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근력운동
근육량 감소 속도 지연이 건강관리 핵심
미국 터프츠대의 의학자이자 영양학자인 어윈 로젠버그(Irwin Rosenberg) 교수는 1989년 국제학술지 ‘미국임상영양학저널’에 전년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열렸던, 노년의 건강과 영양의 측정을 주제로 한 학술모임을 정리한 요약문을 기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로젠버그는 한 페이지 분량의 글에서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수치의 변화는 근육량 감소라고 썼다. 그는 이 현상을 좀 더 진지하게 다루려면 이를 가리키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만든 이름을 제안했다. 로젠버그는 그리스어로 ‘근육’을 뜻하는 'sarco'와 역시 그리스어로 ‘부족함’을 뜻하는 'penia'를 합쳐 ‘sarcopenia(근감소증)’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는 학계에서 즉각 받아들여졌고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 근감소증은 낙상 같은 보행 관련 사고뿐 아니라 전체 유병률 및 사망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나이가 듦에 따라 근육량이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는 게 건강관리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근력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학술지 ‘생리학 경계’ 1월호에는 근육세포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에 대한 리뷰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젊었을 때 근력운동을 해 근육량을 키우는 게 훗날 나이 들어 겪게 되는 근감소증에 대비한 보험이 될 수 있다. 설사 30~40대에 운동을 안 해 근육량이 줄더라도 50대에 다시 근력운동을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근육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근육 어딘가에 예전 잘 나갈 때 기억이 새겨져 있다는 말인가. 리뷰논문에 따르면 ‘그렇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근육세포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보통 체형인 남성의 경우 근육은 몸무게의 30%를 차지하는 가장 큰 조직이다. 그렇다면 인체를 이루는 세포 가운데 근육세포의 수가 가장 많을까.
우리 몸은 세포 30조 개로 이뤄져 있는데, 이 가운데 90% 가까이는 적혈구와 혈소판이다. 혈액은 5리터 밖에 안되고 적혈구와 혈소판이 차지하는 부피는 2리터에 불과하지만 워낙 크기가 작아 수로는 다른 세포들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혈액을 뺀 세포 3조 개 가운데서는 근육세포가 1등일까.
놀랍게도 근육세포의 개수는 3억 개 내외로 전체 세포의 0.001%에 불과하다. 근육세포는 다른 세포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는 말이다. 이는 근육의 기능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근섬유의 수축과 이완으로 힘을 내야 하는데 만일 보통 세포처럼 지름 수십㎛(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인 공 모양이라면 섬유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근육을 이루는 근섬유는 근육세포 하나로 이뤄져 있는데 길이가 수십㎝에 이르기도 한다.
세포에는 세포핵이 하나 들어있지만 근육세포에는 보통 수백 개가 들어있다. 세포핵 하나에 있는 유전자 한 쌍으로는 근육세포가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읍에는 주유소가 한두 곳만 있어도 되지만 대도시에는 수백 곳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력운동을 하면 근육량이 늘어나는 건 근육세포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근육세포가 굵어진 결과다. 이 경우 근육세포의 부피가 늘어나기 때문에 세포핵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세포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근육에는 위성세포(satellite cell)라고 불리는 줄기세포가 있어서 신호가 오면 세포분열을 하고 인근 근육세포에 흡수되면서 세포핵이 더해진다. 성장기에는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위성세포가 왕성하게 분열해 근육량이 늘어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근육량은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힘을 쓰는 노동자나 보디빌더처럼 평소 근력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위성세포 분열이 활발해 근육질인 반면 사무직에 따로 근력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근육이 빈약하다. 이처럼 근육이 비싸게 구는 건 정말 ‘비싼 조직’이기 때문이다.
힘줄로 뼈와 연결돼 있는 골격근은 필요에 따라 크기(두께)가 쉽게 변할 수 있게 진화돼 있다. 힘쓸 일도 없는데 근육량이 많으면 이를 유지하는 비용(칼로리 소모)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평소 쉬고 있다가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는 신호(근력운동)가 오면 깨어나 세포분열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근력운동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기껏 근육을 붙여도 운동을 쉬면 얼마 안 가 다시 빠진다.
부피는 줄어도 세포핵은 그대로
그런데 운동을 안 해 근육세포의 부피가 줄어들 때 세포핵의 개수는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근육세포의 활동과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에 대한 수요가 30% 줄면 세포핵 개수도 그만큼 줄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게 ‘근핵영역가설(myonuclear domain hypothesis)’로 최근까지도 널리 받아들여진 학설이다. 근육세포가 위축되면 그에 따라 불필요해진 여분의 세포핵에서 세포사멸 프로그램이 작동해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핵영역가설은 실험으로 증명되지 못했다. 이를 지지하는 결과도 있지만 어긋나는 결과도 나왔다. 이런 혼란은 근육에서 근육세포만을 따로 관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뷰논문에 따르면 최근 측정기술이 발전하면서 근핵영역가설이 틀리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2010년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을 보면 생쥐의 장지신근에 2주 동안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시키자(길항근 일부를 잘라 과부하를 주는 방식으로) 근육세포 단면적이 35% 늘어나고 세포핵 개수도 54%나 늘어났다. 그 뒤 신경을 끊어 근육이 움직이지 않게 한 뒤 2주가 지나자 근육세포 단면적은 처음보다도 줄어들었지만 세포핵의 개수는 그대로 유지됐다. 근육세포가 커지면서 늘어난 세포핵은 세포가 쪼그라들어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리뷰논문을 쓴 미국 매사추세츠대 생물학과 로렌스 슈와르츠 교수는 이런 발견이 고령사회가 되면서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근감소증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영감을 준다고 주장했다. 근육량 유지의 열쇠는 근육세포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
A와 B는 50세 동갑으로 근감소증을 예방하기 위해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두 사람의 근육량이 비슷하지만 젊었을 때는 달랐다. A는 해마다 봄이 되면 헬스클럽에 다니며 여름휴가를 대비했기 때문에 근육질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직장생활에 치이면서 운동을 끊은 지 20년이 다 됐다. 반면 B는 50이 돼서야 처음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기존 근핵영역가설에 따르면 두 사람의 운동 효과는 비슷할 것이다. 근육량의 열쇠는 운동 강도와 테스토스테론 분비량, 위성세포 분열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발견에 따르면 운동 강도가 비슷할 경우 A의 근육량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비록 근육세포는 가늘어졌지만 한창때의 세포핵 개수가 들어있어 운동에 반응해 충분한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포핵 개수가 적은 B는 뒤늦게 열심히 근력운동을 해도 근육량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위성세포의 분열능력이 부실해 근육세포에 더해지는 세포핵 개수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근육세포의 세포핵을 쉽게 늘릴 수 있는 젊을 때 근력운동을 게을리한 대가인 셈이다. 근육판 ‘개미와 베짱이’라고 할까.
리뷰논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과거에 근력운동을 했던 사람은 오랫동안 운동을 쉰 뒤 다시 시작해도 어느 수준까지는 쉽게 근육이 붙는다고 한다.
슈와르츠 교수는 논문 말미에서 “젊을 때 근섬유에 세포핵을 저축하라”며 “근육에 대해서 ‘쓰지 않으면 잃을 것이다’라는 문구는 ‘쓰지 않으면 잃을 것이다. 다시 쓸 때까지는’이라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