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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주근접' 대신 '직주일치' 온다

Jobs 9 2020. 10.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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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로 오른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서 올해 ‘영끌대출’ ‘패닉바잉’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한편에서는 감염병을 계기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생겨났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성실한 도시생활자의 근로소득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10억원을 올여름 돌파했고, 평생 짊어질 무리한 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또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이 장기화되고 감염병 위기가 반복되면서 대도시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형 사무실, 역사 속으로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내놓은 ‘재택근무 활용실태 설문조사’를 보면, 올 8월 5인 이상 사업장의 인사담당자 400명 중 절반 규모인 48.8%가 재택근무를 실시한다고 답했다. 재택근무를 실시한 기업의 규모별·유형별 편차는 크지 않았다. 이들 기업 중 ‘재택근무로 인해 업무효율이 높아졌다' 항목에 “매우 그렇다”와 “그런 편이다”라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은 66.7%였다. ‘코로나19 종식 뒤에도 재택근무를 계속 시행하겠다’는 응답은 51.8%였다. 고용노동부는 “재택근무가 상시적 근무 방식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서울 도심에 본사를 둔 대기업들이 직원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사무실을 분산시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통신회사 에스케이텔레콤은 지난 6월 서울 을지로 사옥에 집중돼 있던 직원 일터를 서울 전역과 인근 도시로 분산시키는 ‘거점 오피스’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껏 이 회사는 네곳의 ‘거점 오피스’를 운영해왔는데, 앞으로 직원들의 거주지가 있는 서울 외곽까지 이를 확대하겠다며 “굳이 을지로 본사까지 나올 필요 없이 가까운 거점 오피스로 가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롯데쇼핑도 지난 7월부터 직원들이 거주지와 가까운 거점 사무실에서 일하며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의 경기 고양 일산점, 안양 평촌점, 인천터미널점 등 5곳에 스마트오피스를 마련해 직원들이 현장 근무 뒤 본사까지 돌아올 필요 없이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고 퇴근하도록 했다.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직장인 중에 마땅한 업무 공간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사무실 임대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 8월 창업한 스타트업 ‘집무실’은 집 근처 사무실이란 뜻으로, 거주지 인근 1인 사무실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늘 것이라 예측하고 공간 임대업을 시작했다.

세계적으로는 새 근무 방식과 이로 인한 업무지의 변동이 더욱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정보기술(IT)기업 후지쓰는 2022년까지 도쿄 본사 사무실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현재 250여개 있는 일본 전역의 위성 오피스를 늘리기로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서울 주요 도심의 사무실 공실률은 늘고 있다. 한국감정원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를 보면, 강남의 사무실 공실률은 지난해 1분기 8.1%에서 꾸준히 하락하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본격화된 올해 2분기에 8.7%로 높아졌다.


직장인들이 대형 건물에 모여 하루의 생활을 같이하는 업무 방식이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명호 여시재 기획위원은 여시재 누리집에 쓴 글 ‘일과 오피스의 미래’에서 “300년 전 산업혁명 때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사무실 노동이 코로나19를 맞아 전환의 기로에 섰다. 고층빌딩 사무실에 인력을 끌어모으던 방식이 저물 것”이라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고도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며 인력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노동자들은 출퇴근 편리를 위해 대도시 사무실 근처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직주근접’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이 위원은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 더 이상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도심에 살 이유를 찾기 어렵다. 주거지가 일터인 ‘직주일체’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파트 과연 괜찮을까

올여름 서울 구로구 등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엘리베이터, 환기구 등이 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대형 단지에 확진자가 발생하자 수백명이 우르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고, 감염을 걱정한 청소업체들이 해당 아파트의 쓰레기를 며칠간 수거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의 일상생활 전체가 마비됐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아파트, 오피스텔, 원룸 같은 공동주택을 벗어난 주거 방식을 고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건축계 현장에서 느끼는 바는 더욱 직접적이다. 단독주택 건축업체 ‘공간제작소’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해 올해 건축박람회나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는데 오히려 계약량은 늘었다”며 “학교 못 보내 집에서 자녀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가정에서 도심 외곽에 넓은 집을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특히 많다”고 했다. 이어 “요새 교통이 좋아져 서울 외곽 지역의 출퇴근 시간이 단축된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케이티엑스 확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추진 등 교통수단이 발달해 경기 외곽이나 강원·충청의 수도권 근접 지역에서 서울 도심 사무실 밀집 지역까지 이동 거리가 짧아진 점도 주거지 선택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셧다운이 장기화된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국제사회 주요 대도시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임대료가 비싼 도심 대신 외곽 단독주택으로 이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위험이 중장기적으로 계속되면 이런 주거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사회기반시설과 가까운 도심 외곽 지역의 단독주택 가치는 점진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특히 고령화로 인구감소까지 본격화되면 대도시로의 접근이 쉬운 근교 단독주택이 자산으로 가치도 괜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3밀 대중교통’ 회의론도

하루 평균 이용자 730만명, 출근 시 평균 이용시간 1시간27분, 환승 평균 1.3회.

지난해 서울·경기·인천 시민들의 출퇴근 교통카드 이용 내역을 추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실태’, 2019) 정부가 권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실히 지키는 시민일지라도 대중교통에서 긴 출퇴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불안이 엄습한다. 옆사람의 호흡이 바로 내 볼에 닿을 정도로 붐비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지난 4월 설문조사(‘코로나19로 인한 통행행태의 변화’)를 보면, 대중교통 이용자의 35.8%는 코로나19로 대중교통에서 자가용으로 교통수단을 변경했다고 답했다. 이 중 향후 자가용에서 다시 대중교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2%, 계속 자가용을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9.2%였다. 자가용을 계속 이용하겠다는 응답자가 대중교통으로 복귀하겠다는 응답자보다 2배 많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밀접한 채 상당 시간 머무는 대중교통은 감염증 확산을 계기로 이용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가용처럼 개인화된 이동수단을 선호하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김건우 카카오모빌리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고밀도 이동수단인 대중교통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가장 거리가 먼 이동수단”이라며 “반복적으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 앞에서 지속가능한 이동수단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이동의 위기를 경험한 인구가 일상이 회복되어도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택근무 증가로 출퇴근을 위한 교통 이용은 줄어들더라도 “지금의 고밀도 대중교통에 대한 대안적 고민은 필요하다”고 했다.

붐비는 지하철 노선은 출퇴근 시간대의 이동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거리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티켓을 발급할 수도 있다. ​농촌 지역 주민을 위한 콜택시처럼 이용자들이 소규모로 탑승할 수 있는 ‘수요 응답형 대중교통’도 늘어날 전망이다.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는 자율주행차 전용도로, 배달로봇용 도로의 출현 등으로 도로 모양새도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중규모 도시의 도약

코로나19 이후에도 사람들은 밀집을 전제로 한 도시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는 “일정 수준의 인구 규모를 필요로 하는 산업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에도 어느 정도 모여 살아갈 것이지만, 서울이 아닌 다른 중소도시에 거주할 만한 여지가 과거보다 많아졌다. 한국의 중소도시가 갖는 경쟁력은 밀집도가 낮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몇년 전부터 도시계획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나친 개발과 과밀로 인한 대도시의 부작용을 해결하면서도 생활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자연친화적 ‘콤팩트 도시’(압축도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산업화 시대가 가고 새로 온 지식경제의 시대에선 공동주택, 대중교통, 대형 사무실처럼 인구가 고도로 밀접해 최대한의 생산력을 도출해내는 방식의 대도시 모양은 수명이 다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도시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는 “팬데믹과 기후변화까지 고려하면 사회 전체가 장기적 대응체계로 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구 감소, 저성장까지 생각하면 도시의 형태는 변화할 것”이라며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로 서울의 밀도가 경기도까지 확장 생활권으로 분산되는 방식이나 충청·강원까지 근수도권 (생활) 바운더리가 형성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밀집·밀접·밀폐를 피할 수 없는 대도시나 의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소멸 위험 지역은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대도시는 30만~50만명 단위 ‘생활권 도시’로 분산될 것이다. 인구가 너무 적은 소멸 위험 지역은 방역과 복지시설이 집중된 콤팩트 도시로 통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직주(직장과 주거)일치가 특징인 생활권 도시는 일·주거·여가를 근거리에서 해결해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형태”라며 “적당한 인구와 공간 밀도, 보행과 자전거, 지역 공동체는 코로나 이후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기사 : news.v.daum.net/v/2020101009160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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