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별곡(陶山別曲)
조성신(趙星臣)
태백산 나린 용이 영지산이 높으셔라
황지로 솟은 물이 낙천이 맑으셔라
퇴계수 돌아 들어 온계천 올라오니
노송정 옛 집터에 대현이 나시거다
일구 도산이요 그 곁에 명승지라
어호다 우리 선생 이 곳에 장수하와
당년의 장루소요 후세의 조두소라
연말 후학이 인읍에 생장하여
문정은 못 미쳐도 강산은 지척이라
유서를 통독하고 고풍을 상상하여
백리 연하를 지점함이 오래더니
임자년 초삼월에 성상의 은전으로
예관의 명을 받아 묘하에 치제하고
다사를 함께 모아 별과를 보이시니
어와 성은이야 가지록 망극하다
교남 칠십주에 뉘 아리 흥기하랴
서동을 앞세우고 장포의 뒤를 따라
형례를 참례하고 시권을 마친 후에
농운정사 돌아 들어 암서헌 들어가니
문전의 살평상은 장석이 의의하고
궤중에 청려장은 수택이 반반이라
풍채를 뵈봅난 듯 음해를 듣잡는 듯
심신이 숙연하여 비린이 절로 없다
완악제 시습제와 관란헌 지숙료와
절우사 정우당을 차차로 둘러 본 후
몽천수 떠 마시고 유정문 돌아나서
곡구암 더딘 길로 광영대 올라 앉아
원근 산천을 일안에 굽어보니
동취병 서취병은 봉만도 기이하고
탁영담 반타석은 수설도 명려하다
금사 옥삭은 처처에 잦아 있고
벽도 홍화는 면면이 벌였으니
용문 팔절은 보든 못 하였으나
무이구곡인들 예서야 더할손가
서대를다 본 후에 등대에 올라 앉아
사방을 살펴보니 이름조차 천연대야
운간의 저 소려기 너는 어찌 날았으며
강중의 저 고기야 너는 어찌 뛰노느뇨
우리 성왕 수고하사 작인하신 여화련다
형용잘한 활발발지 비은장이 여기련다
창강에 달이 뜨니 야색이 더욱 좋다
사공의 노를 젓고 동자는 술을 부어
상류에 매인 배를 하류에 띄워 놓고
초경에 먹은 술이 삼경에 대취하니
주흥은 도도하고 풍류는 소소로다
그제야 곧추 앉아 요금을 비겨 안고
냉냉한 옛 곡조를 주줄이 골라 내어
청량한 육육가를 어부사로 화답하니
이리 좋은 무한경을 도화 백구 너 알소냐
춘풍 무우 언제련고 추월 한수 비취었다
십팔절 칠언시와 이십팔절 오언시를
장장이 뽑아내어 자자이 외운 후에
강산을 하직하고 편주를 도로 저어
백구를 다시 불러 정녕히 언약하되
구추 단풍절에 또 한번 노자더니
연광은 덧이 없고 조물이 새암 별나
우연히 얻은 병이 거연이 십년이라
공산에 홀로 누워 왕사를 생각하니
청춘에 다 못 놀아 백수에 여한일세
이 뜻으로 노래 지어 시시로 풍영하니
백년 광감을 일편중에 부치노라
핵심정리
* 작자: 조성신(趙星臣)
* 갈래: 가사
* 연대: 1792년(정조16)
* 출전: 《염와유고(恬窩遺稿)》
해설
조선조 중. 후기에 조성신이 중년에 눈이 어두워지자 젊어서 도산서원의 별과(別科)에 참여했던 사실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술회하며 지은 가사. <도산가>라고도 한다. <염와유고>와 <노계선생문집)에 실려 있는데 <노계선생문집>에는 <도산가>라는 표제하에 수록되어 있어, 박인로의 작품으로 소개된 일도 있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22구이다. 음수율은 3.4조가 주축이며 2.3조, 2.4조, 4.4조 등도 보인다. 내용은 도산서원의 승경과 서원에 치제(致祭) 할 때의 광경, 그리고 이황의 행적과 덕을 사모하는 5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1 단락은 도산은 명승지로 이황의 장수처(藏修處)임을 노래하였다. 제2단락은 작자가 임자년(1792) 3월에 예관(禮官)과 함께 도산서원에 가보니, 이황의 수택(手澤)이 역력함을 읊고 있다. 제3단락은 도산서원의 여러 건물을 차례로 돌아보고, 광영대에 올라가서 원근의 산천경계를 바라봄을 노래하였다. 제4단락은 창강의 야색(夜色)과 도도한 흥취와 소소한 풍류를 읊고 있다. 제5단락은 시를 읊은 뒤에 하직하고 돌아옴과, 그 뒤에 다시 유람하려 하였으나 병을 얻어 뜻을 이루지 못함을 노래하였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공무원 두문자 암기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