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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계의 등장, 중대 무열왕계 끝나고 신라 하대 시작

Jobs9 2021. 12. 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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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계 등장

원성왕(元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경신(敬信)이고, 나물왕/내물왕(奈勿王)의 12세손이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이고, 왕비 김씨는 신술(神述) 각간(角干의 딸이다. 일찍이 혜공왕(惠恭王) 말년에 반역하는 신하가 발호했을 때 선덕(宣德)은 당시 상대등(上大等)으로서 임금 주위에 있는 나쁜 무리들을 제거할 것을 앞장서 주장하였다. 경신도 여기에 참가하여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었기 때문에 선덕이 즉위하자 곧바로 상대등이 되었다. 선덕왕이 죽자 아들이 없으므로 여러 신하가 의논한 후 왕의 조카뻘 되는 주원(周元)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이때 주원은 서울 북쪽 20리 되는 곳에 살았는데, 마침 큰비가 내려 알천(閼川)의 물이 불어서 주원이 건널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임금의 큰 지위는 본래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폭우는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상대등 경신은 전 임금의 아우로 본디부터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모를 가졌다”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의 의논이 단번에 일치하여 그를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원성왕 원년 춘1월 13일

 

해설 :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부터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에 이르기까지 신라는 강력한 전제 왕권을 바탕으로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각종 사회적 모순이 점차 누적되어 가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골품제 하에서는 왕을 전제군주가 아니라 대등한 귀족 집단의 대표자 정도로 간주하는 뿌리 깊은 인식이 쉽게 사라질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평화는 표면적인 것일 뿐 왕실이 전제정치를 강화할수록 귀족 세력과의 긴장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린 혜공왕(惠恭王, 재위 765~780)이 즉위하자 정치적 혼란으로 진골 귀족들의 크고 작은 반란이 이어졌으며,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혜공왕이 피살되어 중대 무열왕계가 끝나고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이 사료는 신라 하대 왕위 계승과 관련해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계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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