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염부주지
김시습
성화(成化) 초년에 경주에 박생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고 언제나 자신을 격려하였다. 일찍부터 태학관(太學館) 에서 공부하였지만, 한번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그는 뜻과 기상이 고매하여 세력을 보고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그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남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에는 온순하고 순박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박생을 일찍부터 부도(浮圖:불교). 무격. 귀신 등의 이야기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중용』과『주역』을 읽은 뒤부터는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더 이상의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이 순박하고도 온후하였으므로 스님들과도 잘 사귀었는데, 한유와 태전의 사이나 유종원과 손상인의 사이처럼 가까운 이들도 두세 사람 있었다.
스님들도 또한 그를 문사로서 사귀었다. 혜원이 종병. 뇌차종과 사귀었던 것처럼, 지둔이 왕탄지. 사안과 사귀었던 것처럼 막역한 벗이 많았다.
박생이 어느 날 한 스님에게 천당과 지옥의 설에 대하여 묻다가, 다시 의심이 생겨서 말하였다.
“하늘과 땅에는 하나의 음(陰)과 양(陽)이 있을 뿐인데, 어찌 이 하늘과 땅 밖에 또 다른 하늘과 땅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그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도 또한 결정적으로 대답하지는 못하였다. ‘죄와 복은 지은 데 따라서 응보가 있다.' 는 설로써 대답하였다. 박생은 역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박생은 일찍이「일리론(一理論)」이란 논문을 지어서 자신을 깨우쳤는데, 이는 이단(불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대략은 이렇다.
내가 일찍이 옛 사람의 말을 들으니, ‘천하의 이치는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한 가지'란 무엇인가? ‘천성'을 말한다. ‘천성'이란 무엇인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하늘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으로써 만물을 만들 때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었는데, 이도 또한 타고나게 되었다. 이치라고 하는 것은 일용 사물에 있어서 각각 조리를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사랑을 다하여야 하고, 임금과 신하사이에는 의리를 다하여야 하며, 남편과 아내 . 어른과 아이 사이에도 각기 당연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음을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도(道)'이다. 우리 마음속에 이 이치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이치를 따르면 어디를 가더라도 불안하지 않지만, 이 이치를 거슬러서 천성을 어긴다면 재앙이 미치게 될 것이다. ‘궁리진성(窮理盡性)'은 이 이치를 연구하는 일이고, ‘격물치지(格物致知)'도 이 이치를 연구하는 일이다. 사람은 날 때부터 모두 이 마음을 가졌으며, 또한 이 천성을 갖추었다. 천하의 사물에도 또한 이 이치가 모두 있다. 허령(虛靈)한 마음으로써 천성의 자연을 따라 만물에 나아가 이치를 연구하고, 일마다 근원을 추구하여 그 극치에 이르게 된다면, 천하의 이치가 모두 나타나 분명해질 것이며, 이치의 지극함이 마음속에 모두 벌여질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추구하여 본다면 천하와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괄되고 해당될 것이니, 천지 사이에 참여하더라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또 귀신에게 질문하더라도 미혹되지 않을 것이며, 오랜 세월을 지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유학자가 할 일은 오직 이에서 그칠 뿐이다. 천하에 어찌 두 가지의 이치가 있겠는가? 저 이단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하루는 박생이 자기 거실에서 등불을 돋우고 『주역』을 읽다가 베개를 괴고 언뜻 잠이 들었는데, 홀연히 한 나라에 이르고 보니 바로 바다 속의 한 섬이었다.
그 땅에는 본래 풀이나 나무가 없었고, 모래나 자갈도 없었다. 발에 밟히는 것이라고는 모두 구리가 아니면 쇠였다. 낮에는 사나운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 땅덩이가 녹아 내리는 듯하였고, 밤에는 싸늘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사람의 살과 뼈를 에는 듯하였다. 타파( 婆)를 견딜 수가 없었다.
바닷가에는 쇠 벼랑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었는데, 굳게 잠긴 성문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었다. 수문장은 물어뜯을 것 같은 영악한 자세로 창과 쇠몽둥이를 쥐고 외물(外物)을 막고 서 있었다.
그 가운데 거주하는 백성들은 쇠로 지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낮에는 (피부가) 불에 데어서 문드러지고 밤에는 얼어 터졌다. 오직 아침과 저녁에만 사람들이 꿈틀거리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별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생이 깜짝 놀라서 머뭇거리자, 수문장이 그를 불렀다. 박생은 당황하였지만 명을 어길 수 없어, 공손하게 다가갔다. 수문장이 창을 세우고 박생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박생이 두려워 떨면서 대답하였다.
“저는 아무 나라에 사는 아무개인데, 세상 물정을 모르는 선비입니다. 감히 영관(靈官)을 모독하였으니 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십시오."
박생이 엎드려 두세 번 절하며 당돌하게 찾아온 것을 사죄하자, 수문장이 말하였다.
“선비는 위협을 당하여도 굽히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대는 어찌 이처럼 지나치게 굽히시오? 우리들이 이치를 잘 아는 군자를 만나려 한 지가 오래 되었소. 우리 임금께서 그대와 같은 군자를 한번 만나서 동방 사람들에게 한 말씀을 전하려 하신다오. 잠깐만 앉아 계시면, 내가 곧 우리 임금께 아뢰겠소."
말을 마치자 수문장은 빠른 걸음으로 성안에 들어갔다. 얼마 뒤에 그가 나와서 말하였다.
“임금께서 그대를 편전(便殿)에서 만나시겠다니, 아무쪼록 정직한 말로 대답하시오. 위엄이 두렵다고 숨기면 안 되오. 우리나라 백성들이 올바른 길(大道)의 요지를 알게 하여 주시오."
(말이 끝나자)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두 동자가 손에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하나는 검은 문서에 푸른 글자로 썼고, 다른 하나는 흰 문서에 붉은 글자로 쓴 것이었다. 동자가 그 문서를 박생의 좌우에서 펴 보기에 들여다보았더니, 박생의 이름이 붉은 글자로 씌어져 있었다.
“현재 아무 나라 박아무개는 이승에서 지은 죄가 없으므로,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박생이 (이 글을 보고 동자에게) 물었다.
“나에게 이 문서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동자가 말하였다.
“검은 종이의 것은 악인의 명부이고, 흰 종이의 것은 선인의 명부입니다. 선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은 임금께서 선비를 초빙하는 예로써 맞이하십니다. 악인의 명부에 실린 사람도 처벌하지는 않지만, 노예로 대우하십니다. 임금께서 만약 선비를 보시면 예를 극진히 하실 것입니다."
동자가 말을 마치더니, 그 명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얼마 뒤에 바람을 타고 수레가 달려왔는데, 그 위에는 연좌(蓮座)가 설치되어 있었다. 예쁜 동자와 동녀가 불자(拂子)를 잡고 일산(日傘)을 들었으며, 무사와 나졸들이 창을 휘두르며 ‘물럿거라'고 외쳤다.
박생이 머리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그 앞에 세 겹으로 된 철성(鐵城)이 있고, 높다란 궁궐이 금으로 된 산아래 있었는데, 뜨거운 불꽃이 하늘까지 닿도록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더니, 불꽃 속에서 녹아 내린 구리와 쇠를 마치 진흙이라도 밟듯이 밟으면서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박생의 앞에 뻗은 길은 수십 걸음쯤 되어 보였는데, 숫돌같이 평탄하였으며 흘러내리는 쇳물이나 뜨거운 불도 없었다. 아마도 신통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왕성(王城)에 이르니 사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연못가에 있는 누각 모습이 하나같이 인간 세상의 것과 같았다. 아름다운 두 여인이 마중 나와서 절하더니, 모시고 들어갔다.
임금은 머리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허리에는 문옥대(文玉帶)를 띠였으며, 손에는 규(珪)를 잡고 뜰 아래까지 내려와서 맞이하였다. 박생이 땅에 엎드려 쳐다보지도 못하자, 임금이 말하였다.
“서로 사는 곳이 달라서 통제할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이치에 통달한 선비를 어찌 위세로 굽히게 할 수가 있겠소?"
임금이 박생의 소매를 잡고 전각 위로 올라와 특별히 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옥난간에 놓인 금으로 만든 자리였다. 자리를 잡자, 임금이 시자를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박생이 곁눈질하여 보았더니, 차는 구리를 녹인 물이었고 과일은 쇠로 만든 알맹이였다.
박생이 놀랍고도 두려웠지만 피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들이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었다. 시자가 다과를 앞에 올려놓자, 향그런 차와 맛있는 과일의 아름다운 향내가 온 전각에 퍼졌다. 차를 다 마시자 임금이 박생에게 말하였다.
“선비께선 이 땅이 어디인지 모르시겠지요. 속세에서 염부주(炎浮洲)라고 하는 곳입니다. 왕궁의 북쪽 산이 바로 옥초산(沃焦山) 입니다. 이 섬은 하늘과 땅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염부주라고 부릅니다. ‘염부'라는 말은 불꽃이 활활 타서 언제나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지요. 내 이름은 염마입니다. 불꽃이 내 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요. 내가 이 땅의 임금이 된 지가 벌써 만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영통해져,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신통하지 않음이 없고, 하고 싶은 대로하여도 뜻대로 되지 않는 적시 없었습니다.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에는 우리 백성을 보내어 울어주었고, 석가가 부처가 될 때에는 우리 무리를 보내어 지켜 주었소, 그러나 삼황(三皇). 오제(五帝)와 주공. 공자는 자기의 도를 지켰으므로, 나는 그 사이에 바로 설 수가 없었소."
박생이 물었다.
“주공과 공자와 석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주공과 공자는 중화(中華) 문물(文物) 가운데서 탄생한 성인이요, 석가는 서역(西域)의 간흉한 민족 가운데서 탄생한 성인입니다. 문물이 비록 개명하였다 하더라도 성품이 박잡(駁雜)한 사람도 있고 순수한 사람도 있으므로, 주공과 공자가 이들을 통솔하였습니다. 간흉한 민족이 비록 몽매하다고 하더라도 기질이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노둔한 사람도 있으므로, 석가가 이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정도(正道)로써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일이었고, 석가의 법은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고, 사도로써 사도를 물리친 (석가의) 말씀은 황탄하였습니다.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정직하였으므로 군자들이 따르기가 쉬웠고, (석가의 말씀은) 황탄하였으므로 소인들이 믿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모두 군자와 소인들로 하여금 마침내 바른 도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의혹시키고 백성을 속여서 이도로써 그릇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박생이 또 물었다.
“귀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 귀(鬼)는 음(陰)의 영이고, 신(神)은 양(陽)의 영입니다. 귀신은 대개 조화(造化)의 자취이고, 이기(理氣)의 양능(良能)입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인물'이라 하고 죽은 뒤에는 ‘귀신'이라 하지만, 그 이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박생이 말하였다.
“속세에서는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예법이 있는데, 제사를 받는 귀신과 조화의 귀신은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다. 선비는 어찌 그것도 알지 못합니까? 옛 선비가 이르기를, ‘귀신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끝나고 시작되는[시종(始終)] 것은 음양이 어울리고 흩어지는 데[합산(合散)] 따르는 것이고,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것은 음양의 조화(造化)를 존경하는 것이며, 산천에 제사지내는 것은 기화(氣化)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조상께 제사지내는 것은 근본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고, 육신(六神)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제사들은) 모두 사람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지냅니다. (이 귀신들이) 형체가 있어서 인간에게 화와 복을 함부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향불을 사르고 슬퍼하면서 마치 귀신이 옆에 있는 것처럼 지냅니다. 공자가 '귀신은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일러주신 것입니다."
박생이 말하였다.
“인간 세상에 여기( 氣)와 요매(妖魅)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해치고 미혹시키는 일이 있는데, 이것도 또한 귀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귀(鬼)는 굽힌다[굴(屈)]는 뜻이고, 신(神)은 편다[신(伸)]는 뜻입니다. 굽히되 펼 줄 아는 것은 조화의 신이며, 굽히되 펼 줄 모르는 것은 울결(鬱結)된 요매(妖魅)들입니다. 조화의 신은 조화와 어울렸으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음양과 더불어 하며 자취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매들은 울결되었으므로 인물과 혼동되고 사람을 원망하며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에 있는 요물을 초라 하고, 물에 있는 요물을 역이라 하며, 수석에 있는 요괴는 용망상(龍罔象)이라 하고, 목석에 있는 요괴는 기망량이라 합니다. 만물을 해치며 여라 하고 만물을 괴롭히면 마(魔)라 하며, 만물에 붙어 있으면 요(妖)라 하고 만물을 미혹시키면 매(魅)라 합니다. 이들이 모두 귀(鬼)들입니다.
음양 불측(不測)을 신(神)이라고 하니, 이게 바로 신입니다. 신이란 묘용(妙用)을 말하는 것이고 귀(鬼)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과 사람은 한 이치이고,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에 간격이 없으니,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천명을 회복하는 것을 상(常)이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화와 함께 하면서도 그 조화의 자취를 알 수 없는 것이 있느니, 이것을 바로 도(道)라고 합니다. 그래서『중용』에서도 ‘귀신의 덕이 크다'고 한 것입니다."
박생이 또 물었다.
“제가 일찍이 불자들에게서 '하늘 위에는 천당이라는 쾌락한 곳이 있고, 땅 아래에는 지옥이라는 고통스러운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부(冥府)에 십왕(十王)을 배치하여 십팔옥(十八獄)의 죄인들을 다스린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또 ‘사람이 죽은 지 칠 일 뒤에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재를 베풀어 그 영혼을 추천하고, 대왕께 정성 드리면 지전(紙錢)을 사르면 지은 죄가 벗겨진다'고합니다. 간사하고 포악한 사람들도 임금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시겠습니까?"
임금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번 음(陰)이 되고 한번 양(陽)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히는 것을 변(變)이라고 한다. 낳고 또 낳음[생생(生生)을 역(易)이라 하고, 망령됨이 없음을 성(性)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사리가 이와 같은데 어찌 건곤(乾坤) 밖에 다시금 건곤(乾坤)이 있으며, 천지밖에 다시금 천지가 있겠습니까?
임금이라 함은 만백성이 추대한 자를 말합니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모든 백성의 군주를 다 임금이라 불렀고, 다른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공자께서『춘추』를 엮으실 때에 백세에 바꿀 수 없는 커다란 법을 세워, 주(周) 나라 왕실을 높여 천왕(天王)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임금이라는 이름보다 더 높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진(秦)나라 임금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 ‘나의 덕은 삼황(三皇)을 겸하고 공훈은 오제(五帝)보다도 높다'고 하여, 임금이라는 칭호를 고쳐 황제(皇帝)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도 참람(僭濫)하게 임금이라고 일컬은 자들이 아주 많았으니, 위(魏)나라와 초(楚)나라 군주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런 뒤부터 임금이라는 명분이 어지러워져서, 문왕. 무왕. 성왕. 강왕의 존호(尊號)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간세상의 사람들은 아는 게 없어서 인정으로 서로 외람된 짓을 하니, 이런 것들은 말할 게 못 됩니다.
그러나 신의 세계에서는 존엄함을 숭상하니, 어찌 한 지역 안에 임금이 그와 같이 많겠습니까? 선비께선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그러니 그런 말은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러므로 재(齋)를 베풀어 영혼을 추천하고 대왕에게 제사지낸 뒤에 지전(紙錢)을 사르는 짓을 왜 하는지,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선비께서 인간 세상의 거짓된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박생이 자리에서 물러나 옷자락을 여미고 말하였다.
“인간세상에서는 어버이가 돌아가신 지 사십 구 일이 되면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가리지 않고 상장(喪葬)의 예를 돌보지 않으며, 오로지 (절에 가서) 추천하는 것만 일삼습니다. 부자는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면서 남이 듣고 보는 데에서 자랑하고, 가난한 사람도 논밭과 집을 팔고 돈과 곡식을 빌려서 종이를 아로새겨 깃발을 만들고 비단을 오려 꽃을 만들며, 여러 스님들을 불러다 복전(福田)을 닦고 불상을 세우며 도사(導師)로 삼아 범패(梵唄)를 합니다. 그렇지만 새가 울고 쥐가 찍찍대는 것 같아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상주(喪主)는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친척과 벗들까지 불러들이므로 남녀가 뒤섞여서 똥오줌이 널려지게 되니, 정토(淨土)는 더러운 뒷간으로 바뀌고, 적량(寂場)은 시끄러운 시장바닥으로 바뀌게 됩니다. 또 이르나 십왕상(十王像)을 모셔 놓고 음식을 갖추어 그들에게 제사지내고, 지전(紙錢)을 불살라 죄를 속하게 합니다. 시왕이 예의를 돌보지 않고 탐욕스럽게 이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법도를 살펴서 법에 따라 이들을 중하게 처벌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제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임금이 말하였다.
“아아. 그렇게까지 되었구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하늘은 어진 성품을 주셨으며, 땅은 곡식으로 길러 주었습니다. 임금은 법으로 다스리고, 스승은 도의를 가르쳤으며, 어버이는 은혜로 길러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오전(五典)이 차례가 있고 삼강(三綱)이 문란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를 잘 따르면 상서로운 일이 생기고, 이를 거스르면 재앙이 옵니다. 상서와 재앙은 사람이 받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정신과 기운은 이미 흩어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몸뚱이는 땅으로 내려와 근본으로 돌아가는데, 어찌 다시 어두운 저승 속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또 원한을 죽지 못하였으므로 그 기운을 펴지 못해, 싸움터였던 모래밭에서 시끄럽게 울기도 하고, 목숨을 잃어 원한 맺힌 집에서 처량하게 울기도 합니다. 그들은 무당에게 부탁해서 사정을 통해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 의지하여 원망해 보기도 하는데, 비록 정신이 그 당시에는 흩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다 없어지고 말게 됩니다. 그들이라도 해서 어찌 명부에 잠깐 형체를 나타내서 지옥의 벌을 받겠습니까? 이런 일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군자가 마땅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재를 올리고 시왕에게 제사지내는 일은 더욱 허탄합니다. 또 ‘재(齋)'란 정결하게 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부정한 일을 정결하게 해서 정결됨을 이루는 셈입니다. 부처님을 청정(淸淨)하다는 뜻이고, 임금은 존엄하다는 칭호입니다. 임금이 수레를 요구하고 금을 요구한 일은『춘추』에서 비판받았고, 불공드릴 때에 돈을 사용하고 명주를 사용한 일은 한나라나 위나라 때에 와서 시작되었습니다. 어찌 청정한 신이 인간 세상의 공양을 받고, 존엄한 임금이 죄인의 뇌물을 받으며, 저승의 귀신이 인간 세사이의 형벌을 용서하겠습니까? 이것도 또한 이치를 연구하는 선비가 마땅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박생이 또 물었다.
“사람이 윤회(輪廻)를그치지 않고, 이승에서 죽으면 저승에서 산다는 뜻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정령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윤회가 있을 듯하지만, 오래 되면 흩어져 소멸되지요."
박생이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 이역(異域)에서 임금이 되셨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인간 세상에 있을 때에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힘내어 도적을 토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맹세하기를 ‘죽은 뒤에도 마땅히 여귀가 되어 도적을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은 뒤에도 그 소원이 남아 있었고 충성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흉악한 곳에 와서 임금이 된 것이지요. 지금 이 땅에 살면서 나를 우러러보는 자들은 모두 전세에 부모나 임금을 죽인 시역(弑逆)이거나 간흉(姦凶)들입니다. 이들은 이곳에 의지해 살면서 내게 통제를 받아 그릇된 마음을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하루도 이곳에서 임금 노릇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들으니 그대는 정직하고도 뜻이 굳어서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달인(達人)입니다. 그런데도 그 뜻을 세상에 한번도 펴보지 못하였으니, 마치 현산의 옥덩이가 티끌 덮인 벌판에 내버려지고 밝은 달이 깊은 못에 잠긴 것과도 같습니다. 뛰어난 장인을 만나지 못하면 누가 지극한 보물을 알아보겠습니까? 이 어찌 안타깝지 않습니까? 나는 시운이 이미 다하여 장차 이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대도 또한 명수(命數)가 이미 다하였으므로, 곧 인간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분이 그대가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그리고는 잔치를 열어 극진히 즐겁게 하여 주었다.
임금이 박생에게 삼한(三韓)이 흥하고 망한 자취를 물었더니, 박생이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고려가 창업한 이야기에 이르자, 임금이 두세 번이나 탄식하며 서글퍼하더니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하여서는 안 됩니다. 백성들이 두려워 따르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반역할 뜻을 품고 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커다란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임금자리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늘이 비록 (임금이 되라고) 간곡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올바르게 일하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백성들의 뜻에 의하여) 임금이 되게 합니다.
상제(上帝)의 명은 엄합니다.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령은 하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천명이 떠나가고 민심이 떠나가면, 임금이 비록 제 몸을 보전하려고 하더라도 어찌 되겠습니까?"
박생이 또 역대의 제왕들이 이도(異道)를 숭상하다가 재앙 입은 이야기를 하자, 임금이 문득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백성들이 (임금의 덕을) 노래하는데도 큰물과 가뭄이 닥치는 것은 하늘이 임금으로 하여금 일을 삼가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임금을) 원망하는데도 상서로운 일이 나타나는 것은 요괴가 임금에게 아첨하여 더욱 교만 방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왕들에게 상서로운 일이 나타났다고 해서 백성들이 편안해질 수 있겠습니까? 원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박생이 말하였다.
“간신이 벌떼처럼 일어나 큰 난리가 자주 생기는 데도 임금이 백성들을 위협하며 잘 한 일이라 생각하고 명예를 구하려 한다면, 그 나라가 어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한참 있다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말씀이 옳습니다."
잔치가 끝나자 임금이 박생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손수 선위문(禪位文)을 지었다.
염주의 땅은 실로 풍토병이 생기는 곳이므로, 우(禹)임금의 발자취도 이르지 못하였고, 목왕(穆王)의 준마도 오지 못하였다. 붉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독한 안개가 하늘을 막고 있으며, 목이 마르면 뜨거운 구릿물을 마셔야 하고 배가 고프면 불에 쪼인 뜨거운 쇳덩이를 먹어야 한다. 야차(夜叉)나 나찰(羅刹)이 아니면 발붙일 곳이 없고, 도깨비가 아니면 그 기운을 펼 수가 없는 곳이다. 화성이 천리나 뻗어 있고 철산이 만겹이나 둘린 데다, 민속이 강하고 사나워서, 정직하지 않으면 그 간사함을 판단할 수가 없다. 지세도 굴곡이 심해 험준하니, 신통한 위엄이 아니면 이들을 교화시킬 수가 없다. 아아. 동쪽 나라에서 온 그대 박아무개는 정직하고 사심(私心)이 없으며,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다. 남을 포용하는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어리석은 자를 계발하는 재주도 지니고 있다. (인간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는 비록 현달하지 못하였지만, 죽은 뒤에는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백성이 길게 믿고 의지할 자가 그대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마땅히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법으로 정체하여, 백성들을 지극히 착하게 만들라.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세상을 태평하게 만들라. 하늘을 본받아 뜻을 세우고,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주었던 일을 본받아 나도 이 자리를 그대에게 물려주겠다. 아아. 그대는 삼가 받을 지어다.
박생이 이 글을 받아들고 응낙한 뒤에, 두 번 절하고 물러 나왔다. 임금은 다시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 축하드리게 하고, 태자의 예절로써 그를 전송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박생에게 말하였다.
“머지 않아 다시 돌아오셔야 하오. 이번에 가거든 수고롭지만 내가 한 말들을 전하여 인간 세상에 널리 퍼뜨리시오. 황당한 일을 다 없애 주시오."
박생이 또 두 번 절하여 감사드리고 말하였다.
“만 분의 하나라도 그 뜻을 널리 전하지 않겠습니까?"
박생이 문을 나서자, 수레를 끄는 자가 발을 헛디뎌 수레바퀴가 넘어졌다. 그 바람에 박생도 땅에 쓰러졌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깨어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눈을 떠보니 책은 책상 위에 내던져 있었고, 등잔불은 가물거리고 있었다. 박생은 한참 의아하게 여기다가, 장차 죽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집안 일을 정리하기에 전념하였다.
박생이 몇 달 뒤에 병에 걸렸는데,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의원과 무당을 사절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려던 날 저녁에 이웃집 사람의 꿈에 어떤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길,
“네 이웃집 아무개가 장차 염라대왕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한다.
핵심정리
* 작가: 김시습
* 갈래: 단편 소설
* 주제: 유교 이념을 기반으로 한 불교 철리(哲理)
줄거리
‘박생'이라는 강개한 선비가 있었는데 꿈에 염라대왕을 만났다. 염왕은 박생에게 항상 정직하고, 항거하는 뜻이 있어 세상에 살면서 굽히지 않는 박생을 만나 보고 싶었다고 한다. 박생은 염왕에게 제왕의 마땅한 자세를 역설하고 염왕은 박생의 이야기에 동조하며 박생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박생은 저승과 염왕의 환상을 비판하고 현실 정치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펴고 이승을 돌아왔다.
해설
이 작품은 특히 김시습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을 그린 한문 단편 소설, 전기 소설로서 그 문학적 가치가 크다.
이 작품의 내용은 불교를 사도로 보고있으면서도 불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에 대해서도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의 다름을 말하고 왕도를 고취하고 패도를 배격하고, 고금(古今)의 여러 왕들의 치란(治亂)의 자취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이상의 유교관(儒敎觀), 불교관(佛敎觀), 정치관(政治觀) 등으로 작가는 전등신화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한문원문)
成化初, 慶州有朴生者, 以儒業自勉. 常補大學館, 不得登一試, 常怏怏有憾, 而意氣高邁, 見勢不屈, 人以爲驕俠. 然對人接話, 淳愿慤厚, 一鄕稱之. 生嘗疑浮屠巫覡鬼神之說, 猶豫未決, 旣而質之中庸, 參之易辭, 自負不疑. 而以淳厚, 故與浮屠交, 如韓之顚, 柳之巽者, 不過二三人. 浮屠亦以文士交, 如遠之宗雷, 遁之王謝, 爲莫逆友. 一日, 因浮屠, 問天堂地獄之說, 復疑云: “天地一陰陽耳. 那有天地之外, 更有天地? 必詖辭也.” 問之浮屠, 浮屠亦不能決答, 而以罪福響應之說答之, 生亦不能心服也. 常著一理論, 以自警, 蓋不爲他岐所惑. 其略曰: “常聞天下之理, 一而已矣. 一者何? 無二致也. 理者何? 性而已矣. 性者何? 天之所命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 理亦賦焉. 所謂理者, 於日用事物上, 各有條理, 語父子則極其親, 語君臣則極其義, 以至夫婦長幼, 莫不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而理之具於吾心者也. 循其理, 則無適而不安, 逆其理而拂性, 則菑逮. 窮理盡性, 究此者也. 格物致知, 格此者也. 蓋人之生, 莫不有是心, 亦莫不具是性, 而天下之物, 亦莫不有是理. 以心之虛靈, 循性之固然, 卽物而窮理, 因事而推源, 以求至乎其極, 則天下之理, 無不著現明顯, 而理之至極者, 莫不森於方寸之內矣. 以是而推之, 天下國家, 無不包括, 無不該合, 參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不惑, 歷之古今而不墜, 儒者之事, 止於此而已矣. 天下豈有二理哉? 彼異端之說, 吾不足信也.” 一日, 於所居室中, 夜挑燈讀易, 支枕假寐, 忽到一國, 乃洋海中一島嶼也. 其地無草木沙礫, 所履非銅則鐵也. 晝則烈焰亘天, 大地融冶, 夜則凄風自西, 砭人肌骨, 吒波不勝. 又有鐵崖如城, 緣于海濱, 只有一鐵門, 宏壯, 關鍵甚固. 守門者, 喙牙獰惡, 執戈鎚以防外物. 其中居民, 以鐵爲室, 晝則焦爛, 夜則凍烈, 唯朝暮蠢蠢, 似有笑語之狀, 而亦不甚苦也. 生驚愕逡巡, 守門者喚之. 生遑遽不能違命, 踧踖而進. 守門者, 竪戈而問曰: “子何如人也?” 生慄且答曰: “某國某土某, 一介迂儒, 干冒靈官, 罪當寬宥, 法當矜恕!” 拜伏再三, 且謝搪突 守門者曰: “爲儒者, 當逢威不屈, 何磬折之如是? 吾儕欲見識理君子久矣. 我王亦欲見如君者, 以一語傳白于東方. 少坐! 吾將告子于王.” 言訖, 趨蹌而入, 俄然出語曰: “王欲延子於便殿! 子當以訏言對, 不可以威厲諱, 使我國人民, 得聞大道之要!” 有黑衣白衣二童, 手把文卷而出, 一黑質靑字, 一白質朱字, 張于生之左右以示之. 生見朱字, 有名姓, 曰: “現住某國朴某, 今生無罪, 當不爲此國民.” 生問曰: “示不肖以文卷, 何也?” 童曰: “黑質者, 惡簿也. 白質者, 善簿也. 在善簿者, 王當以聘士禮迎之, 在惡簿者, 雖不加罪, 以民隸例勑之. 王若見生, 禮當詳悉.” 言訖, 持簿而入. 須臾飆輪寶車, 上施蓮座, 嬌童彩女, 執拂擎盖, 武隸邏卒, 揮戈喝道. 生擧首望之, 前有鐵城三重, 宮闕嶔峩, 在金山之下, 火炎漲天, 融融勃勃. 顧視道傍人物於火燄中, 履洋銅融鐵, 如蹋濘泥, 生之前路可數十步許, 如砥而無流金烈火, 蓋神力所變爾. 至王城, 四門豁開, 池臺樓觀, 一如人間. 有二美姝, 出拜扶携而入. 王戴通天之冠, 束文玉之帶, 秉珪下階而迎. 生俯伏在地, 不能仰視. 王曰: “土地殊異, 不相統攝, 而識理君子, 豈可以威勢屈其躬也?” 挽袖而登殿上, 別施一床, 卽玉欄金床也. 坐定, 王呼侍者進茶. 生側目視之, 茶則融銅, 果則鐵丸也. 生且驚且懼, 而不能避, 以觀其所爲. 進於前, 則香茗佳果, 馨香芬郁, 薰于一殿. 茶罷, 王語生曰: “士不識此地乎? 所謂炎浮洲也. 宮之北山, 卽沃焦山也. 此洲在天之南, 故曰南炎浮洲, 炎浮者, 炎火赫赫, 常浮大虛, 故稱之云耳. 我名燄摩, 言爲燄所摩也. 爲此土君師, 已萬餘載矣. 壽久而靈, 心之所之, 無不神通, 志之所欲, 無不適意. 蒼頡作字, 送吾民以哭之, 瞿曇成佛, 遣吾徒以護之. 至於三五周孔, 則以道自衛, 吾不能側足於其間也.” 生問曰: “周孔瞿曇, 何如人也?” 王曰: “周孔, 中華文物中之聖也. 瞿曇, 西域姦兇中之聖也. 文物雖明, 人性駁粹, 周孔率之. 姦兇雖昧, 氣有利鈍, 瞿曇警之. 周孔之敎, 以正去邪, 瞿曇之法, 設邪去邪. 以正去邪, 故其言正直, 以邪去邪, 故其言荒誕. 正直故君子易從, 荒誕故小人易信, 其極致, 則皆使君子小人, 終歸於正理, 未嘗惑世誣民, 以異道誤之也.” 生又問曰: “鬼神之說, 乃何?” 王曰: “鬼者, 陰之靈, 神者, 陽之靈, 蓋造化之迹, 而二氣之良能也. 生則曰人物, 死則曰鬼神, 而其理則未嘗異也.” 生曰: “世有祭祀鬼神之禮, 且祭祀之鬼神, 與造化之鬼神, 異乎?” 曰: “不異也. 士豈不見乎? 先儒云: ‘鬼神無形無聲, 然物之終始, 無非陰陽合散之所爲.’ 且祭天地, 所以謹陰陽之造化也. 祀山川, 所以報氣化之升降也. 享祖考, 所以報本, 祀六神, 所以免禍, 皆使人致其敬也, 非有形質以妄加禍福於人間, 特人焄蒿悽愴, 洋洋如在耳. 孔子所謂, 敬鬼神而遠之, 正謂此也.” 生曰: “世有厲氣妖魅, 害人惑物, 此亦當言鬼神乎?” 王曰: “鬼者, 屈也. 神者, 伸也. 屈而伸者, 造化之神也. 屈而不伸者, 乃鬱結之妖也. 合造化, 故與陰陽終始而無跡, 滯鬱結, 故混人物寃懟而有形. 山之妖曰魈, 水之怪曰魊, 水石之怪曰龍罔象, 木石之怪曰夔魍魎, 害物曰厲, 惱物曰魔, 依物曰妖, 惑物曰魅, 皆鬼也. 陰陽不測之謂神, 卽神也. 神者, 妙用之謂也, 鬼者, 歸根之謂也. 天人一理, 顯微無間, 歸根曰靜, 復命曰常, 終始造化, 而有不可知其造化之跡, 是卽所謂道也. 故曰: ‘鬼神之德, 其盛矣乎!’” 生又問曰: “僕嘗聞於爲佛者之徒, 有曰: ‘天上有天堂快樂處, 地下有地獄苦楚處, 列冥([名])府十王, 鞠十八獄囚.’ 有諸? 且人死七日之後, 供佛設齋以薦其魂, 祀王燒錢以贖其罪, 姦暴之人, 王可寬宥否?” 王驚愕曰: “是非吾所聞. 古人曰: ‘一陰一陽之謂道, 一闢一闔之謂變. 生生之謂易, 無妄之謂誠.’ 夫如是, 則豈有乾坤之外, 復有乾坤, 天地之外, 更有天地乎? 如王者, 萬民所歸之名也. 三代以上, 億兆之主, 皆曰王, 而無稱異名. 如夫子修春秋, 立百王不易之大法, 尊周室曰天王, 則王者之名, 不可加也. 至秦滅六國一四海, 自以爲德兼三皇, 功高五帝, 乃改王號曰皇帝. 當是時, 僭竊稱之者頗多, 如魏梁荊楚之君, 是已. 自是以後, 王者之名分紛如也, 文武成康之尊號, 已墜地矣. 且流俗無知, 以人情相濫, 不足道. 至於神道則尙嚴, 安有一域之內, 王者如是其多哉? 士豈不聞天無二日國無二王乎? 其語不足信也. 至於設齋薦魂, 祀王燒錢, 吾不覺其所爲也. 士試詳其世俗之矯妄!” 生退席敷袵而陳曰: “世俗當父母死亡七七之日, 若尊若卑, 不顧喪葬之禮, 專以追薦爲務. 富者, 糜費過度, 炫燿人聽, 貧者, 至於賣田貿宅, 貸錢賖穀, 鏤紙爲旛, 剪綵爲花, 招衆𩫼爲福田, 立瓌([壞])像爲導師, 唱唄諷誦, 鳥鳴鼠喞, 曾無意謂. 爲喪者, 携妻率兒, 援類呼朋, 男女混雜, 矢溺狼籍, 使淨土變爲穢溷, 寂場變爲鬧市, 而又招所謂十王者, 備饌以祭之, 燒錢以贖之. 爲十王者, 當不顧禮義, 縱貪而濫受之乎? 當考其法度, 循憲而重罰之乎? 此不肖所以憤悱, 而不敢忍言也. 請爲不肖辨之!” 王曰: “噫哉! 至於此極也? 且人之生也, 天命之以性, 地養之以生, 君治之以法, 師敎之以道, 親育之以恩. 由是, 五典有序, 三綱不紊, 順之則祥, 逆之則殃, 祥與殃在人生受之耳. 至於死, 則精氣已散, 升降還源, 那有復留於幽冥之內哉? 且寃懟之魂, 橫夭之鬼, 不得其死, 莫宣其氣, 嗸嗸於戰場黃沙之域, 啾啾於負命啣寃之家者, 間或有之, 或托巫以致款, 或依人以辨懟, 雖精神未散於當時, 畢竟當歸於無朕. 豈有假形於冥地, 以受犴獄乎? 此格物君子, 所當斟酌也. 至於齋佛祀王之事, 則尤誕矣. 且齋者, 潔淨之義, 所以齋不齋而致其齋也. 佛者, 淸淨之稱, 王者, 尊嚴之號. 求車求金, 貶於春秋, 用金用綃, 始於漢魏. 那有以淸淨之神而享世人供養, 以王者之尊而受罪人賄賂, 以幽冥之鬼而縱世間刑罰乎? 此亦窮理之士, 所當商略也.” 生又問曰: “輪回不已, 死此生彼之義, 可問否?” 曰: “精靈未散, 則似有輪回, 然久則散而消耗矣.” 生曰: “王何故居此異域而爲王者乎?” 曰: “我在世, 盡忠於王, 發憤討賊. 乃誓曰: ‘死當爲厲鬼, 以殺賊!’ 餘願未殄而忠誠不滅, 故托此惡鄕爲君長. 今居此地而仰我者, 皆前世弑逆姦兇之徒, 托生於此, 而爲我所制, 將格其非心者也. 然非正直無私, 不能一日爲君長於此地也. 寡人聞子正直抗志, 在世不屈, 眞達人也. 而不得一奮其志於當世, 使荊璞棄於塵野, 明月沉于重淵, 不遇良匠, 誰知至寶? 豈不惜哉? 余亦時運已盡, 將捐弓劒, 子亦命數已窮, 當瘞蓬蒿, 司牧此邦, 非子而誰?” 乃開宴極歡, 問生以三韓興亡之跡. 生一一陳之. 至高麗創業之由, 王歎傷再三曰: “有國者, 不可以暴劫民, 民雖若瞿瞿以從, 內懷悖逆, 積日至月, 則堅冰之禍起矣. 有德者, 不可以力進位, 天雖不諄諄以語, 示以行事, 自始至終, 而上帝之命嚴矣. 蓋國者民之國, 命者天之命也. 天命已去, 民心已離, 則雖欲保身, 將何爲哉?” 又復敍歷代帝王崇異道致妖祥之事. 王便蹙額曰: “民謳謌而水旱至者, 是天使人主重以戒謹也. 民怨咨而祥瑞現者, 是妖媚人主益以驕縱也. 且歷代帝王致瑞之日, 民其按堵乎? 呼寃乎?” 曰: “姦臣蜂([逢+虫+虫])起, 大亂屢作, 而上之人, 脅威爲善以釣名, 其能安乎?”
王良久, 歎曰: “子之言, 是也.” 宴畢, 王欲禪位于生, 乃手制曰: “炎洲之域, 實是瘴厲之鄕, 禹跡之所不至, 穆駿之所未窮. 彤雲蔽日, 毒霧障天, 渴飮赫赫之洋銅, 飢餐烘烘之融鐵, 非夜叉羅刹, 無以措其足, 魑魅魍魎, 莫能肆其氣. 火城千里, 鐵嶽萬重, 民俗强悍, 非正直無以辨其姦, 地勢凹隆, 非神威不可施其化. 咨! 爾東國某, 正直無私, 剛毅有斷, 著含章之質, 有發蒙之才, 顯榮雖蔑於身前, 綱紀實在於身後, 兆民永賴, 非子而誰? 宜導德齊禮, 冀納民於至善, 躬行心得, 庶躋世於雍熙. 體天立極, 法堯禪舜, 予其作賓, 嗚呼欽哉!” 生奉詔, 周旋再拜而出. 王復勑臣民致賀, 以儲君禮送之. 又勑生曰: “不久當還, 勞此一行, 所陳之語, 傳播人間, 一掃荒唐!” 生又再拜致謝曰: “敢不對揚休命之萬一?” 旣出門, 挽車者, 蹉跌覆轍, 生仆地驚起而覺, 乃一夢也. 開目視之, 書冊抛床, 燈花明滅. 生感訝良久, 自念將死, 日以處置家事爲懷. 數月有疾, 料必不起, 却毉巫而逝. 其將化之夕, 夢神人告於四鄰曰: “汝鄰家某公, 將爲閻羅王者”云.
공무원 두문자 암기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