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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11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 9 2024. 5. 1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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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1913~1990)

 

소설가. 전남 승주군 출생.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과 “선생님 기행”이 추천되어 등단. 중편 “유형의 땅”으로 현대문학상(1981), “인간의 문”으로 대한민국 문학상(1982), 단편 “메아리 메아리”로 소설문학 작품상(1984)을 받았고, 6·25 전쟁과 분단 상황에서 상처받는 민중들의 삶을 묘사한 “태백 산맥”으로 단재 문학상(1991), 노신 문학상(1998)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작품집 “황토”(1974), “한, 그 그늘의 자리”(1978), “유형의 땅”(1981), “박토의 혼”(1991), “조정래 문학 전집”(1999)과 장편 소설 “대장경”(1981), “불놀이”(1983), “어머니의 넋”(1988), “태백 산맥”(1986~1989), “아리랑”(1994) 등이 있다.

 

▶ 어떤 솔거의 죽음

 

1. 줄거리

어느 날 성주(城主)는 자신의 영정을 그리기 위해 뛰어난 화가를 구해 오라고 명령한다. 화가는 성주와 신하들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엿새 동안 성주를 치밀하게 관찰한 뒤 나흘만에 그림을 그려 바친다. 하지만 그림을 본 성주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노하여 화가를 옥에 가두고 만다. 그리고 화가와 동문 수학(同文修學)한 지루가 나타나 원래의 모습과는 딴판인, 지극히 인자한 모습의 영정을 닷새만에 그려낸다. 결국 지루는 후한 상을 받고, 화가는 형장으로 끌려가고 만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특정한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없음.

◎ 성격 : 우화적 수법

◎ 주제 : 진정한 화가(예술가)의 사회적 책임

◎ 발표 : 1977년

 

3. 이해와 감상

잠수함 제조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 큰 고민거리는 잠수함 안의 산소량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잠수함이 출항할 때 토끼 한 마리를 함께 태우는 방법이었다. 지상의 동물들 가운데 산소에 가장 민감한 동물이 토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랜 잠수 항해 중 토끼의 행동에 갑자기 이상이 생기면 산소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신호로 여기고 서둘러 떠올라 산소를 충전하였다. 결국 토끼가 잠수함 속의 수많은 인명을 보호하는 산소 측정계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회와 예술가의 관계를 설명하는 적절한 비유가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잠수함이 사회라면, 토끼는 예술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잠수함 속의 공기가 오염되면 제일 먼저 토끼의 호흡이 불편해지듯이, 사회가 불의와 부패로 얼룩지면 예술가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고통받게 마련이다. 그것은 예술가야말로 토끼처럼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재료로 삼아 예술 활동을 펼친다. 그런데 악취가 풀풀 풍기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인간 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한 사회나 시대의 본질은 그것을 배경으로 한 예술가나 예술 작품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예술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래, 예술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갈등과 교체를 반복하여 이어져 왔다. 우선 예술이란 바깥 세계와는 철저히 무관한 영역이라는 시각이 있다. 즉 예술가가 살았던 사회나 시대, 개인적 경험 등에 상관없이 단지 예술 작품 자체만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시각은 예술가가 살았던 사회나 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예술을 바라보는 것은 애초부터 그릇된 것이라고 본다. 예술가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창작품에는 그 사회와 시대의 향기가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는 항상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고 좀더 진실하게 사회와 시대를 그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조정래의 “어떤 솔거의 죽음(1977)”의 주인공 역시 화가, 곧 예술가이다. 어느 날 성주(城主)는 자신의 영정을 그리기 위해 뛰어난 화가를 구해 오라고 명령한다. 화가는 성주와 신하들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엿새 동안 성주를 치밀하게 관찰한 뒤 나흘만에 그림을 그려 바친다. 하지만 그림을 본 성주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노하여 화가를 옥에 가두고 만다. 그리고 화가와 동문 수학(同文修學)한 지루가 나타나 원래의 모습과는 딴판인, 지극히 인자한 모습의 영정을 닷새만에 그려낸다. 결국 지루는 후한 상을 받고, 화가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어떤 솔거의 죽음”은 시대와 장소를 짐작할 수 없는 막연한 배경을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것은 작가가 의식적으로 우화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령 우리는 “이솝이야기”를 읽으며 그것이 단순히 동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물들은 그저 가면을 쓴 인간들의 분신(分身)이며, 인간 세상의 다양한 상황들을 풍자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우와 포도”를 읽은 뒤 여우의 처지를 비웃기보다는 쉽게 자족(自足)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인간들의 행태를 씁쓸히 곱씹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은근히 빗대어 비판하는 기능을 한다. “어떤 솔거의 죽음” 역시 성주와 화가의 모습을 통해 의롭지 않은 권력과 예술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우화적 수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한편, 작품 제목이 왜 “어떤 솔거의 죽음”인지도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솔거는 황룡사(黃龍寺)의 벽화 “노송도(老松圖)”를 그린 신라 진흥왕 때의 화가이다. “노송도(老松圖)”는 새들이 진짜 나무인 줄 알고 날아와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혀 죽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유명한 그림이다. 따라서 작가가 주인공을 ‘어떤 솔거’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가 모든 뛰어난 예술가를 대표하는 사람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하루 빨리 그림을 완성하라는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상인 성주를 꼼꼼히 관찰한 뒤 신중하게 영정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틀림없는 성주의 판박이 그림이었다. 그러나 성주는 자신의 탐욕스러운 외모가 그대로 담겨 있는 그림을 보고 격분하며, 간사한 신하들도 진실을 왜곡하고 만다. 결국 성주와 신하들이 원한 그림은 일방적으로 성주를 찬양하는, 왜곡된 거짓 그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화가는 현실을 진실하게 그리는 것이야말로 그림의 본질이라고 믿어 왔다. 그것은 화가의 스승의 가르침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화가는 스승의 명에 따라 낙산에 가 맑은 일출 장면을 그리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끝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지루가 화려한 일출 그림을 뽐내는 것과 달리 화가는 백지를 스승에게 보이고 절망과 실의에 빠지지만, 스승은 그가 바로 자신의 후계자임을 선언한다. 스승이 원한 것은 진실마저 감추어 버릴 수 있는 뛰어난 손재주가 아니라 진실의 힘을 인정하는 예술가의 품성이었던 것이다. 조정래는 1970년대에 발표한 중․단편 소설들을 통해 물질주의가 낳은 병폐와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 부정한 권력에 대한 지식인과 예술가의 저항 등을 신랄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그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역사가 아닌 생생하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를 억누르는 모순의 원인을 규명하려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자랑하는 작가이다. 우리 민족의 굴절된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형상화하여 우리 문학사의 한 정점을 차지한 “태백산맥”과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조정래는 지칠 줄 모르는 문학적 탐구를 계속해 왔다. 그리고 “어떤 솔거의 죽음”은 그러한 작가의 예술가관을 명확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진정한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가. 현실의 모습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사람이 아닌가. 작가는 ‘사회와 시대가 고통스럽고 암담할수록 예술가의 책임과 역할은 더더욱 무거워진다.’고 말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거짓과 타협하는 길을 택하던 시절, 조정래는 또 다른 ‘솔거’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오세영-의롭지 않은 시대를 사는 예술가의 고뇌).

 

 

▶ 유형(流刑)의 땅

 

1. 줄거리

주인공 만석은 최씨 문중의 누대에 걸친 세거지지(世居之地)에서 태어난 상놈이다. 그는 최씨 문중에 대해 언젠가는 복수를 하겠다는 한을 품고 성장한다. 하루는 최씨네 아들들이 억지를 쓰자, 이를 보다 못해 때렸다가 그의 아버지가 불려 가서 초주검이 되도록 맞고 돌아왔다. 그로 인해 얼마 안 되는 소작 붙이던 땅을 빼앗기기도 했다. 만석이 청년이 되자 그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졌으며 어떻게든 양반 지주들에 대해 복수하겠다며 기회를 노렸다. 이때 6․25가 일어나고 그는 고향 마을의 인민 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지주들의 처형에 손수 앞장선다. 어린 시절 그에게 홀대했던 최씨 문중을 비롯하여 양반 지주들에게 죽창을 들고 설쳐대며 피바다를 만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릴 때 상놈으로 받았던 서러움과 한을 풀어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아내 점례는 여맹에 가담하여 일하다가 인민군 대장과 부정한 관계에 빠진다. 이들의 부정한 현장을 시 인민 위원회에 갔다 오던 만석이가 목격하게 된다. 눈이 뒤집힌 만석은 이들을 현장에서 죽이고 고향을 떠난다. 이로 인해 만석의 부모와 그의 세 살 된 아들은 인민군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그 후, 만석은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 가다가 우연히 공사판에서 알게 된 순임과의 결혼으로 한 많은 과거를 청산하고 아파트 관리실의 잡역부로 자리 잡는다. 이들 사이에 아들 철수가 태어나자 이를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생활한다. 그러나, 아파트 관리실의 관리비 절감 조치로 인해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만석은 다시 막노동을 결심하고 공사판에서 열흘 치씩의 일당을 모아 집으로 보낸다. 쉰 세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자식을 굶길 수 없다는 마음에서 이를 갈고 일한다. 그러나 이러한 만석을 두고 젊은 아내 순임이는 방세까지 빼내어 젊은 남자와 도망을 친다. 결국 만석은 늙고 마음마저 병든 몸으로 아들을 데리고 젊은 아내를 찾아 나서지만 정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결국 병을 얻게 되어 아들 철수를 고아원에 맡기고 30년 만에 고향을 찾지만 그곳에서 그를 맞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고향은 그를 용서해 주지 않았고 그는 반쯤 남은 정종 병과 헐어빠진 가방을 안고 다리 아래서 죽는다. 그의 시체는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6․25 전쟁과 그 후의 사회 현실

◎ 주제 : 분단의 상처로 인한 한 인간의 처절한 삶

 

3. 등장 인물

◎ 만석 : 상놈으로 태어나 지주들에게 한을 품음. 6․25 때 좌익에 몸담아 지주들을 무참히 죽임. 평생을 객지 노동판에서 지내다 고향에 돌아와 죽음.

 

4. 이해와 감상

“유형의 땅”은 조정래의 대부분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분단의 상처가 가져다 주는 인간 현실의 고통스런 단면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땅'이라는 상징적인 제명(題名)은 바로 민족과 국토의 분단으로 인한 한 인간의 삶의 파탄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원초적 생존을 지탱해 주는 영원성과 모태성, 동질성 회복의 의도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분단 역사의 비극을 그리면서 시대 변화에 따른 삶의 파멸에 이르는 주인공 만석을 통하여 생존 욕구와 우리 사회의 분단 현실에 대한 내적 원인을 파헤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태백산맥(太白山脈)

 

1. 이해와 감상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여순(麗順) 반란 사건의 실패로 인해 그 담당자들이 지리산으로 퇴각하는 1948년 10월 24일부터 서막이 전개된다. 여순 사건은 제주도 4․3 민중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여수 주둔 제14연대의 하급 지휘관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무장 반란 사건이었다.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된 이 사건은 비록 1주일만에 진압되었으나 폭동군의 주력 부대는 남로당의 지방 조직 및 농민과 결합하여 산악 지역으로 퇴각함으로써 장기적인 유격전의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제주도 4․3 사건과 함께 해방 이후 최대의 무장 반란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한 기층 민중까지 가담하여 6․25 이후까지도 계속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태백산맥”에서 작가 조정래는 여순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6․25를 조명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분단 현실이 도대체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형성되었는가를 해방 공간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분단된 현재적 우리 삶을 구획 지어 놓은 당시의 투쟁 양상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분단의 근원을 추적하고 있는 셈이다. “태백산맥”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 2부는 여순 반란의 실패와 그로 인한 입산(入山), 빨치산의 유격전과 군경의 토벌 작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3부는 6․25 전쟁의 발발과 빨치산의 하산(下山), 미군의 참전과 빨치산의 재입산(再入山), 그리고 좌․우익의 극한 투쟁을 다루고 있다. 제4부는 휴전 협정의 조인을 다루고 있으며 투쟁의 방향을 ‘역사 투쟁’으로 바꾼 후, 중심 인물인 염상진의 죽음으로 이 대하 소설의 사건은 종결된다. 전 10권으로 간행된 이 방대한 소설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 5년 동안의 시간적 흐름을 담고 있는데, 이 5년 동안은 오늘 우리의 분단 현실에 가장 깊게 영향을 끼친 역사 공간이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단의 원인을 고찰한다는 것은, 분단의 극복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역사 공간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인물군(人物群)의 삶의 역정은 바로 오늘의 분단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역사적 거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은 바로 당대의 계층을 대변하는 전형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인물군으로는 염상진, 안창민, 하대치, 정하섭, 이지숙 등의 좌익 빨치산 계열과 백남식으로 대변되는 토벌군, 염상구의 대동 청년단, 최익승, 윤영춘, 양병갑, 송기욱, 정현동 등의 친일적 지주군(地主群), 김사용이라는 양심적 지주형, 김범우, 서민영, 심재모, 손승호, 이학송 등의 중도파 지식인 그룹 등으로 어우러진 이들 인물군은 바로 당대 현실을 대변하는 전형적 성격들이다. 그리고 염상진의 처 죽산댁, 강동식의 처 외서댁, 하대치의 처 들몰댁 등의 인물군과 역사의 이면에서 존재하는 농민들을 비롯한 인물군은 처절한 삶의 진실을 펼쳐 내는 당대 민중들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따라서, “태백산맥”은 그들과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민족 통일’의 진로를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역사적 뿌리를 파헤치면서 이를 거시적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역사적 흐름을 개관하면서도 등장 인물들의 개성적인 삶의 숨결까지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역사적 시각이 작품 속에 하나의 큰 줄기로 관류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태백산맥”은 여순 반란 사건 이후로부터 농지 개혁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근대사의 가정 중요한 공간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분단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 하겠다. 이 “태백산맥”은 우리의 분단 상황을 거시적 시각으로 집요하게 그려 낸 대하 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분단 현실을 다루어 온 조정래의 중․단편들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진 문학적 사실들이 종합화되고 거시화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분단 문제에 대한 작가 의식이 이 작품에 이르러 총체적인 안목으로 엮어졌다는 점에서 “태백산맥”은 분단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 소설이 지닌 의의를 간추려 보면, 우리 근대사의 큰 흐름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과 민족 분단의 배경을 좌우 정치 세력의 대립 및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설명하지 않고 우리 삶의 근원적인 한과 넋의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민족의 분단과 상잔의 역사적 현실이 아직도 우리 삶의 내부에 깊게 드리워져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주요섭(1902~1972)

 

소설가. 평양 출생. 호는 여심(餘心). 상해 후장[扈江] 대학 졸업. 미국 스탠포드 대학원 수료.

1921년 <개벽>에 “추운 밤”을 발표. 초기에는 “인력거꾼”(1925)과 같이 하층민의 삶을 리얼하게 그린 신경향파 계열의 작품을, 후기에는 인정적(人情的) 세계를 그린 휴머니즘 계열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죽음”(1921), “개밥”(1927), “사랑 손님과 어머니”(1935), “아네모네 마담”(1936), “길”(1939) 등이 있다.

 

 

 

▶ 사랑 손님과 어머니

 

1. 줄거리

‘나’는 여섯 살 난 박옥희이다. 우리 식구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어머니’와 ‘나’ , 그리고 작은외삼촌 이렇게 세 사람이다. 우리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과부’라고 부르고 나는 ‘과부 딸’이라고 부른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진에서 본 아버지의 얼굴은 참 훌륭했다. 외할머니는 아버지 사진을 치우라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장롱 속에 아버지 사진을 두고 몰래 보시는 것 같다. 나는 금년 봄에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는 말에 너무 신이 났었는데, 집에 와 보니 큰외삼촌이 낯선 아저씨를 데리고 왔다. 그 낯선 아저씨는 작은외삼촌과 사랑방에 함께 계시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와 어렸을 적 친구였고, 우리 마을의 교사로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그림책도 보여 주고 과자도 주었다. 어느 날은 아저씨가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는 말을 해서 어머니께 그 말을 전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예전과 달리 달걀을 많이 사곤 했다. 나는 유치원에서 본 풍금과 똑같은 것이 웃간에 있다는 걸 알고 어머니에게 한번 타 보라고 했으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 주신 풍금이라 말씀하시며 울음을 터뜨리실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아저씨 방에 갈 때 머리도 곱게 빗어 주셨고 어떤 때는 새 저고리를 내어 입히신 적도 있다. 한 번은 아저씨에게,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아저씨는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까지 떨리었다. 또 나는 어머니와 예배당에 가서 아저씨를 보았는데 두 사람모두 얼굴이 빨개져서 성을 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어머니를 골려 줄 요량으로 안방의 벽장 안에 숨어 있었는데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나를 애타게 찾던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 우는 나를 발견하고 내 엉덩이를 때리더니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다음날, 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유치원 꽃병에 있던 꽃을 두어 개 빼어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리곤 엄마에게 갖다 주라고 사랑방 아저씨가 주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얼굴이 빨개지고는 꽃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꽃을 꽃병에 꽂아 두고 뒤에 시들어진 꽃을 잘라 찬송가 갈피에 끼워 두었다. 어머니에게 꽃을 갖다 준 그 날 저녁, 어머니는 풍금을 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곤 나를 안고 ‘옥희, 너 하나면 그뿐’ 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루는 아저씨가 어머니께 보낸 봉투 안에 있던 하얀 종이를 보고 어머니는 얼굴이 하얘졌고 손까지 떨었다. 어머니는 ‘옥희, 너 하나면 그뿐’이라는 말을 하면서 자꾸 우셨다.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그러면 세상이 욕한다는 말씀을 했다. 그리고 엄마하고 영원히 같이 살자고 말했다. 그 날 밤에 어머니는 종이가 담긴 하얀 손수건을 아저씨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그 날 이후 며칠이 지나고 아저씨는 짐을 싸서 기차를 타고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인형을 하나 준 뒤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그 날 오후 나와 함께 뒷동산에 올라가 바람을 쐬면서 기차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풍금 뚜껑에 자물쇠를 채워 닫아 버리고 마른 꽃도 내다 버렸다. 나는 달걀 먹을 사람이 없어 사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인형의 귀에 속삭였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예배당과 유치원과 학교가 있는 어느 조그만 마을)

◎ 경향 : 서정적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문체 : 섬세한 여성적 문체, 경어체. 구어체

◎ 표현 : 인간의 심리를 어린애를 통해 보여 줌.

◎ 구성 : 평면적 순행 구성으로, 사랑손님과 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특별한 사건 없이도 생생하게 포착되고 있다.

발단 - 어머니와 ‘나’가 살고 있는 집에 아저씨가 하숙을 든다.

전개 - ‘나’는 아저씨와 친해진다. 좋은 반찬과 달걀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위기 - 어머니에게 아저씨는 관심을 가지지만 어머니는 항상 떨리는 모습이다.

절정 - ‘나’가 거짓말로 준 꽃으로 인해 어머니는 마음이 흔들린다.

결말 - 아저씨는 떠나고, 어머니는 마른 꽃을 ‘나’에게 주며 버리라고 한다.

◎ 주제 :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 애정과 봉건적 윤리관 사이의 갈등

◎ 출전 : <조광>(1935)

 

3. 등장 인물

◎ 어머니 : 주인공. 스물네 살의 젊은 과부로 사랑 손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사별한 남편에 대 한 그리움과 아이에 대한 사랑, 당대(當代)의 풍습과 세인의 이목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끝내는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여인

◎ 나(옥희) :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관찰자(=신빙성 없는 화자). 여섯 살 난 계집애로 순진한 '관찰자'이다. 어머니와 아저씨와의 애정을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

◎ 아저씨 : 옥희 아버지의 옛 친구로, 옥희 동네의 교사로 부임하여 옥희네 사랑에 하숙을 든다. 옥희 어머니에게 연정을 갖지만 얼마 후 집을 떠난다.

◎ 외삼촌 : 중학교에 다닌다.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의 특징은 서술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서술자는 여섯 살 난 여자 아이, ‘옥희’이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는 과연 어떨까?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어른들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그에 따른 외적 행동들을 여섯 살 소녀, 옥희의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이야기의 서술자가 어린아이이다 보니, 상황을 설명하는 능력의 수준이나 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설명하는 능력의 수준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옥희의 설명은 투박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이 이 소설의 예술적 가치나 내용의 수준을 낮추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미숙한 서술자’를 통해 더 고차원적인 예술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아저씨 사이의 연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나타낸 소설로, 통속적인 내용을 어린아이의 맑고 깨끗한 눈으로 순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천진 난만한 ‘나’의 행동이 두 어른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어른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어렴풋한 그리움과 망설임을 어린아이다운 감각과 직관으로 선명하게 포착하는 등 아이의 시선을 절묘하게 활용한 소설이다. 물론, 화자가 어린 여자 애이기 때문에 서술과 묘사가 표면적이고 즉물적(卽物的)인 선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불충분함이 이 소설의 예술성을 극대화한다. 즉, 이 작품의 기법은 ‘분명히 드러내기’ 보다는 ‘의미의 감추기’가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머니와 사랑 손님의 감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장면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한다든지, 지연(遲延) 효과를 노린다든지 하는 것들은 해당 장면이 암시하는 의미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고도의 예술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 아네모네 마담

 

1. 줄거리

다방 ‘아네모네’의 마담으로 있는 영숙은 매일 이 다방을 찾아와서 한쪽 구석 자리에 앉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신청하는 학생이 기다려진다. 그 학생은 얼굴이 창백하고 언제나 우수에 젖어 있는 듯했다. 영숙이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보이를 통해 “슈베르트의 마완성 교향곡을 한 장 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쪽지를 받은 뒤부터였다. 그 사각모를 쓴 학생은 말없이 신청한 곡을 듣고 갈 뿐, 한 마디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그녀는 귀걸이를 달게 되었다. 그 학생은 미완성 교향곡을 들을 때면,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마담 영숙이 앉아 있는 쪽을 가끔씩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학생이 친구 한 사람과 함께 찾아와 발작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함께 왔던 그의 친구가 찾아와, “그 친구는 어느 교수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부인이 병으로 죽게 되자 거의 미쳐 버린 것”이라며 대신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들었던 것도 그 부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으며, 또 그가 가끔씩 마담 쪽을 바라본 것도 마담이 앉아 있는 카운터 뒷벽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 그림을 보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마담 영숙은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고 고적해졌다. 그 뒤 다방 ‘아네모네’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미완성 교향곡이 아닌 재즈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담의 귀에는 자랑스러운 귀걸이도 보이지 않았다. 

 

 

채만식(1902~1950)

 

소설가. 전북 옥구 출생. 호는 백릉(白菱). 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수학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했다. 그는 1924년 12월호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로 추천을 받고 등단. 그러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접어들어 <조선지광>, <조광>, <신동아> 등에 단편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1932년부터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작품 경향으로 한때 그는 동반자 작가로 불린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창작하였으나 후기에는 풍자적이고 토속적인 면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소설에 “탁류”(1937), “태평천하”(1937), 그리고 단편 소설에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7) 등이 있다.

 

▶ 논 이야기

 

1. 줄거리

일본인들이 토지와 그밖에 온갖 재물을 죄다 그대로 내어놓고 보따리 하나에 몸만 쫓기어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한 생원은 어깨가 우쭐하였다. 한 생원은 허연 탑석부리에 묻힌 쪼글쪼글한 얼굴이 위아래 다섯 대밖에 안 남은 누런 이빨과 함께 흐물흐물 웃는다. 일본인들이 토지와 그 밖의 모든 재산을 두고 쫓겨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한 생원은 우쭐해졌다. 일본인에게 땅을 팔고 남의 땅을 빌려 근근 살아오던 한 생원은 일본인들이 쫓겨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찾게 되리라는 기대에 부푼다. 일본인이 쫓겨가면 땅을 다시 찾게 된다고 큰소리를 쳐왔던 터였다. 한 생원네는 아버지의 부지런함으로 장만한 열서너 마지기와 일곱 마지기의 두 자리 논이 있었다. 그런데 피와 땀이 어린 그 논을 겨우 오 년 만에 고을 원[郡守]에게 빼앗겨 버렸다. 동학(東學)의 잔당에 가담하였다는 누명을 씌워서 말이다. 잡혀 간 지 사흘만에 열서너 마지기의 논을 바치고야 풀려났다. 한 생원은 남은 일곱 마지기마저 술과 노름, 그리고 살림하느라 진 빚 대신에 일본인에게 팔아 넘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런 가난한 소작농 한 생원에게 땅을 도로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큰 기쁨이었다. 일본인들이 물러가니 땅은 그전 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한 생원은 술에 얼근히 취해 자기 땅을 보러 간다고 외친다. 그러나 막상 찾으리라고 바라던 땅은 이미 소유주가 바뀌어 찾기 어렵게 되고, 논마저 나라가 관리하게 되어 다시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한 생원은 허탈감을 느낀다. 한 생원은 마침내 자신은 나라 없는 백성이라 하며 해방되는 날 만세 안 부르기를 잘했다고 혼잣말을 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풍자 소설, 농민 소설, 사회 소설,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광복 직후) / 공간(군산 부근의 농촌)

◎ 경향 : 풍자적 기법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냉소적 어조

◎ 구성 : 역전적 구성, 입체적 구성

발단 - 광복 직후 땅을 되찾고자 하는 한 생원의 기대

전개 - 구한말 때 빼앗긴 땅 회상

위기 - 한 생원이 일인에게 땅을 팔아 넘긴 과거사

절정 - 가난한 소작농으로 살아온 한 생원

결말 - 나라의 농업 정책에 대한 불만 토로

◎ 제재 : 동학 혁명, 일제 강점, 8․15 해방이라는 근대사 속의 농민과 땅, 그리고 국가의 관계

◎ 주제 : 국가 농업 정책에 대한 비판 의식, 농민의 현실에 대한 비판

◎ 출전 : <해방문학선집>(1946)

 

3. 등장 인물

◎ 한생원(한덕문) :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해방이 되면서 자신의 땅을 되찾으리라는 기대가 좌 절되자, 분노를 금치 못하고 나라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다. 헤프고 허황된 성격의 소유자

◎ 한태수 : 한 생원의 아버지, 성격이 매우 부지런하여 품삯 받아 푼푼이 모아 논을 장만한다. 동학란과 관련하여 무고한 감옥살이를 함.

◎ 길천 : 일본인. 한 생원에게 땅을 산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46년 해방 문학 선집에 수록된 농촌 소설이다. 그의 다른 작품 도야지 와 함께 과도기의 사회상을 풍자한 수작으로 꼽힌다. 해방 직후 혼란기의 사회상을 냉소하는 듯한 태도로 묘사함으로써 독특한 풍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소설은 8․15 직후 과도기의 사회상 중 국가의 농정을 풍자한 소설로 두 개의 중심 사건이 기둥을 이룬다. 지식인으로서 당대 농민의 참상을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폭로하고, 농민을 수탈하는 사회 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개혁 의지가 냉소적인 태도로 묘사되어 독특한 풍자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한 생원은 자신의 땅을 해방이 되면서 되찾으리라는 기대가 좌절되자, 분노를 금치 못하고 나라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다. 이러한 농민의 좌절은 해방 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반복된다. 한 생원의 아버지가 품삯을 받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스무 마지기 땅 중에서 열서 마지기는 탐관 오리에 의해 빼앗기는 데에서도, 남은 일곱 마지기 농사로 근근히 살아가다가 이것마저 일본인에게 팔아야 했던 데에서도 좌절을 겪는다. 농토의 진정한 주인은 농민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늘 농토를 빼앗기거나 잃어버리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 데에서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토지 수탈과 왜곡된 토지 제도는 해방이 되어서도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농민들에게 독립의 실감이란 민족 해방이니 독립 국가의 건설이니 하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농토를 되찾는 일일 것이다. 국가와 정치의 역할은 농민들의 이러한 욕구를 이해하고 실감나는 기쁨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방 직후 정치와 국가는 이 같은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부터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라는 한 생원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국민들의 희망과 욕구를 소외시킨 해방 정국을 비판․풍자하고 있다.

 

<참고> 채만식의 문학과 풍자에 대하여

풍자(諷刺)란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바람결[風]에 실려 오는 말[言]을 찌른다[刺].’는 뜻이다. 사전적으로 ‘인간과 그들이 만든 여러 제도의 약점을 자각하고 웃음을 통하여 그것들을 분쇄 또는 개선하기 위해 비판하는 것’인데, 한 마디로 말해서 잘못된 것을 꼬집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의 공통점은 둘 다 직선적이지 않고 우회적이라는 데에 있지만 풍자와 해학은 엄격하게 다르다. 해학은 인생의 모순과 세상의 비속함을 보고 웃지만 결국에는 인생이란 축복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며 냉소적이기보다는 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반면에 풍자적 태도는 해학과는 달리 개혁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풍자가 불안정한 사회에서 솟아나는 웃음이라면, 해학은 안정된 사회에서 솟아나는 웃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풍자는 대상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비판 정신의 소산이다. 정면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대상의 부정적인 면을 은근히 들추어냄으로써 충격 효과를 노리는 방법인 셈이다. 기지, 조롱, 아이러니, 비꼼, 조소, 냉소 등이 이를 위해 동원된다. 그럼 ‘풍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시대의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성을 조롱, 멸시, 분노, 증오 등의 여러 정서상태를 통해서 독자를 감동시켜 이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사회적 문학 양식이다. 풍자는 어리석음의 폭로, 사악함에 대한 징벌을 주축으로 하는 기지, 조롱, 반어, 비꼼, 냉소, 조소, 욕설 등의 어조를 포괄하므로, 문학의 어느 갈래에서나 자가가 전개하는 논의나 교훈이 선행하게 된다. 풍자문학은 유개념의 갈래에 포괄되는 하위 개념의 갈래이며, 한국 문학에서는 풍자 소설, 풍자극, 풍자시 따위의 명칭으로서보다는 가전체 설이나 의인화 소설, 실학파의 소설과 탈춤, 판소리, 인형극, 하층민의 민요의 넓은 영역에 걸쳐서 나타났다. 채만식의 풍자 문학은 주로 아이러니를 사용하는데 그 아이러니는 언제나 부정적인 인물을 소설의 전면(前面)에 내세우고 긍정적인 인물을 후면(後面)에 둠으로써 얻어진다. 부정적인 인물들은 긍정적인 인물보다도 더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긍정적인 인물들은 부정적인 인물들의 조롱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레디메이드 인생

 

1. 줄거리

고등 교육을 받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살아가던 주인공 P는 이력서를 들고 모(某)신문사 K사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일자리를 거절당하고, 오히려 농촌 운동이나 하라는 충고를 받는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형편에 농촌 운동과 문맹 퇴치란 허구에 불과하다고 반발하면서 밖으로 나온다.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그는, 차라리 무식했다면 농민이나 노동자라도 되어 실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불행을 의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이 인텔리인 것을 원망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같은 지식인 실업자를 양산(量産)해 낸 사회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고향의 형에게서 편지가 온다. 아홉 살짜리 아들 ‘창선’이를 올려 보낼 테니 아비 구실을 하고 기르라는 것이다. 그는 M과 함께 H를 졸라 자신의 법률 책을 잡혀 술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술 취한 계집들이 화대(花貸)로 이십 전이라도 좋다고 조르는 데서 P는 또 한번 분노를 느낀다. 밖으로 나온 P는 정조를 빼앗기고 자살하는 돈 많은 여자의 모습과 이십 전에 정조를 팔려는 무산 계급 여인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K사장의 화려한 생활과 위선적인 행동에 분개한다. 그러나 자신의 따분한 모습이 처량할 뿐이다.

‘창선’이가 온다는 날, P는 어느 인쇄소의 문선 과장을 찾아가서 아들놈을 무료 견습공으로 써 달라고 부탁하고 자취 도구를 장만한다. 아들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인텔리 실직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리고 P는 자신과 아들 모두가 팔려 가기를 기다리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식민치하의 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풍자적, 자조적

 

◎ 구성

발단 - P는 K사장에게 찾아가서 일자리를 부탁하다 거절당한다.

전개 - P는 자신과 같은 레디메이드 인생을 양산한 사회를 비난한다.

위기 - P는 M, H와 함께 법률 책을 잡혀서 만든 돈으로 술을 마신다.

절정 - 아들 ‘창선’이 서울로 올라온다.

결말 - P는 아들을 인쇄소에 무료 견습공으로 취직시킨다.

◎ 주제 : 식민지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통과 실의의 삶

◎ 출전 : <신동아>(1934)

 

3. 등장 인물

◎ P : 무직 인텔리. 가진 기술은 없으면서도 배웠기 때문에 직업에 대한 눈은 높은 인물. 쓸데없는 잡 지식이나 가지고 있는 당시의 고등 실업자의 전형.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가난함 속에서도 식민지하의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지만, 결국 아무런 해답도 얻어내지 못하는 인물

◎ K : 언행 일치가 되지 않는 위선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중에 나타난 현실과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P가 K사장에게 취직을 부탁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일자리를 구걸하는 P의 처지와 K사장의 무관심, 즉 늘 취직 운동에 실패한 P의 절박함과 K사장의 무반응이 대조를 이루면서 사회 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들 사이의 대화나 P의 심중을 통해서 나타난 당대의 사회 현실은 실업자가 증가해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적 궁핍상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 P는 그 원인을 역사적 조건에서 찾으려고 한다. 개화의 적당한 시기를 놓쳐 버린 대원군의 정책이나 교육만이 개인과 국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외치던 개화기 이후의 자유주의 물결 같은 것이 결국은 경제적 현실을 망각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의 인텔리들은 말하자면, 수요(需要)는 일정한데 무작정 공급되는 물량과 같은, 시세 없는 존재들이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찾는 사람이 없는 물건, 이것이 P라는 인텔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며, 바로 이런 사람들이 레디메이드(ready-made) 인생인 것이다. 이 작품은 풍자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비꼬는 듯한 어조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P가 어린 아들을 취직시키는 대목은 사회 현실에 대한 소극적 저항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비감 어린 풍자이다. 어려서부터 기술을 배우는 것이 그래도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에서 아들을 인쇄소에 무료 견습공으로 맡겨 버리는 행위는 레디메이드 인생, 실속 없는 인텔리의 슬픈 결단이 아닐 수 없다.

* 레디메이드 인생 : 기성(ready-made) 인간, 실업 상태의 인간

* 이 소설의 서사적 줄거리

① 신문사 사장을 찾아가 취직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는 이야기

②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을 전전하다 귀가하기까지의 이야기

③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인쇄소에 취직시켜 버리는 이야기

* 이 소설의 풍자성 : 1930년대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던 구조적 병폐를 부각함. ⇒ 일제의 우중화(愚衆化) 정책의 비판

 

▶ 미스터 방(方)

 

1. 줄거리

짚신 장수의 아들 방상복은 농사를 짓다 돈벌이를 하려 일본으로 떠났다가 한 10년 만에 더 초라해져서 돌아온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 신기료 장수를 하던 방상복은 해방을 맞아 영어를 할 줄 아는 덕택에 미군 장교의 통역(미스터 방)이 된다. 방상복은 S 소위의 주선으로 호화 주택을 얻어 살게 되면서 그에게 청탁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뇌물로 치부를 한다. 한편, 방상복과 같은 고향의 백 주사는 아들 백봉선이 일제 강점기에 경찰이었던 덕택에 지주이자 고리 대금업자로 치부를 하였는데, 해방이 된 후 부자가 함께 군중들의 습격을 받아 봉변을 당하고서는 서울로 피신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방상복을 만난 백 주사는 방상복이 미군 장교의 통역 일을 한다는 걸 알자, 그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복수를 하고자 한다. 백 주사가 방상복에게 청탁을 하자, 방상복은 들어 주겠노라 장담하고 나서 양치질을 하고는 그 물을 노대 바깥으로 내뱉었는데, 마침 방상복을 찾아오던 미군 장교가 그 양칫물을 뒤집어쓰고는 방상복에게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해 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광복 직후) / 공간(서울)

◎ 성격 : 풍자적, 비판적, 해학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백 주사와 술잔을 기울이며 거들먹거리는 방상복

전개 - 광복 직후 미군 장교의 통역으로 취직해 출세길에 오른 방상복

절정 - 아들의 친일 행각으로 광복 직후 몰락한 백 주사가 방상복에게 복수를 부탁함.

결말 - 자신이 뱉은 양칫물이 미군 장교에게 떨어져 다시 몰락하는 방상복

◎ 제재 : 광복 직후 사회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인물의 삶

◎ 주제 : 광복 직후 새롭게 진주한 외세에 기대어 출세를 지향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

◎ 출전 : <대조>(1946)

 

3. 등장 인물

◎ 방상복 :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신기료 장수를 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처지였으나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것에 힘입어 광복 직후 진주한 미군 장교의 통역으로 취직해 출세길에 오른다.

◎ 백 주사 : 전형적인 친일파로, 광복이 되어 군중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긴 뒤 피신해 있다가 방상복을 찾아와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복수를 하고 일제 강점기에 누렸던 부(富)를 회복하고자 한다.

◎ S 소위 : 광복 직후 혼란한 우리나라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제3의 인물로, 방상복을 출세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미군 장교이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주인공 미스터 방(방상복)과 그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청탁하기 위해 찾아온 백 주사 두 사람이다. 방상복은 일제 강점기에 외국을 돌아다니기는 하였으나 신기료 장수를 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인물로,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것에 힘입어 광복 직후 진주한 미군 장교의 통역으로 취직해 출셋길에 오른다. 백 주사는 전형적인 친일파로 광복이 되어 군중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긴 뒤 피신해 있다가 방상복을 찾아와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복수를 하고 일제 강점기에 누렸던 부를 회복하고자 한다. 지은이는 이 두 인물을 통해 외세(미국)에 빌붙어 출세를 도모하는 주인공과 같은 모리배들과 친일로 치부했다가 다시 새로운 외세를 이용하여 그 부를 유지하고자 하는 백 주사와 같은 친일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인공에게 찾아와 뇌물로 청탁을 하는 상류층들, 그러한 부조리를 용인하는 미군정 등이 이 작품의 풍자 및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지은이는 이를 통해 광복 이후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사회상과 인간상을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민족의 죄인

 

1. 줄거리

광복이 된 어느 날 주인공에게 신문사를 함께 다니던 친구가 찾아온다. 그는 주인공에게 신문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닌 것이 친일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이 신문사를 다닌 것은 먹고살기 위한 일이라고 변명한다. 먹고사는 일이 죄가 된다면 일제 강점 하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본에 세금을 바친 일도 결국 친일 죄가 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자신의 잘못을 변명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광복 후) / 공간(서울)

◎ 경향 : 사실주의

◎ 성격 : 사실적, 자기 고백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대화가 중심을 이루는 문체로 주제 의식을 드러냄.

◎ 구성 :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결말’의 4단 구성

◎ 주제 : 친일 행위에 대한 자기 반성

◎ 출전 : <백민>(1948)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광복 후 일제 강점 하에서 친일(親日) 행위를 벌인 인사들을 청산하는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 나온 채만식의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지은이는 자신이 친일 행위를 한 데 대해 반성하는 한편 그것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변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을 통해 일제 강점하 지식인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역로(歷路)

 

1. 줄거리

‘나’는 기차 시각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서울역에 나왔다. 거기서 친구 김 군(君)을 만났다. ‘나’는 성질이 고지식한 편이지만 김 군(君)은 넉살이 좋은데다 요령꾼이다. ‘나’는 사흘씩이나 여행 준비를 했지만, 그는 불과 몇 분만에 웃돈을 얹어 주고 차표를 사 온다. 비좁은 열차 안에서 젊은 사람과 늙은 농민이 언쟁을 벌인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청년은 토지 개혁을 하여 도지 안 무는 자영농(自營農) 시대의 도래와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며 농민을 설득하지만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 신사가 끼어 들어 공산주의는 나라 망치는 지름길이라며 미국식 민주주의를 역설한다. 열차가 천안에 이르자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월급쟁이가 쌀 보퉁이를 차창으로 들이밀며 승차한다. 그는 지역마다 쌀값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경제 구조를 격앙된 어조로 비판하며 이념 논쟁에만 골몰하는 정치인을 비판한다. 청년과 시골 신사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이윽고 기차는 대전에 도착하고, ‘나’와 김 군(君)은 호남선으로 갈아타기 위하여 비 오는 새벽에 열차를 기다린다. 그러나 사람에 비해 객차는 턱없이 부족하여 곳간 차 꼭대기에도 사람이 가득 찰 지경이다. 그 때 좋은 객차 다섯 칸이 달려나오고 거기에는 미군들이 한가로이 타고 있었다. 한 늙은이가 함께 타자고 애걸하지만 미군 병정은 무관심한 태도로 차 꼭대기를 가리킬 뿐이다. ‘나’는 음산한 정거장에서 언제 올 지도 모르는 기차를 민망히 기다리고 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여로형(旅路型) 소설

◎ 배경 : 시간(좌․우익으로 나뉘어 다투던 광복 직후 혼란기) / 공간(서울역 대합실, 기찻길, 대전역 대합실)

◎ 성격 : 사실적, 풍자적

◎ 어조 : 냉소적, 비판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의 혼합

◎ 문체 : 풍자적 문체를 통해 해방직후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대한 깊은 통찰과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 구성 : 한가지 이야기로 전개되는 단일 구성이자, 시간 순서에 따르는 평면적 구성

발단 - 집안에 병자가 생겨 고향에 가려고 호남선 열차를 타게 됨.

전개 - 역(驛)에서 친구 김 군(君)을 만나게 됨.

위기 - 열차 안에서의 좌․우익, 농민의 의견 대립

절정 - 쌀을 사기 위해 부산서 천안까지 온 월급쟁이의 현실 비판

결말 - 미군의 거만한 태도와 한 늙은이의 초라한 모습의 대비

◎ 주제 : 해방 직후의 혼란스런 사회상

◎ 출전 : <신문학>(1946)

 

3. 등장 인물

◎ 나 : 고지식하고 소심한 인물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다.

◎ 김 군 : 유들유들하고 넉살이 좋고 처서에 능한 인물이다.

◎ 잠바 청년 : 좌익 이념을 신봉한다.

◎ 농민 : 정치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이다.

◎ 월급쟁이 : 민생 문제를 팽개친 정치 형태를 비판하는 인물이다.

 

4. 이해와 감상

제목 “역로(歷路)”의 말은 지나가는 길이란 뜻이다. 해방 직후의 어수선한 사회상을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기차 여행을 통해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채만식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삼월의 어느 날 오후 두 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여로형(旅路型) 소설이다. 단편 소설이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해방 직후의 혼란스런 사회 속에서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어떤 생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나’와 김 군(君)은 성격적으로나 살아가는 태도 면에서 아주 대조적이다. 원칙대로 사는 ‘나’는 편의주의자인 김 군(君)에게 여러모로 조롱당하고 있다. 열차 안에서의 인물들도 뚜렷하게 이념의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할 만한 농민이나 월급쟁이는 국가의 체제나 정치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안정된 삶을 바랄 뿐이다. 등장 인물들이 정치인을 질타하며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하는 것은 작가 정신의 대리적 표현일 것이다. 끝 부분에서 미군(美軍)의 특별 대우와 이 땅의 주인인 우리 국민이 푸대접받는 장면은 자못 아이러니컬하다. “사람은 없나 봐, ……민족의 두령 재목은 아직 없는 모양야.” 비는 오고 그들은 언제 올지 모를 기차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를 번듯한 조국의 모습을 기다리듯. 결국, 이 소설은 작가가 지닌 정치 의식을 소설의 형태로 변형한 셈이다. 광복을 맞아 다시 친일파가 득세해 가는 민족적 현실, 뒷돈 거래가 횡행하는 사회적 무질서, 자당(自黨)의 이익만을 부르짖으며 백성들이 죽어 가는 것을 나 몰라라 하는 정치가들의 작태― 이런 것을 하나의 진풍경으로 그려내고 있는 문학적 풍속도라 할 수 있다.

 

▶ 치숙(痴叔)

 

1. 줄거리

‘아저씨’는 일본에 가서 대학에도 다녔고 나이가 서른 셋이나 되지만, ‘나’가 보기에는 도무지 철이 들지 않아서 딱하기만 할 뿐이다. 착한 아주머니를 친가로 쫓아 보내고 대학 입네 하고 다니다가 신교육을 받았다는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무슨 사회주의 운동인지를 하다가 감옥살이 5년 만에 풀려났을 때, ‘아저씨’는 이미 피를 토하는 폐병 환자가 된다. 식모 살이로 돈 100원을 모아 이제 좀 편히 살아 보려던 참이었던 아주머니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된 ‘아저씨’를 데려가 할 짓 못할 짓 다해서 정성껏 구완하여 이제 병도 어지간히 나아가지만, 정작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사회주의 운동을 하겠다고 말한다. ‘나’가 보기에, 경제학을 공부했다면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돈을 벌어서 아주머니에게 은혜를 갚을 생각은 않고, 남의 재산 뺏어다 나누어 먹자는 불한당질을 또 하겠다니 분명 헛 공부한 게 틀림없다. ‘나’가 친정살이하던 아주머니 손에 자라서 그 은공으로 딱하게 여겨 정신 좀 차리라고 당부를 해도 ‘아저씨’는 도무지 막무가내다. 일본인 주인의 눈에 들어 일본 여자에게 장가들어 잘 살겠다는 ‘나’를 도리어 딱하다고 한다. 그러니 ‘나’가 보기에 ‘아저씨’는 도통 세상 물정도 모르는, 참 한심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풍자 소설, 고발 소설

◎ 배경 : 시대(일제 강점기) / 공간(도회지, 군산→서울) / 사회(이념이 대립하는 사회) / 심리(역설적 심리 상태)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의 효과를 냄)

◎ 어조 : 풍자적 어조

◎ 인물 유형 : 평면적 인물, 개성적 인물

◎ 수사 : 생략, 문답, 억양, 도치, 반복 등

◎ 문체 : 풍자적, 반어적, 독백체, 비어와 속어가 쓰인 대화적 문체

◎ 기법 : 칭찬 - 비난의 역전(반어적) 기법(표현은 비난, 심층엔 긍정)

◎ 구성 : 역순행적 구성

발단 -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옥살이하고 폐병에 걸려서 앓아 누워 있는 아저씨 소개

전개 - 아주머니의 고생담과 ‘나’의 성장 과정

위기 - 철저히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는 ‘나’

절정 - ‘나’와 아저씨의 대립

결말 - 아저씨에 대한 ‘나’의 실망

◎ 주제 : 일제강점기의 현실 적응적 생활관과 사회주의 사상적 삶의 방식과의 갈등. 지식인이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모순과 노예적 삶의 비판

◎ 출전 : <동아일보>(1938)

◎ 의의 : 풍자의 심층화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3. 등장 인물

◎ 나 : 화자.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서 현실에 만족하는 인물로 일제에 동화되어 가겠다고 생각함.

◎ 아저씨 : 사회주의를 하다가 옥살이를 하고 이제는 병이 들어서 폐인이 되다시피 한 지식인으로서 일제 하에서 무기력함.

 

4. 이해와 감상

1938년 동아일보에 실린 작품으로, 일제 강점 하에 사회주의 활동을 한 아저씨를 풍자적으로 희화화(戱畵化)하면서 체제에 순응하여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어린 조카의 독백으로 된 소설이다. 여기서 치숙(痴叔)이란 ‘어리석은 아저씨’라는 뜻이다. “치숙”은 1인칭 주인공인 소년이 혼자서 이야기를 지껄이는 형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일본 군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점령하여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문화적 탄압을 서슴지 않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자조와 비판을 바탕으로 사회에 대한 풍자를 주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칭찬­비난의 역전 기법’으로 사상의 자유 로운 토론을 금지하는 일제의 강압 통치를 조롱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 소설은 이중의 풍자성을 지닌다고 했는데, 이 말은 풍자하는 주체와 풍자되는 대상을 함께 조롱한다는 의미이다. 즉, 소설 “치숙”은 표면상으로는 긍정적인 인물로 ‘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현실에 야합하는 ‘나’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논리를 명쾌하게 반박하지 못하는 ‘아저씨’의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작가는 ‘나’에 대한 칭찬과 ‘아저씨’를 향한 비난을 결말에 가서 상호 역전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인 ‘아저씨’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사회주의 이상을 철저히 추구하지 못하는 ‘아저씨’와 한 소년을 철저하게 우민화(愚民化) 시키는 일제(日帝)를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을 부정하는 수준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한 풍자의 이야기 속에서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가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여 이 작품의 구성상 특징은 1인칭 소년 주인공이 혼자 이야기를 지껄이는 넋두리의 형식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극적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존 소설과는 판이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한 인물을 집중적으로 풍자하려고 할 때에는 오히려 이런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참고> “치숙”에 대하여

□ 문체와 기법 :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문체는 풍자적, 반어적 특징을 가진다. 풍자나 반어의 효과를 내기 위해 작가는 동일 비중의 사건이나 어구를 중언부언 반복하거나 비어, 속어를 편향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대화적 문체를 구사함으로써 갈등을 빚고 있는 ‘나’와 ‘아저씨’의 의식상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칭찬 - 비난의 역전’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는 ‘나의 생활 방식을 칭찬하고 아저씨의 비현실적인 사고 방식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 심층적인 의미에서는 ’나‘의 생활 방식을 은근히 비판하면서 아저씨의 입장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작가는 칭찬과 비난을 상호 역전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풍자하는 기법으로써, 작가는 사회주의자인 아저씨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나서지는 않는다. 이것은 작가 채만식이 동반자 작가(同伴者作家)였음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된다. 동반자 작가란, 우리 근대 사회주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행동을 함께 하는 것을 보류하는 입장의 작가 모임을 지칭한다. 그런데 1936년경에는 카프(KAPF)가 해체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탄압을 받아서 공개적으로 그것을 지지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에서 사회주의자인 ’아저씨‘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못하는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이 점이 “치숙”의 기법을 문제삼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할 것이다.

□ 시점과 효과 : “치숙”은 학력과 연령에 있어 크게 격차가 벌어지는 화자의 시점을 통해 실패한 지식인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달되는 인물과 전달하는 인물 사이에 지식, 교양, 성격, 신분상의 격차가 클수록 더 강력한 해학적 내지 풍자적 효과가 발생한다. 지적으로나 신분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그보다 못한 인물의 시점으로 전달될 때 독자는 이러한 역전된 인물 설정을 통해서 지식과 신분이라는 것의 사회적 본질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판소리나 탈춤에서 말뚝이 같은 존재가 양반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그 권위를 궤멸시키는 예술적 폭력이 달성되는 것은 이러한 풍자 수단에 의해서인데, “치숙”의 첫 대목은 우리 전통 민요나 판소리 사설의 화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한 점에서 중요시될 만하다.

 

▶ 탁류(濁流)

 

1. 줄거리

미두장 하바꾼으로 소일하는 무능력한 정주사의 딸 초봉이는 S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친구인 제호의 약방에서 점원으로 있으면서 다소곳한 행동과 미모로 인해 제호와 승재, 태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호는 히스테리가 심한 부인과 살고 있으며 태수는 은행원으로 가난한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으나 부자인 체 하며 지내면서 은행에서 남의 돈을 몰래 빼내 꼽추 형보를 시켜 미두를 하다 돈을 거의 잃어 들통이 나면 자살하려고 하고 승재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가 친척인 의사 밑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돕는다. 그분이 죽으면서 친구 의사에게 천거해 주어 군산에 내려오게 된다. 그의 병원일을 도우면서 의사 시험 준비를 하며 초봉의 집에서 하숙한다. 그는 가난한 병자를 도우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초봉이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승재가 있으나 약방을 그만두고 서울로 가 제약회사를 하려는 제호를 따라가는 것이 실패하자 태수와 정을 통한 한참봉의 아내 김씨의 중매로 전문학교를 나온 부자로 알려진 태수의 청혼을 받아들인 아버지를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초봉이의 신랑이 될 태수가 화류병에 걸려 결혼 전에 고치려고 병원으로 오자 승재는 그의 본 모습을 보고 초봉이가 가엾게 여겨지고 상심한 마음으로 인해 태수를 죽이려다 그만둔다. 결국 초봉이와 태수는 결혼을 하게 되고 승재는 초봉이의 집에서 나와 하숙을 옮기고 성격이 반대인 초봉의 동생 계봉이의 방문을 자주 받게 된다. 결혼 후 초봉은 승재에 대한 미련과 돈 때문에 결혼하였다는 생각이 잠재해 있었지만 잘해주는 태수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 태수는 죽기 전의 소원이었던 초봉과의 결혼을 이루고 나서 비행이 들통나면 자살을 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다진다. 형보는 초봉의 미모에 매료되어 태수를 빨리 죽게 하고 자신이 차지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날 계책으로 인해 홍업 회사에서 당좌계를 찾는 전화가 오게되고 이를 안 태수는 내일이면 들통이 나므로 죽을 결심을 하고 집으로 간다. 집에 오자 한참봉의 아내 김씨가 계집아이를 보내와 김씨 집으로 가 한참봉이 작은집으로 간 사이를 이용해 김씨와 만난다. 한편 형보는 이 일을 잘 아는 지라 또 하나의 계책으로 한참봉에게 익명으로 전화를 해 현장을 덥치게 하고, 잠자는 초봉을 추행한다. 태수와 김씨는 한참봉에게 죽게 되고 초봉은 신혼 살림을 부모가 살아 갈 밑천으로 주고 마음 좋은 아저씨인 제호를 찾아 서울로 가다 기차에서 만나 온천에서 제호의 여자가 된다. 서울에서 살림을 차리고 제호에게 돈을 얻어 집에 보내면서 지내다 누구의 아이인지 확실하지 않은 송희를 낳는다. 그러나 초봉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승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송희를 낳은 초봉이 지나치게 아이에게 집념을 보이게 되고 회사에서 필요해 아내 친척에게 돈을 얻어 쓴 제호는 친정에서 요양하던 아내가 오게 되자 초봉이를 떼어버릴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태수가 미두를 하다 남겨준 돈을 얻었던 형보는 운이 좋아 미두와 고리대금으로 몇 천 원의 돈을 벌어 초봉이를 찾아오게 된다. 형보가 송희가 자기의 딸이며 죽은 태수가 유언으로 초봉이를 맡겼다는 억지를 부리며 제호를 만나자 제호는 양심이 찔렸으나 좋은 기회라고 여겨 물러나 버린다. 초봉은 남자들이 역겨웠으나 악독한 형보를 잘 아는 지라 친정에 돈을 주고 동생들도 교육을 시켜 주겠다는 다짐을 받고 마음에도 없는 형보의 여자가 된다. 초봉의 마음은 승재에 대한 환상이 자주 고개를 쳐든다. 계봉은 서울로 올라와 초봉과 함께 살면서 형보의 돈으로는 공부하기가 싫어 백화점에 취직하여 일하게 된다. 계봉과 함께 살게 된 형보는 계봉의 성숙한 몸매에 군침을 흘리고 초봉은 형보가 일을 저지를까 근심한다. 초봉은 계봉이 송희를 잘 키울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자 지옥 같은 형보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형보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다. 한편 초봉이와의 일을 옛일로 느끼게 되었고 계봉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승재는 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계봉이와 만난 승재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청혼을 하나 개방적인 계봉은 사랑하면 자연스러이 결혼을 하게 된다며 확답을 피하고 초봉의 이야기를 한다. 계봉으로부터 초봉의 가엾은 사정을 들은 승재는 계봉과 함께 초봉을 형보의 손아귀에서 빼내려는 계책을 세운다. 계봉과 승재가 초봉이를 만나러 집에 가자 초봉은 이미 형보를 죽이고 말았다. 승재가 도와 주려고 올 것을 몰랐던 초봉은 이야기를 듣고 승재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생각에 기쁨을 느끼다가 빨리 실행한 것을 후회한다. 계봉은 초봉에게 자수를 권하고 한참 울던 초봉은 승재에게 하라는 대로하겠다는 말을 건네자 그 뜻을 아는 승재는 대답이 막혔으나 애원하는 초봉이를 거절할 용기가 없어 다녀오라고 다정하게 말한다. 초봉의 슬픈 얼굴이 잠시 웃을 듯 빛나게 되고 승재는 그것을 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배경(군산과 서울)

◎ 경향 : 세태 풍자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인간 기념물’에서 시작해 ‘서곡’으로 끝맺는 19개의 소제목으로 된 모자이크식 구성

발단 - 미모인 초봉을 노리는 남자가 많음.

전개 - 초봉의 불행과 기구한 삶

위기 - 장형보의 등장

절정 - 초봉이 장형보 살해함.

결말 - 초봉의 자수

◎ 주제 :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한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현실 고발 및 풍자

◎ 출전 : <조선일보>(1937~1938 연재)

 

3. 등장 인물

◎ 초봉 : 여주인공으로 정 주사의 맏딸. 가족의 삶을 위해 희생하지만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다 살인자로 전락하는 비극적 인물

◎ 정 주사 : 미두전에 빌붙어 사는 도시 하층민으로 딸을 팔아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무능한 가장

◎ 고태수 : 은행원이며 호색 방탕아로서 초봉의 첫 남편. 장형보의 흉계로 비참하게 죽음.

◎ 장형보 : 꼽추이며 고태수의 친구로 간악함.

◎ 남승재 : 의사 지망생으로 온건한 사회주의자. 긍정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명되고 있으나, 군산이란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한 1930년대의 도시 형태론의 제시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잡다한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상태가 서로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기구한 여인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점이 주된 특성을 이룬다. 먼저 이 작품은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시의 지지적(地誌的)인 성격을 양분화함으로써 일인들 중심의 신흥하는 중심지와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로 대립되는 식민지의 도시적 생활의 형태론을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대립된 도시 구조의 제시는 빈부의 대립 및 낡은 과거와 현재와의 단절을 표상하는 한편 현실적으로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하는 축도적 모델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채만식의 관심은 말할 것도 없이 언덕 비탈 지역의 궁핍한 주거 지대와 거기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의 생태에 있으며 이들의 삶이 어떻게 주름살이 지게 되는가를 제시하려는 데 있다. 그러기 때문에 ‘탁류’는 가난, 싸움, 투기, 간통, 흉계, 횡령, 탐욕, 추행 등 살인의 혼탁한 흐름 속에 휘말려 들어 파멸하는 일가의 운명을 기본 줄거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인 정주사와 맏딸(주인공) 초봉의 전락이 그것이다. 즉, 군서기로 있다 도태되어 도시인 군산으로 이주하여 은행원, 미두 중매상, 미두꾼,하바꾼 등으로 점진적인 전락을 거듭한 정주사는 미두장에서 요행수나 바라고 살다가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딸 초봉이를 사기꾼이요 호색한인 은행원 고태수에게 출가시켜 그 딸의 불행한 결혼의 대가로 생기는 돈에 의존하는 비열한 삶을 누린다. 순진한 초봉이 또한 고태수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악한의 전형인 꼽추 장형보에 의한 남편의 죽음과 추행 등의 기구한 운명적인 전변을 되풀이하다가 끝내는 복수의 살인자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파멸하지 않는 인간은 온전한 사회주의자인 남승재와 건실한 합리주의자인 계봉이뿐이다. ‘탁류’는 표제 그대로 식민지 시대의 사회적․경제적 및 심리적 무질서의 격류 속에 휩쓸린 인간의 탐욕, 죄악 및 파멸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백릉 채만식 소설의 특징은 아이러니이다. 부정적 인물을 소설의 전면(前面)에 내세우고, 긍정적 인물을 후면(後面)에 두거나 희화화(戱畵化)할 때, 이 아이러니는 두드러진다. 특히, 부정적 인물들은 더욱 치밀하게 묘사되거나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이며, 긍정적 인물들은 부정적 인물의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소심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탁류”의 경우, 정 주사, 고태수, 장형보 등의 부정적 인물들을 남승재, 계봉이에 비해서 지나치리만큼 자세히 관찰되며 줄거리 전체를 압도한다. 그 결과, 긍정적 인물들의 세계관은 희미하게 제시되는 반면, 부정적 인물들의 그것은 날카롭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부정적, 긍정적 인간형의 중간 지점에 초봉이가 위치하고 있다. 이 소설은 2년여의 “탁류” 속에서 그녀가 겪는 비극적 운명의 기록인 셈인데, 그 결말은 비극의 정점인 살인에까지 이른다. 그 과정은 대략 이렇다. 군(郡)의 고용원을 지낸 정주사의 딸 초봉이는 정주사가 미두(米豆)에 미쳐 가세가 기울어지자 약국 제중당에서 일을 했다. 나이가 찬 데다 용모가 예쁜 초봉이를 탐내는 남자가 많았다. 초봉이를 서울로 유인하려던 약국 주인 박재호는 그의 아내의 훼방으로 실패한다. 매파에게 홀린 부모의 권고로 초봉이는 호색가인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한다. 그러나 꼽추인 장형보의 흉계로 남편을 잃고 꼽추에게 몸을 버린다. 무작정 서울로 가던 초봉이는 박재호의 유혹으로 그의 첩이 된다. 얼마 후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다. 장형보가 자기의 아이라면서 아이와 함께 초봉이를 빼앗아간다. 초봉이는 장형보를 극약을 먹여 죽이고 자수한다. 결국, 이 작품은 당대 사회를 속악(俗惡)하기 이를 데 없는 탁류로 보고, 그 탁류에 휩쓸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살을 갉아먹고 있는 도시 하층민의 생활 방식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절망감을 딛고 일어서서 당대 사회의 속악성(俗惡性)과 대결할 것을 기약하는 계봉, 남승재 등의 새로운 인간상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의 부제가 ‘서곡(序曲)’인 것은 탁류가 몰고 온 찌꺼기들을 씻어 내고 맑은 물이 흐르는 시대가 오리라는 희망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 태평 천하(太平 天下)

 

1. 줄거리

1930년대 후반의 어느 늦가을. 서울 계동의 만석꾼 부자 윤직원 영감은 명창대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소작료와 수형 장사로 1년에 십 수만 원을 챙기는 이 거부 윤직원 영감은 타고 온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꾼과 요금 시비를 벌인다. 30전은 주어야겠다는 인력거꾼과 15전밖에 못 주겠다며 옥신각신하다가 마침내 25전으로 낙착을 보자 거만의 갑부 윤직원은 몹시 속이 상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매년 십 수만을 버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밖으로 나가는 돈은 이처럼 절치부심, 아까워하는 것이다. 치재의 비결이 워낙 이러한지라 윤직원 영감은 버스를 타더라도 짐짓 큰돈을 내밀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다는 핑계로 무임승차를 즐기는 터이기도 하다. 거만의 부를 움켜쥐고 있는 윤직원이지만 그에게도 비참한 역사는 있다. 노름꾼이던 그의 아비 윤용규가 어찌어찌 한몫을 잡아 가산이 일게 되면서부터 윤두섭(윤직원의 본명) 부자는 화적떼로부터 무수한 약탈을 당했는데, 급기야는 어느 날 밤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윤용규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고의춤도 여미지 못한 채 달아나 명을 보전한 윤두섭은 화적들이 물러간 뒤 돌아와 참경을 목도하고 비장하게 외친 바 있다. “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화적떼에게 뺏기고 관리들에게 수탈 당하던 두꺼비 윤두섭이 세상에 외친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고를 겪으면서 모은 거만의 재산이니 그가 한푼의 돈을 쓰는 것에도 벌벌 떠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 하겠지만, 그는 착취니 무엇이니 하는 말에도 펄쩍 뛰는 무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만큼 돈을 번 것은 자신의 치재 수단이 좋았고 시운이 따라 가능했던 것이지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는 탄탄한 소신이 그에게 내장되어 있는 탓이다. 시골 치안의 허술함과 후손 교육을 기회 삼아 서울로 올라온 윤직원 영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 없고 자신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으니 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니 만큼 현재의 그에게는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럽고 두려운 인물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근심은 없다. 단지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의 두 손자 - 종수와 종학이 각각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에 지위와 명성을 보태어주는 것뿐이다. 돈이 있으니 만큼 이러한 자리 욕심이 생긴 터인데, 사실 직원이라는 그의 직함도 시골에 있을 무렵,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주고 사들인 것이다. 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사서 매일 아침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하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실인즉 그의 집안 사정은 난맥상을 드러내가고 있다. 그의 외아들 창식은 진작 첩 살림을 차려나가 하는 일이라곤 노름에 계집질 뿐으로 주색잡기에 수천 금을 뿌리고 있으며, 맏손자인 종수는 군수가 되리라는 명목으로 시골 군청의 고원으로 취직해 있으면서 역시 첩 살림에 갖은 주색잡기로 수만의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판이다. 둘째 손자 종학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윤직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터이지만 이도 서울 집에 있는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며 성화를 피우고 있다. 또 윤직원 영감은 회춘을 하려고 여러 차례 동기를 바꾸어 가며 동접(童接)을 기도하나, 이번에는 열다섯 살짜리 동기(童妓) 춘심이년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실은 춘심이는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눈이 맞아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런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윤직원 영감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맏아들 창식이 동경으로부터 온 전보를 윤직원에게 전해 주는 바, 거기에는 ‘종학, 사상 관계로 피검’ 이란 활자가 선연히 찍혀 있다. 윤직원의 차손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두려워해 마지않는 사회주의에, 가장 큰 희망이요 보람이었던 장래 경찰 서장 감인 종학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하여 비틀거리며 소리 지른다.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랑으로 사라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가족사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서울의 한 평민 출신의 대지주 집안)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부정적 인물을 비판하는 풍자적 어조

◎ 문체 : 판소리 사설의 원용(援用)

◎ 구성

발단 : 인력거를 타고 와서 그 삯을 깎으려고 하는 윤 직원 영감의 행태

전개 : 윤 직원 영감 집안의 내력과 치부 과정

위기 : 종학에 대한 윤직원의 기대. 아들 창식과 큰손자 종수의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

절정․결말 : 둘째 손자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일본 경시청에 피검 되었다는 전보에 충격

◎ 주제 : 개화기에서 일제 시대에 이르는 윤직원 일가의 타락한 삶과 몰락의 과정

◎ 출전 : <조광(朝光)>(1938)

 

3. 등장 인물

◎ 윤직원 : 미천한 신분 출신으로 치부에 성공한, 만석지기 지주이자 전형적 고리대금업자. 사회에 대한 불신과 피해 의식이 강하다.

◎ 윤창식 : 윤직원의 장남. 치산(治産)에는 관심이 없음. 개화기에 교육을 받았지만 가치관을 상실하고 향락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인물

◎ 종수 : 윤직원의 맏손자이자 창식의 아들. 향락만을 추구하는, 그 부친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인물

◎ 종학 : 윤직원의 둘째 손자. 동경 유학생으로 윤직원이 가장 믿는 인물. 그러나 윤직원의 기대와 달리 사회주의자가 된다. 작품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 경손 : 종수의 아들. 중학생

◎ 서울 아씨 : 윤직원의 딸. 30대 과부

◎ 춘심이 : 동기(童妓). 윤직원의 애기(愛妓)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8년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라는 제목으로 <조광>지에 1월부터 9월까지 연재된 풍자적 수법을 사용한 장편 소설이다. 전체 15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장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1940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5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로서 소위 ‘가족사 소설’의 전형에 드는 작품이다. 또한 성격 묘사에다가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소설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1930년대 말에 한국 사회는 일제의 수탈과 착취에 의해 빈궁화 현상이 계속되어 가고 있었다. 윤직원은 놀부형으로서 일제가 조장한 상업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자신의 부를 늘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전면에 윤직원을 내세워 왜곡된 사회와 그 속의 부정적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즉,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믿는 주인공의 시국관을 풍자한다. 표현상의 특징을 보면, 일제의 부당함과 일부 조선인의 몽매와 비열함을 공격하기 위하여 반어와 희화, 풍자 등 판소리 사설의 기법을 계승․변형시켜 한국 근대 소설의 한 형태를 이루었다. 판소리의 창자(唱者- 광대)처럼 ‘-입니다’ 식의 경어체 어투나 ‘-겠다요’ 식의 경박한 어투를 써서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 서서 작중 인물을 조롱하고 희화했다. 작자의 직접적 개입을 들 수 있는데, 독자와 작중 인물의 중간에 서서 작중 인물을 평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점은 판소리사설에서의 창자의 역할과 같다. 또, 반어(反語)와 희화(戱化)를 통한 풍자가 돋보이는데, 판소리 사설에서처럼 인물을 풍자하였다. 여기서는 반어를 통한 희화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겉으로 추켜 올리면서 실제로는 격하, 비하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웃음거리를 만드는 동시에 그들의 추악함을 폭로한다. 이 작품에서 반어적 희화와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인물은 종학이 뿐인데, 이는 작가의 긍정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정적 인물일수록 희화적 풍자는 더욱 심하여 윤직원 영감이 최대의 대상이 된다. 아울러 주제 및 작가 의식을 보면, 이 작품에서 작자는 한말(윤직원), 개화기(창식), 일제 강점기 세대(종수, 종학)로 구성된 한 가족을 통하여 각 세대별 가치관 및 현실 대응 방식을 드러내고, 옳지 못한 가정의 바탕이 어떻게 허물어져 가는가를 보여 주면서, 식민지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생성되어야 할 것인지를 암시하였다. 작가는 대부분의 인물을 부정적으로 묘사, 비판하고, ‘종학’의 경우만 작자 나름의 긍정적 지향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 강점 사회에 대한 비판과 민족 현실의 극복에 주안점을 둔 작가 의식이다.

 

<참고> 풍자 문학의 걸작 “태평천하”

이 소설에서 우선 제목 ‘태평천하’부터가 그 어조가 반어적이다. 일제의 압제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1930년대를 ‘태평천하’라고 인식하고 있는 주인공 윤두섭(윤직원)이라는 인간의 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소설의 전체 제목뿐만 아니라 소제목들도 한문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옛날의 한시나 한문 소설을 모방하는 양식을 취하고 있다. ‘귀택지도(歸宅之圖)’니 ‘무임 승차 기술(無賃乘車技術)’이니 ‘서양국 명창대회(西洋國名唱大會)’니 ‘관전기(觀戰記)’니 ‘실제록(失題錄)’이니 하는 제목들이 모두 장중한 느낌의 한문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우스꽝스러운 것들이다. 문체에서도 독특하다. “초리가 길게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 보이는 코. 뿌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 다 남자의 상입니다. 나이? …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증으로 천식기가 좀 있어 망정이지, 진정한 폼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 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윤직원 영감의 풍모를 언급하는 대목인데, 그 진술 방식이 ‘습니다’ 체로 되어 있는 것이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마치 이야기꾼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한 대목을 읽는 듯한 느낌도 준다. 이처럼 이 소설은 전통적인 발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윤두섭이란 인물이다. 윤두섭은 젊어서 부친 윤용규를 화적패에게 무참하게 잃어 가면서까지 재물을 모은 만석꾼이며 수전노이다. 윤두섭이 피에 물들어 참혹하게 나뒹구는 부친의 시신을 안고 뿌연 어둠 속에서 외치는 절규는 이렇다. “우리만 빼 놓고 어서 망해라!” 그는 돈으로 향교의 직원(直員) 자리를 산다. 그러나 그가 향교에서 유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이렇다. “대체 거 공자님허구 맹자님허구 팔씨름을 하였으면 누가 이겼을꼬!” 이러한 윤직원의 사회 의식, 역사 의식은 완전히 왜곡되어 있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식민지 현실을 전혀 엉뚱한 논리로 미화한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 또한 윤두섭에게는 윤리라든지 도덕이라든지 낱말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황금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부친의 죽음도 방치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딸과 손자들도 가문의 지위를 높이겠다는 의도 아래 마치 짐승을 다루듯 하며, 여성에 대해서는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이렇듯 부정적인 인물인 윤두섭을 희화화하고 풍자함으로써 작가는 윤두섭의 몰지각한 현실 인식과 역사 의식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식민지 현실 자체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조롱과 비판의 대상에서 그나마 벗어나 있는 인물은 윤두섭의 둘째 손자 종학이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인물이라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바로 “태평천하”가 지니고 있는 한계로 지적된다. 즉 채만식의 풍자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태평천하”는 부정적인 인물들을 통해서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들춰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향성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 채만식은 허무주의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풍자를 택했지만, 부정적인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의 제시에 이르지는 못했다. 자본주의적 현실을 탐구, 그 부정적인 이면을 들춰냄으로써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하였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한복판까지 접근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종학의 사회주의가 멀리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것은 한갓 추상적 관념일 뿐이다. “태평천하”의 세계 또한 허무주의의 심연을 바로 앞에 둔 위태로운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능란한 이야기꾼 채만식의 한바탕 욕설을 들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김윤식․정호웅 <한국 소설사>에서).

 

▶ 허생전(許生傳)

 

1. 줄거리

허생(許生)은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집을 나가 변 진사에게 돈 만 냥을 빌려 안정성의 과일을 매점(買占)하여 석 달만에 열 배의 이익을 남긴다. 허생이 쌀을 매점 하라는 강 선달의 권유를 물리친 후 도적들이 돈을 훔치러 온다. 허생은 도적들을 굴복시켜 새 달 보름까지 강경(江景) 장터로 모이라 하고 돈을 주어 돌려보낸다. 허생은 변 진사에게 이만 냥을 갚고, 강경 장터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조직을 갖추어 사천여 명의 사람들을 배에 싣고 강경을 떠난다. 허생은 제주(濟州) 목사의 횡포를 듣고 그를 제주에서 떠나게 하고 삼 년 동안 제주에 낙천지를 이룬 후 제주를 떠난다. 변 진사가 이완(李浣)을 데려 오자, 허생은 이완에게 장기적인 북벌(北伐) 계획을 제시한 후 사라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경향 : 패러디 소설

◎ 성격 : 풍자적, 비판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고전 작품의 패러디를 통한 현실 비판

◎ 출전 : <협동 문고>(1946)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채만식이 박지원(朴趾源)의 “허생전”과 이광수(李光洙)의 “허생전”, 그리고 설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참고하여 집필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사건이나 인물 설정에서 현실성과 구체성을 중시하였다. 박지원의 소설에서는 허생은 혼자 행동하지만, 채만식의 작품에서는 먹쇠를 등장시켜 허생을 지켜보며 도와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제주도로 떠나기 전의 집결지를 강경으로 잡고 도적의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집단화한 것도 현실적인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지원의 작품에서는 제주도가 경유지에 불과하고 무인도에 이상국(理想國)을 건설하지만, 채만식의 작품에서는 제주도에 이상국을 세운다.

 

 

최명익(1903~?)

 

필명 유방(柳坊). 평남 평양 출생. 평양고보에서 수학한 후 1928년 홍종인(洪鍾仁) 등과 함께 동인지 <백치>를 발간했으며, 1936년 단편 “비 오는 길”을 <조광(朝光)>에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가 소설을 통해 시도한 심리주의적 수법과 인간의 내면 세계에 대한 천착은 유항림 ․김이석 ․최정익 등 <단층>(1937)지의 동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작품 “역설(逆說)”, “무성격자(無性格者)”에 등장하는 염세적이고 무성격한 인물들은 만주사변 이후의 파시즘 체제 하에서 외부 세계에의 적극적 참여를 단절 당한 지식인들의 자의식을 암시적으로 대변하였다. 특히, “심문(心紋)”(1939)은 탁월한 심리 묘사 속에 시대와 생활의 문제를 밀착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8 ․15광복 직후 평양예술문화협회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에는 소설집 “장삼이사(張三李四)”, “폐어인(肺魚人)” 등이 있다.

 

▶ 심문(心紋)

 

1. 줄거리

김명일은 3년 전 상처(喪妻)한 화가이다. 그의 어린 딸은 학교 기숙사에 맡기고 그는 신혼 당시 신축해서 살던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의 친구인 이 군(君)을 만나려고 하얼빈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곳은 여옥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러 온 것이었다. 여옥은 동경에 유학한 문학 소녀였고 청년 투사 현혁의 연인이었으나 명일이 출입하던 다방의 새 마담으로 오게 되어 그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밤과 낮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여 주관적인 모습과 객관적인 사실이 교차되어 나타나, 명일의 처의 모습과 닮았으나 또 다른 면이 있는 그러한 여인이었다. 여옥은 명일을 사랑하였으나 그가 부인을 못 잊어하는 것을 알고 그녀는 첫정을 주었던 현혁을 찾아 만주로 떠났었다. 명일은 이번 여행에서 여옥을 만날 의도는 없었으나 이군의 안내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 곳에서 한때 사회주의 운동가로 유명하였던 현혁과 여옥이 동거하고 있으며 둘 다 아편 중독자가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혁은 화를 내며 명일에게 둘 사이에 개입하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결국은 아편을 얻기 위해 여옥을 명일에게 양도한다. 그러한 현혁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낀 여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시간(1930년대 중반) / 공간(만주)

◎ 주제 : 현실과 유리된 지식인의 내면적 갈등

 

3. 등장 인물

◎ 김명일 : 화가. 상처(喪妻)를 한 뒤, 여옥을 사랑하는 소심한 성격의 인물

◎ 여옥 : 문학 소녀였으나, 좌익 운동을 하던 애인을 잊지 못하는 다방 마담

◎ 현혁 : 좌익 운동을 하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최명익은 해금(解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납북되거나 월북한 작가가 아니고 태어난 곳(평양)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8․15 이후에도 계속 평양에서 창작 활동을 한 작가였다. 하지만, 그가 짧은 기간 동안 발표한 작품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만한 평가 대상이 된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 뚜렷한 성격을 지니며, 강렬한 예술성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최명익이 그의 고향 평양을 중심으로 간행한 동인지 <단층>이 등장한 1930년대 초는 이 땅의 문학이 근대 문학적인 성격에서 현대 문학적인 성격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고 조연현씨는 그의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지적하고 있다. “심문”을 포함한 이 무렵 그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적인 허무에 사로잡힌 생활 무능력자이거나 절망적인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일제 말기의 어둡고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 같은 말기 문학의 특성 중의 하나가 심리적․사상적으로 허무적이고 절망적인 색채를 농후하게 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명익은 1930년대 지식인 소설의 대표적 작가인 이상(李箱)과 1950년대 손창섭(孫昌涉)으로 이어지는 심리 소설의 지평을 열어 놓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말기적 증후를 드러내 주고 있다는 데서 문학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 장삼이사(張三李四)

 

1. 줄거리

기차 안은 지저분하고 혼잡하다. 한 젊은이가 내뱉은 가래침이 ‘나’와 마주앉은 신사의 구두 콧등에 떨어졌다. 그 가래침을 털어 내느라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그 ‘신사’는 주위 사람에게 반감을 산다. 두꺼비 상판의 그는 옆자리의 젊은 여자를 감시하는 눈빛이다. 차표 검사가 시작되었을 때 여자는 “그가 가져가서 차표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변소에 갔던 것이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입방아가 시작된다. ‘당꼬 바지’가 돈벌이로는 색시 장사가 최고라고 떠들자 ‘가죽 재킷’이 맞장구를 친다. 결국, 그 ‘신사’가 화제의 중심이 되어서 갈보 장사를 한다고 흉들을 보기 시작한다. ‘신사’가 돌아온다. 그러자 모두 입을 다문다. 그러나 ‘신사’는 장사하기가 쉽지 않다고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리고는 옆의 여자가 제 남자와 정분이 나서 도망을 가는 바람에 다시 찾아오느라고 애를 먹었다면서,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으려고 하다가 히히히 웃고 만다. 승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이 때 ‘당꼬 바지’가 “무슨 실연이냐, 정말 사랑하다가 붙잡혀 왔으면 혀라도 깨물고 죽을 일이지 저렇게 쉽게 따라 오겠느냐?”고 반문한다. 여자의 얼굴이 핼쑥해진다. S역에 도착하자 한 청년이 다가와 옥주년이 달아났다고 하자 ‘신사’는 청년의 뺨을 친다. ‘신사’가 내리고 난 뒤 승차한 그 청년은 여자의 뺨을 몇 차례 때린다. ‘내’ 눈과 마주친 여자의 눈은 울음을 참고 있다. 여자는 변소로 간다. ‘나’는 그 여자가 정말로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러나 청년은 기차가 무척 빠르다고 하며 태연하다. 여자가 돌아온다. 그새 화장까지 고치고 분까지 발랐다. 그리고는 청년에게 “옥주년도 잡혔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여자가 무사히 돌아온 것이 반가울 뿐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말) / 공간(기차 안)

◎ 성격 : 심리적, 사실적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 : ‘나’의 눈에 비친 기차 안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드러냄.

◎ 구성

발단 - 열차가 출발함. 가래침 소동이 일어남.

전개 - 마주한 좌석의 여러 형의 인물 묘사

위기 - 술판이 벌어짐. 색시 장수 이야기와 붙잡힌 여인에 대한 관심

절정 - 신사가 내리고 대신 차에 오른 청년이 여인을 때림.

결말 -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모습을 되찾는 여인

◎ 제재 : 기차 안의 사람들

◎ 주제 : 하층민의 삶의 애환과 한 여인의 잡초 같은 강인한 생명력

◎ 출전 : <문장>(1941)

 

3. 등장 인물

◎ 나 : 기차 여행 중 여러 사람들이 엮어 내는 세태를 목격한다.

◎ 신사 : 인신 매매범. 경박하고 몰인정스럽다.

◎ 여인 : 달아났다 붙잡힌 창녀. 모욕을 당하면서도 웃음을 보이는 강인함과 질긴 성격의 소유자

◎ 당꼬 바지, 가죽 재킷, 촌 마누라 : 여러 승객들

 

4. 이해와 감상

작가 최명익은 정인택, 이상 등과 더불어 1930년대 심리주의 소설을 개척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화자인 ‘나’는 ‘나’의 자의식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관찰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현실은 ‘나’의 자의식적 판단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나’는 그 ‘여자’가 청년에게 당한 모욕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와서 ‘옥주년’이 잡혔으니 만나면 즐거울 것이라고 태연히 말한다. 뻔뻔스러우리만치 끈질긴 그 ‘여자’만의 현실 인식 방법이요 생명력이다. ‘나’는 껄껄 웃어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도 억제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몸과 정신을 잃고, 또는 더럽히면서도 생존하고 있는 당대 삶의 실상이 ‘나’의 주관적 해석과 관계없이 제시되는 것이다. “장삼이사”는 제목 그대로, 삼등 열차를 타고 가면서 화자인 ‘나’가 여러 세속인들을 그려낸 소설이다. ‘나’가 앉아 있는 주위에 중년 신사, 캡을 쓴 젊은이, 가죽 재킷, 당꼬 바지, 곰방대 영감, 촌 마누라,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등이 함께 있다. 한 젊은이의 실수로 중년 신사에게로 시선이 모아지고, 그의 옆자리에 있는 여자에게로도 관심이 집중되고, 드디어는 그 중년 신사가 북지에서 갈보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고, 달아났던 여인을 다시 찾아 지금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드러내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간에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화자인 ‘나’는 그들을 ‘당꼬 바지’, ‘곰방대 노인’ 등의 사물화된 이름으로 부를 뿐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심리 파악의 섬세함에 있다. ‘여자 장사’라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사람이 많은 기차 안에서 자신의 체험담을 넉살좋게 떠들어대는 장면, 도망치다 잡혀온 여자에 대한 속물적 호기심으로 그들(인신 매매범)의 타락한 언행에 주위 사람들이 동조해 가는 과정 등을 정치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천한 그 ‘여자’를 은근히 놀리면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정신적 횡포를 즐기는 주위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심한 역겨움을 느끼는데, 그 과정의 리얼리티는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대목 중의 하나이다. “장삼이사”는 구체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나’의 눈으로 우연히 서로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세계를 관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차 안에서 한 농촌 청년이 실수로 가래침을 뱉은 것이 큰 몸집에 잘 차려 입은 두꺼비 같은 신사의 구두에 떨어졌다. 그 신사는 깨끗한 휴지로 결벽스럽게 닦아낸다. 그는 여자 장사를 하는 인물로 도망쳤던 여자를 붙잡아 가는 길임이 그의 행동거지와 말 속에서 드러난다. 승객들은 그 여자에게 시선을 모으고 화제로 삼지만 곧 도중에서 내리고 또 새로 탄 사람들은 그 이전에 일어난 일은 모른 채 각자의 여행을 계속한다. 그녀가 화장실에 가서 오래 돌아오지 않자 ‘나’는 무슨 까닭인지 껄껄 웃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처럼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기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하면서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인연이 없이 단절되어 있는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방심 상태의 일인칭 화자의 시점과 기차 여행이라는 시간․공간적 배경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나의 기차 여행의 행선지나 목적은 소설 속에서 전혀 드러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결국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삶 속으로 되돌아가며, 나 또한 무관한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최명희(1947~1998)

 

소설가. 전북 전주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국어교사로 재직.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제1부)이 당선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음. 이후 1988~1995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 10권으로 묶어 완간. 대하 소설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음. 제11회 단재 문학상(1997), 제15회 여성동아대상(1998), 호암 예술상(1998) 등을 수상했다.

 

▶ 혼불

 

1. 줄거리

1930년대 말 전북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 마을에는 상민들이 사는 거멍굴이 있다. 이 마을의 상민들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간다. 매인 마을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 청암 부인인데, 그는 혼인한 지 일 년 만에 청상이 되어, 남편의 동생인 이병의의 장자 이기채를 양자로 맞았다. 이기채는 청암 부인을 극진히 모시건만, 이들의 가세는 점점 기울고 만다. 이기채는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강모이다. 그런데 종가의 장손으로 태어난 강모는 사촌 동생인 강실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강모는 허효원과 결혼을 했을지언정 강실이를 잊지 못한다. 결혼 후 허효원 역시 강모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 이들은 5년 간이나 합방을 하지 않는다. 이 때 강모는 징병을 피해 만주로 가게 되는 한편 청암 부인은 병세의 악화로 결국 죽고 만다. 사촌형 강태와 함께 만주에 도착한 강모는 그 곳에서 심진학 선생을 만나 참담한 고국의 현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심진학은 일본의 억압이 극에 달하더라도 그것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편 거멍굴의 상민들은 양반촌 사람들에게 억눌려 살아왔던 것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상민 춘복이는 이씨 문중의 강실이를 겁탈하고 이에 강실이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대하 소설

◎ 배경 : 시간적(1930~40년대) / 공간적(전라북도 남원 근처)

◎ 성격 : 민족적, 풍속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의의 : 17년 간에 걸쳐 완성된 대하 소설. 한국인의 생활사와 풍속사 등 민족적인 얼과 혼을 일깨워 줌.

◎ 주제 : 이씨 가문 삼대의 굴곡진 삶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

◎ 출전 : <혼불>(1996)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한 유서 깊은 가문 ‘매안 이씨’ 문중에서 무너져 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종부(宗婦)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 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만 17년 간에 걸쳐 완성된 대하 소설인 이 작품은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 나간 양반 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이 생생하게 묘사되었으며, 소설의 무대를 만주로 넓혀 그곳 조선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염원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또한 호남 지방의 혼례와 상례 의식, 정월 대보름 등의 전래 풍속을 세밀하게 그리고, 남원 지역의 방언을 풍부하게 구사하여 민속학․국어학․역사학․판소리 분야 학자들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일제 가혹한 수탈과 악랄한 지배가 더욱 극성을 떨던 일제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꺼진 혼불을 환하게 지펴 올리고 우리 한국인들이 면면이 가꾸어 온 세시 풍속, 관혼 상제, 음식, 노래 등 민속학․인류학적 기록들을 아름다운 모국어로 생생하게 복원해 내면서 대하 서사시적인 규모로 사건 중심이 아닌 이야기 중심의 소설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최서해(1901~1932)

 

소설가. 본명은 학송(鶴松). 함북 성진 출생. 그는 간도를 떠나 돌아다니며 곤궁한 생활을 하였고, 몇 차례나 결혼을 하는 등 순탄치 못한 생활을 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노동자로 살다가 춘원 이광수와 김동환에게 편지를 내었고, 김동환의 집과, 이광수의 소개로 간 봉선사에 기거하며 문학을 공부했다. 1924년 “토혈”이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으며, “고국”이 <조선문단>에 추천되어 활동에 돌입했다. 이듬해에는 방인근의 집에 기거하며 “탈출기”, “살려는 사람”, “기아와 살육”, “방황”, “보석 반지”, “기아”, “큰물 진 뒤”를 계속 발표하며 각광받는 작가로 부상하였다. 그는 하층민의 궁핍한 생활을 표현하면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항거를 행동화하여 보여 준다. 그러나 그의 이런 태도는 울분의 자연적 발로와 같은 것이므로, 과학적인 사회 인식과 분석이 결핍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체험을 통한 사회의 모순 제시와 그것을 타파하려는 열정에 찬 남성주의적 문체와 주제는 1920년대의 한 성과로 기록되고 남는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 외에, “폭군”, “쥐 죽은 뒤”, “낙백불우”, “서막”, “가난한 아내”, “전기”, “먼동이 틀 때”, “무명초” 등이 있다.

 

▶ 고국

 

1. 줄거리

큰 뜻을 품고 고국을 떠났던 ‘나운심’은 떠날 때의 마음과 달리 “나는 패자다.”라는 부끄러움을 안고 5년 만에 고국으로 되돌아온다.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회령(會寧) 땅을 밟은 그에게 고국은 낯선 세상으로 보인다. 여관비와 저녁 밥값마저 떨어진 ‘운심’은 점점 어두워 가는 거리를 홀로 걷는다. 그러다가 안경을 쓴 어떤 젊은이와 얼떨결에 회령 여관에 들어 밥상을 받는다. 그러나 밥을 먹으면서도 밥값을 치를 걱정에 가슴을 태운다. ‘운심’이 고국을 떠난 것은 3․1운동이 일어나던 해 봄이었다. 처음에 그는 서간도(西間島)의 청시허라는 마을로 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을 견디다 못해서 이주해 온 사람이거나, 죄를 짓고 도피해 온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도덕도 교육도 없었다. ‘운심’은 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또 아이들을 가르쳤으나 그 애들도 ‘운심’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운심’은 다시 방랑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유랑의 길은 괴로움의 연속일 뿐이었다. 이때 만주에는 독립단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어느 날, 그는 독립군에게 정탐꾼으로 몰려 체포된다. 감옥에 사흘을 갇혀 있다가 혐의가 풀려 석방되자 독립군에 들어간다. ‘운심’도 한동안은 기뻤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군인 생활도 염증이 났고 독립군마저 해산되어 배낭과 총을 버리고 방향 없는 표랑 끝에 지금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운심’이 회령 여관에 든 사흘째 되는 날, 그 여관엔 ‘도배장이 나운심’이라는 문패가 걸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3․1 운동 이후 5년) / 공간(간도 및 회령)

◎ 경향 : 체험을 바탕으로 한 빈궁 문학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간도에서 5년 만에 쓸쓸히 귀국한 나운심

전개 - 간도에서의 고난에 찬 삶

위기 - 간도를 떠나 유랑 길에 오름.

절정․결말 - 고국으로 되돌아옴. 도배장이가 됨.

◎ 주제 : 나라 잃은 젊은이의 패배 의식

◎ 출전 : <조선문단>(1924)

 

3. 등장 인물

◎ 나운심 : 주인공으로서 큰 뜻을 품고 간도(間島)로 갔다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 패배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다.

◎ 박돌 : 나운심을 잘 따르던 야학의 학생

 

4. 이해와 감상

최서해 문학의 특징은 빈궁 체험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간도로 건너가 유랑 생활을 하며 갖가지 밑바닥 삶을 몸소 체험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빈궁 체험은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고국(故國)”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고국”은 주인공 나운심이 3․1 운동 이후 막연히 큰 뜻을 품고 간도로 갔다가 정처 없는 유랑 생활 끝에 뚜렷한 전망도 없이 5년 만에 귀국한다는 내용이다. 그 동안 주인공은 간도에서 야학을 하기도 하고 독립군에도 가담하였으나, 아무 일도 성취하지 못한 패배자가 되어 귀국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러한 좌절을 통하여 나라 잃은 젊은이의 패배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우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운심이도 울었다. 애끓게 울었다. 어찌하여 울게 되었는지 운심이 자신도 의식치 못하였다. 한참 울다가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돌아서 보니 그 아이도 그저 운다.” 이런 울음은 암울한 주제와 어울려 그의 소설의 한 특징이 되고 있다. 또,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극적 결말 제시 수법이다. 간도에서의 표랑이 그러했듯이 귀국의 길도 뚜렷한 방향과 전망은 없다. 그러나 회령 여관에 든 며칠 뒤 도배장이로 둔갑했음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결말 제시 수법은 후일 그의 작품에 확산되어 발광, 살인, 방화 등 격렬성을 보이는 하나의 유형적 특징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특이한 점은 최서해의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주인공)들이 대부분 가난한 소작인 또는 도시 영세민이면서도 한결같이 선량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큰물 진 뒤”의 윤호와 나, “그믐밤”의 삼돌이, “탈출기”의 나, “전아사”의 나 등이 모두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이 그들의 선량함을 짓밟을 때 거기 순응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저항하는 인물들이다. “큰물 진 뒤”의 주인공 윤호가 홍수로 집과 자식을 잃은 뒤 가난을 견디다 못해 부자인 이 주사에게 돈을 탈취한다든가, “홍염”의 주인공 문 서방이 딸을 빼앗아간 중국인 지주를 살해한다든가, “박돌의 죽음”에서 ‘박돌이 어멈’이 가난하다고 자기 아들에게 약을 지어 주지 않는 김 초시를 물어뜯는 행위 등은 최서해 문학이 지닌 반항성을 잘 보여 주는 대목들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최서해의 작품에서 보게 되는 반항은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의 차원에서 머무르고 마는 것이지 그것을 결코 어떤 이데올로기의 구현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최서해의 작품에서 보게 되는 반항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거한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며 개인적인 감정의 폭발이라는 점이다. 최서해 문학의 특질로서 이 밖에도 간도 소재의 작품이 많다든가, 작품 결말이 살인․방화․발광 등 격렬성을 보이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간도 소재의 작품이 많은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가 체험의 작가이기 때문이며, 작품의 결말이 극적인 것은 최서해 소설의 인물들이 환경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피로 거기에 항쟁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참고> 최서해의 다른 작품들

□ 탈출기 : “탈출기”는 소설 구성면에서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사상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버려야 하는 논리적 필연성은 미흡하지만, 자아에 대한 인식 이전에 가족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음을 감안한다면, 현실의 논리는 그 나름대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신경향파> 소설이 살인, 방화 등에 의해서 결말이 처리되는 데 비한다면, ‘××단에 가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 즉, 조직적인 사회 운동에 뛰어드는 것으로 보아 좀더 현실적인 작가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소설이 아니었는데, 1925년 3월 <조선문단>에 투고한 것을 읽은 이광수의 권유에 따라 소설로 고쳐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체험이 곧 작품화된 것이다. 이 작품은 결함도 내포하고 있지만, 간도에서의 혹독한 체험이 정제되거나 여과되지 않은 채 독자의 가슴에 직접 와 부딪히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사실(事實, 체험)과 허구(虛構)의 양면을 갖춘 것이 소설이고, 그 중에서도 허구성이 많이 강조된다고 하지만, 체험의 밀도가 높은 작품을 만날 때 허구는 사실성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홍염 : “홍염”은 이러한 그의 문학적 특징이 집약된 작품으로, ‘빈곤 → 빚의 대가로 딸을 빼앗김 → 그로 인한 아내의 죽음 → 반항적 폭력으로서의 방화와 살인의 선택’이라는 도식(圖式)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대부분의 <신경향파> 문학이 그러하듯이 소설 “홍염”에서도 현실 대응 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방화와 살인이라고 하는 대응 방식은 극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바람직한 대안(代案)은 아니며, 자포 자기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는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기아와 살육

 

1. 줄거리

경수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세 살 난 딸 학실이를 데리고 사는 가장이다. 그러나 직업이 없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어렵다. 집세를 낼 방법이 없고, 아내는 풍(風)으로 앓고 있다. 이런 자신의 사정이 자기 탓인 것도 같고, 사회의 부조리 때문인 것도 같아서 화가 난다. 아내의 증세가 심해지자 의사를 부르지만 돈이 없으므로 막막하다. 의사는 그의 사정을 파악하고 돈은 나중에 갚아도 좋다며 계약서를 써 준다. 아내는 좀 나아졌지만, 약국에서 약을 짓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어머니가 밖에 나갔다가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서 돌아온다. 중국인 집의 개에게 물린 것이다. 그것을 본 아내는 다시 풍증이 일어나고, 학실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할머니와 엄마에게 매달린다. 삶의 괴로움이 너무 처절한 나머지 경수는 그런 고통에서 가족들을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식칼로 식구들을 찌른다.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찌르고 경찰서까지 들어가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2. 이해와 감상

1)

* 경수가 나뭇짐을 지고 집까지 오는 부분 - 남의 나무를 몰래 베어야 할 처지인 것을 볼 때 집안이 가난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다 괴로운 상황이다.

* 서북으로 쏠려오는 차디찬 바람은 그의 가슴을 창살같이 쏜다. - 창살이란 단어 : 가난으로 인한 시련

* 하늘은 담북 흐려서 사면은 어둑 충충하다. - 답답한 앞날, 배경을 통한 사건 암시

* ‘인제는 다 왔구나’ ~ 용기도 나지 않았다. - 집에 도착한 후,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 여러 해 동안 겪은 풍상 고초를 ~ 찌르르 하였다. - 불효에 대한 죄책감

 

2)

* 아내의 산후풍 - 가난한 살림에 부인까지 아파서 더욱 곤란하다(설상가상).

* 창문을 멍하니 보던 ~ 힘없이 본다. - 시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밉기도 할 것이다. 노인의 절망감

* 누덕 치마 하나도 ~ 지껄이기도 한다. - 철없는 학실이의 모습에서 처량함이 느껴진다. 파란 입술과 웃는 모습이 대비되어 가난의 처량함이 더욱 부각된다.

* 게트림 - 부자들의 생활을 부정적으로 비꼬는 표현

* 경수는 홧김에 ~ 우물거렸다. - 경수의 성격.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쩔 수 없이 털어놓지만 곧 후회한다.

* 그는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모두 ~ 다시 감으면서 돌아누웠다. - 결말에 대한 복선 부분이다.

 

3)

* 아내의 아픈 모습에 대한 경수의 반응 -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경수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 자신을 따라 타국에 왔다. - 공간적 배경이 조선 땅이 아니다.

* 다시 풍(風)이 이는 아내 - 병자에 대한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직유법, 의태법의 사용으로 묘사를 극대화하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그 아픔을 직접 느끼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 아내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정 - 원망은 없다. 오직 안타깝고 미안한 감정뿐이다. ‘죽 한술 못 먹이고 죽인다’는 말에 며느리에 대한 처절한 심정

* 경수는 벌떡 ~ 빛이 돈다. - 경수 심리 상태 : 눈에 보이는 게 없다.

 

4)

* 최 의사와 약국 주인의 태도 - 돈이 사람보다 우선인 비정한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

* 경수의 태도 - 무시당하는 걸 무릅쓰고 최 의사와 약국 주인을 찾아간 것을 볼 때 모든 자존심을 버릴 만큼 다급해짐.

* 경수의 심리 - 돈 때문에 무시당한 수치심과 아내에 대한 걱정이 뒤섞여 있다.

 

5)

* 어머니의 외출 -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암시

* 어머니가 얼른 오시지 않는 것이 퍽 조마조마하였다. - 어머니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

* 기름불이 희미해지는 것 - ‘불’은 여기서 생명의 지속성. 불이 희미해지는 것은 죽음이 다가옴.

* 경수의 환상 - ‘괴물’의 의미 : 아내를 괴롭히는 병. 돈만 아는 유산자들. 이 기괴한 현실

* ‘괴물들의 웃음’의 의미 - 자신의 무능에 대한 비웃음. 사회에서 외면당한 듯한 상대적 고독감

* 환상 속에 전 가족이 모두 나오는 것 - 가족 전체의 죽음에 대한 암시

* 어머니에 대한 불안 - 사고가 생길 것이라는 확신이 강화

* “경수 있나?” - 새로운 사건의 발발을 전하는 메신저

* 사람의 등에 업혀 돌아온 어머니

 

6)

* 개에게 물린 어머니

* 지나(중국)인의 개에게 물리고도 아무런 보상도 없음. - 이주민의 설움

* “이놈(地那人)의 땅에 사는 우리 불쌍하지.” - 일제 시대 중국으로 이주한 우리 동포의 삶. 공간적 배경의 구체화

* 어머니의 외출 동기 - 며느리에게 죽을 쑤어 먹이기 위해 좁쌀을 샀다.

* 학실이의 행동 - 비극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 더 상황을 비극적으로 느끼게 한다.

* 경수의 환상 - 경수의 심리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게 된다. 정신적 압박이 쌓이고 쌓여 결국 터져 버리는 것

* 가족들을 죽이고,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경수 - 경수는 가족을 죽인다. 그리고 세상을 부순답시고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여기서 ‘식칼’은 현실 도피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경찰서에서 경수 또한 총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 주제 : 일제 시대에 중국으로 이주한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

 

<참고> 1920년대 시대적 상황

□ 문화 정치의 내용 : 1920년대 일본의 문화 정치는 이전까지의 식민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다. 문화 정치는 3․1운동 이후 고양된 항일 독립 운동에 대응하여 종래의 노골적인 무력 지배를 완화하는 한편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이라는 구호를 내걸어 식민 통치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언론, 출판을 허용하고 한국의 지주, 자본가 계급의 일부를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 체제에 포섭하는 교묘한 분열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수탈을 강화하고자 한 것으로 식민지 지배의 목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일본은 1929년 8월 총독부 관제를 개편하여 조선 총독이 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는 유명 무실한 것으로 실제 역대 총독은 모두 현역 육군, 해군 대장 가운데 임명되었다. 그리고 헌병 경찰 제도를 폐지하고 보통 경찰 제도를 실시하며, 경찰이 헌병 경찰과 똑같은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인원과 예산을 약 3배 가량 증원하는 한편 형사, 밀정 등을 통해 민족 운동가를 항상 감시․탄압하였고 한국인의 모든 생활을 감시하였다.

□ 문화 정치의 본질 : 일제는 민족 운동을 약화시키고 식민지 지배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극비리에 친일 세력을 적극적으로 육성,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토착 자산가 가운데 예속적인 부류에 대해서는 일정한 지위를 보장하여 친일화하는 한편, 민족적인 세력에 대해서도 위협, 매수, 회유의 방법으로 포섭 공작을 전개하여 민족을 분열시켜 나갔다. 일본은 이를 위해 이념적으로 민족 개량주의를 유포시켜 독립 의식을 말살하고자 하였으며, 민족 운동을 타협적인 문화 운동, 자치 운동으로 유도하였다. 총독부는 일부 민족주의 세력을 회유하여 ‘민족성 개조’, ‘자치’ 등을 선전케 하였는데 이것은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독립을 먼 장래의 목표로 설정하면서 일본의 지배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민의 정치, 경제적 지위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서, 실질적으로는 독립의 포기를 강요하는 논리였다.

□ 문화 정치 시기의 수탈 정책 : 1920년대 문화 정치 아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산업 정책은 산미 증식 계획을 수행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일본의 공업화에 따른 식량의 부족을 한국에서의 산미 증식 계획을 통해 충당하기 위하여 ‘산업 개발’이란 명목 아래 한국을 일본의 식량, 원료 공급지로 만들어 일본 자본주의의 하부 구조로 편입시키기 위한 산업 정책의 일환으로 수립 강행된 것이었다. 1920년부터 15년 계획으로 추진된 산미 증식 계획은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증산량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으나, 미곡의 수탈만은 목표한 대로 수행함으로써 한국에서 식량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곡가가 크게 올라 농촌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쌀 부족을 메우기 위해 만주의 값싼 잡곡을 다량으로 수입하여 충당하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였으며, 또한 증산에 필요한 수리 조합비, 비료 대금, 곡물 운반비 등의 경비까지 우리 농민에게 모두 부담시킴으로써 농민의 몰락을 유도하였다. 이 시기에 자작농과 자작 소작농의 비율이 점차 줄고 소작농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특히 세 번째 사항을 눈여겨보자. 산미 증식 계획으로 국민들(특히 농민들)은 특히 수난을 겪었다. 이 수난을 못 이겨 일본,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았다. 1926년부터 1931년까지 5년 간에 걸쳐 걸식자가 1만~16만 3천 명, 춘궁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국민이 29만 6천~104만 8천 명, 또한 겨우 이런 상황을 면한 극빈 영세민이 186만~420만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을 작품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중국이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중국, 일본 등지로 이주해 간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에 타향, 특히 외국에서의 우리 민족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눈 여겨 볼 만하다.

 

▶ 박돌(朴乭)의 죽음

 

1. 줄거리

박돌(朴乭)은 아비 없이 자란 불쌍한 자식이다. 그는 주인집에서 버린 고등어의 대가리를 주어다 먹고 탈이 나서 죽을 지경이 된다. 새벽이 가까워진 어둠 속에서 박돌의 어미가 동계사무소 앞을 허둥지둥 뛰어나와 정직 상점 골목 안으로 홱 돌아 김 초시 집 대문 앞에 선다. 그녀는 대문을 열려다가 문이 안으로 잠긴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문을 두드리며 황급한 소리로 문을 열어 달라고 고함을 친다. 성냥이 번뜩이더니 램프에 불이 붙고 사내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불빛에 번뜩하면서 문으로 여인이 선잠을 깬 하품소리를 지르면서 문을 열어 준다. 박돌의 어미가 아들이 아프다면서 초시 어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툇마루 아래에 서서 한숨을 쉬다가 주인 사내가 기침을 하면서 들어오라고 하자 안으로 들어간다. 몸집이 뚱뚱하고 얼굴에 기름이 번질번질한 의사는 자신이 아파서 왕진을 할 수 없다고 억지 기침을 한다. 박돌의 어미는 그렇다면 약이라도 몇 첩 지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의사는 일어서서 돌아선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 이상한 불빛이 섬뜩인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의사는 가슴이 끌끌해진다. 김 초시의 여편네는 돈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 약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박돌은 이를 갈고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으면서 몸을 비튼다. 박돌의 어미는 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애가 타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자식을 구할 방법이 없다. 박돌이 외마디소리를 치더니 도끼눈을 뜨면서 이를 간다. 뒷집에 사는 젊은 주인이 불쾌한 듯이 나타나서 왜 그러느냐며 쑥뜸이라도 떠보라고 한다. 박돌의 어미는 주인집에서 쑥을 얻어다가 아들에게 쑥뜸을 해 준다. 박돌의 호흡은 점점 미미해지다가 새벽녘이 되어 숨을 거둔다. 박돌이 죽자 그 어미는 박돌이 험한 가시밭 속으로 끌려가는 환영을 본다. 그녀는 진찰을 거부한 김 초시를 떠올리고 미친 듯이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김 초시의 가슴을 타고 앉아서 얼굴을 물어뜯어 피투성이를 만든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조선 이주민이 사는 간도)

◎ 성격 : 사회주의적, 계급 사상

◎ 경향 : 신경향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간도 이주민의 빈궁한 삶과 계급간의 갈등. 가난으로 인해 목숨까지 잃은 하층민의 처절한 삶과 저항 의식

◎ 출전 : <조선문단>(1925)

 

3. 등장 인물

◎ 박돌의 어미 : 궁핍한 생활에 찌들어 가난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지만, 적극적인 저항 의식을 표출한 하층민의 전형.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 현실에 눈뜨면서 그 구조적 모순과 가진 자들의 횡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인물이다. 가난한 자신에게 약을 지어 주지 않아서 자식을 죽게 만든 김 초시를 응징한다.

◎ 김 초시와 그의 부인 : 하층민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인간적이며 타산적인 태도를 취하는 부유층의 전형. 박돌이 죽어 간다는 이야기에도 행색이 초라하고 돈이 없어 보이자, 박돌의 어미를 약이 떨어졌다고 돌려보내고 그것을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최서해가 “조선문단사”에 재직하고 있던 192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그의 다른 작품인 “탈출기”와 마찬가지로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의 빈궁한 삶과, 그들이 이국의 땅인 간도로 이주하여 당하는 비극적인 삶을 소설화한 것이다. 그의 작품 경향은 이른바 신경향파라 불리는 것으로서, 1920년대 경향 소설들이 대체로 다루었던 주제인 기아(飢餓)와 살육(殺戮), 방화(放火) 등 현실의 처참한 생활상이 이 작품에도 사실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은 “기아와 살육”과 함께 이러한 당시 경향 문학의 전형적인 유형의 소설로 꼽힌다. “박돌의 죽음”이라는 제명(題名)에서 보여 주듯이 이 소설은 박돌의 죽음을 중심 구조로 하면서 고난에 찬 하층 생활인들의 저항과 반항을 주제로 한다. 이러한 처절한 삶에 밀착된 반항과 저항은 바로 가진 자들의 비도덕성과 비인간적 태도에 정면으로 반항하는, 당대 하층민들의 삶의 실제적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집에서 썩어서 버린 고등어를 주워 먹고 식중독에 걸려 어린 자식의 생명을 잃는 어버이의 비극적인 현실을 소설화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구체적으로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를 기피한 가진 자에 대해 응징을 한다. 이는 계급적 투쟁과 그 실천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탈출기(脫出記)

 

1. 줄거리

‘나(박군)’는 자신이 탈가(脫家)한 이유를 친구인 김 군에게 편지로 밝힌다. - 5년 전 ‘나’는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기름진 땅이 흔하다는 간도 땅으로 갔다. 그러나 빈 땅은 없었고, 중국인의 소작인 노릇을 하려 해도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한 현실이었다. 이틀을 굶은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거리에서 주운 귤껍질을 먹고 있는 광경을 보고 비통해 하는 한편, 더욱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생선 장사도 하였고, 두부 장사도 하였지만, 두부는 쉬기가 일쑤였고, 우리는 그 쉰 두부 물로 연명을 하였다. 갓난아이는 젖 달라고 울고, 겨울은 다가오고…. 두부 장사를 하려면 땔감이 있어야 했고, 그래서 나무를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 매맞기가 다반사였다. ‘나’는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들, 험악한 공기의 원류를 바로잡기 위해,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을 희생하면서 어떤 집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서간체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만주의 간도 지방)

◎ 경향 : 신경향파 문학

◎ 성격 : 사실적, 자전적, 고백적, 저항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 : 서간문 형식으로 사실성을 높이고, ‘나’의 성격 변화로 주제를 명시적(明示的)으로 제시함.

◎ 구성

발단 - 간도로 떠나게 된 이유

전개 - 간도에서의 비참한 생활(일정한 직업이 없음. 아내가 귤껍질을 주워 먹음)

절정 - 생활고의 극한 상황(두부 장사를 하며 겪는 고초)

결말 - 가난에 대한 분노를 사회 참여(단체 가입)로 전환시킴.

◎ 주제 : 절대 궁핍의 원인과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적 삶의 결의. 가난한 삶의 고발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 출전 : <조선문단>(1925)

 

3. 등장 인물

◎ 나(박군) : 주인공으로서 고향을 떠나 간도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탈가(脫家)한 가난한 지식인이다.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기 위해 어느 단체에 가입한다.

◎ 아내 : 순박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시골 여인으로 굶주림에 귤껍질을 주워 먹는다.

◎ 어머니 :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아들의 고통을 대신하기를 바라는 전형적 모성의 여인이다.

 

4. 이해와 감상

1925년 <조선문단>지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서 작자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 ‘나’는 왜 가정을 탈출했는가 하는 이유를 김 군에게 보내는 서간체(서한체)로 서술하였다. 5년 전에 ‘나’는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살기 좋다는 간도(間島) 땅으로 갔다. 농사를 지어 배불리 먹고 농민들을 가르쳐 이상촌을 건설하리라는 꿈을 안고서. 그러나 듣던 바와는 달리 노는 땅은 없었고 중국인에게 소작인 노릇을 하려 해도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한 현실이었다. 이틀 사흘 굶기가 일쑤였다. 홀몸도 아닌 아내가 귤껍질을 주워 다 먹는 것을 보고 일시나마 오해를 했던 나는 그 죄책감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고픔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세상이나 어머니나 아내를 위해 충실하게 살았다. 그런데도 세상은 충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나는 험악한 공기의 원류를 바로잡기 위해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을 희생하면서 어떤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우리가 소위 신경향파 문학이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은 ‘빈궁의 문학, 저항적 태도, 개인과 사회의 관계 인식’에 있다. 그러한 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또한 이 작품은 흔히 체험 문학으로 분류된다. 작가가 체험한 생활을 “탈출기”에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 '나'는 머슴살이, 나무 장수, 노동판 십장(什長)으로 전전하면서 삶의 어려움에 부딪힌다. 성실하고 근면하면 살 수 있겠지 하는 믿음조차도 거부당한 채 죽음까지 생각했던 주인공은 근면과 정직이 외면당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단에 가입하게 된다. 이 작품은 소설 구성 면에서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사상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버려야 하는 논리적 필연성은 미흡하지만, 자아에 대한 인식 이전에 가족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음을 감안한다면, 현실의 논리는 그 나름대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신경향파> 소설이 살인, 방화 등에 의해서 결말이 처리되는 데 비한다면, ‘××단에 가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 즉, 조직적인 사회 운동에 뛰어드는 것으로 보아 좀더 현실적인 작가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소설이 아니었는데, 1925년 3월 <조선문단>에 투고한 것을 읽은 이광수의 권유에 따라 소설로 고쳐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체험이 곧 작품화된 것이다. 이 작품은 결함도 내포하고 있지만, 간도에서의 혹독한 체험이 정제되거나 여과되지 않은 채 독자의 가슴에 직접 와 부딪히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사실(事實, 체험)과 허구(虛構)의 양면을 갖춘 것이 소설이고, 그 중에서도 허구성이 많이 강조된다고 하지만, 체험의 밀도가 높은 작품을 만날 때 허구는 사실성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자는 자신의 생활 체험에서 얻은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당시 유행하던 빈궁 문학(貧窮文學), 즉 신경향파(新傾向派)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군림하게 되었고 이 “탈출기”는 그 대표적 작품으로 되었다.

 

▶ 홍염(紅焰)

 

1. 줄거리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가난한 촌락 바이허 문 서방은 사위인가가 사는 달리소로 향한다. 그는 죽어 가는 아내가 인가에게 빼앗긴 딸 용례를 데려다 달라고 애원하던 것을 생각한다. 문 서방은 본래 경기도 어느 곳의 소작인이었다. 10여 년 소작인 생활에 지친 그는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딸 하나를 앞세우고 서간도 바이허로 이주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생활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중국인 지주인 인가의 소작인이 된 것이다. 겹친 흉년으로 인가에게 소작료를 납부하지 못하자, 인가는 그것을 빌미로 딸 용례를 욕심내었다. 결국, 빚을 못 갚는 대신 딸을 빼앗긴 문 서방 내외는 절망에 빠졌고, 화병으로 몸져누운 문 서방의 아내는 용례를 한번이라도 만나 보기를 원했다. 한겨울, 죽어 가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문 서방은 지금 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가는 용례를 보여 주지도 않는다. 지전(紙錢) 몇 장을 주며 야박하게 내쫓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의 앞에서 아내는 용례를 부르다가 피를 토하며 죽는다.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 세찬 바람과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가의 집 근처에 문 서방이 나타난다. 그는 달려드는 개들을 먹이로 달래 놓고 인가의 집 뒤에 쌓아 놓은 보릿짚 더미에 불을 지른다. 치솟아 오르는 홍염(紅焰)을 바라보며 문 서방은 쾌감에 젖는다. 이어 불붙은 집에서 뛰어나온 인가를 도끼로 찍어 죽이고, 문 서방은 딸을 품에 안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서간도 바이허의 조선인 이주민 마을)

◎ 성격 : 저항적, 민족주의적, 현실 고발적

◎ 경향 : 신경향파 경향

◎ 문체 : 속도감, 강렬한 인상을 주는 간결체, 직설적인 문체 → 주제와 결합하여 강렬한 인상을 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소작인 문 서방이 서간도로 이주하여 인가[殷哥]의 소작인이 됨.

전개․위기 - 소작료 체납으로 인가에게 딸 용례를 빼앗김. 이로 인하여 아내가 죽음.

절정․결말 - 문 서방은 인가의 집에 불을 지르고 인가를 죽임.

◎ 주제 : 간도 이민 생활의 곤궁과 지주에 대한 울분과 징계.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수난과 울분

◎ 출전 : <조선문단>(1927)

 

3. 등장 인물

◎ 문 서방 : 간도로 이주하여 중국인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으로 입체적 인물이다.

◎ 문 서방의 처 : 용례를 빼앗긴 후 화병으로 용례를 부르며 죽는다.

◎ 용례 : 문 서방의 외동딸. 빚으로 인가에게 빼앗긴다.

◎ 인가 : 문 서방의 사위. 중국인 지주. 탐욕스럽고 몰인정하고 악독하다.

 

4. 이해와 감상

1927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1920년대 겨울,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에 있는 바이허[白河]라는 곳을 중심 배경으로 중국인 지주(인가)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소작농의 울분과 저항을 그린 신경향파 소설이다. 빈곤과 민족적 대립의 문제가 중심 갈등 요인이 되고 있으며, 특히 결말의 방화와 살인은 신경향파 소설의 전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그의 문학적 특징이 집약된 작품으로, ‘빈곤 → 빚의 대가로 딸을 빼앗김 → 그로 인한 아내의 죽음 → 반항적 폭력으로서의 방화와 살인의 선택’이라는 도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대부분의 신경향파 문학이 그러하듯이 소설 “홍염”에서도 현실 대응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최서해는 만주 등지를 방랑하며 직업을 전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을 했다. 둘째, 소재를 궁핍한 것에서 찾았으며 구성은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으로 되어 있고, 결말이 살인, 방화로 끝나는 이른바 ‘신경향파’적인 요소가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다. 셋째, 결말의 살인, 방화는 신경향파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살인, 방화는 자포자기의 상태에서의 충동적 행위이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일제의 경제 수탈로 궁핍을 면치 못하던 1920년대 서간도 바이허를 배경으로 그 곳에 사는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억눌린 삶을 그리고 있다. 지주에게 딸을 빼앗기고 그 충격으로 아내마저 죽게 되자 방화와 살인으로 보복을 감행하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행동은 민족적 울분의 심도를 짐작하게 하는 한편으로 그 한의 극복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극적인 줄거리를 묘사하기보다는 서술에 의존해 이야기를 이끌어감으로써 ‘들려주는 이야기’의 효과만을 얻게 된다.

 

 

최인호(1945~)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58년 서울중학과 1961년 서울고교를 거쳐 1964년 연세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1972년에 졸업하였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입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1970년대 작가군의 선두 주자’ 라 불리며 군부 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가 극을 이루던 1970년대 초 한국 문단에 소설 붐을 일으켰다. 최인호의 문학 세계는 1970년대에 진행된 산업화와 관련되어 본격 소설과 대중 소설이라는 양면성을 띤다. “미개인”(1971), “타인의 방”(1971), “처세술 개론”(1971), “무서운 복수”(1972), “돌의 초상”(1978), “깊고 푸른 밤”(1982) 등 단편 위주의 소설은, 우리 사회의 도시화 과정이 지닌 문제점을 예리하게 반영하면서 신선한 감수성과 경쾌한 문체를 통해 ‘1970년대적 감성의 혁명’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불새”, “적도의 꽃”,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은 도시적 감수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그의 작가적 성향을 높인 것으로 1970․80년대 최고의 대중 소설 작가인 동시에 ‘통속적 소비 문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등으로 당대의 사랑관과 사회관을 소설화해오던 그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후 장편 “잃어버린 왕국”, “왕도의 비밀”등의 역사 소설과 종교 소설 “길 없는 길” 등을 발표하여 문학적 영역을 넓혔으며, 1993년부터 가톨릭 <서울 주보>에 ‘말씀의 이삭’이라는 칼럼을 연재한다. 이밖에도 군부 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당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저서에 소설집 “타인의 방”(1973), “우리들의 시대”(1975), “내 마음의 풍차”(1975), “개미의 탑”(1977), “돌의 초상”(1978), “불새”(1980), “위대한 유산”(1982), “가면무도회”(1983), “밤의 침묵”(1985), “저 혼자 깊어 가는 강”(1987), “잃어버린 왕국”(1988), “길 없는 길”(1993), “왕도의 비밀”(1995), “사랑의 기쁨”(1997) 등이 있고, 수필집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1986)와 성서 묵상집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1995) 등이 있다. 1967년 단편 “2와 1/2”로 <사상계> 신인 문학상, “타인의 방”, “처세술 개론”으로 현대 문학상 신인상(1972),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 문학상(1982),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 영화제 각본상(1986)과 대종상 각본상(1986), “길 없는 길”로 불교 출판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가톨릭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깊고 푸른 밤

 

1. 줄거리

술과 마리화나 냄새가 지독한 어느 방안에서 ‘그’는 눈을 뜬다.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그’는 잠에 떨어진 준호를 깨워 차에 오른다. 한때 유명한 가수였던 준호와 한참 이름을 날리던 작가인 ‘그’는 우연한 만남 속에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대마초를 피웠다는 이유로 이 곳 미국 땅으로 흘러 들어온 준호와 자신도 알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망명의 길을 떠난 ‘그’는, 처음부터 준호에게 동료 의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그저 수치적인 감각만을 느낄 뿐이었다. 정신 없이 차를 몰아대면서 깊은 침묵에 잠겨 있던 준호는 아내가 보내 준 테이프를 튼다. 자동차가 쇠 난간에 충돌하여 멈추자 준호는 돌아가고 싶다며 흐느꼈다. 모든 것에서 동떨어진 ‘그’는 마리화나의 짙은 냄새 속에서 준호의 걱정을 뒤로한 채 해변으로 내려온다. 무릎을 꿇고 돌 위에 주저앉은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패배를 알게 되었고, 더불어 지금까지의 알 수 없던 ‘모든 것에 대한 분노’도 소멸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을 굴복시킨 모든 승리자에게 용서를 빌며,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1970년대 미국 로스앤젤리스 등지

◎ 주제 : 사회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자의식

 

3. 등장 인물

◎ 준호 : 가수.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에 옴.

◎ 그 : 막연한 분노 때문에 미국에 옴.

 

4. 이해와 감상

“깊고 푸른 밤”은 등장 인물의 패배감과 절망감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절망, 패배와 싸우고 있는 개인의 처절한 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이는 단순히 70년대라는 닫힌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삶의 절망과 패배 의식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리적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의식과 삶의 조건을 상징적으로 묘파한 것이다. 이는 작가 자신의 의식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즉 그것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끝없는 갈등과 치열한 싸움을 전개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서, 최인호 소설의 새로운 모습이라 하겠다. 따라서, “깊고 푸른 밤”은 우리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현실의 단면을 서술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규명하고자 한 소설이라고 하겠다.

 

▶ 별들의 고향

 

1. 줄거리

주인공 ‘나’는 대학 미술과 강사이며 독신이다. 간밤에 심하게 술을 마신 탓에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날카로운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경찰서에서 ‘나’는 3년 전 1년 간 동거했던 오경아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시체 인수를 위해 병원에 들렀으나 차마 시체를 볼 수가 없어서 그냥 나와 버렸다. 오경아는 간이역의 역부인 아버지와 양조장집 셋째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로서, 남동생과 더불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작고 예쁜 여자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녀는 학업을 포기한 채 취직을 했다. 알뜰한 직장 생활을 해 오던 그녀는 강영석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파 수술에 뒤이은 강영석의 변심과 어머니의 반대로 인하여 그녀는 버림을 받게 되었다. 이후 새로이 만준이라는 사내를 만나 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유달리 결벽증이 심한 만준에게 경아의 과거가 발각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나’가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술집에서였다. 늘상 술독에 파묻혀 지내던 ‘나’는 그 날도 혼자 마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당번 아가씨를 불렀고, 그때 나온 아가씨가 바로 경아였다. 그 후, 경아가 술집을 옮기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다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와 살면서 ‘나’는 그녀를 모델로 창작 의욕을 불태웠고 그녀는 신접살림처럼 집안을 꾸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를 피해 술집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되자, 그녀는 점점 게을러지고 미워져 갔다. 동거한 지 1년이 지난 후 어느 봄날 대학 친구인 혜정이와 만났을 때 ‘나’는 평소에 생각해 왔던 경아와의 헤어짐을 결심할 수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지 1년 후, 어느 술집에서 외모가 많이 변해 버린 경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날 밤 ‘나’는 경아의 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 날, 그녀는 한때 그녀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별나라의 별난 일이라면서, 어릴 때 자신을 보고 땅을 밟고 살지 않을 거라던 점장이의 말도 들려 주었다. 또다시 그로부터 1년 후 겨울, 경아는 술에 취한 채 심한 기침을 하며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아까 먹은 수면제 약 기운이 몸에 퍼지자 잠을 이기지 못하여 흰 눈 속에 파묻히고 만 것이다. 경아의 장례식은 정말 쓸쓸하였다. 그녀의 모든 것은 불길 속에서 타올라 한 줌의 재로 남았다. 그녀의 뼛가루를 한강에 뿌리면서 ‘나’는 그녀의 넋이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기원했다. 그녀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지, 그녀는 늘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을 부러워하였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서울

◎ 주제 : 산업 사회 속에서의 성(性)개방 의식과 인간성 탐구

 

3. 등장 인물

◎ 김문오 : 대학 미술과 시간 강사

◎ 오경아 : 술집 여급. 수면제 과용으로 동사(凍死)함.

 

 

4. 이해와 감상

“별들의 고향”은 <조선일보>에 연재된 신문 소설로서, 최인호의 두 번째 계열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간결한 문장, 감각적인 문체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이 작품 이후 그 아류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른바 소비 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여성의 개방적인 성(性)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감각적인 문체, 지적(知的)인 재치와 언어 구사로 인하여 대중적인 호흡을 지니고 있다. 그 후, 이 작품은 ‘대중 사회’와 ‘대중 문학'이라는 문제로 여러 방향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그의 소설 세계의 문학사적 의미를 제대로 평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삶의 상징적인 표현 수단으로서의 성(性)의 개방은 그것 자체만이 목적인 성(性)의 소비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사회의 수용 양상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러한 시각에서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검토가 진행되지 않고, 거기에 대한 성급한 도덕적 비난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성(性)의 개방을 삶의 한 상징적 의식으로 삼고 있는 대중 소설로서, 젊은 독자층의 취향에 맞는 작품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 지구인(地球人)

 

1. 줄거리

이종세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아내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뜨지만, 불안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때 초인종 소리가 울리며 전투복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이복형인 이종대에 대해 추궁을 한다. 결국 이종세는 형사들과 함께 인천으로 향한다. 이때 인천의 최정병 씨 댁에서는 그의 이복형인 이종대가 최씨의 아내 황은경과 아들 태양, 딸 큰별이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 중이었다. 이종대의 이복 동생인 이종세가 다가가 형을 설득하려 하지만 서로간의 이질감만 커진다. 대치 상황을 뒤로 한 채 종세는 서울로 향하면서 이종대에 대한 강한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다. 서울로 돌아온 이종세는 자신과 이복형 종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종대는 종세의 배 다른 형이었다. 종세가 떠올릴 수 있는 형에 대한 기억은 누가 냇물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오래 있는가 시합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에서 이종대는 얕은 꾀를 부려 항상 이겼다. 어렸을 때부터의 이러한 죄의식의 전도 현상은 이종대를 역전의 불량배로 자라게 했고, 그러한 생활 속에서 인간성 모멸의 상처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군에 입대한 이종대는 미군 부대에서 인간성 해체의 현실을 접하게 되었고, 양색시 영숙에 대한 사랑을 잔인한 학대로 표현했다. 급기야 미국 병사 마이클과의 싸움으로 그는 처음으로 살인의 쾌감을 맛본다. 제대 후, 이종대는 또다시 폐광의 노동자 등 밑바닥 인생을 계속 살다가 교도소에 가게 되지만, 치밀한 계획으로 교도소를 탈출하여 도피 행각을 하게 된다. 이종대는 그와 뜻이 맞는 문도석과 함께 점차 대담한 범행을 저지른다. 이종대는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아내에게는 모든 것을 숨긴 채, 범행은 점차 대담해지고 그 횟수를 더해 간다. 수제(手製) 카빈총을 휘두르는 그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행각으로 막다른 궁지에 몰린 이종대는 자신의 아들․딸과 아내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사회에 대한 온갖 불만을 다 토로하지 못한 채, 수발의 총성을 뒤로하고 동반 자살이라는 이름을 안고 죽어 간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배경 : 1970년대의 서울, 인천 등지

◎ 주제 : 피폐하고 잔인하고 극악한 현실 속에서 좌절되는 인간의 삶

 

3. 등장 인물

◎ 이종대 : 전쟁과 전후 사회 속에서 받은 내적 상처 때문에 점차 파멸되어 가는 인물

◎ 이종세 : 이종대의 이복 동생. 형과 마찬가지의 상처를 지니고 있으나 일반 사회 생활로 돌아오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지구인”은 실제 1971년 여름부터 3년 간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종대, 문도석의 삶을 오랜 기간 동안 작가가 추적하여 집필한 것으로 실제 상황에 근거를 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년기(6․25)와 청년기(월남전)를 보내며 받은 내적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주인공 이종대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비극적 현실과 고도화한 산업 사회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밑바닥 삶의 모습을 하나의 단면 속에서 보여 주려 하였다. 또한 이복 동생 이종세를 통해서 이종대라는 인간이 왜 흉악한 살인범이 되어야 했는가를 해명하면서 한 인간에 미치는 역사와 시대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한편, 인간 생명의 원초성 문제에까지 손을 댐으로써, 작가 최인호는 신에 의한 구원을 제시하고 신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는 장면을 은연중에 보여 준다. 즉, 오빠(문 중사)는 죽어서 그녀(문혜옥)에게 돌아오고, 이종세는 상처투성이인 육신과 정신을 가지고 돌아와 그녀에게 귀의한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지구인”에서는 작가의 놀라운 인간 탐색 능력으로 우리 사회의 파행적인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 타인의 방

 

1. 줄거리

‘그’는 출장을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르다가 이웃 사람들과 언쟁을 벌인다.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열쇠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실내는 어두웠다. 아내는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간다는 내용의 쪽지를 남긴 채 외출하고 없었다. 그는 심한 고독을 느낀다. 아내로부터 더운 음식으로 대접받기를 기대했지만 집 안에는 음식조차 못 먹게 되어 있었다. 신문을 보려 했으나 신문도 없었다. 시계는 일주일 전의 날짜로 죽어 있었다. 날짜를 맞추려다 시계를 내동댕이친다. 욕실에서 목욕을 한다. 몸을 정성 들여 닦는다. 그 후 음악을 들으며 소파에 길게 눕는다. 그러다가 화장대에 놓인 아내의 쪽지를 보다가 문득 아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원래 그는 내일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오늘 전보를 받았다고 써 놓았다. 아마 아내는 그가 출장 간 날부터 집을 비웠을 지도 모른다.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는 사납게 주위의 가구를 노려본다. 가구들이 일제히 움직이다가 도로 제 자리에 가라앉는다. 그는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물건들은 이미 어제의 물건들이 아니다. 그는 술을 마시고 꽁초를 찾아 담배를 피운다. 안심이 되지 않아 집 안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갑자기 책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방 안의 가구와 온갖 기물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는 도망가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다. 다음 다음날 오후, 한 여자가 아파트에 돌아온다. 여자는 ‘새로운 물건’이 하나 있음을 발견한다. 여자는 며칠 동안 ‘그 물건’을 돌보다가 이내 싫증이 나 방을 떠난다. 그녀는 전과 같은 내용의 메모를 화장대 위에 남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도시의 한 아파트)

◎ 특징 : 초현실주의적 기법 사용

◎ 주제 : 현대인의 소외 의식

 

◎ 구성

발단 -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니 아내가 없다.

전개 - 아내는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외출했다. ‘그’는 아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위기 - 집 안의 물건들이 살아 움직인다.

절정 - ‘그’는 다리가 경직되어 방에서 도망갈 수 없다.

결말 -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다시 외출한다.

 

3. 등장 인물

◎ 그 : 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삶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 아내 : ‘그’의 아내.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쪽지를 남기고 외출한다.

 

4. 이해와 감상

1971년 <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단편 소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아내가 거짓 쪽지를 남겨 놓고 집은 비운 데서 오는 소외감을 그린 작품. 따라서, 소설 “타인의 방”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고립감을 맛보는 현대인의 의식 일반에 대한 풍유(allegory)로 읽힐 수 있다. 최인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3년에 “벽 구멍으로”라는 단편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되고부터 창작에 전념한다. 그 후 1966년에 “견습 기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식 작가로 등단한다. 그는 1972년 9월부터 <조선일보>에 1년 동안 “별들의 고향”을 연재했는데, 이 작품에서 빼어난 문장과 감각적 언어로 현대 산업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어 70년대 우리 소설 문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있다. “타인의 방”은 현대인의 소외 의식을 표현한 초현실주의적 기법의 작품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의 방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고독해 한다. 마침내는 주인공의 불안 심리가 자신의 방 내부의 모든 사물들에 투영되어 사물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은 이제 어제의 사물이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것일 뿐이다. 즉, ‘타인의 방’인 것이다. 그는 환경에 대하여 주인이 되지 못하는, 따라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비애를 느낀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의 아내는 ‘새로운 물건’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낯선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집안의 존재들은 그저 ‘물건’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주인공과 가구 집기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아내와의 관계도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낯선 관계, 불안한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으로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일 것이다.

최인훈(1936~)

 

소설가. 함북 회령 출생. 서울대 법과 대학을 중퇴한 후, 1955년 시 “수정”이 <새벽>에, 1959년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그는 분단 문제를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실존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한때 희곡으로 방향을 돌리는 듯했으나 “화두(話頭)”를 통해 다시 복귀하면서 역사와 현실 문제에 대한 접근을 재개하고 있다. 주요 소설로는 “광장”, “구운몽”, “열하일기”, “회색인”, “태풍”, “달과 소년병”, “총독의 소리”, “웃음소리”, “우상의 집”, “가면고” 등이 있으며, 희곡으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등이 있다.

 

▶ 광장(廣場)

 

1. 줄거리

주인공 이명준은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였다. 서울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 이형도가 당신의 이념에 따라 월북하자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변 선생의 후의로 더부살이를 한다. 대학의 철학과에 다니면서 그는 변 선생의 아들인 태식과 가까이 지내면서 현실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지내지만 현실에 대하여 깊은 환멸을 느낀다.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앉아 현실을 관념적으로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월북한 남로당원 아버지로 인해 명준은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게 되고,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뜬 그에게 비친 남한의 현실은 타락하고, 부조리하며,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윤애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이 관념과 현실의 간격을 없애려 노력하나 실패하고 번민과 환멸 속에 인천에서 배를 얻어 타고 월북하고 만다. 그러나 그가 찾아 월북한 북한도 만족한 곳은 아니었다. 이상적인 혁명가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재혼하여 부르주아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북한은 혁명은 간데 없고 혁명의 자취만 있는 곳이었다. 즉, 이데올로기와 허위에 가득 찬 곳이었다. 공개적인 광장만 있을 뿐, 개성적인 삶은 없는 곳이었다. 북한에서 그는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그가 작성한 기사가 당 간부들에게 핀잔을 듣자, 기자 생활을 버리고 노동판에 뛰어들어 작업한다. 그러던 중 실족으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위문 온 무용수 은혜와 만나 새로운 사랑을 누리게 된다. 북한 사회에서 못 느끼는 삶에 대한 애착을 은혜를 통해 느끼려는 듯 명준은 은혜에게 매우 집착한다. 은혜의 모스크바 유학으로 명준은 은혜와 떨어지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생하고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 명준은 그곳에서 친구인 태식과 그의 아내가 된 옛 여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점령군 장교로서 그는 간첩 혐의로 잡혀온 태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윤애를 겁탈하려고 하나, 하지 못하고 둘을 탈출시킨다. 그리고는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 배치 받아 가게 된다. 거기서 명준은 뜻밖에 간호병으로 자원 참전한 은혜를 다시 만나 동굴 속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재회 속에 명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명준에게 말하고 헤어져 가던 중 그녀는 전사하고 만다. 결국 밀리는 전투 속에서 포로가 된 명준은 포로 교환이 있을 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가 본 두 사회는 모두 환멸만이 있으며, 보람 있는 삶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갈매기를 은혜와 딸의 환영으로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중편) 소설

◎ 배경 : 시간(해방 이후 6․25 전쟁 종전 사이) / 공간(남․북한)

◎ 성격 : 관념적, 철학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전체적으로 회상 형식, 철학, 사회학 용어의 빈번한 사용. 부분적으로 의식의 흐름 수법 사용

◎ 구성 : 복합 구성, 분석적 구성

발단 -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고초를 겪다가 월북

전개 - 북쪽 사회의 부자유와 이념의 허상에 환멸을 느낌.

위기 - 인민군으로 종군하다가 포로가 됨.

절정 - 포로 석방시 제3국을 선택

결말 - 타고르 호에서 바다로 투신

◎ 주제 : 이념 대립의 부정과 사랑을 통한 구원. 분단 이데올로기 속의 바람직한 삶과 사회의 추구. 분단 이데올로기 속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미 추구

◎ 출전 : <새벽>(1960). 이후 개작 과정을 많이 거쳤기 때문에 판본에 따라 내용상, 문체상 차이가 있음.

 

 

3. 등장 인물

◎ 이명준 : 철학도. 진정한 광장을 찾아 월북, 남하, 전쟁 중에 포로가 되었으나 중립국을 선택함. 배 위에서 투신 자살

◎ 이형도 : 명준의 아버지. 월북한 혁명가. 이상적인 혁명가가 아닌 부정적 이미지를 보임.

◎ 윤애 : 남한에서의 명준의 애인. 명준의 월북 후 명준의 친구인 태식과 결혼

◎ 은혜 : 명준의 북에서의 애인. 발레리나. 북한군 간호 장교로 종군, 명준의 아이를 배고 낙동강 전투에서 폭사함.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전쟁에 대해 다소 거리를 두고 전쟁과 분단의 의미를 냉정하게 점검한 것으로 남과 북을 오가면서 진실한 삶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을 기울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역사와 민족의 문제 그리고 진정한 인간적 삶의 방향 등에 대한 문학적 모색을 보여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회상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최인훈 소설의 특색인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작가는 북쪽의 사회 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 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한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남과 북 어느 쪽도 진정한 인간의 삶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자살을 통해 이념 선택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음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완강하게 고정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의 기본 구도는 간단하다. 아버지를 북에 두고 남한에서 살아가는 지식인 청년이 서 있어야 할 광장을 찾아 방황하는데, 남한에서 북한으로 다시 중립국으로 가려고 하지만 그가 도달한 곳은 죽음이었다. 결국 역사적 격동기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는 남한 사회나 북한 사회의 어느 것도 믿지 않았다. 남한 사회에 대한 명준의 비판은 고고학자 정 선생을 만나서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라고 하였고, 북한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가 그의 아버지를 만나서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나라입니까? 제가 남조선을 탈출한 건 이런 사회로 오려던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두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가 찾고자 한 것을 찾지 못하는 상실감의 표현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두 가지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남북 분단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본격적인 장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4․19 때문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4․19에 의해 남북 분단을 정면으로 다룰 수 없다는 금기가 깨졌다는 것이다. 작자는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제3의 중립국을 택한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패배이며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망명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민족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이 남북한을 단순히 양자택일적인 것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둘째, 이 작품이 남․북한의 문제를 밀실과 광장이라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문제와 연결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기의 고유의 밀실이 필요하면서, 동시에 타인과 교섭하면서 공동체적 삶을 살 광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진정한 시민적 광장에 대한 진실한 추구보다는 자신의 관념적이고 폐쇄된 밀실에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참고> “광장”의 배경

이 작품은 중립국으로 가는 배 타고르 호에서 주인공 명준이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적인 배경은 우리 민족의 혼란기에 속하는 광복으로부터 종전(終戰)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주인공은 남한과 북한을 오가고 있다. 남한의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 북한의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부자유(不自由)를 보여 줌으로써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비전이 제시되었다.

□ 실제의 시간과 공간 : 타고르 호 배 위에서의 이틀

□ 회상의 시간과 공간 : 우리 민족의 혼란기인 광복으로부터 6․25 종전에 이르는 시기의 남한과 북한(주로 서울과 평양)

 

<참고> 작품 속의 인물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명준과 북에 있는 혁명가인 명준의 아버지, 남쪽의 윤애와 북쪽의 은혜라는 두 여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명준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되는 인물이다. 혁명가인 아버지의 삶은 명준에게 이상적이었으나 실제로 북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일상에 찌든 부정적 이미지로 드러난다. 은혜는 명준이 북으로 넘어간 후 명준이 북에서 만난 여인으로 명준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낙동강 전투의 와중에서 둘이 만나 사랑을 나누면서 은혜는 명준의 아이를 가졌음을 고백한다. 이 말은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명준이 배 위를 맴도는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고 은혜와 딸이라 느끼며 물 속으로 뛰어든 것으로 암시된다. 결국 은혜로 상징되는 사랑이 명준이 지닌 광장과 밀실에 대한 고뇌와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참고> ‘밀실’과 ‘광장’

이 작품은 남․북한의 문제를 ‘밀실’과 ‘광장’이라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서 밀실이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며, 광장이란 사회적 삶의 공간을 의미한다. 인간에겐 누구나 이러한 밀실과 광장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그 중 어느 하나가 제거될 때 인간은 파탄을 맞이한다. 이 작품에서 명준은 철학도로서의 밀실에서 현실적인 이유로 광장을 찾아와 월북하고 광장에서 절망을 한 후 은혜와의 밀실을 기도한다. 다시 전쟁이라는 광장을 거쳐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광장 속의 밀실인 중립국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준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그가 바라는 진정한 광장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선택한 제3의 중립국도 결국 현실 도피이자 삶의 포기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주인공은 진정한 시민적 광장에 너무 기울어져 있음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것은 결말에서 ‘은혜’로 상징되는 사랑이 주인공 이명준의 광장과 밀실에 대한 고뇌와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확인이 된다. 결국 주인공 이명준은 민족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이 남․북한을 양자 택일식(兩者擇一式)으로만 인식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광장을 만들어 가겠다는 적극적인 창조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희생자라고 하겠다.

 

▶ 웃음소리

 

1. 줄거리

그녀는 ‘바 하바나’ 종업원으로 자기가 근무했던 마담에게서 밀린 돈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순정을 바쳤던 ‘검은 안경을 쓴 해사한 눈자위의 그’와 헤어진다. 이튿날, 그녀는 자살을 감행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P온천을 찾는다. 그 곳은 ‘그’와의 추억이 서린 장소이다. 기차 안에서 신사가 말을 건넨다. 그러자 같이 데리고 가서 죽어 버리고 싶은 생각을 한다. P온천의 여관에서 묵은 다음날, 그녀는 작정한 장소가 있는 산 속으로 간다. 한 쌍의 남녀가 잔디에 누워 있다. 여자의 짧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튿날, 같은 시간에 그 장소에 갔더니 오늘도 그 남녀는 벌써 와 있다. 그녀는 여자가 베고 있는 남자의 팔이 햇빛 속에서 환한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본다. 그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려 온다. 이틀이나 허비하고 꿈과 환각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당한다. 그녀는 빈터의 남녀가 자기 자신과 '그'처럼 언젠가 갈라지는 날을 그려본다. 다정스럽게 팔을 베고 있던 숲 속 빈터의 그 여자가 자기처럼 혼자 그 빈터를 찾게 될 어느 날인가를 생각한다. 그러자 그녀는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는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아침까지 한번도 깨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그녀는 점심 때가 되어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이번엔 그 자리를 차지한 남녀를 보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공지에는 십여 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거기에는 그 남녀의 주검이 거적때기에 덮여 있다. 이미 일주일 전에 죽은 시체였다. 그 후 일주일을 더 묵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옴을 느낀다. 아주 귀에 익고 사무치는 목소리,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웃음소리였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서울, P온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현재 공간(서울)을 떠남 → 체험(P온천) → 새 삶의 현장(서울)으로의 복귀

발단 - ‘그녀’는 ‘바 하바나’에서 밀린 월급을 받고 P온천으로 간다.

전개 - ‘그녀'가 자살을 결행할 공터에 웬 남녀가 누워 있다.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위기 - 자기가 순정을 바쳤던 ‘그’와 정답게 누워 있는 환상에 빠지는 ‘그녀’

절정 - 다음 날 다시 그 곳에 가보니 그 남녀는 죽은 지 오래인 시체였다.

결말 - ‘그녀’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온다.

◎ 주제 : 충격적인 두 남녀의 체험을 통한 새롭게 시작하는 성숙한 삶

 

3. 등장 인물

◎ 그녀 : 익명의 주인공으로 바의 여급이다.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 실연(失戀)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외지(外地)의 환상적 체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의 골격만 제시하면 이러하다. 사랑에 실패한 한 여자가 자살을 결심하고 P온천의 숲 속에 간다. 거기서 한 쌍의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다정스러워 보였던 연인은 이미 일주일 전에 죽은 시체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돌아온다.

실연은 그녀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그 감정은 자살의 결행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자살의 장소로 ‘그’와의 추억이 어려 있는 숲 속을 택했다는 점이다. 비록 ‘그’가 미움의 대상이지만 옛 사랑의 잔상(殘像)을 맛보고자 함일까. 또 하나, 멀리 누워 있는 숲 속의 연인 가운데 남자의 모습이 옛날의 ‘그’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금빛으로 다가온다.

떠나간 ‘그’에 대한 동일시 현상, 보상 심리임이 분명하다. 그녀는 다음날 숲 속의 그 연인을 만나러, 아니 사실은 ‘아름다운 금빛’으로 빛나던 ‘그’를 만나러 그 곳에 다시 간다. 여인의 웃음소리가 자신의 실연의 비애를 비웃듯 들려 온다.

그러나 세 번째 되는 날, 그 아름다웠던 연인은 놀랍게도 일주일 전에 죽은 시체였음이 밝혀진다. 그 때 또 들려오는 여인의 웃음소리, 그녀는 일주일을 더 머문 후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다시 차창 밖에 신기루처럼 펼쳐진 사막의 한가운데, 사보텐 뒤에 또 다른 연인이 보이고, 또 어떤 여자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제야 그녀를 깨닫는다. 그렇다, 내가 진정 원한 것은 ‘죽음(자살)’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이었음을, 그녀는 출발지부터 그 숲 속에 이르기까지, 또는 서울로 다시 올 때까지 사랑만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는 생활 속으로 복귀한다. 이렇게 현실과 환상을 교차하면서 한 여인의 감정 상황을 면밀하게 그려 보이고 있는 이 작품은 삶의 도정에서 겪을 수 있는 일상적 소재를 가지고 등장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을 피하고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통해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된 그녀의 방황은 숲 속의 체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했던 바는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절망과 회복의 대립이요, 떠남과 귀로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녀가 자살을 결심하고 찾아간 숲은 헤어진 ‘그’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체험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숲을 자살을 위한 장소로 택한 그녀의 행동은 영원으로 이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요, 다하지 못한 그와의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발견한 한 쌍의 연인들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그’와 자신을 발견하게 됨은 잃었던 사랑에 대한 보상 심리요,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에 대한 위안의 방책으로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그녀는 그 다음 날에도 ‘금빛으로 빛나는 팔을 가진 그’를 만나러 그 곳에 갔었고, 팔을 베고 누워 있던 여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구성 요소인 환상적 묘사는 언뜻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현실을 넘어선 초현실적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을 결심한 그녀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전과 같은 일상의 공간이 아닌 새로이 전도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일례로 그의 눈에 보이는 친숙했던 술집은 사막과 같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작품 속에 그려진 사막이나 선인장은 그녀의 의식 상태를 나타내는 이미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 총독(總督)의 소리

 

1. 줄거리

반도(半島) 내에 남아 있는 정체 불명의 유령 방송(조선 총독부 지하부 소속)을 통하여 반도 재점령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총독이 격려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이를 묵묵히 듣고 있는 청취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담화 내용인즉, 반도인(半島人)의 어리석음과 무기력한 면을 지적하면서 형제들에게 반도 재점령을 위해 좀더 자숙하고 힘을 내라는 것이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가상적 신식민지 현실

◎ 주제 : 신식민지적 상황의 가상을 통한 현실에 대한 각성

 

3. 등장 인물

◎ 총독 : 유령 방송을 통해 반도(半島)의 재점령을 노림. 가상의 인물

 

4. 이해와 감상

“총독의 소리”는 일종의 연작(連作)이다. 모두 네 편의 작품으로 이어져 있으며, 연작 형식에서 중시하는 연작성의 요건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서사 문학의 기본적 요소인 행위 구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이야기 형태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첫 부분부터 가상 인물인 총독의 연설이 시작되는데, 어떤 다른 형태적 변경 없이 끝까지 이 형식이 유지되어 나간다. 가상의 인물인 총독의 모습은 일련의 연설(담화) 내용 속에 감춰져 있을 뿐 표면으로 도출되지 않고 있다. 즉, 인물의 행위가 없는 담화 상황 자체만으로 작품의 내적인 구조를 지탱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성의 규범을 뛰어넘는 형태적 파격은 문학의 인식 방법 자체에 대한 대단한 충격이다. 작가 최인훈은 이 작품을 통해 두 가지 차원에서 기성 인습에 도전하고 있다. 그 하나는, 문학적 인습에 대한 도전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에 대한 도전이다. 문학적 인습에 대한 도전이란, 보편적인 사사 양식에서 벗어난 담화 양식을 통하여 새로운 소설 형식을 형성한 것이고, 정치 이데올로기의 허위성에 대한 도전이란, 당시 국내의 선거와 신식민지주의의 도래와 함께 매판성을 불러일으켰던 당시 한국의 정치 경제 문제들을 반대 입장에서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총독의 소리”의 문학적 성과를 정치적 효과로 집약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 일반화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희화하고 전복(顚覆)하고 폭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 이 작품에서 최인훈은 우리 시대의 언어가 아닌,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관점에 의한 살벌하고도 역겨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비극적 상황을 좀더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회색인(灰色人)

 

1. 줄거리

북에 어머니와 누이를 두고 단신으로 월남하여 가난하게 삶을 꾸려 가는 고학생 독고 준은 자신보다 먼저 월남한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혼자가 된다. 비가 내리는 어느 가을날 저녁에 독고 준의 하숙집으로 그의 친구인 김학이 찾아온다. 독고 준은 술을 마시며 학술 동인지 ‘갇힌 세대’에 들라는 김학과 한바탕 논란을 벌인다. 독고 준은 학을 보내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공상과 상상이 혼합된 여행을 떠난다. 그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되는 이 부분에서, 철조망 넘어 그의 집과 사과밭, 부서진 학교, 월남한 아버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지도원 선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자신 등등의 복잡하고 정신이 없는 상상의 여행 속에서, 그는 소외되었던 아니 지금까지도 소외되어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억지로 감싸 안은 채, 이 여사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시간(1958년 가을에서 1959년 여름 사이) / 공간(서울)

◎ 성격 : 관념적

◎ 표현 : ‘보여주기’보다는 ‘이야기하기’ 위주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현대인의 소외 의식과 내면 세계

◎ 출전 : <세대)(1963~1964)

 

3. 등장 인물

◎ 독고준(獨孤俊) : 소외감을 느끼며 그 속에서 몸부림치지만 결국 그러한 현실 속에 침몰해 가는 인물이다.

◎ 김학(金鶴) : 이상주의자. 독고 준이 누구의 방문을 열까 고민할 때,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 현호성(玄浩成) :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서, 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하고 남쪽의 여인과 야합하며, 공산당증은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고 권력의 중심부인 자유당과 야합하는 인물이다.

 

4. 이해와 감상

1963년부터 1년 간 연재된 이 소설은 최인훈의 소설 중에서 사건이 점차적으로 퇴조하고 에세이 스타일의 지적(知的) 독백이 강화되는 경향의 초기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통과 의례 규정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어떤 원시인 젊은이의 공방(空房)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가 자인했듯이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소설인 ‘총독의 소리’ 등과 같이 어느 정도 소설 형식 자체를 초월한 듯한 작품이다. 대체로 그의 작품은 경직화된 이데올로기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전후(戰後) 사회의 이원화된 논리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사고와 관념에 의해서 유리(遊離)되는 집단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그리고 있다. 시대 배경은 1950년대 말. 주인공 독고 준은 전쟁의 와중에 북의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온다. 삶의 뿌리를 뽑힌 탓에 현실은 낯설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그러면서 고통스런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사고의 추이를 주시하고 표현하는 관념 소설이라는 평가가 말해 주듯 이 작품에는 논리와 사색적인 진술이 많다. 이런 식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식민지 없는 민주주의는 크나큰 모험이다.”, “어떻게 해 볼래야 해 볼 수 없는 그런 환경이란 게 있어. 우리의 지금 상태가 그것 아냐?”, “이상한 현실이야. 우리 사회에는 절망이라는 활자는 있으나 절망은 없어.”, “언어와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골짜기를 뛰어넘는 길은 막혀 있었다.”, ‘나갈 길 없는 지평선’ 앞에 선 이들의 자화상이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세계에 갇혀 어찌할 바 모르는 젊은 세대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대학생에 지나지 않지만 작가는 이들의 눈과 입을 빌어 뒤엉킨 혼돈의 현실을 지적으로 분해하고 비판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운명의 굴레를 지성의 힘으로 이겨내려 한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 지식인의 전범을 처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1958년과 1959년 한국의 사회 상황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였다. 정치는 노쇠한 정치가를 축으로 끝없는 소모전을 되풀이하고 있었고, 전쟁의 부산물들은 사회 곳곳에 그대로 방치된 채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누구도 분연히 자기 언어로 말을 할 수 없었고, 누구도 자기 의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이러한 1950년대 후반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독고 준 개인의 욕망과 그 결핍의 자리바꿈으로 상징화했던 작가 최인훈의 의도는 명확했다. 모든 것이 부재한 시대에 개인의 욕망도 또한 부재할 수밖에 없으며, 끝없는 욕망의 자리바꿈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는 그 시대 지식인의 황폐한 정신 세계의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결국 아무런 대안이 없이 출구가 막혀 버린 미로의 시대에 사는 지식인들과 그 뒤에 숨어있는 최인훈은 거대하고 폭압적인 현실에 전면으로 대항하기보다는 역으로 그 현실에 냉소를 보냄으로써, 지루할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는 냉소의 크기만큼 암울한 현실의 어둠도 짙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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