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세로토닌·엔도르핀 등 신경전달물질, 정서·기억 능력 등과 밀접한 관련 있어
마음의 기능들은 뇌 곳곳에 분포… 듣고 이해하는 영역·촉감 느끼는 영역 등 따로따로 존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의 말은 오늘날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나의 뇌는 활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다시 쓸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정체감, 자신의 의식은 정신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활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이를 담당하는 뇌의 구조와 기능들을 이해하는 것은 심리학자들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됐으며, 뇌와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 즉, 인지신경과학이나 신경심리학은 현대 심리학의 핵심 분야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인지신경과학자 입장에서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마음이란 뇌(brain)가 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외부로부터 각종 감각 정보들(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받아들여 선택하고 압축하고 정교화하고 변형하고 저장하고 사용한다. 이러한 정보 처리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계의 기본 단위가 뉴런(neuron)이라고 부르는 신경세포다. 우리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있고, 각각의 뉴런은 다른 뉴런들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정보처리를 하고 있다. 하나의 뉴런이 다른 뉴런과 만나서 정보를 주고받는 부위를 시냅스라고 부르는데, 하나의 뉴런은 평균 만개의 시냅스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 뇌에는 약 1000조 개의 어마어마한 시냅스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인가를 배우면 뉴런과 시냅스의 활동, 모양, 연결 구조 등이 바뀌게 된다. 이 시냅스에서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하나의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전달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은 수십 가지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이며, 이러한 신경전달물질들은 수면이나 배고픔과 같은 생리적인 차원부터 정서나 기억, 학습 등에 이르는 복잡한 마음의 기능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떤 신경전달물질이 모자라거나 혹은 과다해지면 편두통이나 불면증부터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조현병이나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마음의 과정은 결국 화학물질의 소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고통과 기쁨, 심지어 사랑과 기억까지도 모두 화학물질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2010년 네이든 드월과 그의 동료들이 저명 심리학 학술지인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논문은 우리의 몸(뇌)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재미있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진통제를 복용한다. 두통, 치통, 생리통 등 신체적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진통제에 있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타이레놀, 게보린, 펜잘, 판피린 등의 주성분으로 해열, 진통 작용을 함)을 복용하는 것이다. 드월과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신체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성분이 마음의 고통도 경감시켜주는지를 실험연구를 통해 알아봤다. 이들 실험에서는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대학생들 중에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하도록 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위약집단) 간에 정신적인 고통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관찰했다. 과연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같은 성분의 약물에 의해 줄어들었을까? 실험 결과, 진통제를 복용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정신적 고통이 크게 줄었음을 보고하고 있다. 정신적 고통은 왕따와 같은 사회적 따돌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연해서, 시험에 낙방해서,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을 떠나보내고 우리는 마음의 고통을 느낀다.
손가락이 아플 때와 발가락이 아플 때 우리는 어디가 아픈지 안다. 하지만 아픈 신체 부위가 다르다고 다른 진통제를 먹지는 않는다. 즉, 손가락이 아프다고 손가락 진통제가 따로 있고 이가 아프다고 이 진통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도 결국 뇌의 정보처리 결과이고, 고통스러운 신체 부위가 어디든 동일한 뇌 영역(배전측 대상피질과 전측 섬엽,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anterior insula)이 활성화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왕따를 당하거나 혹은 실연해서 고통을 느낄 때도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진통제 성분은 이들 영역의 신경 반응을 억제해, 결국 그것이 신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고통을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고통에 있어서 몸과 마음은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고통뿐이랴. 모든 마음의 현상은 뇌의 활동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뇌의 모든 구조와 활동을 알게 되면 우리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을까? 우리 뇌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들의 복잡한 조직들이 있고 그 안에서 전기 화학적인 신호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활동하는 뇌를 속속들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내 기억에 간직돼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찾아볼 수 없다. 내 머릿속에 분명히 저장돼 있을 우리말 어휘들과 중·고등학교 때 배워서 알고 있는 영어 단어 하나도 뇌 안에서 찾을 수 없다. 즉, 뇌만을 들여다보고 뇌만을 연구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뇌를 들여다봐야 한다. 결국 마음은 뇌 안의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 그리고 수많은 화학 물질로부터 비롯되기는 하지만 마음의 현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행동과 마음의 개념을 통해서 보다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뇌와 마음 간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느꼈던 뇌의 대표적인 특징 세 가지를 말하라면, 첫째, 다른 신체기관과 달리 뇌는 매우 복잡한 기관(약 1000억 개의 뉴런과 1000조 개의 시냅스를 상기해 보라)이고, 둘째로 복잡한 정보처리 기관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많은 마음의 기능이 뇌 곳곳에 국지적으로 분포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뇌 안에는 말하는 영역, 듣고 이해하는 영역, 보는 영역, 엄지손가락을 담당하는 영역 등이 다 각기 존재한다. 심지어 엄지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영역과 그곳에서 촉감을 느끼는 영역도 각각 따로따로 있다. 그리고 손의 감각을 최종 느끼는 곳은 사실 손이 아니라 손을 담당하고 있는 뇌의 체 감각 영역이다. 즉, 우리가 아무리 멀쩡한 손이 있어도 손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손상되면 우리의 손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사고를 당해 손이 없는 사람도 손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환상지(phantom limb)라고 하는데, 사고로 손이나 발을 잃은 환자들이 더 이상 없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가렵거나 혹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신체 부위를 담당했던 뇌 영역은 여전히 뇌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국지화된 수많은 영역은 다시 복잡하게 연결되고 활성화돼 다양한 행동과 심리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마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자동차가 무엇인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자동차의 목적적인 측면에서 자동차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운송수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 즉 연료가 점화되고 폭발돼 상하 피스톤 운동이 회전운동으로 전환돼 바퀴가 굴러가는 등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이러한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자동차의 하드웨어나 구조적 측면에서 엔진의 모양이나 합금으로 된 차체와 핸들, 네 개의 바퀴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자동차 하나도 이렇게 여러 차원에서 이해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복잡한 인간의 마음은 말해 무엇하랴?
자동차를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했던 것처럼, 마음의 목적은 무엇이고, 마음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작동하고, 그것이 구현되기 위해 어떤 하드웨어(뇌)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마음의 덩어리가 너무 크다면 그것을 기능별로 나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마음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인 ‘기억’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기억의 목적이 무엇이고, 기억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유지되고 사용되는지, 그리고 기억을 담당하는 하드웨어의 특성 등을 연구할 수 있다.(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데, 그것의 목적, 과정(혹은 알고리즘), 그리고 그것의 하드웨어적 측면들을 이해할 필요성은 1980년대 시각(vision)을 연구한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마가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기억의 하드웨어 역시 다양한 수준에서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 즉, 기억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 수준부터 기억의 신경망과 이들이 연결된 광범위한 뇌 영역 수준에서 인간의 다양한 기억 현상들을 연구할 수 있다.
앞서 인간의 마음을 화학물질 수준에서 이야기한 것에 대해 혹자는 인간의 고귀한 마음을 물질로 환원해 단순화시키고 심지어 인간의 존엄을 무시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의 기관인 뇌 조직의 여러 수준 중 하나이며 분명히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준이다. 하나의 뉴런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기 화학적 변화부터,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한 정보 전달, 그리고 수많은 뉴런이 신경망을 형성하면서 처리하는 정보들과 이런 망들이 모여 특정한 뇌 영역에서 담당하는 마음의 기능들, 더 나아가서 이들 영역이 서로 연결돼 보다 광범위한 뇌 영역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마음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마음은 화학 분자 수준부터 커다란 뇌 영역 수준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은 개인 차원뿐 아니라 집단과 사회, 문화적 수준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다차원적이다.
신경전달물질 : 시냅스에서 정보 전달을 담당하는 물질로 지금까지 수십여 가지가 발견됐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발견될지 모른다. 뉴런은 내부적으로 전기적인 정보를, 외부적으로는 화학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즉 한 뉴런이 다른 뉴런에 정보를 전달할 때에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우리는 흔히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혼동한다. 물론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은 모두 화학 물질이지만 활동하는 곳이 다르다. 호르몬은 내분비계에서 분비돼 혈류를 타고 다니며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데 비해, 신경전달물질은 신경계에서 뉴런과 뉴런 사이를 이동하며 정보 전달에 관여한다. 신경전달의 기능은 매우 복잡해 단순화나 일반화가 어렵다. 예를 들어 대표적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쾌락과 연관돼 있지만 파킨슨병과도 연관이 있다. 마음의 수많은 활동 증상과도 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