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 Social Sciences/심리 Psychology

몸과 마음, 사랑과 섹스, 에로틱 사랑과 플라토닉 사랑,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Jobs9 2021. 9. 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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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먼저냐? 섹스가 먼저냐?”

 

남녀의 애정 문제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사랑 없는 섹스’와 ‘섹스 없는 사랑’에 대한 논쟁이다. 에로틱한 사랑과 플라토닉한 사랑, 둘 중 무엇이 더 진정한 것이냐는 물음은 여전히 갑론을박의 대상이다. 상대적으로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한 남성과,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여성의 입장 차이로 인해 남녀 간에 상호 비난이 일기도 한다.

이런 오래된 논쟁에서 미국 대초원 지대에 서식하는 프레리 들쥐의 짝짓기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컷 프레리 들쥐는 발정기 직후 암컷을 찾아 구애하는데, 눈이 맞은 한 쌍은 이틀 동안 무려 50여 회 성교를 한다. 이런 정열적인 짝짓기를 한 후 프레리 들쥐는 평생 동안 한 대상과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포유류의 95% 이상이 일부다처제라는 것과 사뭇 다른 점이다.

더군다나 암컷과 정열적인 시간을 보낸 후부터 수컷 프레리 들쥐는 남편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수컷은 자기 짝을 라이벌 수컷으로부터 보호하고, 장차 태어날 새끼를 위해 보금자리를 짓고, 그들의 둥지를 방어한다. 또 새끼가 태어나면 수컷은 이들을 돌보고 보호한다.

 

이렇게 들쥐 수컷이 남편·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집중적인 성관계 시 사정을 하면서 혈액 속에 급격히 증가하는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과 관련이 있다. 이 호르몬은 암컷과 새끼들을 향한 강한 애착을 불러일으킨다. 바소프레신은 여성이 오르가즘을 느낄 때 증가하는 옥시토신과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아주 유사하다. 즉, ‘친밀감 호르몬’으로도 불리는 여성의 옥시토신 역할을 하는 것이 남성의 바소프레신이다.

 

프레리 들쥐와 유전적으로 약간 다른 메도 들쥐를 비교해 보면 이런 사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메도 들쥐의 수컷 뇌에선 바소프레신은 나오지만 바소프레신 수용체가 없다. 그래서 애착 관계도 없고 일부다처제다. 그런데 메도 들쥐에게 바소프레신 수용체를 늘렸더니 프레리 들쥐처럼 일부일처제의 충실한 남편과 아버지 역할을 하더란다. 반대로 금슬이 좋은 프레리 들쥐의 암수에게 각각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그렇게 화목했던 사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깨져버렸다.

 

인간의 사랑과 성생활에도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의 화학 작용이 큰 것으로 확인되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인간의 성생활도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하고 난 후에 상대에 대한 애착감, 즉 애정은 더욱 강화되고, 강화된 애정은 다시 성관계를 더 만족스럽게 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갖고 있다.

섹스가 없는 사랑이나 사랑이 없는 섹스는 한쪽 날개로 날아가려 애쓰는 모양새다. 양쪽 날개가 잘 균형을 잡고 펄럭일 때 제대로 날 수 있듯이 커플 사이의 관계에서 사랑과 섹스의 조화는 중요하다.

언젠가는 배우자의 충실도를 강화하고 불륜을 고치겠다며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치료에 사용할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접근보다도 평소에 서로 마음과 성의 균형을 잘 보살피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길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고, 몸이 가는 대로 마음도 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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