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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07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 9 2024. 5. 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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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1942~)

 

소설가. 전북 정읍 출생. 1968년 <한국일보>에 “회색 면류관”이 당선되어 등단함. 현실의 부조리한 면을 고발하는 성격이 짙은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다. 분단 문제를 다룬 그의 작품은 이념의 갈등을 민족적 동질성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서정적 힘을 지니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꼬집는 작품에서는 회화적인 문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유년의 추억을 통해 역사의 아픔을 형상화한 일련의 작품에서는 어린 목격자의 눈을 통해 역사에 대한 비판과 전망의 지평을 획득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여러 측면을 재기 발랄한 상상력과 표현을 통해 다층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대표작으로 “장마”,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에미”, “완장” 등이 있다.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1. 줄거리

20평짜리 주택에 세 들어 사는 동안, 우리 부부는 가난한 이웃들이 보여 준 우리 ‘선생 댁’에 대한 동경과 지나친 관심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 몇 푼 안 되는 과자 부스러기로 가난한 애들에게 못된 일을 시키는 아들의 비뚤어진 행동이 무리하게 성남의 고급 주택가에 집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재정상의 무리를 다소나마 메워 볼 생각으로 방을 하나 세 놓게 되었는데, 권씨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것도 전세금 20만원 중 10만 원은 아예 내지도 않았고, 게다가 두 명의 자식 외에 뱃속에 또 한 명이 자라고 있었다. 출판사에 다니던 권씨는 집 장만을 해 볼 생각에 철거민 입주권을 얻어 광주 대단지에 20 평을 분양 받았으나, 땅 값, 세금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소요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권씨가 이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징역을 살다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살림에도 자신의 구두만은 소중하고 깨끗하게 닦는 버릇이 있다. 얼마 후 권씨 아내가 애를 순산하지 못해 수술을 받을 처지가 되었다. 권씨가 ‘나’에게 수술비용을 빌려 달라고 절박하게 부탁했으나 ‘나’는 그것을 거절한다. 그러나 뒤늦게 자신의 이중성을 느낀 ‘나’는 권씨 아내가 수술을 잘 받도록 해 주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권씨는 그 날 밤 ‘나’의 집에 강도로 침입했다. ‘나’는 그가 권씨임을 알아차렸고 되도록 그를 안심시키는 쪽으로 행동했으나 정체가 탄로 난 권씨는 “그 따위 이웃은 없다는 걸 난 똑똑히 봤어!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 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긴 채.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 공간(경기도 성남시)

◎ 성격 : 도시 빈민층의 시대적 현실을 고발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 :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교차되면서, 소외되고 병든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잔잔하게 표현됨.

◎ 구성

발단 - 권씨가 ‘나’의 집 문간방에 전세로 입주

전개 - 생활 능력이 부족한 전과자이면서도 구두에 대한 정성이 지극한 권씨

위기 - 아내 입원비를 빌리려는 권씨의 청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권씨 모르게 돕게 됨.

절정 - 권씨가 나의 집에 강도로 침입했다가 자존심만 상한 채 나감.

결말 -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기고 권씨가 행방 불명됨.

◎ 주제 : 산업 사회에서 소외된 변두리 인생의 어려운 삶.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자존심에 대한 문제

◎ 출전 : <창작과 비평>(1977)

 

3. 등장 인물

◎ 나(오 선생) : 셋방살이 끝에 어렵게 집을 마련하며 이 소설의 서술자 역할을 함.

◎ 권기용 : 도시 빈민 소요 사태의 주모자로 몰려 전과자가 됨.

◎ 아내 : 평범한 소시민의 가정 주부로 개인적임.

◎ 이 순경 :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랑을 보이는 인간성을 지님.

 

4. 이해와 감상

윤흥길의 작품 세계는 두 계열로 집약된다. 하나는, 어린 시절 6․25 전쟁의 와중에서의 체험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한 작품이며, 또 하나는 어른이 된 뒤에 관찰한 현실 사회의 모순을 풍자, 고발하는 작품이다. 전자의 예로 ‘장마’가 있고, 후자의 예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들 수 있다. 1977년대는 산업화 시대, 경제 입국의 시대라 불릴 만큼 한꺼번에 여러 방면의 변화를 드러냈던 시기이다. 그 여파로 비인간적, 비윤리적 몰가치 현상도 나타났고 이에 따라 소외되고 병든 변두리 인생의 길을 걷는 인간도 많아졌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전형이다. 오로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 하나만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권씨야말로 시대적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술자 ‘나’의 자기 반성의 태도이다. 20평 짜리 방에 세 들어 사는 동안 가난한 이웃들이 이른바 ‘선생 댁’인 자신에게 보여 준 지나친 선망과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안식처를 찾아 그들을 떠난 바 있다. 그러나 전세로 입주한 권씨와 같은 소외되고 가난한 인간에 대하여 연민 어린 관심 이외에는 보여 줄 게 없었던 ‘나’의 처지 -이것은 작가가 시대의 비극적 현실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방안을 탐색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오 선생’이라는 3인칭 서술자를 통하여 ‘권기용’이라는 가난한 서민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권씨는 경제적인 능력도 없고, 산업 사회에서는 쓸모 없는 자존심을 훈장처럼 번득이면서 좌절만 거듭하는 다소 희극적인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권씨를 통하여 현대 사회의 병증(病症)을 함축성 있게 암시한다. 작품의 인물 권씨는 작가 자신의 반영은 아니지만, 작가의 자기 성찰에 의하여 발견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권씨의 반짝거리는 구두는 그의 발 밑에 떨어진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는 열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고, 그 중 일곱 개의 구두를 닦아 놓고는 매일 하나씩 새로운 구두로 일 주일을 보내는 사람이다. 복장은 초라해도 구두만은 반짝이게 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옳은 직업이 없이 전전하지만, 그 내면에 들어박힌 자존심은 지키고자 한다. 그것이 반짝거리는 구두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자존 의식은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다. 강도 사건 이후, 권씨는 사라지고 아홉 켤레의 구두만 남게 되었다. 열 켤레 중에서 한 켤레의 구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구두만은 지키던 그가, 그야말로 가난의 극에까지 가서는 자존심을 잃지 않았을까? 현실은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물질적 결핍이다. 정신의 높이를 지향하는 자에게, 물질의 결핍으로 인해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것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이다. ‘나’는 결국 이 비극적 현실에서 아프게 살아가는 권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와 ‘권씨’는 모두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인은 양심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대중과의 정신적 거리를 얼마간 지닌 계층이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반도덕적 행위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식인은 흔히 ‘관조적 지성’이라 비판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즉 어떤 실상을 비교적 바르게 보고, 판단 또한 옳지만, 그 실상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는 태도를 지닌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권씨는 그의 과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그 역시도 하층민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지만, 인간의 처절한 본성을 본 뒤 시위에 뛰어 들어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비록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참담함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런 권씨에 비해 화자인 ‘나’는 같은 지식인이면서도 안락한 생활에 젖으려 하고, 관조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권씨의 태도가 화자보다 높은 위상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 장마

 

1. 줄거리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우리 집에 국군인 외삼촌의 전사 소식이 전해진다. 외할머니는 외삼촌의 전사 통지를 받고 빨갱이들은 다 죽어라고 저주하는 바람에 빨치산 삼촌을 생각한 할머니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나(동만) 역시 어떤 사람의 꼬임에 빠져 삼촌이 집에 왔었다는 말을 해서 아버지가 지서에 끌려가 한동안 고생하게 했던 사건으로 할머니의 분노를 산 상태였다. 한편 할머니는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탈 없이 돌아온다는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날이 가까워지면서 우리 집은 장마통에도 할머니의 성화 때문에 대단히 바빴다. 드디어 그 날 그러나 오리라던 삼촌은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오지 않는다. 대신 나타난 것은 커다란 구러이였고, 할머니는 기절한다. 그때 구렁이를 삼촌의 현신으로 생각한 외할머니가 잘 수습하여 무사히 내보낸다. 할머니는 구렁이를 잘 보내 준 외할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화해하고 세상을 떠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동란 중) / 공간(어느 농촌)

◎ 성격 :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함.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어조 : 어렸을 때의 체험을 회상하는 서술 방식. 회상적 어조에 의한 서정적 감미로움

◎ 표현 : 사투리 사용으로 사실성 확보

◎ 구성

발단 - 두 할머니의 아들이 각각 국군과 인민군 빨치산에 나감.

전개 - 외할머니의 아들이 전사하고부터 두 할머니의 갈등이 표면화됨.

위기 - 빨치산에 대한 외할머니의 저주로 갈등이 고조됨.

절정 - 아이들에게 쫓겨 집안에 들어온 구렁이를 외할머니가 극진히 대접해 돌려보냄.

결말 - 두 할머니가 화해함.

◎ 주제 : 이념 대립의 극한적 분열상과 정서적 일체감에 의한 극복. 전쟁의 와중에서 빚어진 한 가정의 비극과 그 극복

◎ 출전 : <문학과 지성>(1973)

 

3. 등장 인물

◎ 나 : 국민학교 3학년 때의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이 소설의 서술자

◎ 친할머니 : 아들(‘나’의 삼촌)이 인민군 빨치산으로 가 있는 처지. 무속 신앙에 철저함.

◎ 외할머니 : 아들이 국군 소위로 가 있다가 전사함. 꿈의 예언적 기능을 철저히 믿음.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6․25 동란 중에 일어난 한 집안의 일을 소재로 한 것이다. 서술자로 등장하는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 소년이고, 소설 속의 주인공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이다. 그러나 서술자인 ‘나’는 사용 어휘라든지 사태 판단의 내용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서술자가 성장한 뒤에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기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서술되고 있는 내용은 이중의 시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이중의 시각이 이 소설의 치열한 비극성을 객관화시키면서 감미로운 서정성까지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탁월한 상징적 장치는 ‘구렁이’이다. ‘저주받은 사람이 죽으면 구렁이가 된다.’는 우리나라 전래의 무속 신앙은 이 작품의 경우에는 단순한 미신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빨치산이 되어 죽은 아들의 어머니인 친할머니나, 국군으로 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외할머니의 경우, 우연히 나타난 그 구렁이는 결코 우연의 등장이 아닌 필연의 결과이며 미신이 아닌 확인이요 확증이다. 그것은 혼란한 역사의 돌팔매에 쫓기는 불행한 영혼이며 우리 역사가 치러야 했던 음산하고 저주스러운 동족 상잔의 비극을 극명하게 표상하는 구체적 실체이다. 따라서, 가련한 두 노파의 한 맺힌 설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구렁이는 비극의 실체로서 리얼리티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할머니의 머리카락 타는 냄새를 맡고서야 그 비극의 실체 - 구렁이가 사라졌다는 결말 처리는 인간의 숨결이 있어야 역사가 편안하게 숨쉴 수 있다는 작가 정신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 주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가장 결속되어야 할 가정조차 갈라놓고 만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바를 평범한 이 가정의 구성원들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서로 반목(反目)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아들이 선택한 이데올로기를 잘 알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반목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혈육의 정이다. 그들이 반목하는 것은 서로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지,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작용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 같은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 시도된 것은 민족 전통적 정서인, ‘구렁이’로 상징된 샤머니즘을 통해 그 동안의 반목을 극복하는 결말로,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 대립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의 하나로서 민족적 보편 정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분열된 민족이 합하려면 양쪽에서 공통적인 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공통적인 것 중의 하나가 민족적 보편 정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샤머니즘적인 것만이 민족적 보편 정서는 아니다. 또 다른 것으로 두 할머니가 다 같이 가지게 된 피해자로서의 한(恨)을 들 수 있다. 과정은 어떻든 아들을 잃었다는 점은 두 할머니가 공통되며, 이런 점에서 남북한은 같은 피해자인 셈이다.

 

 

이광수(1892~?)

 

소설가. 평북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수학 중 동경 2․8 독립 선언을 주도. <조선 청년 독립단 선언서> 기초. 상해 <독립신문> 편집 주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됨. <조선 문인 협회> 회장 역임. 1909년 <백금학보(白金學報)>에 “애(愛)”를 발표한 이후 1917년 장편 소설 “무정(無情)”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으며 신문학 초창기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광수는 최남선과 함께 언문일치의 신문학 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근대 문학의 여명을 이룩한 공헌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초기 한국 문단의 성립을 주도했다는 혁혁한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말기에 변절하여 친일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대중적인 성향을 띠면서도 계몽주의적․이상주의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데 지나친 계몽 사상으로 인해 설교적인 요소가 많다. 주요 작품으로는 “어린 희생”, “무정”,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마의태자”, “단종 애사”, “흙”, “유정”, “사랑” 등 다수가 있다.

 

▶ 개척자

 

1. 줄거리

화학자 김성재는 가산을 탕진하며 7년이나 실험 연구에 몰두하지만 실패만 거듭한다. 가산을 담보로 얻은 빚의 잔고마저 갚지 못해 채권자 함 사과에게 가산을 모두 차압당하기에 이른다. 이에 분통이 터진 아버지 김 참서는 화병으로 죽고 만다. 함 사과나 그의 법률 대리인 이 변호사는 둘 다 세교와 인연이 깊었지만 성재의 눈물 어린 호소를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인격을 모욕한다. 성재의 아내는 가난과 실의에 빠진 성재를 버리고 친정으로 가 버린다. 한편, 그의 가장 충실한 협조자인 누이 성순은 집안의 일방적인 요구로 애정도 없이 약혼한 변이라는 청년을 거부하고 역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결혼을 한 민이라는 화가와 참다운 애정에 빠져 결혼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전근대적 사회에 맞선 이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인습으로 얽힌 봉건적 가정과 사회의 압력은 견디기 힘든 상대였다. 성순은 유산을 마시고 민의 품에 안긴 채, "영원히 사랑하는 내 아내…."라는 민의 말을 들으며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2. 핵심 정리

◎ 배경 : 봉건 사상과 자유 연애관이 대립하는 근대화 시기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인습의 타파와 신사상의 고취

 

3. 등장 인물

◎ 성재 : 의욕에 불타는 젊은 화학도

◎ 성순 : 성재의 동생. 오빠를 하느님 같이 우러러 받들고 지극히 사랑하는 성격의 인물

◎ 민 : 자연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는 풍류적인 화가

 

4. 이해와 감상

<개척자>에서 이광수는 성순과 민을 희생적인 인물로 설정하였다. 그래서 이광수는 당시 사회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통하여 인습으로 얽힌 가부장적인 가정과 봉건적인 사회의 폐습을 타파하려고 시도하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청년의 민족적 사명을 강조함으로써 계몽성을 띤, 일종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하여 작자는 인습에 대한 개성의 반항과 해방과 신흥 지식 청년계급의 동경과 고민의 일단을 그려보려 하였다. 사랑의 자유와 신성성도 말해보려고 하였고, 당시 청년들이 미약하나마 조선에 신문화를 자기 손으로 건설하려는 열정도 표현해 보려 하고, 이런 것으로 청년의 방향을 암시해 보려는 분외의 야심까지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한 바, 이 작품은 계몽성을 띤 일종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소설이라 할 수 있다.

 

 

▶ 무명

 

1. 줄거리

나는 일방이라는 병감(病監)에서, C 경찰서에 같이 있었던 윤을 만난다. 그는 토지 불법 저당 사건의 공문서 사문서 위조용 도장을 파준 혐의로 수감된 사람이다. 그는 방화범 민을 향해서 습관적으로 악담을 늘어놓지만 민은 그것을 못 들은 체한다. 윤은 나를 아끼는 체하는데, 나의 사식과 자기의 죽을 바꾸어 먹자고 제의해서 결국에는 사식과 죽 모두를 차지하곤 한다. 나는 윤이 나의 사식을 먹고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보고 사식을 끊어 버린다. 그러나 윤이 아들이 보낸 삼 원으로 차입을 시작해서 나도 사식을 다시 시작하여 민에게 준다. 그렇지만 사식 문제로 윤과 민이 싸우게 되어 다시 사식을 끊어 버린다. 이번에는 사기범 정이 우리 방에 들어오고 윤과 정이 끊임없이 다툼을 벌인다. 정이 심 간병부에게 침을 발라서 만든 떡을 주었는데 윤이 그 사실을 폭로하자 정은 윤에게 원한을 갖는다. 정의 불쾌한 행동으로 윤과 나는 밤새 잠을 설친다. 우리는 장질부사 환자를 위해서 윗방으로 옮기게 되며 거기에서 공갈 취재범으로 들어온 강을 만난다. 점심에 멸치가 제공되자 정은 그것을 독차지해 버리고 수감자들은 분개하여 그를 골탕먹인다. 몸이 쇠약해진 민은 보석으로 풀려나고 폐병으로 판정된 윤은 다른 방으로 이감된다. 정은 자기의 무죄를 확신하면서 불경을 읽기 시작하고 강은 징역 2년의 판결을 받는다. 나와 정은 윤이 날로 쇠약해지고 있음을 본다. 윤은 건강을 회복할 가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석으로 풀려난다. 출옥 후에 나는 민과 윤이 죽고, 강은 목수가 되고, 정은 중병으로 공판장에 설 가망이 없다는 소식을 듣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서울의 한 병감)

◎ 경향 : 불교적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 시간적 흐름에 따라 서술한 단순 구성

◎ 주제 : 식민지 상황에서의 민족 자각과 자주성 회복 촉구

◎ 출전 : <문장>(1939)

 

3. 등장 인물

◎ 나 : 객관적인 관찰자요, 서술자로서 신분이나 죄목, 성격적인 변화와 뚜렷한 특성이 나타나지 않은 채 숨겨져 있으나 사상범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 윤, 민, 정, 강 :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지닌 인물들로 사소한 이익에 얽매이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낸다. 이들 죄수 환자들은 일제에 의해 수동적인 생존을 간신히 영위해 가는 우리 민족의 비참한 초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 윤 : 문서 위조 사기단에게 도장을 파 준 죄로 기소된 인물로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노인 죄수 민과 갈등 관계에 있다.

◎ 민 : 방화범. 나이가 많고 과묵한 인물이다.

◎ 정 : 설사병 환자인데 구변이 좋다. 간병부․간수들에게 아첨을 곧잘 하며 이중 인격자이다.

◎ 강 : 지방 신문의 기자로서, 양식 있는 체하나 남녀 추행 사건을 빌미로 금품을 갈취한 파렴치범이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9년 발표한 중편 소설로서 이광수 자신의 옥중 체험을 쓴 소설이다. 춘원은 이 작품을 쓰고 나서 “나는 비로소 소설다운 소설을 썼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40년 제1회 조선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사실상 이 작품은 춘원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문학적인 격조가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소설이다. ‘나’라는 주인공이 병감(病監)에서 같이 지내는 간병부(看病夫)인 ‘유’, ‘민’, ‘정’ 등의 대화와 행동을 지켜본 대로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유를 잃고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성격과 사고 방식이 상당히 정확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으며, 광명을 등진 이들 어두운 인간상을 통하여 작자의 소극적이기는 하나 인도주의적인 경향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소설은 한 감옥에 수감된 여러 죄수들의 성격과 삶의 태도 등을 대비시키면서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감옥은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들의 심리를 잘 그려낼 수 있는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공간적 배경에 놓인 작중 인물들을 ‘나’라는 등장 인물이 관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각각은 개별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삶의 태도에 있어서 서로 대비되는 하나의 유형으로 기능하고 있다. ‘나’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는 화자로서 성격적인 변화를 보이거나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과 윤은 대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을 과도하게 표출하지 않는 성격이다. 반면 윤은 공격적이고 탐욕스런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을 제1의 목표로 한다. 정도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로서 욕망이 강하고 공격적이다. 또한 강은 자존심이 강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이렇게 각각의 인물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성격을 통해서 이 작품을 형성하고 있다. 이 작품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불교적인 사상이다. 교활한 윤은 폐병으로 독방에 옮겨진 후에 불교에 귀의하며,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정도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면서 불경을 읽는다. 또한 아침에 감옥에 들려오는 목탁 소리는 조그마한 감옥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결국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은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들의 원초적인 욕망과 갈등인 바, 그것은 불교적인 사상이 가지고 있는 초월이나 무소유의 사상과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 이광수의 다른 작품들

□ 단종 애사(端宗哀史) :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역사 소설.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 1972년 삼중당에서 간행되었다.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그의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쫓기어 강원 영월에서 죽은 사실(史實)을 충실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던 당시,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의 직시와 충군(忠君)사상을 고양하며 실재 인물을 문학적으로 재현시키려 한 것이다. 단종의 탄생과 성삼문․신숙주에 대한 고명, 수양대군과 권람의 밀의(密議)의 고명편(顧命篇),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죽여 등극의 기반을 마련하는 실국편(失國篇), 정인지 등이 단종의 선위를 전하여 세조가 등극하고 사육신(死六臣)이 죽음으로 충의를 바치는 충의편, 노산군(魯山君)이 된 단종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하는 혈루편(血淚篇)의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종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은 세조의 입장에서 본 김동인(金東仁)의 <대수양(大首陽)>과 대조를 이룬다. 이광수도 이 작품에서 세조를 너무 악하게만 표현하였다 하여 <세조 대왕>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 무정(無情) :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소설. 1917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된 한국 최초의 현대 장편 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 경성학교의 영어교사 이형식은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 개인지도를 하다가 선형의 미모에 차차 연정을 품게 되는데,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자기를 귀여워했던 박 진사의 딸 영채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는다. 이 때 영채는 투옥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그 뒤 영채는 경성학교 배학감에게 순결을 빼앗기자 형식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한편, 자살을 기도하였던 영채는 동경에 유학중인 병욱을 만나 마음을 바꾸고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며, 약혼한 형식과 선형은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들은 같은 기차로 유학길을 떠나고 있었으며, 모두 학교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면 문명 사상의 보급에 힘쓸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는 근대 문명에 대한 동경, 신교육 사상, 자유 연애의 찬양 등이 주제를 이루어 당시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을 알리는 선구적인 의의를 지니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소년의 비애(悲哀) : 이광수(李光洙)의 단편 소설. 1917년 <청춘(靑春)>지 8호에 발표된 그의 본격적인 단편문학의 처녀작인 동시에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문호(文浩)는 여러 종매(從妹)들 가운데서도 사랑스럽고 얌전한 난수(蘭秀)를 가장 좋아한다. 16세가 되어 난수는 어느 부잣집 아들과 약혼했다. 신랑 되는 사람이 <논어(論語)>의 한 줄을 사흘에도 못 외는 모자라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문호는 슬퍼한다. 국한문(國漢文) 혼용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구성이나 표현이 아직도 미숙하고 그 주제도 선명하지 못하지만 신소설이 가진 줄거리 위주의 소설을 부정하고 권선징악적인 요소를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한 면에서 근대 소설의 길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원효대사(元曉大師) :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역사 소설. 1942년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이것은 작가가 가장 원숙했던 시기에 겪어야 했던 민족적 질곡과 친일 등의 갈등․시련을 안고 쓴 작품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원효가 세속적인 체험을 승화시켜 수도승의 고행을 하면서 구국(救國)까지 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원효는 도둑과 거지 떼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수난을 겪지만, 마침내 그들을 모두 신라군에 편입시켜 황산벌 싸움에 나가서 큰공을 세우게 한다. 또 원효는 자신에 대한 요석 공주와 아사가의 사랑을 불심(佛心)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고행에서 얻은 득도(得道)의 결과이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 심오한 불교관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우리 민족에게 소망을 불어넣은 소설이다.

□ 유정(有情) :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소설.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 작자의 정신주의 애정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이다. 바이칼 호반에서 최석(崔晳)은 ‘믿는 벗 N형’에게 자기와 남정임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고백적 수기를 쓴다. 정임은 독립 운동을 하다 옥사한 친구의 딸로서 그 친구의 유언에 따라 석이 서울에 데려다 기른 것이었다. 석의 부인은 친딸 순임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정임을 질투하게 되고 이는 정임에 대한 석의 동정심을 자아내 끝내 가정불화가 생긴다. 정임은 석이 교장으로 있는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간다. 정임은 도쿄에서 폐병으로 입원하게 되고, 찾아간 석에게 한 번만 안아 달라고 호소한다. 한편 석은 질투에 눈이 먼 부인의 오해와 학생들의 조소에 못 이겨 가정과 사회를 버리고 시베리아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정임과 순임은 석을 찾아 시베리아로 가지만 그땐 이미 석이 죽은 뒤였다. 정임은 그 곳에 혼자 남는다. 사제지간이고 부녀지간이며, 이성지간(異性之間)이기도 한 석과 정임의 미묘한 애정 관계를 종교적인 세계로 승화시킨 작자의 애정 윤리를 엿볼 수 있다.

□ 흙 :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소설. 1932년 4월에서 1933년 9월까지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연재되었다. 작자의 계몽주의 사상이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이다. 보성 전문 법과에 다니는 허숭(許崇)은 여름 방학 때 고향 살여울에 돌아가 야학을 열고 아낙네들을 가르치는데 유순이라는 처녀에게 마음이 끌린다. 졸업 후 변호사가 된 허숭은 장안의 갑부인 윤참판의 무남독녀 정선과 결혼하지만 유순을 못 잊는다. 그 무렵 살여울에서는 유순이 농업기수에게 뺨을 맞고 한갑이라는 청년이 그 농업 기수를 때려 뉜 사건이 일어났다. 허숭은 허영과 사치만 알고 행실마저 단정치 못한 정선이와 헤어져 한갑이를 변호하고 농촌 계몽에 헌신하고자 귀향을 결심한다. 그가 타고 가는 기차에 투신 자살을 기도한 정선은 다리가 절단된 뒤 과거를 뉘우치고 허숭과 함께 살여울로 내려간다. 그들은 유치원을 열고 농민 구제 사업에 전념하는데 허숭이 고리대금업자 정근의 모함으로 투옥되나 그가 나올 때까지 정선은 살여울을 지킨다.

 

▶ 무정

 

1. 줄거리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 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리쬐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 장로의 딸 선형이가 명년에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 교사로 초빙하여 오늘 오후 세 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다. 이야기의 서두는 경성 영어 학교 교사 이형식이 장안의 부호 김 장로의 고명딸인 선형의 영어 개인 지도를 부탁 받고 첫번 방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본래 형식은 동경 유학을 마친 당대 일류 지식인이나 일찍이 고아가 되어 역경을 겪은 데다 내성적 성격이라 여성 교제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뛰어난 미모인 선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날 밤 하숙집에 돌아와서 형식은 뜻밖의 손님인 박영채를 만나게 된다. 영채는 이형식이 어릴 때 고아일 적에 형식을 데려다 기르고 자식처럼 대하여 준 은사 박 진사의 딸인데 장차 형식의 아내가 될 사람으로 정혼했었다. 그러나 박 진사의 개화 운동이 세상 사람들의 개화 문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패하고 집안이 망하자 형식은 영채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7년 만에 해후하여 그 뒤 영채가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도우려 기생이 되고 형식을 사모하며 수절해 왔다는 전말을 듣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형식은 눈물을 흘리는 한편, 그녀가 기생이라는 혐오감과 미인이라는 유혹의 갈등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에 형식은 선형에 대한 연정과 은사의 딸이자 지난 날 아내로 암시되었던 영채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을 겪게 된다. 또, 기생인 영채를 구해 낼 돈 천 원이 없음을 한탄하는 사이에 영채는 지금까지 형식을 위해 지켜 오던 정조를 배 학감(명식),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인 김현수 일당에게 유린당하고 만다. 그리고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러 평양행 기차에 오른다. 그녀의 유서를 쥐고 눈물을 뿌리며 영채를 만나러 뒤따라 평양에 간 이형식은 소득 없이 돌아와서 오히려 학생들에게 기생을 따라갔다는 오해만 사고 이에 분격하여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기에 이른다. 이는 김현수가 거짓 소문을 낸 까닭이었다. 이런 형식에게 뜻밖에 김 장로 댁 선형과의 결혼 신청이 들어오고 형식은 이를 받아들여 약혼식을 치른 후에 함께 미국에 유학 갈 준비를 하게 된다. 한편, 자살 길에 오른 영채는 차안에서 소위 신여성인 병욱을 만나 그녀의 황주 집에 한 달 동안 머무는 동안 봉건적 사고 방식에서 근대적 합리주의로 정신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리고 병욱의 호의로 함께 동경 유학 길에 오르던 중, 기차 안에서 미국 유학을 떠나는 형식과 선형을 만나게 된다. 이리하여 형식은 새삼 애정과 의리간의 갈등에 빠지게 되고 선형과 영채 사이에는 삼각 관계의 불협화음이 생긴다. 기차는 삼랑진 수재 현장에 이르러 연착하게 되고 여기에서 네 젊은이는 고통을 당하는 수재민을 위해 자선 음악회 등 함께 봉사 활동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 간의 개인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그 대신 토론을 통해 허물어진 민족의 장래를 담당할 역군으로서 사명을 다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 인물들의 근황이 소개되고 작가의 계몽 의식이 서술된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도 아니요, 무정할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하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을 마치자.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계몽 소설

◎ 배경 : 시간(개화기~일제 강점 이후) / 공간(서울, 평양, 삼랑진 등)

◎ 경향 : 계몽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설교적

◎ 구성

발단 - 이형식과 박영채의 재회. 사랑을 고백하는 영채

전개 - 기생이 된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방황하는 형식의 심리적 갈등

위기 - 자살을 기도하는 영채. 그녀를 찾으려는 형식

절정 - 형식과 선형의 약혼. 영채, 병욱, 우선 등과 상봉. 수재민 구호. 유학을 떠남.

결말 - 등장 인물들의 근황

◎ 주제 : 민족적 현실의 자각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

◎ 출전 : <매일신보> (1917년)

 

3. 등장 인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신구 질서가 충돌하던 격변기의 조선 사회를 대변하는 다양한 인물들이다. 주인공 이형식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서 민족의 선지자로서 부각되고 있으며, 전형적인 구시대의 여성 박영채는 전통적인 윤리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김선형과 김병욱은 자유 연애 사상과 반봉건적 사고를 지닌 신여성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영채의 경우 소설의 전개와 더불어 구시대적 사고를 탈피하여 신여성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점에서 영채의 성격은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변화해 가는 ‘입체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 이형식 : 주인공. 개화기의 지식인. 개인과 민족,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 고뇌하는 인물

◎ 김선형 : 기독교 집안의 개화한 신여성

◎ 박영채 : 유교 교육을 받은 순종적인 여인

◎ 신우선 : 신문 기자.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

◎ 김병욱 : 반봉건적․진취적인 신여성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첫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로서 민족주의적 이상과 계몽주의적 정열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따라서 무정은 공리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러한 공리성과 목적성 앞에 모든 개인의 고민과 갈등은 의미를 잃고 만다. 그런 결과로 무정에는 우리 만 있고 나는 없다. 봉건 도덕 의식을 가진 박영채와 근대적 인간형인 이형식을 비롯한 여러 유형의 과도기적 인물을 설정하여 상호 갈등을 전개시킴으로써 전환기의 시대상과 가치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직유의 표현 기교와 화자의 격앙된 영탄이 드러나고 일부 문어체적인 문투와 극적인 필연성이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참신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도 부분적으로 존재한다. 이 소설은 신소설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한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연재 당시의 인기도 대단해서 청년 남녀를 중심으로 한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민족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근대 문명에 대한 동경, 신교육 사상, 자유 연애관과 신결혼관, 기독교적 신앙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무정”은 일체의 봉건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반항으로 새 시대의 계몽을 꾀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신소설과 비교하여 인물들의 내면 공간 확대를 통한 심리 묘사, 생생하고 개성적인 인물의 창조 등이 발전된 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는 큰 기둥은 민족주의 이념과 자유 연애 사상인데 이는 이광수의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드러나게 된다. 물론, 예술의 효용성 면에서는 사회적 공리성에 지나친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 결점으로 지적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문단 상황으로서는 분에 넘친 것이었다. 이 소설의 표면적인 주제는 근대 문명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이라는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선형과 영채를 사이에 둔 형식의 갈등에서 나타나는 삼각 관계는 단순한 애정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인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 사이의 대립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은 삼랑진 수해 사건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서 민족 계몽주의라는 이상을 통해 통합되고, 삼각 관계는 화해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이 민족 계몽주의가 민족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지식인 이광수의 관념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데 있다. 이처럼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실천 방도가 제시되지 못하고, 다만 유학을 통한 신지식 습득이라는 막연한 대안으로 작품이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무정”은 기본적으로 사제 관계를 축으로 인물이 맺어 진다. 박 진사와 형식, 형식과 선형, 그리고 삼랑진에서의 형식과 세 여자는 사제 관계로 볼 수 있다. 이런 구조는 교육을 통하여 민족을 살리려는 안창호의 준비론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무정의 대부분이 민족의 장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사사로운 사랑의 문제로 인한 갈등인 점은 준비론의 낭만적 적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이 소설이 지닌 근대 소설적 면모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의 획기적인 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고대 소설과 같은 문어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순국문체와 구어체의 언문 일치체, 묘사적인 표현 등을 구사함으로써 근대 소설의 이정표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진행 시제와 완료 시제의 결합을 통해 효과를 얻고 있으며, 간결한 문체 속에서 주제 의식을 밀도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다만 전지적 작가 시점의 사용에 따른 작가의 지나친 개입(영채의 생존을 알리는 중간 부분과 네 사람의 후일담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부분)은 이 작품이 고대 소설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과도기적 양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참고> “무정(無情)”의 구조

이 작품의 구조는 ‘욕구-좌절-성취’의 갈등 구조로 진행되면서 김병욱과 이형식에 의한 지향 의식을 박형채로 하여금 변이(變移-변하여 옮김) 성취케 하여 결말에 사회적 자아의 자각으로 내일에의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케 하였다.

여기에서 욕구는 지향적 욕구(이상주의)요, 좌절은 존재적 현실의 갈등이다. 이 작품에서 갈등 구조는 이형식이나 박영채를 비롯하여 김선형, 김병욱, 신우선 등을 기축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욕구에의 좌절이 애정의 삼각 관계를 통해 흥미 있게 진행되다가 결말에 와서 전이적(轉移的-다른 곳으로 옮김) 성취로 이루어지게 된다. 즉, 박영채와 김선형은 이형식을 사이에 두고 연적(戀敵-사랑의 적)의 관계에 놓여져 있었으나, 삼랑진 수해로 인한 수재민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계기로 민족 현실에 대한 각성과 민족적 일체감에 눈뜨면서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적 욕구의 성취를 위한 대립과 갈등이 이제는 사회적 지향 의식으로 이행되어 교육에 의한 민족적 이상주의 실현에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 사랑

 

1. 줄거리

석순옥은 교사이었으나 과거 문학가였던 안빈의 글에 어렸을 적부터 매료되어 간호부 시험을 보아 합격하여 지금 의사인 안빈의 곁에 있고자 인원과 함께 안빈의 병원에 찾아간다. 안빈의 부인 천옥남의 결정으로 간호부로 취직되어 안빈의 연구를 도와준다. 연구에 미결된 부분이 있어 자신을 따라다니는 시인 허영의 도움을 얻어 완성하게 하여준다. 석순옥이 연구를 위해 품에 안긴 것을 기회로 삼아 허영이 청혼을 하여 거절당하자 세상에 안빈과 순옥이 불륜의 관계라고 소문을 낸다. 친구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옥남은 남편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폐렴으로 인해 좋지 않은 몸이 더 나빠지고 이를 본 남편은 요양하러 가자고 하여 자식들과 함께 원산으로 간다. 안빈은 병원 때문에 경성으로 돌아와 순옥에게 부인의 간호를 부탁한다. 원산에서 순옥과 함께 있게 된 부인은 자식들이 순옥을 잘 따르고, 인간됨이 훌륭하자 자신이 병으로 죽으면 아이들과 안빈을 부탁한다고 한다. 순옥은 안빈은 존경하는 분이기에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은 잘 돌봐 주겠다고 약속한다.

부인의 병이 깊어 가자 순옥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과 병으로 인해 날카로워진 부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마음에도 없는 허영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허영에게 뜻을 보낸다. 부인이 죽게되자 세간에서는 순옥이 부인을 독살하였다는 등 나쁜 이야기가 돌고 허영은 결혼을 재촉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인원은 순옥이 안빈의 자식과 집 살림을 돌 볼 사람이 없어 허영과 결혼을 못함을 간파하고 자신이 순옥의 일을 대신 맡으며 허영과 결혼을 시킨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하였지만 순옥은 정성을 다해 결혼생활을 하나 남편이 사기꾼에게 걸려 파산 당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무능해진 남편의 허락을 얻어 안빈에게서 의사 수업을 받고 의사가 되어 가정 생활을 꾸려 나간다. 남편은 혈압이 높아 몸이 부실해 지고 순옥과의 결혼 전에 관계를 맺었던 여인과 아들이 나타난다. 순옥이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삼고 키우겠다고 하여 일 단락 되나 시어머니 한씨와 남편은 그 여인을 순옥이 없는 낮 시간에 끌어들이고 그 여인은 새 아이를 갖게 된다. 순옥이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오자 두 여인을 다 거느리려던 허영은 포기하고 이혼을 해 준다. 허영과 새 부인이 신혼여행을 갔다 오는 날 부인이 임신한 채 피곤한 여행을 하여 하열을 하자 순옥이가 달려와 치료해 준다. 그러나 죽게 되고 장례 날에 허영도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순옥은 안빈에게 받은 정신적 감화로 인해 허영 모자와 아들을 데리고 북간도에서 순옥은 딸 기림을 낳는다. 류마치스로 인해 아픈 시어머니와 중풍에 걸린 허영은 그 고생을 하면서 돌보아 주는 데도 기림이 허영의 자식이 아니라고 구박하여 순옥도 구박한다. 그러나 성스럽게 살아가는 순옥을 서양신부와 주민들은 성자로 인정한다. 그러나 북간도에 무서운 감기가 돌게 되고 선이가 죽고 이어 허영이 죽자 안씨는 순옥이 허영을 독살하였다고 발악하다 마저 죽고 만다. 순옥이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를 돌보다 병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인옥과 오빠의 도움으로 경성으로 와 안빈이 운영하는 북한이라는 요양소에 와 살게 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안빈이 60세가 되고 순옥이 40세가 넘는 중년이 되었을 때 안빈은 순옥, 인원, 영옥, 자신의 세 자녀, 기림, 자신의 일을 오십 넘는 처녀가 되도록 도와준 간호원 수선을 모이게 하고서 신세타령을 하자고 한다. 안빈의 자식들은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자신들을 키워준 인원, 순옥 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순옥은 사모하는 선생님 곁에서 거진 반평생 살아 온 것이 기쁘고 ‘저를 죽이고 인연 있는 자를 사랑하라’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살아 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수선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줄 모르고 살아왔다고 하자 안빈은 내가 육십 평생 도달하려 했던 것이 수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빈은 불쌍한 우리가 사랑과 기쁨 속에서 옳음을 위해 바쁘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속에 사랑과 옳음의 씨를 주신 분(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간에)과 조국님, 부모님, 남님(중생) 덕분이며 이 네 가지 큰 은혜를 잊지 않으면 큰 도이고 이에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이 사랑의 생활, 자비의 생활이라고 하면서 오늘 이것을 소개하려 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자신은 요양원에서 손을 떼고 수양을 하겠다고 하며 회진을 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경향 : 종교적 경향

◎ 주제 : 끝없이 높은 사랑을 찾아 향상하려는 노력

 

3. 등장 인물

◎ 안빈 : 작가였다가 의사가 된 사람으로 근엄하면서도 너그러운 성자 같은 사람

◎ 석순옥 : 교육받은 지식인이고 미모가 뛰어 났으며 어려서 안빈의 작품을 읽고 정신적으로 사랑하여 그의 사상에 힘입어어려움 속에서도 주위사람에게 헌신하며 사는 성스러운 여인

◎ 인원 : 순옥의 선배로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현실적으로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졌으나 후일 안빈에게 감화되어 처녀로 살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 생을 삶.

◎ 천옥남 : 안빈의 처로 남편을 위해 헌신하였고 평범한 여자와는 달리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여인으로 폐렴에 걸려 죽음.

◎ 허영 : 시인이자 순옥의 남편으로 마음이 여리나 이기적인 삶을 살았고 이로 인해 순옥에게 현실적인 면에서 많은 고통을 줌.

◎ 석영옥 : 순옥의 오빠로 의사이며 과학을 배운 사람답게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며 누이 순옥의 지원자로서 항상 도와줌.

◎ 한씨 : 허영의 어머니. 외아들 허영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으로 인해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하며 가치 판단의 기준이 현실적인 도움이 되면 양심에 상관없이 변하는 사람

 

4. 이해와 감상

1939년 발표.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왜경에 검거되어 반년 옥고를 치르고 병 보석으로 출감하여 병석에서 쓴 작품으로 신문연재가 되지 않은 최초의 작품이다. 작자의 이상주의적 애정관은 <유정>에서 체계화되어 <사랑>에서 완성된 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1933년의 <유정>에서의 기독교적인 애정관은 1939년의 <사랑>에서 불교적인 것으로 변모해 가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작자가 봉건주의에 반항하는 혁명아로 등장했던 그 최초에 있어서는 도덕적인 것과 함께 종교적인 것에 대해서도 비판과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상주의적인 사상이 점차 그의 정신적 사상적인 내용이 전체를 형성해 감에 따라 그는 오히려 종교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전기한 바와 같이 초기의 기독교적 이상관에서 후기의 불교적 이상관은 이 작품에서 확실한 것으로 구현되었다. <사랑>은 애정문제가 중심이 된 작품으로서 불교적인 인생관이나 이상이 직접적으로 취급될 성질이 아닌 요소를 지녔으면서도 거의 불교적인 인생관으로 일관되어 있다. 주인공 안빈은 그의 인간적인 성실성에 있어서는 <무정>의 주인공 형식이나 흙의 허숭과 같은 타입의 인물이지만 그의 철학적 사고 방식이나 인생관에 있어서는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한 불교적 교리에 의한 사상적 정신적 핵심을 요약해 지니고 있는 점으로 작자의 이상주의적 경향의 중요한 한 요소인 종교적인 이념이 기독교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불교적인 세계로 이행하여 그 기초를 형성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 된다. 이것은 실제로 작가가 후 일에 불교에 귀의했던 사실로도 그의 작품을 통한 정신관이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 소년의 비애

 

1. 줄거리

문호는 여러 누이와 종매들 가운데에서 난수를 가장 사랑한다. 난수는 사랑스럽고 얌전할 뿐 아니라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16세가 되자 난수는 어느 부잣집 아들과 약혼하였다. 신랑이 되는 사람은 논어(論語) 한 줄을 사흘 걸려서도 못 외우는,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문호는 못내 실망하여 슬퍼하였다. 문호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계부에게 난수의 약혼을 파하고 서울로 보내 공부시키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계부는 양반집 체면상 그럴 수 없다고 하고 난수 역시 부모의 뜻을 어길 수 없다고 하였다. 혼인날 난수는 문호의 어깨에 기대어 한없이 울었다. 난수가 혼인한 다음날 문호는 죽은 쇠눈깔 같은 난수 신랑의 눈을 보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환멸을 느낀다. 저런 사람이 난수의 배필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 뒤 3년만에 동경 유학에서 돌아온 문호 턱에는 수염이 까맣게 났고, 그의 어머니는 토실토실한 아이를 안고 와서 ‘너의 아들’이라고 한다. 문호는 ‘이제 소년의 천국은 지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1910년대 봉건적 인습에 지배되어 있는 사회 현실 속의 어느 양반집 가정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주제 : 유교적 인습에 따른 결혼 제도의 비판과 신교육의 필요성

 

3. 등장 인물

◎ 문호 : 문학을 사랑하며 예술지상주의를 이해하는 인물. 난수를 극진히 사랑하나 그녀의 인습적 결혼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 난수 : 문호를 사랑하나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여, 양반집 체면을 살리며 다른 사람에게 시집감.

◎ 문해 : 문학을 사회 교화 수단으로 생각하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소년의 비애>는 1917년 <청춘(靑春)>지에 발표된 그의 첫 단편소설로 계몽주의적 정신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종래의 유교적 인습에 따른 결혼 제도의 비판과 신교육의 필요성을 주제로 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이광수의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무렵의 춘원의 생활관이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점에서 그렇다.

 

▶ 어린 벗에게

 

1. 줄거리

멀리 상해(上海)에서 지독한 감기에 걸려 닷새 째 앓고 있던 나는 뜻밖에 이웃에 살고 있다는 중국인 처녀의 지극한 간호를 받고 완쾌된다. 병이 낫고 몸이 회복된 ‘나’는 발해를 건널 양으로 떠나기 전에 그동안 간호해 준 이웃 중국인 처녀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웃에는 그런 처녀가 살고 있지 않았다. 그후 나는 책상 서랍에서 ‘김일련’이라는 서명이 적힌 편지를 발견한다. ‘나’는 중국인 처녀가 바로 김일련임을 알게 되고 새삼스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김일련은 ‘나’가 일본에서 와세다 대학을 다닐 때 사귄 친구 김일홍의 누이였다. 당시 동경의 모(某) 여학교에 다니고 있던 그녀에게 ‘나’는 사랑을 호소하는 편지를 내었다가 고스란히 되돌려 받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실의에 차서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거절 이유는 이미 결혼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해삼위(海蔘威)로 가는 도중 배가 난파하였을 때, 같은 배에 탄 김일련을 구조하게 된다. 그녀는 그동안 어느 시인과 열렬한 사랑을 주고받다가 그 시인이 죽은 뒤에 백림(伯林)으로 유학을 가던 길에 조난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예상하지 못한 채 다만 차에 실려 정처 없이 갈 뿐이었다.

 

2. 이해와 감상

“어린 벗에게”는 1917년 <청춘>지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의 고독과 이제까지 비밀로 숨겨 두고 있었던 중국인 여자와의 애정문제를 친구에게 고백하는, 서간체 형식으로 춘원 이광수의 동경 유학 시절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문장에 있어서는 아직 신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 묘사적 문체와 애정 문제의 대담한 표출은 근대 소설적인 성격에 접근하고 있다.

 

▶ 유정

 

1. 줄거리

최석은 N형한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의 편지를 붙인다. 최석은 친구 남상호가 죽자 북경서 중국인 부인과 딸 정임을 데려다 자신의 집 근처에 집을 얻어 살게 하였다. 최석이 기미년에 옥에 들어가 삼년 후에 집에 돌아와 보니 상호의 부인은 죽고 딸 정임은 집에 와 있었다. 정임은 얼굴이나 몸이나 다 이뻤고 공부도 잘하여 부인과 딸에게 구박을 받고 살 수밖에 없었다. 최석의 부인과 딸은 불쌍하여 정임을 잘 대해주는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었고 특히 부인은 정임이가 16세가 되어 처녀티가 나자 질투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정임이 고등 보통 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여 일본 유학을 가게 되자 최석은 마음은 섭섭하였으나 집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부인이 폐병에 걸려 어린 아들을 에미에게서 떼어놓느라고 애를 써 마무리를 짓자 정임이 아프다는 편지를 받았다. 최석은 일방적으로 정임에게 가겠다고 선언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정임의 병을 어느 정도 돌보아 주고 돌아오니 부인은 정임이와 부정한 짓을 하고 온 것처럼 대하였다. 그 이유는 부인의 감시인이었던 정임의 방 동료가 보내준 일기 때문이었다. 부인이 증거로 보여 준 일기에는 최석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써 있었다. 최석이 부인에게 일기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감추다 딸 순임의 도움을 받게 되고 순임은 어머니가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며 남편인 자신을 비방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훈화를 할때 학생들이 웃어 질책을 하고 칠판을 보니 ‘에로 교장 최석, 에로 여자 고등 사범학교 남정임’ 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것은 K교무 주임의 교장자리를 노린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날 석간신문에 ‘에로 교장’이라는 문구가 수없이 난 기사가 실렸다. 최석이 교장자리를 내놓게 되자 딸 순임은 울었으나 부인은 말을 함부로 하며 남편을 계속 비방하였다. 최석은 유언장을 쓰고 재산을 분배하여 공증증서를 만들고 아는 이가 없는 만주로 떠나려다 정임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동경으로 갔다. 병원에 있는 정임을 보고 학교를 사직했고 여행길을 가려고 한다고 말을 하고 여관으로 와 편지를 남기려 하다 정임이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때 정임이가 찾아와 아버지와 하루만이라도 같이 살고 싶으니 데려가 달라고 하였다. 자신의 일기 때문에 아버지가 곤경에 처한 것을 슬퍼하는 정임에 대해 북받쳐 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며 내일 만나 보고 떠날 터이니 병원으로 가자고 돌려보내었다. 보내고 나니 정임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북받쳐, 억누를 수 없게 되었을 때 노크를 하며 정임이가 다시 찾아와 다시는 못 뵐 것 같아 왔다고 하였다.

정임에게 내가 준 재산으로 공부를 하고 힘있게 살라고 하며 보내려 할 때 한번만 안아 달라고 하여 사람의 마음을 억제하며 안아주자 아버지가 써 논 편지에서 죽으려고 하는 것을 알았던 정임은 돌아가시지 말고 살아 달라고 부탁하며 떠나갔다. 정임과의 영원한 이별을 생각하며 뒤척이다 다음날 여행을 떠났다. 잘 아는 아라사 장군에게 여행증을 얻어 북만주 광야를 지나다 석영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기차에서 뛰어내려 여관에 짐을 맡기고 아름다운 호수들을 지나치며 사막 속으로 계속 걸어가다 앞에 나타난 호수 속에서 사랑하는 정임의 모습을 찾다가 선생과 제자 사이에 사랑의 도피를 해 여기에서 사는 조선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그 부부와 헤어져 바이칼호로 가서 정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외치다 최후의 방랑 길을 떠났다. 여기 까지가 최석이 보낸 편지들의 내용이었다. N은 최석의 편지를 아직도 남편을 미워하는 부인에게 주고 집에 돌아와 있는데 정임이가 온다는 전보를 받는다. 정임이 또한 최석의 편지를 받고 최석을 찾아 떠나가려고 경성으로 온 것이다. 최석의 편지를 본 부인은 남편과 정임이 사이에 부정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아버지와 정임이의 사이를 이해하는 순임이는 아직 병중인 정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N은 순임에게서 여행도중에 일어났던 내용과 정임이와 아버지의 사이를 더욱 이해하고 동정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그 후 N은 정임에게서 자신은 병으로 인해 바이칼호반 최석이 머물렀던 여관에 누워있고 순임은 주인 노파와 아버지 있는 곳으로 떠났다는 편지를 받는다. 정임의 편지를 받은 십여일 후 순임에게서 온 아버지 병이 중하니 돈을 가지고 오라는 전보를 받는다. N은 순임이 있는 곳으로 가 병석에 누운 최석을 만난다. 최석은 N에게 자신의 일기를 보고 남이 보지 않게 태워 버리라고 한다. 일기 내용은 정임에게로 향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쓴 것이었다.

최석의 병이 조금 나아지자 N은 정임을 데리러 떠난다. N과 함께 정임이 병든 몸을 이끌고 왔을 때 최석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 후 N은 정임이 최석이 있던 방에 가만히만 있다는 편지를 주인 노파에게서 받고 정임이가 죽었다는 기별이 오면 둘을 나란히 묻어 주겠다고 생각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주제 : 영적으로 결합된 숭고한 사랑

 

3. 등장 인물

◎ 최석 : 지식인이며 중년 신사로 교장으로 재직하였고 친구 딸 남정임을 부모가 죽은 후 데려다 키웠으며 후일 그녀를 정신적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정임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오해로 인해 시베리아로 가서 죽게 됨.

◎ 남정임 : 고아가 되어 최석의 집으로 와 자랐으며 최석의 아내와 딸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큼 예쁘고 똑똑함. 인자한 사랑을 베푸는 아버지 같은 최석에게 절대적 사랑을 느낌.

◎ 부인 : 평범한 부인이었으나 몸이 약해지자 신경질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났으며 남편을 사랑하는 정 임에 대한 질투로 인해 남편을 파탄으로 이끌었으나 후에 남편을 이해함.

◎ 최순임 : 최석의 딸로 정임이와 함께 자랐으며 정임이의 미모와 재능에 눌려 어렸을 때는 질투하고 시기하였으나 처녀가 된 후 아버지와 정임이의 사랑을 이해하고 도와 줌.

 

<참고> 작가 연구 : [이광수 문학의 사상 전개에 따른 구분] (정비석)

1) 제1기 : ‘개성 존중’을 주장하는 인도주의적 계몽사상 - 주로 30대 이전(<무정>)

2) 제2기 :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던 시기 - 대략 30~40대에 걸쳐 있음(<흙>)

3) 제3기 : ‘영의 구원을 모색’하는 종교적 경향의 시기 - 50대 전후(<유정>, <사랑>)

 

▶ 흙

 

1. 줄거리

보성 전문 학교 법과에 다니는 허숭(許崇)은 여름 방학 때 고향 ‘살여울’에 돌아가 야학을 마치고 상경한다. 그러나 유순이라는 처녀에게 마음이 끌린다. 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 문관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된 허숭은 평소에 농촌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농촌으로 돌아가 생활을 할 결심이나, 장안의 갑부인 윤 참판의 무남독녀이자 미모에 학식을 갖춘 정선과 결혼함으로써 서울 생활을 한다. 이상을 포기한 결혼 생활에서 아내와의 불화, 소송 의뢰 거부 등으로 다투고 고향인 ‘살여울’로 내려와 고향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한다. 그러나 아내 정선이 김갑진이란 청년과 불륜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어 서울로 올라온다. 아내에게 실망한 허숭이 다시 귀향하려 하자 정선은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 한 쪽 다리를 잃는다. 그 무렵 ‘살여울’에서는 유순이의 정인(情人)인 맹한갑이 유순이 허숭과 정을 통했다는 풍문에 혹하여 함께 ‘살여울’로 내려간다. 그들은 유치원을 열고 농민 구제 사업에 전념하는데, 허숭이 고리대금업자 정근의 모함으로 투옥되나 그가 나올 때까지 정선은 ‘살여울’을 지킨다. 그리고 김갑진은 허숭의 영향을 받고 ‘검불랑’에 들어가 개간 사업을 하며 새로운 인간으로 변신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농촌 계몽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초) / 공간(서울, 살여울, 검불랑)

◎ 사상 : 귀농(歸農) 사상, 민족주의, 계몽주의

◎ 성격 : 계몽적, 설교적, 민족적, 인도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여름 방학 동안 야학을 마치고 상경하는 허숭. 유순이를 그리워함.

전개 - 허숭, 정선과의 갈등 심화로 낙향을 결심함.

위기 - 정선의 자살 기도. 정근의 밀고로 허숭 투옥. 살여울, 과거의 암울한 생활로 회귀

절정 - 작은갑의 헌신으로 마을의 이익 되찾음. 정근의 잘못 시인

결말 - 허숭의 영향으로 귀농해 개간 사업하는 김갑진

◎ 주제 : 피폐한 농촌의 계몽과 귀농 의식

◎ 출전 : <동아일보>(1933년 연재)

 

3. 등장 인물

◎ 허숭 : 가난한 농촌 태생의 고학생으로 과묵하고 듬직한 성격을 가졌으며 변호사가 되어 부잣집 딸 정선과 결혼을 하였으나 부귀영화를 버리고 농촌의 개혁을 위해 헌신함.

◎ 윤정선 : 허숭의 아내로 신교육을 받은 부잣집 딸로 부러울 것 없이 곱게 자란 도시 여성으로 자신의 영화만을 위해 살았으나 부정한 행동을 한 후, 자살하려다 다리를 잃고 나서 남편을 이해하고 농촌개혁에 헌신함.

◎ 한민교 : 교직자로 재직하면서 뜻 있는 학생들과 친분을 가지며 조선의 발전과 농촌 개혁을 하는 데 힘쓰도록 이끌어 주는 지도자

◎ 김갑진 : 과거 남작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가 주색과 투기를 해 남작 예우가 정지되었으며 수재로서 법학 공부를 했으나 농촌 사람을 교화되지 않은 야만인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최고의 남자인 줄 알고 남을 무시함 주색잡기로 세상을 살다 후에 농촌개혁에 뛰어듦.

◎ 건영 :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왔으나 자신의 학벌을 이용하여 부잣집 딸과 혼인하여 재산을 얻으려고 여러 여자를 건드리고 다닌다. 직업도 없이 빈둥대는 생활을 함.

◎ 유순 : 순박한 시골처녀로 허숭에게 마음을 주었으나 숭의 중매로 한갑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유건영의 모함에 빠진 한갑에게 5개월 된 임산부 몸으로 죽음.

◎ 유정근 : 시골 부잣집 아들로 동경 유학을 했으나 성격이 거만하고 간교한 사람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가난한 농촌사람들을 이용하여 고리대금과 장리로 많은 재산을 모음. 훗날 작은갑으로 인해 마음을 고쳐 먹고 농촌 개혁에 동조함.

◎ 작은갑 : 농민이며 말이 없고 침착하여 허숭이 제일 믿는 사람으로 유건영으로 인해 징역을 살고 나와 유건영이 고장 망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자신의 아내와 간통을 빌미로 유정근을 위협하여 개과 천선하게 함.

◎ 서선희 : 정선의 친구로 장로의 딸이었으나 아버지가 죽자 삼촌 밑에서 살았고 아버지의 유산을 삼촌에 게 빼앗기고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기생이 됨 허숭을 만나 개심하여 농촌 개혁에 뛰어듦.

 

4. 이해와 감상

춘원 이광수의 “흙”은 심훈의 “상록수”와 함께 우리나라 농촌 계몽 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허숭(許崇)이란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춘원의 계몽주의에 기인한다. 허숭이 가정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를 버리고 고향인 살여울로 들어간 것은 살여울을 민족주의 실현의 중간 단계 모델 마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의 정신적 지주였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의 이상촌(理想村) 건설의 구현이기도 하다. 이광수는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농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민족주의 운동의 기초적인 활동으로 생각하였다. “흙”의 주인공 허숭이 살여울을 위하여 농협, 야학 등을 세워 헌신한 뒤 살여울보다 더 궁벽한 검불랑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농촌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말을 한 것은 바로 이상촌 건설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춘원은 청년 시절에 신문화 운동의 구호 아래 반봉건, 반유교적인 극단주의자의 위치에 서서 철저한 도덕적 개조와 풍속 개량을 주장하였지만, 장년에 이르러서 쓴 이 작품에서는 경박한 외래 문화로 도금된 신지식인들을 오히려 경계하였다. “흙”은 이 시대의 분위기였던 조선심(朝鮮心)의 재발견과 조선적인 운동의 복구라는 시각에서 창작된 것이다. 김동인(金東仁)의 지적대로 시혜적(施惠的)인 농촌 계몽 소설이며, 한편으로는 체제 순응적인 사이비 민족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카프 계열에서 보면 이상주의적 허위가 주는 환상의 중독을 염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흙”이 명작으로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이 작품의 독자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다는 것은, 이 작품이 단순한 삼각 관계의 애정 소설이라거나 민족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문학적 방편 이상의 이유가 있다. 바로 허숭이라는 주인공의 숭고한 인품으로 인한 감화력 때문이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허숭과 적대하는 인물들은 허숭의 인격 때문에 새롭게 변한다. 결국, “흙”은 방황하는 지식인들이 인과 응보적인 죄 값을 치른 후 허숭과 같은 숭고한 인격, 즉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인내와 봉사 등에 의하여 구원되는 재생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기영(1895~1984)

 

소설가. 호는 민촌(民村).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급속한 집안의 몰락 속에서 유소년기를 보냈고 그의 아버지는 스무살 약관에 무과에 급제 무관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에 떠밀려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인물로서 주자학적 이데올로기에 철저한 전통적 지식인도, 새로운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가는 근대적 지식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새로운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가는 근대적 지식인도 되지 못했다. 결국 몰락의 운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시각으로 냉철하게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 1924년 상경, 문단에 데뷔했고 1926년 프로문학의 구심점이었던 <조선지광>에 편집인으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폈다. 1931년 카프 1차 검거에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1934년 2차 검거시에는 형을 받고 2년 여의 옥살이를 했다. 해방과 동시에 월북, ‘북조선예술동맹’을 이끌었다. 민촌의 문학적 출발은 남성 우월주의의 전통적 가치관의 허위를 폭로하는 “오빠의 비밀 편지”(1924)로 시작되며 이후 그 같은 주제가 계급적 차원으로 변화하는 과도기 형태의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1925)을 발표한다. 이 소설의 특징은 뚜렷한 자전적 요소를 꼽을 수 있는데, 이 점은 1920년대 소설의 주된 특징인 고백체와 유사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설에 드러난 자전적 요소는 염상섭, 현진건의 고백 양식과는 다소 차이를 보여 준다. 염상섭과 현진건의 소설 주인공이 겪는 내면 갈등이 ‘개성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현실과의 갈등이라면 이기영의 소설은 생존과 연관된 사회구조의 문제로 직결된다. 이 양자의 차이는 부르주아 문학과 1920년대 후반의 문학이 지닌 시간적 차이가 당대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념적 조류의 변화로 인해 생긴 것임을 알게 한다. 이기영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의의는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째, 그 동안 상대적으로 과소 평가되었던 한국 근대 소설사의 한 축인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작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를 배제한 근대 소설사는 애초에 불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그의 소설로 인해 이론 위주의 프로문학이 비로소 실체화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프로문학의 치명적인 약점인 추상적 관념성을 준엄한 리얼리즘 정신으로 극복한 점이다. 당대의 프로문학이 일본에서 수입된 해외문학의 일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이론적인 수준이나 성향이 ‘동경문단’에 거의 종속되다시피한 점, 농민문학을 도외시한 점 등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관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성격은 이기영의 소설을 한층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근거이다. 넷째, 농민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였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들”, “민촌”(1925), “농부 정도령”(1926), “홍수”(1930), “부역”(1930)을 거치면서 새로운 형식 창출의 노력을 계속하여 장편 “고향”(1933-34)이라는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 고향(故鄕)

 

1. 줄거리

1920년대 말 원터 마을, 동경 유학생이던 김희준이 학자금 난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소작인으로 농사를 짓는 한편, 농민 봉사, 계몽 활동을 통하여 농민 지도자로서 위치를 굳힌다. 그를 중심으로 한 소작인들은 동네 마름인 안승학과 대결해 나간다. 마름 안승학은 그의 본부인을 서울로 보내 자식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자신은 첩 숙자와 함께 산다. 안승학과 숙자는 딸 갑숙이를 이씨 문중으로 시집 보내려 하다가, 갑숙과 경호와의 관계를 알고 앓아 눕는다. 왜냐하면, 경호는 읍내의 상인인 권상필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구장집 머슴 곽 첨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갑숙이는 가출하여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한다. 그녀는 옥희라는 가명을 쓴다. 풍년이 들었으나 소작료와 빚진 것을 제하면 농민에게 돌아오는 것이 거의 없다. 갑숙이와 친했던 경호는 집을 나와 생부를 찾고 역시 공장에 취직한다. 수재가 나서 집이 무너지고 농사를 망친다. 희준이를 중심으로 소작인들은 마름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감면해 줄 것을 요구하나, 안승학은 이를 거절한다. 이 때 공장에서도 갑숙(옥희)을 지도자로 한 노동 쟁의가 벌어지며, 희준은 이를 돕는다. 갑숙이는 소작인을 괴롭히는 아버지에 반대하여 희준과 힘을 합친다. 희준이를 비롯한 농민들은 끝내 안승학의 양보를 얻어낸다. 그리고 희준과 갑숙이는 이성간의 애정을 초월하여 동지로서의 사랑을 확인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농민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말) / 공간(‘원터’라는 농촌)

◎ 경향 : 카프 계열, 사회주의 리얼리즘

◎ 의의 : 농민 중심의 대표적 농민 소설

◎ 구성

발단 - 농민과 마름의 대립. 여러 인물 소개

전개 - 청년회 충돌, 갑숙의 가출, 두레 조직, 갑숙과 경호의 공장 취직

위기 - 수재 당함, 경호와 갑숙의 갈등

절정 - 소작료 삭감 투쟁

결말 - 동트는 새벽, 장래의 희망과 동지애

◎ 제재 : 식민 통치로 점점 피폐해지는 농촌 생활

◎ 주제 :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농민들의 의식의 성장

◎ 출전 : <조선일보>(1933~1934)

 

3. 등장 인물

◎ 김희준 : 동경 유학생 출신. 농민을 결속시켜 안승학과 대결한다.

◎ 안승학 : 마름. 새롭게 부상한 신흥 세력가

◎ 권상철 : 상인. 고리대금업자

◎ 안갑숙 : 마름 안승학의 딸. 아버지와 달리 농민을 돕는다. 희준에 대한 사랑을 동지애로 승화시킨다.

 

4. 이해와 감상

“고향”은 1933년 11월 27일부터 1934년 9월 2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1920년대 중반 원터라는 충청도의 한 농촌을 무대로, 식민지 시대 일제의 착취와 그에 따른 농촌의 황폐화, 몰락한 농민이 노동자가 되는 과정, 그리고 빈농과 노동자들의 투쟁하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김기진(金基鎭)의 회고에 의하면 연재 마지막 35, 36회분은 작가의 구속으로 김이 대신 쓴 것이라 한다. 카프 계열에서 쓰여진 농민 소설의 대표작으로서 노동 쟁의, 소작 쟁의 등 경제 투쟁, 농민 운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도식성(圖式性)과 작위성(作爲性)이 드러난다. 무더위 속에서 농사일로 비오듯 땀 흘리는 ‘인동이’ 모자(母子)의 모습과, 시원한 마루의 등의자에서 한가하게 부채질하는 마름 ‘안승학’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이 두 모습은 식민지 통치로 더욱 가난해진 농민 계층과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계층을 대표하고 있으며, 이들의 갈등과 해소가 이 소설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일본 유학생 김희준이 등장하여 가난한 농민의 구심점이 된다. 지식인 유학생은 농민 소설이라면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영웅적, 이상적 존재이지만, 김희준은 실패한 유학생으로 초라하게 등장하여 점차 자기 희생적 지도자로 변모하고 있다. 그는 두레를 결성하여 농민 의식을 변화시키며, 마름의 횡포에 맞서서 농민의 힘을 결집시켜 마침내 뜻을 이루고 있다. 가난의 문제, 계층 갈등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제시해서는 프로문학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반성에서 1930년대 초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실적 묘사와 생활 감각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이 작품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쓰여진 최고의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브나로드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나왔지만, 브나로드 주창자들과는 달리 문화 운동으로서의 농민 계몽이 아니라 경제 투쟁으로서의 농민 운동을 강조한다. 이른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노동 쟁의 양상 · 소작 쟁의 양상, 그리고 양자의 결합 양상,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도자 상을 보여 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모든 문제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해결되고 있다. 이와 같이, 카프에서 요구하는 도식에 맞추기 위하여 많은 작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희준과 갑숙의 만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둘만의 개인적 애정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 동지애가 중요하다는 관념적 원칙을 내세워 역시 프로문학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악덕 마름의 딸 ‘갑숙’의 공장 노동자로의 변모, 그리고 소작인들의 집단 쟁의가 벌어졌을 때의 그녀의 행동 등은 너무 이상화되어 있다.

 

<참고> “고향”의 인물들

□ 두 부류의 인물들 : 이 작품의 인물들은 김원칠, 조선달, 조첨지와 같은 원터 마을의 여러 빈농들과 인순이, 인동이, 방개, 막동이 등의 농촌 청년들이 한 축을 이루고 마름 노릇을 하면서 농민을 수탈하는 안승학과 고리대금업을 하는 권상철 등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여기에 문제적 인물인 김희준과 자기 계급의 한계를 뛰어넘어 민중의 편에 서는 안갑숙, 권경호 등의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문제적 인물’인 김희준과 ‘식민지 부르주아’의 전형인 안승학의 성격 창조가 매우 뛰어나다.

□ 농민 속에서 변모해 가는 살아 있는 인물 김희준 : 김희준은 중류 집안의 청년들을 조직하여 무엇인가 해 보려 한다. 그러나 청년회는 농민들의 생활과 인텔리적 성격에 한계를 느낀다. 그가 결정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은 김선달과 조첨지 등 하층 농민들의 매서운 충고를 듣고 나서였다. “그까짓 청년회는 무엇 하러 가는 겐가? 그까짓 것들하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긴 자네가 나온 뒤로는 좀 달라진 것도 같데마는! 어떻게 했으면 오늘은 심심풀이를 잘 할까 하는 유복한 자식들이나, 그렇지 않으면 제 에미 애비가 뼛골이 빠지게 일을 해서 보통학교나마 공부를 시켜 놓으니까, 번둥번둥 처먹고 놀면서 그런데도 ‘공’인지, 급살인지 치러 까리르는 것들이 무슨 제법 큰 일을 하겠다는 말인가. 흥! 그래도 내세우는 말들은 장관이지. 뭐? 그런 운동을 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먹은 게 소화가 잘 된다고! 아니 못 먹어서 부황이 나 죽을 놈이 부지기수인데 돼지죽으로만 알던 지게미도 못 얻어먹어서 양조소 굴뚝을 하느님 쳐다보듯 하고 한숨을 짓는 이러한 살얼음판인데, 그래 기껏 걱정이 밥 먹은 것을 삭일 걱정이로구먼! 천하에 기급을 할 놈들 같으니!” 계몽소설이나 프로문학에서 인텔리나 지도자는 대중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은 무식하고 교양 없는 일반 대중들을 계몽하고 이끄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김희준은 오히려 자신의 구상이 비현실적이었음을 절감하면서 농민들의 생활에서 끼치는 바가 많다. 원터의 농민들과 생활하는 과정 속에서 점차 성격과 현실 인식에서 변화를 보여 주는 김희준은 살아 있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며, 이 점이 여타 소설의 인물과는 다른 강점이다. 김희준은 완벽한 인텔리 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집안의 가난과 자신의 무능력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갈등하고 회의에 잠긴다. 또 애정 문제에서도 완벽하지 못해서 강제 결혼한 못생긴 부인과 갑숙 사이에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만큼 사실성 높은 소설의 경지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 식민지 수탈의 대리인 안승학 : 안승학은 신식 문물을 남보다 빨리 접하였고, 일본어를 익힌 후 군청에서 일하면서 성장하였다. 그는 지적도를 위조하여 서울 대지주의 마름을 곤경에 처하게 한 후 그 자리를 대신 꿰어찬다. 그는 흉년기에도 소작료를 인하하지 않고 소작농들을 철저하게 수탈하는 지주의 대리인이며, 하루에 몇 시간이든 꼼꼼하게 자신의 재산을 따져 보고 사용처를 궁리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자식 교육도 치부를 위한 투자라고 여긴다. “그(안승학)는 타작 마당으로 돌아다니며 일일이 감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길 하루에 한 집씩 타작을 시켜야만 가장 잘 밝힐 것같이 생각되었으나 하루를 다투는 가을일을 꼭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할 수 없이 서너 집을 시킨 것인데 그러자니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벼를 잘 털라고 잔소리를 하고 그래도 못 믿어서 털어놓은 짚단을 헤쳐보다가 만일 벼알이 더러 붙었으면 눈을 부라리고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중략) 그런데 지금 시대는 금전도 자식이 있어야 벌 수 있다. 아들과 딸을 중학교나 대학교까지 가르쳐서 그들이 나오는 길로 관청이나 실업 방면으로 출세를 하는 날이면 자기는 따라서 그들의 지위로 올라가고 또한 돈도 벌게 될 것이 아닌가? 자기처럼 험하게 벌지 않고 점잖게 벌 수 있지 않는가? 공부란 것도 다 장삿속으로 해야 한다. (중략) 아침을 먹고 나면 -하긴 그 전에 또, 실과를 주전부리하는 일도 있지마는- 장부를 펼쳐 놓고 모든 세음조와 장부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으레히 방문을 꼭 쳐 닫고 혼자 가만히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수판질을 했다. 그리고 거기에 조그만 아라비아 숫자를 써넣는 것이었다. 그가 장부의 계산을 끝내고 나서는 으레히 치부에 대한 공상을 마치 종교 신자가 묵고를 한참씩 하듯 하고 있었다.” 안승학은 1920년대 식민지 수탈의 대리인이라는 전형적 성격을 갖는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회적 적응력을 가지고 성장하는데, 동포의 가난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그들의 빈곤 상태를 이용하여 치부를 도모한다. 그리고 그는 이재에 밝은 인물이다. 이재에 밝다는 것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던 식민지 자본주의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이것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 편승하여 성장한 식민지 부르주아의 특성이기도 하다.

□ 카프 내부 논의의 실천적 결실 : 방대한 분량의 장편 “고향”이 높이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식민지 현실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지주의 수탈과 자본의 침투로 인하여 급격히 몰락하는 농민들, 계속되는 도시화와 산업화, 공업의 성장으로 인한 노동자 계층의 등장, 극심한 빈곤, 농민층에 기생하는 고리대금업, 조혼과 강제 결혼으로 대표되는 봉건적 가족 제도로 인한 갈등,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농민들과 거기에 대항하는 지배층의 모습 등이 장편소설답게 방대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따라서 “고향”은 식민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 소설로 읽힐 수도 있고,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며 함께 인간 드라마로 감동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대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장편소설의 본령이라 할 때, “고향”은 우리 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민촌(民村)

 

1. 줄거리

‘민촌(民村)’은 상민(常民)들이 모여 사는 사오십 호 정도의 전형적인 향교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박 주사의 땅을 부쳐먹는 가난한 상민들이다. 박 주사의 아들은 악덕한 인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쁜 마름이다. 이 마을에 점순이라는 처녀가 있는데, 얼굴이 예쁘고 가냘프게 생겼다. 점순이는 마을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고 높임을 받는 서울 댁 양반(창순)을 좋아하는데, 그 서울 댁 양반은 돈을 많이 가진 지주들을 경멸한다. 그는 항상 가난한 사람도 없고 부유한 사람도 없는, 골고루 나누어 먹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주들의 착취와 헐벗고 가난한 것에 대해 격분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정이 넘치는 인물이다. 점순이와 서울 댁 양반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서로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서울 댁 양반의 열변을 듣는 점순이는 자신이 참으로 불행하게 살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점순이네는 보리 양식이 떨어지게 되고 아버지가 생인발을 앓게 돼 집안은 더욱 힘들어 간다. 하는 수 없이 점순이의 모친은 박 주사의 아들에게 장릿벼 한 섬을 얻으러 가는데, 박 주사의 아들은 장릿벼를 줄 테니 딸을 달라고 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앓아 눕게 되고 집안은 더욱 어렵게 된다. 결국, 점순이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고 양식을 얻기 위해 박 주사 아들의 첩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다. 그래서 돈 쉰 냥과 벼 두 섬을 받고 아버지의 병이 나으면 첩이 되는 조건으로 약속을 한다. 그러나 점순이 아버지의 병이 더 악화되자, 박 주사의 아들은 점순이네로 가마를 보내고 이를 본 점순이 아버지는 실성을 하고 어머니는 기절을 한다.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우애, 서울 댁 양반의 순결한 사랑도 벼 두 섬의 힘만 못하여 결국 점순이는 벼 두 섬에 박 주사의 아들에게 팔려 가게 된다.

 

2. 이해와 감상

이기영의 소설은 당대의 계몽적 농민문학과 중농주의(重農主義)의 농민문학에 대항하여 이제까지의 근대소설에서는 창출해 내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 유형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당대의 현실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지식인의 시혜의식에 가득 찬 계몽주의의 허위성에서 탈피하여 그의 문학은 좀더 농촌의 현실에 밀착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소설 “민촌”에서 그려진 농촌은 친일 지주와 횡포, 그리고 이와 대비된 소작 농민들의 궁핍한 삶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국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에 등장하는 박주사는 동척회사 마름, 면 의원 등 여러 가지 친일적 성향의 직분을 지니고 소작농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상놈의 반반한 계집이라고는 모두 주워 먹는’ 부랑배이다. 이 두 인물은 당대 지주 계급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 두 인물의 성격 안에는 지주 계급의 친일적 성향과 소작인에 대한 횡포, 윤리적 타락상 등이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주 계급과 소작인 계급의 도식적 이분화는 그 자체가 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까지의 한국 근대소설에 있어서 “민촌”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지주 계급은 구시대의 양반을 중심으로 식민지 지배 체제와 밀착된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들과 소작인 사이에는 과거의 양반과 상놈 이상으로 강한 계급적 차별 의식이 남아 있었다. “민촌”은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그의 소설 속에서 그대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권력 구조는 여전히 봉건적 지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소작인과 지주의 의식 구조도 여전히 양반과 상놈이라는 봉건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민촌”의 특징은 이러한 현실적 관계를 지배하는 힘을 막연하나마 경제적,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과거의 계몽 소설이 계급 의식을 철폐한다는 의식의 문제에 치중하였다면 “민촌”은 현실적 권력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에서는 의식의 계몽과 상관없이 여전히 계급적 차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을 소설 속에서 보여 준다. 결국 ‘점순’이가 벼 한 섬 때문에 첩으로 팔려 가는 결말 구조는 단순히 모순된 현실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계급적 차별을 의식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저항의 한계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창순’의 역할이 관념적 설교와 추상적 지식인의 역할에 머물고 있는 것이 커다란 결점이며 농민과 밀착된 지식인의 전형으로서도 이전의 계몽소설에 비해 별다른 차이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 서화(鼠火)

 

1. 줄거리

반개울 마을 앞에서는 도깨비불 같은 불길이 솟아나고 있다. 새빨간 불이 어둠 속에서 총총히 번지고 있다. 정초에 벌어지는 쥐불놀이였다. 돌쇠는 쥐불 싸움에 신나게 뛰어들었으나, 쥐불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고 만다.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그것도 해마다 시들해진다. 돌쇠는 응삼이를 꾀어 내어 노름판을 벌인다. 반쯤 바보인 응삼이는 소 판 돈을 돌쇠에게 잃는다. 돌쇠는 그 돈으로 자기 가족의 양식을 마련한다. 그러나 돌쇠 아버지는 역정을 낸다. 바보 남편에게 불만을 가진 응삼이의 처 이쁜이는 돌쇠의 남성다움에 이끌린다. 여기에 면서기 원준이는 이쁜이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한다. 원준이는 돈을 잃은 응삼이를 동정하는 척하며 응삼이 집을 자주 출입한다. 그러나 만족은 이쁜이에게 있다. 돌쇠는 이쁜이를 남몰래 만나 응삼이와 노름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노름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음을 실토한다. 면서기 원준이가 혼자 집을 보는 이쁜이에게 추근대며 협박까지 하나, 이쁜이는 완강하게 저항한다. 결국, 봉변당한 원준이가 구장을 부추겨 동네 집회를 열도록 한다. 원준이는 그 집회에서 도박과 가정 풍기를 거론하며 돌쇠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 이 때 동경 유학생 정광조의 발언에 힘입어 돌쇠가 자기 입장을 밝힌다.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노름한 이유와 이쁜이에게 욕심을 채우려 한 자가 원준임을 폭로한다. 돌쇠는 이쁜이와 함께 집으로 오면서 유학생 정광조의 합리적인 사리 판단에 감격하며 그런 세상을 동경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농민 소설

◎ 배경 : 시간(3․1 운동 직전) / 공간(‘반개울’이라는 농촌)

◎ 경향 : 카프 계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의의 : 도식적 프로 문학에서 벗어나 리얼리즘 지향

◎ 구성

발단 - 쥐불 싸움이 시들하자 돌쇠는 노름에 관심을 가짐.

전개 - 돌쇠는 응삼이 돈을 따고 응삼이 처와 남몰래 만남.

위기 - 면서기 원준이 응삼이 처 이쁜이에게 욕심을 채우려다 봉변

절정․결말 - 동네 집회에서 원준이 돌쇠를 공격하나 돌쇠는 원준이의 흑심을 밝힘.

◎ 주제 : 쥐불 놀이의 쇠퇴, 그리고 농촌 현실의 황폐화

◎ 출전 : <조선일보>(1933)

 

3. 등장 인물

◎ 돌쇠 : 주인공. 건강한 생활력을 가졌지만 집안 살림에는 매우 시큰둥하다. 쥐불놀이가 성하던 옛날을 그리워하나 마을은 점점 황폐해지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 응삼이 : 어리숙한 사내. 노름판에서 돌쇠에게 돈을 잃는다.

◎ 이쁜이 : 응삼이의 처. 돌쇠에게 추파를 던진다. 면서기 원준이의 욕망의 대상

◎ 원준 : 면서기. 이쁜이에게 흑심을 품다 모욕을 당한다.

◎ 정광조 : 동경 유학생. 새로운 시대의 인간상으로 부각된다.

 

4. 이해와 감상

3․1운동 직전 ‘반개울’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중편소설로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서화(鼠火)는 곧 ‘쥐불’인데, 농사에 해로운 쥐나 벌레를 없애기 위해 정초에 논둑이나 밭둑을 태우는 일이다. 동시에 농민의 생기를 상징하고 있어 의미 심장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쥐불도 농촌의 피폐와 더불어 해마다 시들먹하다. 민촌(民村) 이기영의 작품은 식민지 자본주의로 돈을 벌어 새로 득세하는 계층과 그들에게 토지를 빼앗겨 더욱 가난해진 농민과의 갈등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돌쇠는 가난한 농민의 대표적 인물이다. 돌쇠는 농사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노름으로 돈을 따서 식량을 마련한다. 또, 가정을 가진 돌쇠는 응삼이의 처 이쁜이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한다. 그러나 돌쇠와 이쁜이가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랑의 과정보다는 조혼과 강제 결혼의 폐해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결국, 조혼과 강제 결혼도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라는 데에 이 소설의 의미가 있다. 도박과 간통도 경제적 동기로 합리화되며, 경제 논리가 도덕적 규범보다 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기영의 초기 작품에 비해서 도식적 계급 의식과 목적 의식을 벗어나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으로 “서화(鼠火)”가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빈농으로 전락한 돌쇠와 부농으로 부상한 원준이라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확장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기능은 소설 후반부에서 돌쇠에게 지적(知的) 자극을 줄 정도로 미미한 것이며,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은 장편 소설 “고향”의 김희준에 와서야 선명히 드러난다.

 

 

이동하(1942~)

 

일본 오사카 출생.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전쟁과 다람쥐>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현 목포대 교수. 그는 자전적인 요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가진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우울한 귀향>, <모래>, <파편>, <폭력 연구> 등이 있다.

 

▶ 장난감 도시

 

1. 줄거리

6․25가 끝난 지 2~3년 후, 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가족과 함께 고향을 버리고 ‘장난감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된다. 고향의 국민학교에서 장래의 면장감이란 찬사를 받던 ‘나’와 가족들은 도시로 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궁핍한 판자촌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언제나 촌놈이라는 것이며, 이사 와서 한 달 동안 ‘나’가 터득한 것은 도시 생활의 냉엄한 질서였다. 아버지의 귀가는 언제나 빈손이었고, 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또 다른 것이었다. “어둡고 혼탁한 때다. 그러나 너희들은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랄 것을 나는 믿는다. 너희들 중 한 사람을 잃느니 보다는 매일처럼 매질을 하면서 너희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너희들은 훗날 이 때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를 지킨 것은 오직 매였다고 말하지 말라. 너희들 중에 비록 단 한 사람이라도 매를 맞지 않은 친구가 없었다는 사실만을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귀가하지 않았다. 무슨 물건을 자전거에 실어 나르다가 경찰에 붙잡혀 가서 유치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시골 마을에서 장래의 면장감으로 찬사를 받던 ‘나’는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고 울음이 목울대까지 차 올랐으나 울지는 않았다. 다만 그 날 느낀 것은 벙어리가 어떻게 우는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했을 뿐이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6․25 직후의 도시(대구)

◎ 주제 : 암울한 현실 속에서의 인간의 절대적인 의지

 

3. 등장 인물

◎ 나 : 주인공. 시골에서는 면장감이란 찬사를 들었으나, 도시 이주 후 비참한 현실을 겪는 소년

 

4. 이해와 감상

“장난감 도시”는 작가 자신이 겪은 비참했던 어린 시절을 옴니버스 형식을 빌어쓴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전쟁, 실향, 굶주림, 헤어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어머니의 죽음 같은 것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하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의 작품 “우울한 귀향” 속에 그려진 시간의 축(軸), 즉 과거는 ‘나’의 출생에서 고향을 뜰 때까지이고 현재의 시간대는 대학 시절이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비어 있는 시간대가 바로 ‘장난감 도시’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도시적 삶의 내면을 파헤쳐 보려는 데에 끈질긴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도시에서 돈벌이를 하러 나간 아버지가 풀 빵을 거의 다 남겨 가지고 돌아와서 밤늦게 벌이는 만찬(?)과 아버지의 말 등에서는 아버지의 낙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도시의 냉엄한 질서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의 인간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웃음을 주면서도 뒤가 홀가분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웃음으로 재미를 주면서 주제를 풀어놓는다는 식이다. 결국 <장난감 도시>는 삶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오늘날의 삶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데에 이 작품의 미학이 있다. 또한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작품의 미학을 배가시키고 있다.

 

▶ 파편

 

1. 줄거리

어느 겨울 저녁, 나에게 전보지가 날아들었다. 숙부가 사망했다는 전보였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웠다. 숙부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에 이틀 간의 휴가를 신청한 뒤, 같이 가겠다는 아내를 떼어놓고 눈이 날리는 거리를 지나 밤차로 K시로 향한다. 버스 안에서 양주를 마시며 나는 회상에 잠긴다. 친일파였던 할아버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던 아버지, 그리고 서자(庶子)이기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당하던 숙부. 해방이 되자 위세를 떨치던 집안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공비가 되어 좌익 계열에 가담했고 숙부는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 어느 날 공비가 출현하여 마을들이 피해를 입고 면 주재소가 불탔는데, 이것이 아버지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흥분한 주민들이 어머니를 학대했다. 마침 휴가를 받고 나온 숙부가 어머니를 구해 주었다. 그 후, 숙부는 상이 용사가 되어 제대했다. 그러나 미처 꺼내지 못한 가슴속의 파편을 꺼내기 위해 군 종합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지만 실패한다. 이로 인해서 밝고 낙천적이던 숙부의 얼굴은 어두운 그늘로 뒤덮이게 된다. 회상에서 깨어나 K시에 도착한 나는 어느 식당에서 국밥을 먹은 후 상가(喪家)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썰렁한 상가가 나를 맞이하였고 숙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숙모로부터 전해 듣는다. 경찰이 와 사체를 검시하고 염하는 과정에서, 숙부의 가슴에 난 흉터를 보고 나는 악몽 같은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을 했다. 화장이 끝난 후 숙부의 가슴에 깊숙이 박혀 있던 파편 조각을 손에 쥔 채 나는 심한 자괴(自愧)에 빠진다. 대합실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나는 옛일을 회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해 지난 후, 불쑥 찾아온 숙부는 어머니의 묘소에 가 오열하면서 아버지의 기일(忌日)을 가르쳐 주었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이 숙부의 가슴에 남은 상처와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그 후 숙부는 강도 상해, 살인 미수 등의 범행을 저지른 전과 3범이 되었지만, 새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었다.

 

2. 이해와 감상

이동하의 소설들은 소외된 자들의 고달픈 삶을 형상화한다든가, 실향과 도시화에 따른 변질과 타락, 또는 직장 생활에서의 애환이나 그 반대의 기이한 에피소드를 담은 것 등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밖에도 그의 소설들의 주제 의식은 더 넓게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표면적으로 다양한 양태들을 망라해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양태들을 포괄하고 있는 삶의 본질적인 구도를 그려 보여 주는 데에 쏠려 있다. 작가의 이 같은 관심은 그의 소설들이 어떤 사회적인 문제 의식 따위를 전면에 내세워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본래적인 순수한 삶의 빛을 이 어두운 일상에 비춰주는데 문학의 소임이 있다고 볼 때, 이동하의 작품 세계는 순수 문학의 소임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무영(1908~1960)

 

소설가. 본명은 용구(龍九). 충북 음성 출생. 문학에 뜻을 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의 집에서 기숙하며 작가 수업을 쌓았다. “의지 없는 청춘”과 “폐허의 울음”을 간행한 뒤 귀국했지만, 문명(文名)을 날리지는 못했다. 이후 의욕적인 창작 활동에 매달리면서 작품을 발표했다. 초기의 작품은 주로 아나키즘에 기초한 반항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자신이 직접 농사에 임하면서부터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와 같은 작품으로 농촌 소설의 대부로 자리잡았다. 이 농촌 소설은 1954년의 “농민”에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에는 도시 서민의 삶과 애정을 다루는 경향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여러 변모 과정을 거쳤지만, 역시 농민 소설로서 그 명성을 확립했고, 특히 장편 소설이 많다.

 

▶ 농민

 

1. 줄거리

미륵동 장쇠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인지도 모르게 이 소문은 한 입 건너고 두 입 건너서 그 날 해 지기 전에 근처 마을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 장쇠란 놈이 집에 돌아왔다면서? 거 참말인가?”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덧붙여 놀라워했다. 장쇠가 돌아온 소식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충청도 충주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륵동에는 김 승지라는 양반이 있었는데, 여러 부녀자들과 동네 처녀들을 욕보이고 죄 없는 농민들을 모함하여 곤장을 때리거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등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있었다. 또 탑골 사는 박 의관이란 양반은 김 승지만큼 포악하지는 않으나 당시 양반이면 누구나 그랬듯이 농민들을 못살게 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두 세도가는 서로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 원수처럼 지냈다. 그러던 중, 김 승지는 장쇠의 처 금순이를 욕보인다. 금순이는 더러움을 씻으려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일이 이에 이르자 김 승지는 후환이 두려워 장쇠를 옭아 죽이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돌이를 시켜 곤장을 치다가 급기야 장쇠를 죽이라고 명한다. 이 때 김 승지의 막내딸 미연이가 나타나 아버지를 말리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미연이의 착한 마음씨를 칭찬한다. 겨우 살아난 장쇠는 마을을 떠나고 김 승지의 소작인 노릇을 하던 장쇠 아버지 원치수는 소작을 버리고 어렵게 생활한다. 한편, 장쇠는 동학당에 가입한다. 미륵동과 탑골에도 동학군의 손길이 뻗쳐 양반들이 잡혀 왔다. 장쇠는 동학당의 지방 괴수가 되어 동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잡혀온 양반을 문죄한다. 장쇠는 군중들에게 잡혀온 김 승지 일파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러자 군중들은 죽이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장쇠는, “김 승지를 죽이자는 여러분의 뜻은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원수를 갚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이….” 그러나 장쇠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중들은, “아니다. 죽여라. 죽여라!” 하고 외친다. 결국 미연이를 장쇠에게 주라고 군중들이 요구하기에 이르고, 김 승지의 딸 미연이가 결혼을 승낙하자 군중들의 분노는 가라앉는다. 그러는 사이에 관군이 쳐들어왔다. “관군이다. 싸워라.” 장쇠의 호령 소리에 산이 찌르렁 울렸다. 그때까지도 먼동은 틀 염도 하지 않았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조선 후기 양반의 폭정에 항거한 동학 혁명

◎ 주제 : 피지배 계층의 숙명적인 항거

 

3. 등장 인물

◎ 김 승지, 박 의관 : 농민들에게 폭정을 가하는 양반 관리

◎ 장쇠 : 비천한 농민. 양반 계급에 항거하는 순박한 농민

 

4. 이해와 감상

<농민>은 이무영이 계획한 5부작으로 된 대하소설 중 제1부에 속하는 작품인데, 6․25동란으로 중단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에서 지난날의 농촌이 처한 한 전형을 유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당시의 부패한 양반의 대표격으로는 김 승지를, 여기에 항거하는 농민의 전형으로는 장쇠를 설정하였다. 이는 그들 두 인물이 가지는 대조적인 위치를 통해서 사회에서 가장 이면적 인간의 현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이 계급 투쟁이란 저항 정신을 내세운 <농민>은 엄격한 의미에서 농민 소설이 아니다. 계급 의식에 항거하는 데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부조리에 대한 계층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반(反)사회적인 소설로 보아야 한다.

 

▶ 제1과 제1장

 

1. 줄거리

이 작품은 수택이 그의 가족 - 젊은 아내와 양복 입은 머슴애, 대여섯 살 먹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시골 신작로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수택은 얼마 전까지 일금 80원을 받는 신문사 기자였다. 또한 그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기자 생활이 작가 생활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고, 농촌 생활에 뜻을 두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별안간 내려온 그의 가족을 김 노인과 친척 일가들이 몰려와 에워싼다. 김 노인은 흙냄새를 싫어하는 놈이 사람이냐고 했었으나 아들을 용서한다. 수택이 고향집을 둘러보니 자신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집의 모양이 많이 퇴락해 있었고 얼마 안 되는 농토도 이미 남의 것이 되었다. 또한, 수택이 도시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아버지 김 노인과 많이 서먹서먹해져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달라진 것을 실감하면서도 수택은 드디어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우선 퇴직금 150원으로 면장의 첩이 쓰던 집을 살림집으로 구입한다. 그리고 아버지 김 노인이 시키는 대로 꼴베기도 해보고 밭일도 해본다. 그 모두가 힘에 겹고 도시에서 생각하던 것보다 낭만적이지도 않다. 수택은 고향의 산수가 너무 보잘것없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아버지 김 노인은 수택에게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처박게 하고는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야단을 치는 것이다. 농촌 생활을 하는 수택은 어느 날 새벽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내는 시골에 내려 온 후 아이들과 자신이 설사를 한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이에 수택과 그의 아내는 김 노인의 역정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벼가 익고 볏단이 쌓이는 것을 보며 수택은 시골에 내려온 보람을 잠시 느끼나 추수한 속에서 비료대와 설사 치료비, 지세가 제하여지는 것을 보고 착잡한 심정이 된다.

그의 몫으로 남은 벼 여남은 섬이 가마니에 채워지고, 그걸 다른 사람들은 거뜬히 지고 가나 근 이백여 근이 되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수택은 코피를 쏟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민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후반기) / 공간(‘샌터’라는 시골)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계몽성보다는 전통적 한국 농민들의 흙에 대한 열정과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 구성

발단 - 시골로 가는 수택의 이삿짐

전개 - 신문 기자 생활의 회상. 시골로 떠나려는 수택의 결심과 그의 집안 소개

위기 - 힘겨운 농촌 생활

절정 - 농촌 생활의 괴로움과 생활의 적응

결말 -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수택. 진짜 농군이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 주제 : 지식인의 귀향과 그 적응에 대한 몸부림. 흙에 대한 애정과 농촌의 현실

◎ 출전 : <인문평론>(1939)

 

3. 등장 인물

◎ 김수택 : 흙내음 때문에 귀농(歸農)한 농촌 출신 지식인

◎ 아내 : 농촌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인물

◎ 김 노인 : 수택의 아버지. 평생을 오로지 흙 만지며 살아 온 전형적 농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촌 문학가 이무영의 소설이다. 그는 농촌과 농민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농촌의 현실을 그려내 온 작가이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농촌에서의 삶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구명하려고 애써 온 작가이다. “농민”, “농촌” 그리고 “제1과 제1장” 및 이 작품의 속편에 해당하는 “흙의 노예”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여 주는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이 소설에 드러나 있는 중요한 의미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이 작품에서 이무영은 농촌을 ‘현실적인 공간’으로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 나타난 농촌은 안락한 자연을 제공하는 쉼터나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는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다. 이 작품 속의 농촌은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 곳은 땀과 노력이 가득 차 있는 노동의 현장인 셈이다. 아버지 김 노인은 수택을 새벽부터 깨워 일을 시킨다. 땅을 대하는 일은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흘린 땀만큼 거둘 수 있다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이다. 아내가 흘리는 눈물은 농촌에서의 삶이 허영이나 낭만이 아닌 ‘현실’임을 일깨워준다. 수택은 귀향 초기에 농촌에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택의 귀향은 처음엔 어느 정도는 낭만에 치우친, 이상적 감정에 이끌린 것이었다. 도시 생활에서 느낀 우울과 소설을 쓰지 못하는 허탈감에서 오는 욕구 불만에 대한 반발과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는 땀흘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으로, 농촌이 도시보다 열등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농촌과 농민을 소재로 하는 많은 소설들이 신학문을 배운 자, 도시의 세련된 모습을 갖춘 지식인에 의해 농촌이 지도되고 계몽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농촌은 그러한 지식인의 얕은 사명감에 의 해 주도되고 있지 않다. 수택이 고향의 경치가 별로 볼 것 없는, 즉 보잘것없는 자연처럼 느껴진다고 말하자 아버지 김 노인은 수택의 목덜미를 잡아 가랑이 사이에 밀어 넣으면서, 겉으로 그냥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곳을 제대로 본다면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실하고 건강한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농촌과 농민은 더 이상 도시와 도시인의 기준으로 낮추어 평가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보다 우월한 삶의 공간, 그곳이 바로 농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촌의 삶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경우만을 따지고 법만 우선시하는 경직된 삶의 모습을 비판하는 김 노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진전한 공동체적 삶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흙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확대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이 되는 변화의 과정이다. 이제부터 수택은 자신이 지금까지 지녀왔던 삶의 태도와 방향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처음 중의 처음. ‘제1과 제1장’인 셈이다. 덧붙여, 이 작품의 농촌 소설로서의 특색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주인공 수택은 농민보다 우월하다는 영웅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민과 동일해지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둘째, 주인공 수택이 반농반필(半農半筆)의 문필가 겸 농민이라는 점, 그리고 셋째, “흙”과 “상록수” 같은 작품처럼 계몽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등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수택의 귀향 동기이다. 작가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혹은 생활고 때문에 귀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그것보다는 이 작품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흙내'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참고> 단편집 “흙의 노예”에 대해서

이무영(李無影)의 단편 소설집. 1944년 7월 조선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화가 정현웅이 장화(裝畵)를 맡았다. 이 작품집에는 이무영 자신의 서(序)와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안달소 전”, “누이의 집”, “모오지도(慕午之圖)”, “문서방(文書房)”, “딸과 아들과” 등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집의 작품들은 대체로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삶을 형상화하는 이무영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들 수록 작품 중 표제작인 “흙의 노예”는 1940년 4월 <인문평론>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제1과 제1장”의 속편이다. 농촌에 정착한 주인공 수택이 직접적으로 궁핍한 농촌현실에 부딪쳐 가는 이야기가 형상화되고 있다. 다소 낭만적으로 인식하고 동경했던 농촌을 현실적, 구체적 농촌으로 인식하는 과정인 것이다. 특히 주인공 수택의 눈을 통해서 본 아버지 김 영감, 즉 한 가난한 농부의 일대기가 이 소설의 중요 골격이다. 흙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간직한 김 영감은 평생 흙을 위해 살다가 마침내 땅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말 그대로 ‘흙의 노예’였다. 농사를 지으면서 소설을 쓰겠다는 주인공은 흙의 노예처럼 살아온 아버지 김 영감에 대해 동질감과 연대감을 가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죽도록 땅을 파서 자작농이 된 김 영감의 몰락상은 1930년대 농촌 궁핍화의 쓸쓸한 비가(悲歌)이다. 그의 몰락은 도시화, 기계문명, 물가 상승, 학교, 자동차 등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확대가 농촌에 미친 결과이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이농 문제, 소작농의 실태, 야학, 고리대금업자의 횡포 등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참고> 농민 문학의 등장 배경

농민 문학이란 농촌의 문제와 농민의 삶을 그린 문학을 말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농민 문학은 1930년대와 1970년대에 특히 활발하게 나타났다. 1930년대에 농민 문학이 활성화되었던 배경에는 더욱 가혹해진 일본의 경제 수탈 정책이 놓여 있다. 당시 조선의 전체 인구 중 80%가 농민이었으므로 일제의 경제 수탈은 농촌과 농민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토지는 소수의 일본인 지주와 친일 지주의 손에 집중되었고,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의 처지로 떨어졌다. 농민들은 궁핍에 시달렸고, 만주나 간도 등지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제의 수탈에 맞서 농민들은 농민 조합을 결성하고 소작 쟁의를 벌였다. 그리고 학생과 지식인들은 1920년대 천도교 중심의 조선 농민사의 활동을 시작으로 YMCA나 YWCA의 계몽 운동, 1929년 조선일보사의 문자 보급 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농민 계몽 운동을 벌이며 적극적으로 농촌 문제에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가들이 계몽 운동과 농촌의 실상을 작품화함으로써 1930년대에 ‘농민 문학’이라는 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 죄와 벌

 

1. 줄거리

늦여름 어느 날, 거물급 인사 한규덕이 괴한의 피스톨에 맞은 살인 미수 사건이 터진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사건 현장에 있다가 검거된 박 신부의 친동생인 박찬재를 지목한다. 형사가 박 신부집을 찾아와서 사건 전후의 행적에 대해 묻고 간다. 사건 발생 삼 주일만에 용의자가 범행 일체에 대해 자백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나 한씨 저격 사건에 대한 보도는 추측 일변도였다. 다시 열흘이 지났으나 배후 관계는 실마리도 잡아내지 못한다. 박 신부는 살인범의 형이라는 죄책감에 술을 마시고, 그때 교우 바오로의 방문을 받는다. 바오로는 고해를 하다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간다. 얼마 후, 다시 바오로가 나타나 자신이 한규덕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고해를 한다. 바오로는 자신의 가족을 부탁한 뒤에 자수하러 떠난다. 박 신부는 이튿날, 새벽 미사에서 바오로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미사 후에 남산동 비탈의 바오로의 집을 찾아간다. 박 신부는 그의 아내에게 돈을 전해 준다. 그러나 바오로가 자수했다는 기사는 나지 않고 범인 박찬재의 심판이 조만간에 있으리라는 기사만 실린다. 다음날, 박 신부는 남산동으로 다시 찾아가지만 바오로는 집에 없다. 며칠 뒤 강론을 하다가 바오로를 발견하나 그는 강론 중에 나가 버린다. 영화 ‘나는 고백한다’를 개봉하는 날 열리기로 한 아우의 첫 공판이 연기된다. 박 신부는 영화를 보면서 바오로의 고면과 배신을 생각한다. 박 신부는 바오로가 자수할 것을 기도하면서 기다린다. 마침내 박 신부는 갈등 속에 고면의 비밀을 누설하고, 동생의 공판에서 방청하던 그는 바오로의 침묵과 박찬재의 사형 언도에 고함을 지른다.“저놈이 진범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꿈속의 일이었다. 그 때 주교는 박 신부의 잠을 깨우면서 바오로가 자수했음을 알려 준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종교 소설

◎ 배경 : 시간(1950년대 말의 서울) / 공간(성당이 중심)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작가 관찰자 시점도 나타남)

◎ 문체 : 진지하고 간결, 단호한 문체

◎ 구성

발단 - 영화 ‘나는 고백한다’를 본 박 신부의 고뇌. 동생 찬재의 살인 혐의와 경찰 조사

전개 - 용의자 찬재의 자백. 바오로가 진범 자백. 자수하지 않자 박 신부의 실망이 큼.

위기 - 영화 ‘나는 고백한다’와 동생의 1차 공판 날이 겹침.

절정 - 동생의 결백을 믿는 박 신부의 선과 악에 대한 갈등

결말 - 진범의 자수. 고해 받은 사실을 꿈결에 누설한 박 신부

◎ 제재 : 살인 사건. 세속적 혈연과 고백 성사의 존엄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

◎ 주제 : 신부로서의 의무와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구원의 문제

◎ 출전 : <자유문학>(1959)

 

3. 등장 인물

◎ 박진태(요셉) 신부 : 변두리 성당의 주임 신부로서 교리에 밝으며 박학 다식함. 교우들의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나 신부로서의 의무와 인간으로서의 양심 때문에 갈등을 겪는 인물

◎ 바오로 : 명동 일대를 누비는 불량배

◎ 안나 : 바오로의 아내이며 신자

◎ 찬숙 : 박 신부의 누이동생

◎ 찬재 : 박 신부의 친동생으로 살인죄의 누명을 씀.

 

4. 이해와 감상

1959년<자유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천주교 성직자가 세속적인 혈연 관계와 고백 성사의 존엄성 사이에서 내적 갈등과 고뇌를 체험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인간의 속성 중 빛의 자아와 어둠의 자아의 갈등을 종교적 구원의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죄와 벌, 사람의 판단과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한 천주교 성직자가 세속적인 혈연 관계(血緣關係)와 고백 성사(告白聖事)의 존엄성 사이에서 내적 갈등과 고뇌를 체험하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한국 소설사의 흐름에서 볼 때 사뭇 이질적이다. 우리의 정신사의 흐름 속에는 원죄 의식(原罪意識)이 없으므로 ‘참회록’은 매우 희귀하다. 죄를 다룬 작품이라 해도 대체로 관습이나 법률상의 죄만 다루므로, 그것을 요행히 피하기만 하면 잘못됨은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이 작품은 카톨릭 성사인 ‘고백’의 존엄성과 세속적 유혹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신부의 모습이 현실감을 준다. 성(聖)과 속(俗)의 갈등을 체험하고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비난보다 오히려 우리에게 친근감을 더해 준다. 또한, 이 작품은 세속적 인간들을 풍자한다. 인간의 본성과 신의 뜻에 대하여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법석을 부리는 신문 기자들과, 자신의 죄는 뉘우칠 줄 모르면서 남의 허물을 쉽게 속단하고 서슴없이 비난하기 잘 하는 방청객들, 무고한 피의자를 범인으로 몰아 사형 선고를 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재판관들 ─ 그들의 속물스런 죄상(罪狀)을 이 단편은 실감나게 보여 준다. 이 소설의 극적 사건은 살인 사건의 진범인 바오로의 자수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고백 성사의 내용을 누설하지 않으려는 박 신부의 고뇌와 정직함이다. 결국, 이 소설의 초점은 한 성직자가 종교적인 직분과 세속적인 정의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문학사에도 많은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있지만, 인간 본성을 통찰하고 그 모순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문학 작품이 드물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 소설은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 청개구리

 

1. 줄거리

사십이 다 되도록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최 첨지는 생과부와 결혼을 하여 살림을 난다. 소반 한 개, 상사발 두 개, 대접 두 개에 종지 한 쌍, 독저 두 매, 숟가락 두 켤레가 살림의 전부였다. 송곳 꽂을 땅도 없는 형편이라 동리 사람들이 서둘러 천수답 서 마지기에 따비밭 한 뙈기를 마련해 주어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최 첨지는 노루막이 잔등을 긁어서 산골물을 따비밭으로 끌어다가 논을 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에 착수한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으나 최 첨지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농지 개량 공사의 유일한 동반자는 아내뿐이었다. 그러기를 삼 년, 피와 땀의 결실로 노루멕이에 닷 마지기의 논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 일본군 비행장에 공급할 화약고가 이곳에 들어서는 통에 십 년 공이 일시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땅을 치고 울면서도 최 첨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골짜기에 쌓인 흙을 가져다가 신작로 어귀에다 방죽을 쌓았다. 산골물을 이전의 골짜기로 돌리려는 것이었다. 열심히 방죽을 쌓았으나 채 반도 쌓기 전에 장마가 져서 며칠 동안 계속되던 비는 제방을 무너뜨릴 판이었다. 최 첨지로서는 마음만 좌불안석일 뿐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냥 있을 수만도 없어서 빗속에 서서 며칠씩이나 방죽을 지켜보던 최 첨지는 쓰러지고 만다. 흐려져 가는 의식의 한 가닥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던 최 첨지는 다시 일어섰다. 물난리 속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방죽도 터지지 않았고 사람도 살아난 것이다. 최 첨지의 끈질긴 투쟁이 결국 자연의 거대한 힘을 이겨낸 것이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일제 치하 농민 정책의 부재와 궁핍한 농촌 현실

◎ 주제 : 인간과 자연과의 원시적인 대결을 통한 현실 상황의 극복과 그 의지

 

3. 등장 인물

◎ 최 첨지 : 궁핍한 삶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끈질긴 투쟁을 벌이는 의지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청개구리>는 이무영의 농촌 소설이다. 비교적 내용이 단조로운 이 작품은 끊임없이 도전과 시련을 받는 한 궁핍한 농민을 소재로 작가의 현실 극복 의지의 단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무영이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한국의 역사적 상황의 제반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최 첨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시 농민들의 공통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 <청개구리>는 현실 초월의 문학적 교시성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 흙의 노예

 

1. 줄거리

‘수택’은 첫해 가을 추수가 끝나자 한 해의 수확과 살림 비용을 계산해 보고는 허탈에 빠진다. 이처럼 기막힌 현실 앞에서 수택은 자신의 농촌 설계가 지닌 비현실적 측면과 고아로 자란 아버지가 어떻게 다시 빈농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수택의 이 같은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농민으로서의 본업에 더욱 열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수택은 없는 논을 가지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애를 쓰기도 하고, 또 원고료로 작은 밭이나마 마련하고자 부지런히 글을 썼다. 그뿐 아니라 농군들의 봉놋방에 가서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수택이 야경(夜警)을 돌다가 우연히 야학당에 들르게 되었는데, 자신이 젊었을 때 야학을 맡아 본 일이 생각나서 의외의 기분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야학에 다니는 김 소년이 부담하고 있는 분필 값과 기타 비용을 자신이 떠맡는다. 이를 위해 수택의 처는 소중히 여기던 자개장과 시골 생활에 불필요한 세간을 서슴지 않고 처분하고, 다른 시골 여자들과 함께 담배 재배에 나선다. 한편, 수택의 아버지 김 영감은 남의 손에 넘어가서 이제는 휴지가 된 토지 문서를 보며 비탄에 잠긴다. 땅을 잃은 김 영감은 자리에 누워 투약마저 거부하더니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만다. 김 영감이 죽고 나자 비로소 수택은 농촌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수확은 자기 아버지 김 영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김 영감에 대한 소중함을 재발견함으로써 비로소 수택은 농민의 실상과 본질에 접근하게 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일제 치하 궁핍한 농촌과 기계화된 도시 문명

◎ 주제 : 농촌 생활의 실제 경험을 통해 얻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

 

3. 등장 인물

◎ 수택 : 궁핍한 농촌 체험을 통해 농민의 실상과 본질을 깨닫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그의 <제1과 제1장>의 주제는 그 속편으로 쓰여진 이 <흙의 노예>에서 다시 전개된다. 농촌 생활에의 참다운 적응은 농촌 생활이 궁핍과 모순의 생활이라는 사실에 대한 현실적 체험으로부터 나타난다. 체험을 통한 농촌 현실의 깨달음은 수택으로 하여금 실천적 자각을 가져오게 했다. 이 소설은 기계 문명에 밀리고 농촌 정책에 희생되어 점차 제 땅을 잃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흙을 긍정하고 농촌과 친화하며 그 안에서 자기 생활을 창조해 나가는 작은 농민의 모습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농촌을 계몽하여 농민을 구한다는 교설적인 문학이나 작의적 인물을 내세워 농촌을 일조일석에 개혁하려 한 작품에 비하여 이 작품은 농민 문학에 있어서 진보된 차원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문구(1941~)

 

소설가. 충남 보령 출생. 서라벌예대를 졸업했으며 1966년 <현대문학>지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 한국 전쟁 때 남로당이었던 부친과 두 형이 죽게 되었고, 6년 뒤 어머니마저 죽자 가장이 되어 농사를 짓기도 하고, 행상이나 노동판에서 일을 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그는 1980년에 작가로는 유일하게 정치 규제를 당하였다. 그런 만큼 그의 소설에서는 민중적 삶이 소재로 등장한다. 그는 농촌 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가인데, 그가 그린 농민의 모습은 끈질긴 삶의 진실과 더불어 양반과 같은 품격을 갖춘 것으로 그려진다. 그의 필생의 작업이었던 연작 “관촌 수필”과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민중적 삶이 걸쭉한 사투리와 함께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한학적 식견이 높아 작품 속에 고풍한 문체를 쓰고 있는 데서도 독보적이다. 대표작으로 “이 풍진 세상을”, “암소”, “장한몽”, “산 너머 남촌”, “매월당 김시습” 등이 있다.

 

▶ 관촌 수필(冠村 隨筆)

 

1. 줄거리

제1편 [일락서산(日落西山)] : 연작 소설 8편 중 첫 번째 발표작. 억압받고 무시당하면서도 끈질기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인물들을 그렸던 종래의 작품 성향을 벗어난 작품으로,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는 고향을 찾아가, 전형적인 조선인이었던 조부와 과격한 좌익 사상으로 희생된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그늘에서 외로운 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제는 오랜 타향살이로 인해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나]에 이르는 3대를 담담하게 회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오늘의 한국 지식인의 성격 단면을 파악하게 된다.

제2편 [화무십일(花無十日)] : 연작 소설 8편 중 두 번째 작품. 피난민 일가에 대한 [나]의 어머니의 따뜻한 인간애를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전통적 삶의 인간미를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제5편 [공산토월(空山吐月)] : 연작 소설 8편 중 다섯 번째로 발표된 작품. <관촌 수필> 연작 가운데 가장 감동 깊은 작품으로 평가되며, 성실하게 살다 간 어느 청년(석공 신씨)의 이야기이다. 옹점이나 대복이 등 종래의 <관촌 수필>에 등장했던 토속적인 인간상보다 약간 세련된 인물로서 그의 이름은 신씨(申氏)이다. 직업은 석공(石工)인데, 그는 선산(先山)의 유택을 치장해 주는 등 [나]의 집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신氏는 6․25 때 부역을 한 일로 인해 5년 간 형무소 살이를 했고, 출옥 후에는 마을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억척스럽고 성실하게 살았으나 37세의 한창 나이로 요절(夭折)함으로써 [나]의 뇌리에 극적인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비극 속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있으며, 불우한 세대에 불우하게 끝나 버린 삶의 통분이 있다.

제6편 [관산추정(冠山秋情)] : 연작 소설 8편 중 여섯 번째로 발표된 작품. 전통적인 마을 안을 흐르는 ‘한내(大川)’가 도시 소비 문명으로 인해 점차 파괴되어 퇴폐적 하수구로 변하게 된 실상을 그리고 있다.

제7편 [여요주서(麗謠註書)] : 연작 소설 8편 중 일곱 번째로 발표된 작품. 중학 동창인 친구가 아버지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꿩을 잡아 팔려다가 발각되어 공권력에 시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2. 핵심 정리

◎ 배경 : 60년대, 산업 근대화의 미명 아래서 점차 무너져 가는 전통적 농촌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제 : ‘근대화’로 인해 붕괴되어 가는 농촌 현실을 통한 따뜻한 인간애의 추구

 

3. 등장 인물

◎ 나 : 고향을 그리워하는 인물 (서술자)

◎ 옹점이, 대복이 : 토속적인 인물

◎ 석공 신氏 : [공산토월]의 주인공. 6․25 때의 부역 사실로 5년 간 복역 후, 마을일에 앞장서 성실하고 억척스럽게 살다 요절한 비극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문구의 소설은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점차 상실되어 가는 전통적 삶의 숨결과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세계는, 근대화의 물결에 후광을 얻는 도시적 삶이 아니라 근대화의 음지에 해당되는 도시 변두리나 농촌의 변화된 현실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은 단순히 그가 다루는 토속적인 세계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 속에서 겪는 변화의 실상과 양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고향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낭만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겪는 갈등과 불화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 작가의 시선이 응집되어 있다. 이 <관촌 수필>에서도 이러한 이문구의 소설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고향을 무대로 하면서도 고향의 복고적 취향이나 전통적 인간의 삶을 다루지 않고 그 이면에 놓인 변화의 구체적 정체를 밝히면서 변화 속에서 겪는 인간적 갈등과 변모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려는 점이 그것이다.

 

<참고>

1) 친근한 언어로 엮은 ‘시골 이야기’ -- 풍상 속의 온갖 사연, 현실감 있게 그려

오랜만에 성묘차 고향을 찾은 작중화자는 마을 어귀에서 울적한 심정을 토해 놓고 만다. <내 살과 뼈가 여문 마을이었건만, 옛 모습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옛 모습으로 남아난 것이 저토록 귀할 수 있을까.> 모두 8편의 연작으로 되어 있는 <관촌 수필>의 첫 작품 [일락서산(日落西山)]이 발표된 것이 1972년이니 거기서 다시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랬던 관촌 부락의 모습이 지금은 또 얼마나 바뀌었을 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그처럼 대단한 세월도 소설 <관촌수필>이 뿜어온 빛을 감하지는 못했다. 땅에 깊숙이 뿌리박은 삶의 말들과 오래도록 조선의 정신을 함축해 온 유가(儒家)의 언어를 통해 고색 창연한 이조인이었던 할아버지를 비롯, 옹점이, 대복이, 석공, 복산 아버지 등 그 땅의 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준 작가의 빼어난 문장은 그 실감을 전혀 잃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의 한 자락을 나는 <관촌 수필>을 다시 읽으면서 만났다.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4백여 년에 걸쳐 마을의 온갖 풍상을 지켜봐 온 왕 소나무의 사라짐에 탄식하고, 종가(宗家) 같은 풍채를 지녔던 옛 고향집이 추레하게 변해 버린 주제 꼴에 가슴이 미어질망정, 정작 그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바를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가가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언제 어디에나 있는 [사람살이의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정작 내침을 받거나 업수이 여겨졌던 대복이나 복산 아버지 유 서방을 화자는 그들의 타고난 천성의 자리로 가서 기억해 내는데, 그것은 모진 세월 속에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마음의 안타까움을 작가가 보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6․25 전란의 참화를 다른 어느 집보다도 혹독하게 겪은 화자의 자리에서 보면 사람들로부터 입은 모진 사연이 어디 한 둘에 그칠까. 그럼에도 화자의 기억은 고난 속에서도 사람살이의 정과 예의를 가르쳐준 옹점이에게로, 돌을 좋아해 석공(石公)으로 불렸던 고향 마을의 한 농부에게로 자꾸만 흘러갈 뿐이다. 작가는 그러니까 사람살이의 본디 마음들이 펼쳐 보였던 그 아픈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을 전쟁이나 덧없는 세월 따위에게 빼앗길 수 없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러므로 사람살이의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었다. <관촌 수필>의 세계는 분명 우리가 돌아가 다시 살 수 있는 세계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기록해 준 인정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되풀이 살아야 할 아름다움이다. 곳곳의 낯선 말들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목에서인가 나는 소설을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잊고 있을 뿐, 내 삶 어딘가에도 순박한 일생을 살았던 석공의 마음은 흐르고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정홍수>

 

2) 6․25에 풍비박산된 ‘가족사’ 담아

이문구氏가 지난 77년 <문학과 지성社>에서 펴낸 연작소설집 <관촌 수필>이 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았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후손인 작가가 어릴 적부터 습득한 한문학的 인문교양에 바탕을 둔 의고체 문장에다가 충남 지역의 토속어가 어우러진 <관촌 수필>은 오늘날 한국적 문예 미학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남 들으라고 떠들기는 민망하지만 <관촌 수필>은 적어도 문인으로서의 경력에 대한 중간 결산이며 내 역량으로 창작할 수 있는 문학의 본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8편의 단편 중에는 쓰면서 운 것도 있고 탈고와 함께 눈물을 지은 것도 있는, 모두가 내 이웃과 내 이야기를 기록한 까닭이다.”

 

<관촌 수필>은 6․25의 광풍에 풍비박산이 난 작가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의 부친은 충남 보령의 남로당 총책을 맡았다가 전쟁이 터지자 예비 검속돼 처형당했다. 작가의 큰형은 이미 일제 때 징용돼 실종된 상태였던 터라 둘째형이 부친과 연루돼 비명(非命)에 갔다. 셋째형은 전쟁 당시 18세의 나이였으나, 역시 빨갱이 집안 자식이란 이유로 대천 앞 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水葬)당했다. 이 같은 기구한 사연을 아는 문단 동료들은 결코 대천해수욕장으로 피서 가는 법이 없다. 전쟁이 끝나자 집안에서 살아남은 남자라고는 이미 팔순을 넘긴 할아버지와 넷째 아들로 태어난 작가뿐이었다. 소년 이문구는 당시 “어린 마음에도 맨 먼저 다짐한 것이, 나만은 절대로 형무소나 유치장 출입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살아남아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이 어린 그를 짓눌렀다. <관촌 수필>은 근대 이전 시골 선비의 표상을 따랐던 조부 밑에서 자라난 소년 이문구의 성장기를 성년이 된 작가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단편들로 꾸며져 있다. [공산토월] [화무십일] [행운유수] 등의 고색 창연한 제목을 지닌 이 연작 소설들은 작가의 자전적 회상뿐만 아니라 전쟁의 혼란에 떼밀려진 순박한 농민들의 인생 유전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상상력으로 쥐어짠 허구가 아닌 실화에 토대를 둔 이야기들이기에 작가는 이 소설의 제목에 [수필]이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 암소

 

1. 줄거리

올해로 52살이 된 황구만은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 온 성실한 농부이다. 황구만은 섣달 눈 오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출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하며 몹시 마음이 상해 있다. 삼 년 동안 황씨네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박선출은 군에 입대하면서 그 동안 새경을 모아 만든 팔만 원의 돈을 황씨에게 맡기고 떠났었다. 제대할 때까지 맡긴다는 전제에 이자도 삼부여서 썩 좋은 조건이었다. 황씨는 그 돈으로 소창직 직조를 서너 대 장만하여 가내 공장을 시작했다. 처음엔 잘 돼 나갔었다. 그러나 인근 읍내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는 바람에 부리던 직공들이 들고일어나고, 자기네가 앉아서 일하고 있던 사이 세상은 빠르게 기계화의 길로 내닫고 있었다. 결국, 그의 가내 공장은 폐업할 지경에 이르렀고, 군에서 제대한 박선출에게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돌려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주인 황씨가 5․16 정권이 들어서며 시작된 농가 고리채 정리 기간 동안에 덜컥 신고를 해 버린 탓에 원리금을 몽땅 날릴 판이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선출이가 작성한 계약서를 통해 의좋게 합의를 보았다. 내용인즉, 황씨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 키워 그것을 다시 팔아 그 돈으로 부채를 청산하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은 암소를 극진히 먹여 키우고, 심하게 부린 날이면 막걸리를 먹여 재우기도 했다. 오늘은 황씨 집에 고사가 있는 날이다. 음식을 마련한 황씨 아내는 술지게미를 소 여물통에 놓아두었다. 그 동안에 황씨와 선출은 암소가 밴 송아지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그런데 술지게미 맛을 본 암소는 술내가 풍기는 광으로 들어가서 너 말 가웃 되는 막걸리 항아리를 단숨에 먹어 치우고 쓰러져 버린다. 암소는 죽어 버리고, 황씨는 암소에게 달려들고, 선출이는 몸부림치는데, 그 곁에서 선출의 애인 신실이도 목놓아 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농민 소설

◎ 배경 : 시간(1960년대 초반) / 공간(충청도 어느 농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충청도 토속어의 구사

◎ 의의 : 농촌의 피폐와 해체 과정을 걸출한 충청도 토속어의 구사력으로 보여줌으로써 농민소설의 새로운 면모 개척

◎ 구성

발단 - 박선출과의 언쟁으로 마음이 언짢은 황구만(현재)

전개 - 선출이 입대하면서 맡긴 돈으로 소창직 가내 공장을 시작한 황구만(과거)

위기 - 읍내 공업단지 조성으로 가내 공장의 폐업과 농가 고리채 정리(과거)

절정 - 황씨와 선출의 계약 하에 키우던 암소가 쓰러짐(현재).

결말 - 암소의 죽음과 황씨와 박선출의 울부짖음(현재).

◎ 주제 : 산업화 속에서 농민들이 겪는 소외와 갈등

◎ 출전 : <월간 중앙>(1970)

 

3. 등장 인물

◎ 황구만 : 쉰두 살의 농부

◎ 박선출 : 황구만의 머슴살이를 하다 군 입대한 20대 남자

◎ 고랏댁 : 황구만의 아내

◎ 신실 : 박선출의 애인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70년 10월 <월간중앙>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작가 이문구가 주로 다루고 있는 소설의 무대는 농촌이나 어촌, 혹은 산업화의 소외지대인 도시의 변두리이다. 이 작품도 삶의 터전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의 비애, 그리고 그것을 상황의 모순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미 이문구는 ‘지혈’(1967), ‘이삭’(1968), ‘몽금포 타령’(1969) 등을 통해 독특한 문학관을 드러내어 보였고, 특히 그의 출세작인 ‘관촌 수필’은 사라져 버린, 혹은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그 특유의 토착어로 포착해 내고 있다. 작가 이문구는 생생한 농촌 묘사로 정평이 난 작가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의 묘사력은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여기에 암소를 둘러싼 두 인물의 상이한 입장이 치밀한 심리 묘사에 의해 덧붙여지고 있다. 황구만씨가 암소를 그토록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물론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를 아낄 수밖에 없는 농민의 심성에 기인한 것이다. 자칫하면 악덕 지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인물에 ‘인간다움’을 부여하는 것은 그의 묘사력이 지닌 정치(精緻)함 덕분이다. 그의 소설이 지니는 또 하나의 ‘맛’은 충청도 토속어의 걸출한 구사력이다. 그것은 작품 전체를 훈훈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로 이끌며, 농촌의 궁핍한 실상을 건조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게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 사회에 관한 디테일과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주고받는 정감 어린 인정 묘사는 사라져 버린 전통적 세계에 대한 문학적 헌사라 할 만하다. 결국, 이문구의 소설들은 농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현실 도피적이거나 토속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했던 기왕의 소설들과는 달리 1960~70년대의 산업화 속에서 농민들이 겪는 소외와 갈등, 그리고 농촌의 피폐와 해체 과정을 충실한 리얼리티와 정감 있는 문체로 보여 줌으로써 농민소설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다고 하겠다.

 

▶ 우리 동네(연작)

 

1. 줄거리

연작(連作)으로 된 <우리 동네> 가운데서 가징 긴 [우리 동네 황씨]는 농촌의 안방에 침투한 텔레비전, 선풍기, 그리고 농약 공해로 자취가 뜸해진 곤충, 농촌의 고리채, 부재 지주(不在地主)의 증가, 농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 농협을 악용하는 모리배, 고추에 농약을 마구 뿌리는 악덕 농민, 이리저리 수탈 당하는 농민의 실상 등을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이문구의 순박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은 <우리 동네> 연작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민방위 교육을 풍자한 [우리 동네 김씨], 농촌 아이들에게까지 번진 망년회와 농촌 부녀자들의 관광 여행․고고춤과 농협의 변칙 운영과 조미료 중독과 도박 풍조를 그린 [우리 동네 이씨], 도시인들의 사냥 공해와 농민의 자녀가 관련된 노사(勞使) 문제를 다룬 [우리 동네 최씨], 모내기에 동원되어 주민을 골탕 먹이려고 데모를 하는 고등학생과 통대(統代)와 사기꾼의 행각을 묘사한 [우리 동네 정씨]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농민이 소외되는 농촌 근대화의 허구와 수매(收買) 비리를 파헤친 [우리 동네 정씨]는 바로 70년대 이후 농촌의 축도(縮圖)라고 할 수 있다. 옛날의 농촌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이다. 농민들은 현실 감각과 자신의 권리 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농협이나 면직원들과 어울린 자리에서건 민방위 교육장, 영농 교육장에서건 불평 불만을 말할 줄 알고, 다음 농협 선거에서는 아무나 찍어 주지 않겠다고 공언할 줄도 안다. 또한 [우리 동네 최씨]에서는 맏딸과 그 친구 영순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장 노동자의 문제가 농민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연작 <우리 동네>의 여러 주인공들 중에서 유일하게 땅이 없는 농민이자, 가장 가난한 주인공인 ‘최씨’를 통해서 토지 소유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한다. 한편, [우리 동네 김씨]에서는 민방위 교육이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김씨’는 가뭄 끝에 저수지 물을 이용하기 위해서 전깃줄에 전선을 이어 놓고 남의 저수지 물을 양수기로 퍼 올리다가 한전(韓電)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에게 동시에 들키게 된다. 그런데 물과 불의 문제로 사태는 느닷없는 한전(韓電)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의 싸움으로 번졌다가 민방위 교육이 열리는 바람에 김씨의 문제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민방위 교육장에서도 ‘김씨’가 부면장의 말에 무심코 반발조로 토를 다는 통에 급기야 교육장은 웃음과 비웃음이 섞인 박수장으로 희화화되어 버린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경기도 어느 농촌

◎ 주제 : 산업 사회로 인해 밀려난 농촌의 현실과 농민들의 삶의 실상

 

3. 등장 인물

◎ 김씨 : 농부. 민방위 교육을 희화적으로 풍자함.

◎ 이씨 : 농부. 도시의 세태 풍조를 그려낸 인물

◎ 정씨 : 농촌의 행각을 파헤치는 인물

◎ 최씨 : 농촌과 공장 노동자 문제를 접목시켜 보여주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우리 동네>는 연작 소설이다. 작가 이문구가 77년 서울을 떠나 ‘발안’에 들어가 생활하게 된 이래, 최근까지 발표된 중 단편의 모음인데, [우리 동네 김씨]를 필두로 [우리 동네 이씨], [우리 동네 최씨], [우리 동네 황씨], [우리 동네 김씨], [우리 동네 정씨], [우리 동네 장씨], [우리 동네 조씨]로 되어 있다. 모두 70년대 산업 사회 속에서 농촌의 소외 문제와 농촌 구성원들이 겪는 갈등의 문제, 그리고 농촌의 피폐 및 해체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농촌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당대 현실과 80년대 우리 농촌 모습을 예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으로 차용(借用)된 성씨들은 더러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잽싸게 편승하고 더러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지못해 합류하기도 하는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주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일상적인 대화에서까지 이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거부하는 몸짓 또한 소극적이긴 하나 현실적 인고와 미래에의 기대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의 숨겨진 저력을 돋우어 상징하는 측면을 보이고 있다. 이문구는 농촌을 다루더라도 도시와 대립되는 면만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의 작가적 의식은, 농촌 속에서의 삶 자체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듯이, 그 환경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원적(二元的) 현실을 파악하려고 했다. 이 작품은 산업 사회로 인해 점차 전통적 농촌 사회가 마멸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적 삶의 현장을 풍자적 시각으로 묘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여 농촌의 도피성, 서정성, 토속성 등을 부각시킨 종래의 농촌 문학 규격을 벗어나서 농촌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며 그 속에는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 유자소전

 

1. 줄거리

작가인 ‘나’에게는 유재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심성이 곱고 착실한 사람이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친구는 남에게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반면 그는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친구는 사실 현대 사회에 잘 맞지 않아 세상살이를 힘들게 하는 면도 많이 있다. 그 친구는 항상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남을 도우려 하며 부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다 결국 죽고 말았다. 부정과 요령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의 삶에 철학을 갖고 떳떳하게 살다 간 그 친구야말로 우리 모두가 가려야 할 인물이기에,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전(傳)’을 쓰는 것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실명 소설

◎ 성격 : 향토적인 정서, 풍자적

◎ 구성 : 전(傳)이라는 양식을 사용함.

◎ 주제 : 부와 사치에 젖은 현대인들의 삶의 자세 비판

◎ 출전 : <방황하는 내국인>(1991)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유재필이라는 인물은 삭막해져만 가는 현대 사회에서 극히 보기 드물 정도로 심성이 착하고 남을 위해서 항상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인물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와 물신주의 풍토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전(傳)’이라는 양식의 사용과 함께 풍부한 사투리의 구사를 통해 향토적인 정서를 진하게 풍기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현대인의 삶의 태도를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서사의 전통적인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다.

 

▶ 해벽(海壁)

 

1. 줄거리

‘사포곶’ 어협 조합장인 조동만은 대대로 이어온 생계 수단인 수산업을 발전시키려는 포부를 안고 고향에 수산 고등학교를 설립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내놓아 학교 부지로 사용하게 하고 자신은 후원회를 조직하여 ‘출어세’까지 거두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원래부터 천시되어온 자신들의 생업을 경시하던 주민들은 때마침 밀려온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려 조동만이 추진하는 학교 사업을 외면한다. 그래서 ‘수산 고등학교’는 ‘인문 고등학교’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육영 사업의 실패는 조동만에게 첫 번째 패배를 안겨 주었다. 이 때, 이미 많은 어민들로부터 ‘출어세’ 때문에 반발을 산 조동만은 그 곳에 미군부대가 들어섬으로써 더 큰 패배를 겪는다. 부대 주변에 새로운 부류의 직업 여성들이 등장하고, 미군들의 횡포로 홍승태 일가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수십만 평의 농토를 얻기 위한 간척 사업이 시작됨으로써 ‘사포곶’은 폐항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그와 같은 변화를 이용하여 자신의 부와 권력을 쌓아 가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이웃 ‘거문개’ 어협 조합장인 오갑성과 ‘사포곶’ 토지 조합장인 박창식이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조동만의 실패를 십분 이용했다. 이들은 이 어촌 마을에 불어닥친 변화에 잘 적응(?)함으로써 새로운 현실에서 중심적인 인물이 되어 간다. 반면에 조동만은 설상가상으로 그가 소유한 발동선 ‘해조호’마저 조난 당함으로써 생계의 기반을 잃고 몰락하여 마침내는 ‘어살’을 놓아 연명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70년대 사포곶 마을(농촌과 어촌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가난한 갯벌 염전 마을)

◎ 주제 : 도시화되는 어촌의 비극과 현대화에 소외되는 어민들의 삶

 

3. 등장 인물

◎ 조동만 : 어협 조합장. 고향의 수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파국을 맞이함.

 

4. 이해와 감상

<해벽>은 1972년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서, ‘사포곶’ 마을과 어민들이 정치적 배경을 등에 업은 국토 개발 사업과 외세에 의해서 점차 파괴되고 전통적 생활을 잃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근대화의 돌풍으로 인한 운명적 현실 파탄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착을 비판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문열(1948~)

 

서울 출생. 고향 영양과 서울, 밀양 등지를 전전하며 유년기를 보냄. 고시에 뜻을 두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 방황의 시기에 “사람의 아들”,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 “이 황량한 역에서” 등을 썼다. 그 이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1977년 <매일신보>에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되었고, 1979년 <동아일보>에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그럴 때마다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킬 만큼 역량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 경향은 매우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폭과 깊이에 있어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중국 고전을 평석한 “삼국지”, “수호지”를 비롯하여 “황제를 위하여”와 같은 고전 제재의 작품을 쓰기도 했으며, “젊은 날의 초상”, “레테의 연가”,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와 같은 대중 취향의 소설에서도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서 삶의 현실과 진실을 간파해 내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군대를 배경으로 한 “칼레파 타 칼라”, “필론의 돼지”, 교실 공간을 소재로 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전통 정신의 품격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은데, 그 보수성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 외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표작이 있다.

 

▶ 금시조(金翅鳥)

 

1. 줄거리

고죽은 열 살의 나이로 숙부의 손에 의해 석담에게 맡겨졌다. 석담은 웅혼한 필체와 유려한 문인화로 명성이 높던 대가였다. 그러나 석담은 고죽을 맡아 기르면서도 소학교에 보낼 뿐 직접 글씨를 가르치지 않는다. 고죽은 그러한 스승을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우러러본다. 정성껏 스승을 모시던 고죽은 스승 몰래 서예를 익히고, 스승은 마지못해 그를 정식으로 문하에 거둔다. 석담이 고죽을 못마땅해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고죽은 서예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으며, 가르침이 인색한 스승에 대한 반발과 스승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에서 문하를 뛰쳐나가 세인에게서 재주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석담은 돌아온 고죽을 질타하여 2년 동안 붓을 잡지 못하게 한다. 다시 고죽은 오직 글씨에만 정진하여 자신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석담이 글씨의 품격과 힘을 생명으로 여긴다면, 고죽은 글씨에 넘치는 정의와 기예를 으뜸으로 친다. 결국 고죽은 글씨 쓰는 일 자체에 회의를 표하고, 이를 안 석담은 분노한다. 다시 고죽은 오랜 방랑에 오르고, 엄격했던 스승을 그리며 석담의 문하로 돌아오지만 이미 석담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고죽은, 석담이 자신의 관상명정(棺上銘旌)을 고죽에게 맡겼다는 것, 곧 고죽의 글씨를 지하로 가져가고자 했을 만큼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주제 : 어느 스승과 제자가 추구하는 진정한 예술혼

◎ 출전 : <현대문학>(1981)

 

3.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서예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긴 세월에 걸친 대립 의식이, 죽음에 임박한 제자의 회상에 의해 펼쳐지는 소설이다. 글씨를 쓰는 것이 예(藝)인가 도(道)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 그리고 애증(愛憎)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갈등이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의해 긴밀하게 구성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고죽의 회상을 통해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고죽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불사르게 한다. 그것은 석담과 고죽에 의해 대표되는 두 개의 상이한 예술관이 맞부딪치며 타오르는 순간이다. 동시에 그것은 고죽이 추구해 온 자족적(自足的)인 존재로서의 예술관, 곧 기교와 정감을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생각했던 고죽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감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죽은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금시조의 비상(飛翔)을 본다. 스승이 그의 재기를 억누르기 위해 내려 주었던 교훈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또한 무엇보다도 고죽이 죽는 순간까지 추구했던 예술혼의 진정성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사람의 아들

 

1. 줄거리

D경찰서에 재직 중인 남 경사는 기도원 근처에서 발생한 민요섭의 피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요섭이 외국인 선교사의 양자(養子)로 자랐으며 뛰어난 성적의 신학도였다가 이단적(異端的) 행동으로 학교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민요섭은 명문 고교 우등생이었던 조동팔의 집에 기거하며 그와 접촉하게 되었는데, 조동팔은 민요섭의 종교 사상에 매료되어 그의 신념을 실천하는 행동주의자가 된다. 한편, 그러한 내용을 탐문해 가던 남 경사는 민요섭이 쓴 소설 형식의 일기를 통하여 민요섭과 조동팔이 추구했던 기독교 부정의 신념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민요섭의 글에서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부모에 의해 훌륭한 랍비(율법사)가 되도록 양육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회의 끝에 기독교적 신념을 포기하고 긴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 후 단식을 통해 ‘위대한 영(靈)’과의 접촉을 이루고 예수와 논쟁한다. 그리고 유다를 부추겨 예수를 고발하게 하고 예수의 최후를 지켜보다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방랑의 길을 떠난다. 남 경사는 끈질긴 수사 끝에 조동팔의 거처를 알아내고, 민요섭을 죽이게 된 배경과 경위를 듣는다. 조동팔은, 기독교 신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신성(神聖)’을 발견한 민요섭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실천하다 민요섭의 기독교 회귀로 자신의 실천력이 희석되는 것을 두려워했노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행동적 신념 유지를 위해 민요섭을 죽이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음독 자살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종교적 이념과 모순된 사회 현실

◎ 성격 : 실존적, 종교(기독교)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의문을 풀어 나가는 추리적 구성

발단 - 기도원 근처에서 발생한 민요섭 피살 사건을 남 경사가 수사하게 됨.

전개 - 남 경사는 민요섭의 글에 쓰인, 신에 대한 부정과 종교적 갈등에 관심을 가짐.

위기 - 글 내용으로서, 아하스 페르츠가 새로운 신을 갈망하며 고행하는 방황의 기록

절정 - 조동팔의 극단적 행동을 반대하며 민요섭은 기독교에 회귀함.

결말 - 자신의 행동적 신념을 위해 조동팔은 민요섭을 죽였다고 고백하며 음독 자살함.

◎ 주제 : 종교(기독교)적 이념과 배치된 사회 현실의 극복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 추구

◎ 출전 : <세계의 문학>(1979)에서 중편으로 출간. 1987년 장편으로 개작. 1993년 다시 부분 손질하여 출간

 

3. 등장 인물

◎ 민요섭 : 기독교 부정의 이념을 지니다가 다시 귀의함. 조동팔의 극단적 행동에 신념 체계를 주입한 인물

◎ 조동팔 : 명문 고교 우등생이었다가 민요섭을 만나 그의 사상을 믿고, 종교 부정의 극단적 행동을 함

◎ 남 경사 : 민요섭 피살 사건의 수사관. 고시 공부와 소설 쓰기 경력의 소유자로 이 작품의 진행자 역할

◎ 아하스 페르츠 :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 예수를 부정함.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민요섭이란 인물의 살인 사건을 담당한 남 경사의 사건의 추적 속에 아하스 페르츠를 주인공으로 하는 민요섭의 소설이 또 하나의 이야기로 담겨 있는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민요섭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서 기독교의 원리와 질서 체계에 회의하고 부정하는 반 기독교적인 모습을 아하스 페르츠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태초에 야훼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에게 낙원을 내려주셨을 때 선악과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힘과 지혜도 주지 않고 원죄로 단죄하여 훗날 이브의 후손에까지 고통의 나날로써 대가를 치르게 하셨을까. 인간에게 악이 있다면 그것은 천지를 창조한 야훼의 책임이며 야훼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악이라면 전지전능의 신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의 신은 인간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방관한 채로 언제일지 모르는 훗날의 막연한 구원만을 기다리라 하는 것인가. 또한 헐벗고 굶주린 인간으로서 지키기 어려운 구원의 조건 - 하늘에 재물을 쌓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인격을 갖춘 사람만이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야훼의 말씀은 또 무엇인가. 민요섭은 후세 기독교인에 의해 사탄의 아들로 알려진 아하스 페르츠를 인간의 정의와 지혜로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인간 세상을 구하려는 진정한 ‘사람의 아들’로서 그려내고 있으며, 이에 맞서 야훼의 아들인 예수를 독선의 상징으로 하여 거짓 ‘사람의 아들’로 부정한다. 이는 죄 많은 인간을 말씀으로써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말씀으로서만 죄업으로부터 회개시키기 위한 예수를 일곱 번 만나 공박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나고 있고, 주인공 민요섭은 기존의 종교계에서 모순을 느끼고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절대적 신의 존재를 찾아 헤맨다. 그가 꿈꾸는 완전 무결한 ‘신’을 찾아 헤매는 과정들이 독자로 하여금 '신'과 '종교'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사람의 아들” 을 단순히 종교를 주제로 한 소설로만 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책이 쓰여진 197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사회적인 입장에서 본 기독교의 원리에 대한 부정은 사회에 편재해 있는 온갖 부정과 불평등에 대한 특권층의 합리화를 부정하기 위함이다.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려 한 민요섭과 조동팔의 시도가 끝내는 실패한 까닭도 사회의 모순에 있다고 한다. 사회의 잘못에 무감각한 인간들과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인식 속에서 민요섭은 지치게 되고 조동팔의 의지도 꺾이고 만 것이다. 이들이 세운 신은 인간들 스스로의 자체적인 구원을 희망한다. 신의 힘으로 인간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와 인간의 정의를 통한 용서와 구원,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의도는 기독교의 모순을 통해 사회를 성찰하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두 젊은이의 시도를 실패하게 하는 원인으로 사회의 모순과 무감각을 들고 있고, 신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인 것이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 줄거리

자유당 말기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가 시골로 발령 나는 바람에 시골학교로 전학 온 한병태는 시골학교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한다. 서울에서 그런 대로 인정받았던 그는 학급을 휘어잡고 힘을 휘두르는 엄석대에게 강한 불만과 반감을 나타낸다.

반장을 맡고 있던 엄석대의 힘은 대단했다. 아이들은 엄석대에게 반찬을 갖다 바치기도 하며 물 당번을 정해 물시중까지 들고 있었다. 그는 거의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대신 시험을 쳐주기도 하며 다른 아이의 물건을 거의 강제로 빼앗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 권력에 빌붙거나 순응한 채 살아간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권위에 도전한다. 담임 선생님에게 엄석대의 잘못을 이르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몰이해와 아이들의 소외만이 되돌아온다.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결국 한병태는 외로운 저항을 포기한다. 석대의 권위에 굴종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석대는 유일하게 저항하다가 포기한 한병태를 제2인자로 인정한다. 병태 역시 석대 밑에서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그냥 받아들인다. 4․19로 온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젊은 선생님이 반을 맡게 된다. 엄석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반의 분위기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새 선생님은 석대를 신임하지 않는다. 권력이 몰락하는 기미를 눈치 챈 아이들은 앞다투어 석대의 잘못을 일러바친다. 병태만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 반의 권력자에서 비웃음 당하는 문제아로 몰락한 석대는 모욕감을 느끼며 교실을 뛰쳐나간다. 30년 세월이 지나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병태는 엄석대를 다시 보게 된다.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민중의 민주 의식과 정치 현실이 낙후되었던 4․19 시대) / 공간(어느 시골)

◎ 성격 : 사실적, 풍자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구성 : 역순행적(회고적) 구성

발단 - ‘나’는 아버지의 좌천으로 시골로 전학을 가고 절대 권력의 ‘엄석대’를 만난다.

전개 - ‘나’는 ‘엄석대’ 체제에 저항하다가 질시와 배척을 받게 되고 소외당한다.

위기 - ‘나’는 절대 권력의 체제에 더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보이고 순응하며 동조한다.

절정 - 새로운 담임에 의해 ‘엄석대’ 체제의 허구성이 드러나며, 민주적 질서를 회복한다.

결말 - 사회인이 된 뒤 현실의 부조리를 느끼며 살던 중, 잡혀가는 ‘엄석대’를 보게 된다.

◎ 주제 : 절대 권력의 허구성과 부조리한 현실에 이기적으로 적응하는 소시민적 근성 비판

◎ 의의 : 권력의 실상을 생활 영역에 확대하여 한국적 정치 현상을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

◎ 출전 : <문학사상>(1987)

 

3. 등장 인물

◎ 나(한병태) :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고를 지닌 성격으로 엄석대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현실의 부조리함에 좌절하는 인물

◎ 엄석대 : 절대 권력을 지니려 하며, 반 아이들의 이기적 속성을 교묘히 이용할 줄 아는 인물

◎ 아버지 : 현실의 가치를 긍정하는 인물

◎ 5학년 담임 : 방관자적이고 현실 순응형의 인물

◎ 6학년 담임 : 개혁적 의지를 실천하면서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존중하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1987년 <문학사상>에 발표, 자유당 정권 말기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시골 국민학교 상급반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권력과 그 주변 인물의 속성을 그린 단편 소설로서 ‘엄석대’라는 급장으로 전형화된 권력,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쉽게 달아오르고 무섭게 변절하는 반 아이들의 기회주의 근성을 그려 나가면서, 권력의 무상함과 거기에 기생(寄生)하는 변절적 순응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권력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국민학교 교실이라는 축소되고 집약된 공간을 통해 조명해 본 작품이다. 절대 권력이 지닐 수밖에 없는 허구성, 그리고 그 허구성의 형성 배경은 주변의 방조와 묵인에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그렇게 하여 형성된 권력이 제도와 질서라는 미명하에 군림한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 준다. 바로 ‘엄석대 왕국’의 세계이다. 여기에서는 민주적 사고 방식이 철저히 외면당한다. ‘나’의 체제 저항과 도전은 결국 좌절하게 되고, 절대 권력 ‘엄석대’ 주변에는 곡학 아세(曲學阿世)하는 어용(御用)과 굳어진 대세를 추인(追認)하는 무능한 담임, 그리고 사회 의식이 결여된 학급 아이들, 곧 즉자적(卽自的)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민주 체제로의 가능성이 없었던 환경은 새 담임에 의해 변혁을 겪는다. ‘엄석대’ 체제의 붕괴이다. 그러나 ‘엄석대’의 권위와 횡포는 다수의 아이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 물러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정확히 인식한다. 즉, 새 담임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반 아이들의 반성과 자각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나’ 역시 복종의 달콤함에 안주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과거의 사건을 성장한 ‘나’(한병태)가 회상하는 형식인데, ‘나’는 엄석대에게 도전했던 유일한 인물이었지만 ‘나’ 역시 자신의 힘으로 권력의 횡포를 막지 못한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지식인적 허무주의도 짙게 깔려 있다.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면 흥미롭다. 자유당 말기 정치적 바람을 맞아 좌천된 부친을 따라 시골로 전학을 간 ‘한병태’는 강력한 힘을 가진 반장 ‘엄석대’에 의해 자신의 학급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반장은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전체주의적 권력 기관인 ‘빅 브라더’처럼 급우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또 아이들은 모두 거기에 순응해 살고 있다. 그러나 반장은 단순히 억압적이지만은 않다. 때로는 미묘한 협박을 통해, 때로는 은밀한 회유를 통해 반항하는 세력을 결국 자신에게 굴복시키고 예속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이다. ‘한병태’ 역시 처음에는 정면으로 반장의 억압과 횡포에 맞선다. 그러나 고도의 독재자인 반장은 그를 처벌하는 대신, 그의 주변 인물들을 괴롭힘으로써 ‘한병태’를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은밀한 위협과 거절할 수 없는 회유 공작을 시작한다. 담임교사와 학교당국은 철저하게 무능하고 부패해 있으며 심지어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반장 편을 들어준다. 결국 ‘한병태’는 살아남기 위해 권력의 위협과 회유에 굴복하고 독재자와 타협한다.

 

<참고> 등장 인물 분석

◎ 나(한병태) : 이 작품의 화자이다. 엄석대와 대립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유와 합리를 신봉한다. 엄석대의 독재에 맞서지만, 지원자 없는 고독한 투쟁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석대의 우산 속에서 지위를 부여받고 안락을 누린다. 석대의 몰락에 즈음했을 때도 석대에게 비난을 퍼붓지 않고 동정적 시각을 가진다. 그런 면에서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한편 석대를 추종하던 아이들의 비겁에 대해, 석대의 독재보다 더 큰 경멸을 보낸다. 30년이 지난 뒤, 석대의 몰락을 보고 다시 한 번 아픔에 잠긴다.

◎ 엄석대 : 교실 공간이란 왕국의 제왕이다. 철저한 독재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계획도 면밀하며, 행동은 일사불란하게 행한다. 그리고 목표가 주어지면 그것을 이루어 내고야 만다. 그러면서 자신의 권능을 강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역에 들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공략을 통해 자기편으로 만들고 만다. 지적인 능력과 야만성을 동시에 갖춘 능력자로 부각된다. 그러나 그 힘은 부정하게 생성되는 것이다.

◎ 5학년 담임 : 학급이 순조롭게 운영되기만 하면 그 절차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석대의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지원자이면서, 얼굴을 석대의 이면에 감추고 있다. 학급 문제에 대해 솔선해서 해결할 만큼의 적극성도 없이 기존의 현상에 안주하려 한다. 익명성의 폐해를 가장 여실히 보여 주는 부정적 인물이다.

◎ 6학년 담임 : 전 담임과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개혁자이다. 그는 부정한 방법에 의한 통치에 대해 칼을 들이댄다. 그런 면에서 혁명가이다. 그러나 그 변혁은 자신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 아이들의 역량을 키워 주는 것에는 이르지 못한다. 새 질서를 만든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인물이지만, 그것을 주도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부정적일 수 있다.

◎ 아이들 :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이다. 석대가 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할 때는 아부와 굴종을 서슴지 않다가, 석대가 몰락하자 악담을 퍼붓는다. 그런 만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저열한 인간들이다. 이들은 결국 우리 현대사의 민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정치의 부정성은 이런 민중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 익명의 섬

 

1. 줄거리

저녁 식사 후 남편은 TV를 보다가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익명화 될 수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도덕적 타락, 특히 여자들의 성적 타락을 개탄하며 어린 시절의 ‘동족 부락’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섬광처럼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부임한 어느 시골 국민학교의 동족 부락에서의 일이었다. 그 마을에는 깨철이라는 떠돌이 사내가 있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는 그가 하는일은 무엇이든지 묵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의식주도 이집 저집 어느 곳이든지 다니면서 해결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깨철의 존재를 끊임없이 관찰하던 나는 여름방학 중 알게 된 지금의 남편과 열애(熱愛)를 하던 동안에는 깨철이란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깨철이가 느닷없는 충격으로 나를 덮친 것이다. 당시 남편은 군에 있었다. 나는 남편이 휴가 나오기만 기다렸으나 남편은 아파서 오지 못한다고 했다. 남자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던 날, 억제된 성(性)과 허탈감으로 집으로 오던 중 소나기를 피하려고 길가 어느 집 창고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깨철이가 나를 범한 것이다. 그때 깨철이는 여자들이 언제 자기를 원하는지를 안다고 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그 동안 숨겨져 있던 동네의 아낙들과 깨철이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이 동족 부락의 폐쇄성이 가져다 주는 여자들의 성적 불만은 익명의 사내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것이 깨철이라는 사내를 통해 구현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묵인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같이 근무하는 남자 교원에게 그 동안 관찰해 온 깨철이란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 교원도 깨철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남자들 역시 동족들 사이에서의 체면을 위해서, 또 익명의 사내 깨철이의 뒤끝 없음을 믿고 그를 묵인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 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이 마을을 떠나던 날, 정류소로 나오던 나는 깨철이를 만나게 된다. 나의 후임으로 오는 여자 교원에게 깨철이의 일을 이야기해 주려고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그것은 그도 언젠가 깨철이가 필요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배경 : 동족으로 구성된 시골 마을

◎ 주제 : 인간의 관습과 의식 속에 존재하는 익명의 윤리

 

3. 등장 인물

◎ 나 : 관찰자. 윤리성에 갇혀 있는 현대 여성

◎ 깨철 : 윤리적인 터부 때문에 익명으로 보호되는 존재

 

4. 이해와 감상

<익명의 섬>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명(匿名)의 섬이 많아지고 있음을 경계함과 동시에 또, 그것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익명 투성이뿐이다. 이는 각박한 사회 현실이라는 익명이 도덕적인 타락을 가져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익명 자체에 대한 신뢰 때문에 묵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동족 부락의 일례를 통해서 고립된 개인 사회에서는 더욱더 익명의 섬이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필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가 익명의 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있는 익명성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 필론의 돼지

 

1. 줄거리

주인공 ‘그’는 제대를 하고 군용 열차를 이용해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두메 산골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학력을 속여 그와 함께 훈련을 받고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함께 제대를 하게 된 홍동덕을 만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기만 하던 홍동덕은 군 생활 30개월만에 세상 때가 가득 묻은 엉뚱한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이들 두 사람의 만남과 함께 군용 열차가 가고 있을 때, 불량스러운 현역 군인 일당이 차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제대병들에게 강제로 돈을 뜯는다. 이러한 폭력적 사태에 아무도 손을 못 쓰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주인공 ‘그’도, 홍동덕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제대병들을 일깨워 마침내 그 불량 군인들을 집단 구타하게 된다. 이 집단은 이성을 잃고 마침내 그 불량 군인들이 죽을 지경까지 계속 구타를 한다. 이 때 속수 무책으로 사태만 보고 있던 ‘그’는 필론이라는 현자(賢者)가 폭풍으로 흔들리는 배 속에서 보았다고 하는 돼지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폭풍으로 세차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돼지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쿨쿨 편안히 잠만 자고 있었던 것이다.

 

2. 이해와 감상

1989년에 간행된 소설집 <필론의 돼지>에 수록된 작품. 위기의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일면을 그려, 인간이 지닌 본원적 모습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위선과 모순을 주제 의식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 ‘그’에 대하여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무능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약점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참고>

□ 이문열의 언어-사물화된 지성 : 이문열 소설을 읽으면 말할 수 없는 어떤 답답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부정과 긍정의 두 측면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긍정의 측면은 현실을 너무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위로서의 진실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런 진실이 인간이 사는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진다. 그래도 그런 진실을 신화적 세계에서나마 찾고 싶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진실이 없는 것도 사실일 수 있지만, 없는 진실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실이 있다는 것도 진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극은 이 당위와 존재 사이의 간격에서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어야 할 것으로 믿고, 또 어딘가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간 그런 이야기를 접해 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진실로 그런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 이문열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문열의 초기 작품은 낭만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잃어버린 아름다운 사랑을 되돌아보기, 젊은 날의 쓸쓸한 고뇌와 그 지성적 몸부림의 추억들, 이런 것들로 우리를 애잔하지만 아름다운 세계로 곧장 이끌었다. 그가 그런 낭만적 세계에 바탕을 둔 이유는, 필자 생각으로 낭만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세계에서 낭만을 생각하는 아픈 몸짓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문열은 초기의 낭만적 경향에서 차츰 이 사회의 생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넓혀 갔다. 그 탐구의 결과는 인간은 결코 신뢰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는 따뜻함은 없다. 차가운 지성의 목소리가 결국 배어 나오고 마는 것이다. 이문열의 소설은 그것이 지적인 탐구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지적인 언어, 다시 말하면 관념적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면, 그의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교과서와 같은 교양을 충분히 담으면서도 그의 언어는 언제나 구체적이고 사물화되어 있다. 이것은 그의 소설이 문학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을 읽을 때, 한 순간도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그 지적인 깊이와 함께 문학적 매력이 우리를 붙잡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읽었듯이, 이문열은 인간의 삶, 특히 인간 관계의 삶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것의 생리는 무엇이며, 그로 인해 어떻게 인간의 삶이 결정되고 또 살아가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초점화된다. 이 작품에서도 집단과 개인이라는 사회의 진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구체화되면서 이문열 특유의 탐구 작업이 수행되고 있다.

□ 슬픈 민주주의의 역사 : 이 작품의 사건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제대병이 탄 기차에 특수부대 현역 군인이 타서 폭력을 휘두르며 돈을 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제대병들의 행동이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듯한 사건 자체를 그리려고 했다면, 그것은 흥밋거리에 불과해진다. 그러나 이문열은 언제나 특수한 사건에서 보편적 진실을 이끌어 내는 마술을 지니고 있다. 이 작다면 작은 사건으로 그리려고 하는 것은, 객차라는 공간을 인간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해 드러나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과 본질이다. 우선 이 객차의 주인은 제대병이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된 열차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자격이 주어져 있다. 그런데 이 주인에게 폭력과 갈취를 일삼는 무리, 즉 검은 각반을 찬 특수 부대원이 난입하여 주인들을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구조와 생리 자체이다. 국가의 주인은 백성이다. 그러나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주인 위에 군림하며 주인을 부리는 소수의 집단이 있게 되는데, 그들이 이른바 권력자들이다. 권력은 백성이 부여해 준 힘이고 백성이 부여해 준 힘대로 그것이 행사된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준 힘을 되찾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모순에 찬 현실인 것이다. 현역이 제대병에게 돈을 거두어들일 명분은 어떤 경우에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억지 논리로 돈을 강요한다. 그것은 이 제대병들이 육군 졸병 출신들이고 자기들은 고생하는 특수부대원이라는 것이다. 즉 육군은 집단의 수가 많은 만큼 그들은 잡부스러기와 같은 존재이며, 특수 요원은 비록 수효는 적지만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선택된 계급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평등과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원래의 위상이 차이가 나므로 의당 그들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 작품에 그려지고 있는 실상은 사실은 허구이지만,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왔고, 한 번쯤 군용열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그 상황이 실제 상황임을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현실을 매우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얼토당토 않은 상황은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문화적인 배경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의 역사는 짧았고, 또 그 민주주의의 자유와 합리를 터득한 자들도 모자랐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순이 사회에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무서움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독재의 완강한 지배 이데올로기는 민중들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으로 통제하였으며, 여기에 길들여진 민중들은 그런 일이 되풀이되었고, 그것이 한 개인의 힘으로는 퇴치할 수 없는 구조적인 것으로 변질되었을 때는 그것을 마치 자연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이는 타성에 젖어 버린다. 검은 각반들이 객차에 와서 술값 조로 돈을 청할 때, 별다른 거부 반응이 없는 상황이 이것을 말해 준다. 이렇게 지배의 속성은 언제나 지배와 맹종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슬픈 것이었다.

□ 저항의 몇 가지 방식들 : 그러나 이 작품이 그런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렇게 답답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폭력의 본질을 파악하는 아픔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의욕도 함께 수반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으며 우리가 절망에 빠지는 진정한 이유는, 그 폭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 앞에 선 민중들의 속물 근성에 있는 것이다. 민중은 다수이고, 그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우리는 인간에 대해 신뢰할 수 없으며, 참담한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검은 각반들이 들어와 폭력을 휘두르고 돈을 거둬 가도 말없이 순종할 뿐이다. 더구나 대학까지 마쳤다는 주인공 그의 태도는 이 폭력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이 노무 차에는 헌병도 없나? 만날 이 꼴이고.” 앞좌석 홍이 마치 그의 기분에 맞장구라도 치듯 투덜거렸다. 그는 갑자기 홍이 밉살스러웠다. 몇 명의 난폭자에게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는 백여 명의 동료들에 대한 혐오감이 갑작스레 홍에 대한 증오로 변해 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내 그 증오는 다시 혐오로 되돌아왔다. 아, 나의 팔은 너무 가늘고 희구나, 내 목소리는 너무 약하고, 내 심장은 너무 여리구나, 저들의 폭력을 감당하기에는, 학대받고 복종하는 데 익숙한 내 동료들을 분기시키기에는. 그는 참담한 자기 혐오감에 떨고 있다. 그의 여린 지성과 유악한 성격은 야만적 폭력 앞에 아무런 힘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앞좌석의 홍똥덩이에게 증오감을 가지는 것은, 자신이 홍과 다를 바 없다는 때문인데, 그것은 치욕과 같은 일이라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홍은 국졸도 아닌 학력의 무식한 머슴 출신이다. 홍과 그는 군대라는 사회에서 같은 구성원이었다. 외형적으로 똑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치욕으로 느껴진다. 대학을 마친 지성인과 무식쟁이 촌놈이 동등한 위상이 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폭력자들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홍이나 그나 다를 바 없다는 데 이르면 , 그의 참담한 절망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결국은 무기력한 지성에 대한 자기 혐오의 감정이 홍에게 투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의 당사자에 대한 증오감이 아니라 홍에 대한 증오감으로 번질 때 이 지성은 너무도 허약한 것이고,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다가 영웅이 드디어 등장한다. 그 폭력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용감하게 일어선 제대병 하나가 각반들의 폭력성과 맞먹는 완력과 자신의 경력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결국 ‘그’와 같은 지성의 힘이 아니라, 폭력자들과 같은 완력으로 그들과 맞서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영웅도 폭력자의 회유에 의해 이내 위력을 잃고 만다. “냄새나는 땅개 새끼들하고 어울리지 말고 우리 같이 한 잔 하지.”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영웅은 결국 ‘땅개 새끼’보다 나은 위상의 각반들의 세계로 편입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현대사에서 폭력에 항거하던 사람들이 폭력자의 편에 가담해 버린 경우는 너무도 많았다. 그것이 우리들의 우울이었다. 그 다음의 도적자는 매우 이지적인 제대병이다. 그는 이 일이 매우 부당하다고 하면서 법적인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자신의 뜻을 당당히 말한다. 그러나 각반들은 그에게 주먹을 날려 버리고 그 제대병은 결국 쓰러진다. 폭력에 대한 항거의 또 다른 방식이지만, 그것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도대체 폭력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양심자들이 권력의 부정성을 고발하다 철퇴를 당한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면, 이 방법 또한 무기력한 힘이었다는 걸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폭력자들이 지니고 있는 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흩어진 개인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다. 한 제대병은 개인의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항거의 의지를 그의 언술로 끄집어낸다. 이것은 개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인데, 자아의 발현을 촉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 혼자서 되지 않으면, 여럿이 붙어서라도 그 폭력에 맞서고 폭력자들에게 맹렬한 반격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에 있어서도 그랬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한 걸음 진전된 것도 그 동안의 성과였다. 이문열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 민중에 대한 불신 - 비열한 지성의 허위 : 그러나 우리는 이문열의 의식에 대해 야릇한 반발을 또 가지게 된다. 그것은, 그가 민중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중들이 권력에 대해 항거하는 행동 또한 폭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가치 판단을 하고 있다. 제대병들은 마침내 폭력자들을 징계하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 동안 억눌렸던 억울함에 대한 반동으로 그들은 이성을 잃고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거꾸로 각반들이 처참한 폭력 앞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대병들은 그칠 줄 모른다. 얼마 전까지 비굴한 굴종을 하던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야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그’는 그 형태를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것을 그는 대의를 상실한 맹목적 폭력으로 규정한다. 제대병들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살기 등등한 그들을 보며 그는 문득 섬뜩한 상상에 빠졌다. 만약 이 검은 각반들이 죽는다면? 만약 이들을 진실로 죽여야 할 대의가 있다면, 그에게도 동료 제대병들과 함께 살인죄를 나눌 양심과 용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곳을 지배하는 것은 눈 먼 증오와 격앙된 감정이 있을 뿐, 대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어떻게든 이들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무참히 묵살 당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지 않았던가. 동료들이 부상당하고 피해를 당하고 있을 때 그들을 분기시키지 못했던 것처럼, 이제 불필요하게 난폭하게 잔인해진 것 또한 만류할 능력은 그에게 없었다. 주인공 ‘그’는 대의가 있다면 살인죄를 나눌 양심과 용기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허구에 찬 발언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 용기가 없어 각반들의 폭력에 속수무책이었던 자이다. 그런 제대병들에게 대의를 찾으려 하는 것은 위선이며 진실의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의 폭력에 맞서는 방식에 대해서 대의와 명분을 생각하는 태도를 바람직한 지성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주인공의 잘못된 인식을 보게 되거니와 이 작품에서도 그런 점은 보인다. ‘그’는 아무래도 각반의 폭력보다 제대병의 폭력에 대해 더 야멸찬 경멸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민중의 폭력에 대해서 더 큰 비애를 느끼고 있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바라보는 것을 균형 잡힌 지성이라 여기고 민중들보다 훨씬 높은 데서 바라보는 인식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그’는 한 마디로 냉소적 지성의 소유자이다. 사건의 중심에 한 번도 서지 않으면서 그 사건의 문제를 간파했다는 정신적 우월감이 비애감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홍동덕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그는 홍동덕을 아주 경멸한다. 세상을 사는 요령을 터득한 속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성과 속물은 그 속성이 정반대이다. 그러나 그 속물이나 지성이 함께 취급받고 또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이르면 그 슬픔과 비애의 감정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는 제대병들이 벌이는 난동의 와중에서 벗어나고 만다. 그가 그 곳을 떠난 것은 적어도 인간에 대한 지적인 인식에서 온 것이다. 인간의 야만성은 본질적인 것이며, 그런 부정성은 다스려지지 않을 야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떴던 것이다. 그 때의 그의 심정은 비애와 절망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무겁게 드리운 침통함으로 다른 객차에 왔을 때, 이미 와 있는 홍덕동을 보고 그는 엄청난 충격에 휘말리게 된다. 홍동덕도 그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홍동덕은 일신의 편안함을 위해 자리를 떴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과는 동일한 것이다. 지성적 참담함이었든지 속물적 보신(保身)이었든지 간에 그 행위 자체는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는 세상 자체에 절망하고 있다. 그와 같은 지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참담한 깨달음이 그를 슬픔으로 몰아 넣었으며, 그런 당위적 가치는 소중한 것이라고 믿었던 신념이 무너지는 아픔에 잠기는 것이다. 이문열이 주인공 ‘그’를 이런 문제 인물로 그림으로써 지성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면, 이문열은 ‘그’라는 인물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읽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에게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시각은 곧 작가의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밀착되어 있다. 만약 주인공을 비판적으로 그리려 했다면, 어조에서 그런 비판의 목소리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런 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또 이문열의 다른 작품에서의 주제 의식으로 볼 때도,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그’는 냉소의 대상은 아니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이문열의 보수주의적 색채가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의 의식의 저변에는 지적 우월감에 대한 완강한 집착이 웅크리고 있고, 천박한 의식과 행동에 대한 경멸이 뿌리 깊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문열의 소설은 힘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심층 심리 속에 자리 잡은 원형적 세계의 비밀을 고통스럽게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성격이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부정적인 것이라 해도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순을 지닌 존재이다. 그 모순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한다. 이문열은 감추어진 그것을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바라보게 한다. 이것이 그의 지성이고 힘이다.

 

▶ 황제를 위하여

 

1. 줄거리

잡지사 기자인 화자(話者)가 [신역 정감록]이란 책을 받아든 뒤, 새로운 기사거리를 위해 취재차 계룡산으로 갔는데, 거기서 우발산이라는 노인을 만나 [백제 실록]이라는 책을 보게 되고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뒤, 잡지사를 그만두었는데, 노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황제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록을 찾을 수 없어 옛날에 들은 기억을 더듬어 연의(演義) 형식을 빌어 이 글을 쓰게 된다. 황제는 1895년 정 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황제는 정감록에 나오는 정 진인(眞人)이 자신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어 이씨 왕조가 망하게 되면 정씨 왕조가 열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천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옛 성현의 글에 따라 익히며 자란다. 황제는 그 후 조선말의 어지러운 세태에 쫓겨 여기저기에서 흘러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받들어진다. 연속되는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고 정감록의 예언에 따라 모든 일정을 행한다. 그러나 황제는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1972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야 자신이 꿈속에서 헤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조선 말 ~ 현대

◎ 주제 : 기인(奇人)인 황제를 통하여 본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

 

3. 등장 인물

◎ 황제 : 남조선의 창건주. 비현실적이며 거룩한 인격의 기인(奇人)

 

4. 이해와 감상

<황제를 위하여>는 장자(莊子)의 무위(無爲)를 이상으로 하고 있으나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비판하는 작품으로서, 전통에 대한 작가의 회귀 의식과 거부 의식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품이다. 즉, 황제라는 인물을 통하여 깨끗한 삶을 요구함으로써 깨끗한 삶을 인간의 진실된 덕목으로 취급하지만, 불합리하고 모순된 사회에 대한 비판도 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문체이다. 그의 소설 <사육제>에서 처럼 문체가 간결하고 빠르며 유장하다. 이것은 한문 실록 등을 서술할 때 유감 없이 발휘된다. 장엄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문체는 비(非)사실이란 문제의 차원에 적합한 서술 스타일이다. 그는 이러한 스타일의 문장을 통하여 매우 숙련된 작품을 이끌어 내는 스타일리스트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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