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왕위쟁탈에서 패배한 무열왕계 -김주원
김주원(金周元). 태종왕(太宗王: 태종무열왕)의 손자이다. 당초에 선덕왕(宣德王)이 죽고 후사(後嗣)가 없으므로 여러 신하가 정의태후(貞懿太后)의 교지를 받들어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족자(族子)인 상대장등(上大長等) 경신(敬信)이 여러 사람을 위협해 스스로 왕이 되고는 먼저 왕궁에 들어가서 정사를 행했다. 주원은 화(禍)를 두려워하여 명주(溟州)로 물러가 머무르며 끝내 서울에 가지 않았다. 2년 후 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의 속현(屬縣)인 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울진(蔚珍) 등의 고을을 떼어서 식읍(食邑)으로 만들게 하였다. 자손이 이에 따라서 부(府)를 관향(貫鄕)으로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卷44 「강원도」 강릉대도호부 인물
해설 :
김주원의 왕위 쟁탈전 패배와 명주군왕 세력의 성립, 그 뒤를 잇는 김헌창의 난은 중대 신라 귀족 간의 연대를 파괴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또한 김주원 세력이 고향을 근거지로 세력을 이루었다는 점, 그 아들 김헌창이 웅천주 도독으로서 지방에서 세력을 규합하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은 지방 호족 세력을 동요시키고 이들이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