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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Jobs9 2022. 8. 6.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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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 카를로 로벨리의 세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 이은 이번 책은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간’에 관한 이야기.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이곳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다른 것일까?’ ‘왜 과거는 떠올릴 수 있고 미래는 떠올릴 수 없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카를로 로벨리의 충실한 답변서이다.

로벨리는 신비스러운 시간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우리가 가진 통상적인 시간관념을 모조리 깨트린다. 즉, 우주에는 단 하나의 유일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며, 규칙성을 가지고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모든 것은 시간에 관한 우리의 지각 오류가 만든 산물이자 지구라는 환경의 특수성, 근사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시간에 관한 우주의 거대한 이야기가 온전히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인류의 역사에서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알게 되고,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구의 시간, 아니 우주의 시간 그리고 시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물리학과 철학, 그리고 문학이 한데 어우러진 문장마다 깃든 아름다움은 과학책에서는 발견하기 드문 쏠쏠한 행운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단순하게, 기본적으로 어디서든 동일하게, 세상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 과거에서 미래로, 시계가 측정한 대로 똑같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대로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는 정해졌고, 미래는 열려 있고……. 하지만 이 모두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의 특징적인 양상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시각이 만든 오류와 근사치들의 결과물이다. 앞서 언급한 지구가 평평해 보이는 것이나 태양의 회전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되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조들, 즉 층들이 복잡하게 모인 것이다. 점점 더 깊이 연구가 진행되면서, 시간은 이 층을 하나둘씩 한 조각, 한 조각 잃어왔다.
--- p.10~11

시간이 흐르는 속도보다 이 점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시간의 핵심이다. 시간의 비밀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맥박의 진동 속에, 기억의 수수께끼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있다.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은 정확히 무엇일까? 세상의 문법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메커니즘 중에서 이미 존재해왔던 과거와 아직 존재하지 않은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와 미래가 그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와 20세기의 물리학은 이런 질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장소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는 예상치 못한 사실과 마주하며 당혹스러워했다. 세상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기본 법칙에서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원인과 결과, 기억과 희망, 후회와 의지의 차이 )없기 때문이다.
--- p.29

프록시마b에서 여동생의 삶 중 어떤 순간이 ‘지금’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것은 어떤 축구팀이 농구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했는지, 혹은 제비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혹은 음표 하나의 무게는 얼마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축구팀은 농구가 아닌 축구를 하고, 제비는 돈벌이를 하지 않으며, 소리는 무게가 없으므로 모두 잘못된 질문이다. 농구 챔피언 대회는 농구팀을 대상으로 해야지 축구팀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돈 버는 일은 사회 속의 인간을 대상으로 해야지 제비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개념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p.52

세상은 ‘사물’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질로, ‘실체’로, ‘현재에 있는’ 무엇인가로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혹은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연적 발생으로, 과정으로, ‘발생하는’ 그 무엇인가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 무엇은 지속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영속적이지 않다. 기초 물리학에서 시간 개념의 파괴는 두 가지 관점 중 첫 번째 관점이 붕괴된 것이지 두 번째는 아니다. 변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의 안정성이 실현된 것이 아니라, 일시성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p.105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허상이 아니다. 이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다. 그러나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가 현재주의의 시간 구조는 아니다. 사건들의 시간적 관계는 우리가 예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적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친밀 관계가 세계의 질서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허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한 줄로 놓여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관계도 없는 게 아니다. 변화와 사건은 허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하나의 세계적인 질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p.118

우리가 시계로 기간을 측정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기간은 서로 다른 두 순간에 시계를 봐야 측정할 수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순간에 있지, 두 순간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현재만 본다. 과거의 ‘흔적’이라고 해석되는 것들은 볼 수 있지만, 과거의 흔적을 보는 것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차이의 근원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일이 내면적이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것은 내면의 일부이며, 뇌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이다.
--- p.187~188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엔트로피의 성장에 의존하여 시간의 흐름에 정착한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관점에서 기술한, 세상에 대한 근사치의 근사치의 근사치이다. 성서의 [전도서]128에 따르면, 탄생을 위한 시간과 죽음을 위한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시간의 개념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층적인 측면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제각각의 다양한 층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평생 시간의 주위를 맴돌고 나서 알게 된 시간의 물리적 구조이다.
--- p.203~204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세 번째 책이다. 앞서 출간된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는 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공간에 대해 다뤘다면, 이 책에서는 ‘시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느끼고 알고 있는 시간은 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왜 과거는 떠올릴 수 있고 미래는 떠올릴 수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같은 것일까? …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에서 시간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한다. 그는 “시간에 어떤 순서나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특수한 양상일 뿐, 보편적인 본질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인간 지각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의 원초적 시간에는 순서나 질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흐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이 시간에 대해 알아낸 것을 요약했다.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되는데, 이로 인해 복잡한 층들로 이루어져 있던 시간은 이 층을 하나둘씩 잃었다. 기본적으로 어디서든 동일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사건들, 과거는 이미 정해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상식…. 이런 것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낱낱이 드러낸다. 2부에서는 ‘시간이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 인간의 문법에만 존재하는 과거-현재-미래, 시간이라는 변수가 없는 세상…. 이제 공간과 시간은 세상을 담는 틀이나 용기의 형태를 취하지 않게 된다.

3부에서는 1부와 2부에서 파괴한 시간을 되돌려 그 원천을 다시 찾고 이 긴 여행의 도착점을 우리 자신, 나라는 존재로 하여 돌아온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하늘의 운동에 대해 연구하다 우리 발밑의 지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함으로써 끝을 맺게 된 것처럼. 이러한 존재론적 회귀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야말로 물리학과 철학의 아름다운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
인간의 관점으로 시간을 바라볼 뿐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신비스러운 시간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가장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익숙한 ‘틀’부터 하나씩 깨트린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은 ‘유일성’, ‘방향성’, ‘독립성’으로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우주에 유일한 단 하나의 시간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또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다른 어떤 존재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규칙적이고 일정하게 흐르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틀렸다. 시간의 특징적인 양상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시각이 만든 오류이고, 근사치들의 결과물이다.

유일하다고 생각한 ‘시간’이라는 양은 시간들의 거미줄 속에서 산산조각 난다. 이 책에서는 세상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여러 지역의 시간 속에서 사물이 어떻게 진화하는지와 여러 지역의 시간이 ‘서로 어떤 차이를 가지고’ 진화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세상은 사령관의 구령에 맞춰 움직이는 군부대의 대형처럼 균일한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p.25

세상일은 아주 복잡하다.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 태양이 도는 것 같은데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고, 지구가 평평한 것 같은데 사실은 공 모양인 것처럼.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모든 사건들이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관점, 세상의 작은 일부인 인간의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세상을 본 것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엔트로피의 성장에 의존하여 시간의 흐름에 정착한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관점에서 기술한, 세상에 대한 근사치의 근사치의 근사치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pp.203-204

세상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신비,
‘시간’에 관한 전우주적 이야기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출발하여 인간이 시간을 이해해온 역사가 녹아 있다. 뉴턴에 의해 근대 물리학이 등장한 이래로 물리학의 발전이 우리의 시간관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종의 ‘시간 역사서’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카를로 로벨리는 새로운 양자중력 이론의 도입을 통해 ‘지금까지의’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켰다.

시간(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의미의)이 없는 우주, 그럼에도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는 우주, 사물 대신 사건으로 가득 찬 우주, 사건들 간의 복잡한 관계로 인해 변화하는 우주.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과거에서 미래로 질서 있게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고 이에 의존해 살아간다. 인간의 세계는 우주에게 ‘보편’이 아니라 ‘특수’의 경우인 것이다.

이 책은 시간에 관한 이 우주의 거대한 이야기를 온전히 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인류 역사에서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알게 될 것이고 나아가 지구의 시간 아니, 우주의 시간 즉 ‘시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단일한 흐름을 인식하고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흐름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개개의 순간만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그 순간들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시간은 단지 이마누엘 칸트의 말처럼 우리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선험적인 인식체계일 뿐인 것이 아닐까?

 

에드문트 후설(좌)과 이마누엘 칸트(우)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다.

후설의 도형

이 것은 '후설의 도형'이라는 것으로 수평축은 시간축을, 수직축은 우리의 기억을 나타낸다. 후설에 따르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수평축이 아니라 각각의 순간들에 대응된 기억들(A', P' 등)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시간을 재고 있다고 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이러한 기억들을 선형적인 흐름으로 배열하여 인식하는 것일까? 이는 '엔트로피(무질서도)'라는 물리량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루트비히 볼츠만(좌)과 열역학 제 2 법칙(우)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혹은 열역학 제 2법칙은 은 물리법칙 중 유일하게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즉 비가역적인 법칙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르면 외부로부터 고립된 계(system)의 무질서도는 증가할 뿐,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잔이 다시 합쳐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야말로 '시간의 화살'인 셈이다.

여기서 볼츠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엔트로피가 존재하는 이유가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사물의 미시적인 상태까지 볼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무질서도의 차이는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거시적인 상태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질서도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

카를로 로벨리는 이를 통해 기억의 배열 문제를 해결한다. 인간이 세계를 희미하게 보기 때문에 '기억'들에서 무질서과 질서의 차이를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모종의 '순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희미한 시각이 사건들에 부여한 순서일 뿐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주가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후설의 도형에서 수평축, 즉 시간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선형이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그러나 카를로 로벨리는 우주가 이러한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것은 그의 연구 분야인 '루프 양자 중력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루프 양자 중력이론은 양자 이론과 중력 이론을 결합한, 만물의 이론(TOE)의 후보 중 하나이다. 그런데 루프 양자 중력이론의 방정식에는 현재까지의 물리학과 다르게 시간이라는 변수가 없다고 한다. 단지 수많은 사건들의 네트워크, 즉 관계만이 있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관계주의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결국 로벨리는, 수많은 사건들의 네트워크를 우리가 받아들일 때, 희미한 시각으로 인해 순서를 부여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파헤쳐 '인간'에 이른 셈이다. 어찌보면 이것이 세상을 탐구하는 학문의 목적 아닐까? 세상을 파헤쳐서 만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이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의 최신작이다.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로서 과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통합하는 이론인 양자중력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이론(Theory OEverything)이 되기 위한 다른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양자중력 또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물리학계는 여러 방면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세계적으로 과학부인주의가 만연해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형태를 보이는 여러 사상의 발현으로 과학 자체가 부정되고 있다. 게다가 한 세기가 다 되도록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지 못하여 난관에 봉착했다. 과학은 통합의 역사다. 여러 이론을 하나의 포괄적 이론으로 묶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실험으로 교차 검증이 완료된 경우에만 과학계에서는 '법칙'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통합을 다루는 이론들은 기술의 한계로 인해 실험 설계가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로 21세기에 나온 물리학 서적들은 과학 서적이라기보단 철학 서적에 가까운 것 같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도 중반 이후부터는 철학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 즉, 질서에서 혼란으로 전개되는 우주를 객관적으로만 보려는 물리학의 관점에 경종을 울린다. 우주가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기에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 주관성은 견제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현재는 지극히 내 기준에서의 현재지(현재는 주관적으로 바라봐도 과거가 될 수밖에 없지만 편의상 넘어가기로 하자.) 우주 시점으로 바라봤을 때 현재의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 10만 광년 떨어진 별의 빛이 나에게 다다랐을 때 그 모습은 나에겐 현재지만 그 별에게 있어서는 머나먼 과거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주관적으로 '시간이 흐른다'라고 하고 지금 이 순간이 지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라고 인지하는 이유는 진화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로벨리의 주장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시간도 TV 화면의 프레임처럼 양자 단위로 혼란을 향해 붕괴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인지하여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생명체가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우리가 시간의 화살 형태로 인지하여 명칭을 붙이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한 우주와의 상호 작용에 이 방법이 자연 선택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창조한 단어에 항상 지배되어 생각이 편협해 지지 않았는가. 단어와 직관에 의존하는 극단적 주관성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가 세상과 상호 작용하기 위해 인지하는 방식이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극단적 객관성 또한 벗어나 보자. 궁극 이론인 TOE(Theory OEverything)는 Theory OEquilibrium 일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이 균형 아니겠는가.

- 한 줄 평

때론 염세주의자가 부럽다.

2. 기억에 남는 문장

p33 굴러가는 공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나는 이 영상이 정방향으로 재생되고 있는지 역방향으로 재생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상에서 공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면 정방향으로 재생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역방향으로 재생하면 멈춰 있던 공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공이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은 마찰 때문이고, 이 마찰이 열을 생산한다. 그리고 열이 있는 곳에서만 과거와 미래가 구분된다.

p105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p155 우리 주변의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장대한 특징이 바로 회전이다. 그런데 정말 이 회전이 우주의 특징일까? 아니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우주를 연구했고, 결국 하늘의 순환에 대해 알게 되었다. 회전하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이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주의 신비로운 역동성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의 독특한 이동 방식에서 기인한 관점 효과 때문이다.

시간의 화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는 우리가 우주와 상호 작용을 하는 특별한 방식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양상들 가운데 일부의 특별한 집합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집합'이 시간에 맞춰져 있다. (무작위 배열의 카드나 주사위처럼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낮은 엔트로피로 인지)

p161 공간과 시간, 주체의 관점을 무시하고 순전히 '외부로부터' 세상을 설명한다면, 수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겠지만 세상의 중요한 어떤 측면들은 간과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p176 기억, 원인, 결과, 흐름, 과거의 확정적 본성 그리고 미래의 비결정성은 우리가 통계적 사실의 결과에 이름을 부여한 것일 뿐, 우주의 과거 상태는 있음직하지 않다.

p195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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