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열등감의 표현
불안·열등감, 그래서 그들은 브랜드를 찾는다
쉿! '그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당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타깃이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냐고? 기업이다.
소비자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산업이 해가 다르게 발달한다. 스마트폰이 당신의 위치를 추적한다. 포인트 카드가 당신의 소비를 기록한다. 할인매장 카트에 장착된 위치 추적장치가 당신의 동선(動線)을 전송한다. 이제 기업은 당신이 어디 살고 얼마 벌고 뭘 잘 먹는지 안다. 간밤에 어떤 야동을 보고 무슨 요일 몇 시에 지름신이 강림하는지 안다. 기업은 소비자를 다양한 카테고리로 나눠 맞춤 광고를 쏜다.
순진한 사람은 "내 취향 알아주면 편하고 좋지 웬 호들갑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보험회사가 당신이 약 사먹은 기록을 눈여겨보는 게 설마 나중에 보험금 많이 주려고 그러겠는가?(319 ~353쪽)
이 책은 신랄하다. 오늘날 기업이 얼마나 집요하고 지능적으로 소비자를 공략하는지 낱낱이 독자에게 고해바친다. 저자는 뜻밖에 사회학자도 시민운동가도 아닌 '마케팅업자'다.
저자 린드스트롬은 수많은 다국적 기업과 왕실을 고객으로 거느린 현역 컨설턴트다. 2009년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00인'으로 꼽기도 했다. 원제가 책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브랜드에 세뇌되다'(Brandwashed).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을 따라 한다. 2008년 영국 리즈대학 연구팀이 수많은 사람을 넓은 실내에 풀어놓고 "아무렇게나 걸어보라"고 했다. 몇몇 사람만 사전에 따로 불러 "이러 저러한 방향으로 가라"고 했다. 막상 실험이 시작되니 모든 사람이 그들 몇몇을 무의식적으로 뒤따라갔다.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취향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은 옆 사람 선택에 휩쓸려간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은 빠르면 생후 6개월에 벌써 특정 브랜드 로고를 인지한다. 두 돌이 되기 전에 CM송을 따라부른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 되면 200개 안팎의 브랜드를 기억한다. 수많은 기업이 10~12세 소녀들을 '게릴라 마케터'로 모집해 화장품·옷·장난감 샘플을 나눠주고 이벤트를 후원한다. 자기네 브랜드를 어린 나이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인간 심리 중 기업이 가장 쉽게 촉수를 뻗는 것이 '공포'다. 신종플루가 창궐하자 대형 유통업체가 '예방 키트'를 앞다퉈 내놨다. 이온을 뿜는 공기청정기를 포함해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죄의식과 허영심은 곧잘 불가분의 한 쌍이 된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를 출시해 히트를 쳤다. 프리우스 운전자를 조사해보니 57%가 "나 자신을 잘 대변해준다"고 프리우스를 구입한 이유를 댔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나는 개념 있는 소비자"라고 뽐내고 싶었다는 얘기다. 착한 소비가 '면죄부'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이브리드차를 모는 운전자들을 조사해보니 일반 운전자보다 주행 거리도 길고, 교통 위반도 많이 하고, 심지어 보행자를 치는 사고도 더 많이 냈다(299~301쪽).
마케팅의 꼬임에 가장 쉽게 넘어가는 게 아시아 사람들이다. 루이비통은 일본에 들어갈 때 일본 여성이 프랑스에 대해 품은 환상을 십분 활용했다. 다른 지역 매장보다 일본 매장을 유독 '프랑스풍'으로 꾸몄다. 프랑스인 매니저를 배치해 우수 고객에게 프랑스산 샴페인을 따라줬다. 루이비통은 제품 상당 부분을 인도에서 생산하지만, 일본에 들어가는 제품만은 '메이드 인 프랑스'로 채웠다. 저자 린드스트롬은 "아시아 사람들이 명품에 약한 건 불안감 때문"이라고 꼬집는다(191쪽). 잘산 지 얼마 안 된 나라 국민일수록 요란한 브랜드를 좋아한다.
린드스트롬은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이 8~18세 어린이와 청소년 2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결과를 소개한다. 연구팀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묻고, 미리 제시한 100개의 단어와 이미지로 대답하게 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비물질적인 항목을 댔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올랐을 때(성취), 친구와 스케이트보드 타러 갔을 때(유대감) 행복했다는 식이었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새 옷이나 아이팟처럼 소유와 관련된 항목을 댔다(181쪽).
이쯤에서 린드스트롬이 이 책을 쓴 이유가 뚜렷해진다. 그는 독자에게 "당신 정말 행복하냐"고, "당신이 방금 카드로 긁은 그 물건, 정말 꼭 필요한 거 맞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2008년 추수감사절 세일 때 뉴욕주(州)의 한 월마트 매장에서 경비원이 쇼핑 인파에 밟혀 죽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금융위기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서민들이 '세일'에 이성을 잃었다"고 썼다. 이제 달리 볼 때가 됐다. 그날 경비원을 밟고 매장에 밀려들어간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물건을 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