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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김기림, 주지시, 모더니즘 시 [현대시]

Jobs9 2023. 3. 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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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거대한 ‘바다’와 연약한 ‘나비’의 색채 대비를 통해 모더니즘 시의 회화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주지적, 감각적, 상징적
* 제재 : 나비와 바다
* 주제 : 낭만적 꿈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 인식
* 특징 
① 감정을 절제한 객관적 태도가 드러남.
② 색채 대비를 비롯한 시각적 심상이 주로 나타남.
* 출전 : “여성(女性)”(1939)

 

작품의 구성

[1연]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는 나비
[2연] 바다에 도달하지 못하고 지쳐 돌아온 나비
[3연] 냉혹한 현실 속에 지친 나비의 모습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던 시인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 인식을, ‘바다’와 ‘나비’의 색채 대비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1연에서는 바다의 무서움을 모른 채 바다에 다가가는 나비의 순진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때 ‘바다’는 깊은 수심을 지닌 거대한 세계이고, 그 바다를 날고 있는 ‘나비’는 바다의 수심, 즉 세계의 위험성과 비정함을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다.
2연에서는 바다의 냉혹함에 지쳐 돌아오는 나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 ‘청 무우밭’은 나비에게 있어 낭만적 꿈의 공간이며 나비가 지향하는 세계이다. 어린 나비는 바다를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로 알고 다가가지만 바다는 나비에게 낭만적 꿈에 대한 허망한 좌절을 안겨 준다. ‘어린 날개’, ‘공주처럼’과 같은 표현은 이와 같이 현실 세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순진하고 연약한 나비의 모습을 드러낸다.
3연에서는 바다의 무서운 깊이를 알게 된 나비의 지친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바다가 나비가 꿈꾸는 ‘청 무우밭’이 아니어서 서글퍼진 흰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겹쳐지면서, 거대한 바다의 무서운 깊이를 경험하고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 꿈이 좌절된 채 돌아온 나비의 슬픈 비행이 차갑고 시린 아픔을 느끼게 한다.
각 연은 객관적이고 단호한 성격의 종결 어미 ‘-다’로 끝냄으로써 대상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적 긴장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회화적 특성과 문명 비판적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어의 상징적 의미

* 흰나비 : 새로운 세계를 열망하는 존재, 낭만적인 꿈을 지닌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존재
* 바다 : 나비가 이상적인 세계로 착각한 곳, 냉혹한 현실의 세계, 근대 문명의 삭막함
* 청 무우밭 : 나비가 동경하는 세계

모더니즘 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이 시는 ‘바다’와 ‘나비’가 갖는 두 이미지의 대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하고 냉혹한 바다와 한 마리의 조그맣고 연약한 나비가 대조를 이루고, 바다의 청색과 나비의 흰색의 색채 대비가 선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회화적 심상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시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바다’와 ‘나비’의 대조적 이미지

이 시는 거대하고 비정한 세계인 ‘바다’와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다가 좌절하는 순진한 존재인 ‘나비’의 이미지 대비를 통해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낭만적 꿈의 좌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1연과 2연에서는 흰나비와 푸른 바다의 색채 대비를 통해 바다의 냉혹함과 나비의 순진함이 대비되어 강조된다. 3연에서는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비치고 있는데 ‘새파란 초생달’은 푸른색 이미지인 ‘바다’와 연결되어 흰나비의 지치고 서글픈 마음을 잘 드러낸다. 즉, ‘바다’와 ‘나비’의 대조적 이미지를 통해 ‘바다’의 거칠고 냉혹한 모습과 ‘나비’의 순진하고 연약한 모습을 감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나비’에 투영된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

‘바다’는 삼월에도 꽃이 피어나지 않는 무생명의 공간으로 문명의 무생명성 또는 불모성을 상징한다. ‘나비’는 이런 ‘바다’를 ‘청 무우밭’으로 오해해서 내려갔다가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이 시의 사회 · 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흰나비’는 현실의 모진 세파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낭만주의적 존재로,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과정 속에서 겪었던 지식인들의 지향과 탐색, 방황과 좌절을 표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은 무한한 바다와 한갓 미물에 불과한 흰나비의 대조를 통해서, 역사 혹은 운명과 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현실을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와 같이 형상화함으로써, 힘없이 날개만 파닥거리던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초라한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다와 나비’에 반영된 김기림의 현실 인식

김기림의 대표작으로 인용되는 이 시는 삼 년간의 일본 유학 이후 귀국과 동시에 발표한 첫 작품이다. 여기에는 삼 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에서 온 피로감과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생활인의 흥겨움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의 전기 시의 특징인 새것을 찾아 전진하는 생동감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새것을 찾아간 나비의 경망함에 대한 반성, 새로운 세계를 찾는 자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운명적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절망은 결국 전적으로 자신의 탓일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시각도 제시되어 있다.

 

작가 소개 - 김기림(金起林, 1908 ~ ?)

시인 · 평론가, 함북 학중 출생. 1930년대 초반에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하면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8·15 광복 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서 활동하면서 사회 의식을 짙게 드러내는 시를 썼으며,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시의 주지성(主知性)과 심상을 강조했으며, 평론가로도 주목받았다.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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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바다’의 이미지

‘바다와 나비’와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모두 중심적 시어로 ‘바다’가 제시된다. 하지만 두 시의 ‘바다’의 이미지에는 차이가 있다. ‘바다와 나비’에서 ‘바다’는 냉혹한 현실로 순진한 ‘나비’에게 좌절을 안겨 주는 장애물의 이미지이지만,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바다’는 크고 넓은 것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의 이미지를 지닌다.

정한모, ‘나비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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