 아내인 옥례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도저히 생계를 지탱할 수가 없게 되자 김가(김 노인)는 처이모 집에 가서 간신히 양식을 약간 얻어 왔다. 그러나 아내 덕이는 반 미친 사람이 다 되어 갓 낳은 아들을 솥에 넣어 죽게 하고는 김가를 보자마자 배고픔을 못 이겨 김가를 뜯어먹으려 했다. 김가(김 노인)는 갓난아이를 묻어 주고 돌아왔다. 그들(김가 부부와 옥례)은 얼마 안 되는 양식으로 겨울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김가의 아내인 덕이는 정신을 차려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지만 자초지종은 몰랐다. 김가도 옥례도 말해 주지 않았다. 다시 봄이 되자 떠났던 양 노인네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서 돌아왔고, 박가(박 생원)도 돌아왔다. 그 해 초가을에 옥례가 팔삭둥이를 낳았다. ― 그 애가 지금의 만이었다. 김 노인은 이런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죽은 박 생원을 바라보았다.
2. 핵심 정리
◎ 배경 :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첩첩 산중의 산골 마을인 은냇골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인간의 삶에 대한 원초적인 애정과 인간애
3. 등장 인물
◎ 김 노인 :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네 조카딸 덕이와 눈이 맞아서 은냇골로 도망쳐 들어 와 20여 년을 살고 있는 노인
◎ 박 생원 :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은냇골로 찾아 들어온 인물
4. 이해와 감상
<은냇골 이야기>는 전설적인 마을 ‘은냇골’의 서정적 배경을 중심으로, 극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따뜻한 인정을 통하여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서정적 구조의 작품이다. 따라서, <은냇골 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서정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소박한 삶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정의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서정적 작품이다.
▶ 후조(候鳥)
1. 줄거리
수복 전 부산 W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민우는 천막 교사로 구두를 닦으러 온 이구철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구두 칠 한다고 ‘구칠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에게 학교 내에서 구두를 닦게 배려해 준다. 교장이 바뀌자 민우도 학교를 그만두고 환도를 한다. 그와 함께 구칠이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던 중 시월 중순경 서울로 온 구칠이를 동대문 밖 숙소에서 만나게 된다. 구칠이는 부산을 떠난 사유와 집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다. 호국단비 분실로 인해 훈육 선생인 최 선생에게 당한 이야기며, 아버지와 계모의 이야기를 자세히 털어놓는다. 부산에서 받은 민우의 후의에 보답한다고 구칠이는 계림 극장에서 영화 구경을 시켜 주기까지 한다. 구칠이는 민우가 퇴근할 때마다 매번 길목에서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전날 민우는 구칠이에게 옷을 사라고 돈을 주나 구칠이는 거절한다. 돈을 받지 않으면 구두를 닦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겠다고 하자 구칠이는 싫은 기색으로 받는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민우에게 구칠이는 미제 헌 구두를 싸게 사 주겠다고 약속한다. 오월 초순 어느 토요일, 민우는 구두를 훔치다 들켜 달아나는 구칠이를 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두를 훔치려고 했던 구칠이에게 민우는 잡히지 않고 도망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의 무사함을 빈다. 며칠 뒤 민우는 구칠이가 일선 지구 양키 부대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루한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오자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구칠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전쟁 전후) / 공간(서울과 부산)
◎ 성격 : 회고적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동대문 밖 숙소에서 민우는 까마득히 잊었던 구두닦이 소년 구칠이와 상봉한다.
전개 - 구칠은 후의를 베풀었던 민우에게 지난 이야기를 한 후 영화 구경을 시켜 준다.
위기․절정 - 민우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칠은 남의 구두를 훔치려다 도망친다.
결말 - 구칠이가 일선 양키 부대로 떠난 후 민우는 구칠이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 주제 :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따뜻한 인정
3. 등장 인물
◎ 이구철 : 구칠이라 불리는 구두닦이 소년.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민우에게 보답하고자 구두를 훔친다.
◎ 민우 : 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구칠이에게 연민을 느껴 인정을 베푼다.
4. 이해와 감상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인데, 제목인 ‘후조(候鳥)’라는 말은 ‘철새’를 한자어로 이르는 말이다. 구칠이라는 구두닦이와 민우라는 인물의 관계를 통해, 물신적인 세계에서 인간애를 건져 모정과 같은 삶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각박하고 생기 없는 현실 속에 따뜻한 인정의 호흡을 불어넣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휴머니즘 소설이다. 우리가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어두운 시절에도 현실적인 이해 관계를 떠난 따뜻한 삶이 있었음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후조(候鳥)는 이리저리 생활 터전을 따라 전전하는 ‘구칠’이다. 그는 계모 슬하에서 구박을 받으며 구두닦이로 어렵게 살아가는 불행한 소년이다. 최 선생과 아버지의 거친 행동은 그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차라리 그가 지니고 있는 따뜻한 인간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구칠이는 살아 남기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기는 하나, 각박한 현실과는 달리 마음 속에 인정과 순진함을 가득 담고 있는 인물이다. 민우의 아낌없는 동정과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남의 구두까지 훔쳐야 했던 구칠이의 순진성 속에서 작가가 지향하고자 했던 바를 읽어 낼 수 있다. 그것은 각박하고 생기 없는 현실 속에 따뜻한 인정의 호흡을 불어넣으려는 사랑의 휴머니즘이다.
오정희(1947~) |
소설가. 서울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 1960년대 이후 대표적 여류 작가의 한 사람으로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대표작으로 “저녁의 게임”(1976), “중국인 거리”(1979), “별사”(1981), “야회”(1981), “파로호”(198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불의 강>(1977), <유년의 뜰>(1981), <바람의 넋>(1986) 등이 있다.
▶ 바람의 넋
1. 줄거리
세중은 자기 자신을 평범하고 모질지 못한 남자로 생각하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30대의 은행원이다. 세중의 아내인 은수는 가출벽이 심하고, 다섯 살짜리 승일이는 이미 엄마의 잦은 부재(不在)에 익숙해져 있다. 처음엔 세중도 아내의 가출을 여자의 감상벽 정도로 가볍게 처리하고자 했었다. 어느 날 친정에 가던 버스에서 산에 반한 은수는 혼자 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세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고 밤늦게 귀가한다. 그러나 세중은 은수를 쫓아내고 시골 어머니께 전후 사정을 설명할 것 없이 ‘곧 올라오셔야겠다’는 전화를 한다. 은수가 은행으로 세중을 다시 찾아갔을 때, 세중은 적금을 해약한 돈 이백 만원을 주며 잠정적 별거를 선언한다. 그 뒤 은수는 친정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은수는 친정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었다. 은수도 어려서 사촌의 입을 통해 들어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은수는 그때부터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과 잠시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최초의 기억으로 뚜렷이 남아 있는, 햇빛에 하얗게 바랜 너른 마당과 함부로 나뒹굴어 있던 두 짝의 고무신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어한다. 세중과 결혼할 무렵 은수는 어머니께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은수는 자신이 전쟁 고아로 생부의 친구에 의해 길러진 것임을 알아냈을 뿐,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에 대한 궁금증을 풀지는 못한다. 은수는 어린 승일이를 데리고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과 만날 것 같은 기대와 안타까움으로 자신이 자란 항구 도시인 M시를 헤맨다. 서울로 온 은수는 승일을 남편에게 빼앗기고 난 뒤, 어머니께 다시 그것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을 알게 된다. 피난을 못 가고 남아 있던 식구들이 모두 도둑들에게 참혹하게 살해되었던 것이다. 어린 은수는 변소에 숨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살아 남은 은수는 혼자 근 1년 전에 엄마의 손을 잡고 오던 길을 더듬어 시의 끝에서 끝까지 아버지의 친구 집을 찾아왔다. 은수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어머니는 적군의 철수 소식을 듣자 그 집으로 가 보았다. 은수는 햇빛 가득한 마당에서 부옇게 먼지를 쓰고 나뒹구는 두 짝의 검정고무신만을 멀건히 바라볼 뿐 절대로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남겨 두고 안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부엌 앞에 쓰러진 여자와 다락층계에 엎어진 남자와 마루에 엎드려 있는, 이미 얼굴을 찾아볼 수 없게 부패한 여자아이의 시체를 보았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혼합
◎ 배경 : 서울과 M시
◎ 주제 : 존재에 대한 진실 세계의 추구
3. 등장 인물
◎ 최은수 : 홀어머니외 외동딸. 말수가 적고 사교성이 없음. 방랑벽이 있음.
◎ 지세중 : 30대의 은행 대리
4. 이해와 감상
<바람의 넋>은 오정희가 198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동경>, <하지>, <야희>, <저녁의 게임>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 중의 한 편이다. 작가 오정희의 소설은 사건의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내면 세계의 묘사로 이루어진다. 오정희의 인물들은 타인들과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나와 타인의 관계라는 점에서 보면, 오정희 소설이 주는 한 인물의 의식 세계는 타인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는 유아론적(唯我論的) 고립의 세계이다. 타인의 존재는 그 존재를 겁탈 당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어 버리며, 나와 타인의 대립 관계가 아니라 이익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의식 세계는 나와 타인의 대립 관계를 나와 대상의 관계로 바꾸어 버리는 셈이다. <바람의 넋>에서 은수가 찾아 헤매었던 그 참혹한 장면은 대면하기에 공포스럽고 전율스러운 것이어서 회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존재의 진실이기에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근원적 존재, 존재의 심연, 그리고 존재의 진실과 의미론적으로 겹쳐지고 있다. 그 참혹한 장면의 목격이라는 체험 자체가 존재의 심연에의 응시인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따라서 오정희의 소설 공간은, 나와 타인의 대립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드러내는 구조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한 인물의 의식 세계를 다룬 그의 소설들은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대한 추구를 보여 주며, 또 나와 타인과의 대립 관계를 다룬 소설들은 ‘나’들이 공존하는 존재상에 대한 추구를 보여 준다. <성민엽, 작품 해설 참조>
▶ 중국인 거리
1. 줄거리
주인공인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피난지로부터 항구 도시 외곽에 있는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그 곳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둘러싸여 전형적인 전후(戰後)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거리를 배경으로 공복감과 해인초 냄새가 어우러져 피어오르는 노란빛의 환각적 이미지로 표상 되는 유년의 기억 속에서 한 편의 ‘성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성장의 조짐은 주인공이 우연히 건너편 이층집 창문에서 중국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순간 주인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바, 그의 창백한 표정에 담긴 욕망의 시선이 주인공의 내부에서 움트고 있던 욕망의 움직임은, 양공주 매기 언니와 관계의 그늘 속에서 어두운 삶을 살다 간 할머니의 죽음을 거치면서 정적(靜的)인 성장의 고뇌로 성숙되어 간다. 욕망의 역동적 이미지와 죽음의 정적인 이미지가 교차하는 고독과 사색의 공간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피속에 순(筍)처럼 돋아 오르는 무언가를 감지한다. 그것은 마치 상처가 아무는 듯이,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장의 고비를 확인이라고 하듯, 주인공은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初潮)를 맞이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전쟁 직후의 항구도시에 위치한 중국인 거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구성
발단 - ‘나’와 식구들은 항구 도시에 자리잡은 중국인 거리로 이주해 온다.
전개 - 중국인 거리의 낯선 풍경에 대한 인상과 그 곳에서의 생활이 소개된다.
위기 - ‘나’는 중국인 청년의 창백한 얼굴과 마주치고 알 수 없는 슬픔과 비애를 느낀다.
절정 - ‘나’는 매기 언니와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성장의 고뇌를 내면화한다.
결말 - 어느 봄날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를 맞이한다.
◎ 주제 : 정신적인 성장의 고통과 그 형상화
3. 등장 인물
◎ 나 : 소설의 화자인 열두 살의 소녀. 새로 이주한 중국인 거리를 배경으로 성장의 아픔을 겪어 간다.
◎ 치옥 : ‘나’의 급우. 의붓자식이며 매기언니의 동생
◎ 매기 언니 : 양공주. 동거하던 흑인 병사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 중국인 남자 : 창백한 얼굴의 인물로 그와의 마주침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욕망과 내면을 자각하게 된다.
4. 이해와 감상
전쟁 직후의 도시에 자리 잡은 중국인 거리를 배경으로, 한 소녀가 겪어 가는 성장의 아픔을 감각적이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낸 작품이다. 피난살이 도중에 인천으로 이주해 와 중국인 거리 속에 살게된 한 소녀의 눈을 통하여, 전쟁이 가져온 비극상을 그려 보이고 있는데, 흑인 병사와의 국제 결혼을 꿈꾸던 양공주의 죽음과,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어린 소녀들의 슬픈 감수성을 통해 전쟁이 낳은 비극과 그것이 어린 영혼에 준 상처를 날카로움을 동반한 담담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성격상 이 소설은 유년기 체험에 대한 기록으로 일종의 교양 소설, 혹은 성장 소설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소녀가 전쟁의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중국인 거리에서 세계에 대한 비극적인 체험을 겪음으로써 사회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성인으로 성장해 간다는 줄거리 자체가 성장한 소설의 구조인 것이다. 특히 양공주의 죽음 뒤 겪게되는 초조(初潮)는 어린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는 알을 깨고 부활하는 새의 이미지처럼 또 다른 하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 소설의 중요한 소설적 장치는 ‘회상’의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의 유년기 체험을 화자가 기억을 통해 회상하는 형식은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참신한 소설 형식으로, 짧은 문장과 간결한 문체 속에서도 많은 의미를 담아 내고 있다. 특히 소설에서 후각적 이미지를 통한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해인초 냄새’는 유년기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통일되고, 연관된 것으로 결합시키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큰 특징인 성장 소설적 형태와 회상의 형식을 가능케 하는 효과적인 기법은 유년기 화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 소녀가 성인으로 변모해 가는 통과 제의(通過祭儀)를 유년기 시점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다 생생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유년기 화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해인초 냄새, 회충약에 의한 배앓이, 새끼를 잡아먹는 고양이에 대한 묘사는 기억의 가장 깊숙한 저층에 자리잡고 있는 원체험(原體驗)으로서 소설의 구체성을 획득하게 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유진오(1906~1987) |
소설가. 법학자. 서울 출생. 호는 현민(玄民).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재학 때부터 문우회를 조직하여 활동. 이 무렵 그는 이효석과 함께 카프에 가입하지는 않은 채 프로 문학의 입장을 취하여 ‘동반자 작가(同伴者 作家)’로 불림. 1927년 “스리”를 <조선지광>에 발표하고 등단. “오월의 구직자”, “김 강사와 T교수” 등은 지식인이 당면하는 정신적 갈등, 또는 가난에 허덕이는 하층민의 삶을 주로 그리고 있으며, “어떤 부처”, “치정” 등에는 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급으로 일하는 주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 “창랑정기”, “화상보” 등이 있다.
▶ 김 강사와 T 교수
1. 줄거리
문학사(文學士)인 김만필은 동경 제국 대학 독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H과장의 소개로 S전문학교의 독일어 시간 강사로 취직한다. 취임한 다음날, 선임자인 T교수는 스스끼라는 학생을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조언(助言)을 해 준다. 김 강사는 내심 고맙게 여기면서 긴장된 상태에서 첫 시간의 강의를 별 탈 없이 마친다. 며칠 후에 김 강사는 H과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갔다가 그의 집 대문 앞에서 T교수와 마주친다. H과장 집을 나온 T교수는 김 강사를 데리고 찻집으로 가서, 자신이 김 강사를 교장에게 추천했다면서 작년에 김 강사가 쓴 '독일 신흥 작가 군상'이라는 글을 신문에서 읽었는데 좋은 글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 글은 좌익 작가들을 다룬 것으로 학교에서 알면 좋을 리가 없다. 이로 인하여 김 강사는 T교수에게 두려움과 추악함을 느낀다. 어느 날, 독일 문학에 아주 박식한 스스끼라는 학생이 김 강사에게 찾아온다. 그 학생은 문학자 박해를 비난하고 파시즘을 공격하고 히틀러를 공격하다가, 김 강사의 숨겨진 과거도 너무나 잘 안다고 말한다. 김 강사가 어디서 들었느냐고 하니까 학생은 T교수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김 강사는 혹시 이 학생이 T교수의 스파이는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스스끼가 김 강사를 찾아온 목적은 독일 문학 연구 그룹을 지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 강사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한다. T교수는 새해도 되었으니 H과장을 한 번 찾아가라고 한다. 김 강사는 H과장을 찾아갔지만 H과장은 김 강사의 과거를 들춰내며 남의 얼굴에 똥칠을 해도 되는 거냐고 욕을 한다. 김 강사는 자신은 결백하다고 항변한다. 이때 T교수가 윗방에서 나오면서 김 강사를 보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지식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일본 교사가 중심인 S 전문학교)
◎ 성격 : 사실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위선과 진실 사이의 갈등이 표현됨
◎ 구성
발단 - 인물 소개와 배경의 설정
전개 - T교수와 김 강사의 대조. T교수의 비열한 행동과 현실에 적응할 줄 모르는 김 강사
위기 - 김 강사의 전력 노출. 칭송하는 T교수. 김 강사의 과거를 거론하는 스스끼
절정 - 과거의 노출로 고뇌하는 김 강사
결말 - 학교에서 쫓겨나는 김 강사
◎ 주제 : 협잡의 세태에서 낭패를 당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비애.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현실 타협적 나약성과 정신적 갈등
◎ 출전 : <신동아>(1935)
3. 등장 인물
◎ 김만필 : S 전문학교 시간 강사. 타락한 현실에 자신을 적응시키기 위해 타협하는 소시민적 지식인. 끝내는 비극을 맞는다.
◎ T교수 : 일본인 교수로 교무 일을 맡고 있다. 약삭빠르고 비굴한 인물이다.
◎ H과장 : S 전문학교 재단 사무 과장격으로 막후 실력자
◎ 교장 :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매우 거만한 일본인
◎ 스스끼 : 학생
4. 이해와 감상
‘김만필’이란 한 식민지의 지식인이 겪는 정신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와 함께 당대 현실의 부조리, 속물적인 인간의 속성을 제시하면서 지식인의 내면적 취약성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는 일명 지식인 소설의 전형이다. 나약한 지식인이며 자아와 과거의 신분을 속이며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1930년대 지식인의 모습이 제시된다. 그는 '책상물림'이며 창백한 지식인의 유형에 속하는 김만필이다. 그는 세속적인 요령을 피울 줄 모르며, 지난날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현재 생활에 대한 양심의 가책 속에서 살아가는 가녀린 양심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에 대해서 교활하고 비겁한 성격의 소유자인 T교수가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첨이나 비겁한 짓을 서슴없이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대조시킴으로써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생활의 한 단면을 제시하려 했다. 이렇게 이 소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 사람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S 전문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대학을 갓 졸업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책상물림인 김만필이 시간 강사로 취직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것이다. 김 강사는 현실에 적응하려다 결국 실패하는 지식인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 준다. 김 강사의 패배의 원인은 첫째로 현실의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김 강사는 일제의 체제 하에서는 용납 받을 수 없는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 일이 있다. 그래서 김 강사는 불안해한다. 그는 인생의 모순의 축도를 자신이 몸소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식 계급이란 것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중 사중, 아니 칠중 팔중 구중의 중첩된 인격을 갖도록 강요되는 것이다.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 중에서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하게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에 현황(眩恍)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자기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것인가?” 이것은 일제 치하 한국 지식인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표현해 준 말이다. 지식인 문제를 다룬 소설은 실직(失職)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소설은 지식인이 어떻게 지식인답지 못한 모습으로 처세하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얼마나 무력하게 사회 현실에 휘말리는가를 부각시켜 주고 있다. 주인공은 역사 의식이나 사회 의식이 부족하여 이에 대처할 줄을 모른다. 둘째로 김 강사가 패배한 원인은 인물의 성격에 있다. 김만필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려 하지 않고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 교수이면서 약삭빠르고 비굴한 성격을 가진 T교수에 의해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김 강사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결국 김 강사의 행동은 파국에 이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지식인들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형상화하지 못하고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두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것은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제약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 창랑정기(滄浪亭記)
1. 줄거리
‘나’는 그리워할 아름다운 고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마음이 고달플 때,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이 하나 있다. 그것은 창랑정이다. 창랑정은 대원군 집정 시대에 이조 판서를 지낸 나의 삼종 증조부 되는 서강 대신 김종호가 쇄국의 꿈이 부서지고 대원군이 세력을 잃게 되자, 벼슬을 내놓고 당인리 근처에 있는 어떤 대관의 별장을 사서 그의 말년을 보내던 정자다. 나는 이십 칠팔 년 전인 7, 8세 때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간 적이 있다. 그 때의 창랑정은 외관상으로는 웅장하였으나 퇴색한 모습이었다. 안채로 들어가니 할머니 생신 준비에 바빴다. 집안 식구들이 북적거리면서 음식 준비를 하고 있고, 가구와 장식들이 신비하기만 했다. 이튿날, 12, 3세 되어 보이는 을순이라는 소녀와 유쾌하고 감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며칠을 더 머물면서 을순이와 친해져 메를 캐러 뒷동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땅 속에 묻힌 긴 칼을 하나 파냈다. 칼집은 썩었으나 찬란한 장식은 그대로다. 서강 대신 할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감개 무량해 했다. 이런 창랑정은 지금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강 대신 할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이 죽고 세상의 풍파에 밀려 창랑정은 없어졌다. 그리고 창랑정의 몰락을 재촉한 것은 서강 대신이 죽자 그의 증손자 김종근이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신문화를 구가했기 때문이다. 꿈에 그리던 창랑정을 다시 찾은 것은 이십여 년이 지나서이다. 그러나 그곳은 꿈에 그리던 추억과 향수가 깃든 곳이 아니었다. 너무나 큰 변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웠던 하늘은 공장 굴뚝 연기로 어두웠고, 마당에는 석탄재가 쌓였고, 강 건너 저쪽을 보니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최신식 여객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개화 이후 문명화되어 가는 시대) / 공간(서울 서강에 있는 창랑정)
◎ 성격 : 사실적, 낭만적, 감상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이 혼용
◎ 표현 : 과거와 현재의 대비적 표현.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의 혼합
◎ 구성
도입 - 창랑정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나’
발단 - 창랑정의 내력과 찾아가게 된 동기
전개 - 창랑정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을순이와의 아름다운 추억
위기 - 10년 후에 다시 찾아간 창랑정. 변모한 창랑정의 모습과 몰락한 집안
절정 - 다시 찾아갔으나 창랑정의 자취를 찾을 수 없음.
결말 - 창랑정에 대한 꿈이 깨짐.
◎ 제재 : 창랑정의 추억
◎ 주제 : 창랑정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 그 소멸의 비애(산업화로 인해 잃게 된 소중한 것에 대한 향수)
◎ 출전 : <동아일보>(1938)
3. 등장 인물
◎ 나 : 이 소설의 화자. 유년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 김종호 : 대원군 시대에 이조 판서를 지낸 인물. 서강 대신. 보수적 인물이다.
◎ 김종근 : 김종호의 증손자로, 한문책만 읽다가 변하는 시대를 맞아 개화의 물결에 젖어 든다.
4. 이해와 감상
1938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소설이다. ‘창랑정(滄浪亭)’이란 쇄국을 고집하던 서강 대신이 그 뜻이 좌절되자 벼슬을 내놓고 우울한 만년을 보냈던 정자 이름이다 그곳에 얽힌 유년 시절의 체험을 '내'가 회상하는 소설이다. 과거의 일화들이 사진첩 속의 낡은 사진처럼 제시되는 데, 삽화적(揷畵的)일 뿐 역사 의식은 찾기 어렵다. 이 작품은 창랑정에 얽힌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제재로 한 자전적(自傳的)인 소설이다. 시간적 배경은 조선 말기부터 30여 년 간을 잡았다. 즉, 화자인 ‘나’의 유년 시절부터 중년에 해당한다. 그 동안에 나날이 변해 가는 물질 문명 속에서 유년의 추억은 깨지고 인생도 무상하게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변화를 체험하게 된 ‘나’는 허무와 두려움마저 느낀다. 내용 면에서 본다면 그리움과 변모의 대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7, 8세 때 창랑정을 찾아가서 보았던 별장의 웅장한 모습과 주변의 경관, 그리고 을순이와 뒷동산에서 놀았던 감미로운 기억이다. 그런데 ‘나’는 그 후에 창랑정을 두 번 더 찾아간다. 10년 후에 찾아 간 창랑정은 잡초만이 우거져 있었으며, 뒷동산도 나무 한 그루 없이 변했다. 그러다가 20년 후에 다시 찾아간 그곳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하늘에는 최신식 여객기만이 폭음을 내고 있다. ‘나’의 꿈은 완전히 깨지고 만다. 물질 문명 속에서 자연 환경은 그 원형을 상실한 것이다. 또 하나는, 창랑정의 주인인 삼종 증조부 되는 서강 대신의 모습이다. 이조 판서로서 쇄국을 완강히 주장하고 권세를 누리던 그도 나날이 변하는 세상의 풍파에 밀려 몇 해 동안에 여지없이 몰락하고 만다. 더구나, 그의 증손자인 종근은 한문책만 읽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별안간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기생집까지 출입한다. 마침내 종근은 창랑정을 팔아 치운다. 결국,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변해 가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자연 환경도 파괴되고, 인간도 변모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적인 체험을 소재로 하여 신변 소설적인 요소도 있으나 오히려 그것이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도입 부분에서 향수(鄕愁)에 대한 화자의 안타까운 심회를 장황하게 서술함으로써 소설의 긴박감을 감소시키지만, 작품의 말미에서 낯선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와 비행기 폭음의 묘사는 물질 문명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 화상보
1. 줄거리
장시영과 경아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시영은 식물학 방면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아주 성실한 청년이다. 또, 경아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의 음악학교를 거쳐 서양을 여행하며 음악 수업을 하였다. 그리고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녀와 함께 동행한 것은 패트런인 안상권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일개 실업학원의 교원인 장시영과의 사이는 자연히 벌어지게 되었다. 반면 장시영의 누이 보순의 친구이며 교수의 딸인 영옥이 등장하여 시영에게 애정을 바치지만, 성실하고 고지식한 시영은 경아에게만 계속 자기의 첫사랑을 바친다. 그러나 경아는 결국 안상권과 약혼할 단계에까지 이른다. 그런데 안상권의 방탕이 드러나자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한편, 시영은 일본의 권위 있는 교수에게 식물학 연구 논문을 인정받아 일약 유명하게 되고 영옥의 헌신적 사랑에 감동되어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동경 학회의 초청을 받아 동경으로 간다. 여기서도 시영은 높은 학문적 평가를 받게 된다. 약혼에 실패하여 고민하던 경아는 베를린의 옛 선생으로부터 다시 독일로 오라는 편지를 받고 떠날 준비를 한다. 그 후, 뜻밖에 시영은 동경에서 가수 겸 댄서로 일하는 경아를 만나게 된다.
2. 핵심 정리
◎ 배경 : 일제 말기의 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일제 치하 지식인의 애욕과 갈등(식민지 지식인의 한계와 비극성)
3. 등장 인물
◎ 장시영 : 식민지 현실에 짙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독학으로 식물 연구에 몰두하는, 경성 중등 실업 학원 교사
◎ 김경아 : 소프라노 가수. 동경 음악 학원과 베를린 국립 음악 학교 출신
◎ 이영옥 : 제국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여성으로 장시영을 사모함.
4. 이해와 감상
<화상보>는 당시 인텔리층에 만연되어 있던 데카당스와 그에 반대되는 제로이즘을 대립시킨 애정의 편력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식민지 지식인 장시영을 통해 [식민지 하에서 자기 의식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일제 시대의 정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화상보>는 그 발표 시기와 내용으로 볼 때, 그 동안 현민 유진오의 문학 세계가 총결산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현민이 초기작에서 고심했던 지식인의 현실 대응 문제, 작가적 태도의 전환을 선언한 후에 나타난 일상사의 이모저모, 순수한 사랑과 애욕의 갈등, 옛 것과 새 것, 가난과 풍요로움의 대비, 그리고 자본주의로 탈바꿈하려는 사회의 모습 등의 다양한 면모 중에서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나타내고자 한 주된 관심의 방향은 식물학자인 장시영의 삶의 방법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모든 구성 역시 장시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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