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동맹, Hansa 同盟, 독일어 Hanse, 친구, 발트 해, 신항로 개척으로 쇠퇴, Hanseatic League
한자(Hansa)는 13세기 초에서 17세기까지 독일 북부 도시들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무역 공동체이다. 본래 한제(Hanse)는 중세 독일의 도시에서 활동하던 상회(商會, 상인 조합)를 이르며, 이들은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발트 해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자체적인 해군을 보유하여 교역로을 독점하면서 대항해시대 이전 중세 유럽의 유력자로 자리잡았다. |
한자동맹 [Hansa, ― 同盟]
(영) Hanseatic League. Hansa는 Hanse라고도 씀.
독일 북부의 도시들과 외국에 있는 독일의 상업집단이 상호교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창설한 조직.
13~15세기에 북유럽의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세력이었다(독일어 Hanse는 '무리'나 '친구'라는 뜻의 고트어에서 유래한 중세 독일어로서, '길드'나 '조합'을 의미했음). 한자 동맹의 전신은 독일 상인들이 활동한 2개의 주요지역, 즉 북해 연안의 저지대 및 브리튼 섬과 교역 관계를 갖고 있던 라인란트, 독일인들이 유럽 북동부의 방대한 배후지와 서유럽 및 지중해 지역 사이에서 중개상 노릇을 한 발트 해 연안지역에 있던 지방의 상인단체들이었다. 1280년대에 이미 라인 지방의 다양한 상인 집단들은 그들의 공통된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협력했고, 발트 해 무역을 지배한 뤼베크 및 그밖의 독일 북부 도시들과 동맹을 맺었다. 동맹의 목적은 해적 및 산적을 진압하고, 등대를 세워 항해의 안전을 촉진하며, 수로 안내인 등을 훈련시키고, 무역기지와 독점권을 확립함으로써 교역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외국 도시(예를 들면 노르웨이의 베르겐, 러시아의 노브고로트, 영국의 런던)에 상업 지역(kontore)을 세웠다. 수십 년 뒤 한자 동맹의 공격적인 보호무역정책은 현지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1368~70년에 한자 동맹은 덴마크 왕 발데마르 4세의 단호한 저항에 부딪쳤다. 발데마르는 발트 해 남서부지역을 지배하여, 그곳에서 한자 동맹이 장악한 경제적 지배력을 종식시키려고 애썼다.
한자 동맹은 특별 회의를 소집하여 군대를 모집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군대가 그후 덴마크군을 결정적으로 무찔렀기 때문에 한자 동맹은 잠시 덴마크를 지배하게 되었다. 14세기에 한자 동맹은 대부분 독일 도시인 100여 개의 도시를 회원으로 거느렸다. 한자 동맹에는 정관도 없었고, 육군이나 해군의 상비군도 없었으며, 정기 집회(의회)를 제외하고는 관리기구도 없었다. 각 도시의 특유한 이해관계와 지역적인 이익이 공통된 관심사보다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자, 15세기초부터는 정기 집회를 소집하는 일도 점점 뜸해졌다. 비(非)게르만족이 세운 발트 해 국가들의 세력이 점점 커진 것도 한자 동맹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리투아니아·폴란드는 1368년에 통일되었다.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는 1400년경에 연방을 결성했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1478년에 노브고로트를 점령하고, 그곳의 독일 상인들을 추방했다. 16세기 중엽에 이르자 네덜란드인이 발트 해에서 서쪽으로 상품을 수송하는 해운업을 장악하게 되어 뤼베크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독일 자체에서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같은 군주국 통합체가 한자 동맹을 약화시켜, 한자 동맹은 신대륙 발견 시대에 서서히 사라졌다. 한자 동맹의 집회가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1669년이었다.
설립 과정
한자(Hanse)라는 용어가 1267년 문서에 등장하기 이전에, 발전이 더디었던 발틱해 주변의 상인들은 도시 간 상호 교류하려고 길드나 한자(Hansa)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4세기 초에 플랜더스가 영방으로 대두하자, 독일의 상인은 그 압력을 막고자 독일 여러 도시가 연합해야 했다. 뤼베크를 맹주로 해 쾰른, 브레멘, 베를린 등지에서 정치 동맹이 설립되었다. 그래서 플랜더스를 대상으로 상업 봉쇄를 선언하였다. 이 동맹은 함대와 요새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치 연합국가로서 인상을 띠었다.
가맹한 여러 도시
뤼베크를 비롯하여 함부르크, 비스마르, 로스토크, 단치히 등 북해 연안과 엘베 강 동안에 있는 독일 여러 도시가 최초에 가맹하였고 후에 가맹한 여러 도시가 90개를 넘었다.
활동과 전성기
1370년에 전성기를 맞는 한자동맹은 북유럽의 무역권을 지배하고 런던, 브뤼헤, 노브고로트 등에도 재외 상관을 두었다. 라인 강에서 발트 해, 북해에 걸쳐서 수상 교통과 운수, 무역에 종사하였으며, 갑판이 넓고 가운데가 큰 대형 선박을 이용해 북해와 발트해 방면에서 목재, 모피, 철 따위와 대구 같은 수산물, 곡식과 맥주 등을 저지대와 서부 독일로 운송하고 동양의 향료와 영국의 양모나 기타 가공품을 북방으로 운반했다. 후에는 동유럽의 산업 원료를 중계하여 서유럽의 수공업자에게 공급하였다. 이러한 무역 발전에 따라 해상운송의 확보와 독점을 취해 군사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다.
15세기 이후 신항로 개척으로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