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링구얼, bilingual, 실행 제어 능력, 치매 증상 지연
실행 제어 능력
뇌의 전두엽에서 관할하는 인지 처리 과정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
실행 제어 능력의 요소
억제능력: 충동적이거나 자동적인 대답을 제어하는 능력
예견능력: 정보를 분석하고 통합하여 결과를 예상하는 능력
반추능력: 생각을 돌아보고 조절하는 능력
자기인식능력: 자신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
조직화능력: 정보를 조직화하는 능력
작업기억: 외부의 지시나 하고자 하는 것을 기억하는 능력
주의력 전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전환하는 능력
실행 제어 능력이 저하되면 문제 해결, 의사 결정, 충동 억제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두 개 이상의 언어 사용하면 치매 증상 지연시킨다
기존에 사용하던 모국어 대신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인지적 민첩성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줘 치매 증상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 구사 능력이 뇌가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노화와 질병으로 인한 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경과 및 정신과 교수인 마리오 멘데즈(Mario Mendez)박사가 알츠하이머병 저널에 발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2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치매 증상의 발병을 5년 정도 늦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엉킴 등 치매의 병리학적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독일 베를린 신경퇴행성질환센터의 임상 신경과학자 토머스 발라리니에 따르면 여러 연구에서 치매와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하여 이중 언어 구사 또는 다국어 구사가 보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이중 언어 사용이 노년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으며, 제2언어 학습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중 한 가설에 따르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면 인지 제어 과정과 기본 신경망에 관여하고 뇌를 훈련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려면 언어 간에 자주 전환하거나 현재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통제하고 억제해야 한다고 발라리니 박사는 말한다.
이러한 작업은 엄밀히 말해 언어와 관련이 없지만, 언어를 전환하고 다른 언어를 억제할 때 인지적 민첩성을 요구하고 촉진하여 단어를 혼동하지 않도록 만든다. 또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 사용은 경험과 학습에 반응하여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뇌의 능력인 신경 가소성을 촉진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중 언어 구사 능력은 뇌의 기능적, 구조적 구조를 형성하여 노화 및 신경 퇴화와 관련된 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인지적 예비력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론 밝혀지고 있다.
이는 알츠하이머 병리가 있는 경우에도 치매의 임상적 징후가 나타나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예방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멘데즈 박사는 이중 언어 사용이 뇌를 재구성하여 노화 및 신경 퇴행과 관련된 변화에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하며,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의 존 그룬디 박사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알츠하이머 발병률은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발병률이 거의 같지만,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증상을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 예비력이다. 따라서 알츠하이머가 뇌에 존재하더라도 신경망의 회복력은 독서, 사교, 운동, 음악, 2개 이상의 언어 구사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 검토를 공동 집필한 그룬디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큰 부담이 되며, 실행 기능에는 작업 전환 및 작업 기억과 같은 기능이 포함된다. 이러한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뇌는 더 자동화된 다른 뇌 부위와의 연결을 강화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두엽에서 뇌의 뒤쪽과 더 깊은 부분으로 부하가 이동하거나 공유된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전두엽이 뇌의 다른 부분과 잘 작동하면 전두엽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작동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언어를 배우는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룬디 박사는 가급적 어릴수록 좋으며 5세 이전이 최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프랑스 파리의 브로카 병원에서 이중 언어 구사 능력과 뇌 건강을 연구하는 케이틀린 웨어 연구원은 다른 언어를 배우는 나이보다 그 언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2017년 '노화 신경과학의 프론티어'에 실린 연구에서 웨어 박사는 노년층도 실제로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언어를 처음 배운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젊은 층과 마찬가지로 이전에 습득한 단어를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호기심과 지식 습득은 언제나 두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번 연구와 같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이를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새로운 단어를 외우거나 낯선 지역을 방문하고 친구를 사귀며, 취미를 갖는 등 새로운 것을 접하는 모든 과정들은 두뇌를 더 건강하게 유지하고 나아가 질병의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에 일찍 노출된 아이, 실제로 더 똑똑하다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실제로 더 똑똑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미국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듣고 자란 아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라도 다른 또래에 비해 문제해결 능력과 기억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인 11개월 아기 16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언어를 들었을 때 뇌 활동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 중 절반은 바이링구얼 가정이었고, 나머지 반은 모노링구얼(monolingual, 모국어만을 구사하는) 가정이었다.
아기들의 뇌 활동성은 특수 장비를 통해 관찰됐으며 18분 동안 두 가지 언어(영어와 스페인어)를 들었을 때 뇌 신경세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사해 이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바이링구얼 가정에서 자란 아기는 뇌의 실행기능을 제어하고 판단력을 좌우하는 전두엽이 모노링구얼 가정에서 자란 아기보다 더 많이 발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바이링구얼 가정에서 자란 아기는 인지와 감정을 조절하는 안와전두 피질 부위도 더 활발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이끈 워싱턴대학의 발달심리학과와 컴퓨터과학의 공동 연구팀인 아이랩스 소속 나자 라미레즈 박사는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말을 배우기 전이라도 문제해결 능력 강화를 위한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중 언어가 언어 발달뿐 아니라 인지능력 발달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발달과학저널'(journal Developmental Science)에 게재됐으며 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조지은 옥스퍼드대 언어학 교수 "아이를 바이링구얼로 키우고 싶다고요? '사고의 언어' 형성이 먼저"
아이를 바이링구얼(이중언어 사용자)로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꿈일 것이다. ‘언어의 문’이 닫히기 전에 영어를 모국어처럼 습득할 수만 있다면, 아이만큼은 자신이 평생 겪어 온 영어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이런 희망은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조기 영어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다 보니 영어유치원도 모자라, 유아에게 영어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베이비시터까지 등장한다.
옥스퍼드대 언어학과 교수이자 두 아이를 바이링구얼로 키운 조지은 교수가 <언어의 아이들>(사이언스북스)이란 책을 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 뇌에 있는 ‘언어의 방’은 풍선처럼 늘어나기 때문에 기회를 잘 살리기만 하면 멀티링구얼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기존 연구와 실험을 통해 옳지 않다고 증명된 정보들까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고집스럽게 통용되고 있어 오해를 바로잡고 (정확한 사실을) 공유하고자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 아이가 언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데는 ‘신데렐라의 문’ 같은 시간이 존재해서, 그 시기를 놓치면 외국어로 ‘학습’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이 닫히기 전, 일찍 가르칠수록 좋은 것인가.
“가장 많이 오해하시는 것 중 하나인데, ‘언제’ 가르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가르치느냐이다. 아이의 언어습득 능력은 2.5~3세 사이에 최고 절정에 도달한다. 그러나 ‘사고의 언어’가 형성되기 전 여러 언어에 일관성없이 노출되면 아이가 오히려 ‘모국어’를 잃어버리는 역효과까지 생길 수 있다. 오래전 인터뷰했던 학생 한 명은 어릴 적 부모의 사업차 남미에 살았는데 스페인어를 하는 보모에게 맡겨졌다가 영어유치원에 갔다고 한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스페인어와 영어 구사력이 미숙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한국어를 모국어로 습득할 수 있는 시간도 지나 있었다. 모국어가 부재한 채로 자신감 없이 살아가다보니 언어뿐 아니라 사회성 발달, 교우관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내가 ‘나’임을 나타내는 ‘사고의 언어’가 없으면, 여러 언어를 배워도 ‘짜깁기’처럼 돼서 표현력이 어린 시절에 멈추게 된다.”
- 해외 체류가 아닌 한국 내에서도 이런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어릴 때부터 외국어로만 말하는 보모를 채용하거나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들도 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고의 언어’는 부모와 아이가 언어를 통해 유대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그런데 아이를 한국어로 말하면 벌 주는 영어유치원에 하루 종일 보내고, 집에서도 부모가 어설픈 영어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에게 혼란이 온다. 심지어 강남에는 영어 먼저 마스터시킨 다음 한국어를 가르치려는 아이들을 위한 한국말 학원도 있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영어로만 말해!’라고 강요하는 영어몰입교육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심어줄 수 있다. 소수의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대다수 어린이들이 겪는 심리적인 문제다. 자칫 트라우마로 평생 남을 수도 있다. 심할 경우 실어증을 겪는 아이도 있는데 이런 부정적인 측면은 잘 조명되지 않는다. 한국 대학에서 강의할 때 보니, 학생들이 영어로 질문 하는 걸 두려워하더라.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언어를 두려워한다는 건 큰 문제다.”
- 그럼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언어의 문은 절정의 시기인 2.5~3세가 지나더라도 습득의 효율성이 감소하는 것일 뿐 완전히 닫히는 것이 아니다. 시기가 조금 늦더라도 ‘사고의 언어’가 안착된 후 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에게 부모가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거나 영어 DVD 같은 것을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일방적으로 몇시간씩 틀어주는 건 효과가 없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영어 배우는 것을 ‘놀이’나 ‘재미’로 느끼면서 영어 책에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가 스스로 영어책을 읽는 과정에서 ‘단어폭발’이 일어나면 그 다음부터 아이가 보여주는 창의성의 힘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나의 경우도 학창 시절 부모님이 ‘펜팔’을 알려주신 덕분에 외국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영어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나는 대학 때까지 한국에서 나고 살아서 ‘사고의 언어’는 한국어이지만, ‘삶의 언어’는 영어가 더 편한 바이링구얼이다. 어릴 때 펜팔 경험으로 받은 자극이 큰 도움이 됐다.”
조지은 옥스퍼드대 언어학 교수 "아이를 바이링구얼로 키우고 싶다고요? '사고의 언어' 형성이 먼저"
- 한국에서는 영어가 너무 ‘도구화’ 되다보니 이중언어를 가르치는 것의 의미가 오히려 오염된 측면이 있는데, 이 책에서 지적하셨듯 사실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이중언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한국도 이주 여성과 결혼한 다문화 가정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중언어 교육이 가장 많이 필요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여기에서 소외되고 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 같은 엄마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빨리 한국말 먼저 배우라고 종용한다. 엄마가 미국 사람이라면 과연 그랬을까. 마치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 1세대들이 자녀들에게 빨리 영어를 배우라며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아이의 뇌에 있는 ‘언어의 방’은 풍선처럼 늘어나기 때문에, 베트남어를 못 하게 한다고 그만큼 한국어의 방이 커지는게 아니다. 저는 영국인 남성과 결혼을 해서 낳은 두 아이들을 바이링구얼로 키웠다. 엄마와는 한국어로, 아빠와는 영어로 일관성 있게 대화하며 (독자적인) 유대관계의 언어를 형성했기 때문에 두 개의 언어 기둥이 나란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면 표현력도 두배가 되고, 인지 능력과 사회성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유대관계가 가장 깊은 엄마와 소통을 할 수 없게 되면 ‘사고의 언어’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한국말 습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다문화가정 아이들 23%가 약간의 언어발달 지체 현상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숫자가 적지도 않은데, 이 아이들의 이중언어 습득에 사회적인 관심을 필요하다.”
- 아이들이 ‘우체부’란 단어는 몰라도 ‘택배’는 안다는 어휘조사 프로젝트도 흥미로웠다.
“경기도 수원의 3~6세 어린이집 아이들 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아이들이 쓰는 어휘가 정말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장’은 몰라도 ‘마트’는 알고, 멀티미디어에 많이 노출돼서 IT 관련 영어단어도 많이 안다. 이 아이들이 어른 세대가 되면 한국의 언어 사전이 크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음운 구조도 바뀌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커피’라고 말할 때 어른들이 ‘ㅍ’ 발음을 하면 그건 틀렸다면서 ‘f’ 발음으로 교정을 해준다. ‘f’ 사운드가 한국어 음운에 새로 추가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두뇌에 생기는 변화
다중 언어 사용자들은 보통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하지만 때로는 갑작스럽게 사고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저변에는 우리 두뇌의 작동 방식이 놓여있다.
다중 언어 사용자들이 머릿속에서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복잡하고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과도 다르다. 그들이 뭔가를 말하려 할 때는, 알고 있는 언어들이 동시에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의도와 달리 몇 개의 다른 언어가 섞이는 간섭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간섭은 어휘뿐 아니라, 문법이나 억양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
브뤼셀 자유대학 선임 연구원인 마테 드클레르크는 "연구는 이중 언어 또는 다중 언어 사용자들이 말을 할 때 알고 있는 모든 언어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는 사람이 '개'를 말하려 할 때는 영어 단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단어도 함께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화자는 언어를 제어해야 한다. 보통은 관련 없는 언어를 두뇌에서 억제하는 방식으로 여러 언어가 섞이지 않도록 한다. 이와 관련된 실험이 있다. 실험에선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색깔 이름을 맞추도록 시켰다. 화면에 처음 나온 색깔을 하나의 언어로 표현하고, 다음에 나온 색깔은 다른 언어로 표현하게 했다. 그런데 이 실험 과정에서 참가자의 언어 및 주의력과 관련된 두뇌 부위 전기 활동이 급증했다.
하지만 이 제어 체계에 장애가 생기면 혼선 등의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하나의 언어를 충분히 억제하지 않으면 다른 언어를 쓰던 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다.
벨기에 출신인 드클레르크도 이런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벨기에에는 네덜란드어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함께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그가 독일에서 일하다가 벨기에로 갈 때는 다양한 언어 사이에서 언어 전환 노력이 펼쳐진다.
그는 "운행 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를 거치는 기차를 탄다"고 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쓰다가) 열차가 브뤼셀을 지날 때는 언어가 네덜란드어로 바뀝니다. 약 세 시간동안 회로가 바뀔 때마다 저는 언어를 바꿔야 하죠."
"그런데 항상 약간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요. 전환을 바로 따라잡는 게 불가능했죠."
언어 전환 시나리오는 다중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제어를 연구에 많이 사용된다. 사람이 언어를 전환할 때 생기는 오류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타마르 골란은 수 년간 이중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제어를 연구해 왔다. 그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것들이 꽤 있다.
그녀는 "이중 언어 사용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독특한 점 중 특정한 맥락에서 말하는 게 느려지는 것"이라며 "주 언어를 너무 억제했을 때 나타난다"고 말했다.
즉 다중 언어 사용자의 주 언어는 특정한 맥락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색깔 이름 말하기 실험의 참가자들은 첫 번째 언어(주 언어)에서 두 번째 언어로 전환할 때보다, 두 번째 언어에서 다시 첫 번째 언어로 돌아갈 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그녀는 실험에서 스페인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이들의 전환을 분석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영어로만 된 단락, 스페인어만으로 된 단락, 그리고 두 언어가 마구잡이로 섞인 단락을 큰 소리로 읽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눈 앞에 텍스트가 있었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여전히 "침입 오류"를 일으켰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 "but" 발음에서, 갑자기 같은 뜻을 가진 스페인어를 말한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두 개의 언어가 섞인 단락을 소리 내 읽을 때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침입 오류의 상당 부분이 참가자가 "건너 뛴" 단어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팀은 시선 추적 기술을 통해, 실험 참가자가 대상 단어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참가자 대다수의 주 언어는 영어였지만, 스페인어보다는 영어 단어에서 이런 침입 오류가 더 많이 나타났다. 골란은 이를 주 언어의 역전으로 설명했다.
그녀는 "평소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게 갑자기 더 좋아지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를 지배력 역전이라 부릅니다. 정말 특이하고 신기한 현상이죠."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성인이 새로운 언어에 몰입하면, 모국어 단어 체계와 더 멀어질 수 있다.
골란은 이중 언어 사용자가 하나의 대화 중에 언어를 전환할 때 지배력 역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 언어 사용자는 주 언어를 억제해서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과하게 억제하다 보니, 주 언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속도가 부 언어보다 느려지는 결과가 생기기도 하죠."
골란은 실험을 통해 지배력 역전이 발음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찾아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서 단어를 맞는 언어로 읽긴 했지만 억양이 잘못된 경우가 나타난 것이다. 이 역시 스페인어 단어보다 영어 단어를 읽을 때 더 많이 나왔다.
골란은 "이는 언어 제어가 다양한 수준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말했다. "그리고 억양 체계와 당신이 단어를 끌어오는 어휘 체계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리고 다른 언어 환경에 몰입하는 경우, 모국어의 문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신경언어학을 공부한 작가 크리스티나 카스파리안은 "뇌는 영향을 받아서 잘 변화하기도 하고 적응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외국어 몰입 학습은 두뇌가 모국어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녀는 캐나다로 이주해 성인기에 영어를 배운 이탈리아인들을 연구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일련의 이탈리아어 문장을 보면서 문법적 오류를 찾아내야 했다. 연구진은 그들의 뇌파를 측정했고, 이탈리아에서 살며 이탈리아어만 사용하는 이들과 그 결과를 비교했다.
카스파리안은 "네 가지 형태의 문장이 있었고 그중 둘은 이탈리아어와 영어에서 모두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며 "나머지 둘은 오직 이탈리아어 문법으로만 옳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 중에 이탈리아어로 정확한 문장이지만 영어 문법과 맞지 않은 것을 문법적으로 부정확하다고 판단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영어 실력이 좋고 캐나다에서 오래 살았으며 이탈리아어를 덜 사용할 수록, 정확한 이탈리아어 문장을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컸다.
뇌 활동 패턴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연구팀이 문법적으로 이탈리아어로만 맞는 문장을 보여줬을 때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이들과 캐나다로 이주한 이탈리아인들의 뇌 활동 패턴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카스파리안은 사실 캐나다로 이주한 이탈리아인들의 두뇌 활동은 영어 사용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며, 이들의 두뇌는 이탈리아에 있는 이들과 다르게 문장을 처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카스파리안은 영어는 이탈리아어보다 단어 순서 의존도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어를 읽으면서도 영어의 문법 단서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생애 대부분의 기간동안 사용했던 모국어조차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부분의 다중 언어 사용자들은 모국어 문법을 제대로 구사한다. 하지만 카스파리안 등의 연구는 우리의 언어가 생애 과정에서 변화하고, 적극적으로 경쟁하며, 서로 간섭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간섭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게 성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해결해야 할 난제다. 일리노이 주 노스웨스턴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인 매트 골드릭은 "새로운 언어로 말을 할 때마다 다른 언어가 '이봐, 나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하는 셈"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억제할 필요가 없는 고삐를 당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냥 (언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버려요. 그렇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어요. 자동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어렵지만, 우리가 익혀야 하고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죠."
골드릭은 "배우려는 언어에 몰입하는 것은 다른 언어를 강하게 억제하는 맥락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언어가 더 강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고 그러한 몰입 경험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면 당신은 경쟁하는 언어들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계속된 훈련을 통해 언어 관리에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언어 사용은 분명 인간이 성장하며 습득하는 복잡한 활동 중 하나다. 그런데 여러 언어를 관리하는 것은 인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있다.
어떤 연구들은 이중 언어 사용자가 직관에 반하는 정보에 집중해야 하는 활동 등에서 높은 성과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다중 언어 구사가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늦추는 것과도 관련있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라는 사회적 이익을 준다.
하지만 나의 경우, 다국어 구사는 부끄러움까지 모면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날의 우발적인 실수 이후, 그 빵집을 다시 찾지 않았다. 어쩌면 이 때문에 다른 빵집들을 찾아다니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페이스트리보다는 언어 통제를 연습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