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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생존자 편향, 엔트로피, 카오스, 플로리안 아이그너

Jobs 9 2022. 5. 13.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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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플로리안 아이그너

확률 1/8,140,000 = 0.000012285% 로또 1등 당첨확률이다.

확률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로또 1게임을 구매했는데, 그것이 1등에 당첨될 확률이 0.000012285% 라는 의미다. 만약 당첨되면 그건 우연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이렇듯 우연이란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을 말한다. 이러한 로또 1등이라는 우연도 매주 몇 명씩은 당첨 된다.

 

우연적인 일이 로또만 있겠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이한 일들도 경험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온다던지, 정류장에서 수 십년 만에 우연히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과 행선지가 같다던지 등등 세상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우연적인 일들이 의외로 많다. 이처럼 우연은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나 놀라움, 때로는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그런데 인간 본능상 거기에서 어떤 연관성이나 관련성을 찾으려고 할 때 문제가 된다.

 

저자는 성공에도 우연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는 무작정 흡수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연이 지배하는 삶에서 ‘승리자 및 성공한자’ 들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영리한 전략이 아니다.(성공한 뒤에 과거를 회상하며,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 현재 이 자리에 도달하게끔 영향을 미친 성공 요소들만 뽑아낸다는 점에 더욱 그렇다) 그들과 똑같은 과정을 밞아가며 노력했더라도, 결국 실패해서 우리 눈앞에 사라져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것을 판가름 하는 결정적인 역할이 ‘우연’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장하면 노력은 쓸데없는 것이고 우연이 중요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근대 사회로 들어와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개인의 노력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우연을 부정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높다. 기계론적 세계관 관점으로 세상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엄격하고 굴러가고 인과관계도 뚜렷하다. 피나는 노력이라는 원인이 있어야 성공이라는 결과로 귀결되는 것처럼, 그 안에 우연이 설 자리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는 ‘우연’ 과 친하지 않다. 그러나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우연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앞서 우연은 왜 발생하고, 우리는 우연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지는 먼저 살펴보자.

 

먼저 우연은 왜 존재하고 발생하는 것일까? 아직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밝힐 수 있을지도 의문시되지만), 물리학 분야에서 우연을 시간의 흐름과 관련지어 연구하는 학자들이 제법 많다. 저서에도 제시되었지만, 시간은 엔트로피(무질서 정도)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연은 어떻게 보면 무질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질서는 왜 생기는 걸까? 바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상호작용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사건과 사건들 사이에도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좀 더 시야를 확장해 보면 세포와 세포 사이에도, 원자들 간에도, 동식물간에도, 행성과 행성들 간에도,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질들이 상호작용한다고 보면 된다. 상호작용하는 개체 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호작용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풋과 아웃풋 사이에 무질서가 나타나고, 그만큼 ‘우연’ 이 개입될 여지가 높다. 

 

두 번째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왜 우연을 잘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 부분은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뇌는 패턴을 인식하고 맥락을 찾아내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패턴을 인식하고 범주화할 수 있어서, 모든 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선험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각기 모양이 다른 포식자들을 모두 경험해 봐야 안다면, 우리는 결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패턴을 인식하는 데 너무 성급하고 쉽게 연관을 지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도 분명 진화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에 우리 본능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거진 수풀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를 포식자로 연결 지어 일단 도망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 실제로 포식자가 나타나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해 보고 행동했다면,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십중팔구 잡아먹혔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생존한 조상들의 자손이기에 패턴을 인지하고 연결 짓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해야 하며, 거기에는 일련의 질서가 담긴 패턴이 있다는 확고부동한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우연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눈가리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은 우연과 의미 있는 맥락을 구분하는데 서투를 뿐만 아니라 진짜 우연을 모방하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p.199)

예를 들어 동전을 여러 번 던졌을 때 정말 우연히 앞면 혹은 뒷면이 연속으로 길게 나올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우연은 이따금 눈에 띄는 패턴을 만들어내며 이렇게 눈에 띄는 패턴을 회피하는 것이 오히려 눈에 더 잘 띄게 된다.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패턴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인간과 우연 발생기의 차이점이다(p.200-201)”



진화 과정에도 ‘우연’ 이 많이 개입된다. 바로 돌연변이 라는 ‘우연’ 이다. 돌연변이는 세포 분열 중에 DNA를 복제할 때, 외부적인 요인으로 우연히 일어난다. 모든 생명체에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다양한 생명체들과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을지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우연의 산물이고, 우연 없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없이 우연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이 세상에는 가능성이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가장 낮을지도 모른다”

 

 
1. 삶은 거대한 행운게임

-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 : 카오스 이론은 작고 사소한 우연이 얼마나 극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양자물리학은 우연이 아주 작은 입자들의 낯선 세계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p.9) 

 - 우리는 실제로는 우연이 지배하는 곳에서 어떤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사실은 오로지 운이 좋아서 성공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p.10)

 

2. 성공은 다 운이다?

- 대부분의 성공은 사실은 순전히 우연 덕분이다

- 성공에 대한 조언이 쓸데없는 이유 : 무언가를 해내고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집중하다 보면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생존자 편향’ 이라고 한다. 이 개념의 유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비행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투기 투입 후에 귀환한 전투기들을 조사하다가 총탄 자국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비행기 몸체의 특정한 부분들이 적군의 공격을 더 집중적으로 받은 듯 보였다. 따라서 비행기 몸체 중 총탄을 집중적으로 맞은 부분들을 더욱 보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통계학자였던 왈드는 이것이 멍청한 결정임을 알아차렸다. 전투기에 난 총탄 자국은 전투기가 무사히 귀환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오히려 격추되어 귀환하지 못한 전투기들이 중요한 부분에 총탄을 맞아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거라 추측했던 것이다. 따라서 왈드는 귀환한 전투기들 중에서 오히려 탄환 흔적이 없었던 부분들을 더욱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았다. 우연이 지배하는 삶에서 운이 좋은 승리자들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영리한 전략이 아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패자들의 운명도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살아 돌아온 자, 성공한 자에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운이 좋지 않아서 실패한자, 그리고 사라진 자에 대해서도 집중해 그 이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p.16-17) 

 
- 각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신화는 오늘날 종교적 신념과 같이 우리들 머릿속에 뿌리 내렸다. 계몽주의 이후 운명과 신의 섭리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손에 쥐고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는 것이 좋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관에 우연의 자리를 허용하지 않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p.25) 

 

 3. 신비한 이야기 그리고 우연

 - 우리가 우연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

 - 주사위를 던져 두 번 모두 6이 나올 확률은 1/36 이다. 두 사건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저 둘의 확률을 곱하면 된다. 하지만 ‘영아돌연사’ 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영아돌연사의 위험성은 유전적 요인이나 환경의 영향에 의해 커지는데 두 아이 모두 이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두 아이가 연이어 사망한 사건의 정확한 확률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련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소아과 의사가 내세운 주장의 결정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두 번의 우연한 죽음이 일어날 확률이 겨우 1/7,300만 이라고 해도, 그것이 클라크가 무죄일 확률이 1/7,300만 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통계학에서는 이를 ‘검사의 오류’ 라고 부른다. 이 사건의 경우 중요한 문제는 두 명의 신생아가 영아돌연사로 사망할 확률이 얼마가 되느냐가 아니라, 이미 사망한 두 아이가 영아돌연사로 사망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이다.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이는 조건부확률로 계산해야 한다(p.37)
 
 
- 우리의 직관은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번번이 일어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순전한 우연은 의심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차라리 숨은 원인을 찾고자 애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날마다 수많은 우연이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가능성이 있는 일들만 일어날 확률은 너무나 미미해서, 가능성이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가장 낮다(p.39)

 

 
4. 세상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할까?

 
- 엄격한 자연법칙이 세계의 흐름을 결정한다면 우연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 기계론적 세계관을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조립된 부속품들로 이루어진 시계는 고전역학의 공식으로 확실히 설명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 역시 단지 완벽하게 조립된 부속품들의 집적체가 아닌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에 반대하는 과학적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정의하려고 하든지 간에 생명은 어쨌든 세포 내의 생화학적 변화와 관련이 있고, 이는 물리학적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세계를 엄격한 기계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순전히 자의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적인 생물체와 지적이지 않은 생물체, 의식이 있는 존재와 의식이 없는 존재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영혼은 그냥 우리 뇌의 특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여러 개의 물 분자들이 모이면 액체인 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세포들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될 때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기계론적 세계관에 관한 사유를 일관성 있게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궤도와 마찬가지로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계의 구성 요소들이 따르는 기본 방정식에 물리학적으로 내장된 우연이 없다면, 더 복잡한 시스템에서도 우연이 무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없다(p.56-57)

 

5. 나비는 아무 잘못이 없다

 - 카오스 이론은 세계의 예측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우리는 대개 비슷한 원인이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오스 상태에서는 초기조건의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p.61)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확실히 예측 가능한 현상들인 정규적 시스템이 아니다. 진자운동과 각 행성의 움직임을 제외하면 정규적 시스템에 해당하는 현실적인 예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기계적 시스템은 더 복잡하여 바로 여기서 카오스가 기회를 얻는다. 이 유형에 속하는 시스템에서는 비슷한 원인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비슷한 초기 상황이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다.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카오스를 관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카오스 시스템 중에도 단계적인 차이가 있다. 적어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얼마 동안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카오스가 나타난다. 카오스 시스템에서 초기의 오류는 단지 일직선상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일정한 기간 동안 오류는 두 배가 될 것이다. 또 시간이 지나면 4배, 8배 등으로 증가한다. 초기의 오류가 아주 미세해서 오랫동안 발견조차 하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p.63) 

 
- ‘나비효과’ 와 '눈사태 효과' 와는 다르다 : 눈이 가득 쌓인 경사진 언덕에서 아주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이 돌멩이에 눈이 묻어 함께 굴러 내려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눈이 뭉쳐서 결국 엄청나게 큰 눈덩이가 골짜기를 따라 굉음을 내며 굴러 떨어져 나무와 집을 덮친다. 이 경우에도 아주 작은 원인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눈사태의 경우에는 분명한 원인인 돌멩이가 존재한다. 처음에 이 돌멩이를 던짐으로써 이 돌멩이는 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던 다른 돌멩이들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티핑포인트) 반면에 나비는 특별한 역할을 맡지 않는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우를 나타나도록 했을지는 몰라도, 어떤 연쇄반응의 첫 번째 요소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다른 모든 사건들과 결합되었을 뿐이다. 날개짓은 다른 영향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나비는 단지 초기조건의 셋 수 없이 많은 요소들 중 하나였을 뿐이며, 이 요소들이 모두 함께 미래를 결정한다. 단 한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대통령 선거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당선된 후보에게 투표했다면 그 선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투표했다면 그 후보는 선거에서 패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투표자들도 모두 똑같이 주장할 수 있다. 최종적인 선거 결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작용해서 나타난 것이지 내가 특별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투표는 모두 고정된 것이고 내 투표만 유동적이라고 간주할 때만 내가 중요한 최종 결정권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카오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나비는 폭풍우의 원인이 아니다. 나머지 세계를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고 가상의 두 번째 버전 세계에서 나비의 날개짓을 제외할 때만 나비를 폭풍우의 유발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p.72-74) 

 
-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또는 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우연히, 예측할 수 없이 그리고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p.78)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림으로써 미래를 엄청나게 바꿔놓는다. 사실은 상당히 좋은 일이다. 우리의 작은 손짓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우리의 호흡 하나가 이 세상에 일어날 일들의 수많은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심지어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 옆의 잔디밭에 앉아 있는 나비들도 모두 우리와 똑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p.78-79) 

 

6. 결국에는 무질서가 승리한다

 - 우연과 엔트로피 없이는 어제와 내일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 시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우연의 본성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지속적인 시간 여행 중이다. 공간차원과 달리 시간축은 근본적으로 아주 비대칭적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늘 가차 없이 한쪽 방향으로만 휩쓸려 가고 그 어떤 저항도 소용없다(p.81) 

결정적인 부분은 어떤 것이든 흩어지면 다시 잘 분류된 원래의 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연은 정돈된 것을 섞어버리고 분류된 것을 혼합하며 정리된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방향을 가지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p.83-84) 

 

- 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태에서 질서보다는 무질서가 더 흔하게 나타난다. 가스 입자들을 왼쪽 용기 안에 잘 정리해서 넣을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두 개의 용기에 똑같이 어지럽게 흩어진 상태로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우연이 무작위로 어떤 상태를 선택한다면 분명 무질서한 것을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우연의 가능성의 수가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그 수를 측정하기 위해서 볼츠만은 '엔트로피(무질서 정도)' 라는 개념을 도입했다(p.90) 

 
- 시간과 엔트로피 : 열역학의 법칙에 따라 항상 일정해야 하는 에너지와 달리, 엔트로피는(무질서 정도) 닫힌 시스템에서 계속 증가한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 법칙은 물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시간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에 미래가 있다.(저엔트로피→고엔트로피 것은 무질서 정도가 증가한다는 의미이고, 그것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미래, 우연이 존재한다는 의미) 과거에는 엔트로피가 낮았다. 한 가지 방향으로만 진행되고 절대 거꾸로 되돌아가지 않는 모든 프로세스들은 엔트로피와 관련이 있다(p.91) 

 
- 우리는 뭔가 질서 정연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할 때마다 동시에 다른 곳에서 무질서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엔트로피의 총계를 생각할 때는 엔트로피가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닫힌 시스템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과자 부스러기가 있는 바닥과 같이 열린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인지 주의해야 한다(p.95) 우리 지구는 닫힌 시스템이 아니다. 만약 질서가 생긴다면 그것은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행성의 경우 이런 에너지는 대부분 태양으로부터 온다. 태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구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질서 있는 구조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생명체는 멸종될 것이고 건물들은 자갈과 모래로 허물어질 것이다. 지구는 빙하로 뒤덮이고 모래사막으로 황폐해지고 상당히 무질서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주 높은 엔트로피를 지닌 일종의 균형상태에 도달해서 더 이상 많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엔트로피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곳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p.96) 엔트로피가 없다면 시간 감각, 발전, 삶 그리고 재미가 없을 것이다. 엔트로피를 통해서 비로소 어제와 내일의 차이가 생긴다. 엔트로피와의 싸움에서 이미 패한 사람만이 엔트로피와의 싸움을 피해갈 수 있다. 숨을 쉬고 혈액이 돌고 책을 읽는 사람은 끊임없이 질서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쨌든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장 복잡한 대상에 속한다(p.98) 

 


7. 닭고기 맛과 비슷한 양자물리학

 - 양자이론은 과학에 새로운 종류의 우연을 불러일으킨다

 - 양자중첩 : 양자물리학에서 중요하고 놀라운 특성은 대상들이 여러 가지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p.112)

 - 날아다니는 전자는 ‘진짜’ 또는 ‘실제’ 위치가 없고 산만하게 분포되어 움직인다.(구름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어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돈다고 할 때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 전자는 오히려 원자핵을 마치 구름처럼 감싸며, 일종의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자는 여러 곳에 동시에 머물지만 모든 곳에서 동일한 규모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의 중심인 원자핵 쪽은 전자가 상당히 많은 곳이고,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공간에는 전자가 적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분산된 전자성을 우리는 통칭하여 ‘전자’ 라 부른다(p.113-114) 

 - 어떤 입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동안에는 양자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아무런 문제없이 여러 곳에 동시에 머물 수 있다. 어떤 전자를 어두운 상자에 가두어서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하면 전자는 갑자기 상자 안의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면 상자 안에서 산만한 전자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전자가 특정한 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상태의 중첩은 입자가 세계의 다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측정은 상태를 변화시키고 자연으로 하여금 확정 짓도록 강요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흐릿하게 분포되어 있던 것이 명백하고 확정적인 것이 된다(p.114-115) 

 - 우리가 입자의 위치를 측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입자가 어떤 특정한 위치를 정하도록 강요하면 항상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실험을 할 때 늘 똑같은 시작 조건을 가지고 출발한다고 해도 측정 결과는 예측 불가능하고 순전히 우연이다(p.116) -> 이것은 카오스 상태와도 관련 있다. 시작조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늘 같을 수는 없다. 아주 미세하게라도 차이가 있다면, 전자의 무한한 운동으로 그 값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 파동함수 : 슈뢰딩거 방정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동함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준다. 이 방정식의 도움으로 어떤 입자가 어떤 시점에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이런 가능성 이상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다. 어떤 실험의 결과가 실제로 어떠할지는 순전히 우연이다. 동일한 양자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한 다음에야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평가해서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나온 예측과 비교할 수 있다. 이때 양자이론의 예측이 측정 결과와 상당히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자물리학의 공식은 우리에게 가능한 측정 결과와 그 가능성을 알려주지만 이런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이 다음 실험에서 실제 측정된 결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다(p.117) 우리가 측정하기 전에 입자가 상자안의 왼편에 있는지 오른편에 있는지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입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파동함수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입자 자체도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이런 정보들을 준비해놓지 않는다. 양자 입자는 측정 전에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하고 그 어떤 정확한 계산법으로도 측정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p.119)

 
- 다중세계 이론(다중우주) : 다중세계 이론이 우주에 대해 상당히 혼란스러운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이 계속해서 어디서나 양자차원에서 결정을 내리고 측정을 실시하면 우주는 매 순간 셀 수 없이 여러 번 쪼개져야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우주들이 마치 거품 목욕을 할 때의 거품들처럼 보글보글하며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이다(p.133)

 
- 다중세계 이론은 철학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가능성이 어떤 평행우주에서 현실이라면 우리의 현실은 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론에 따르면 이 현실은 어차피 무수히 많은 현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돈을 탕진했다고 해서 화낼 필요가 있을까? 어떤 평행우주에서는 내가 부자이고 행복하며 그 우주는 우리의 우주만큼이나 실제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의식하는 경험은 우리가 지금 인지하고 있는 바로 이 우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p.135)

 

 8. 왜 어떤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로도 실패하는가

 - 세상이 우연에 의해 돌아가는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 카오스 이론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장기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주 미세한 오류만으로도 우리의 예측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양자물리학을 통해 완벽하고 오류가 없는 지식으로도 때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배웠다. 실험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양자 실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p.139) 

 
- 왜 우연이 생기는지에 대한 깊은 원인을 찾기보다는 우연의 영향을 조사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9. 유전자 복권

 - 진화는 우연과 많은 관련이 있지만 순전히 행운 게임인 것만은 아니다

 - 만약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곳에서 진화가 시작된다면 비슷한 생명체를 만들어낼까? 아니면 진화의 결과는 우연인 것일까?

 
- 우연의 중요한 원천이 있는데 이것 없이는 진화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돌연변이’ 다. 우리 DNA 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는 변할 수 있다. 때로는 세포분열 중에 DNA를 복제할 때 우연히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외부의 영향에 의해 어떤 부분들이 변할 수 있다(p.156) 

 
- 유전자에게 중요한 것은 복제되는지 여부다

 
- 종의 기원이 우연에 의해 생겨난 최적화 과정이며, 생물들은 수백만 년이 흐르면서 완벽한 적응이 이루어질 때까지 환경에 맞춰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날씨가 시간이 지나면서 대기의 조건에 맞춰가는 우연한 과정이라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언젠가 최적의 기상 상태가 나타나고 전 세계의 공기가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이룰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p.159-160)

 

- 우리는 진화를 더 이상 강한 자가 잔인하게 밀고나가는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이타주의와 기꺼이 협력하려는 자세도 진화적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 모형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다(p.161)

 

- 나의 유전자를 많이 번식시켜서 내가 얻는 이익은 대체 무엇인가?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 왜 의미 있는 목표란 말인가? 리처드 도킨스는 바로 이 질문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우리가 생명체로서 이익을 얻는지 여부는 전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진화를 개체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각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유전자에게 중요한 것은 복제되는지 여부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p.162-163)

 

- 각 생명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진화는 거대한 행운 게임일 뿐이다.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최적의 개체가 항상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가장 훌륭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럴 가능성이 미미하게 더 높을 뿐이다(p.165) 진화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유전자가 자동적으로 성공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번식의 가능성을 아주 조금 높이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다(p.166)

 

- 생물학에서 밀접한 관계가 없는 다양한 생물들에게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을 ‘상사(相似)’ 라고 하며, 동일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수렴’ 이라고 한다. 상어, 돌고래 또는 이미 오래전에 멸종된 어룡은 확실히 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유전적인 동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공통의 조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진화는 이런 동물들이 재빠르고 민첩한 수영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선 형태를 여러 차례 새롭게 발전시켰다. 이는 매번 동일한 유전자가 생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물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고, 완전히 다른 단백질을 만들어내며, 배아 상태에서 완전히 다르게 발달할 수 있다. 그래도 결국은 서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생명체가 나온다. 모두 지느러미, 뾰족한 주둥이 그리고 물 저항을 아주 적게 받는 몸 형태를 가지고 있다(p.167-168)

 

-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진화의 흐름이 예측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보여도 때로는 우연으로 인해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예측 가능한 수렴과 깜짝 놀라게 하는 우연은 둘 다 진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p.173)

 

- 우연은 아름답고 진화는 필연이다 : 우연이 아주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는 점이 진화생물학에서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연히 일어나는 DNA 돌연변이는 새로운 생명체를 선보인다. 돌연변이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우연 놀이에서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전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세포, 생명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우리 세포의 모든 구성 요소는 유용한 과제를 수행하고, 모든 장기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윈시림은 상당히 최적화된 시스템으로서 가장 까다로운 시계의 톱니바퀴 장치보다도 더 복잡하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움 복잡성은 수많은 우연한 사건의 결과 저절로 생겨났다(p.180)

 

- 진화는 셀 수 없이 많은 우연한 사건에 기인한다. 하지만 진화적 발전 자체, 즉 비교적 단순한 부분으로부터 다양한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유전자, 생명체 그리고 환경의 우연 놀이에 의해 생겨나는 느린 변화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다. 강가에 있는 돌멩이가 물살에 의해 필연적으로 깎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돌멩이가 1,000년 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물살의 변화, 강물 속에 들어 있는 다른 돌멩이 그리고 기후에 달려 있다. 하지만 돌멩이의 모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깎일 것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명백하다. 진화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놀라운 것이 아니다. 진화는 분자, 행성 또는 내리는 비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p.182-183)

 

 

10. 우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우리는 패턴을 인식하고 맥락을 찾아내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유용하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패턴을 인식하는 데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연관을 짓는 것은 진화의 역사에서 입증되었다. 실제로 우연에서도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 생명체에게 더 유리했을 것이다(p.188-189)

 

- 어떤 의식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게 만들어준다면 조금 비이성적이라도 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식과 습관들을 늘 그런 식으로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p.190)

 

- 우리 인간은 우연과 의미 있는 맥락을 구분하는데 서투를 뿐만 아니라 진짜 우연을 모방하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p.199) 예를 들어 동전을 여러 번 던졌을 때 정말 우연히 앞면 혹은 뒷면이 연속으로 길게 나올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우연은 이따금 눈에 띄는 패턴을 만들어내며 이렇게 눈에 띄는 패턴을 회피하는 것이 오히려 눈에 더 잘 띄게 된다. 우리 인간이 알아차릴 수 있는 패턴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인간과 우연 발생기의 차이점이다(p.200-201)

 

- 주가 그래프를 보고 구조를 알아차린다거나 화성의 암석 사진을 보며 얼굴을 떠올린다던지, 이런 모든 패턴들은 이 세계의 특징이 아니라 그저 우리 머릿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패턴들에 있지도 않은 미신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p.203)

 

 

11. 행운 법칙의 게임

 

- 우연을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

 

- 가령 주사위 던지기나 룰렛 게임에서 각각의 결과가 나올 확률이 동일할 경우,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모든 결과들이 대략 비슷한 빈도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대략 비슷한 빈도’ 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로또 당첨 번호를 분석해보면 모든 숫자가 정확히 같은 빈도로 나오지는 않았다. 가장 많이 나온 번호가 가장 적게 나온 번호보다 112배나 자주 나왔다면 대수의 법칙에 따라 조만간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두 숫자의 격차가 앞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앞으로 로또 추첨을 500회 더 진행하면 가장 자주 나오는 숫자와 가장 적게 나오는 숫자 사이의 빈도 자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p.214)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 이익의 기댓값이 전부는 아니다(p.220)

 

 

12.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 건강은 운에 달린 문제인 경우가 많다. 진짜 의학은 우연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 많은 질병들은 치료 여부와 상관없이 저절로 낫고 지나간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의학은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 분야와는 달리 원인과 결과, 치료 방법과 성공적인 치료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p.232)

 

- '평균으로의 회귀' 로 인해 극단적인 조건 다음에는 곧 조금 덜 극단적인 평균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심한 허리케인 한가운데서 마술봉을 꺼내 바람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늦어도 며칠 후에 자신이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환자가 가장 심한 통증을 느끼는 단계에서 영험한 효과가 있는 돌을 문지르며 기 치료를 한 사람은 곧 아주 훌륭한 치료사로 칭송 받을 가능성이 높다(p.235-236)

 

-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간에 많은 전통과 의식들은 애초에 과학과의 관련성을 전혀 의도하지 않는다. 무엇이 편한지 불편한지는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검증은 오히려 무의미하다. 그러나 사소하고 구속력이 없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아이디어에서 과학적 진실을 끄집어내려고 하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p.241)

 

- 성모는 우연히 치료할 뿐이다 : 어떤 일정한 장소에 아픈 사람들이 충분히 많이 모이면 그들 중 몇 명은 불가해한 방법으로 우연히 치유되기도 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통계적인 필연성이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참여하면 그 중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말이다(p.244)

 

 

13. 우연과 마술은 어떻게 다른가

 

- 순전히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마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 PEAR(프린스턴 공학 비정상 현상 연구) 는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진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신중한 태도와 엄청난 양의 실험과 깔끔한 통계적 조사를 통해서도 쓸모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PEAR 연구원들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들로서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했다. 대부분의 사이비 과학자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이론을 검증할 때, 이상하고 재생산이 불가능한 기묘한 것에 얽매이고 말았다. 어떤 나쁜 의도 없이 그리고 가장 좋은 과학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는 것이다.(p.258)

 

 

14. 우리는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 우연 없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없이 우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 인간들은 어떤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의 강점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 달의 모양이 왜 항상 똑같지 않은지 궁금해 하고, 봄에 눈사람이 녹는 이유와 애벌레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이러한 원인 찾기를 통해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우리의 태양계에서 지배하는 종(種)으로 등극했다. 우리는 원인에 대한 질문을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모든 대답이 더 깊은 원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원인의 사슬에 얽히지 않으려면 어떤 지점에서 끝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잠정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을 ‘우연’이라 설명한다. 우연성은 우주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카테고리다. 우연은 우리가 결국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삶은 상당히 단조로워질 것이다. 우연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앞으로 보이지 않는 혼란 속에서 다채로운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p.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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