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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각간의 난과 혜공왕의 죽음
[대력(大曆) 2년 정미(丁未), 767] 7월 3일에 각간(角干) 대공(大恭)의 반란이 일어나고 서울과 5도(道) 주군(州郡)의 총 96명 각간이 서로 싸워 (나라가) 크게 어지러웠다. 각간 대공의 집이 망하자 그 집의 재산과 보물과 비단 등을 모두 왕궁으로 옮겼다. 신성(新城)의 장창(長倉)이 불에 타자 사량(沙梁)⋅모량(牟梁) 등의 마을 안에 있던 역적들이 보(寶)에 보관한 곡식도 왕궁으로 실어 들였다. 난리가 3개월 만에 그치고, 상을 받은 사람도 제법 많았으나 죽임을 당한 자도 수없이 많았다. 표훈(表訓)의 말에 나라가 위태롭다고 한 것이 이것이었다.
『삼국유사』권2, 「기이」2 혜공왕
[大曆二年丁未] 七月三日, 大恭角干賊起, 王都及五道州郡并九十六角干相戰大乱. 大恭角干家亡, 輸其家資寳帛于王宫. 新城長倉火燒, 逆黨之寳穀在沙梁⋅牟梁等里中者, 亦輸入王宫. 乱㢱三朔乃息, 被賞者頗多, 誅死者無筭也. 表訓之言國殆, 是也.
『三國遺事』卷2, 紀異 2, 惠恭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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