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등장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증손인 아리스토마쿠스의 세 아들 테메누스, 크레스폰테스, 아리스토데무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점령한 후 크레스폰테스가 메세니아와 스파르타를, 아리스토데무스가 라코니아를, 테메누스가 아르고스를 각각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 중에서 테메누스의 사후 그의 아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발생하였고 여기에서 밀려난 카라노스가 델파이의 현자인 피티아스의 조언에 따라 북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녹지로 우거진 골짜기를 찾아 새로운 도시를 세우고 '아이가에'라고 명명하였는데 이것이 마케도니아 아르고스 왕조의 시작이다.
마케도니아의 시작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남겼다. 헤로도토스 역시 마케도니아의 기원을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고스와 연관을 지었는데, 아르고스를 세운 테메누스의 후손 중 삼형제인 가우아네스, 아에로포스, 페르디카스가 아르고스를 떠나 북쪽의 일리리아의 레바이아라는 곳에 정착하였다. 그 곳에서 레바이아의 왕에게 고용되어 말과 가축을 사육하는 일을 맡았으나 페르디카스의 빵을 구울때 저절로 2배로 부풀어오르는 등 신기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를 불길한 전조로 여긴 레바이아의 왕이 페르디카스 삼형제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고 이에 일한 대가를 달라고 하자 방안으로 들어온 햇빛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이에 가우아네스와 아에로포스는 분개하였지만 페르디카스만 칼로 햇빛을 세번 잘라 품에 넣는 시늉을 하고는 그대로 형제들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추워서 사람이 살 수 없던 베르미온 산을 차지하고 마케도니아를 세웠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1세 시대
비록 마케도니아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스스로 그리스인이라는 자각이 있었지만 왕정과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등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는 다른 점이 많아 북방의 이민족 취급을 받았다. 더욱이 아민타스 1세(재위 BC 540년 ~ BC 498년)가 다리우스 1세가 보낸 페르시아군에 굴복하여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었으며 이는 그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1세(재위 BC 498년 ~ BC 454년) 시대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 폴리스로부터 배척받았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1세는 페르시아 속국시절 오히려 페르시아의 비호 아래 은 광산이 풍부한 디소로스 산을 비롯하여 발칸 반도 북방의 여러 지역을 점령하며 마케도니아의 영토를 넓혔다.
BC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 본토를 침공했을 때 마케도니아는 속국으로서 페르시아군의 일부로 동원되어야 했으나 플라타이아 전투 직전에 알렉산드로스 1세는 그리스 동맹군에 항복을 권하는 사절로 파견되었으면서도 오히려 페르시아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면서 끝까지 싸울 것을 독려하였다. 최종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 동맹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마케도니아도 페르시아의 속국에서 벗어났고 이후 마케도니아가 헤라클레스의 후손임을 주장하여 결국 그리스 폴리스 간에 열리던 고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마케도니아는 비로소 그리스 폴리스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페르디카스 2세 시대
BC 454년 알렉산드로스 1세가 죽은 이후 그의 아들인 알케타스 2세가 새로운 왕이 되었으나 주정뱅이였기 때문에 6년간의 짧은 치세 후 BC 448년 조카인 아르켈라오스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아르켈라오스의 아버지이자 알케타스 2세의 동생인 페르디카스 2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 역시 다른 형제인 필리포스의 왕권도전을 받아야 했다. 필리포스의 반란은 아테네와 트라키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기세가 대단하였으나 페르디카스 2세는 포티다이아를 비롯한 아테네가 점령한 발칸반도 북부의 해안도시들을 선동해 아테네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그리고 때마침 아테네와 대립하던 코린토스까지 포티다이아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자 아테네가 서둘러 페르디카스 2세와 동맹을 맺어야 했다. 이후 페르디카스 2세는 즉각 동맹을 깨고 펼친 포티다이아를 공격하였고 비록 최종적으로 아테네가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아테네의 패권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되었다.
BC 431년 페르디카스 2세는 협상을 통해 아테네와 다시 동맹을 맺고 아테네의 필리포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테네와의 동맹을 오래 유지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시작하자 BC 431년 아네테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스파르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테네는 마케도니아 동쪽의 트라키아를 움직여 마케도니아를 공격하게 하였고 이에 페르디카스 2세는 자신의 여동생을 트라키아 왕 시탈케스의 조카와 결혼시키는 결혼동맹을 통해 겨우 트라키아군을 철수시킬 수 있었다.
BC 424년 페르디카스 2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군 사이에 벌어진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지원하여 아테네의 군함건조의 주요목재 생산지인 암피폴리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후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까지 암피폴리스 수비병으로 지원해주었으나 일리리아가 암피폴리스를 공격하자 마케도니아군은 스파르타군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이에 분노한 스파르타군이 마케도니아군을 공격하면서 페르디카스 2세는 BC 423년 어쩔 수 없이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깨고 다시 아테네와 동맹을 맺게 된다. 하지만 BC 417년 또다시 스파르타 동맹에 합류하였고 BC 413년에 다시 아테네와 동맹을 맺고 암피폴리스를 공격하는 등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서 계속해서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마케도니아의 혼란
BC 413년 페르디카스 2세가 죽자 페르디카스 2세와 여자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켈라오스 1세(BC 413년 ~ BC 399년)가 이복형제와 사촌들을 모두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 아르켈라오스 1세는 통치자로서는 유능하고 관대하였지만 사냥 중에 암살되었고 이후 마케도니아에서는 10년동안 7명의 왕이 교체되는 혼란이 발생하였다. BC 393년 아민타스 3세가 즉위하면서 왕위계승의 혼란은 끝났지만 그동안 마케도니아의 국력이 약화되면서 주변 폴리스의 침입과 위협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 아민타스 3세가 BC 383년 일리리아의 지원을 받은 아르가에우스 2세에게 왕위를 빼앗겼으나 2년 뒤에 테살리아의 도움을 받아 겨우 왕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BC 371년 아민타스 3세의 뒤를 이은 맏아들 알렉산드로스 2세는 북서쪽의 일리리아의 공격과 동쪽의 왕위요구자 파우사니아스의 공격을 동시에 받았으나 때마침 팡가이온 금광이 있는 암피폴리스를 탈환하기 위해 마케도니아 해안을 따라 항해 중이던 이피크라테스의 아테네군의 도움을 받아 겨우 물리쳤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2세가 테살리아의 내전에 개입하면서 라리사 등 여러 도시를 얻었으나 레욱트라 전투 이후 그리스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테베의 개입을 초래하여 펠로피다스가 이끄는 테베군에 의해 테살리아에서 밀려났고 아테네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테베와의 동맹을 체결하는 의미로 막내동생인 필리포스를 볼모로 테베에 보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BC 368년 알렉산드로스 2세가 축제 중에 처남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살해당했고 뒤이어 알렉산드로스 2세의 동생인 페르디카스 3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프톨레아이오스가 섭정이 되었다. 페르디카스 3세가 성년이 되자 프톨레마이오스를 살해하고 통치권을 회복했지만 BC 359년 일리리아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어린 아들 아민타스 4세가 즉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민타스 4세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테베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BC 364년 되돌아온 삼촌 필리포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왕위에 오른 필리포스 2세가 바로 향후 그리스와 오리엔탈 지방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