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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02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9 2024. 5. 1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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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1900~1951)

 

소설가. 호는 금동(琴童). 일본에 메이지 학원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 중퇴. 1919년 주요한, 전영택 등과 함께 한국 현대 문학 사상 최초의 문예 동인지 <창조> 창간. 1호와 2호에 “약한 자의 슬픔” 게재. 이광수 등의 설교조 계몽주의 소설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근대 소설인 사실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자연주의 작가, 사실주의 작가, 예술지상주의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문학사적 업적은 첫째 진정한 자연주의 경향의 문학을 확립, 둘째 본격적인 단편 소설에 기반을 세움, 셋째 유머와 위트, 패러독스(paradox)를 단일한 구성 속에 도입했으며, 넷째 문장을 혁신했다는 점이다. 김동인은 문학에서 계몽적 교훈주의를 배척하고 문학 자체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독특한 양식을 이룬 작가이다. 간결하고 직선적인 서술 문체와 형식적 완결성이 잘 드러나는 순문학 지향의 단편 소설을 많이 창작하였는데, 대표작으로는 “배따라기”, “감자”, “광염(狂炎) 소나타”, “광화사(狂畵師)” 등이 있으며, 장편 소설인 “젊은 그들”, “운현궁의 봄” 등은 역사로부터의 교훈보다 인물의 개성을 살리는 묘사와 허구 등에 중점을 둔 역사 소설로서 인정받고 있다. 사실주의적 문체의 확립, 서사적 과거 시제, 액자 소설적인 시점의 이동에 의한 객관적 기법 등 한국 근대 소설 미학의 기법 면에서 이룩한 공적이 큰 작가이다. 6․25 때 서울에서 병사(病死)했다.

- 자연주의 : 약한 자의 슬픔, 감자, 명문

- 낭만주의 : 배따라기

- 예술지상주의(유미주의) : 광화사, 광염 소나타

- 인도주의 : 발가락이 닮았다

- 역사주의 : 젊은 그들, 운현궁의 봄, 붉은 산

- 평론 : 춘원 연구

 

▶ 감자

 

1. 줄거리

싸움, 간통, 살인, 도적,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출원지인 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2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다. 농부의 딸인 복녀는 돈에 팔려 나이가 저보다 스무 살이나 더 되는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 생활은 말이 아닌 데다 남편은 게을러서, 기어코 평양 교외의 빈민굴로 밀려나와 구걸로써 목숨을 이어 가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솔밭에 송충이가 들끓어 평양부에서는 송충이 퇴치에 나섰다. 복녀도 그 인부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복녀는 열심히 송충이를 잡았다. 어떤 날 그녀는 몇몇 아낙네들이 감독과 더불어 웃고 놀며 소일하면서, 품삯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 되지 않아 복녀도 감독에게 몸을 더럽히게 되었으며, 그 날부터 다른 아낙네처럼 놀아날 수가 있게 되었고, 정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가을이 닥쳐왔을 때 복녀는 빈민굴 아낙네들을 본받아, 이번에는 중국인 감자밭에 감자를 도둑질하기 위해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떤 밤이었다. 그녀는 감자 한 광주리를 훔쳐서 막 일어나려는 찰나 중국인 왕 서방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복녀는 중국인을 따라가서 몸을 허락하고 얼마간의 돈을 얻어 돌아왔다. 그 후부터 그녀의 집에까지 왕 서방은 드나들게 되었다. 그들 부부의 생활에는 약간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복녀의 집에 왕 서방이 오면 복녀의 남편은 복녀가 마음놓고 몸을 팔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인 왕 서방이 장가를 들게 되었다. 새로 색시를 사온 것이다. 복녀는 타오르는 질투를 참지 못해서 왕 서방을 찾아가서 저의 집으로 가기를 청했다. 복녀는 손에 낫을 쥐고 대항하다가 오히려 왕 서방에게 낫으로 찔려서 죽었다. 이 날 밤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은 한방 의사였다. 왕 서방은 복녀의 남편과 의사에게 각각 30원과 20원씩을 주었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 의사의 진단으로 공동 묘지로 실려 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 배경 : 시간(1920년대) / 공간(평양 칠성문 밖 빈민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간결체

◎ 경향 : 자연주의적 경향

◎ 표현 : 사실주의적 기법

◎ 구성

발단 - 온갖 죄악의 소굴인 칠성문 밖 빈민굴의 복녀

전개 - 복녀에게 닥쳐온 환경의 변화와 점진적인 타락. ‘성(性)’에 눈뜸.

위기 - 새 장가를 드는 왕 서방에 대한 강한 질투

절정 - 복녀가 왕 서방의 신방에 뛰어드나 도리어 자신의 낫에 살해당함.

결말 - 복녀의 주검을 둘러싼 비정의 돈 거래

◎ 주제 :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한 여인의 운명적 비극

◎ 출전 : <조선문단>(1925)

 

3. 등장 인물

◎ 복녀 : 이 소설의 비극적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에는 가난했지만 도덕적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녀가 생활 환경이 변하자 점점 타락해 간다.

◎ 왕 서방 :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부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복녀의 몸을 탐할 때에도 돈으로 해결을 했고, 후에 색시도 돈으로 사오게 된다. 또, 자신이 복녀를 죽이자 한방 의사와 복녀의 남편에게 돈을 주고서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 이 시대의 부유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 복녀 남편 : 게으르고 생활력이 없는 사람이다. 복녀가 왕 서방에게 몸을 팔고 돈을 얻을 때도 자신의 부인을 보호하려고 하지는 않고 오히려 자리를 피해 주었다. 또, 복녀가 죽었을 때에도 돈을 받고 사실을 숨겨 준다. 시대의 낙오자이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태형”, “명문” 등과 함께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로 소설가로서의 김동인의 위치를 확고히 해 준 작품이다. 감자는 복녀라는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자란 여인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타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른바 자연주의의 특징인 환경 결정론에 입각한 작품이다. 환경 결정론이란 주인공의 운명이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녀의 최초의 부정은 타율적인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자율적인 것으로 변화된다. ‘싸움, 간통, 살인, 도적,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출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福女)의 부처(夫妻)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제2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복녀는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예의 바르고 착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돈에 팔려서 시집을 가게 되는데, 서방이 이십 년이나 위일 뿐만 아니라 게으르고 무능하였다. 그리하여 거지 행각과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들끓자 평양부에서는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을 동원하게 된다. 복녀는 하루 삼십이 전 벌이의 송충이 잡이에 참여하는데, 우연히 감독에게 몸을 팔고 ‘일 안하고 공전(공돈) 많이 받는 인부’의 한 사람이 된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 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아직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 일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의 하는 짓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 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어디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이 아니었었다.’ 복녀는 점점 더 몸을 파는 일에 빠져든다. 가을이 되어 칠성문 밖 지나인(중국인)의 채마밭에서 감자를 도둑질하다가 주인 왕 서방에게 들키지만 복녀는 용서의 대가로 왕 서방에게 몸을 허락한다. 그 뒤 왕 서방과의 관계는 남편의 묵인 아래 계속된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봄이 되어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면서 깨지게 된다. 복녀는 질투심 때문에 왕 서방의 혼례가 있던 날 밤 왕 서방의 집에 쳐들어가지만 왕 서방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사흘이 지난 밤중에 복녀의 시신을 둘러싸고 왕 서방과 복녀의 남편과 한방의,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다. 왕 서방은 복녀의 남편과 한방의에게 돈을 건네고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 묘지에 묻힌다. 복녀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언뜻 수탈 당하는 하층 계급 사람들의 비극을 폭로하는 계급 의식과 관련지어 읽을 수도 있다. 또 외국인에 의한 복녀의 죽음은 민족 의식과 연관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감자”의 본질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복녀가 빈민굴의 주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계급 차별의 결과가 아니다. 농민의 딸이었던 복녀가 빈민굴의 주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남편의 무능 때문이었다. 남편도 자기 아버지의 대에는 상당한 농민이었다. 또한 민족 의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감자”에서는 일본인이 아닌 ‘되놈’인 왕 서방이 등장할 뿐이다. 복녀가 죽게 되는 장면에서도 먼저 살의를 품은 것은 복녀였다. “감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난이라는 물질적 조건, 즉 환경이 인간의 타락에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가 이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픔(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 몰락의 과정을 겪으면서 점점 성격도 변해 간다. 그리고 기자묘의 송충이 잡이에 참여하였다가 일어난 ‘일 안하고 공전 많이 받는 인부’의 한 사람이 되는 사건을 겪게 된 뒤에는 도덕관 내지 인생관이 바뀌고야 만다. 그리고 왕 서방 네 감자를 훔치면서 그와 관계를 맺게 된 뒤부터는 그 파렴치의 도를 더해 간다. ‘왕 서방이 분주하여 못 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 왕 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의 길을 걷던 복녀가 죽음을 맞게 되지만 남편은 그녀의 시체를 놓고 왕 서방과 흥정을 한다. 그 ‘감자’라는 물질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인간을 타락의 길로 나서게 만드는가에 작가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아홉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단편 속에 ‘복녀’라는 한 여인의 삶이 농축되어 있는 이 작품의 특징은 우선 그 간결한 문장과 압축적인 대화가 눈에 띈다. 그리고 작가의 주관적인 설명이나 해석이 없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냉철한 문체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내용 면에서는 환경 결정론에 입각한 김동인 특유의 자연주의적인 시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참고> ‘김동인’에 대해서

□ 연구론 : 지금까지 김동인과 관계하여 전개되어 온 연구 성과를 개관해 보면, 작가론 특히 작가의 전기를 토대로 해서 쓰여진 대부분의 작가론은 전기의 조사, 연구, 방법론의 미흡 등으로 인해 초기의 수준에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작품론에 있어서는 우선 양적으로도 풍성할 뿐 아니라 분석주의 혹은 구조주의적 텍스트 분석 방법의 활용에 따라 최근 무게 있는 논문들이 발표되어 왔다. 또한 비교 문학적 연구와 비평에 관한 연구도 양적으로 빈약한 편이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 주고 있다. 근년에 들어 일부 비평가들의 평론에 의해 김동인에 대한 비판 내지 부정론이 두드러지게 제기되어 왔다. 이는 주로 김동인의 역사 내지 민족 의식을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비판하고 있다. 김동인의 작가 의식에 관한 연구는 그와 그의 문학에 대한 보다 실증적․분석적인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 작품 성향 : 김동인의 문학적 경력은 1919년부터 시작된다. <창조>를 발간하면서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한다. 1920년에는 그는 단편 “피아노의 울림”, 중편 “마음이 옅은 자여”를 발표하며, 문학 비평가의 역할의 문제를 에워싸고 염상섭과 논쟁을 벌인다. 1921년에는 그의 대표적 단편의 하나로 쾌락주의적 인생관을 바탕으로 한 탐미주의 사상을 표현한 “배따라기”를 발표하는 외에 “목숨”, “전제자” 등을 발표한다. 1923년에는 단편 “이 잔을” 등을 발표한다. 특히 “이 잔을”은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그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과 태도를 보여 주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1924년 그는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간행하며 단편 “유서”, “거치른 터” 등을 발표한다. 1925년에는 단편 “정희”, “명문”, “감자”, “시골 황 서방”, “눈보라” 등 그의 자연주의적 인생관을 짙게 반영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한다. 1929년경부터는 단편 “광염 소나타”, “송동이”, “K 박사의 연구”와 그의 최초의 장편인 “젊은 그들” 등을 발표한다. 1930년에는 단편 “죄와 벌”, “증거”, “순정”, “구두”, “포플러”, “신앙으로”, “여인”, “뺏기운 대금업자” 등을, 1931년에는 “발가락이 닮았다”, “거지”, “대수양” 등을, 1932년에는 단편 “붉은 산”, “적막한 저녁”, 장편 “아기네” 등이 있다. 이 중 “신앙으로”는 극심한 삶의 시련을 겪은 후의 그의 신앙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며, “붉은 산”은 그의 민족 의식을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 후 얼마간의 작품 생활을 하다가 1951년 동란의 와중에서 병사했다.

□ 문학적 특성 : 김동인은 이광수와 더불어 한국 근대 소설의 개척자요 선구자였다. 김동인은 한국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를 창간하고 이를 통하여 5가지 분야를 개척했다고 조연현은 말한다. 첫째는 구어체 문장을 확립하고, 둘째는 구체적 문예 운동을 전개하고, 셋째는 계몽주의를 거부하고 순문학 정신 및 근대 사실주의를 도입하고, 넷째는 근대적 단편 소설을 개척하고, 다섯째는 근대적 문예 비평을 개척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김동인은 자신의 소설에서 구어체 문장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고 주장하며, 그 구체적 특징으로 첫째는 ‘-더라’, ‘-이라’ 등의 구투에서 탈피, 둘째는 현재법 서사체에서 과거법 서사체로 개혁, 셋째는 대명사 ‘그’의 사용, 넷째는 사투리의 처음 사용 등을 주장하고 있다. 조연현은 김동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이러한 계몽주의에의 거부가 사조상으로는 사실주의를 조성시키는 방향이 되었고, 근대 소설의 확립과 함께 문학의 기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술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김동인도 계몽기의 문학의 넓은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학사적 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근대적 단편 소설을 처음으로 개척했다는 점이다. 그의 “배따라기”는 근대 단편 소설로서의 기본적 형태를 구비한 한국 소설사상 단편 소설의 최초의 한 규범을 보여 준 작품이었다. 김동인의 또 하나의 중요한 공적은 그가 근대적인 문학 비평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전대 혹은 이광수의 목적 문학에 반대, 문학의 예술성과 구조를 논하는 형식주의적 비평의 길을 개척하였다.

 

▶ 광염 소나타

 

1. 줄거리

나는 사회 교화자 모씨에게 정신 병원에 있는 백성수의 이야기를 하며 예술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광기 어린 음악가였던 백성수의 아버지 친구인 나는 어느 날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불이 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방화범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교회 피아노에 앉아 야성적 음향으로 곡을 치는 것을 듣고 천재적인 음악성에 놀라게 된다. 광기 어렸던 음악가 친구의 아들임을 알게 되어 집으로 데려와 광염 소나타의 악보를 만들고 백성수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의 정성스런 돌봄으로 광기를 감추고 정상적으로 지내다 어머니가 아프게 되어 가세가 기울게 된다. 어머니가 중태에 빠진 어느 날 의사를 부를 돈이 없어 가게 방의 돈을 훔치다 주인에게 걸려 사정을 했지만 감옥으로 가게 되고, 어머니는 감옥에 있는 동안 돌아가시어 묻힌 곳도 모르게 된다. 묘를 찾다가 교회로 뛰어든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모씨를 집으로 데려와 백성수의 편지를 보여 준다. 앙갚음으로 가게 방에 불을 놓고, 그것을 본 백성수는 야성적 음악성이 살아나고 그 후 작곡이 안될 때에는 자극을 받기 위해 불을 놓게 되고, 불이 자극을 못 주자 시체를 던져 온몸이 터지게 하거나 죽은 여인의 시체를 강간하고 살인을 하게 된다.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을 받아야 불후의 명곡이 나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난 예술을 위한 행위는 죄악이 아니라고 모씨에게 말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적․공간적으로 제한 없음(몇 십 년 후의 지구상의 어느 곳).

◎ 경향 : 유미주의적(탐미주의적)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주인공인 ‘백성수’가 서술하는 경우는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제 : 미(美)에 대한 광기(狂氣)의 동경(憧憬). 예술 창조에 대한 욕구와 인간성의 희생

◎ 출전 : <삼천리>(1930), <중외일보>(1930)

 

3. 등장 인물

◎ 백성수 : 방화, 살인, 시체 간음 등을 통하여 광기를 일으켜 천재적 음악성을 발휘하는 작곡가이나 예술을 위한 어떠한 행위도 죄악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음악가

◎ K씨 : 백성수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음악 평론가로서 백성수의 예술에 대한 천재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은연중에 백성수를 사주함.

◎ 사회 교화자 모씨 : K씨의 대담 상대 역할자로서 윤리 도덕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대표적 존재

 

4. 이해와 감상

김동인이 유미주의에 관심을 기울여 그 세계를 소설화한 작품은 이 “광염 소나타”와 “광화사”가 대표적이다. “배따라기”도 같은 계열에 들지만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두 작품 모두 예술 세계를 소재로 한 것으로 하나는 음악가, 하나는 화가의 삶을 다루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추구한 음악의 세계는 광기(狂氣)라고 하는 예술적 정열에 있다. 김동인이 추구한 미(美)는 조화와 선(善)과는 거리가 먼, 일상성에서 크게 벗어난 일탈 취미와 관련이 있다. 과히 악마주의적이라 할 만큼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보여 주는데, 김동인이 규정한 미는 반이성주의(反理性主義), 반규범(反規範), 반도덕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방탕과 파괴, 음습함, 기괴함 따위의 부조화된 광기의 속성을 지닌다. 실제로 김동인은 한때 유미주의에 취해 생활 자체를 유미주의적으로 실천하기도 했다. 그것은 방탕이었는데, 이 파괴적 삶은 그가 유미주의의 본질을 그렇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유미주의 소설은 이런 형태에 대한 찬사로 일관되어 있다. 유미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는 창작의 목적이 오로지 미적 세계의 창조에 주어져 있다. 따라서 주제 의식이 개입될 여지가 적고, 그런 특이한 미의 구현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주의라는 보다 넓은 개념에 수렴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술의 세계는 형식의 창조에 주안점이 주어진다. 유미주의 소설은 그 형식에 있어서 특징이 발휘된다. 그러나 김동인은 형식(소설의 구조, 표현)보다는 인물 자체를 유미주의자로 설정하고 구현했다고 하는 한계를 가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백성수는 천재로 그려졌다. 유미주의자는 섬세하고 특이한 미의 발현자인 이상, 천재로 그려진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 천재성은 범상(凡常)에 적응할 수 없고, 보다 높은 차원의 예술을 지향한다. 백성수는 신이(神異)한 존재로 설정된다. 그는 기존의 음악 양식을 거부한다. 각고 끝에 작곡한 작품은 참답고 힘있는 음악이 못 되었던 것이다. 즉흥적이고 선이 굵으며, 야성으로 충일된 음악만이 참된 예술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삶의 조건은 파괴되어도 좋다는 입장이다. 

 

“힘있는 예술, 선이 굵은 예술, 야성으로 충일된 예술 ― 우리는 이것을 기다린 지 오랬습니다. 그럴 때에 백성수가 나타났습니다. 사실 말이지, 백성수의 그 새 예술은,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의 문화를 영구히 빛낼 보물입니다. 우리의 문화의 기념탑입니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 개, 변변치 않은 사람 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적어도 우리 예술가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집의 개나 사람 개 따위는 이 위대한 예술의 탄생을 위해 희생되어도 좋다는 서술자의 마지막 말은 김동인의 유미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예술은 기성의 파괴, 윤리의 말살, 기존 관념의 철저한 박멸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악마적 야수성의 표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광포성(狂暴性)을 키워 가야 한다. 담배 가게에 불을 지르고는 그 미칠 듯 타오르는 불길에서 영감을 얻고 암울하고 신비로우며 정열적인 소나타를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백성수가 그 불길 속에서 받는 미감(美感)은 물론 전율하는 광포함이다.

 

“그 여자가 죽었다는 것은 제게도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그 날 밤, 혼자 몰래 그 여자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칠팔 시간 전에 묻어 놓은 그의 무덤의 흙을 파서 그의 시체를 꺼내어 놓았습니다. 푸르른 달빛 아래 누워 있는 아름다운 그의 모양은 과연 선녀와 같았습니다. 가볍게 눈을 닫고 있는 창백한 얼굴, 곧은 콧날, 풀어 헤친 검은 머리…… 아무 표정도 없는 고요한 얼굴은 더욱 처연(悽然)함을 도왔습니다. 이것을 정신이 없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저는 갑자기 흥분되어 …… 아아, 선생님, 저는 이 아래를 쓸 용기가 없습니다. 재판소의 조서를 보시면 저절로 알으실 것이올시다. 그 날 밤에 된 것이 ‘사령(死靈)’이었습니다.”

 

이런 일탈성은 심화되어 사랑하는 여인의 무덤을 파헤치는 기묘하고 무서운 행동으로, 시체를 강간하는 변태적 행동으로 나아가며 살인도 불사한다. 그것은 모두 예술혼의 구현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처럼 김동인의 유미주의는 반사회적, 반인륜적, 반조화성을 기저로 한다. 그러므로 그의 예술관은 충동성에 의한 즉흥적인 것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오랫동안의 노력 끝에 정제된 예술은 참다운 것이 될 수 없으며, 분노와 광기의 공포스런 전율에 의한 그로테스크한 세계만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무의식으로 표출되는 광포함, 그것을 내재하고 있는 자가 천재라면, 그의 예술관에서는 천재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이런 태도가 곧 그의 예술지상주의였던 셈이다. 따라서 예술은 사회적 질서에서는 벗어나야 하고, 보편적 정서와는 동떨어져야 하며, 그 세계가 기괴하면 할수록 우수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백성수의 광기 어린 예술혼을 그리면서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을 두 가지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모성 본능이요, 또 하나는 가난이다. 이 둘은 맞물려 서술되고 있지만, 하나는 개인적 조건이요, 하나는 사회적 조건이다. 개인적 조건 때문이라면 이 제약에 의해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자연스럽고, 사회적 조건이라면 물적 조건이 삶을 결정한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서술되어야 어울린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내세우고서도 유미주의의 삶에 집중해 버렸기 때문에 구성이 탄탄하지 못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모성 고착(mother fixation)이라는 심리주의적인 세계에도 김동인이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유미주의에 대한 집착과 자부심은 서술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액자 형식을 빌린 논평을 통해 작가는 서술자의 목소리로 유미주의 찬양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현대 소설의 가장 큰 요소의 하나인 묘사를 생략하고, 집약적 서술로 일관해 버리는 태도에서도 김동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저명한 음악 평론가 K씨와 사회 교화자가 담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사회 교화자의 말은 몇 개의 대답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K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거나 백성수의 편지로 되어 있다. 그런 만큼 음악 평론가인 K씨의 예술관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 K씨는 유미주의 예술관을 대표하며, 사회 교화자는 사회적 가치를 대변한다. K씨는 물론 작가와 거리가 밀착되어 있는 인물로 김동인 자신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이야기의 출발은 ‘기회’라는 의미에 대한 것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계기’라는 의미로 바꾸어도 좋은데, 백성수가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지만, 기묘한 계기에 의해 도둑질을 했고,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고, 그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큼 복수심이 이글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백성수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던 광기가 예술로 발현되었으므로, 백성수의 사회적 일탈 행동을 두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동인의 시각은 분명한 모습을 가지고 드러난다. 그는 사회적 일탈 행동 덕에 참다운 예술이 생겼다면, 참다운 예술을 지키기 위해 일탈 행동은 전제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극단의 유미주의는 반도덕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는 예술지상주의인 것이다.

 

▶ 광화사(狂畵師)

 

1. 줄거리

어느 석양녘 인왕산 록에 산책 나온 여(余 - ‘나’)는 자연의 유수(幽邃)한 맛에 젖어 있다가 한 이야기를 꾸며 보기로 했다. 조선 세종 때 한 화공[솔거]이 있었는데, 천하의 추물이라 장가를 두 번이나 갔지만 색시가 도망해 버린다. 그 후 30년 간 화도(畵道)에 정진하며 은둔하다가 자신의 화폭에 담을 이상(理想)의 여인을 찾아 10년 동안 방황한 끝에 인왕산 록에서 우연히 소경 미녀를 만나 집으로 데려온다. 눈동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완성한 후 소경과 화공은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 이튿날 눈동자를 마저 그리기 위해 용궁 이야기를 하며 아름다운 표정을 떠올리길 바라지만, 이미 애욕(愛慾)의 관계를 거친 처녀에게는 다시는 그런 표정이 떠오르지 않고, 화공(畵工)이 안타깝게 멱을 잡고 흔들자, 원망의 눈을 한 채 소경은 쓰러져 죽는다. 죽어 넘어지는 순간 먹물이 튀어 그림은 완성되나 그 눈은 마지막 죽어 가던 순간의 원망을 담고 있었다. 그 후 화공은 미쳐 돌아다니다 끝내는 소경을 그린 족자를 가슴에 품고 운명한다. 여기까지 이야기 구상을 마친 여는 화공을 조상(弔喪)한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 배경 : 시간(조선 세종 때) / 공간(한양의 백악)

◎ 경향 : 유미(탐미)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 낭만주의 경향

◎ 시점

외부 이야기(1인칭 주인공 시점) : 여(余) - 현재 - 사실

내부 이야기(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화공의 이야기 - 과거 - 상상

◎ 구성

외부 이야기

내부 이야기

발단 - 추한 모습의 천재 화가 솔거

전개 - 미인도 제작에 열정을 바침.

전환 - 소경 처녀와의 만남과 미인도 제작

위기 - 눈동자 그리기의 실패와 화공의 분노

절정 - 소경 처녀의 죽음. 저절로 찍힌 눈동자

결말 - 늙은 광인 솔거의 행적과 죽음

◎ 제재 : 인간 속세와 격리된 자연 환경

◎ 주제 : 한 화공의 일생을 통해 나타난 현실(세속)과 이상(예술) 세계의 괴리(乖離)에서 오는 비극. 미에 대한 광적인 동경

◎ 출전 : <야담>(1935)

 

3. 등장 인물

◎ 여(余) : 작중 화자

◎ 솔거 : 추한 모습으로 인해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광적인 화가. 30년 간 숨어 살면서 천하 절색이라고 믿는 사내들을 깔보아 주려고 광적으로 미인(구원의 여인상)을 그리려 함.

◎ 소경 처녀 : 보기 드문 미인으로 순박한 여자였으나, 산 경치가 아름답다는 화공의 말을 듣고 산에 올라와 화공과 동침하게 되고, 화공과 애욕을 체험한 후 속화(俗化)해 버리며, 그림에 대한 광적인 열기를 갖고 있는 화공에 의해 죽게 됨.

 

4. 이해와 감상

1935년 <야담>에 발표. 김동인의 유미주의적 경향이 잘 나타난 작품. 그는 미에 대한 견해를 여러 글에서 제시한 바 있는데, ‘악(惡)도 미(美)’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미에 대한 광포적(狂暴的) 동경’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허구적으로 표현한 것이 이 소설이다. 김동인의 유미주의적 경향이 짙게 나타난 작품으로서, 작가의 예술지상주의적 취향이 작중 인물 ‘솔거’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그(솔거)의 예술에 대한 열정도 그렇지만, 대상을 향한 심미안, 밤을 지내고 난 소경 처녀의 눈빛에 일어난 변화, 그에 대한 안타깝고 절망적인 분노는 그런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더구나 소경 처녀가 죽으면서 엎은 벼루의 먹 방울이 튀어 그림의 눈동자를 이루고, 그 눈동자가 죽은 처녀의 원망의 눈으로 나타나며, 결국 화공이 미치게 되는 마지막 부분은 거의 악마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의 희생 위에서 희귀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따라서 예술적 완성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작가의 성향을 반영한다. 동시에 솔거로 대표되는 예술가의 강렬한 예술혼의 결과가 ‘원망의 빛이 서린 미인도’라는 점에서 절대미(絶對美)의 추구는 그토록 지난(至難)한 것임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의 가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인물 설정과 특이한 주제를 노골화한 작품이어서 보편적 가치론에 수용되기는 어렵다. 솔거가 소경 처녀와 정을 통한 뒤, 순수성이 없다는 한 가지 이유로 그녀를 교살(絞殺)하는 장면 등이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솔거라는 인물의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과 비정상적 가치에 대한 경도(傾倒), ‘눈동자’라는 결말의 작위적(作爲的) 장치 등과 더불어 이 소설은 김동인 특유의 극단적 예술주의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시대적․사회적 배경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액자 소설로 액자 속의 ‘솔거’ 이야기와 밖의 ‘여(余)’의 이야기는 그 시대적 배경이 다르지만, 창작 동기에서 때와 장소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미의 성취라는 주제와 관련된 배경은 인간 속세와 격리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중요한 배경이 된다. 표현상으로 볼 때 객관적인 묘사와 간결한 문체로 명료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인왕산과 화공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 전체적으로 대화체를 사용해 호흡이 빠르게 넘어간다.

 

▶ 김연실전

 

1. 줄거리

김연실은 평양 감영의 이속이었던 김영찰과 그의 소실이었던 낭기 사이에 태어나 신식 학교인 진명 여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그 학교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김연실은 동경 유학을 꿈꾸며 기생 오라비인 측량 기사로부터 일어를 배우다가 열 다섯의 나이에 순결을 잃는다. 그래서 김연실은 집에서 돈을 훔쳐 몰래 일본으로 간다. 선배인 최명애의 도움으로 여학교에 들어간 연실은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회에 참석하여 회장의 연설에 감동하게 되고 선각자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조선 여성을 노예의 처지에서 건져내고, 구습에서 아직 눈뜨지 못한 조선 여성을 새로운 세계로 끌어내리라 결심한다. 또한 같은 방을 쓰는 호천이라는 여학생의 영향으로 여류 문학가가 될 꿈도 갖는다. 그녀는 문학은 연애요, 연애는 성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문학과 연애를 사모한다. 그래서 연애 소설에서 본 대로 스스로 체험하기 위하여 남성을 찾고 학교도 음악 학교로 옮긴다. 그 후, 그녀는 무수한 남성 편력을 거친 다음 귀국하여 여류 문학가로서 문학 지망생들 사이에 여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그녀는 친구의 애인을 빼앗고 빼앗기는 생활을 하다가 모든 남성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 즈음에 세계적인 공황이 밀려옴으로써 극도의 빈곤을 맛보게 된다. 그녀는 호텔에서 하숙으로 생활을 줄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셋방을 얻으러 갔다가 옛날 일본어 선생이었던 측량 기사를 만난다. 그리하여 그녀의 최초 이성이었던 복덕방 주인과 다시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배경 : 개화기

◎ 주제 : 개화의 물결 속에 도덕적으로 타락해 가는 한 여성의 인생

 

3. 등장 인물

◎ 김연실 : 현실에 비논리적으로 대처하는 그릇된 가치관을 지닌 신여성

 

4. 이해와 감상

소설적 장치와 그 수법의 측면에서 “김연실전”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전기적(傳記的) 스타일 구성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변모 과정을 단계적으로 추적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중시하고 있다. “김연실전”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수도편, 선구편, 오도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오도편에서 그의 정신적․육체적 몰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수법은 단순한 소설적 기교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인간관 또는 물질주의적 애정관에 관련되는 문제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 배따라기

 

1. 줄거리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대동강으로 봄 경치를 구경갔다가 ‘영유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를 만나 사연을 듣는다. 조그만 어촌에 부자이며 배따라기 노래를 잘 부르는 두 형제가 산다. 형제는 모두 장가를 들었고 부부 사이 못지 않게 의가 좋았다. 형인 ‘그’는 영유 사람으로, 아름다운 아내와 늠름한 동생을 두었다. 성품이 쾌활하고 친절한 젊은 아내가 미남인 동생에게 특히 친절한 것을 못마땅해 하며 질투심에 아내를 자주 괴롭힌다. 그 후 아내와 아우 사이의 관계가 유난히 원만하자 형은 둘 사이를 의심하게 되고 기회만 있으면 꼬투리를 잡아 혼내 주려고 벼른다. 그런 참에 아우가 영유에 자주 출입하면서 첩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가 형에게 동생을 단속하라고 보채자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어느 날 아내에게 줄 거울을 장에서 사 들고 집에 들어오다가 아내와 동생이 방에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로 씩씩대는 것(사실은 방에서 쥐를 잡느라고 그리 된 것임)을 보고 오해한 나머지 둘의 등을 밀어 내쫓았다. 저녁 때 방에 들어와 성냥을 찾던 형은 낡은 옷 뭉치에서 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했으나 다음 날 낮쯤 아내는 시체가 되어 바다 위에 떠오르고, 이 때문에 아우는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하게 된다. 결국 형은 20년 동안 배따라기 노래를 부르며 뱃사람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동생을 찾아 뱃사람으로서 방랑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그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바닷가에서 동생을 만난다. 그러나 “형님, 그저 다 운명이웨다!” ― 이 한마디와 함께 동생은 환상처럼 떠나 버린다. 그리고 다시 10년 세월을 유랑하지만 동생을 다시 만나지는 못한다. 그 날 밤 ‘나’는 ‘그’의 숙명적 경험담에 잠 못 이룬다. 다음날 아침 대동강에 나갔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평양과 영유) / 상황적 배경(바다)

◎ 경향 : 낭만적 경향, 유미주의(唯美主義, 탐미주의)

◎ 시점 : 외부 이야기(1인칭 관찰자 시점), 내부 이야기(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액자 구성

도입 - ‘나’가 ‘그’를 만남.

발단 - ‘그’의 형제의 영유에서 삶

전개 - 동생에게 친절한 아내를 자주 괴롭힘. ‘그’의 질투

위기 - 쥐잡이 사건과 오해. 아내를 때려서 내쫓음.

절정 - 아내가 죽고, 동생도 고향을 떠남.

결말 - 동생을 찾아 방랑함.

마무리 - ‘나’를 위해 ‘배따라기’를 한 번 부르고 ‘그’가 떠남.

◎ 주제 :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는 인간의 비애. 오해가 빚은 형제간의 운명론적 비극

◎ 출전 : <창조>(1921)

 

 

3. 등장 인물

◎ 형 : 아내를 사랑하나 질투심이 많음.

◎ 아내 : 성격이 밝고 친절함. 남편의 오해를 받고 자살함.

◎ 동생 : ‘배따라기’의 노래를 잘 부르고 외모가 준수하고 늠름함. 형의 오해와 형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일생을 방랑한다.

◎ 나 : 서술자이면서 관찰자이다.

 

4. 이해와 감상

액자 소설의 구조를 갖추었고 원초적인 애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외부 이야기의 화자인 나와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가 느끼는 삶의 비극과 허무함이 동일한 지평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단편 소설사에서 액자 소설 양식을 뚜렷하게 정형화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그’는 도덕이나 윤리, 혹은 이성의 규제를 의식하기보다는, 충동적인 감정과 본능에 의해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의 감정적인 분노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야수성은 소설에 나타나는 자연주의적 특질에 닿는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 애욕이 불러일으키는 파괴적 결과가 솔직하게 그려지며, 비록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만 현실성을 획득하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근친상간이라는 모티브가 등장하고, 감정적 충동에 지배당하는 인간형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감자”와는 달리 자연주의적 특질이 전면적인 것은 아니다. “배따라기”의 사연은 ‘그’가 과거를 회한에 젖어 되새기는 것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는 과거에서처럼 감정과 충동에 지배당하는 인간이 아니라 과거의 ‘야수적 인간’으로서의 그를 뉘우치고 있다. 이 작품의 ‘현재’를 지배하는 것은 배따라기의 구슬픈 곡조이며, 동생을 찾는 형의 안타깝고도 절절한 심정이다. 따라서 동물적인 순박함과 애욕, 충동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비극적 결과를 낳는 (과거의) 자연주의적 세계는, 현재의 낭만적 색채 아래 깔려 있는 것이다. 순수 예술주의를 개척한 김동인은 “배따라기”에서부터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즉 인형 조종술로 ‘일원 묘사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는 액자 소설의 형태로 드러난다. 특이하게도 여기서 사용된 액자 구성은 외화가 단순한 도입부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화의 주제와 대응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두 개의 이야기간의 감정상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력의 부질없음과 거기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미의식이다. 김동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희생한 뒤에 나오는 허무감과 깊은 관련성이 있으며 ‘배따라기’ 노랫소리의 아름다움과 그 노래를 부르는 형이 갖고 있는 恨에서 나왔다. 이러한 아름다움과 미는 허무감과 연관되고 소중한 것을 희생한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낭만적이고 유미주의적 경향이 드러난 작품으로 운명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과 끝없는 회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감이 소설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잡가의 하나인 ‘영유 배따라기’를 제재로 하여 恨 많은 인물의 내력을 엮어 놓았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운명과 마주쳐 생기는 한(恨)의 정서이다. 의처증과 오해가 증오로 표출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관계를 와해시키고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한 모습, 그리고 끝없는 자책과 회한(悔恨)의 정서는, 특히 ‘바다’의 이미지와 어울려 매우 서정적인 심미감을 더해 준다. 문체에 있어서 이 소설은 김동인의 후기 작품들과는 달리 유려한 우유체적 문체도 보이나, 역시 필요한 부분에서는 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호흡 짧은 문장의 직접적이고 역동적인 묘사가 돋보이고, 빠른 사건 진행이 두드러진다. 이 소설은 3중의 액자(額子) 형식인데 형(사공)을 방랑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부분, 형의 방랑 과정, 그리고 작중 화자의 서술 부분이 그것이다. 그중 가장 비중이 큰 곳이 방랑의 계기가 서술된 부분인데, 다만 아내의 자살이 다소 돌발적으로 보여지는 아쉬움이 있다. 동생과의 만남도 너무 극적이다. 1910년대 이광수 소설의 계몽적 경향을 극복, 순수 예술 단편으로서의 기본적 형태를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서사 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외부 이야기 - 유토피아를 꿈꾸는 ‘나’의 이야기 : 극단적인 미의 낙원을 추구하는 ‘나’의 미의식

내부 이야기 - 오해와 질투로 인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그’의 이야기 : 회한 속에 유랑을 계속해야만 하는 ‘그’의 운명적 비극

 

<참고> ‘배따라기’에 대하여

‘배따라기’는 평안도 민요의 하나다. 배따라기라는 이름은 ‘배 떠나기’의 방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박지원이 쓴 <한북행정록>이란 책에는 “우리나라 악부에 이른바 ‘배타라기’라는 노래가 있는데 방언으로 배 떠나기로서 그 곡조가 처량하기 그지없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배타라기’는 배따라기의 한자식 표현이다. 당시의 배따라기 가사는 다음과 같다. “닻 올리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소. 만경창파에 가시듯 돌아오소.” 이 가사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과는 다른데, 지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지화자자 좋다. 요내 춘색(春色)은 다 지나가고 황국 단풍이 돌아왔구나.” 김동인의 “배따라기”에서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후토 일월성신 하느님전 비나이다. 실낱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등의 가사가 인용되어 있다. 이 노래는 뱃사람들의 고달프고 덧없는 생활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데, 그 곡조는 슬프고 애처롭다.

▶ 붉은 산

 

1. 줄거리

이 작품의 화자는 ‘나’[여(余)]이다. 만주의 어느 한국인 마을에 ‘삵’이라는 별명을 지닌 정익호가 흘러 들어온다. 성격이 괴팍하고 행동이 사나워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암적인 존재이다. 어느 해 송 첨지가 중국인 지주에게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여 죽게 된다. 사람들은 송 첨지의 죽음 앞에서 모두가 이를 갈면서 원수를 갚자고 흥분한다. 그러나 막상 만주인 지주와 맞서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삵이 나를 통해 듣는다. 다음날 아침 그는 동구 밖 밭고랑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단신으로 못된 만주인 지주의 집에 가서 송 첨지를 죽인 분풀이를 하고자 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그는 이미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어 가며 붉은 산과 흰옷이 보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힘을 혀끝에 모아 붉은 산과 흰옷이 보인다고 하면서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한다. 여와 둘러섰던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애국가가 퍼져 나온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만주의 어느 마을)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경향 : 민족주의적 경향

◎ 표현 : 사실주의적 기법

◎ 구성

발단 - ‘여(余)’가 만주 어느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적음.

전개 - 정익호(삵)가 그 마을에 나타남.

위기 - 마을 사람들이 ‘삵’을 싫어하여 내쫓고자 하나 어찌하지 못함.

절정 - 지주에게 항변하러 갔던 ‘삵’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옴.

결말 - 애국가를 부르는 가운데 ‘삵’이 죽어 감.

◎ 주제 : 일제 치하 만주에서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

◎ 출전 : <삼천리>(1932. 4)

 

3. 등장 인물

◎ 정익호 : 떠돌이로서 ‘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포악하고 교활하다.

◎ 송 첨지 : 만주 벌판에 흘러든 우리 동포

◎ 여(余) : ‘나’를 가리키는 말인데 의사이며, 정익호와 만주 지역의 동포들 생활을 관찰하게 되는 사람

 

4. 이해와 감상

1933년 4월 <삼천리> 제37호에 발표된 김동인의 문학 작품이다. ‘어떤 의사의 수기’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다. 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한․중 양국 농민 사이에 일어난 ‘만보산 사건’이 작품의 제작 동기로 추측된다. 소설의 시작은 의학 연구차 만주를 순회하던 ‘나’[여(余)]가 가난한 한국 소작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삵’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익호를 만나면서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려 나간다. ‘삵’은 투전과 싸움으로 이름난 마을의 골칫거리요 망나니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삵이나 죽지.” 할 정도로 그를 미워하고 꺼려하였다. 어느 날 소작료를 적게 냈다 하여 만주인 지주에게 송 첨지 노인이 얻어맞아 죽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흥분할 뿐, 감히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동구 밖에 ‘삵’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게 된다. ‘삵’은 혼자서 그 만주인 지주를 찾아가 항의와 싸움 끝에 그를 해치웠다. 그로 인해 자신 또한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임종 직전에 ‘삵’은 ‘나’에게 “붉은 산과 흰옷이 보고 싶다.”고 말하며,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운명한다. 구성상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인 ‘나’[여(余)]의 눈을 통해 주인공 ‘삵’을 묘사함으로써 소설로서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적․공간적으로 험난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등장 인물들의 반격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이민 가서 살던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겪어야 했던 수난사를 '삵'이라는 한 인물의 설정으로 그의 삶을 통해 구체화한다. 우리는 여기서 조국 독립의 절실함을 느끼게 되는데,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주체인 ‘나’[여(余)]는 의사 신분으로 관찰 대상인 ‘정익호(삵)’의 기이한 행동을 추적하면서 마침내 그 행동의 이면에 깃들어 있는 민족 정신을 일깨워 주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김동인으로서는 유난히 역사 의식을 내세우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삵’은 고국을 떠나 유랑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송 첨지의 죽음은 만주에 흘러 들어가 사는 우리 동포의 비극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삵’은 마음 속으로만 비분강개할 뿐인 백의민족(白衣民族)의 무기력함을 박차고 만주인(滿洲人)을 향해 복수를 꾀한다. ‘삵’의 임종시(臨終時) 하는 말에서 ‘붉은 산’과 ‘흰 옷 입은’은 우리 국토와 민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국과 민족에 애정과 향수를 보인다. 이 소설 속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국[고향] 상실의 의식이 밑바닥에 짙게 깔리면서 이에 비롯되는 한국인으로서의 뼈저린 비애와 분노가 담겨 있다. 억눌렸던 민족의 복수 감정을 ‘삵’의 행동이 어느 만큼은 해소시켜 주기까지 한다. ‘삵’의 이러한 행동에는 ‘밥버러지 기생충’ 생활만을 해 온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뉘우치고 남을 위해 무엇인가 헌신해야겠다는 속죄 의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같은 민족으로서의 울분이 동시에 작용하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민족 감정에 부딪힘으로써 민족애(民族愛)를 고취시켜 준 비극미(悲劇美)를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이 소설은 조국과 민족 의식을 나름대로 극대화해 보여 준 인생 희화(人生戱畵)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약한 자의 슬픔

 

1. 줄거리

조실부모하고 가난한 고아로 자라 K 남작의 집에서 가정 교사를 하던 여학생 강 엘리자베스는 친구 S의 외사촌 오빠이며 H 의숙(義塾)에 다니는 이환을 마음 속으로 짝사랑하지만 용기가 없어 길에서 만나도 표시를 하지 못하던 중, K 남작에게 정조를 잃고 결국 임신을 하게 된다. 이환과 K 남작과의 관계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K 남작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지만 권세와 재력이 있는 그는 이 사실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부인을 통해서 강 엘리자베스는 쫓겨나게 된다. 갈 곳이 없게 된 그녀는 경성 교외에서 농사를 짓는 오촌 고모의 집에 기거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여 K 남작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부와 지위가 있는 남작에게 패소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아이마저 낙태하게 된다. 낙태된 아이를 쥐고 그 아이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던 엘리자베스는 약한 자로서의 ‘표본 생활 20년’을 돌이켜 보며 잠이 들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차디찬 핏덩이를 쥔 엘리자베스는 그 아이에게서 따스한 맛이 느껴지게 되고 ‘사람이란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깨닫게 되자 앞으로의 삶은 '약함'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강함’을 가진 자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되고 ‘강함’은 참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그렇다! 내 앞 길의 기초는 이 사랑!”하며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녀 앞에는 넓은 세계가 있었다. 누리에 눌리어 살던 그녀는 지금은 그 위에 올라섰다. 그녀 입에는 온 우주를 쳐 누른 기쁨의 웃음이 떠올랐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봉건적인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는 시대

◎ 경향

(1) 진정한 서구적 자연주의 경향의 문학 확립

(2) 단편 소설의 기반을 본격적으로 확립

(3) 단일한 시점을 확보한 새로운 문학 형식 창출

(4) 문장 혁신(① 과거 시제 사용, ② He, She를 ‘그’로 통일)

◎ 주제 : 연약한 봉건적 여성이 겪는 비애와 그 극복 의지

 

3. 등장 인물

◎ 강 엘리자베스 : 심성이 착하고 순한 고아(孤兒) 처녀. 신교육을 받은 여성. 지위 및 성(性)의 차별에 순종하다가 후에 이것에 대한 탈피 의지를 보임.

◎ K 남작 :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인물. 이를 이용하여 사는 전형적인 귀족

◎ 남작 부인 : 이해심 많고 품위 있는 귀부인

◎ 오촌 모 : 봉건적 제도 속에서 살아온 평범한 농민으로 마음이 넓고 친족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힘에 도전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겉으로는 약한 것 같으나 강한 여인상)

 

4. 이해와 감상

1919년 <창조>에 발표된 중편 소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현실의 삶은 힘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며 일반적인 인간은 굴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 속의 ‘약함’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사랑이라는 ‘강함’을 통해 아름답게 꾸미면 그 어떤 자의 삶이라도 가치 있는 것이 된다. 즉, 약함으로 인해 생기는 설움(비극성 또는 비극미)을 통하여 완결된 형식(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약한 자의 슬픔”은 1919년 <개벽> 창간호에 발표된 리얼리즘 수법의 최초 단편으로 이광수의 설교조 계몽주의 작품 경향에서 벗어난, 소설 자체의 완결된 미학성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즉, 근대적인 소설의 형식과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문학 자체의 존재 영역을 확보한 작품이다. 이전의 소설들은 특정의 심리 묘사나 성격 창조가 미약하고 객관적 서술 시점이 확보되지 않아 작품 전개에 작가가 끼어 드는 바람에 작품의 미학을 해쳤으나, 이 작품은 소설의 구조적 시점 확보를 통한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출하였기 때문에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로써 한국의 현대 문학은 새로운 전기적 요소가 형성되어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운현궁의 봄

 

1. 줄거리

1장에서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집권하기 전으로 이하응의 권력 지향과 영웅성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며, 2장에서는 명종 때부터 철종에 이르는 300년 간의 조선조 정치사가 요약되었고, 3장에서는 해가 바뀐 신유년의 사건으로 전개된다. 4장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조 대비와의 만남으로 인해 장래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고, 5장은 김병기로부터의 수모, 6장은 민승호와의 인연 구축, 7장은 영의정 김좌근의 애첩 양씨의 권력 행패, 8장은 동궁 책립에 대한 조 대비의 의향 타진, 9장은 김병국 일파로부터의 망신과 조롱, 10장은 양씨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12장은 김문 일파의 음모로 터진 이하전 역모 사건, 13장은 흥선대원군과 심복들이 투전에서 포교와의 금전 거래, 14~20에서는 현 제도의 모순과 위정자들의 타락상이 표출되며, 결국 25장에서는 계해년이 지나 갑자년 정월에 26대 조선 국왕이 즉위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역사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시간(철종 때부터 대원군이 정권을 잡기까지의 격변기) / 공간(조선)

◎ 성격 : 민족주의적

◎ 구성 : 전체 25장

◎ 주제 : 격변기의 민족 현실과 민족 정신

◎ 출전 : <조선일보>(1933~1934)

 

3. 등장 인물

◎ 이하응 : 흥선대원군. 야인으로 추락하여 갖은 천대를 견디며 대권을 잡는 인물

◎ 조성하 : 조 대비의 조카. 승후관

◎ 김병국 : 안동 김씨 세도 김문근의 일족으로서 이하응에게 호의적인 인물

 

4. 이해와 감상

“운현궁의 봄”은 1933년 4월 26일에서 다음해 2월 15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역사 소설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상승적 구조’를 보인다는 것과 남의 천대에 대한 분노, 즉 인격적 모독에 대한 반발의 원리 등이 역사적 도정의 과정을 통하여 응축되어 있는 데 있다. 또한 대원군이란 인물을 긍정하는 데서 오는 역사적인 사실 인식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일제 치하의 상황을 민족의 역사 의식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민족적 울분을 부추기고 공동화(共同化)된 의식을 되찾으려고 노력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일제 치하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실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작가는 역사 소설을 선택했으며, 이는 민족적인 의식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1930년대의 역사적 소재를 통한 민족 의식 함양과 국민 문학파의 소설적 성과를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이 작품은 “붉은 산”, “태형(笞刑)” 등과 함께 그의 민족주의적 작가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전체 25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조선 말기의 풍운아였던 흥선대원군의 일생을 그려 놓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 되고 있는 운현궁이란 대원군이 거처했던 집의 가호(家號)이며, ‘봄’은 흥선대원군의 득세의 과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흥선의 낙척 시대가 펼쳐지고, 후반부에서부터 흥선이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서는 역사적인 순간들이 묘사되고 있다. 18장에서부터 21장까지는 흥선의 정치적인 역량과 계략이 치밀하게 그려진다. 조 대비에게 접근한 흥선이 후사에 대한 밀약을 얻어내고 철종의 승하와 함께 흥선의 둘째 아들 재면을 익성군으로 책봉하게 되는 과정은 매우 긴장감 있게 전개되고 있으며, 뒤이어 안동 김씨 일가의 몰락과 흥선대원군의 섭정 시대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왕손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야인으로 추락해, 갖가지 모멸과 천대를 받다가 마침내 권좌에 앉기까지의 파란 많은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외척의 득세와 관료들의 부패 등으로 인해 몰락하는 조선 왕조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왕의 역사 소설이 야사(野史)적인 흥미에만 집착했던 점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작가는 흥선대원군의 일생을 하강적인 것과 상승적인 것으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적인 인물의 성격을 소설적으로 재창조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김동인의 “젊은 그들”과 함께 대원군의 정치적, 인간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역사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젊은 그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대원군의 정치적 득세의 과정이 그려짐으로써 대원군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운현궁의 봄”은 허구적 인물을 특별히 제시하지 않고, 고난과 수모를 견디고 끝내는 아들로 하여금 왕통을 잇게 하고, 스스로는 섭정의 권좌에 오름으로써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게 되는 거인 이하응(흥선대원군)의 역사적인 삶을 그린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김동인의 대원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의 태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원군의 양면성 ― 장래의 도모를 위하여 거족인 안동 김씨 일문의 수모를 참아 가는 낙백한 귀공자의 유일한 생존 대책. 작품의 기본 구성은 대원군의 양광(佯狂) 행위와 내심에 간직한 야망의 평행 관계가 지속성을 가지며, 복선을 이루고 있는 간단한 구조이다. 여기에 김씨 일문의 횡포에 의한 사회상이나 흥선대원군의 수모 같은 삽화가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대원군의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은 내면의 현실화를 통하여 조절되며, 종국에는 제목 “운현궁의 봄”이 암시하는 바의 화해로 종결된다. 인물에서는 대원군의 이원성이 현저한 작품 발단부에서는 김씨 일문과 대원군의 대립 관계로 나타나다가, 내면의 현실화로 이원성이 불필요해지자 그 대립 관계가 해소되는데, 이 해소에서 대원군이 적수인 김씨 일문을 파면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용을 베풂으로써 해소의 단계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의 영웅 숭배론에 입각한 대원군의 변호 및 이상화가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이 김씨 일문과의 대립 해소와 아울러 조 대비 측의 조씨 일문과의 중용의 관계는 작가 김동인이 대원군을 고양하려는 바에 합치되는 접점이라 하겠다. 한편 김동인의 다른 소설인 “서라벌”이나 “젊은 그들”에 비추어 민족사의 법통 내지 정통 문제가 이 작품에도 이어져 있다. 그의 작품 “서라벌”이 제목과는 달리, 실상은 삼국 중 고구려에 관심을 두었던 김동인이 쇄국 정책을 편 대원군에 또한 관심을 기울인 점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보인다. <춘원 연구>에서 김동인이 가한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에 대한 논평에서의 ‘사화(史話)의 기록자라는 서기역(書記役)에서 사실(史實)의 재생이라는 소설역으로 약상(躍上)할 노력을 한다. “단종애사”의 치명상이 있다.’라는 지적을 통하여 김동인의 역사 소설에 대한 견해를 볼 수 있다. 김동인의 역사 의식의 타당성 여부 이전에 작가로서의 대원군에 대한 동조 의식이 사실(史實)을 왜곡하였을 지는 모르겠으나, ‘사화(史話)의 기록자’의 것을 넘는 흥미성이 이 작품에 있음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안목을 통하여, 우리는 역사적 인물인 대원군을 우리의 동조를 기다리는 피와 살을 가진 인물로서 자각하게 된다.

 

▶ 젊은 그들

 

1. 줄거리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던 흥선대원군(大院君)이 민비(閔妃) 일파에 의해 실권(失權)하자 대원군을 따르던 젊은이들이 활민숙(活民塾)이라는 비밀 결사 단체를 조직한다. 그 곳에서 그들은 지동설(地動說)을 비롯하여 서양 학문과 무술을 익히고 무기 사용법을 배운다. 활민숙 숙생들인 안재영, 이인화, 명인호, 그리고 연연 등이 대원군을 추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들 중, 명인호는 민겸호의 집으로 들어가다가 발각되어 총살형을 당한다.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나게 되자 활민숙(活民塾) 숙생(塾生)들은 새로운 활기를 찾는다. 그러나,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자 민비 일파가 다시 득세(得勢)하고 일본이 강제로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자 조선은 종말로 치닫게 된다. 국운(國運)이 이에 이르자, 활민숙 숙생들은 스스로 자결(自決)의 길을 선택하게 되며, 재영과 인화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비극적 운명을 마친다. 오직 살아 남은 사람은 명씨 집안의 씨를 잉태한 연연뿐이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역사 소설

◎ 배경 : 시간(조선 말) / 공간(당시 조선의 현실)

◎ 경향 : 민족주의, 역사주의

◎ 성격 : 민족 및 역사 의식 고취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대원군이 권좌에서 밀려났다가 재등장하기까지의 조선 말기의 상황

◎ 주제 : 모순된 사회 현실에 대한 저항과 좌절

◎ 출전 : <동아일보>(1929년)

 

3. 등장 인물

◎ 이인화 : 빼어난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규수로서, 남장(男裝)을 하고 ‘복돌이’란 이름으로 행세한다.

◎ 안재영 : 영웅적인 인물로 자아 실현을 위해 힘쓰는 청년이며, 이인화의 약혼자이다. 본명은 명진섭이다.

◎ 연연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기생이다.

◎ 명인호 : 안재영과 의형제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 이활민 : 대원군을 숭배하며 난세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인물로서, 활민숙(活民塾)의 영수이다.

4. 이해와 감상

“젊은 그들”은 김동인이 쓴 최초의 역사 장편 소설로서 1929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1920년대 중반의 <국민 문학파>는 민족의 역사적 소재를 재현시켜 민족 의식과 역사 의식을 통한 민족 정신을 탐구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민족 문학 진영의 입장을 대변한 역사 소설로서 민족 의식을 고취한 소설적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 작품은 정권 장악을 노린 권세 싸움과 그 소용돌이 속의 인간 제시와 인생 표현으로 집약된다. 그리하여 여기에는 지도자(영웅)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충의와 의리, 신의, 도리, 그리고 사랑이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사건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작품이 역사 소설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 이유는, 대원군을 이상적인 정치가의 전형적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 젊은이들의 무용담(武勇談)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신비한 현상들을 제시함으로써 비논리적이고 통속적인 재미와 영합하고 있다는 점 등에 기인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작품은 문학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내용면에서의 문제이고, 플롯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즉, 배경은 역사에 두되 가공 인물과 역사상의 인물을 동일한 장소에서 만나게 하는 소설적 기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플롯상의 기법은 전에 없었던 시도로 보여지며, 줄거리만을 나열했던 기존 소설의 타성에서 벗어나려는 소설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아마 작가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서 리얼리티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역사를 매개로 하되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그 역사적 현실을 뛰어넘어 민족의 모순된 현실에 저항케 함으로써 현재적 의미를 획득했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 태형

 

1. 줄거리

3․1 운동 직후, 무더운 여름. 다섯 평도 안 되는 미결수 감방. 3․1운동으로 많은 사람이 옥에 갇히게 되자 감방마다 미결수들이 꽉 차게 되었다. 잠도 사람들을 삼 등분해 돌아가며 잘 형편이고 더위 또한 견디기 어려웠으며 종기, 옴, 탁한 공기 등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 밀폐된 공간에 사십여 명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가운데 죽음보다도 더한 이 상황에서 일초만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다. ‘나’가 절실히 바라는 것도 조국의 독립, 민족 자결, 자유가 아니라 냉수 한 사발과 맑은 공기인 것이다. ‘나’는 공판 날만 기다린다. 엉덩이 종기를 핑계로 진찰실에 가서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날, 70대의 영원 노인이 재판을 받고 돌아 왔다. 태형(笞刑) 구십 도 형을 받은 노인은 나이가 있어 그 매를 맞으면 죽을 것 같아 공소를 했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나가면 나머지 사람들은 넓은 공간에서 살 수 있으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한 패가 되어 “당신이 나가면 자리가 넓어질 것이고, 3․1 운동 때 총 맞아 죽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당신 혼자 더 살아서 무엇하겠느냐?”고 윽박지르며, 다른 사람을 위해 공소를 취하하도록 압력을 넣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을 해 그들의 동조도 얻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저녁 때가 되어 노인은 공소를 취하하겠다고 해 간수를 불러 이야기를 전했다. 간수는 영감을 데려 갔다. 영감이 태형을 받으러 가자 이기심으로 가득 찬 ‘나’와 감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자리가 조금 넓어졌다는 생각에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한다. 오랜만에 목욕을 하는 날이어서 모두들 즐거움에 젖어 이십 초 동안의 짧은 행복을 느끼고 감방으로 돌아 왔다. 매를 맞더라도 목욕을 좀 더 할걸 하는 이도 있었다. 몇 시간 후 더위로 무감각해진 우리들의 귀를 찌르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첫째 사람은 서른 대를 맞고 앓는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 사람은 한 대 한 대 때릴 때마다 기운 없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나는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어젯밤 방에서 끌려나가며 ‘칠십 줄에 든 늙은이가 태 맞고 살길 바라겠소. 난 아무케 되든 노형들이나...’ 하며 말을 맺지 못했던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영감은 초연하였다. 내어쫓은 장본인인 나는 그를 죽음으로 내쫓은 양심의 가책으로 머리를 숙인 채, 굳이 외면하고자 감았던 눈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으려 눈을 힘껏 감았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3․1 운동 직후의 무더운 여름철 감방 안

◎ 문체 : 1인칭 시점이면서도 객관성․사실성을 지닌 문체. 간결한 호흡의 문장 표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제 :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통하여, 이기심과 도덕성의 문제를 제기함. 비참한 감옥 생활을 하면서 이상이나 사상보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에 사로잡히게 됨.

◎ 작품 경향

(1) 1919년 동생의 부탁으로 일제에 대한 격문을 쓰고 감옥살이했던 실제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음(옥중 일기의 일절임).

(2)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음.

(3) 동인의 일반적 경향인 현실을 배제한 극단적인 미의 추구에서 비껴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지만 결국 개인의 비리에 결부시켜 동인다운 작품의 하나가 됨.

 

◎ 구성

발단 - 이 소설에는 발단이 따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전개 - 무더운 날씨의 비좁은 감방. 죄수들의 고통

위기 - 좁은 공간을 넓히기 위해 가엾은 노인에게 공소(公訴)한 것을 비난하며 태형을 받도록 종용하는 죄수들과 ‘나’

절정 - 노인이 태(笞)를 맞으며 죽어감.

결말 - ‘나’의 자책

 

3. 등장 인물

◎ 나 : 이기적이고 비정하나, 태형장으로 내쫓긴 노인의 비명을 들으며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인물

◎ 노인(영감) : 다른 죄수들로부터 소외되어 질시(疾視)의 눈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태형의 고통을 당하고 죽음.

◎ 여러 죄수들 : 이기적이고 비정함.

 

4. 이해와 감상

1922년 12월부터 1923년 1월까지 <동명>에 3회에 걸쳐 연재된 작품. 감옥이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죄수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 일신(一身)의 편안함만을 생각한 나머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적(利己的) 인간 본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태형(笞刑)”은 1922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3회에 걸쳐 <동명(東明)>에 연재된 김동인의 단편 소설이다. ‘옥중기의 일절’이라는 부제(副題)처럼 3․1 운동시의 옥중기(獄中記)라 하겠다.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 ―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 모습은 찾아볼 수도 허용되지도 않는 공간에 놓인 인간들의 언행을 통해, 인간성의 부정적인 한 측면을 명료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더운 여름날 좁은 감방에서 한 사람이라도 없어져서 공간이 조금이나마 넓어지는 것만큼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그래서 태형(笞刑) 받기 싫어서 공소(公訴)를 한 노인을 매도(罵倒)하여 태형장으로 내몰고, ‘나’는 노인의 태형 맞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노인이 받게 되는 태형과 감옥의 극한적 상황이 긴장감을 이루는 가운데,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보여 줄 수 있는 추한 이기심(利己心), 도덕이나 양심을 포기해 버리고 오로지 충동적인 욕구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감옥’이라는 실제적이요, 다분히 상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때, 평소의 겸양․덕성․예절로부터 벗어나 그 심성이 얼마나 왜소해지고 추해질 수 있는가 하는 인간의 비극적 진실을 진단해 본 작품이라 하겠다.

 

 

김성한(1919~)

 

1919년 1월 17일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하였다. 함흥 함남 중학을 거쳐 일본 야마구치 고교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과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수학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언론계에 투신하여 <사상계> 주간 및 <동아일보> 논설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서울신문> 신춘 문예에 단편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단편 “김가성론”, “암야행”, “제우스의 자살”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54년에는 양문사에서 단편집 “암야행”을 발간하였다. 1955년에는 프로메테우스와 신과의 오분간의 협상 회담을 통하여 신의 질서에 저항한 인간의 승리를 암시한 단편 “오분간”을 발표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의 헨리 5세 때 재봉 직공인 바비도가 영어로 된 성서를 읽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단으로 몰려 불에 타 죽게 되는 과정을 통해 교회의 횡포에 저항하는 진정한 신앙, 인간의 존엄성 등을 그린 “바비도”를 발표하였다.

1955년 제1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57년 “귀환”으로 한무숙, 박남수 등과 함께 제5회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50년대에 발표한 그의 소설은 소극적이며 순응적인 인간상을 배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구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적 인간형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1950년대의 작가들과 구별된다. 전후 사회의 비리와 그에 대항하는 정신은 프로메테우스의 분노로, 신의 섭리와 그 허구성에 대한 비판은 바비도의 순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신화와 풍류, 우화 형식의 사용 등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당대적 현실성에 우회적인 접근을 꾀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기법의 파격성과 그 지적 분위기로 인하여 평단의 관심사가 되었다.

작가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결 의식은 1960년대 후기에 이르면서 역사 소설의 방향으로 변화한다.

1959년 이후 십여 년의 공백 끝에 1967년 발표한 역사 소설 “이성계”는 평단의 역사관과 허무주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수나라 양재의 백만 대군을 살수에서 격퇴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민족 생존을 위한 투지와 항전을 그린 “요하”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 바비도

 

1. 줄거리

5세기 초엽 헨리 4세 치하의 영국. 재봉 직공 바비도는 영역(英譯) 성경 비밀 독회에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긴다. 교회의 사제들은 성경의 해석을 독점하고 평범한 빵과 포도주를 성찬(聖餐)이라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제 뱃속만 차리기에 급급한 현실이 환하게 보인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교회 세력은 민중들을 의식화하는 영역(英譯) 복음서를 이단(異端)으로 규정하고, 순회 종교 재판소를 열어 저항 세력을 처단하고 있었다. 바비도는 성경 모임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조차 재판정에서는 죽음이 두려워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하며 목숨만 부지하려 하였다. 바비도는 이들의 이러한 비겁한 모습에 분개한다. 바비도는 진리를 독점하려는 교회 세력들에게서 거대한 위선(僞善)을 보았고, 급기야 교회 조직과 자신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힘의 있고 없음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해 어느 귀족이 주문한 옷에 오줌을 갈긴다. 재판정에서 사교는 바비도에게 겉으로는 온유한 체하며 죄과를 인정하고 뉘우칠 것을 요구하나, 바비도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스스로 ‘인간 폐업’을 선언한다. 형장에는 바비도의 분형(焚刑)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산을 이룬다. 약하고 몽매한 민중들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원망과 증오를 바비도에게 모조리 퍼붓는다. 그들은 바비도에게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으며 욕설을 한다. 이때 태자 헨리가 나타나 바비도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바비도를 구해 주겠다며 죽기 전에 죄를 씻을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바비도는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겠노라’고 빈정댄다. 사형대에 올라 불을 지피는 순간, 태자는 돌연 불을 끄고 바비도를 내리라고 명령한다. 바비도의 용기와 신념에 감동하여 바비도를 무조건 살려 주겠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비도는 태자의 동정(同情)을 뿌리치고 당당히 분형(焚刑)을 맞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역사 소설, 종교 소설

◎ 배경 : 시간(15세기 초) / 공간(영국)

◎ 경향 : 자유주의 옹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부분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드러남)

◎ 문체 : 강건체

◎ 표현 : 직설적, 추상적, 관념적

◎ 구성

발단 - 바비도는 비밀 성경 독회에서 돌아와 불의와 비겁만이 판을 치는 현실을 분개함.

전개 - 바비도는 정의와 권리란 힘있는 자들만의 특권임을 깨달음.

위기 - 종교 재판정에서 바비도는 사교의 비리를 폭로하고 교리의 허구성을 공격함.

절정 - 형장에 이른 바비도에게 헨리 태자가 구제 받기를 회유하나 바비도는 거절함.

결말 - 바비도의 용기와 신념에 태자는 살려 줄 것을 제안하나 바비도는 죽음을 택함.

◎ 주제 :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정의로운 인간의 삶. 신념에 충실한 인간의 강인한 의지

◎ 출전 : <사상계>(1956)

 

3. 등장 인물

◎ 바비도 : 1401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분형(焚刑)을 받은 영국의 재봉 직공. 태자 헨리를 감동시키나 끝내 죽음을 선택

◎ 헨리 5세 : 바비도를 회유하는 태자

 

4. 이해와 감상

“바비도”는 1956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 김성한에게 동인 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5세기 영국의 역사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다. 당대 교회 조직과 제도의 횡포에 대항하여 진정한 신앙,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고자 한 재봉 직공 바비도의 삶을 통하여, 현대라는 시대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15세기 영국의 재봉사 이름은 원래 바드비(Badby)였으나, 작가의 착오로 바비도가 되었다). 즉 지도층 인사들이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신념을 헌신짝 버리듯 변절하는 시대에 최하층에 속하는 직공이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기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바비도’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념을 저버리게 될 유혹에 빠진 적도 있다. “나같이 천한 놈이 양심을 다 안 속였고 별 수 있을 것도 아닌데. 되는 대로 대답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비도’는 재판정에서의 사교의 회유도, 사형장에서의 태자의 회유도 저버리고 당당히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타락한 교회의 횡포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오늘에 저버리는 인간들에 대항하여 한 가난한 봉제 직공 바비도가 끝까지 정의와 양심을 지켜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그리고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1400년대 영국 사회는 교회의 권위와 신성함이 사라지고 교회와 국가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세속화해 사제와 주교들의 부정이 만연하였다. 바비도는 불의와 비겁이 판치는 이러한 현실에 분개하지만, 정의와 권리란 힘있는 자들의 특권임을 깨닫고 삶에 환멸을 느낀다. 교회가 금지한 영어 성서 읽기 모임에 참석한 죄로 이단으로 지목되어 종교 재판정에 출두한 바비도는 사제의 비리와 교리의 허구성을 공격한다. 바비도는 처형 장면을 구경하려고 많은 군중이 몰려온 가운데 화형식이 거행될 즈음에 그의 용기와 지조를 가상히 여겨 목숨을 살려 줄 테니 자신의 신념을 버리라는 태자(훗날 헨리 5세)의 간곡한 회유를 거절하고 당당히 죽음을 택한다. 이 소설은 종교라는 권위 의식과 개인의 윤리 의식 사이에서 충돌과 폭력과 편견에 맞선 정의와 양심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 1400년대 영국 사회의 모습을 빌어 6․25 전쟁 직후 폐허 가운데서 부패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레고리 문학의 성격을 지닌다. 1950년대 한국 전후 작가들의 문제작들이 주로 어둡고 무기력하며 허무적인 분위기를 띠는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 김성한의 작품은 색다른 빛을 발한다. 이 소설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주체적 의지와 생존 의지가 대립할 때 인간 실존의 행동방식에 대한 소설적 접근을 분명하고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김성한은 개인의 자유와 진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전제로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인간을 자주 그리고 있다. 그의 다른 대표작 “오분간”, “귀환” 등에서도 소극적이고 순응적인 인간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6․25 전쟁의 비극적 체험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의 위기에서 하나의 건강한 극복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 오 분간(五分間)

 

1. 줄거리

코카서스의 바윗등에 묶여 있던 프로메테우스는 녹슨 쇠사슬을 이천 년 만에 끊어 버렸다. 이 때 신이 보낸 천사가 그에게 다가와서 신에게 가자고 한다. 신은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을 끊는 것을 보고 그와 담판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신은 인간 세계의 유명한 자들의 얼을 잡아먹고 있었다. 신의 흉계를 알아차린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 중립 지대에서 만나자고 제의한다. 신과 프로메테우스가 자리를 함께 하는 동안 지구상에서는 온갖 종교를 부르짖는 인간들이 날뛰고 있는데 사르트르는 신을 부정하는 열변을 토하였다. 일본의 수상이었던 길 전무는 명치신궁 앞에서 소원을 빌고, 고딘 디엠에게 파면 당한 바오다이는 첩을 끼고 놀고 있고, 종로의 기생은 노래를 불러댔다. 김 국장은 허 사장과 거래를 하였다. 신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을 바라보고 탄식을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다. 히로히토는 목욕하다가 음모의 길이를 재 본다. 성격 분열증에 걸린 이정민은 종로 3가에서 여자를 찾고 있다. 김 목사는 강 전도사와 교회 뒷간에서 키스를 하였다. 법관은 죄수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덜레스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공의 침략 행위를 경고하였다. 네루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부르짖었다. 네바다에서는 원자탄이 또 터졌다. 신과 프로메테우스는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무한과 영원이 교차하는 점에서 구원의 정적을 간직한 침묵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침묵이 싫었고 네바다에서 터지는 원자탄 소리에 신이 났다. 하지만 신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탄식한다. 이정민은 엉덩이가 크고 못생긴 여자를 골라잡았다. 대학생들은 비밀댄스 홀에서 춤을 추다가 지껄여대고 있다. 지상에 질서를 부여하기를 원하는 신의 제안에 프로메테우스는 신이 자기의 부하가 되라고 말한다. 결국 그들의 회담은 오 분만에 끝나고 각자 자기 고향으로 가 버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신(神)의 세계와 지상(地上)의 세계의 중간(中間) 지대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

◎ 성격 : 비판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신(神)과 프로메테우스가 서로 마주 앉아 담판을 벌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담판 도중에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인간 세계의 단면을 주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인간들의 파렴치(破廉恥)한 행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 주제 : 인간의 극한적 삶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풍자

◎ 출전 : <사상계>(1955)

 

3. 등장 인물

◎ 프로메테우스 : 신의 독선과 잔인성을 증오하고 그에 반항하는 인물

◎ 신(神) :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회의(懷疑)에 빠져 감. - 신(神)적 속성을 가져 인격 부여가 불가능하나, 부조리한 인간상을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는 인격(인간)을 부여하고 있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55년 <사상계> 5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그는 이 작품을 써서 1958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이 갖는 기법상의 특징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동시에 제시하는 동시 묘사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이중노출의 방법으로 화면 처리되는 이러한 방법은 신에게 도전한 프로메테우스의 세계와 온갖 부정 부패, 비리, 권모 술수, 불륜의 행각 등이 구별 없이 벌어지고 있는 지상 세계를 대비시켜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지상을 다스려 보겠다던 신의 의지는 프로메테우스에게 꺾이고 마침내 ‘이 혼돈이 허무 속에서 제 삼 존재의 출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시비를 내 어찌 책임질쏘냐.’라는 독백을 남기고 신은 떠난다. 신이 떠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의 감당할 수 없는 무질서와 부패의 심화 현상뿐이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 주었다는 죄로 형을 받은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지 않고 이천 년 만에 자유를 찾았다는 점과 지상 세계에도 자유가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자유가 아니라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부글부글 끓었다.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 교지(狡智)와 폭력과 간악(奸惡)이 활개를 치면서 신의 옆구리를 차겠다고 날치는 판이었다.’라고 작가는 작품에 개입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신과 프로메테우스가 대화를 나누는 5분 동안을 스토리 시간으로 갖는다. 그 5분 동안 지상은 온갖 부정과 비도덕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인간사의 모든 부정과 혼란이 신과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단지 5분의 시간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은 인간 세상이 결국은 물리적 시간으로 측량할 가치도 없는 비리의 연속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김성한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신화적 요소와 결합시켜 해석해 냄으로써 인간 사회의 부조리의 근원, 나아가 인간의 근원적 속성을 해명해 보려는 작가 나름의 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즉 현실에서 전통적 신의 개념이나 신의 정의라는 굴레를 인간들이 벗어 던짐으로써 세상은 인간 욕망의 실현장으로 변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됨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신과 프로메테우스 사이의 오 분간의 회담은 소득 없이 끝나고 신은 ‘제3의 존재’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한탄한다.

 

 

김승옥(1941~)

 

소설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나 전남 순천에서 유년을 보냄. 바닷가의 체험은 나중에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됨. 대학 시절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김현, 최하림, 이청준, 서정인 등과 교류하였는데, 이 동인들은 이후 우리 문학의 주된 산맥이 되었다. 그 선두 주자는 물론 그였는데,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 연습(生命連習)”이 당선되면서 등단함. 그는 1960년대를 한국 소설의 한 혁명기로 이끌었던 자로, 감수성 짙은 지성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산문의 길을 열었다. 이 문체의 확립으로 한국 소설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도시적 삶에 적응하려는 서민들의 애환, 1960년대의 지적 우울 등을 감각적 터치로 그린 작품이 많았는데, 그 대표작이 “서울, 1964년 겨울”, “무진 기행”,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건”, “환상 수첩” 등을 잇따라 발표하여 문학적 성과를 쌓았다. 그의 소설은 ‘섹스’ 모티브가 주요한 일면을 지니면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모습을 윤리적 측면과 결부하여 그 내면 의식을 심도 있게 드러내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는 1981년 종교적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기독교의 수도에 몰두하느라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먼지의 방”의 연재를 중단한 이후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여 절필하였으며, 1995년에 “김승옥 소설 전집”이 출간되었다.

 

▶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1. 줄거리

이 작품은 전체가 6장으로 나뉘어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서사적 줄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화자의 독백 형식 속에 ‘나’라는 인물과 누이가 도시로 와서 적응하려다 실패하는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중심 이야기는 이러하다. 성공의 신화를 좇아 도시로 떠나간 많은 시골 젊은이와 같이 누이도 이 년 전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다. 그러나 도시의 삶에 실패, 귀향한 누이는 완벽한 침묵에 빠져,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오빠인 ‘나’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도시로 나온다. 거기서 한 인물을 만나는데, 그는 시골을 떠나 작가인 체하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인물로서, 도시화의 물결 속에 파탄되어 가는 상경인(上京人)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누이가 침묵에 빠진 이유를 이해한다. 즉, 누이는 도시에서 개인주의와 군중 속에서 느낀 고독에 의해 침묵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누이는 시골 청년과 결혼을 하고 출산, ‘나’는 축전(蓄電)을 띄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해변 마을과 도시)

◎ 문체 : 서사적 줄거리보다 내면 의식의 서술에 치중함. 1인칭 독백체 서술이 중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 :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산업화로 인한 도시 진출 및 그로 인한 문화적 충격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표현함.

◎ 구성

1장[축전] - 누이의 출산을 축하

2장[프로필] - ‘내’가 상경한 후 서울에 와서 만난 위선적 인간을 그리고 있다.

3장[갈대들이 들려준 이야기] - 누이가 침묵에 잠긴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추측해 봄.

4장[누이의 결혼] - 시골 젊은이와 결혼한 누이

5장[일지 초(抄)] - ‘나’의 단편적 문장들.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한 노력을 고백함.

6장[다시 축전] - 1장의 변용(變容)

◎ 주제 : 도시적 삶이 가져다 주는 정신과 문화의 황폐화

◎ 출전 : <산문시대>(1963)

 

3. 등장 인물

◎ 나 : 누이의 고독과 침묵을 이해하기 위하여 고뇌하다 상경. 그러나 스스로 도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위선적 생활로 나날을 보낸다.

◎ 누이 : ‘해풍’과 ‘황혼’만이 있는, 그래서 ‘설화’가 없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지만,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고독뿐. 귀향 후 얼마 있다가 시골 청년과 결혼하여 출산한다.

 

4. 이해와 감상

1963년 <산문 시대>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이 소설은 전체가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누이’가 도시로 가서 적응하려다 실패한 이유를 ‘나’의 입장에서 밝혀 보려는 독백적 문체의 작품이다. ‘내’가 발견한 누이의 비밀은, 그녀가 도시에 가서 느낀 것은 고독뿐이었으며 침묵하는 방법을 배우고 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고독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곧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상경하지만, ‘나’가 배운 것도 도시적 개인주의뿐이었다. 김승옥 소설의 중요한 제재의 하나는 개인의 자기 세계이다. 이것은 곧 1960년대에 들어와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개인들의 의식이 개별화(個別化)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도시화로 벌어진 이 문제는 김승옥의 감수성이 근본적으로 도시적 감수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도 대체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도시로 간 누이의 실패, 그에 따른 누이의 침묵, 그리고 그 원인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상경, 곧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상경한 ‘나’는 도시의 개인주의만을 배울 뿐이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특별한 서사적인 줄거리가 없을 뿐더러 뚜렷하게 부각된 인물도 없다. 독백적인 문체로 일관하고 있는 이 작품에는 서울로 온 작중 화자인 ‘나’에게 관찰된 제2장의 작가, 제3장의 누이, 제5장의 일지 속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작중 화자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되고 평가되는 인물들이다. 이 작품에서 ‘누이’는 설화가 없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갔다가 침묵만 배우고 돌아오고 만다. ‘누이’가 도시에서 부딪친 것은 모두 자기의 세계를 굳게 지키는 개인주의였으며, 그 속에서 느낀 것은 고독이었다. ‘누이’는 이것에 대해 정직하게 대응하려다 좌절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지적 내용을 감각적 언어로 서술한 작품으로, 도시로 떠난 ‘누이’가 배워 온 침묵을 통해 도시적 삶의 개인주의와 고독감을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황혼과 해풍’은 변화와 생성이 없는 자연 환경으로서 변화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을 상징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전원적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생성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의 자기 완성과 성공과 성취라는 의지의 신화가 없는 감각으로 느끼는 수동적 삶으로 도시를 알기 전에는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었던 삶이었던 것이다. 또한 본문의 ‘이 황혼과 이 해풍이 누이의 침묵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산업화한 도시적 삶과 관련해 정리한다면, 긍정적인 의미로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지만 누이의 침묵을 만든 부정적인 의미는 점차 산업화되어 가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삶의 유물로 전락하는 것, 즉 변화 없는 전근대적 시골의 삶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인칭 독백 형식으로 특정한 서사적인 줄거리보다는 내면 의식의 서술이 주가 되고 있다. 1960년대 사회적 배경이 제재가 되고 있으며 배경은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상황’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적 내용을 감각적인 언어로 구체화시켜 나가는 서술 방식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의 사용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적인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성공의 신화를 쫓아 도시로 나아간 많은 시골 젊은이와 같이 누이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으나 침묵만을 배워 온다. 즉, 누이는 도시에서 개인주의와 ‘군중 속에서 느낀 고독’에 의해 침묵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도시적 삶 자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누이만의 것이 아니다.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제 나름의 사연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실타래같이 얽힌 이율 배반성 속에 있는 것이어서 결국은 개인에게 밀려나고 마는 것이다. 도시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고독한 데 반해 황혼과 해풍의 사람들은 의지의 신화에 소외된 채 짙은 패배감 속에 고독을 느낀다.

 

▶ 무진 기행

 

1. 줄거리

아내의 권유로 ‘나’는 고향 무진(霧津)으로 떠난다.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했고, 얼마 후 제약회사 전무가 될 서른세 살의 ‘나’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더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무진으로 간다. 짙은 안개, 그것은 무진의 명물이었다. 과거에도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한 때면 무진에 오곤 했었다. 그러나 늘 어두운 골방 속에서의 화투와 불면과 수음, 그리고 초조함이 있었을 뿐이다. 무진에 온 날 밤, 중학 교사로 있는 후배 ‘박’을 만난다. 그와 함께 지금은 그 곳 세무서장이 된 중학 동창 ‘조’를 만난다. 그는 ‘손금이 나쁜 사내가 스스로 손금을 파서 성공했다.’는 투의 얘기에 늘 감격해 하던 친구다. 거기서 ‘하인숙’이라는 음악 선생을 소개받는다. 대학 졸업 음악회 때 ‘나비 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는 그녀는 술자리에서 청승맞게 유행가를 부르고 둘만이 함께 있을 때, 무진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나’에게 간청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한다. 이튿날,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방죽 밑에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바다로 뻗은 방죽, 거기 ‘나’가 과거에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갖는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온 급전이 과거의 의식에 빠져 있던 ‘나’를 일깨운다.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지만 곧 찢어 버린다. 이제는 영원히 기억의 저편으로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곳을 떠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60년대) / 공간(무진)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문체 : 강건체

◎ 표현 : ‘안개’라는 배경을 단순한 자연 현상 또는 기후로서가 아니라 주인공의 의식의 한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감수성을 성공적으로 표현함.

◎ 구성

발단 - ‘나’는 서울을 떠나 고향 ‘무진’으로 내려감.

전개 - 동창과 후배와의 술자리에서 하인숙을 만남. 그녀의 허무주의적 태도에 이끌림.

절정 - 하인숙과의 정사(情事).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음.

결말 - 아내의 전보. 몽환에서 깨어나듯 ‘나’는 무진을 떠남.

◎ 주제 : 안개로 상징되는 허무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한 젊은이의 귀향 체험

◎ 출전 : <사상계>(1964)

 

3. 등장 인물

◎ ‘나’(윤희중) : 서른세 살. 장인이 경영하는 제약회사의 전무 자리에 오르기로 되어 있으나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무진으로 가지만 허무를 느낄 뿐, 서울로 다시 돌아온다.

◎ 하인숙 : 무진 중학교 음악 교사. ‘나’를 만난 후 허무를 벗어나기 위해 무진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그 삶을 수용하며 머무는 여인이다.

◎ 조 : ‘나’의 시골 학교 동창생으로 고시에 합격한 무진의 세무서장이다.

◎ 박 : ‘나’의 중학 후배로서 교사이며 하인숙을 사랑하는 순정적 인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4. 이해와 감상

1964년 <사상계>에 발표한 김승옥의 대표작으로 이 소설에는 두 가지 공간이 있다. 아내가 있는 서울은 세속적이지만 현실적 가치의 공간이며, 이에 반해 무진(霧津)은 지명 그대로 나른하고 축축한 몽환(夢幻)의 세계이다. ‘나’인 윤희중은 회억(回憶)에 이끌려 무진에 갔다가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다. 즉, 감상(感傷)을 떨치고 시민이 있고 책임이 주어지는 현실로 회귀(回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보편적 인간 심성을 기본 줄기로 한다. 주인공인 ‘나’가 서울을 떠나 무진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떠남 → 추억의 공간 → 복귀’의 여로(旅路)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여정에서 ‘나’는 더 젊었던 시절의 고뇌를 다시 만난다. 즉, 무진의 골방 안에서의 불면의 밤과 수음, 담배꽁초와 편도선, 6․25 전쟁의 상처, 우편 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 등 어둡던 청년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나’는 무진에서 ‘하인숙’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끈이요 감상의 실체였다. 그러나 그 의식의 다른 끝에는 시민과 책임이라는 상대적인 가치가 놓여 있다. 그것을 일깨워 놓은 것이 아내의 전보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귀향자의 마음에 안개처럼 축축히 배어드는 센티멘털리즘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작가의 표현을 빌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고 ‘나’는 되뇌이지만, 이것은 “마지막으로 한 번 만이다. 꼭 한 번만.”이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사실은 무진과 그 체험을 부정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쓴 ‘하인숙’에게의 편지를 떠나기 직전에 도로 찢어 버림으로써 무진은 또다시 추억의 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현실로 회귀한다.

 

▶ 서울, 1964년 겨울

 

1. 줄거리

1964년 겨울, 서울의 어느 포장 마차 선술집에서 안씨라는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나’는 우연히 만난다. 우리는 자기 소개를 끝낸 후 얘기를 시작한다. 우선 ‘파리(Fly)’에 관한 이야기다. 파리를 사랑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우물거렸고, 나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안에 잡아 본 것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스스로 답한다. 추위에 저려드는 발바닥에 신경 쓰이는 나에게 그는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의기양양해져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여자 아랫배의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그는 꿈틀거리는 데모를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끊어지고 만다. 다른 얘기를 하자는 그를 곯려 주려고 나는 완전히 자신만의 소유인 사실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다. 즉 평화 시장 앞 가로등의 불 꺼진 개수를 이야기하자, 그는 서대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의 숫자를 이야기한다. 나는 안형을 이상히 생각한다.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원생인 사람이 추운 밤, 싸구려 술집에 앉아 나 같은 친구와 간직할 만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러운 것이다. 안형은 밤에 거리로 나오면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술집에서 나오려 할 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가 우리 쪽을 향해 말을 걸어와 우리와 함께 어울리기를 간청한다. 힘없어 보이는 그 사내는 저녁을 사겠다고 하며 근처의 중국요리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아내가 급성뇌막염으로 죽었고, 그녀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직업은 서적 월부 외판원이었다는 것, 옛날에 부인과 재미있게 살았다는 것 등을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며 말을 계속한다.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모두 써 버리고 싶어했고, 우리에게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기를 부탁한다. 중국집에서 나와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가서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사고 귤도 산다. 돈의 일부를 써 버렸지만 아직도 얼마의 돈이 남아 있다. 그때 우리 앞에 소방차 두 대가 지나갔고, 사내는 소방차 뒤를 따라 가길 원한다. 택시를 타고 화재가 난 곳에 도착해서 불 구경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가 불길을 보고 아내라고 소리친다. 그러고는 남은 돈과 돌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 버린다. 결국 그 돈은 다 쓴 셈이 되었고 우리는 약속한 대로 가려 했지만 사내는 우리를 붙잡는다. 혼자 있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밤만 같이 지내길 부탁하며 여관비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 함께 들르길 요청한다. 사내는 남영동의 한 가정집 대문 앞에 멈춰 벨을 누른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리며 월부책 값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여관으로 들어간다. 여관에 들어가서 우리는 방을 몇 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약간의 이견을 갖게 되나 각자 방을 정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다. 안과 나는 성급히 거리로 나온다. 안은 그 사내가 죽을 줄 알았다는 것, 그래서 유일한 방법으로 혼자 놓아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와 행동을 통해 전망 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감성 소설

◎ 배경 : 시간(1964년 어느 겨울밤) / 공간(서울)

◎ 표현 : 무의미한 대화의 연속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구성

발단 - ‘나’와 ‘안’이라는 대학원생이 포장마차에서 만나 무의미한 대화를 나눔.

전개 - 낯선 사내가 말을 걸어오며 자신의 불행을 말하고 동행해도 좋으냐고 간청함.

위기 - 화재가 난 곳에서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팔고 남은 돈을 불 속에 던지고는 불안에 빠짐.

절정 - 여관에 도착한 세 사람은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함.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의 자살. ‘나’와 ‘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곳에서 헤어짐.

◎ 제재 : 연대성이 없는 세 사내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함께 지낸 이야기

◎ 주제 : 사회적 연대감과 동질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소외. 주체성 없는 현대인의 삶과 현실의 부적응으로 인한 삶의 허무. 인간의 거짓 희망과 과장된 절망에 대한 진지한 응시

◎ 출전 : <사상계>(1965)

 

3. 등장 인물

◎ ‘나’ : 작중 화자(話者)로서 25세로 육사 시험에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 근무함. 확실한 주관이 없는 회색적인 인물. 시골 출신으로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이들의 표상. 아저씨와 안의 중간적 존재

◎ ‘안(安)’ : 25세인 부잣집 장남이며 대학원생. 삶을 냉소하면서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지식인으로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물

◎ 사내(아저씨) : 30대 중반.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에 찌든 서적 외판원.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상징하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1960년대에 등장한 소설가들의 작품 세계는 대체로 내성적․실험적 창작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한 모더니즘적 경향과 전통적 사실주의적 수법을 지향했지만 새로운 시대 의식을 보이는 경향으로 분류된다. 김승옥은 전자의 작품 경향을 대표할 만한 작가로서, 현대 사회에서 개체화되고 소외된 인간들을 주로 다루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세 사람의 사내가 우연히 만나고, 교환하고, 헤어지는 풍경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서구와 같이 고립화․개체화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1964년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현실에서 소외된 고독한 세 인물이 서로 무심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사회적 연대성을 잃은 현대인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사건다운 사건은 세 사람이 갈 데 없이 헤매다가 목격한 화재, 중년 사내로부터 들은 그의 아내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사내의 죽음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나’와 대학원생인 ‘안(安)’에게는 하등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화재는 화재일 뿐,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밤에 미리 본 것에 불과하다. 중년 사내가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그 주검을 실험용으로 팔고, 또 그 돈으로 술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안’은 “네에에, 그거 안되셨군요.”라고 말할 뿐이다. 죽음 자체가 사소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는 그 죽음이 사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돈에 대한 인식에서 철저하게 개별화되고 있다. ‘나’와 ‘안’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함께 술을 마시고 자리를 피할 때에는 각자 계산을 하기 위해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중년 사내가 동행을 제의할 때에도 자기 술값이 동행의 전제 조건이 된다.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함께 여관에 들었을 때에도 이들은 제각기 다른 방에 들게 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점은 ‘나’와 ‘안’이라는 새로운 인물 유형이다.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갑내기인 이들은 결코 그들의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느꼈던 것만을 주고받는다.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이고 외로운 현대인의 초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도시적 삶의 황폐성과 파편성, 그리고 왜곡된 개인주의의 심화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일찍부터 이 작품은 19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작품으로 인정받아 왔다. 19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 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 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는 결국 19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인 셈이다.

 

▶ 서울의 달빛 0장

 

1. 줄거리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이다. 인기 탤런트 한영숙인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운명적 예감을 느끼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할 즈음 나는 전인격적인 사랑의 성취에 감격한다. 성병 경험이 있던 나는 혹시나 하는 염려에 성병 검사까지 받는다. 그러나 첫날밤 그녀가 처녀가 아님을 안 나는 이후 그녀의 추악한 음부를 보며 구토를 느낀다. 신혼 여행 후 나는 요도염에 걸리고 아내는 자연 유산이 된다. 아내의 과거에 괴로워하는 가운데 동창생들과 어울린 술자리에 아내가 호스티스로 나타난다. 나라고 착각하고 있던 이전의 나로부터 점점 멀어짐을 느끼면서도 아내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녀를 완전하게 소유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더욱 커질 뿐이다. 그 와중에 나는 그 여자의 과거까지도 소유하고 싶은, 불가능한 욕망을 갖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나는 아내를 만나러 가며 다시 시작해 보자는 제안을 할 의향이다. 그녀에게 예금 통장과 도장을 건네며 ‘가끔 놀러가도 되겠어?’ 하고 묻자 아내는 첫날밤처럼 두 눈을 깜박이며 나를 응시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1970년대 서울

◎ 주제 : 현대 도시 문명 속에서 변질되어 가는 인간 의식과 단절

 

3. 등장 인물

◎ 나 : 대학교 시간 강사. 순수성과 방황으로 갈등하는 감성적 인물

◎ 한영숙 : 탤런트. ‘나’의 아내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60년대 새로운 문체의 미학,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단한 김승옥의 소설이다. 1977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도식성에 빠지지 않고 뛰어난 통찰력과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 시대의 인간 문제를 그려낸 작품이다. 그 표현 문체와 구성에 있어서 참신하고 탄력 있는 양식미가 돋보인다. 또한, 참신한 구어체 문장, 내적 체험의 시간들을 치밀하게 재구성한 플롯,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사회성보다는 의식의 내부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끌어낸 주제 의식, 그리고 관념이나 정감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기술하는 표현 기법 등 문학적 공감을 자아내는 높은 수준과 넓은 폭을 지니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작 형태로 기획하고 썼으나 이후 창작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한 작가의 사정으로 더 이상의 후속편은 없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가족의 사회적 의미와 1970년대 삶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은 모든 것을 자본(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부패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환멸을 표현하고 있다. 나와 아내인 한영숙은 성과 사랑까지도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타락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조차 뚜렷한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가지지 못한 타락한 인물들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작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규정될 수 있는 1970년대적 사회이다. 인간에 대한 가치가 상실되고 대신 돈과 가짜 욕망이 출렁이는 사회에서 두 남녀의 만남과 관계가 어떻게 어그러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지만 참다운 삶을 위한 비전이나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김원일(1942~)

 

경남 김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50년 6․25전쟁 중에 아버지가 월북하였다. 대구농림고교를 거쳐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63년 영남대학 국문학과 3년에 편입하여 1968년 졸업하였고, 1984년 단국대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6년 대구매일신문 신춘 문예에 소설 “1961․알제리아”가 당선되고, 1967년 <현대문학>에 장편 “어둠의 축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68년 단편 “소설적 사내”를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시작된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의 실존적 경향의 소설로부터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다룬 “늘푸른 소나무”(1993)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변화를 보였음에도 6․25전쟁으로 인한 민족 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파헤쳐 대표적인 ‘분단 작가'로 불린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6․25전쟁으로 인한 분단을 주제로 한 대표 작품으로 “어둠의 혼”(1973), “노을”(1977), “연”(1979), “미망”(1982) 등이 있다. 특히 “어둠의 혼”은 당시 비평계의 관심을 끌었으며, 장편 “노을”에서는 6․25전쟁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사적 현실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작가의 분단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은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본 아버지의 이야기인 “연”과 고부간의 갈등을 분단의 비극적 상황과 관련시켜 파악한 “미망”으로 이어지며, 장편 “불의 제전”(1983)과 “겨울 골짜기”(1986)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이밖에 작가의 문학적 영역을 넓힌 작품으로 “오늘 부는 바람”(1975),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마음의 감옥”(1990) 등이 있다. “오늘 부는 바람”은 도시 하층민 젊은이들을 통해 삶의 좌절과 희망의 가능성을 탐색했으며,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우리 시대의 삶의 유형을 대변하는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공해와 환경 문제, 학생 운동, 실향민의 망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마음의 감옥”은 소시민적 지식인인 형을 관찰자로 하여, 빈민 운동가인 동생의 죽음을 감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분단 상황과 현실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968년부터 1985년까지 도서출판 국민서관 주간, 상무이사, 전무이사를 지냈고, 198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강사로 출강,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서라벌예술대학 총동문회장을 지냈다. 1991년부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계원학원 상임이사와 한국문학번역금고 이사를 지냈다. 1974년 “바라암”과 “잠시 눕는 풀”로 현대문학상, 1978년 “노을”로 한국 소설 문학상과 대한민국 문학상 대통령상, 1979년 “도요새에 관한 명상”으로 한국창작문학상, 1984년 “환멸을 찾아서”로 동인 문학상, 1990년 “마음의 감옥”으로 이상 문학상, 1992년 “늘 푸른 소나무”로 우경예술문화상, 1998년 “아우라지로 가는 길”로 한무숙 문학상, 1999년 기독교문화대상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소설집 “어둠의 혼”(1973), “어둠의 축제”(1975), “오늘 부는 바람”(1976), “노을”(1978),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환멸을 찾아서”(1984), “바람과 강”(1985), “겨울 골짜기”(1987), “마당 깊은 집”(1988), “그 곳에 이르는 먼 길”(1992), “늘 푸른 소나무”(1993) 등이 있고, 산문집 “사랑하는 자는 괴로움을 안다”(1991), “삶의 결, 살림의 질”(1993)이 있으며, 다수의 평론이 있다. 장편 “마당 깊은 집”과 “겨울 골짜기”는 1996년 각각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 노을

 

1. 줄거리

삼촌의 죽음으로 29년 만에 돌아온 고향 마을에서 이제는 아주 잊어버렸다고, 이미 떠나 있다고 생각해 온 그 역사적 상처가 여전히 나의 현실과 내부에서 움직거리며 쑤셔대고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 상처는 잊어버리거나 도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멸시받는 백정이었다. 술과 도박으로 매일 밤을 지샐 뿐 아니라 그 성격이 난폭했다. 어머니는 이러한 아버지의 난폭한 매질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아버지의 모진 매를 맞으면서 성장했다. 해방 후, 정부 수립 직후 좌익 진영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좌익 폭동의 앞잡이가 되었다. 폭동의 선두에 서서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좌익 폭동이 진압되고 그들의 실패가 눈에 보이자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버지의 좌익 폭동 사실 때문에 온갖 사회적 심문에 시달려 왔다. 얼마 전, 그 당시 좌익 폭동의 주동자였던 배도수가 찾아온 일로 인하여 모 기관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기도 했다. 배도수가 나를 찾아온 것은 재일 교포인 윤필재를 민단측의 인물로 잘못 알고서 그의 저서 출판을 알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윤필재는 조총련계 인물이었다. 삼촌의 영전에 모인 사람들은 그 당시 고향 사람들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도중 배도수의 근황도 곁들여졌다. 배도수는 좌익 폭동 때에는 그 주동자였고, 6․25 후에는 일본에 잠입하여 조총련에서 활약하다가 이제는 전향하여 이 곳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삼촌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좌익 폭동으로 인한 사회적 시달림 때문에 마음 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싶었던 고향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점점 되살아나기 시작함을 느꼈다. 즉, 그동안 고향에 대한 식었던 애정이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고향을 떠나기 직전에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배도수를 찾아가 환담을 나눈 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돌아온 후, 나는 소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향 산천과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고향 이웃들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그동안 그 역사적 아픔을 저주했던 마음들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저주의 마음도 애정으로 바꿔짐을 느꼈다. 그리고 치모나 배도수에 대한 경계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정부 수립 직후의 경남 진영의 좌익 폭동 사건과 70년대 말의 사회 현실

◎ 주제 : 비극적 현대사 속에서의 고통스런 자기 극복의 의지

 

3. 등장 인물

◎ 김갑수 : 40대 중반의 출판사 중견 사원. 좌익 폭동에 가담한 아버지 때문에 수난을 당하며 살아감. 숙부의 죽음을 계기로 잊고자 했던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되찾게 됨.

◎ 아버지(김삼조) : 백정. 좌익 폭동의 앞잡이로 이용당함.

◎ 배도수 : 좌익 폭동의 주동자. 전향하여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음.

◎ 치모 : 고추 대장의 유복자. 서울 공대에서 데모로 제적당함.

 

4. 이해와 감상

“노을”은 김원일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의 하나로서, 40대 중반의 출판사 중견 사원이 되어 있는 ‘나’의 현재와 29년 전의 소년 시절이 교차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즉 1, 3, 5, 7장이 현재이고 2, 4, 6장은 과거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의 흐름은 현재든 과거이든 간에 여름 며칠 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집약되어 있다. 즉, 그것은 숙부가 별세했다는 전보를 받고 귀향하여 장례를 마치고 상경하는 사흘 간과 정부가 수립될 즈음 남로당의 폭동이 준비되고, 일어나고, 실패하기까지의 나흘 간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나’가 소년 시절에 체험한 소도시 경남 진영에서 일어났던 남로당 폭동의 상처를 주체화하여, 29년이 지나 중년이 되어 극복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노을”은 표면적으로는 남로당 폭동을 다루면서도 이를 역사적․이념적 사건으로 다루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삶을 극복하고 극적 화해를 이룬다는 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러한 소설적 장치는 좌익 폭동이라는 이념적 갈등보다는 세계상의 혼란에 대한 한 인간의 정서적 반응을 주축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정서적 반응은 고통스러운 삶을 피하지 않고 이를 껴안으려는, 고통에 대한 삶의 진정성을 감동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6․25 콤플렉스라는 정신적 위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는 주인공 ‘나’의 비극적 삶이 고통스러운 현대사의 수난으로 인한 우리의 불구적 정서를 대변해 주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분단 현실을 다루면서도 이념적․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내적인 고통의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해를 열망하는 인간주의적 시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분단 문학의 한 성과로 평가된다.

 

▶ 도요새에 관한 명상

 

1. 줄거리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우리 시대의 어떤 삶의 유형을 대변하는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 주는 소극적 인물이다. 그는 월남민으로서 고생 끝에 안정된 직장을 갖는다. 그러나 아내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게 되어 경제적 능력이 없어지자 결국 가정에서의 위치조차도 흔들려 무능한 인간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머니는 물질적 풍요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사는 인물로서,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도 깨어지게 되자 그 자식을 극도로 증오한다. 형 병국은 대학에서 데모를 하다가 제적된 수재이다. 그는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인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항상 좌절한다. 동생 병식은 재수생으로서 선악의 분별에 대한 의식도 없다. 시대의 흐름에 적당히 편승해 가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가족들에게조차도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이러한 네 인물들은 곧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삶의 유형들로서 서로 갈등하며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큰 갈등 구조로 드러나는 것이 형 병국과 동생 병식의 갈등이다. 그것은 이들 사이에서 사건의 계기가 되는 도요새에 대한 갈등으로 구체화된다. 동생 병식은 도요새를 잡아다 팔아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하고, 형 병국은 그 새를 보호하려고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있다. 도요새는 자유의 갈등이다. 형 병국에게 있어 도요새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지니지만, 동생 병식에게 있어 도요새는 하나의 경제적 이익으로 비쳐진다. 병식에 있어서 자유라고 하는 절대 가치는 무의미하다. 이렇게 절대 가치를 포기한 인물에게 있어서는 선악의 관념이 있을 수 없으므로 사회에 대해서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동생과 형의 내면 세계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으로, 결국 갈등 속에 끝날 수밖에 없다. 병국은 개인적으로 동진강의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진정서를 내기도 했지만 공장주들의 끈질긴 방해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동진강에 날아드는 철새들을 약으로 밀렵하여 박제상에 팔아 넘기는 무리 중에 동생 병식이 끼어 있음을 알고 못하게 말렸지만 그것조차도 실패로 돌아간다. 현대 사회는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서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올바른 행위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과 상충이 될 때에는 선(善)보다는 이익을 위해 악(惡)을 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자유의 문제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이나 자유와 같은 절대 가치까지도 쉽사리 포기해 버리는 현대인들의 몰가치적 삶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현실적․물질적 이익의 추구를 위해 포기한, 절대 가치가 부재하는 사회는 그 어떠한 수준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양식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병폐를 비판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시점이 다양하게 이동됨(1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현대 사회의 한 가정과 도요새가 서식하는 동진강 유역

◎ 주제 : 타락한 삶에 대한 비판과 순수한 인간성 회복

 

3. 등장 인물

◎ 아버지 : 실천적이지 못한 소극적 가장.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 어머니 : 물질적 삶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인물

◎ 병국 : 형. 데모로 대학에서 제적된 수재(秀才). 도요새를 절대 자유의 상징으로 여기고 보호하려고 노력함.

◎ 병식 : 동생. 재수생. 냉소적이며 이기적인 인물. 도요새를 밀렵하여 박제상(剝製商)에 판다.

 

4. 이해와 감상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작품 내에서 1인칭 나레이터가 세 번 바뀌면서, 동일한 사건과 사물을 해석하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기법을 보임으로써, 우리는 한 작품을 읽었으면서도 여러 작품을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처음 서두에서는 먼저 동생 병식이가 나레이터로 등장하고, 이어서 형 병국, 그리고 아버지로 각각 바뀌면서 1인칭 시점을 변화시켜 보여 준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된다. 이는 내면성의 추구, 사건의 내면화를 최대한 살려 낼 수 있게 하고, 사건의 전개 발전을 밀도 있게 다룰 수 있게 하고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하여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기법상의 효과를 노리는 소설적 장치인 것이다. 이 같이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기법의 새로움, 소재의 특이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의 설정 등을 통해서 참다운 삶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작가 의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러한 기법상의 새로움과 문명 비판적 주제 제기는 이 소설의 내면적 깊이를 심화시키는 장치로써 김원일의 작가적 양심을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참고> “노을”의 등장 인물

이 소설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동진강 하구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갈등을 엮어 나간다. 그 가족의 면면(面面)을 간단히 밝혀 보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 : 실향민이다. 이북에 두고 온 가족과 약혼녀를 그리워하여 현재의 삶에 애착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어머니 : 생활력은 강하지만 교양이 없다. 단지 자식들을 매개로 부부 관계를 유지할 뿐, 남편을 무능력자로 치부한다.

․큰아들 병국 : 촉망받는 수재였으나 시국 사건 때문에 퇴학당하고 고향에 돌아온 후,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작은 아들 병식 : 재수생. 철새들을 박제하는 일에 협조한다. 무기력한 아버지, 그리고 가족의 꿈을 저버린 형을 증오한다.

이러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상황이 전개되는데, 서로 다른 네 가지 시각에서 서술되는 점이 특이하다.

 

◎ 1부 : 병식의 시각 - 나는 강 언덕에서 갈매기들을 바라본다. 그 갈매기처럼 자유인이고 싶어하는 형을 떠올린다. 형은 한때 가족과 친지들의 촉망을 받았으나, 지금은 낙백(落魄)한 지성(知性)일 뿐. 공해 문제에 미쳐 있지만, 내가 보기에 형은 지나친 이상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는 결국 실패할 것이다. 나는 ‘족제비’를 생각한다. 그 녀석은 돈벌이를 하자며 도요새를 잡아다 팔자고 했다. 녀석의 철저한 실속주의는 나를 늘 감동시킨다. 어머니는 어떤 여자인가.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게다가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 무너지자 형과 나를 극도로 미워하는 안타까운 여자. 그렇다면 아버지는? 돋보기 너머로 구인 광고란을 들여다보는 게 취미인,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부친. 족제비네 집에나 갈까. 박제품이나 만들어야지. 나는 참 쉽게 결정을 내린다.

◎ 2부 : 병국의 시각 - 가을이다. 철새가 몰려드는 계절이다. 도요새는 자유의 상징이며, 내 유일한 꿈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나는 동진강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진정서를 내기도 했지만, 공장주들의 끈질긴 방해만 받아 왔다. 게다가, 철새를 박제상에게 팔아 넘기는 무리 중에 병식이가 끼어 있다니. 나는 그 녀석을 타이르지만 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차라리 나는 새가 되고 싶다. 인간이고 싶어하는 새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새와 나를 바꾸고 싶다. 새 중에서도 툰드라가 고향인 도요새가 되고 싶다.

◎ 3부 : 아버지의 시각 - 아내는 외출복으로 갈아입더니 차비에나 쓰라며 내게 동전 두 개를 던진다. 스물다섯 해나 이 여편네와 살았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무식한 수완가인 아내는 나와 큰애를 무능력자로 제쳐놓는다. 얼마 전 ‘육이오전 강원도 홍천군 두백리에 살았던 분을 찾습니다.’란 신문 광고를 보고 나는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거기는 내 약혼녀가 있는 고향이었으니까. 그 때 아내는 나를 윽박질렀다. 그러나 큰애는 나를 이해했는지 편지를 띄워 보라고 했다. 나는 서둘러 편지를 썼고, 연락이 닿았고, 한 사나이가 방문했고, 나는 수사 기관에 끌려갔다. 통천군 두백리에서 피난 온 고향 사람이 남파 간첩과 접선이 되어 구속된 사건에 참고인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분단의 비극은 그 꼬리가 길다.

◎ 4부 : 작가의 시각 - 박제상 이씨는 익숙한 솜씨로 박제를 만들고 있었다. ‘족제비는 18,000원을 받아 그 중 8,000원을 병식에게 넘겨주었다. 그 날 저녁 병국은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수백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올랐다. 그 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낙오되더니 바다로 떨어졌다. 병국은 바닷가에 섰다. ‘도요새야, 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에 새로운 도래지를 개척했느냐?’ 도요새 무리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작품에는 두 부류의 인물들이 함께 살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생활’만이 삶의 전부라고 믿는 무지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 편에 서서 아버지와 형을 철저히 멸시하는 병식이가 한쪽을 차지하고, 이상과 꿈이 꺾인 상태에서 치욕스런 삶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아버지와 큰아들 병국이가 다른 한쪽에 있다. 그들 현실적인 사람과 이상적인 사람, 물질적인 사람과 정신적인 사람들은 똑같은 현실을 살면서도 세상을 읽는 방법이 다르며, 행위의 준칙이 다르다. 아파트 두 채를 빚을 내어 잡았으나 투기 억제법에 묶여 돈줄이 묶이자 전세금으로 일수놀이를 하는 어머니. 그러한 어머니는 현실주의적 인생관의 전형이며, 군부 정권이 내세운 근대화의 어두운 그늘에 대해 아무런 비판이 없는 사람이다. 작은 아들 병식이는 입시 공부는 뒷전에 두고 박제용 새를 잡는 친구 족제비와 함께 나이트 클럽에서 밤새워 춤추며 방탕한 생활을 한다. 병식이는 동진강 하구를 황폐하게 하는 ‘성창 비료 석교 공장’을 상대로 관계 기관에 진정서를 내는 병국이와 한가족이면서도, 그를 잡으러 온 석교 공장 노무 과장 및 어깨 벌어진 패거리들과 한 통속이다. 아버지는 모든 가족을 이북에 두고 홀홀 단신 월남한 사람이다. 대학 재학 중 인민군으로 징발되어 출전했다가 유엔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국군에 지원 입대하여 금화 전투에서 무공을 세워 육군 소위로 임명되었으나 상이 군인으로 제대했다. 동진읍 어느 공립 학교 서무 과장이 되어 마음 속 상처를 어루만지며 평범하게 살던 그는 아내의 조름을 견디다 못해 큰돈을 빼돌렸다가 떼이고는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의 고뇌의 흔적은 이러하다. 이미 나는 시간이나 쪼아먹는 한 마리의 날개 꺾인 새로 변신해 버리고 말았음을 알았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어느 유행가에도 이런 구절이 있지만 특별한 취미나 마음 붙일 오락도, 그렇다고 나같이 붙임성 없는 위인에게는 고향이란 오직 한 군데밖에 없었다. 휴전이 됐지만 언젠가는 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향 통천으로 갈 수 있으려니, 하는 환상으로 나를 지탱하며 내가 처음 정을 붙인 곳이 바다였다. 그 시절에 만약 이 타관 땅이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에 낙을 붙이고 지금껏 살아왔을까. 나는 자살을 하고 말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는 병국이다. 그의 온 정신은 중부리 도요새의 보호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새가 겪는 온갖 시련을 그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병국은 곧 도요새이다. 개발과 발전의 현실 논리에 저항하는 그는 자연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려는 생명 보호론자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노력으로 폭로되는 공장주들과 그 하수인들의 폐수 불법 처리 방법은 실제로 무자비한 데가 있다. 시 보건과에 그가 제출한 진정서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연 환경에 무감각한 ‘개발 논리’에 의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성창 비료 석교 공장은 연간 40억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폐기 처리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전혀 없음이 입증되었다. 지난 8월 4일 새벽 2시 20분. 당 공장은 야음을 틈타 암모니아 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여 그 가스가 폐수천(석교천)을 따라 안개처럼 덮쳐 와 동진강 하류로 확산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새벽 4시 10분, 동진강 하류에서 오징어 잡이에 출어 하려던 어민 18명이 심한 두통과 구토증으로 실신한 사건이 있었다. 당사는 기계의 밸브가 고장나서 가스가 샜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런 사건은 일주일을 주기로 이미 수십 차 반복되었음을 입증하며……”

 

그렇지만 산업화에 의한 환경 오염과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상업주의에 의해서 서식지를 잃거나 사냥되는 새에 대해서 병국이가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늘 장벽에 부딪힌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의지와 행동은 지극히 고독하고 무모하게 읽혀진다. 왜냐 하면, 그에게는 현실적인 힘도 지위도 영향력도 없기 때문이다. 도요새는 결정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마치, 시위를 주동하다 긴급 조치법으로 대학에서 쫓겨남으로써 날개가 꺾인 채 낙향하여 암울한 나날을 달래며 살아가는 병국 자신의 상황과 일치한다. 그는 장벽을 절감하고 장벽 앞에 멈춰 선다. 그 때 거기서 그가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문화 감각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 장벽을 허물 수 있는 마지막 무기는 안타깝게도 ‘비상(飛翔)의 꿈’ 이외에는 없다.

 

“……나는 정말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모든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내 고통의 근원을 심어 준 이 땅을 떠나 멀리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이상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나그네새를 볼 때마다 간절하게 사무쳤다. 윤회설을 믿지 않지만 이승에서 새로 변신할 수 없다면 내세에서라도 새가 되어 태어나고 싶었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새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새와 나를 바꾸고 싶었다. 선택권을 준다면 새 중에서도 시베리아나 저 툰드라가 고향인 도요새가 되어 날고 싶었다.”

 

병국의 이러한 고뇌와 꿈 옆에 다시 아버지가 다가선다. 멸종 위기를 맞은 도요새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는 청년 병국이를 안쓰럽게 지켜보며 분단의 아픔을 홀로 삼키는 아버지. 그들은 각각 ‘툰드라’에서 도요새로 태어나기를, 고향 ‘통천’으로 돌아가기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꿈이란 점에서, 그들은 이 시대의 현실과 역사가 만들어 낸 희생자이다. 그들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존재는 음험하게 저쪽에 숨어 있다. 그것은 ‘밤’과 ‘매’의 이미지로 부각되어 ‘도요새’를 습격한다.

 

“암흑 천지의 밤이었다. 파도는 높았고 바람은 드세었다. 멀리로 깜박깜박 등대 불빛이 보였다. 도요새 무리는 등대 불빛 을 향해 곧장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가린 등대의 몸체를 미처 피하지 못한 몇 십 마리의 새가 등대 벽에 머리를 박고 떨어졌다. 다시 낮이었다. 강 하구와 벼를 베고 난 논바닥에서 도요새 무리가 쉬고 있었다. 하늘 높이 점처럼 떠 있던 매 한 마리가 갑자기 수직으로 쏜살같이 떨어져 왔다. 매는 미처 날 틈을 못 찾고 쫓음 걸음을 하는 도요새 한 마리를 쉽게 포획했다. 포획 당한 도요새가 매의 날카로운 발톱에 몸통이 찍힌 채 애처롭게 울 동안 다른 도요새 무리는 재빠르게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소설은 자유와 초월의 상징인 도요새와 그 새를 날카롭게 찍어 대는 부당한 현실 사이의 대립을 그리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역사와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지를 비극적 어조로 되묻고 있다.

 

 

 

 

▶ 마음의 감옥

 

1. 줄거리

소규모 출판사를 경영하는 ‘나’는 소련 모스크바 국제 도서 박람회에 참가했다가 귀국했다. 돌아와 보니, 동생 현구가 경북대 의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현구는 현재 1년 6개월형을 확정 받고 고등 법원에 항소 계류 중에 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감정 유치(鑑定留置)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데, 감정 유치 결정이 너무 늦은 탓에 그의 병세는 절망적이다. 현구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운동권 학생으로, 3학년 때 징집 당하여 최전방 특수 부대에서 톡톡히 고생을 했고 제대 후 곧바로 노동 운동권에 투신했다. 그러나 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죄로 감옥 생활을 시작으로, 이후 두 차례 더 옥고를 치렀고 올 봄에는 달동네 재개발 지역 강제 철거 과정에서 철거반원을 구타한 일로 투옥되어 병이 난 것이다. 현구는 6․25 전쟁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태어났다. 그래서 어머니는 유복자로 태어난 현구를 항상 “지아버지와 함께 내 몸 속에 있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감옥이 아닌 바깥 세상에서도 어머니의 마음 속에다 “현구가 들어앉을 감옥 한 칸을 마련해 두었다.”고 말하곤 했다.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나’는 병실에서 현구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절대 수정될 것 같지 않던 마르크스 경제 이론도 그렇게 자체 점검을 통해 현실에 맞게 개선되는데, 어찌하여 우리나라만이 어느 쪽도 기득권을 빼앗길세라 한치의 양보조차 없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말하자 이에 대해 현구는, “분배의 정의부터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만 하는 데도 우리의 사회 구조는 점점 비도덕적인 구조로 깊어만 간다. 이러한 사회 불균형 구조는 6․25라는 분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구는 병세가 악화되어 혼수 상태에 빠져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되자, 현구 아내인 동수 엄마는 현구를 비산동 달동네로 옮길 뜻을 ‘나’에게 내비쳤다. 이는 미리 젊은이들과 함께 밀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달동네에서 빈민장으로 장례만이라도 치르겠다는 것이다. 병원 밖에서는 대학생들과 공원(工員)들이 합세하여 농성을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농성은 더욱 격렬해지고, 경찰은 병원 안에까지 최루탄을 쏘아대었다. 이 때, 4명의 젊은이들이 나타나서 현구의 침대를 뒤켠에 대어 둔 봉고차로 밀고 갔다. 이를 지켜본 ‘나’의 머리에는 ‘이제 현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자신이 들어앉아 살아 숨쉴 감옥 한 칸을 짓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전류처럼 스쳐 갔다. 드디어, ‘나’는 대학생들과 공원(工員)들을 비롯한 핍박받는 사람들의 은밀하지만 정당화될 수밖에 없는 계획에 함께 편승함으로써 현구를 현실의 감옥으로부터 구출하여 현구가 들어앉아 살아 숨쉴 마음의 감옥 한 칸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현구를 산동네로 옮기면서 ‘나’는 6․25 당시의 기억과 4․19 때의 추억들이 어깨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와 함께 우리 오누이 셋이 그 해 겨울 그렇게 남행(南行)을 재촉하여 피난을 떠났듯이, 지금 현구의 침대를 끌고 가면서 4․19의 그 날, 우리 모두 어깨를 걸고 경무대를 향해 내닫던 그 벅찬 흥분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80년대 변혁이 소용돌이치는 사회 현실

◎ 주제 : 극한적 현실 속에서의 자아 발견과 진실 구현의 참다운 의지

 

3. 등장 인물

◎ 나 : 주인공. 소규모 출판사를 경영하는 중산층 인물. 소련 도서 박람회를 다녀와 동생 현구의 입원 소식을 듣고 결국 현구가 몸 바쳐온 사회 운동을 이해하고 스스로 이에 편승함.

◎ 현구 : 대학 시절 운동권으로 활동하다 징집 당함. 제대 후 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투옥 중 병세 악화로 입원, 사망함. 산동네 빈민장(貧民葬)으로 장례가 치러짐.

 

4. 이해와 감상

김원일은 분단 현실이 안고 있는 삶의 고통의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그를 통한 화해에의 열망과 진실을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작가이다. “노을”, “환멸을 찾아서”, “바람과 강”, “불의 제전(祭典)”, “겨울 골짜기” 등 일련의 작품들은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를 확대․심화해 나가는, 문학적 도정(道程)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그의 소설들은 삶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삶의 진정성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마음의 감옥”에서 주인공인 ‘나’의 진실한 삶으로의 인식 전환을 보여주는 것도 그의 소설이 지닌 삶의 진정성 추구라는 미덕과 관련되어 있다. 중산층으로서 방관자적 입장에 서 있던 ‘나’는 동생의 순교자적 인생이 계기가 되어 핍박받는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에 동참하게 되는 삶의 자세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전환은 6․25, 4․19 등의 우리 현대사를 고통스럽게 견디어 온 투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삶의 고통을 화해와 긍정의 시선으로 열망해 온, ‘삶의 진정성’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비롯한 그의 방대한 소설이 지니고 있는 삶의 길이와 넓이는 80년대 우리 소설의 중요한 성과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 어둠의 혼

 

1. 줄거리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진다. 아버지도 총살될 것이 뻔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인 갑해에게는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갑해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은 굶주림뿐이다. 그래서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건 아버지의 행위는 가족을 굶주리게 했으므로 미워할 수밖에 없다. 이모 집에서 어머니를 만난 갑해는 지서에 붙잡혀 있는 아버지를 만나 보라는 얘기에 지서로 간다. 지서를 나오던 이모부가 뒤뜰로 데려가 아버지의 시체를 보여 준다. 비로소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안 갑해는 울면서 강변으로 뛰어가 생각한다. 이모부가 자신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한 것은 아마도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지고 어떤 괴로움이나 슬픔도 이겨 나가야만 한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모부는 그 이유를 말도 않고 전쟁이 끝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 배경 : 시간(광복 직후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시대)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성격 : 회상적

◎ 제재 : 남북 분단 이후 이념 대립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 주제 : 삶의 외경을 통한 고통스러운 현실 극복 의지. 이념의 허구성에 대한 고발과 비참한 삶의 극복 의지

◎ 출전 : <월간 문학>(1773)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73년 <월간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어두웠던 민족사(민족 분단)의 한 토막을 열기조차 호흡이 급한 문체로 조명해 주고 있는 작품이다. 비극적인 동족 상잔의 비참성을 천진한 소년의 시각을 통하여 제시되면서 삶의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좌절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또한, 전쟁이 남겨 준 상흔(傷痕)과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자세를 어린이의 시각을 통하여 그려냄으로써 분단 문학을 다루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서술한다는 것은 곧 이념의 문제를 가족적인 상황 안에만 국한시켜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설적 장치를 통하여 작가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을 수 있게 되며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분단의 비극이 한 순진한 소년 화자의 눈을 통해 묘사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의 시선이기에 사건의 전모가 제한되어 서술될 수도 있으나 역설적으로 전쟁, 좌․우익의 대립이 어린 소년에게 얼마나 큰 비극을 몰고 왔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이데올로기 대립의 참상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고 하겠다. 물론, 전쟁의 비극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 정공법적(正攻法的)으로 취급하기 위해서는 ‘어른의 시각’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작자 자신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 과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며,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라든가 여러 여건상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소년의 시점’을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하기는 이런 문제는 굳이 여기서 짚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선택일 뿐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을 전개함으로써 한국 전쟁이 지닌 비극성을 보여 준다. 한국 전쟁의 비극은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한 민족끼리 벌여야 했던 전쟁이라는 점에 놓여 있으며, 이것은 분단 상황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지은이는 어린아이의 시점을 택함으로써 사상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 채, 이데올로기 대립이 야기한 한 가정의 파괴와 한 소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그림으로써 그 비극성을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의식의 흐름 수법으로 서술된 소년의 내면 세계는 지나치게 솔직할 정도로 ‘배고픔’이라는 절대적인 빈곤의 상태에 대한 서술과 ‘수수께끼’로 압축된 아버지에 대한 의문이 겹쳐지면서 당대 사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짚어 내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가족 관계의 단절과 가난을 초래한 것이 개인의 책임이냐 시대 상황의 책임이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 작가는 이 물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고, 소년으로 하여금 그것을 스스로 모색하게 한다. 결말부에 가서 이모부가 소년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굳이 보여준 이유도, 전쟁이라는 역사적 혼란의 이유를 묻고 그것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소년에게 남겨진 과제임을 암시하는 것이며, 전쟁 전후의 상황에 대한 단정적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는 작가 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아버지의 과거를 회상하며 새삼 두려움에 떠는 소년의 모습은, 삶의 외경을 통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 이 작품의 시점의 특징과 효과

어린 시절과 6․25를 관련시켜 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표면화하고 있는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점을 취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의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에서이다. 이를 통해서, 이 글에서의 사건이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겪은 실제의 이야기라는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1인칭 시점과 어린 시절의 체험을 유연하게 접목시키고 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쟁의 체험과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이면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겠지만, 어린아이의 순진한 관점을 통해 아버지와 어른들의 세계를 암시적으로 서술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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