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단종의 혼령

Jobs9 2021. 4. 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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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혼령

 단종이 영월에 물러나 있다가 승하하신 후에 영월 부사(寧越府使)가 되는 사람은 갑자기 죽으니,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며 피하여 영월은 드디어 황폐한 고을이 되고 말았다.

 이때, 한 조관이 스스로 그 부사가 되기를 요망하였다. 그가 영월 부사로 부임하는 날 밤에 그는 좌우를 물리치고 홀로 촛불을 밝히고 앉아 있었는데, 밤이 깊었을 때 갑자기 임금이 행차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 오더니, 한 임금이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들어와서 대청에 앉았다. 

 부사가 황공하게 여겨 즉시 뜰 아래로 내려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니, 임금(단종)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공생(貢生)에게 목을 매인 바 되었는데, 그 활줄이 아직도 내 목에 매어져 아픔을 참지 못하겠구나. 내 본관(부사)을 보고 풀어 달라 하려고 여기에 이르르면 그들은 기백이 부족하여 나를 보자마자 모두 갑자기 겁을 먹고 죽어버리는구나. 오직 너만이 그렇지 않으니 그 용기가 가상하구나.”

하였다. 부사는 비로소 이 분이 상왕(단종)의 신령임을 알고, 땅에 엎드려 흐느끼며 말하기를,

 “신은 옥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감히 명령을 따르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단종은 교시(敎示)하여 말하기를,

 “이전에 호장(戶長)을 지낸 엄흥도(嚴興道) 혼자 그 곳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물으면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니라.”

하고, 드디어는 수레를 돌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 관속들이 대청 아래 모여 서로 미루며 곧바로 올라오지를 못했다. 이 때 부사가 창을 밀어 젖히면서 묻기를,

 “너희들은 무슨 일로 이리 어지러우냐?”

하니, 관속들이 다 놀라 엎드려서 죄를 청하였다. 부사가 묻기를,

 “이 고을에 전에 호장을 지낸 엄흥도라는 사람이 있느냐?”

하니, 관속은 대답하기를,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밤이 깊었을 때 부사가 비밀히 사람을 시켜 엄흥도를 부르니, 그와 함께 방에 들어왔다. 부사는 곧 그에게 상왕의 옥체가 어디 있는지를 물으니, 엄흥도는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소인은 전에 호장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져 왔을 때, 상왕께서는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시고 대청 위에 앉아 계셨는데, 왕방연이 몸둘 곳을 몰라 감히 사약을 올리지 못하고 뜰 아래 엎드려 있으니, 상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슨 죄로 죽음에 이른다더냐.’고 할 때 옆에 있던 한 공생이 활끈을 가지고 억지로 상왕의 목에 매고 창 틈으로 잡아당겨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공생은 발꿈치를 다 돌리지도 못한 채 일곱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상왕을 모시던 궁녀들은 다 스스로 목을 청령포(淸泠浦) 바위 아래로 던져 죽었습니다. 이 곳을 낙화암(落花巖)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때 고을 사람들은 화(禍)가 그들에게 미칠까 두려워서 다투어 옥체를 강물 속에 던지니, 물결을 따라 밑으로 밑으로 떠내려갔습니다. 소인은 그 날 밤에 몰래 그 시체를 업어다 읍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받들어 모셨으나, 활줄은 미처 풀지를 못하였습니다.” 

 부사가 곧 엄흥도와 함께 몰래 그 곳에 도착하여 관을 열고 살피니, 상왕의 용모는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고, 활줄이 과연 그 목에 매어져 있었다. 즉시 그것을 풀어 버리고 수의를 갖추고 무덤을 고쳐서 장사를 지냈는데, 지금의 장릉(莊陵)이 바로 그것이다.

 이 날 밤, 단종이 다시 전과 같이 대청 위에 오셔서 분부를 내려 말하기를,

 “활줄을 제거한 때부터 비로소 목이 아프지 않구나. 너와 엄흥도는 남몰래 좋은 일을 하였으니, 마땅히 후한 보답을 받으리라.”

하고, 드디어 수레를 돌려 돌아 가셨다. 이로부터 영월 고을의 원님이 된 사람은 편안히 지내게 되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를, 이 때의 부사는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의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는 명종(明宗) 때 이조 판서를 지내고 문형(文衡)의 자리를 맡았다. 그가 장릉에 제사지낼 때, 제문(祭文)에 말하기를,

 “왕실의 맏아드님이요, 어린 나이로서 한 조각 천산 기슭에 만고의 원혼이 되시었네.”

라고 하였고, 참판 조하망(曹夏望)의 자규루(子規樓) 시에는 말하기를,

 “옛날부터 영월에는 세 번 사양한 곳이 있다더니, 지금도 저 강 위에는 구의산(九疑山)이 솟아 있네.”

라고 하였다.


  핵심 정리
* 종류: 원귀설화   
* 성격: 역사적, 전기적
* 주제: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신원(伸寃)
* 의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역사적 전설.

 
  해설 1
 이 전설은 설화 가운데서 신빙성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이야기이다. 이 전설 또한 수양대군에 의해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端宗)의 슬픈 사연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초로 해서 전개되고 있다. 단종은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上王)으로 있다가 사육신의 사건 이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다. 이렇듯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혼령이 잠들지 못하고 사또 앞에 나타나는 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활줄을 목에 매고 죽은 단종의 혼령이 계속 나타나, 영월 지방에 부임해 오는 사또들의 죽음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총명한 한 사또에 의해 단종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단종은 한을 풀고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이다.   

 우리가 전설을 분류할 때, 우선 설명적 전설이라 하여 특이한 지형. 자연 현상. 풍습. 동식물 등의 기원이나 성질이 이러이러한 사연으로 되었다는 식의 전설이 있다. 그리고 신앙적 전설이라 하여 민간 신앙을 기초로 한 종교적 이야기가 있으며, 역사적 전설이라 하여 실제의 역사적 사물과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민중들의 기억과 구연 행위를 거치는 동안 변형됨으로써 생겨난 이야기도 있다. 이 ‘단종의 혼령'은 역사적 전설에 해당된다. 이 전설이 영월 지방에서 구비 전승된 것은 실제로 이 지역은 단종이 유배되어 죽임을 당한 곳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그리고 현명한 수령이 나타나 원혼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은 원귀 설화의 한 특징이다.  

 이 외에도 단종을 소재로 한 설화가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강원도 영월읍 보덕사(報德寺)라는 절에 안치되어 있는 단종의 영정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림에는 백마를 탄 단종과 그 앞에 머루 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秋忠臣)이 그려져 있다. 추충신의 이름은 익한(益漢)으로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지낼 때, 산머루를 따다가 드리고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 날도 산머루를 따가지고 단종에게 바치려고 내려오는 길에 연하리 계사폭포에서 단종을 만났다. 단종은 곤룡포에 익선관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타고 유유히 태백산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축익한이 단종에게 어디로 가시느냐고 묻자 단종은 태박산으로 간다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추익한은  급히 단종의 처소로 와 보니 단종은 이미 변을 당한 뒤였다. 추익한은 다시 단종을 만났던 계사폭포에 까지 와서 단종을 따라 죽었다. 이리하여 추익한도 단종과 함께 태백산 신령이 되었다. 또한 신령이 된 충신 엄흥도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이는 태백산 일대의 서낭당 뒤에 가시가 있는 엄나무가 많다는 사실을 전설화한 것이다. 즉, 엄충신이 죽어서도 단종을 지키기 위해 사후에 엄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정선군 여양리에 노산군(단종)을 모신 서낭당이 있는데 이것에도 전설이 전한다.  
    
참고로 이 글의 출전인 ‘금계필담'은 조선의 역대 국왕과 대신들의 국사 처리에 관련된 고사 및 유명 인사들의 기이한 행적 등을 수록한 책으로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재의 상징성
 귀신(鬼神)의 상징성을 보자. 귀신 혹은 사령신(死靈神)에는 국가나 촌락 공동체, 씨족의 시조령, 조상령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조상 숭배, 특히 조상 영혼 숭배가 귀신 신앙의 중요 부분임을 헤아리게 되면 귀신이 곧 조상령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조상신이 흰빛의 선의의 귀신이라면, 검은빛의 악의의 귀신은 무속, 민속 신앙 현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통틀어서 원귀(怨鬼), 원령(怨靈)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잡귀, 객귀(客鬼)들은, 저주와 재앙, 질병의 원인으로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의 무속 신앙이 시베리아의 검은 샤머니즘과 유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산과 들과 같은 자연 환경이 언제나 있듯이 귀신도 우리 주위에 늘 있다고들 말한다. 무당과 달리 보통 사람은 우연히, 피동적으로 귀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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